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수프 - 삶이, 우리를 향해 돌을 던질 때
아잔 브라흐마.궈쥔 선사 지음, 남명성 옮김, 각산 감수 / 해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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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냄 / 개구리 수프 - 삶이, 우리를 향해 돌을 던질 때 / 아잔 브라흐마, 궈쥔 선사

중, 고등학교 때 한적한 산사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동안 했었더랬다.

누가 듣는다면 '이 무슨!'이라며 경악할 표정이 눈에 선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지만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올라가는 시점에 나는 비구니에 대해 나름 꽤 진지하게 고민했었고 승려들이 나오는 다큐가 있으면 관심 있게 봤었더랬다.

하지만 진지했지만 어찌 보면 철이 없었던 나의 이런 고민은 승려들의 수행이 얼마나 힘든지 눈앞에서 목격한 순간 터무니없을 정도로 쉽게 사라져버렸고 비록 그때의 바람대로 비구니가 되지는 못했지만 절에 가면 항상 나도 모르게 비구니들이 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기억들과 생각들은 <개구리 수프>를 읽으며 되살아나 삶에 대한 성찰과 철없던 옛 시절도 함께 떠올라 아련한 느낌을 갖게 했다.

 

 

 

<개구리 수프>는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이론물리학으로 학위를 따고 아이들을 가르쳤던 '아잔 브라흐마'가 학자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태국으로 건너가 승려로 거듭나는 이야기와 싱가포르에서 태어나 선불교에서 명성이 높은 성옌 스님의 젊은 후계자 가운데 한 사람인 '궈쥔 선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먼저 등장하는 '아잔 브라흐마'의 이야기는 아시아인도 아닌 서양인이 불교에 입문해 비를 막아줄 안락한 건물도 아닌 태국의 숲속에서 새벽 6시에 시작되는 명상에 수십 마리의 모기에 물려가면서도 버티고 아무것도 먹을 게 없는 오지에서 주민들이 조금씩 나눠주는 쌀과 개구리 수프로 끼니를 해결하며 수양을 하게 되었는지, 무엇이 그를 안락하고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 선생이란 직업을 내려놓고 승려의 길로 들어서게 했는지 궁금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아잔 브라흐마'나 '궈쥔 선사'의 이야기를 통해 나와 대립을 세우는 상대에게 무조건 굽히거나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지 않고 비록 나의 의견이 관철되지는 못했지만 상대방의 방식대로 실행함으로써 내가 느끼고 나아갈 수행길에 대한 긍정적 생각은 일반인인 내가 느끼기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런 점은 배우고 싶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불편하고 고생스러운, 어찌 보면 거지와 다를 바 없는 수행의 길을 통해 타인에게 베푸는 친절이 자신의 수행을 얼마나 더 충만하고 행복하게 만드는지, 어떤 일에서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불명예스러운 손가락질을 받음에도 그것을 하나의 시련으로 여기고 더욱 정진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과 기대감으로 인해 실망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들에 대한 찰진 대응법들은 목소리가 커야 이기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수긍하지 못해 피어나는 비열한 감정들이 팽배한 요즘 시대에 멈춰 서서 생각해보게 되는 이야기들일 것이다.

누구든 꽃길만 깔린 평탄한 삶을 살진 못한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억울한 일을 겪게 되는가 하면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기도 하고 매번 새롭게 시작되는 도전 앞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는 일들도 다반사다. 세상에 나만 안되는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나고 주위 사람들이 모두 누리는 행복에서 나만 소외된 것처럼 여겨져 살아갈 의지가 수시로 꺾일 때도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태도에 따라 인생의 가름이 확연해지는 것을 많이 보았기에 책을 읽으며 두 승려의 대처법이 꽤 인상 깊게 다가왔던 것 같다.

알면서도 좁은 가슴에 담아놓고 끙끙거리며 온갖 힘든 감정을 끌어안기보다 이들의 일화를 통해 삶을 더 유연하고 행복하게 대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흐뭇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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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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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신 / 침묵 박물관 / 오가와 요코 장편소설

옷 몇 벌과 필기도구 몇 개, 면도기 세트, 형이 준 현미경과 어머니의 유품인 '안네의 일기'가 들어있는 작은 여행 가방 하나만 챙겨들고 의뢰인이 사는 마을에 도착한 박물관 기사는 의뢰인이 사는 거대한 저택의 규모에 압도된다. 하지만 실제 살고 있는 사람은 의뢰인 노파와 손녀처럼 보이는 양녀, 저택일을 봐주는 정원사와 가정부가 다여서 저택은 구석구석 관리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옛 명성과 흉물스러운 모습을 동시에 지닌 묘한 모습을 안고 있다.

오래되고 거대하지만 구석구석 낡아빠진 저택의 모습만큼 기괴하고 괴팍한 성격의 노파와는 첫 만남부터 쉽지 않았지만 박물관 기사는 그렇게 저택에 채용되어 노파가 평생 모아온 마을 사람들의 유품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노파가 십 대 시절 정원사의 증조부가 쓰던 전지가위를 시작으로 모으게 된 유품들은 노파의 나이만큼 상당한 양이었고 유품에 깃든 주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사는 분류하고 보존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노파가 모은 유품들의 사연을 구술하면 기사가 받아 적고 소녀가 정서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도중 마을 의사가 죽는 일이 발생하고 몸을 움직이기 힘든 노파 대신 기사가 의사의 집에 방문해 그의 일생과 연관된 유품을 가져오기에 이른다.

죽은 이들의 유품을 정리하고 보존하여 방치된 마구간에 유품들을 전시해 박물관을 만들려는 노파의 바람은 느리지만 순조롭게 진행되는듯했으나 폭발물 사건이 일어나 소녀가 다치는가 하면 50년 전에 일어났던 살인사건과 유사한 살인사건이 연이어 마을에 발생하면서 죽은 이들의 유품을 훔쳐 정리하는 일을 했던 기사가 살인 용의자 선상에 오르게 된다.

조용한 마을에 폭탄이 터져 사람들이 다치는 일이 발생하고 50년 전 매춘부의 유두가 잘린 끔찍한 살인사건이 최근 연달아 발생하는 와중에도 저택 사람들은 크게 동요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도 유품 정리는 느리지만 묵묵히 진행되어 나갔고 마구간 개축공사도 끝나 마을 사람들의 유품만을 전시해놓는 침묵 박물관의 개관이 멀지 않은 어느 날, 기사는 저택 사람들의 기묘함의 정체를 알게 되는데.....

"하지만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박물관을.....?"

"무엇 때문이냐고? 모든 박물관에 교훈적인 존재 이유가 필요해?

물건을 보존하고 싶은 건 인간의 가장 소박한 감정 중 하나야.

고대이집트 시대부터 사람들은 신전에 전리품을 늘어놓고 기쁨을 만끽했지."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어.

내가 늙으니까 세상도 늙은 것처럼 느껴지니 참 이상하지.

사람들은 계속 죽어.

하지만 그때마다 친구 흉내를 내면서 장례식장에 가거나 한밤중에 집에

몰래 들어가는 것도 이제 이 부실한 다리로는 힘들어.

앞으로 유품 수집은 자네 일이야.

박물관 건물은 후원의 마구간을 개조해서 쓰면 돼.

공사는 정원사가 맡아서 해줄 거야.

이 애를 조수로 쓰도록 해.

명심해, 우리의 박물관은 늙은 세상의 안식처가 될 거야."

아주 오래전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통해 알게 된 작가 '오가와 요코',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이라 잔잔한 내용의 소설이란 느낌만 강하게 남아 있는데 <침묵 박물관>을 읽으며 같은 선상의 잔잔함이 느껴져 그때의 느낌도 다시금 되살아났던 것 같다.

처음 방문하게 된 작은 마을의 거대한 저택, 괴팍한 성격의 저택 노파와 그런대로 합을 맞추며 그녀의 소망이 담긴 침묵 박물관에 놓일 유품들을 정리하던 기사에게 이야기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침묵 전도사의 수행과 폭발 사건, 50년 만에 일어나기 시작한 젊은 여성의 살인사건은 변함없는 이들의 일상에 작은 파동을 던져주지만 정작 그런 와중에도 글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최대한 절제되어 있어 독자로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젊은 여성의 유두만 잘린 채 발견된 살인사건이 연속해서 등장하지만 그럼에서 오는 두려움과 공포는 느낄 수 없다. 경찰들이 기사에게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밤 무엇을 했는지 몇 번 묻는 게 다인 이 상황에서 기묘함과 위화감만을 잔뜩 느끼며 어딘가에 있을, 이제 곧 밝혀질 살인자를 알기 위해 후반부에 몰입했던 것 같지만 결국 왜 그런 살인이 벌어졌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채로 소설은 끝나고 만다.

아, 이 감정을 도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책을 덮었다가 마지막 부분을 다시 읽었다가하면서 이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에 빠져들게 하는 <침묵 박물관>

한참이나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다 띠지에 쓰여있던 글귀에 저절로 무릎을 치게 되는 '요가와 요코 그로테스크 미학의 정점'이란 글이 이 감정을 정리해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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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경찰 - 포도청을 통해 바라본 조선인의 삶
허남오 지음 / 가람기획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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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기획 / 조선경찰 / 허남오 지음

긴박한 상황에서 포도 대장은 죄인을 향해 이 한마디를 던진다.

"죄인 OOO는 오라를 받아라!"

무시무시해 보이는 표정과는 다르게 사극 속 포도 대장의 대사는 너무도 틀에 박혀 피식 웃음까지 자아낸다.

그 웃음만큼이나 부정부패로 인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포도청이라는 이미지는 사실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불러온다.

1920년에야 제복을 입고 칼을 찬 근대식 경찰인 파리 경찰청과 런던 경찰청의 역사보다 훨씬 이전 조선의 포도청은 1500년대에 설치되었다. 왕권을 떠받치는 임무와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이중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경찰의 모습은 현재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들의 노고가 빛을 발하지 못할 소수 경찰의 비리 때문에 경찰들이 싸잡아 욕을 먹고 백성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모습은 오늘날의 그것과도 다르지 않다.

<조선경찰>을 읽다 보면 몇백 년 전 출현한 경찰의 이미지가 오늘날 경찰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조선시대와 현재의 경찰을 비교함은 물론 왕권 강화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경찰의 제도적 실행과 그와 함께 제도적 허점까지 함께 엿볼 수 있어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다.

포도청은 왕권 강화를 위해 조선 중기 이후 상설된 기구로서 절대주의 군주 체제인 조선시대 최고 중앙행정기구인 의정부와 그 아래 국가행정을 분장했던 병조, 형조 등 6조를 두었고 왕명을 시달하는 승정원, 왕명에 따른 재판을 수행하는 의금부, 외교문서와 사조 등을 논하는 홍문관, 관리들을 감찰하고 풍속경찰의 일을 수행하는 사헌부와 왕명에 대해 논의하는 사간원, 그 외 한성부로 나뉜다.

의금부는 국청이나 양반이 주축이 되고 형조는 병조와 함께 상민재판소로 기능하였는데 조선시대 기구들의 정확한 역할분담에 대해 자세히 짚고 넘어갈 수 있어 기본적인 지식을 이해할 수 있어 꽤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외 소방관서인 수성금화사나 삼림경찰인 4산참군, 물가단속 기관인 평시서, 드라마 허균을 봤다면 낯익게 다가올 조선의 보건소 활인서와 지방행정기관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다.

그와 함께 범죄를 단절하기 위해 시행되었던 5가작통법을 통해 범죄의 신고와 연대 처벌을 다룬 것을 볼 수 있었고 포도청의 역할인 절도나 강도, 살인 등의 범죄에 대한 처벌 법을 상세히 다룬 내용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물건을 훔치거나 양반에게 욕이나 위해를 가했을 때 처해지는 형벌의 수위도 함께 볼 수 있는데 장 60대에서 100대라는 형벌은 사극에서 자주 보았던 만큼 어마 무시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조선경찰>은 조선시대 포도청의 역할과 형벌에 대한 수위, 왕권 강화를 위해 탄생한 기구로서 기능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독자로서는 포도청이란 기구에 한정된 지식에 그치지 않고 포도청을 아우르는 조선시대 백성들의 생활상이나 왕권의 모습도 함께 엿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로움을 주고 있다. 조선 3대 의적이라고 불리는 홍길동과 임꺽정, 장길산의 이야기도 등장하는데 이미 사극의 주제로도 등장한 바 있어 낯설지 않은 이들의 이름은 그들이 활약했던 시대와 전해진 이야기들도 함께 등장해 재미를 더하고 있다.

이렇듯 조선시대 포도청의 역할은 구한말로 넘어오며 신경찰체제를 맞이하게 되는데 조선시대와 근현대사를 통해 경찰의 모습을 훑어볼 수 있다. 경찰이라는 직업의 탄생과 현재까지 이어내려온 직업에 대해 방대한 사료를 수집했을 작가의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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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척 무례했던 너에게 안녕 - 칠 건 치고 둘 건 두는 본격 관계 손절 에세이
솜숨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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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지식하우스 / 솔직한 척 무례했던 너에게 안녕 / 솜숨씀 짓고 그림

호불호가 강하고 나와 맞지 않는 말에 애써 공감하는 척하거나 좋은 말 대잔치를 해줄 만큼 아량이 넓은 성격이 아닌지라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인간관계가 무척이나 힘이 들었더랬다. 어느덧 불혹이란 나이를 넘어선 지금도 인간관계가 여전히 쉽지 않으며 나이에 비례하여 대범해지기는커녕 아니다 싶으면 전보다 더 과감하게 끊어내버리게 돼버렸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적을 두지 않는 인간관계를 추구하며 나와 맞지 않는 상대일지라도 대놓고 적대감을 표현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일을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므로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인간관계를 단박에 끊어내는 데 있어 과감해지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는 나 또한 그랬었고 인간관계를 단박에 끊어내는 일이 죄악처럼 다가와 차마 그럴 수 없었더랬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싫은 사람은 뭘 해도 친해질 수 없음을 알게 되었고 누군가에게 이유도 알 수 없는 무조건적인 미움을 받는다고 해서 더 잘해줄 필요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저 싫은 감정이란 다시 되돌릴 수도, 다시 시작할 수도 없음을 어느샌가 알게 되었고 그래서 아니다 싶은 관계를 손절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간관계 폭이 좁아지게 되었지만 솔직히 고립되는 느낌이라든가 외롭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오히려 원하지도 않는데 휩쓸려 다니지 않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고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해야 될 것들을 차분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많아져 나 자신을 더 많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솔직한 척 무례했던 너에게 안녕>은 쳐낼 건 쳐내고 곁에 둘건 놔두는 본격 관계 손절 에세이다.

이유도 없는 무례함과 예의 없음, 라떼에 젖어 현실감각을 자각한 꼰대들의 복붙 언어들, 필요에 의해서만 연락하며 친근한 척 아무렇지도 않게 부탁하는 그들의 무개념, 상사의 스트레스를 아랫사람이라는 이유로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야 했던 순간들....

세상엔 이해할 수도 없고 친해지기란 남북이 통일하는 일만큼이나 장담하기 어려운 사이가 존재하지만 분명 같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음을 알기에 누군가가 나를 미워한다는 것은 썩 기분 좋지 않지만 이제는 그런 것쯤은 별거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이 자리 잡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들을 힘들어하고 숨죽이며 울어야 했는지, 지금은 나를 미워하고 떠나갔던 사람들 때문에 자신만을 탓했던 나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오늘도 기계처럼 만신창이 같은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출근길에 올랐을 그대들, 사는 게 재미없고 팀장이나 사수, 아랫사람들 때문에 회사 생활이 빡칠 정도로 힘들다면 <솔직한 척 무례했던 너에게 안녕>을 읽으며 쓰린 속을 달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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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양의 마음
설재인 지음 / 시공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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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 함께 놀러 갔던 계곡에서 물에 빠져 죽을뻔했던 유주는 선량한 아저씨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그렇게 훈훈한 이야기로 마무리될뻔했던 유주의 일화는 불행하게도 유주를 구해준 아저씨가 2주 후 돌연사하면서 유주의 가족들은 죄책감의 덫에 걸려들게 된다. 따지고 보면 유주를 구해준 일이 돌연사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명확하게 밝혀진 건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돌연사가 유주를 계곡에서 구해준 것과 상관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시작했고 당시 남동생을 임신하고 있던 엄마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과 그 시선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던 아버지로 인해 예정보다 이른 출산을 시작했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남동생이 3일 만에 죽게 되면서 유주는 가족으로부터 곱지 못한 시선을 받게 된다.

어린 시절 엄마의 손을 잡고 버스터미널에 있던 상미는 건너편 아이가 먹는 아이스크림에 넋을 잃게 되었고 엄마가 버스표를 끊기 위해 잠깐 손을 놓은 사이 아이스크림을 사준다는 아줌마의 손에 이끌려 납치될 뻔한다. 다행히 낯선 여인과 어디론가 향하게 될 버스를 타기 전 상미는 발견되었으나 꼬재재한 몰골의 아이가 자신을 따라왔다고 항변하는 여자에게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못한 채 먹을 것만 보면 환장하는 아이란 딱지가 붙은 채 성장한다. 평소 사이가 좋다고 말할 수 없는 부모님은 돈에 대해서만큼은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했고 그로 인해 상미는 친구들이 몰려가는 게임방이나 노래방에 갈 수 없었고 친구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핸드폰도 없어 친구들 사이에서 제외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부모로부터 '먹을 것만 보면 환장하는 년', '동생 잡아먹은 년'이란 모진 소리를 들어가며 왜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캄캄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던 중 여름방학이 시작됐고 어차피 집에 있어봐야 부모님에게 좋은 소릴 듣지 못할게 뻔한 유주와 에어컨 없는 집에서 찜통더위를 이겨낼 수 없었던 상미는 책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매일매일 도서관으로 향하게 된다.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유주와 상미는 2미터 간격으로 앉게 되었고 그런 두 아이에게 삼십 대 중반의 진영이 나타나 점심도 먹지 않고 하루 종일 곯고 있는 두 아이에게 함께 밥을 먹자는 말을 건네면서 세 사람의 인연은 시작된다.

낯선 타인에게 늘 적대적인 두 아이, 왜 매일 밥을 굶느냐고 아무렇지 않게 물어오는 진영의 물음과 자기 혼자 밥 먹기 싫으니 함께 먹자는 제의에 유주는 선뜻 따라나섰지만 상미는 그 아무렇지 않은 물음에 기분이 상해 둘의 동행에 따라나서지 않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도서관 휴관일임에도 딱히 갈 곳이 없어 도서관으로 향했던 상미는 자신처럼 도서관을 찾은 진영을 만나게 되고 그동안 점심을 사주겠노라는 제의에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던 상미는 그날을 기점으로 진영의 호의를 받아들여 유주와 상미와 진영은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된다.

집이 있지만 집에 있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 매일같이 도서관으로 향한다는 진영,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방임과 학대를 받는 유주와 상미, 부모에게 받는 학대의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유주와 상미가 부모에게 듣는 언어폭력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화가 치밀어 같은 부모로서 유주와 상미가 받게 될 골 깊은 상처에 마음이 아파왔다. 그리고 유주와 상미처럼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으며 자랐던 진영의 모습을 통해 중학생인 유주와 상미가 받는 고통은 삼십 중반이 넘은 나이에도 회복되지 못하고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힐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십대와 삼십대의 간극을 메꾸지 못하는 그들의 상처를 여실히 말해주고 있어 가슴이 더 아파왔던 것 같다.

이렇게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보담아 줄 수 있었던 이들의 관계는 진영이 유주의 어린 시절과 관계가 있고 이후 어렵게 마음을 열었던 세 여자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언어폭력과 성폭력, 방임이라는 학대가 주제가 되어 한 인간을 얼마나 무기력하고 불행하게 만드는지 아이들의 독백을 통해 바라보게 되는 시선이 내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세 모양의 마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자행될 수많은 학대를 생각하면 그저 마음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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