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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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담출판사 /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 에쿠니 가오리 지음

절망적일 정도의 섬세한 글을 구사하는 그녀의 소설을 20대 땐 꽤 사랑했었다.

온전치 않았고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했던 나날들 속에 과연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란 망막함 속에서 그녀의 글은 더 절망적이고 더 비참한 기분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고 온몸을 휘감는 절망감 때문에 이제 다 그만 내려놓고 싶은 기분에 젖어들었던 적도 숱했었다. 그런데 어제까지 내 몸을 휘감던 파탄적인 감정은 며칠이 지나면 현실에 대한 안도감으로 변했고 그녀의 소설을 통해 울고 싶을 정도로 어찌할 바를 모르겠던 감정들이 비로소 조금씩 정화되고 있다는 경험을 되풀 하면서 나의 20대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그녀의 소설이 떠오른다.

 

 

때로는 방금 읽고도 이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문체를 통해 같은 감정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움을 던져주는 그녀의 소설은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에선 소설이 아닌 그녀 특유의 감성을 담은 에세이로 탄생했다. 이 책을 쓰기 위한 에세이는 아니지만 그녀가 작가 활동을 하며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생각하고 깨달은 것, 감사한 것들과 슬펐던 것들을 신문이나 잡지에 실렸던 것들을 모아놓아 평소 그녀의 문체를 사랑했던 독자라면 소설 속에서 태어난 캐릭터가 아닌 '에쿠니 가오리'란 오롯한 인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 더 친근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에세이는 쓰기, 읽기, 그 주변이란 주제로 그에 걸맞은 에피소드들을 소개하고 있다.

<쓰기>에 등장하는 '무제'란 이야기는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몸 어딘가에 무언가 걸려있다고 얘기하는데 도대체 어디에 뭐가 걸려있다는 건지, 그래서 병명은 무엇인지 묻는 대답에 의사는 답답하고도 아리송한, 어떻게 보면 대답을 회피하는 듯한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다. 이야기가 이쯤 되다 보니 '이거 에세이인 줄 알았는데 소설도 있나 보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밀려오고 '그래서 종잡을 수 없는 이 이야기의 종착지가 뭘까'란 궁금증을 지나며 후반부에 들어서면 의사가 주인공에게 "아무튼 온 세계의 사소한 것들을, 어떻게 된 일인지 당신이 온몸으로 주워 모았다는 겁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몸 어딘가에 뭔가가 걸려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 어디에 걸려있는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는 결국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로 결론을 맺고 있는데 의사의 그 한마디의 나도 모르게 숨을 멈췄더랬다. 에세이가 도입부부터 이렇게 강렬함을 발산하니 어찌 집중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읽기>편에서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도피인 동시에, 혼자서 밖으로 나가기 위한 연습이기도 했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 문장을 읽고 책을 통해 고독한 시간을 달랬던 내 모습을 다독여준 것 같아 하마터면 울음을 터트릴 뻔했다. 이렇게도 공감 어린 문장이라니, 쓰고 읽는 것이 어떨 땐 작위적이고 그래서 언젠가부터 제대로 즐길 수 없어 심란한 고민을 만들기도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랬었지, 쓴다는 것, 읽는다는 것은 그랬던 나의 마음을 달래줬던 거였어.'라며 지난날들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일상적인 것들에 깃든 소소함을 섬세하게 찾아낸 문장들, 화려하진 않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봤던 감정이기에 더 진한 감정으로 가슴 깊이 다가왔던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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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과 이별하는 법 - 아이스너 상 수상 에프 그래픽 컬렉션
마리코 타마키 지음, 로즈메리 발레로-오코넬 그림, 심연희 옮김 / F(에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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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프 / 이별과 이별하는 법 / 마리코 타마키 글, 로즈메리 발레로-오코넬 그림

좋아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만큼 그 사람도 날 좋아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면?

연애 상대방에게 이런 감정이 들기 시작하면 그 관계야말로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내가 느끼는 온도와 다소 다르게 느껴지더라도 처음엔 내가 잘하면 상대방도 따라와 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온도차가 좁혀지지 못하면 서로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 연애이고 이런 격차는 결국 이별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알아도 사랑이란 감정 앞에서는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일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답답한 마음에 상대방을 욕하고 헤어지라고 해도 한번 씐 콩깍지는 결코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대체 사랑에 빠지면 왜 이렇게 되는 걸까?

겉표지만 보면 한 남자와 여자가 사랑에 빠지고 뜨거운 연애를 하다 이별에 이르는 자연스러운 수순을 떠올리게 되지만 주인공 프레디는 어딜 가나 인기를 몰고 다니는 로라 딘을 좋아하고 로라 딘은 여자이다. 그리고 프레디와 함께 어울리는 친구인 에릭과 버디는 게이 커플이다.

이야기가 이쯤 되면 동성애 찬반에 대한 저항감은 없더라도 왠지 불편한 감정이 들기 마련인데 재밌게도 읽다 보면 나쁜 남자 스타일로 등장하는 여성 로라 딘의 행동 때문에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프레디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인기를 몰고 다니는 로라는 파티에서 늘 주위에 여성들로 넘쳐났고 로라만 바라보는 프레디는 그런 장면을 목격하는 것이 힘겹기만 하다. 오롯이 나만 소유하고 싶고 내가 그런 것처럼 로라도 나만 바라봐 주길 바라지만 프레디는 한마디로 자유로운 영혼이다. 색다름을 추구하고 상대방이 내 감정 영역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매력을 통해 상대방을 통제할 수 있다 믿는 로라의 이기적인 행동은 프레디를 더욱 힘들게만 만드는데....

자신이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로라에게 벗어나지 못하는 프레디, 그런 프레디를 지켜보는 두들과 에릭 커플은 프레디가 어서 로라에게서 벗어나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결국 잘못된 사랑을 끊어내는 것은 프레디의 몫이었으니 프레디가 자신과 친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면서 진정한 이별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살아오며 한 번쯤은 죽을 만큼 사랑했고 이 사람이 아니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을 만큼 옴팡진 사랑에 빠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동성 간의 사랑이란 주제라 다소 민감하게 다가오긴 했지만 동성 간의 사랑이든 이성 간의 사랑이든 사랑이란 감정 앞에서 인간은 동일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기에 로라에게 끌려다니는 프레디가 가엾고 답답하게 다가왔지만 다시 자신을 되찾아 웃을 수 있기를 응원하게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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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고전 살롱 : 가족 기담 - 인간의 본성을 뒤집고 비틀고 꿰뚫는
유광수 지음 / 유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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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 / 문제적 고전 살롱 가족 기담 / 유광수 지음

고전을 통해 본 인간의 비틀어진 본성을 다룬 <문제적 고전 살롱 가족 기담>

얼핏 제목만 보면 무더위를 식혀줄 기담처럼 다가오지만 훑어보면 고전 동화나 문학을 통해 인간의 비틀어진 욕망과 이기심을 파헤쳐 나가는 내용을 다루고 있어 기존에 보았던 기담집과는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우선 등장하는 고전 문학이 쥐 변신 설화, 옹고집전, 배따라기, 열녀함양박씨전, 홍길동전, 사씨남정기, 춘향전, 구운몽, 옥루몽, 홍계월전, 흥부전, 심청전, 변강쇠가, 손순매아, 헨젤과 그레텔, 장화홍련전,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여우누이, 최고운전으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다룬 설화나 문학 뿐 아니라 외국 동화집에 나오는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어 낯설지 않지만 그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만을 탓하며 지나쳤던 문학들은 작가에 의해 등장인물들의 뼛속까지 파헤쳐 져 이렇게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도 있음에 감탄하게 된다.

남성에 의해 늘 그늘로 밀려났었던 여성의 삶, 괜한 트집을 잡는 시부모님 등쌀과 전쟁통에 청나라로 끌려가 모진 고초 속에 겨우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환향녀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그저 이것이 벗어날 수 없는 여자의 굴레인 양 가슴속에 한으로 꾹꾹 눌러 담았던 여성들의 삶은 문학 속에서도 그대로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책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으니까...라며 미처 보지 못한 세세한 것들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비틀어 불편하지만 뒤틀린 인간의 본성을 끄집어낸다.

쥐 변신 설화를 통해 불변의 희생양으로 전락한 며느리의 이야기는 남편의 부주의가 불러온 쥐의 변신으로 모두 아는 내용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어린이용 버전이 아닌 쥐와 사통하여 임신까지 한 며느리를 몰아가는 시어른들의 공범자 심리를 파헤치고 있다. 사실 도입부부터 천년 묵은 쥐가 남편 행세를 하는데도 이를 몰랐던 며느리에게 '쥐뿔도 몰랐냐?'란 물음은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뜻이 담겨 있는 말이라 꽤 당황스럽고도 충격이었는데 이후로 이어지는 고전 문학의 내용들이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그저 알음알음 알았던 문학적 잣대의 틀을 깨부수는 해석에 책을 덮을 때까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본성이 드러난 폭력 앞에서도 그것을 당연시 여겼던 문학적 이해가 얼마나 안이했던 생각이었는지, 그저 '기담'이란 단어에 호기심으로 접근했다면 이 책을 통해 여성으로서 안일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기초부터 뒤흔들릴 수도 있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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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 눈의 여자
박해로 지음 / 네오픽션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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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픽션 / 올빼미 눈의 여자 / 박해로 장편소설

무속 신앙을 다룬 단편집은 여럿 보았지만 단편이 아닌 장편에 무속 신앙을 바탕으로 한 소설은 흔치 않아 더 뇌리에 각인된 작가 '박해로', 사실 그동안 무속 신앙과 관련된 영화나 소설은 다소 난해한 감이 있어 즐겨보지 않았는데 무속 신앙은 아니지만 일본 괴담을 바탕으로 한 '보기왕이 온다'를 읽은 후 한국 괴담이나 무속 신앙과 관련된 주제에 관심이 옮겨가면서 처음 읽게 됐던 작품이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 살'이었다.

괴담이나 원초적 공포심만을 자극하는 소설과 달리 무속 신앙은 그 자체만으로도 공포의 질량이 다른데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건가?'싶어 의구심이 들다가도 자극과 공포가 뒤섞여 쉽사리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전개에 책을 덮을 즘엔 한편의 영화를 본 듯한 충격을 받곤 한다. 이런 강렬함을 한 작가에게서 작품마다 받는 것도 쉽지는 않을 듯한데 호기심에 궁금하면서도 왠지 모를 두려움에 망설여지게 되는 것 또한 박해로 작가의 소설을 읽기 전 동일하게 느껴지는 감정 같다.

기성은 안정된 직장이라 불리며 청년들이 죽자 사자 매달리는 공무원이지만 웬만하면 정년까지 보장된다는 안정감과 달리 민원 창구에서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통에 하루에도 열두 번씩 사표를 날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언의 압박과 공포심을 조장하는 민원인들의 수위는 하루하루 높아져만 갔고 그 스트레스 때문에 기성은 치질에 시달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표를 던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자신만 바라보는 가족 때문에 기성은 맘 편히 하소연할 수도 없다. 그런 시달림 속에서 기성은 단 며칠만이라도 일상에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에 연수를 신청했고 오랫동안을 기다려서야 연수원 교육 확정 전화를 받게 된다. 그렇게 연수원이 있는 경북 섭주로 향한 기성은 공무원 동기인 장준오와 재회하며 회포도 풀 겸 섭주 시내의 횟집에서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2차로 노래방을 향한 뒤 정신을 잃게 된다. 평소 주량이 센 편인 기성이지만 노래방에서 준 맥주를 마신 뒤 맥을 못 추며 의식을 잃은 것에 의아함을 느끼던 차에 전날 노래방에서 만난 도우미 주리와 핸드폰이 뒤바뀐 사실을 알고 연수가 끝난 후 만나 교환하기로 한다.

핸드폰을 교환하기로 약속한 장소에 주리 대신 나온 주리의 딸 시영을 본 기성은 격한 동요를 느끼게 되고 이후 이들의 만남이 우연처럼 거듭되면서 기성은 주리의 집에 초대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주리의 집에 초대된 날 기성은 시영이 자신의 대학 동기인 연진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에게 호의적인 연진의 태도에 오랜 연인인 화영이보다 더 마음이 기우는 것에 조금씩 혼란을 느끼게 되는데 문제는 연진과 별개로 주리 또한 기성에게 추파를 던지는 묘한 상황에서 기성은 점점 모녀의 손아귀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는데.....

'연진의 마음은 뭐고 연진의 엄마로 등장하는 주리는 또 왜 저러지?, 도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싶은 궁금증이 내내 들러붙을 무렵 서서히 이들의 정체가 밝혀지고 이들 모녀 뒤에 존재하는 진짜가 등장한다. 그리고 역시나 강렬하고 자극적인 내용이 주는 몰입감에 영화 한 편을 옴팡지게 본 느낌은 이번 소설에서도 피해 가지 않는다.

조선시대 억울한 죽음을 맞았던 비운의 왕을 다룬 책을 보다가 무속인들이 단종이나 사도세자의 원혼을 즐겨 한다는 내용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어딘가에 전해내려오는 전설에 무속적인 살을 입힌 듯한 생생함이 느껴져 또 한 번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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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 (반양장) -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96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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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 유원 / 백온유 장편소설

어릴 적부터 동생을 너무도 원했기에 언니는 미리부터 동생의 이름을 '유원'이라 지었다.

11살이나 어린 동생이었지만 식당 일을 하시는 부모님 대신 살뜰히 보살피면서도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못하는 게 없을 정도로 두각을 보이는 데다 성격까지 좋아 주변 사람들로부터 늘 칭찬을 받았던 언니.

그렇게 언제나 곁에 있을 것 같은 언니는 12년 전 아파트 화재 사고로 죽었다.

위층에 살던 할아버지가 베란다에서 피웠던 담배 불씨가 화재가 되어 14층까지 빠르게 번진 불은 아파트 안에 갇힌 사람들을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들어버렸고 동생과 함께 낮잠을 자다 깬 언니는 물을 묻힌 이불에 동생을 감싸 11층 베란다에서 동생을 던지고는 자신은 질식사했던 금정동 아파트 화재사건.

그리고 12년 전 11층에서 던져졌던 유원은 중년 남성에게 받아져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보도될 만큼 유명했던 사건이었기에 어릴 때부터 가는 곳마다 화재사건에서 살아남은 아이로 타인에게 이미 유명한 아이가 되었다.

누군가는 동정 어린 눈으로, 누군가는 언니의 몫까지 잘 크란 당부에, 집에선 어떤 식으로든 조심하려는 부모님이 있어 유원은 언니의 사건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무게를 견뎌내고 있다.

그런 감정들은 쾌활했던 유원을 죄책감에 웅크리게 만들었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친구는 있지만 학창 시절 교감을 나눌만한 친구는 만들지 않는 아이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점심시간조차 친구들과 말을 섞으며 함께 밥을 먹기보다 5층 옥상 앞에 막아논 걸상들 사이에 혼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이 편한 유원은 평상시처럼 시간을 보내다 늘 잠겨있는 옥상을 마스터키로 열고 들어가는 수현을 만나게 되면서 지금까지 알고 싶지 않았던 우정을 경험하게 된다.

<유원>은 자신을 살리고 죽은 언니의 부재로 인해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유원의 짓눌린 무게감이 표현된 소설이다.

살았더라면 뭐든 됐을 언니는 자신으로 인해 살아난 동생에게 고마움이 아닌 미움이 대상이 되었고 11층 아래에서 자신을 받아 기적적으로 살렸지만 본인은 그 여파로 다리가 부러져 장애인이 된 아저씨는 궁핍할 때마다 엄마 아빠를 찾아와 곤란함과 불편함을 안겨주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둘 다 유원에게 고마운 사람이지만 유원은 그들로부터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감을 느낀다.

그렇게 감당하고 살아온 게 용하다 싶을 만큼 읽는 내내 답답함과 이건 아니라는 욕지기가 올라옴에도 유원과 부모님 입장에서는 또한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는 공감이 뒤섞여 착잡한 마음이 돼버리고 마는 소설 <유원>

유원이 수현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달라지지 않고 평생 지속되었을지도 모를 악연의 끈은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 수현으로 인해 그동안 감당해왔던 무게를 덜어낼 수 있게 되면서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갈 유원의 또 다른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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