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한중일 세계사 7 - 흥선대원군과 병인양요 본격 한중일 세계사 7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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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하우스 / 본격 한중일 세계사 07.흥선대원군과 병인양요 / 굽시니스트 글.그림


독특한 그림과 말발로 한중일 세계사를 재미있게 그려낸 <본격 한중일 세계사> 7번째 이야기는 세도정치의 묵은 폐단을 척결하고 왕조 중흥을 꿈꾸었던 흥선대원군의 이야기이다.

흥선대원군하면 고종의 아버지, 백성의 원망이 서린 경복궁 중건, 서원 철폐, 땡전이라 불린 당백전 발행 등 이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수 많은 사건 사고들과 정치 개혁등을 떠올릴 수 있는데 바로 이 편에서는 그런 흥선대원군의 잘한일과 아쉬움으로 남은 개혁들을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안동 김씨 정권을 정리하여 중요 자리 인사이동을 했고 토지를 재조사하여 토지 대장을 다시 작성하였으며 양반에게도 군포의 의무를 부여했고 유생들의 세력을 막기 위해 서원 철폐를 하였으나 7400칸짜리의 궁궐 대공사로 인해 4대문 통행세까지 신설하여 세금을 물려 원성을 받았고 당백전 발행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야기시킨다.

안동김씨와 풍양조씨의 세력 팽창을 막기 위해 대원군의 고문 관상 점쟁이였던 박유붕의 반대에도 아내인 여흥부대부인의 12촌 동렬인 민씨로 며느리로 들이고 집권 2년차엔 나라의 근간을 흔든다는 이유로 천주교 박멸령을 내려 1866년에서 1873년까지 8천 명을 처형시킨다. 이에 박해를 피해 조선을 탈출한 신부에게 병인박해 소식을 들은 프랑스, 하지만 동양 함대 주력이 베트남 작전 때문에 당장 조선에 항의 할 수 없는 프랑스와 인삼과 고려왕릉에 금은보화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대동강 하구에 닻을 내린 셔먼 호의 도발로 조선병력과 공격전을 벌인다.

외세로 인해 혼란기에 접어든 조선과 남과 북이 갈려 정권 쟁탈전을 벌인 베트남, 염군의 난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청나라의 모습이 등장하면서 그런 내분을 틈타 프랑스, 영국, 미국이 야욕을 드러내고 그들 앞에 동아시아는 위태롭기만하다.

얼마 전 병인양요와 흥선대원군을 공부하던 딸아이와 흥선대원군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대외적인 정세를 함께 이해할 수 있다면 더 좋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마침 이번편이 흥선대원군과 관련된 이야기라 아이와 함께 보기 좋은 책이었다. 원래부터 역사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는 아이 때문에 역사책은 쉽고 재미있는 것을 찾게 되는데 <본격 한중일 세계사>는 아이와 어른이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누기에 좋아 앞으로도 계속 찾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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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뿌리
장수영 지음 / 북랩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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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랩book / 악의 뿌리 / 장수영 장편소설


2015년 현재, 준걸과 그의 아내 일매는 주인도 종업원도 나타나지 않는 갈빗집에 10분째 앉아 있다. 손님이라곤 옆 테이블에 가래침을 옹골차게 뱉는 아줌마와 자신뿐인 테이블에서 준걸은 배고픈데 왜 주인장이 나타나지 않을까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다. 그런 준걸의 조급한 마음을 짜증이라곤 하나 없는 천사 같은 얼굴로 일매가 달래며 앉아 있다.

어찌저찌해서 저녁을 먹고 나서는 길, 계산을 하는 일매에게 한참 동안 나타나지 않아 주문을 제대로 받지 않던 주인이 아는 체를 한다. 뭔가 사연 많아 보이는 아련한 눈빛의 주인장.

갈빗집을 나오던 준걸은 망사스타킹에 몸매 관리라곤 하나도 안된 아줌마가 묘하게 신경 쓰인다. 식당 알바가 나오지 않아 하루 대타로 불렀다던 아줌마는 노래방 도우미로 합석한 손님보다 술을 더 마시고 침을 뱉어내는 등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고 전혀 끌릴만한 외모도 아니었지만 그것과 달리 준걸은 계속 그녀가 신경 쓰인다.

그리고 현재를 거슬러 1972년 울산에서 태어난 준걸은 건설 현장 근로자로 일하는 아버지 덕에 풍족하지는 못해도 그럭저럭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지만 그나마도 준걸이 여덟 살 되던 해 아버지가 건설 현장에서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잃는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어머니는 새벽같이 목욕탕 청소하는 일을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도 점심에도 인기척 없이 잠만 자던 아버지가 밥을 주지 않아 배를 곯던 준걸은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의 곡소리를 듣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렴한 가격에 염습을 잘한다는 염장이를 불러 아버지의 시신을 정돈하던 중 거짓말처럼 아버지가 다시 되살아났고 어머니는 다시 살아돌아온 아버지를 보며 감사함에 울부짖는다. 하지만 다시 깨어난 아버지에게 영통한 신력이 생겼고 그 신기를 살려 부모님은 점집을 차린다. 그리고 아버지의 신기가 빛을 발해 주변에 용하다는 소문이 자자하게 퍼지며 준걸의 점집은 돈을 세기 바쁜 부잣집으로 거듭나게 된다.

동네 외과 원무과장으로 일하던 일매 아빠와 간호보조원인 일매 엄마가 눈이 맞아 1980년 이란성 쌍둥이인 일매와 이현이 태어난다. 아들을 낳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먼저 태어난 일매보다 몸이 허약했던 이현으로 인해 시어머니에게 온갖 구박을 받아야 했던 일매 엄마, 그런 그녀의 화살은 어릴 때부터 일매에게 향했고 이후 줄줄이 태어난 남동생들을 일매가 업어 키우다시피하며 궂은 집안일은 일매의 몫이 된다.

자라면서도 몸이 허약하고 공부에 영 취미가 없던 이현과 달리 말랐어도 잔병치레 한번 하지 않았던 일매, 거기에 공부까지 항상 1등을 놓치지 않는 일매로 인해 쌍둥이인 일매와 이현은 비교 대상이 되었고 먼저 태어나 장남의 기를 다 빨아먹은 년이란 소리를 들으며 일매는 더욱 엄마의 모진 말과 폭행을 당하며 성장하게 된다.

<악의 뿌리>는 2015년 준걸과 일매 부부의 현재와 그들의 성장기로 거슬러 올라가 준걸 부모님과 일매가 엮이고 어린 시절부터 항상 1등을 놓친 적 없는 수재지만 성에 대해선 백치에 가까워 남자들에게 성적으로 휘둘렸던 일매의 모습들이 그려진다. 특히 일매 엄마가 딸에게 휘두르는 학대는 70년대 이야기를 보고 있는 건가 싶을 만큼 80년대에도 저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은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지만 어쨌든 무시와 핍박을 감내하며 애정에 목말라 있던 일매의 어리숙함과 아버지의 신방에서 본 망사 스타킹으로 인해 그릇된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준걸의 모습은 그들을 그렇게 만든 부모에게 있음을, 나의 쾌락과 분노가 아이에게 그대로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도 있음을, 자식을 키우며 평생을 올바르게 살아가야 하는 책임감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준걸과 일매의 모습이 안타깝게 다가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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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 김희재 장편소설
김희재 지음 / CABINET(캐비넷)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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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넷 / 하우스 / 김희재 장편소설

푸른 언덕 위에 지어진 멋진 전원주택, 한적한 곳이지만 완벽한 보안 시스템과 여성의 눈높이에 맞춰 편리함이 농축된 그림 같은 집에 서정진과 그의 아내 강서원, 아들 원우가 살고 있다. 해가 떠오르는 시간에 맞춰 저절로 커튼이 걷혀지면 따사로운 햇살이 비쳐들고 주방에서는 정진의 출근 시간에 맞춰 서원이 맛있는 아침상을 차리고 있다.

그렇게 행복으로 충만한 그들의 아침, 정진은 바쁜 와중에도 아내 서원이 정성스레 지은 밥을 맛있게 먹으며 사랑스러운 아내의 모습을 눈으로 좇는다.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행복한 부부처럼 원우를 안은 서원이 정진을 바라보며 잘 다녀오란 얘기하길 기다리는 찰나 지금까지와의 모습과 달리 정진은 아들 원우를 쳐다보지도 않고 출근길로 향한다. 그리고 오늘도 원우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피하는 정진에게 서원은 서운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런 서원의 서운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정진의 차가 멀어지자마자 서원의 애인인 승우가 나타나 더 생각에 빠질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큰 키에 딱 벌어진 어깨, 한번 보면 누구라도 호감을 갖지 않고서는 못 배길 외모를 자랑하는 한승우, 승우와 서원은 대학 때부터 CC로 유명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함께 살며 질리지 않는 애정을 과시하던 커플이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건축 관련 상을 받을 정도로 건축에 관해선 독보적이었던 승우와 윤색 작가 일을 하는 서원은 비록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함께이기에 행복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승우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리면서 그 둘의 시간은 깨져버리고 만다.

사라져버린 승우를 찾던 서원, 아무것도 먹지 못해 핼쑥해진 자신을 돌보지 않고 그저 미친 사람처럼 승우만을 찾아다니던 서원은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승우가 일했던 회사에 드나들다 정진을 알게 된다.

자신을 버리고 사라져버린 남자를 애타게 찾는 서원을 보며 이해할 수 없는 연민을 느낀 정진, 뱃속에 다른 남자의 아이가 있음에도 정진은 그저 묵묵히 서원을 바라보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그런 정진의 마음을 모를 리 없는 서원은 정진의 맘을 받을 수 없다고 고백하려 하지만 승우와 함께 왔던 언덕 위의 하얀 집을 보고 정진의 프러포즈를 받게 된다.

그런데 정진과 서원이 사는 집에 사라졌던 승우가 찾아왔고 서원은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승우를 돌려보낼 수가 없다. 그렇게 정진이 출근하면 하루 종일 둘만의 시간을 보내던 승우와 서원,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정진과 서원이 정진의 아내란 것이 괴로운 승우.

자신이 사라져있던 기간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며 괴로워하던 승우와 자신에게 한결같은 다정함을 보여준 정진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서원, 애초에 서원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기에 사랑까진 바라지도 않았던 정진, 이들이 얽히고설킨 감정들은 점점 그 끝을 향해가고 그들의 모습을 보며 독자들은 사라졌다 갑자기 돌아온 승우의 행방에 대한 가설을 머릿속으로 몇 개나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그 가설은 서스펜스와 공포에 집약되어 승우가 왜 사라질 수밖에 없었는지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름 반전은 있었으니 궁금한 독자들은 얼른 책을 펼쳐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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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기다리고 있어
하타노 도모미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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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 신을 기다리고 있어 / 하타노 도모미 장편소설 / 김영주 옮김

상위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도쿄 내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미즈코시 아이', 졸업하기 전 필사적인 구직활동으로 수십 군데 면접을 봤던 아이는 한군데 최종 면접까지 갔지만 면접관의 성희롱으로 입사를 포기한다. 아직은 젊고 어떻게든 취직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취직하기는 힘들었고 그동안 면접 봤던 곳에서 눈높이를 낮춰 지원했지만 고배만 마셔야 했던 아이는 파견업체에 등록했고 문구용품 회사에서 일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노동자 파견법에 의해 제시된 파견 가능 기간인 3년이 지나면 정규직 전환을 검토하겠다는 구두 약속을 받아 정규직이 하지 않는 잡다한 업무와 점심시간을 침해받으며 일해야 하는 부당함을 참아가며 3년을 버텨냈다.

정규직 전환의 구두 약속을 했기에 아이는 그 약속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만기 기간을 앞둔 시점 회사의 경영 부진으로 인해 정규직 전환이 어렵다는 이야기에 별다른 항의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실업자 신세가 된다.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적지 않은 나이지만 파견직이 아닌 정규직이 되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구직 활동을 하지만 살던 곳의 월세조차 내지 못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서 12월 31일 아이는 집을 나와 홈리스가 된다.

그나마 값나가는 물건들은 진작에 팔아 생활비로 썼고 자잘한 물건들은 돈을 내며 버려야 했기에 아이의 짐은 여행 캐리어 하나면 족했고 모두가 연말연시 분위기에 들떠 있던 마지막 날 아이는 만화카페에서 새해를 맞이한다. 그렇게 홈리스 생활을 시작한 아이, 파견업체에 등록해 공장에서 단순 업무를 하는 일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천 엔짜리 빵과 만화카페의 무료 음료로 저녁을 때우며 최소한의 돈만 쓰며 모은다면 몇 달 치의 방세를 마련하여 홈리스 생활에서 벗어나려던 아이는 카페에서 동갑인 마유를 만나 즉석만남 카페란 곳을 알게 된다.

첫날은 운이 좋게도 데이트만으로도 돈을 지불하는 남자를 만날 수 있었지만 즉석만남 카페 자체가 성관계를 위한 중간 다리 같은 장소였기 때문에 데이트만을 시도하려는 남자는 많지 않았고 아이는 성관계는 물론 돈을 받고 데이트에 응하는 것조차 부담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제 그만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란 고민을 하게 되지만 자신과 처지며 말동무가 되어주는 마유로 인해 점점 일일 아르바이트보다 즉석만남 카페를 찾는 일이 더 많아진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정하게 자신을 대해주는 한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고 몇 번이나 거절을 했지만 자신에게 너무도 잘해주었기에 아이는 호텔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그동안 그 남자가 했던 말들은 거짓말이었고 방 안에서 돌변한 남자로 인해 아이는 깊은 상처를 받게 된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장소가 날이 갈수록 멀어져 간다.

대학이나 회사 같은 외부와 관계가 단절된 상태로 이 거리에 온 사람은

출구로 향하는 길을 금세 잃는다.

설령 나갈 수 있더라도 언젠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홈리스가 되어 몸과 마음이 바닥을 칠만큼 지쳐있던 아이, 그리고 그 속에서 아이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여자들을 만나게 된다.

중학생이 된지 얼마 후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아왔던 나기, 정신지체 증상을 보이며 제대로 된 생활이 가능하지 않지만 자신의 몸을 팔아 두 아이를 부양하는 사치, 자신과 동갑이며 많은 의지가 되었지만 결국 알 수 없는 이유로 떠나버린 마유, 학생 때부터 문란하여 손가락질 받았던 유미를 통해 비록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고 사랑조차 주지 않았지만 대학 때까지 집세와 대학비를 대줄 아버지가 있었기에 어쩌면 이들보다 생활이 더 나았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아버지가 있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돈만 보내줬던 아버지, 엄마가 암 투병 중일 때도 병원을 찾지 않았던 매정한 아버지로 인해 부정이 뭔지 모르고 컸던 아이, 의지했던 엄마는 너무 이른 나이에 돌아가시고 혼자 남겨져 외로웠던 아이, 제대로 된 가정을 모른 채 자라야 했던 자신보다 홈리스가 된 후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가혹한 생활을 한 여자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만 '동정보단 돈'이 더 필요한 것이 빈곤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창밖을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향한

부러움 이상으로 죽고 싶다는 마음도 커져간다.

그런 생각을 해선 안된다는 걸 알지만 '배고파' 정도의

가벼움으로 '죽고 싶다'를 느낀다.


단순히 여성 홈리스가 처해있는 극한의 상황을 다룬 소설이란 생각에 <신을 기다리고 있어>란 제목이 여성 홈리스들이 현실적으로 처해진 가혹한 상황에 무언가라도 믿고 의지하고 싶은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신을 기다리고 있어>란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튀어나온다. 여고생이기에 아이처럼 만화카페에서 잘 수도 없어 매일같이 극장 앞에서 남자를 찾아 밤을 새워야 하는 나기에게 자신의 몸을 제공해서라도 안락하게 잘 수 있는 곳을 제공해 주는 남자를 '신'이라 표현하는 장면에선 한대 얻어맞은 듯했다. 일본에선 그것이 은어로 통한다고 하는데 역시 다시 들어도 현기증이 일수밖에 없는 그 말에 극중 나기에게 어른으로서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우리나라 여성 홈리스들의 생활을 찍은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숨 쉬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 아닐까란 생각과 그런 상황에 내몰리게 된 것은 자신의 탓이라며 이기적 의미를 부여했던 나로서는 개인적인 관점보다 사회적인 관점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됐던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며 사람들의 냉대보다 실제적인 해결책 없는 어쭙잖은 동정이 얼마나 위험하고 그들을 아프게 할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으로선 홈리스에게 모든 이들은 그저 사치의 눈에 비친 아이의 모습이지 않을까...

하고 싶은 다른 일 따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돈벌이만 생각하고 살아온 사이에 인간으로서 느껴야 할

중요한 감정이 결여되어버린 걸까.

생활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볍게 여겨선

안되겠지만 인생에는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

그걸 망각하면 돈도 벌 수 없게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삶을 지키기 위해 돈이 필요하지, 돈을 벌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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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귓속말
이승우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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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 소설가의 귓속말 / 이승우 지음


<사랑의 생애>를 통해 알게 된 작가 '이승우',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언젠가는 빠져들어야 함이 숙명인 것처럼 다가오는 제목 때문에 행복, 아픔과 상처, 고통, 그럼에도 다시 사랑이라는 정해진 순리를 밟아가는 이야기인 줄 알고 덥석 펼쳐들었다 깊이 있는 사유가 바탕이 되지 않은 나에게 당혹감을 안겨주었던 책으로 기억한다. 작가의 생각을 다 이해한다는 것은 독자의 오만이란 걸 알지만 이건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책만 겉핥다가 자괴감이 빠졌기에 아마 이번 책이 소설가에 대한 내용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이승우'란 이름 앞에서 백만 번쯤은 고민하고 주저했을 것이다.

배우는 작품에서 정해진 배역을 충실히 연기하기 위해 맡은 배역을 연구한다고 들었다. 그렇게 나와 배역을 동일시하여 몰입하는 것만으로도 참 대단하고 놀라울 일인데 소설을 읽을 때마다 여러 배역들을 탄생시키고 글을 쓰면서 A가 되었다가 B가 되었다가 C가 되기도 하는 작가의 전지전능한 관점에는 대단함과 감탄을 넘어서는 충격을 받곤 한다. 이야기가 얼마나 사실적이냐에 따라서도 진한 공감력이 형성돼 몰입할 수밖에 없는데 <소설가의 귓속말>은 작가 본인이 한 이야기처럼 알몸으로 서서 옷을 걸쳐 입는 행위인 그것처럼 작가의 민낯을 대면하게 되는 책이다.

소설을 아무리 완전하게 쓴다 해도 그것이 완전하게 쓰일 리도 없겠지만 그렇게 세상에 빛을 본 소설을 독자들이 완전하게 이해한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애초에 이해된다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은 것으로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들을 통해 작가란 직업에서 탄생한 자신의 글에 대해 아직도 확신할 수 없다이다. 소설가라면서 너무 겸손하거나 저자세인 건 아닐까란 잠깐의 생각을 날려버리고 나는 그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싶은 문장들이 어쩐지 낯설지 않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춘기 시절 아직은 알지 못한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나마 조금 알고 있던 나의 인생을 딛고 인생은 A도 아니고 B도 아닌 것 같지만 A도 맞고 B도 맞을지 모른다는 고뇌의 작가 버전처럼 다가와서 반가운 마음도 들게 됐던 것 같다. 사춘기 시절 오목조목 따질 수 없어 어쩌면 막무가내였을 논리가 작가의 오랜 경험과 사유를 바탕으로 어른의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처럼 다가와졌다면 누군가는 억측이라며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소설가의 삶, 그 속에 녹아든 애환과 희로애락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아 호기심으로 이 책을 펼쳤다면 소설가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철학을 담은 책으로 갈무리되는 느낌이 강해 몰입하여 사색하기를 바라는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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