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속에 아픈 사람들 - 의학의 관점으로 본 문학
김애양 지음 / 재남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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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남 / 명작 속에 아픈 사람들 / 김애양 지음

언젠가 명화 속 인물의 모습을 통해 병 증세를 짚어보는 책을 본 적이 있는데 의학 쪽에 직업을 두고 있거나 관심 분야라 그림 속 인물의 모습만으로도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유추해낼 수 있다는 게 신선하고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다.

<명작 속에 아픈 사람들>도 전에 봤던 명화 책과 맥락을 같이 하지만 그보다 더 궁금증이 일었던 건 아무래도 명화보다는 명작에 관심이 많고 나이 듬에 따라 늘어갈 수밖에 없는 신체에 대한 궁금증과 걱정 등이 겹쳐졌기 때문일 텐데 평소 이런 호기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꽤 재미있게 읽을만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명작을 통해 39가지라는 꽤 많은 질병을 접할 수 있는데 각기병, 췌장암, 위암, 전립선 비대증, 포피리아증, 알츠하이머병, 충수염, 뇌졸중 등 가짓수만큼이나 다양한 병명이 명작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은 놀라움 그 자체로 다가온다. 무대도 유럽부터 아시아 등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데 명작에 대한 짤막한 내용과 소설 속 등장인물이 앓았던 병명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물론 명작을 쓴 저자의 약력도 소개되어 있어 다양한 즐거움을 함께 누릴 수 있다.

그 속에서도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고등 법원 판사인 이반 일리치가 통증을 느끼고 죽기까지 6개월 동안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신과 달리 그의 앞에서 걱정이라곤 하지 않는 가족들 때문에 더욱 외롭고 힘겨워하는 이반의 모습은 현대 사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더 씁쓸하게 다가온다. 죽음을 앞둔 인간이 겪는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이란 5가지 감정을 이반은 그대로 보여주며 가족을 위해 일에만 매달렸던 자신의 지난날과 가족에게 소홀했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면서도 차마 그것을 입으로 담아내지 못한 마지막 모습에서 아무도 없는 독방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는 인간의 모습과 또 다른 진한 고독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전립선 비대증을 담은 마리오 바르사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는 트루히요 독재 정권 시절 도미니카 공화국의 상원 의원인 아구스틴 카브랄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내쳐지면서 자신의 14살 딸인 우라니아를 트루히요에게 바치며 돌파구를 모색하는데 70세의 트루히요는 우라니아를 상대로 그동안 자신만만해했던 자신의 성 기능을 만족스럽게 펼치지 못한다. 어쨌든 자신의 신체에 분노하는 트루히요와 그 상황에 충격을 받은 우라니아는 아버지를 떠나 오랜 시간 타향에 머물다 귀국하게 되고 그동안 독재의 부당함에 짓눌렸던 사람들이 대항하는 이야기들 속에 유독 전립선 비대증이 눈에 들어왔던 건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람의 일화가 생각나서였을까, 독재와 수많은 여성, 심지어 부하의 아내까지 건드리는 트루히요의 몰지각한 성관념은 전립선 비대증이란 병을 가져왔고 결국 찔끔찔끔 오줌을 지리게 되는 상황이 유독 가까운 우리나라 누군가와 겹쳐져 보였던 것은 나만의 생각인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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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에 빠진 세계사 - 전염병, 위생, 화장실, 목욕탕에 담긴 세계사와 문화 이야기 자음과모음 청소년인문 13
이영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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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 / 변기에 빠진 세계사 / 이영숙 지음

전염병, 위생, 화장실, 목욕탕에 담긴 세계사와 문화 이야기.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비상인 현재, 그런 이유로 전염병과 관련된 책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전염병과 관련된 이야기는 물론 지리적 이야기도 함께 둘러볼 수 있어 청소년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질병, 의학, 위생, 미용, 생활, 예술, 산업, 경제 부문으로 나누어 전염병의 이동에서부터 중세인들의 생활양식을 통해 본 위생관념, 오줌의 무궁무진한 역할, 그 옛날 수세식 화장실이 발달했던 나라, 현재에 이르러 인분을 연료로 삼아 달리는 버스의 등장까지 다루고 있어 흥미롭다.

14세기 열이 펄펄 끓고 팔다리 통증과 몸 곳곳에 검은 종기가 부어오르고 피부색이 까맣게 변하는 페스트가 유럽 전역을 강타한다. 현재 코로나19가 중국 우한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페스트 역시 중국 운남성의 풍토병이었던 것이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를 거쳐 서쪽으로 옮겨졌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어찌 됐던 실크로드를 통해 페스트가 유럽 전역에 퍼졌던 것처럼 콜럼버스가 인도인 줄 알고 닿았던 신대륙에 전했던 전염병으로 인해 면역력이 없던 원주민들의 많은 수가 사망했다는 사실에서도 보이듯 전염병은 눈에 보이지 않고 발병 후에도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인간이 더 두렵게 느낄 것이다. 이런 전염병으로 인해 씻는 것이 금기되었고 당시 횡행했던 목욕탕이 문을 닫았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특히 목욕 이야기에서는 전염병으로 인해 뜨거운 목욕을 하면 열린 땀구멍을 통해 역병이 침투한다고 생각해 목욕탕과 목욕을 피하라는 주장이 나왔고 이 때문에 페스트 이후 400년 동안 공중 목욕 문화가 사라졌다고 하니 그 생활이 얼마나 불편했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이런 주장이 자리 잡기 전까지 횡행했던 공중목욕탕이 남녀 혼탕과 윤락이 자리 잡으면서 퇴폐적인 장소로 변질되었다는 점에서 매독균으로부터는 좀 안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씻지 않아 생기는 병이 더 위험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루이 14세가 대공사를 벌여 완성한 베르사유 궁전에 화장실이 없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봤을 텐데 화장실이 없어 드넓은 정원에 용변을 보는 일이 속출했고 오물을 밟지 않기 위해 하이힐과 향수가 등장했다는 이야기는 사실 터무니없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2만여 평의 궁전 건물에 방이 700개, 창문이 2143개일 정도로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궁이지만 어딘가에 있어야 할 화장실 용도가 보이지 않았기에 이런 말이 나오게 되었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화장실 전용 방이 아니라 베르사유 궁전엔 다용도실처럼 작은방에 용변을 볼 수 있도록 전용 의자를 통해 배설을 했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는데 실제 귀족들이 썼던 변기 의자가 너무도 고풍스러워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지금의 깨끗하고 편리한 시설은 산업화의 가속도로 인해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이 겪었던 질병과 고통이 기반이 된 것들인데 깨끗하기는 하지만 정화되는 인분이 비료로 쓰이지 못하고 엄청난 물을 사용해야 하는 등의 낭비를 막기 위한 바이오산업의 등장은 지구 자원의 고갈을 막아줄 대체법으로 등장해 지구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똥, 오줌, 방귀 이야기는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주제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기본적이며 안전과도 연관되어 있어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인데 역사에서 찾아보는 질병의 이야기와 전 세계 인구가 배출하는 인분이 에너지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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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에렉투스의 유전자 여행 - DNA 속에 남겨진 인류의 이주, 질병 그리고 치열한 전투의 역사
요하네스 크라우제.토마스 트라페 지음, 강영옥 옮김 / 책밥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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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밥 / 호모 에렉투스의 유전자 여행 / 요하네스 크라우제, 토마스 트라페 지음

침팬지와 함께했지만 이후 종을 달리하며 인간의 모습으로 진화했다는 이야기는 사실 아직까지도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 무엇이 지금의 인간과 침팬지를 가르게 되었을까?

아이와 종종 들르는 박물관에서 인간의 진화 과정과 명칭을 볼 때마다 몇만 년, 몇십만 년을 두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진화된 모양을 그저 신기하게만 쳐다봤었는데 최근 방영된 드라마 이후로 종과 관련된 책을 접하면서 다르게 진화된 종들이 있었고 드라마에서처럼 종끼리 싸우고 식인을 하며 열세한 종이 멸종해 버렸다는 이야기를 통해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관점으로 보게 되었다.

인간의 기원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남겨진 화석을 찾아 조각난 퍼즐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아 학자들 간에도 여러 가지 설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그래서 더욱 매혹적인 분야로 다가오는 건 아닐까 싶었다.

직립으로 서 있는 사람이란 뜻인 '호모 에렉투스'를 향한 항해는 고고 유전학을 전공한 저자가 2009년 겨울 시베리아에서 발굴된 7만 년 전 소녀의 것으로 추정되는 손가락 끝 조각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발견된 뼛조각을 DNA 염기서열로 해독한 결과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이종교배인 것으로 나타나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다른 이야기를 더하게 된다.

저자는 각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지도를 통해 시대와 인류가 거쳐간 이동 동선을 표시해놨는데 자연재해가 인류 이동에 미친 영향력을 가늠해볼 수 있도록 함께 표시해놓고 있어 이해를 돕고 있다. 언젠가 TV에서 사학자가 네안데르탈인은 두뇌가 명석한 호모사피엔스 때문에 멸종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결과를 놓고 보면 현생 인류의 몸속에 남아있는 유전자 안에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있어 멸종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눈앞에 보이지 않아 멸종되었다는 식이 아닌, 인류 DNA 안에 새겨져있다는 이야기여서 색다르게 다가왔다.

네안데르탈인이 혹한의 환경에 고립되면서 현생 인류가 유럽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고 이것이 유전자의 변혁기로 작용한다. 이후 최대 빙하기가 끝나면서 유럽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근동 지방에서 직립보행 기원이 출현했고 따뜻한 기후는 수렵민과 채집민을 농경민과 가축 사육자로 생활하게 되는 변화를 가져온다. 그리고 따뜻해진 기후를 통해 이동이 많아지면서 전염병에 대한 이야기와 연결된다.

유럽인들의 이동으로 페스트가 퍼지게 되었고 이후 한센병, 결핵, 매독 등의 질병과 이동경로 등을 유전자를 통해 설명하는 것 또한 흥미롭게 다가왔는데 저자의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건 인류의 출현과 이동, 유전자 이야기를 통해 잘못된 토착 인류에 대한 인식 때문에 민족의 우월함과 열등함을 판가름 짓는 것은 잘못된 견해라고 지적한다. 책을 눈여겨본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지나친 자기애 또는 민족애란 생각이 들 텐데 그런 주장을 확산시켜 전쟁을 유도하고 엄청난 인명피해를 일으켜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합리화시키는 인간의 잔악함은 더 이상 되풀이되지 말아야겠다.

어쩌면 지금까지 제시되었던 주장이 불현듯 발견될 뼛조각 하나로 인해 뒤틀어지는 일들이 여러 번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호기심이기에 지금도 수많은 학자들이 인류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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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1~3 세트 - 전3권 (무선)
류츠신 지음, 이현아 외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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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체 1,2,3 세트 개정 양장본 / 류츠신 지음

아시아 최초 휴고상 수상 작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중국 SF란 이것이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박아 넣은 <삼체 1,2,3 세트>

그동안 서양권 작가들을 통해 접했던 SF와는 달리 공감되는 문화적 정서가 있어서인지 확실히 빠져들어 읽게 되었던 것 같다. 물리학 이론이 총망라되어 있어 주석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이해한다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긴 했지만 그동안 어쭙잖게 읽었던 그 어떤 SF 소설보다 강렬하게 다가왔다.

무언가를 극비리에 연구하던 연구원들이 하나 둘 자살하는 사태가 발생하며 그것을 조사하기 위해 나노소재 과학자인 왕먀오가 투입된다. 그는 자살한 과학자의 어머니인 예원제를 찾아가 딸의 죽음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려 하지만 그보다 문화대혁명 때 물리학자였던 아버지가 공개처형된 후 정부의 감시를 받는 예원제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동과학자의 딸로 낙인찍힌 예원제는 그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고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으며 조용히 지냈지만 천체 물리학자였던 그녀의 이력으로 어느 날 외계문명탐지기지인 '홍안'으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인류를 멸망시키고 외계 문명의 힘으로 인류 변화를 꿰하려는 삼체 반군을 보며 이미 인류는 가망성이 없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녀는 외계 행성에 정보를 보내는데....

2부에서는 예원제의 딸인 양둥의 친구로 뤄지가 등장한다.

예원제의 도움으로 우주 사회학을 고민하게 된 뤄지는 지구를 멸망시키기 위해 삼체인들의 함대가 지구를 향했다는 소식에 동요해 엉망으로 변해버린 지구를 구할 면벽자로 등장한다. 그리고 뤄지를 포함해 면벽자로 지목된 이들은 400년 후에 지구에 도착할 삼체인들에게 맞서기 위해 동면에 들어가게 된다.

                             

지구를 지켜내기 위해 면벽자의 사명을 강요받아야 했던 뤄지, 가정은 물론 새로운 대응책을 강구하는 뤄지를 죽이려는 반군들 때문에 뤄지는 그림 세장을 외계행성에 전파로 보내고 동면에 들어가는데 이후 동면에서 깨어난 뤄지는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깨어난 뤄지는 면벽 프로젝트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지만 탐측기의 공격으로 엄청난 우주선과 인명피해를 본 지구는 다시 면벽 프로젝트를 재개하고 지구인들은 마지막으로 남은 면벽자인 뤄지만 바라보지만 이렇다 할 대안이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더 이상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지구를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와 지구를 침범하기 위한 외계행성 간의 전쟁을 통해 현재 지구가 처한 모습들을 꺼내볼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는데 1부에 등장하는 '침묵의 봄'의 등장은 그 자체가 지구가 처하게 될 상황을 대표하고 있는 것 같아 공감이 많이 갔던 것 같다.

일반인들이 편하게 읽어내기엔 물리적 명칭들이 너무 많이 등장해 어렵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다양한 시대를 담아내고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SF 소설이라 하면 왠지 어렵게만 다가오는 소재이지만 장대한 한편의 영화를 본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짜임새 있는 전개가 돋보여서 SF 초보 입문자에게도 감탄사를 내뱉게 할 만큼 단연 돋보이는 소설임은 확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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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9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문틈 사이로 한 걸음만
제임스 리 지음 / 마음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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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서재 / 문틈 사이로 한 걸음만 / 제임스 리 소설

소희는 강원도 탄광촌에서 태어났다. 탄광 일을 하는 아버지와 가난한 살림에 줄줄이인 형제들 틈에서 학업의 꿈도 꿔보았지만 워낙 가난한 살림살이에 편한 마음으로 학교를 다니는 것은 소희에겐 사치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학업에 욕심이 있어 중학교나 고등학교까진 진학했지만 형편상 고등학교 졸업을 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와야 했던 소희는 어릴 적 좋아했던 지환일 만나 사랑을 꽃피우게 되고 지환의 아이를 갖게 되지만 식구들에게 감추느라 고생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출산이 임박한 것을 알게 된 소희는 뒷산에 올라가 아이를 낳지만 곧 사산되고 눈물을 흘리고 산에 묻고 돌연 집을 떠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땅에 묻은 죄악 때문에 소희는 마음 편할 수 없었고 아는 사람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타향에서 어찌어찌하다 티켓 다방과 사창가를 전전하며 십 년의 세월을 흘려보낸다. 그렇게 30대를 넘겨 생기는 잔주름보다 더한 몸과 마음의 상처를 끌어안으며 저녁마다 진한 화장으로 웃음을 흘리며 남자들을 대해야 하는 나날들은 소희에겐 지옥 같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희가 일하는 군산 개복동 사창가 인근 대명동 성매매 업소에서 발생한 화재 때문에 자신들과 같은 처지의 성매매 여성들이 죽는 일이 발생하게 되고 그곳과 별다를 것 없이 성매매 업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의 또 다른 화재는 어쩌면 예견된 것과 마찬가지였으리라.

재워주고 먹여주는 금액에 몸이 아프거나 생리를 한다는 이유로 하루를 쉬면 엄청난 금액을 물려 빚으로 달아두는 성매매 업소의 시스템은 돈을 벌기는커녕 빚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몸이 아파도 거르지 않고 손님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에 성매매 여성들이 그토록 바라왔던 평범함이 그녀들에게는 어떤 의미였을지 생각해보게 한다.

불우한 가정환경 등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삶의 무게에 짓눌린 그녀들의 삶은 작은 케이지 안에 오로지 번식만을 위해 가둬진 개나 고양이와 다를 바 없이 느껴진다. 몸을 팔아 돈을 번다는 인식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떳떳할 수 없고 자신의 힘겨웠던 삶을 토해낼 수도 없었을 뿐더러 그 누구에게도 작은 위로나 토닥임을 받을 수 없었던 그녀들의 삶이 가엾고 짠하기만 하다.

<문틈 사이로 한 걸음만>은 감시당하고 감금당한 채 화재 속에서 죽어가야만 했던 성매매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성매매 특별법'을 제정하게 된 군산 성매매 업소 화재사고를 바탕으로 여성으로서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성폭행 등이 가출과 이어지며 윤락가로 흘러들어가게 된 이들의 사연에 덧붙여져 새롭게 탄생했다.

무거운 주제이기 때문에 마음을 짓누르는 답답함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떠나지 않는 소설이지만 몸을 팔아 돈을 번다는 인식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그녀들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고 여자임을, 안전하고 행복을 누리고 싶어 하는 평범한 사람임을 너무도 쉽게 잊어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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