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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집이 불타고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먼저 구할 것인가? 나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하기가 어렵다. 물건들은 대체될 수 있지만, 그 집안에 있는 사람들, 즉 가족은 다르다. 폴 린치의 『예언자의 노래』를 읽는 내내 나는 이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이 책은 단순히 “무엇을 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대신, 가족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야기의 배경은 전체주의에 의해 무너져가는 아일랜드,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한 가족이 있다. 가족은 종종 우리의 안식처로 여겨지지만, 이 소설에서 가족은 동시에 가장 큰 책임이자, 절망 속에서도 유일한 희망의 원천으로 묘사된다. 이 작품 속 가족은 단지 서로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절박한 선택을 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가족을 지키는 일이란 단순한 책임감 이상의 것임을 느꼈다. 그것은 삶의 본능과도 같다. 작중 가족이 마주하는 폭력과 억압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하다. 세상이 그들에게 가혹할수록, 그들은 더 강하게 서로를 붙들고 버텨야만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종종 드러나는 갈등과 고통은 생존 그 자체가 얼마나 잔혹한 대가를 요구하는지를 보여준다.


폴 린치의 문체는 서정적이면서도 무자비하다. 그는 독자를 위로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불사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잔혹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동시에, 그 잔혹함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은 숭고함을 넘어 아름답게까지 느껴진다.


나는 내 삶 속에서 이런 생존의 처절함을 직접 경험한 적이 없다. 가족과 함께 안전한 공간에서 살아가며,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하는 일이 얼마나 끔찍할지 온전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해, 그런 상황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하는 절박함이 어떤 감정일지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인간다움은 과연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이 질문은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가족을 지킨다는 일이 단순히 함께 살아남는 것을 넘어, 서로를 인간답게 만드는 과정이라는 점이었다. 폭력적인 세상에서 가족은 우리를 버티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무게가 되기도 한다. 이 책 속 가족은 그 두 가지를 모두 품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간다.


폴 린치는 독자로 하여금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한다. 그는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순간, 그것을 붙잡으려는 마지막 노력의 모습을 매우 생생하게 그린다. 이는 가족을 위한 사랑이 얼마나 처절하고 숭고한지를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 나는 이 소설이 단순히 고통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랑과 희망이 어떻게 절망 속에서도 빛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감동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나는 다시 처음의 질문을 생각한다. 만약 집이 불타고 있다면, 내가 가장 먼저 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예언자의 노래』는 단순히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왜 그 대답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지를 깨닫게 만든다. 가족은 단지 우리가 지켜야 할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이유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불타는 집을 벗어나는 순간, 내가 품에 안을 그 소중한 것들이야말로,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삶의 중심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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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건 매 순간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에 속하며,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점검당하는 일이다. 록산 게이의『아무도 우리를 구해주지 않는다』는 그런 나의 현실을 흔들며, 더 큰 질문을 던졌다. "너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침묵하며, 무엇을 행동으로 옮길 것인가?"


그녀는 여성의 몸에 대해 말한다. 몸을 둘러싼 권력과 통제를 이야기할 때, 나는 한국의 다이어트 광고와 외모 강박이 떠올랐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미 정해진 규칙이 있다는 듯한 사회 속에서 내 몸을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에 내어주고 있었다. 록산 게이는 말한다. "몸은 이야기다. 그것을 다시 쓰고 싶은가? 그렇다면 너 자신을 다시 써야 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내 안에서 작은 저항의 기억들을 불러냈다. 나는 어쩌면 이미 저항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더 큰 질문을 던진다. "그게 충분했니?"


책을 읽으며 불편한 순간도 많았다. 그녀는 인종 문제와 미국의 분열된 현실을 너무도 솔직하게 다룬다. "그건 미국 이야기 아닌가?" 하고 거리를 두려는 내 태도가 드러났다. 하지만 나는 깨달았다. 그녀가 말하는 모든 불평등의 뿌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너는 네가 속한 세상 속 불평등에 얼마나 민감한가?" 그녀는 그렇게 묻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책을 덮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녀가 말한 "의견(opinion)"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었다. 그것은 행동이고, 싸움이며, 세상에 나를 드러내는 용기다. 침묵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도 강렬한 행동이라는 것을 그녀는 상기시켰다.


록산 게이는 완벽한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글은 내게 분명한 행동을 요구한다. 작은 목소리도, 작은 저항도 의미가 있다고. 나는 이 책을 읽고 내게 약속했다. 더 이상 내 이야기를 작게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더 큰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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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채식주의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큰글자도서라이브러리
한강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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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냥 그랬다. 고기를 안 먹겠다고 선언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무슨 대단한 갈등을 만들겠나 싶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니, 그 선언이 단순한 식습관의 변화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영혜는 "나는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그 말의 이면에는 우리가 보지 않으려 했던 수많은 질문들이 숨어 있었다. 나는 그 질문들과 마주하면서 내내 불편했다.


영혜는 그저 자신의 선택을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선택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를 "이상하다"고 정의하거나, 심지어 폭력으로 반응한다. 그런데 그 폭력의 장면들을 읽으면서 문득 불안해졌다. 나는 이 세계에서 과연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일까? 그리고 나는 타인의 자유를 진정으로 허용하는 사람인가? 소설 속 남편과 아버지는 어딘가 멀리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알게 모르게 내 안에 품고 있는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가장 마음에 남은 건 영혜의 나지막한 고백이었다. "나는 나무가 되고 싶다." 처음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무는 땅에 뿌리내리고, 누구의 간섭도 없이, 그저 거기 존재한다. 아마도 영혜가 진정으로 원한 건 그런 자유로움 아니었을까.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것, 억압받지 않는 삶. 하지만 인간의 세계는 나무처럼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규칙과 기대 속에 얽매이고, 서로를 통제하며 살아간다.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건, 어쩌면 인간이라는 틀 자체를 벗어나고 싶다는 절규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영혜의 그 말에 답할 수 없었다. 한편으론 나도 가끔 나무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자유를 정말로 원하느냐 묻는다면 망설여질 것 같다. 익숙한 억압과 안전한 통제를 떠나 스스로 존재해야 한다면,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영혜가 원했던 것을 받아들일 만큼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한강의『채식주의자』는 쉽게 이해하거나,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하고, 내가 놓치고 있던 것들을 무심한 척 들춰낸다. "너는 누구의 자유를 침범하고 있니?" "너는 너 자신을 얼마나 통제당하며 살고 있니?" 이 질문들은 책을 읽는 동안은 물론,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들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아마 이 책은 다시 읽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다시 읽지 않더라도 내 안에 남아있을 것이다. 나무가 되고 싶다는 영혜의 외침이, 억압받고 폭력에 노출된 그녀의 몸이,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세상의 차가운 시선들이.『채식주의자』는 그런 책이다. 한 번으로는 끝낼 수 없고, 한 번으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끝없이 나를 흔드는 책. 나는 아직도 그 흔들림 속에서 대답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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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 The genre-defining thriller that introduced the world to Lisbeth Salander (Paperback)
스티그 라르손 / Quercus Publishing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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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금요일에 이 책을 처음 손에 들었다면, 그것 자체로 하나의 운명 같은 일이다.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는 “A Friday in November...” 그렇게 시작하기 때문이다. Larsson의 이 첫 문장은 단순한 시간적 배경이 아니다. 차갑고 서늘한 북유럽의 공기,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진실과 비밀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당신이 책을 열었던 그 11월의 금요일이, 책 속 이야기와 현실이 맞닿는 순간처럼 느껴졌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책의 중심에는 두 인물이 있다. 미카엘 블롬크비스트, 진실을 좇는 언론인. 그리고 리즈베트 살란더, 복잡한 과거를 지닌 강렬한 해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출발하지만, 한 사건으로 얽혀 들어가며 서로를 보완하고, 때로는 충돌한다. 실종된 여성의 미스터리와 한 가문의 비밀은 이야기의 뼈대를 이루지만, 진짜 핵심은 이들이 만들어가는 관계와 성장이다. 블롬크비스트는 논리와 사실에 의존하며 정의를 추구하고, 살란더는 그 자체로 시스템에 맞서는 반항의 상징이다. 독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정의와 복수, 인간의 회복력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이 책이 독특한 이유는 단순히 미스터리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Larsson은 이 소설을 통해 현대 사회의 어두운 진실을 드러낸다. 권력과 부패, 여성 혐오, 폭력은 단지 이야기의 장치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계의 문제들이다. 특히 리즈베트 살란더는 그러한 문제의 집합체다. 그녀는 제도와 권력의 피해자지만, 그럼에도 시스템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녀는 고통받는 존재로만 남는 대신, 스스로 싸우고, 복수를 선택하며 독립적인 인간으로 서 있다. 이런 점에서 살란더는 단순한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를 품은 상징적 존재다.


11월의 금요일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면, 당신은 Larsson이 만든 세계로 조용히 발을 디뎠을 것이다. 차갑고 서늘한 이야기 속에서, 진실을 찾기 위한 두 인물의 고투와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의를 추구하는 모습을 지켜봤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정말 강렬한 이유는,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독자를 붙잡는 여운에 있다. 진실은 차갑지만, 그것을 밝혀내려는 인간의 의지는 불꽃처럼 뜨겁다. 11월의 금요일, 얼음 같은 이 이야기가 당신의 마음에 작은 균열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이 책이 독자에게 남긴 가장 강렬한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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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바마는 『Becoming』에서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 책은 미셸이라는 개인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퍼스트레이디라는 무게를 지닌 역할로 변화해 가는 여정을 담았다. 미셸은 소녀 시절의 작은 방에서부터 백악관의 큰 홀까지 걸어가며, 개인적인 고뇌와 성취,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의 복잡성을 솔직히 드러냈다. 이 책은 정치보다 삶에 대한 이야기다. 가족, 사랑, 정체성. 때로는 조곤조곤하게, 때로는 단호하게 독자에게 말한다. "내가 이렇게 살아왔는데, 너는 어땠어?"


그러다가 몇 년 후, 버락 오바마가 글을 썼다. 『A Promised Land』에서 그는 말하길, "내 아내가 이미 많은 걸 말했지만, 나는 좀 더 길게, 좀 더 깊게, 그리고 좀 더 정치적으로 말하고 싶어." 이 책은 마치 미셸의 『Becoming』이 걸었던 길 위에 더 많은 구체적이고 무거운 돌을 얹어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의 책은 대선 캠페인과 정책 결정, 그리고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단순히 자신의 여정을 풀어내기보다, 세계의 무게를 자신의 어깨로 떠받치며 가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그러나 두 책을 읽다 보면 묘한 연결점이 생긴다. 미셸이 먼저 발을 떼며 "나는 이 여정 속에서 나를 찾았다"고 말하면, 버락은 뛰따라오며 "나는 이 여정 속에서 우리를 위해 길을 닦고 있었다"고 말한다. 마치 몽테뉴의 『에세』가 독자에게 "너는 그러냐?"라고 물었다면, 이 두 책은 서로에게 묻는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한 길은 어떤 의미였을까?"


Becoming은 집의 이야기

미셸의 책은 집을 짓는 이야기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작은 방, 시카고의 복잡한 도시, 그리고 결국 백악관이라는 거대한 집을 이야기하며, 그 모든 공간에서 자신을 찾아간다. 그녀는 독자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너의 집은 어디야? 너의 뿌리는 어디에 있어?"


A Promised Land는 길의 이야기

버락의 책은 길을 닦는 이야기다. 그의 서사는 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선다. 그는 길 위에 서서, 세계의 정치와 역사를 다루며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 길이 정말 약속된 땅으로 이어질까?"


그러나 읽다 보면 이런 생각도 든다. "혹시 버락 오바마의 책은 미셸 오바마의 책을 읽고 '나도 한마디 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아닐까?" 실제로 『A Promised Land』를 읽다 보면 미셸의 책과 내용이 겹치는 부분이 꽤 있다. 가령 가족 이야기, 캠페인의 어려움, 백악관의 삶 같은 것들. 다만 미셸이 따뜻하고 인간적인 시선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면, 버락은 더 깊게 파고들고, 거기에 역사와 정치라는 층을 얹는다.


결론적으로, 미셸의 『Becoming』은 독자에게 말한다. "너의 이야기를 쓰는 법을 배워라."

버락의『A Promised Land』는 그 다음을 이야기한다. "너의 이야기를 통해 더 큰 세상을 만들어라."


미셸은 땅을 고르고 씨를 뿌리고, 버락은 그 위에 길을 닦아 간다. 두 책은 독자에게 각기 다른 질문을 던지지만, 결국 같은 메시지로 돌아온다. "너는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로 가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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