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법학 에세이 - 곽한영 교수와 함께 생각해 보는 사람을 향한 법 이야기 해냄 청소년 에세이 시리즈
곽한영 지음 / 해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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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냄 / 청소년을 위한 법학 에세이 / 곽한영 지음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되지만 왠지 딱딱하고 멀리하고 싶은 '법'이란 단어에 친근한 느낌이 드는 '에세이'란 글자와 결합하여 탄생한 '법학 에세이', 그런데 <청소년을 위한 법학 에세이>라니 학교에서 선생님과 함께하기에는 빠듯할 수도 있는 궁금증들이 담겨 있을 것 같아 아이에게 도움이 될 거란 기대감이 들었다.

그리고 궁금함에 아이보다 먼저 읽다가 '법학 이렇게 재밌는 거였어?'라는 말을 몇 번이나 토해냈던 것 같다. 학창 시절 이 책을 만났다면 수업 시간에 '그래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죠'라는 괜한 반항감은 가지지 않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내 아이는 좋은 책을 만난 것에 감사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흠뻑 빠져들어 읽게 됐던 것 같다.

 

 

<청소년을 위한 법학 에세이>는 법에 대한 탄생 신화부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법전인 '우르남무 법전'을 거쳐 중국과 영국, 미국을 거치며 헌법으로 자리 잡기까지 이야기를 다룬 1,2장과 그럼에도 약자의 편에서 여전히 시행되지 못했던 과거 법에 대한 모순에서 탄생한 여성 참정권과 흑인차별, 호주제 폐지 등을 담은 3장, 가장 정의로움에도 대부분의 사람들 인식 속에 부정적인 선입견이 자리한 법 앞에 정의를 내세우며 법을 지켰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4장, '아마스타드호 사건'과 '미뇨넷호 사건', '아이히만 재판', '요더 사건'을 통해 본 법과 인간의 논쟁을 다룬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랫동안 유목 생활을 하던 인간이 정착하여 농경생활이 시작되고 그렇게 형성된 집단에서 신과 왕권이 생겨나 인간이 공존하기 위한 규율을 정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하기 시작했지만 그저 법만으로는 인간의 심성을 움직일 수 없었기에 법과 신성을 결합하여 강력한 법질서가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이는 신분사회를 유지하던 당시 귀족과 평민이 똑같은 법 적용을 받을 수 없었고 무엇보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적용했던 신적인 의미는 중세 시대 폐해인 마녀사냥을 탄생시킴으로써 수많은 사람을 사지에 몰아넣게 된다.

그리고 그런 암흑시대를 겪으며 신분의 변화와 함께 헌법이 등장하는데 재미있게도 왕이 스스로 권력을 제한하겠다는 약속이었던 '마그나 카르타'가 이후 400년이 지나 영국의 대법원장이었던 '에드워드 코크'에 의해 권리청원으로 나타나게 되고 이것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꾀하던 미국의 입장에 맞아 헌법으로 이어졌으니 지금까지 우리가 갑자기 딱! 하고 나타나 딱딱하기 그지없는 법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거쳤는지를 알 수 있다.

권력을 제한하기 위한 삼권분립을 통해 끊임없는 견제와 균형으로 민주주의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내용은 결국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닌 국민 스스로가 주체성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는 의식을 심어주어 내신과 연관된 내용 이외엔 무엇을 생각하는 것에 여유가 없는 아이들에게 국민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각심을 느끼게 해준다.

이렇게 법이 어떻게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 살펴보며 법이 권력과 얽혀 국민들에게 어떤 해를 끼칠 수 있는지, 또 그러한 부정부패 속에서 정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던 인물의 사례를 통해 법의 올바른 모습을 생각할 수 있다. 청소년이 이해하기 쉽게 법의 역사와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인데 이야기마다 '생각해 볼 문제'를 제시해놔 글쓴이의 이야기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멈춰 서서 자기식대로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게 되어 있어 학급 분단 토의 때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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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외 서커스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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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빌리스 / 인외 서커스 / 고바야시 야스미 장편소설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보따리를 던져주는 작가 '고바야시 야스미', 죽이기 시리즈에서는 활자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해력 때문에 꽤 고심하며 읽었더랬는데 얼마 전 읽은 '분리된 기억의 세계'에서는 그의 또 다른 작품성을 본 것 같아 꽤 인상 깊었었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흡혈귀 군단 이야기를 다룬 <인외 서커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작품성만큼 이번 이야기 또한 예상할 수 없어 더 기대가 되었었다.

이제 막 시작된 여름밤, 얇은 옷을 걸친 금발의 미녀와 서커스에서 마술을 선보이는 랜디는 아무도 없는 텅 빈 무대 위에서 야릇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서커스 무대인만큼 도구를 갖춰야 더 흥이 날 것 같다는 미녀의 말에 랜디는 필요한 도구를 찾기 시작하고 등을 돌린 그의 목을 노리며 미녀는 흉악한 흡혈귀로 변신한다. 그리고 랜디를 한 입에 물려는 선제공격을 시작으로 흡혈귀와 컨소시엄의 전투가 벌어진다.

하지만 흡혈귀의 몸에 총알을 무수히 박아 넣어도 그들의 어마어마한 재생능력 앞에서는 무기도 무용지물이었으니 인간과 흡혈귀의 싸움은 이미 승패가 판가름 난 결과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심장이나 목을 끊어내야 흡혈귀가 살아나지 못하지만 그마저도 흡혈귀의 행동이 너무 빨라 인간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한바탕 난리를 치며 벌어진 전투에서 랜디는 능력치가 낮은 흡혈귀 두 마리를 처리할 수 있었지만 막강한 힘을 보이는 퀸 비를 놓치고 만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 흡혈귀 그리즐리 영역에 미티아가 컨소시엄에게 흡혈귀가 당한 이야기와 컨소시엄이 서커스를 가장해 흡혈귀를 사냥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이에 흡혈귀들은 서커스를 찾아내 인간을 모조리 죽이기로 한다.

란도는 3년 전 서커스에 마술사로 들어왔다. 그리고 서커스의 경영 문제는 점점 안 좋아져 반년 전엔 십여 명을 남겨두고 서커스 단원이 모두 떠나버렸다. 빚은 빚대로 진 서커스, 하지만 남은 인원은 단장을 주축으로 다시금 기술을 연마해 잘해보자며 의욕을 다지는데 그날 밤 흡혈귀들의 출몰에 서커스 단원들은 혼비백산하게 되는데....

개체를 막기 위해 흡혈 후 무참히 죽여버리는 흡혈귀들, 자신의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선 부모도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상당한 신체적 핸디캡을 딛고 흡혈귀 무리에 맞서는 흡혈귀 사냥꾼과 그저 서커스 단원인 민간인이 흡혈귀의 오해로 시작된 공격에 대항하는 이야기는 작가의 전매특허인 예상할 수 없는 이야기들에 역시 '고바야시 야스미'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흡혈귀에 맞선 서커스 단원들은 무사할 수 있을까? 서커스를 지키며 다시 회생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궁금증보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마귀 튀어나와 뭔가를 예상하며 읽는다는 것 자체를 잊을 만큼 무섭게 페이지를 넘겨보게 되는 소설임은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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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공장
엘리자베스 맥닐 지음, 박설영 옮김 / B612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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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612북스 / 인형공장 / 엘리자베스 맥닐 지음

1850년 11월 런던.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뒤틀린 쇄골과 호기심이 많다는 이유로 늘 언니인 로즈와 비교당하며 자라온 아이리스, 부러진 빗장뼈는 기형으로 붙어 특이한 자세를 만들었고 그런 특이함은 아이들에게 놀림의 대상이 되었으나 아이리스를 외롭게 만든 건 자신과 비교해 너무도 예쁜 언니 로즈의 외모였다. 부모님의 편애와 언니와의 비교 때문에 늘 자신감이 없었던 아이리스였지만 그럼에도 언니인 로즈와 미래에 대한 상상을 펼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때도 있었지만 그런 꿈은 언니가 천연두에 걸려 곰보가 되자 미래를 약속했던 신사에게 차이면서 쌍둥이는 인형공장에 들어가 하루 종일 고개를 파묻고 인형을 만들어야 하는 고된 생활에 갇히고 된다.

눈만 뜨면 인형 옷을 바느질하거나 인형 얼굴을 색칠하는 일이 쉴 틈 없이 이어지고 실수가 있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땐 설터 부인의 괴롭힘을 참으며 자매는 꿋꿋하게 견뎠지만 아이리스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자신이 하고 싶은 그림 그리는 일에 대한 열망으로 지긋지긋한 인형공장을 벗어나는 날만을 갈망하고 있다.

그와 멀지 않은 곳, 죽은 동물 사체를 박제하는 일을 하는 사일러스는 화가들의 그림 속 모델이 되어줄 동물들 박제를 하느라 끼니도 잊을 정도로 집중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구박을 받으며 늘 외로움에 몸서리치던 사일러스는 어느 날 보게 된 동물 사체에 매료되었고 언젠가는 자신의 박물관을 만들 희망에 부풀어 있다. 지금은 비록 자신의 작품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지만 언젠가는 유명해질 날이 올 거라며 자기 위안을 삼는 사일러스에게 어릴 적 첫사랑을 닮은 아이리스를 보게 되면서 광적인 집착이 시작된다.

첫사랑이 살아돌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화가에게 팔았던 비둘기 박제가 잘못되는 일이 발생하면서 사일러스는 위기를 모면할 생각에 모델로 아이리스를 추천하게 되고 그렇게 인형공장에서 벗어나고자 열망하던 아이리스는 드디어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결정한 선택을 따르게 된다.

시간당 주급도 괜찮고 무엇보다 자신을 모델로 삼은 루이가 작업을 끝내고 그림 그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마음에 들었던 아이리스는 그렇게 하루하루 화가의 꿈을 키우며 그림에 매진한다. 그러면서 아이리스는 루이에게 의지하고 연민도 느끼게 되는데....

<인형공장>은 어느 분야에서도 여성이 나설 수 없었던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모델은 매춘녀와 같다는 인식을 등에 업고 자신의 꿈을 향해가는 아이리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여자이기에 도전하는 것조차 환영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아이리스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이 선택한 그림을 그리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기억에 둘만큼 관심도 없었던 사일러스의 광적인 집착 때문에 이들이 향해갈 미래가 궁금해 불안하면서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가독성을 안겨준다.

두툼한 페이지임에도 1850년대 시대상을 엿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어내려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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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재석이가 깨달았다 까칠한 재석이
고정욱 지음, 마노 그림 / 애플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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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북스 / 까칠한 재석이가 깨달았다 / 고정욱 지음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는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이 연령대가 맞지 않아 미뤄뒀던 책이었다. 그런 것이 벌써 7번째 이야기라니, 놀라움과 함께 부랴부랴 들게 된 <까칠한 재석이가 깨달았다>는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릴 정도로 재미는 물론 교훈까지 담겨 있어 아이는 물론 어른들이 읽기에도 좋은 책이다.

전편들을 모두 건너뛰고 일곱 번째 이야기부터 만났지만 들어가기 전 전편 줄거리를 통해 가정환경 때문에 할머니 집에 맡겨져 외롭고 반항기 만렙이었던 재석이의 이야기를 알 수 있어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다.

국회의원 선거가 있어 학교에 가지 않은 재석은 엄마가 하는 국밥집에 들러 일손을 거든다. 그리고 오랜만에 봉식이 형을 만난 반가움도 잠시 형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고 재석의 말에 봉식이 형은 자신이 매니저 일을 맡은 여자 아이돌 그룹 브랜뉴의 멤버 화란이 학창 시절 일진으로 있으면서 아이들을 괴롭힌 사실이 인터넷에 확산되어 여론이 좋지 않다는 말에 재석은 자신이 철없을 때 저질렀던 일들과 오버랩되어 남 일 같지 않다.

그리고 며칠 후 향금이와 보담이가 얼마 전 전학 온 자연이란 애한테서 민성이란 아이가 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괴롭혔다며 민성이와 친하냐고 물어봤고 이에 향금이와 보담이는 민성이에게 자연이란 아이를 괴롭힌 적이 있냐고 물어보지만 재석이처럼 철없던 시절 아이들을 괴롭히던 것이 일상이었던 민성이는 자연이란 아이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자연이는 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괴롭혀온 아이들 이야기를 SNS에 올렸고 일이 커지면서 민성이에 대한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이에 재석과 보담, 향금은 자연이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은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일이라며 몇 번이 되었든 자연이를 만나 사과를 하기로 한다.

어렵게 자연일 만난 민성이는 기억에도 없는 아이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보다 자신을 보고 움츠러들고 급기야는 울음까지 터트린 자연일 보며 혼란과 반성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민성이 곁에서 지금 당장 만나지만 않았을 뿐 어딘가에 있을 자신이 괴롭힌 자연이 같은 아이들이 있다는 생각에 재석 또한 마음이 착잡한데....

그렇게 시간이 되는대로 자연일 만나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지만 자연이의 상처는 너무도 컸고 그러던 중 자연이는 타 여학교 일진에게 맞아 병원에 실려가게 되는데... 그 배후에 자연이를 괴롭혔던 또 한 명의 인물인 일구가 얽혀있었고 일구는 어린 시절 재석과의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어 재석과의 정면 승부를 원하는데....

<까칠한 재석이가 깨달았다>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처 기억하지 못했던 철없던 시절의 실수가 누군가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아 고통을 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진심으로 상대방에게 용서를 비는 모습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사실 누군가에게 끔찍한 상처를 줬음에도 미처 사과하지 못하고 타인의 탓으로만 돌려 합리화시켰던 일들이 떠올라 왠지 더 재석이와 민석이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그것이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진심으로 다가가 용서를 구하는 민성이와 재석의 모습을 통해 아이들이 어른으로, 제대로 된 한 인간으로서 더 크게 성장해가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 흐뭇하면서도 가슴 벅차게 다가왔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른이 되었어도 진정한 용기를 낼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책을 읽고 어른들도 깨닫는 것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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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코스트 블루스
장파트리크 망셰트 지음, 박나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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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 웨스트코스트 블루스 / 장파트리크 망셰트 장편소설

'조르주 제르포'는 ITT 그룹 자회사의 임원이다. 육감적인 몸매의 아내와 두 딸을 둔 가장으로 한 달 동안 파리의 집을 비우고 외곽 해변가로 휴가를 갈 계획이다. 아내인 '베아트리스'와 펜션 문제로 조금은 다투겠지만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을 그들의 휴가는 며칠 전 제르포가 사고당한 자동차의 운전자를 병원에 데려다준 일이 발단이 되어 꼬이기 시작했고 심지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들의 습격에 평범한 일상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1920년 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태어난 '알론소'는 도미니카 섬의 백인 엘리트 가문 출신인 '엘리아스'와 협력하여 비합법적인 일로 돈을 벌어들였고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지만 국가적인 혼란이 이들을 도와준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했고 친구가 정치적인 일에 휘말려 비참하게 내쳐질 때 알론소는 진작부터 돈을 빼돌려 드넓은 농지를 사들인 후 처절하리만치 철저한 고립 생활을 이어간다.

그리고 아무도 발을 들일 수 없는 알론소의 드넓은 사유지에 새빨간 란치아 베타 베를린 1800을 타고 다니는 어두운 양복 차림의 두 남자만 출입할 수 있었는데 이들과 그 어떤 접점도 없었던 제르포는 한밤중 운전하다 발견한 차의 운전자를 병원에 데려다줬다는 이유만으로 양복 입은 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돼버린다.

처음은 제르포가 가족과 떠난 휴가지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낼 때 다가온 두 명에게 익사당할 뻔했고 그들을 따돌리고 파리로 돌아온 후 갈 곳을 잡지 못한 채 고속도로를 달리던 제르포를 뒤쫓은 범인들과 주유소에서 재회하며 또 한 번 제르포는 죽음의 위기에 몰리게 되지만 가까스로 도망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기차에 올라타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해볼 틈도 없이 기차 안에서 만난 부랑자에게 지갑을 뺏긴 채 떠밀려 높은 산 중턱에서 그대로 굴러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불사신 제르포는 죽지 않았고 부러진 다리로 며칠을 걷거나 기어 숲에서 벌목하는 젊은이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도움으로 사람이나 동물들을 간호하는 일을 하는 라귀즈 하사를 만나 그의 곁에서 지금껏 해보지 못했던 사냥과 그 밖에 잡다한 것들을 배우게 된다. 그렇게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고 다친 다리도 다 나았지만 제르포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이미 범인과의 두 번째 만남이 있던 날 주유소에서 벌어졌던 사건이 언론을 타며 자신은 실종된 상태로 처리된 상황에 그런 것들과 더불어 제르포는 왠지 그동안의 삶에서 떠나 불편하고 더럽지만 그런대로 홀가분하게 지낼 수 있는 지금 상황을 즐기는 듯하다.

<웨스트코스트 블루스>는 다국적 기업의 임원인 제르포가 퇴근하던 중 사고를 당한 차를 발견하고 의식을 잃은 운전자를 병원에 데려다준 일이 발단이 되어 원치 않는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평생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영미권에서 보이는 범죄소설과 달리 왜 그런 사건이 일어났고 왜 그래야만 했는지, 사건에 휘말린 희생자들이 불쌍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범인들의 인간미를 조금은 끌어내려 애쓰는 인정 따윈 찾아볼 수 없다.

짜임새 없이 되는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다가오지만 그래서 더 앞으로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더욱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이미 초반에 제르포가 모든 사건을 끝냈음을 알리는 문장을 던져준 후 전개되는 내용임에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가독성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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