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제국의 몰락 - 엘리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집대성한 엘리트 신화의 탄생과 종말
미하엘 하르트만 지음, 이덕임 옮김 / 북라이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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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북라이프 / 엘리트 제국의 몰락 / 미하엘 하르트만 지음


<엘리트 제국의 몰락>

이것이 가능한 이야기일까?

제목을 보면서 실현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대중들의 염원하는 담은 제목인건가? 싶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엘리트 신화의 탄생과 종말'이라는 부제에 대한 호기심을 꺽을 수 없었다.

종말이 가능하기는 할까?

<엘리트 제국의 몰락>은 그들만이 사는 세상, 엘리트 제국 / 엘리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엘리트는 어떻게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하는가 / 공익보다는 사익, 엘리트 제국의 규칙 / 신자유주의를 넘어선 정치는 가능한가라는 5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엘리트는 '가장 뛰어난, 최고의 사람'이라는 다소 애매모호하고 불분명한 정의에서 시작되어 1972년 '하트피엘'이 자신이 집필한 사회학 사전에 '사회적,정치적으로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특징을 지닌 소수'라고 정의하였는데 하트피엘이 정의한 '엘리트'라는 개념이 가장 현실적인 듯 싶다.

엘리트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을 쓴 '미하엘 하르트만'이 본 독일 사회뿐만이 아닌 미국, 영국, 프랑스 등등 전세계 어디서나 목격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부의 불평등을 조장하며 인도처럼 대놓고 카스트 제도를 고수하지는 않더라도 세계 곳곳에 포진해 있는 보이지 않는 계급 군단을 조장하는, 그들만의 세상인 엘리트 제국, 그에 걸맞게 세계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미국, 프랑스, 영국에서의 명문대 졸업생들과 세계 억만장자 CEO간의 상관관계는 결코 낯설지 않다. 미국의 아이비리그나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릿지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곳들의 연간 학비는 일반 학생이 장학금으로 받는 금액을 충당하고도 사회인의 일년 연봉의 반이나 되는 금액인 것을 따져본다면 경제와 정치가 부와 연관되어 있고 비싼 학비에 대한 부담이 없는 상위 집안 자제들이 명문대를 나올 확률 또한 높으며 재벌들의 대학 기부와도 긴밀한 관계가 있어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섭리일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세계 부자 CEO들의 출신학교들이 대부분 명문대와 연결되어 있는 것 또한 당여한 이치일터,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일반인이 상위권으로 올라가는 것 자체가 생각보다 허용될 수 없는 일이기에 이들의 세계는 더욱 견고하고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상류층 자제들은 어려서부터 정치나 경제계 인사들과 어울릴 일이 많아 애초에 사회적 출신 자체만으로도 자신의 신분이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고 부는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 탈세도 서슴치 않지만 그에 대한 사회의 댓가는 공적자금과 빼돌린 세금보다도 못한 과징금일 뿐, 어느 나라나 다르지 않을 이야기에 이제는 분노할 힘도 없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돈 많은 대통령의 나는 너희들 편이라는 입발림에 속아 다른 세상을 바라는 대중들의 우매함에 대해서도 화낼 기력이 없다. 자신들의 부와 명예, 집요함으로 나라의 정책을 바꿔버리고 회사가 파산을 맞이하여 월급을 받을 일 없이 쫓겨난 많은 노동자들과는 달리 은행이나 기타 유사 기관에서 연봉 보증을 해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고 여유롭게 생활하는 그들을 개념이 없다며 비난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불성설인지 대중과 생각하는 출발선상이 다른 엘리트 집단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사회적 불평등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평소 알던 내용에서 엘리트라는 단어만 조금 색다르게 다가올까, 엘리트 제국이 몰락하는 것을 호기롭게 바란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가 아닐까, 세계를 이끌어가는 소수의 1%보다 나머지 99%의 대중의 힘을 바랐던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았던 사회학자보다는 어쩌면 결말이 더 나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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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눈이의 사랑
이순원 지음 / 해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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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냄 / 오목눈이의 사랑 / 이순원 장편소설




붉은머리오목눈이, 흔히들 뱁새라고 부르는 우리나의 텃새로 얼핏보면 참새와 비슷해보이지만 참새와 다른 식성을 지닌 자그마한 새이다.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뱁새라고 불린다는 것도 처음 알았지만 며칠 전 딸아이와 생물자원관에 갔다가 오목눈이 모형을 보고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봤던 기억이 있는데 이름은 들어봤지만 생김새를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처음이었고 이 책을 읽기 않았다면 오목눈이의 습성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을 것이다.

6형제의 넷째로 태어난 '육분의', 육분의의 엄마는 육분의를 낳던 순간 구름도 끼지 않은 하늘에 육분의만 보이는 것이 신기해 넷째로 태어난 오목눈이에게 '육분의'라는 이름을 지어줬고 하늘의 신비함만큼 오묘한 이름을 가진 육분의는 어느덧 자라 짝을 짓고 알을 낳아 키우는 어미 오목눈이가 되었다. 알을 잘 키우기 위해 튼튼한 집을 짓고 그렇게 알을 낳아 정성스럽게 키우던 육분의는 그 속에서 유난히 파란 알을 발견하게 되지만 그것이 뻐꾸기 알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다. 그렇게 두번을 뻐꾸기 알에 속았음에도 세번째에도 결국 육분의는 작고 파란 자신의 알보다 좀 더 큰 파란 알이 있다는 것을 보면서도 아닐거라는 생각으로 정성스럽게 키우고 결국 뻐꾸기 새끼가 먼저 알을 깨고 나와 육분의의 알들을 둥지 밑으로 버림으로써 혼자 남게 된다. 그럼에도 육분의와 남편은 뻐꾸기 새끼에게 앵두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하루종일 먹이를 나르며 자신들보다 점점 더 커지는 앵두를 정성스레 키운다. 오목눈이들이 무서워하는 새매를 닮은 암뻐꾸기가 다가와 공포에 몰기를 몇번, 날개를 푸드덕거리던 앵두는 뻐꾸기의 울음 소리를 내며 암뻐꾸기에게로 날개짓을 하며 사라지고 육분의와 남편은 그 앞에서 그저 허망함을 느낀다.

바보같이 내 알들이 둥지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내 새끼가 부화하였음에도 앵두가 둥지밑으로 떨어뜨리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기만했던 육분의 부부는 앵두가 그렇게 떠나고 괴로워하는 날들을 보내게 되고 그러던 어느 날 밤 육분의 남편이 누룩뱀에 물려 죽고 혼자 남게 되자 철학 오목눈이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방향을 정해가기 시작한다.

 

 

 

 

육분의는 앵두가 엄마를 따라 아프리카로 떠난 것을 보고 다시 되돌아오기를 기다릴까란 생각도 해보지만 자신이 직접 앵두를 찾아 아프리카로 날아가기로 결심한다. 너무나 멀고 긴 여행이므로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오리란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고 떠난 출발이었지만 너무나 멀고 힘겨운 여정이라 육분의는 몇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아프리카로의 여행을 계속한다.

여행길에서 육분의는 오목눈이와 뻐꾸기를 닮은 물고기인 시클리드와 뻐꾸기 물고기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누가 알려준 적은 없지만 새들이 자신의 일생을 정리하고 쉬고 싶을 때 보금자리로 정하는 곳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히말라야 산맥 근처에서는 엄청난 눈보라와 추위를 맞고 바다를 건너지 못해 페르시아쪽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사람들이 서로 전쟁으로 죽고 죽이는 것도 보게 된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로지 앵두를 찾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난 여정, 사실 자기 자식이 아님에도 기른 정으로 그 멀고 먼 곳까지 목숨을 건 여정을 이어가는 육분의를 마음으론 이해하면서도 그럼에도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고 싶지 않아 더 마음이 싸하게 아파왔던 것 같다. 기른정과 낳은정 사이에서 꽤 진지한 고민을 해봤던 기억이 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더 울컥한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써 느끼는 모정을 알면서도 그렇게 엄마를 따라 매정하게 가버렸던 앵두의 모습을 떠올리면 한편으론 가라앉지 않는 서운함이 들어 새들의 모정속에서 꽤나 복잡한 심경을 느껴야했던 <오목눈이의 사랑>

제목에서 가벼운 내용은 아닐거라고 생각했지만 두께감이 별로 없어 부담없이 펼쳐들었는데 예상을 초월하는 묵직한 감동이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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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상대는 추첨으로
가키야 미우 지음, 이소담 옮김 / 지금이책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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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책 /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 / 가키야 미우 지음


비혼과 저출생대책으로 인해 시행된 <추첨맞선결혼법>!!!

무슨 이런법이 다 있냐며 자던 사람도 벌떡 일어나게 만들 전대미문의 법이 일본에서 시행되었다!

기발한 소재인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오지만 반면 이것이 현실이 되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싶어 오싹함이 다가오는 가키야 미우의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

나날이 인구절벽이 높아지고 있는 일본, 초고령화와 비혼, 저출산 문제로 인해 나라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으니 일본 정부는 히든카드로 <추첨맞선결혼법>을 시행한다. 구시대적인 착안에 반발하는 목소리도 높지만 정말 법이 통과될까 반신반의하던 속에 추첨맞선결혼법이 가결되고 이에 25세에서 35세까지 이혼 전적과 자녀, 전적이 없는 미혼 남녀를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맞선을 보게하는 제도인데 나이차는 플러스마이너스 5세이며 맞선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퇴짜를 3번 놓게 되면 테러대책활동인 테러박멸대에서 2년을 복무해야한다.

법안이 발의된 후 애인이 있던 사람들은 서둘러 결혼식을 올려야했고 애인이 없는 사람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추첨맞선제를 봐야했으니 이 말도 안되는 제도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비현실적인 것 같으면서도 너무도 현실적으로 다가와 왠지 모를 섬뜩함을 안겨준다.

알코올중독자에 폭력적인 아버지를 뒀던 요시미는 아버지를 대신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요시미를 길러준 엄마를 외면할 수 없어 함께 살고 있지만 친구도, 취미 활동도 없이 요시미의 일거수일투를 감시하는 듯한 엄마와 함께 사는것이 점점 버겁게 느껴진다.

음악을 전공했지만 그쪽으론 성공할 수 없었던 나나는 아버지 빽으로 라디오 음악 방송과 예능 방송의 제작 스태프 정직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정직원임에도 불구하고 자질구레한 엽서 분류나 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엄마는 결혼해서도 일을 그만둬서는 안된다고 말하지만 나나는 여행사 직원인 란보와 결혼하면 전업주부로 살고 싶다. 더군다나 결혼추첨제가 시행된다고하니 어서 란보와 결혼을 하고 싶은데 란보는 사치스러운 나나에게 이별을 고한다.

컴퓨터 소프트 회사의 SE로 일하는 다쓰히코는 모태솔로이다. 지금껏 여자친구가 없었던 자신에게 결혼추첨제는 여자를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다쓰히코는 이번엔 꼭 결혼하고 말리라 다짐한다.

이야기는 혼자인 엄마의 지나친 관심을 받는 간호사 요시미와 장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사치를 일삼는 철없는 나나, 모태솔로 다쓰히코, 나나의 전남친 란보의 이야기가 결혼추첨 맞선 상대로 이어지면서 흥미롭게 전개된다.

무작위로 추첨된 맞선 상대는 일말의 기대를 깨며 아줌마스럽거나 뚱뚱하거나 다쓰히코가 봐도 별로인 여성들이지만 전혀 예상치도 못하게 다쓰히코는 만나는 족족 여성들에게 속공으로 차인다. 한편 나나와 헤어진 란보는 맞선상대로 요시미와 만나게 되고 이들의 인연이 얽히며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탄생한다. 자신이 보기에도 별로인 여성들에게까지 열여덟번이나 차인 다쓰히코는 가슴에 구멍이 날대로 났지만 한편으로는 여성과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장점이 생겼고 엄마에게 기대기만했던 나나는 이제 혼자 자립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으며 란보와 요시미는 엉켜버린 실타래를 풀 수 있는 미래가 있다.

말도 안되는 이 제도에 상처를 받기도했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은 결혼추첨제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다. 고약하기 이를데 없는 제도였지만 결혼과 별개로 자신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어른으로서의 당찬 한발을 내딛게 된 이들의 앞날은 우울했던 결혼추첨제 제도와 달리 인생의 대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니 고난과 시련을 멋지게 발돋움한 이들의 행보가 기대된다.

기발하고 재미있는 소재였지만 역시 너무도 현실적인지라 오싹함마저 느껴지는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 평소 사회적 이슈를 소설로 쓰는 작가란 것은 알았지만 '가키야 미우'의 소설은 처음이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내용이 좋아 다른 책들도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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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여서 괜찮은 하루
곽정은 지음 / 해의시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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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의시간 / 혼자여서 괜찮은 하루 / 곽정은 에세이


나는 글 쓰는 사람들이 방송 출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학자나 인문학과 관련된 지식인들이라면 몰라도 주로 에세이를 쓰면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방송 출연하는 것을 보면 새로사서 처음 입어보는 정장을 입은 사람처럼 어색하거나 위축돼보여 보는내내 조바심이 들기 때문이다. 나만 이렇게 느끼는지는 몰라도 그 대표적인 사람이 허지웅과 곽정은이었다.

에세이로 사람 마음을 울컥하게도,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멍한 기분이 들게도, 때로는 정치적인 쓴 소리도 곧잘 뱉어내는 그들을 TV에서 만나는 것은 그들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여간 곤역스러운 일이 아니다. 곽정은 또한 처음 TV프로그램에서 봤을 때 프로그램에서 오래 볼 수 없겠단 생각이 들었었다. 자신과 맞지 않는 자리라고 느껴졌던 것은 다른 패널들처럼 위트넘치거나 자신만의 필살기를 이용해 이야기를 만드는 대신 성격 그대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방송 성격과 맞지 않는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는데 사회를 바로보고 그것들을 이야기하는데는 선수일지 몰라도 방송에 따라 사람이 어떻게 보이느냐가 천지차이인 방송에서는 자칫하면 사람들의 타깃이 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기분을 느끼지 않고 오롯이 그녀의 생각이 느껴지는 글을 만나는 것 자체는 역시 크나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내 자신을 사랑해야한다는, 너무도 당연하지만 어쩌다보니 정작 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은 너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타인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 말라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말이고 누구나 다 아는 말이지만 누가 그런 말을 하느냐에 따라, 어떻게 쓰여진 글이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감정의 깊이도 천차만별인 이야기는 <혼자여서 괜찮은 하루>에서 그녀다운 말들로 가슴을 녹인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어릴 적 상처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꼬맹이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해 내가 좋아하는 사람보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에게 나를 맡겼던 일이 나에게 상처로 되돌아오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상처받고 아파하는 시간들을 한참이 지나서야 내 인생의 밑거름으로 쓸 수 있게 된 그녀의 이야기는 사람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결코 크게 다르지 않을 이야기들이라 나 또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그녀가 느꼈을 어린시절 상처를 보듬는 법을 몰라 성인이 되어서도 사랑에 굶주렸던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그녀의 마음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게 다가와 비슷한 경험을 하며 상처받고 아파하며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조금씩 그 상처를 다독이며 부모님을 이해하려는 내 모습과 오버랩되어 많은 공감과 위로가 되었다.

그녀의 어린시절 이야기부터 대학생 때, 사회 생할을 하며, 짧은 결혼생활에서 깨달았던 것들, 현재 사회생활을 하며,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하는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앞으로 혼자 살아갈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오랜 시간 함께 있어야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여겼으나 지금은 내 자신을 들여다보고 타인을 덜 미워하는 방법을 알았기에 혼자여도 괜찮다고 말하는 그녀, 그만큼 타인에게 기대지 않아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 마음의 평안을 얻은듯해 나도 오늘부터 하루 감사일기와 명상하는 법을 실천해보려고 한다.

 

 

 

오늘의 나를 어떻게 대접하는가의 문제가, 내일의 내 시간을, 내 삶을 만든다는 것을.

그래, 너무 오랫동안 내 안의 소리를 듣지 않고 살았구나.인생이 처음이라는 이유로 소중한 것들에 눈을 감고 그저 앞으로만 뛰었구나.

마음에,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듯, 절반의 후회와 또 나머지 절반의 희망이 그렇게 아프게 뒤섞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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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딸들 2
엘리자베스 마셜 토마스 지음, 이나경 옮김 / 홍익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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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에서 친족들과 함께 공동 생활을 하며 먹이를 찾아 멀고 먼 곳을 옮겨 다니던 그 옛날, 엄마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야난의 일생을 담은 <세상의 모든 딸들>

살기 위해 사냥을 하고 종족 번식을 위해 자손을 낳아 키우던 그 시절, 남자들은 사냥을 하고 잡은 사냥감을 여자들이 운반했던 그 시절, 친족끼리의 결혼이 허용되지 않아 멀리 이동하여 여자를 찾았던 그 옛날, 상상할 수도 없을만큼 멀고 먼 옛날의 이야기이다.

사냥을 하다 죽거나, 병에 걸려 죽거나, 아이를 낳다가 죽은 이의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게 되고 슬프지만 덤덤히 죽음을 맞이해야했던 그 시절, 아이를 낳다 엄마가 죽게 되고 사고로 아빠도 죽게 되면서 남은 가족에게 불어닥친 시련,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였고 가슴 아픈 날들과 버거운 현실 앞에서도 당차게 살려고 노력했던 야난이지만 그런 야난은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심지어 그게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를 혼란 속에서 그렇게 원망했던 엄마의 모습을 닮아가는 야난,

엄마와 닮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고통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야난, 하지만 그런 현실속에서도 언니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동생 메리가 있고 그러한 시련 속에서도 결코 남자에게 지지 않으려는 야난의 의지가 돋보인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손수 해야하며 변화무쌍한 계절이나 야생동물들과 대치하게 되는 이야기는 꽤나 생생하게 다가와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게 된다. 역사로 배우는 그들의 삶이 아닌, 이야기를 통한 그들의 삶이 생생하게 다가와 그 먼 옛날 그들은 이러한 척박한 삶을 살아갔겠구나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엄마가 되어가는 모습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으니 그러한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 버텨내고 살아갔을지 글을 읽으면서도 고개를 젓게되는지라 그 자체로도 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가늠이 되는 듯하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마음은 결국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야난의 삶을 통해 어쩌면 잔인할 정도로 고통이 수반되는 이야기로 다가와 마음이 먹먹할 정도로 아프지만 그러한 숭고함과 거룩함이 있었기에 지금의 모든 인류가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리라, 뭔가 다른 삶을 꿈꾸었지만 결국 엄마의 그러했던 삶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워나가게 되는 여자의 일생 이야기 <세상의 모든 딸들>

평소 자주 접하지 못했던 원시시대 이야기와 정말 그 시대에 존재했을 법한 생생함 속에서 여자의 삶, 그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었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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