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과 편지 - 성폭력 생존자이자 《버자이너 모놀로그》 작가 이브 엔슬러의 마지막 고발
이브 엔슬러 지음, 김은령 옮김 / 심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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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심심 / 아버지의 사과 편지 / 이브 엔슬러

친부에 의한 성폭력 사건은 끊임없이 불거져 나오고 있으며 피해자의 대부분이 성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서기도 전인 어린 나이에 상습적인 성폭력에 시달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것이 얼마나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일지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히는듯하다. 그저 사건을 바라보는 제3자의 시선이 이 정도인데 당사자는 얼마나 끔찍했을까, 얼마나 오랜 시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자책하며 고통에 몸부림쳤을까...

<여자 정혜>란 영화 속 주인공은 어릴 적 친척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 후 그 기억은 정혜를 어둠 속에 옭아매며 틈나는 대로 그녀를 괴롭힌다. 원만한 연애나 결혼생활조차 제대로 유지할 수 없었던 그녀는 자신을 범했던 친척을 죽이기 위해 칼을 준비하지만 결국 찌르지 못한 채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만다. 불편한 내용이지만 성폭행 피해자가 자기 파괴적인 감정을 보일 정도로 내면의 모습을 잘 나타내 특히 기억에 남았던 영화였는데 이브 엔슬러의 <아버지의 사과 편지> 또한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당했던 성폭행을 고발하는 내용을 독특하게도 딸이 아버지의 입장에서 편지를 쓰듯 써 내려간 글이라 기억에 강하게 남게 될 것 같다.

가장 보호받고 사랑받아 마땅하며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집에서 이루어진 고통의 낙인은 어린 이브 엔슬러를 옥죄었고 사랑스러운 딸아이를 향한 감정을 이성의 그것과 혼동해버린 아버지는 그 어떤 것으로도 용서받을 수없이 타락해버린 소아성애자일 뿐이다. 몇 년 동안 이어지던 그런 관계는 아버지의 행동으로 문을 닫아버린 이브가 자신의 방식대로 파괴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신에 대한 관심을 거두게 하는 시발점이 되었지만 태어나자마자 최고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대상에서 한순간 골칫덩이로 추락시켜버린 아버지의 태도는 가족에게도 그대로 전이되어 이브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존재가 돼버린다.

자기애에 푹 빠져있어 젊은 날을 보내고 느지막이 결혼했던 이브의 아버지는 어린 딸 이브에게 남다른 감정을 느끼게 되었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이브를 고통으로 몰아넣지만 애정을 한순간에 경멸로 담아 또 다른 고통에 몰아넣음으로써 딸에게 성폭행을 가하는 친부의 모범답안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런 기억들을 이브는 오래전 죽어버린 아버지를 림보에서 불러들여 모두 불태워 잊어버리고 싶었던 기억을 소환해 자신이 아버지가 되어 딸인 자신에게 글을 쓰는 형식으로 이 책을 완성시킨다.

그리고 글을 읽는 내내 아버지의 말 같지도 않은 변명과 계속해서 드러나는 실체에 가슴이 떨려 숨조차 쉴 수 없는 상태가 돼버리고 만다. 이런 유의 소설을 읽을 때도 분노는 일지만 어차피 소설보다 현실이 더 막장이니까 그 강도가 크지 않았던데 비해 이 책은 작가가 겪었던 일을 아버지가 딸에게 고하는 고해성사식으로 풀어내서인지 읽는다는 게 고통 그 자체로 다가온다. 심장이 약하거나 평소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화병에 걸리지도 모르겠다. 독자가 이 정도이니 당사자는 어떠했을까.....

부모가 되면 아이가 자신이 잘못한 일을 변명할 때 상대방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이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지 당연하듯 교육하지만 정작 부모가 아이에게 잘못한 일을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일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진정한 사과를 받았다면 이브 엔슬러는 조금 더 자유로웠을까? 이런 질문조차 답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제발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고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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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환자
재스퍼 드윗 지음, 서은원 옮김 / 시월이일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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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이일 / 그 환자 / 재스퍼 드윗 지음

명망 있는 의대를 졸업해 레지던트 수련까지 마친 파커는 약혼녀가 있는 곳과 가까운 병원을 알아보던 중 주립 정신병원에 지원하게 된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어릴 적 망상형 조현병을 앓았던 엄마가 수용돼 있던 정신병원의 추악한 실체를 경험한 바 있기에 파커는 오히려 열악한 환경을 발판 삼아 의학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기에 선배와 지도 교수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주립 정신병원에의 근무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 30년 동안 장기 입원 중인 환자 조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그에게 흥미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무기력한 파커의 직속상관 브루스는 파커가 조의 실체를 궁금해하는 것에 적대적이기까지 하였고 실제로 조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의료진은 어릴 적부터 조를 봐왔던 간호사 네시 외엔 출입이 허가되지 않는 상황이라 파커는 조의 진료기록을 뒤져보기 시작하는데.....

6살 야경증으로 첫 진료를 시작했던 조는 밤마다 털이 많이 달리고 거대한 괴물이 나타나 밤새 잠을 재우지 않고 괴롭힌다고 호소하였지만 당시 병원장이었던 토머스는 아이들이 흔히 겪는 망상이라 생각하여 자신의 힘으로 괴물을 해치울 수 있을 것이라 조언한다. 그렇게 진료를 마치고 돌아간 조는 이튿날 증상이 더욱 악화되어 병원을 다시 찾게 되었고 그 후 장기간 입원이 시작되며 그와 같이 병실을 사용했던 환자들과 심지어 그를 치료했던 의사나 간호조무사가 자살하거나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자 엄격한 통제하에 격리된다.

그리고 파커가 병원에 근무를 시작하게 될 즘엔 조란 인물은 의료진들이 다가가기 극도로 꺼려 하는 인물이 되었고 정확한 병명이 밝혀지지 않은 그의 증상에 매력을 느낀 파커는 병원장인 로즈의 허락을 맡아 조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된 조와의 첫 대면은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조의 행동에 파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기이한 행동이 적혀있던 진료기록과 눈앞에 마주한 조의 모습에서 파커는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 환자>는 주립 정신병원에 장기입원한 그 환자인 '조'에게 흥미를 느낀 파커가 그동안 아무도 밝혀내지 못했던 조의 병명을 관찰하고 치료법을 찾으려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딱히 뭐라고 판단할 수 없는 그의 증상은 양들의 침묵에 등장하는 렉터 박사의 지능적인 모습과 엑소시스트의 공포스러운 모습을 한꺼번에 느끼게 되는데 그래서 소설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 달려갈 수밖에 없는 소설이다.

파커만큼이나 호기심 가득한 상태로 설마 내가 짐작하는 결말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더하며 후반부에 생각지도 못한 관점과 아리송한 결말을 안겨주며 조금은 독특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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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 - 영웅들의 섬
신도 준조 지음, 이규원 옮김 / 양철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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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북 / 보물섬 : 영웅들의 섬 / 신도 준조 장편소설

모험을 통해 성장해나가는 푸릇한 청춘 소설일 거라는 예상을 보기 좋게 피해나가는 신도 준조의 <보물섬 : 영웅들의 섬>은 제목만 보고 예상했던 이미지와 너무도 달랐기에 시작부터 꽤나 충격적이었지만 소설에 나타난 일들이 소설 속의 일들만은 아니란 생각에 소설을 덮고 더욱 현타를 느끼게 되는 소설이다.

'요시다 슈이치' 소설의 <분노>가 영화화되며 눈부신 에메랄드 빛 바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곳이 오키나와이다.

일본에 속해있지만 열도와 멀리 떨어진 지리적 특성 때문에 홋카이도처럼 일본열도에 속하지 않고 배척당했던 역사를 지닌 곳이 바로 오키나와이며 무역 요충지로서 중요한 곳이었지만 열도로부터 끊임없는 견제와 조공의 대상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말, 미군의 군사 지배에 들어가며 대규모 군사시설이 들어서는 등 오키나와 주민들의 핍박은 계속 이어졌고 이것은 영화 속 미성년자로 등장한 여주인공이 미군에 의해 성폭행당하는 장면을 통해 오키나와 주민들의 불편한 현주소를 고발하는 내용으로 비쳐 영화의 본질과는 다르게 꽤 착잡하게 다가왔었다. 아마도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 수많은 모습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존재했었기에 더욱 감정이입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보물섬>에 등장하는 내용들이 이런 것들이기에 약자의 입장에서 더 화가 나고 마음이 아프게 다가왔던 것 같다.

강제로 삶의 터전을 비집고 들어온 미군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는 센카아기야 무리. 그중에서도 최고의 전과를 자랑하는 용감한 영웅 온짱,

센카아기야 무리에게 존경의 대상이었던 온짱은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며 미군을 물건을 훔쳤고 사건이 있었던 그날도 여느 때처럼 미군에 숨어들었던 온짱은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그날 밤 온짱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온짱으로 추정되는 시체조차 발견되지 않아 온짱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를 찾는 세 친구의 노력은 계속 이어진다.

호기롭게 시작했던 아이들의 모험담은 점차 진실에 다가갈수록 국가가 얼마나 잔인하고 폭력적인 모습으로 돌변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보호받아 마땅할 권리가 처절하게 짓밟히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듯한 생생함으로 다가오는데 비슷한 환경에 비슷한 일들이 있었던 우리의 역사와 오버랩되어 더욱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에게는 이국적인 배경으로 휴양지의 느낌이 강한 오키나와에 슬픈 역사와 사연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제주 4.3 다크투어를 체험하며 쌍둥이 같은 아픔을 간직한 오키나와의 다크투어도 가보고 싶은 생각이 컸던지라 신도 준조의 <보물섬>은 다른 소설과 달리 더 아프게 다가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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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일간의 남미 일주
최민석 지음 / 해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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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냄 / 40일간의 남미 일주 / 최민석 에세이

죽도록 공부만 해서 대학에 가니 이젠 죽도록 스펙을 쌓아야 하는 젊음 앞에 좋은 직장만 들어가자 다짐한다.

그렇게 입에 발린 자소서를 들이밀며 수차례의 면접 끝에 드디어 사회로의 첫발을 내딛는 감격적인 순간도 잠시, 세상은 너무도 살벌하고 외롭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긴장의 나날들이 이어지며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덧 내 밑으로 바짝 긴장한 신입이 생기기 시작해 남다른 감회를 느끼는 것도 잠시 왠지 거대한 미로 속에 갇혀있는 듯한 혼란에 휩싸이며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어 사표를 내던지고 세계 일주에 나선다!

지금껏 내가 접했던 수많은 에세이의 시작이 이러했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년을 여행 에세이를 읽어젖히다 보니 사람은 다른데 내용은 비슷해서 장소와 지은이가 마구잡이로 겹쳐 보이는 현상에 한동안 여행 에세이를 펼쳐보지 않았더랬다. 뭔가 식상해졌다고나 할까. 그래서 <40일간의 남미 일주>도 늘 봐왔던, 너무도 익숙한 구도의 여행 에세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게 있었다.

보통 일반적인 웃음 코드에서 빵 터지지 않고 두 타이밍이나 세 타이밍 뒤에 웃음보가 터져 지인들이 입을 모아 당최 나의 웃음 코드를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내두르는데 최민석 작가의 입담은 바로 그런 나의 웃음 코드와 딱 맞는다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읽었던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이란 책에서 이미 충분히 그것을 경험한바, 예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나는 이 책에 푹 빠져들었다.

 

멕시코, 콜롬비아,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을 40일간 여행하며 매일 여행 일지를 기록한 이 에세이는 그간 너무 앞만 보며 달려왔던 나에게 휴식을 주고 싶다는 짙게 배인 감성보단 한번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작가의 말재주에 끊임없이 농락당하게 되는 에세이라고 말하고 싶다.

보통 직장인처럼 살기 위해 그보다 덜 자고 더 많이 글을 쓰며 전업작가 10년 차를 버텨낸 작가의 피, 땀, 눈물은 첫날부터 보기 좋게 호구가 되어 여행길에 오른 여정을 보여준다. 호구 짓도 한두 번 당하면 습관이 된다기보다 먼 타향까지 와서 이렇게 바보짓을 한다는 생각에 잠 못 이룰 만큼 화가 날법도 한데 작가는 역시 베테랑 여행자답게 최대한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노력한다. 차마 그 긍정의 의미가 성직자의 그것처럼 숭고하거나 기품 있진 않지만 가장 현실적이기에 몇 문장 되지 않는 글에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딜 가나 스피커 속에 잠겨 있는 듯 쾅쾅 울려대는 음악과 주문하면 최소 30분 이상 걸리는 느림의 미학은 모든 것을 빨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갇혀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한국인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했고 거스름돈을 덜 주는 다른 나라와 달리 거스름돈을 더 얹어주면서도 정직하게 되돌려주면 그마저도 시크한 답례를 하는 그들의 모습은 은근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총으로 중무장한 군인의 모습은 우리에게는 낯설게 다가오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치안이 좋은 거라며 안심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럼에도 여유 있고 느긋하며 잘 웃고 순수하기까지 한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멋들어지게 화려하고 세련된 이미지는 아니지만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인상이 여행지를 좌우하는 경우가 크기에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겼을 남미 여행에서 교통 불편하고 물가도 제각각이며 시차가 안 맞아 좀비처럼 지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다시 가고 싶어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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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아이 백천수 씨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0
손서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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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 / 착한 아이 백천수 씨 / 손서은 장편소설

착한 아이 백천수 씨는 성공한 여행사를 꾸려나가는 미숙 씨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다.

가진 것 없이 배낭 하나로 시작했던 여행이 경험이 되어 혼자의 힘으로 여행사를 일으킨 그녀는 타인의 눈엔 성공한 여성, 쿨한 엄마의 이미지로 비치지만 아들에게 크게 느껴질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많은 시간을 고민으로 보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뭐든 진취적이고 활동적인 자신과 달리 소극적이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그다지 좋지 못한 아들 백천수의 존재는 때때로 아쉽게 다가왔고 그런 아쉬움을 절묘하게 파고드는 아프리카 체험 메일에 미숙은 천수를 아프리카 봉사 체험에 보내게 된다.

늘 부족한 것이 많은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천수는 엄마의 말에 전적으로 의지해 살고 있는 고등학생이다. 아이들은 그런 천수를 마마보이라며 놀리기도 하지만 천수는 어릴 때부터 듣고 싶지 않은 말을 걸러내는 일에 달관했기에 자신에게 쏟아지는 혐오 발언에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다. 다소 답답해 보일 만큼 느리긴 하지만 그만큼 신중함도 가지고 있지만 타인의 눈엔 그저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느림보 아이로 비칠 뿐이다.

해외 봉사단과 천수의 엄마 미숙 씨가 함께 조인하는 아프리카 봉사 체험 프로그램에 뽑힌 천수는 자신과 함께 뽑힌 승아와 함께 아프리카로 향하게 되고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경험들을 하게 된다.

<착한 아이 백천수 씨>는 나이로비 근교의 한 펍에서 만취한 한국인 10대 두 명이 봉사활동 중 마사이 빌리지에서 어린이를 숨지게 한 후 차를 훔쳐 달아나던 중 경찰에게 붙잡히며 언론에 알려지게 되었고 삽시간에 해외로 퍼지면서 국제사회로의 파장이 예상된다는 보도로 시작된다. 착한 아이 백천수 씨라는 제목만 보고 펼친다면 도입 부분부터 다소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는 뉴스 보도와 맞닥뜨리게 되어 과연 이들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인지 더욱 궁금해진다.

그리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아이들의 창의성이나 개인적 발달을 무시한 교육 현실과 아프리카 현지인들을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관점이 아닌, 철저히 자본주의에 빠진 채 그들을 나의 관점에서 재단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배고픔에 여행자들에게 사탕을 구걸하는 아이들과 그들의 동의 없이 고달픈 현지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배려 없음, 영어와 봉사가 결합되었으나 무엇이 봉사인지 정작 의미를 알 수 없는 캠프에서 영어를 하나도 구사하지 못해 말하지 못하는 승아를 과학영재라고 달리 해석하는 천수의 생각 등은 재단화된 교육과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웃프게 다가온다.

그 외에도 성 정체성 때문에 혼란스러워했던 백해일 이야기와 어린아이만 보면 정신줄을 놓는 마거릿 여사 등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어디로 튈지 모를 정도로 이렇게 다양할 수도 있구나 싶은 사연들은 분명 착하다의 다양한 이미지와 이어져 있을 것이다. 해석하기에 따라 등장인물들의 가지각색 성향들이 어떤 식으로 착함과 연결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이 이 소설의 최고 묘미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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