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체를 줍는 이유 - 자연을 줍는 사람들의 유쾌한 이야기
모리구치 미츠루 지음, 박소연 옮김 / 숲의전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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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전설 / 우리가 사체를 줍는 이유 / 모리구치 미쓰루 글. 그림

평소 법의학과 관련된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기에 '사체'란 단어에 시선이 꽂혔던 <우리가 사체를 줍는 이유>는 어떻게 보면 제목이 꽤 자극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듯하다. 더군다나 책 표지에 '해부할까요?', '끓여 먹을까요?'란 문구는 그 자체만으로도 공포스럽게 다가오기도 하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 사체는 숲속, 학교 인근에 죽어있는 동물의 사체를 살펴보는 생물 학도들의 이야기와 다양한 생물들, 식물들의 특징을 담고 있다.

<우리가 사체를 줍는 이유>를 읽으려는 독자는 일단 누군가의 리뷰를 읽거나 책을 한번 훑어보고 약간의 마음가짐을 한 후에 읽어볼 것을 권한다. 첫 장을 들추자마자 소의 탯줄, 그것도 냄새가 많이 나는 소의 탯줄을 보내온 제자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게 뭐?'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평소 비위가 약하거나 비위가 약한 데다 상상력이 지나치게 풍부한 독자라면 연이어 등장할 이야기에 곤란함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비위라면 약하지 않은 나조차도 상세하게 그려진 두더지나 일본 뒤쥐, 너구리 사체나 너구리 해부 장면이 그려진, 심지어 너구리 사체에서 꺼낸 장기를 들고 웃으며 사진까지 찍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기까지 해서 뭔가 자연에 대한 심오함과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편리함이 생태계를 어떻게 파괴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상상했던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감정을 끌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반인들이 익숙히 끌어올릴 수 있는 감정과 상반되게 이 책을 쓴 저자와 제자들의 사체 탐닉은 정열적이다 못해 오타쿠스러운 면도 느껴지는데 그만큼 죽은 동물의 사체를 통해 더 많은 정보를 도출해내기 위한 그들의 노력엔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다.

숲속에 위치한 학교의 장점이 많은 동물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고 죽은 동물들의 사체를 통해 동물들이 많이 죽는 계절이 의미하는 것과 해부를 통해 즐겨먹는 먹이 등을 알 수 있다. 그런 동물들의 사체는 저자의 세밀한 스케치가 덧붙여져 있어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는데 어찌나 자세히 그렸는지 너무 생생하게 다가와 이따금씩 소름이 돋곤 했다.

수의사나 평소 동물에 관심이 있던 아이라면 동물 사체를 주워와 어떻게 처리하고 벼룩이나 진드기가 있을 때는 어떻게 대처하며 해부를 하기 위해서는 냉동시키거나 며칠씩 푹 끓여야 한다는 것, 그렇게 동물 골격 제작까지, 지금껏 어디서도 접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생생하게 볼 수 있어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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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 사랑의 여러 빛깔, 개정판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바실리 악쇼노프 외 지음, 이문열 엮음, 장경렬 외 옮김 / 무블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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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블 /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 1. 사랑의 여러 빛깔 / 이문열 엮음

세상의 중심으로 이끌며 짜릿한 환희를 맛보게 해주지만 퇴색해져가는 사랑 앞에선 무기력함을 맛보게 되는 '사랑'이란 이름.

상대에 따라,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사랑이란 이름이 모두 같은 빛깔일 수는 없으며 그러하기에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큼 극과 극을 오가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사랑의 여러 빛깔>은 쌀쌀해 스산함마저 느껴지는 이 계절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야기이다.

바실리 악쇼노프, 다니자키 준이치로, 프랑수아 샤토브리앙, 테오도르 슈토름, 안톤 체호프, 윌리엄 포크너, 토머스 하디, 알퐁스 도데, 아르투어 슈니츨러, 스탕달, 오 헨리의 사랑에 관한 11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전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친숙하게 다가오는 작가의 이름과 작품에 벌써부터 가슴이 떨릴 텐데 1996년 초판을 내고 2017년 절판된 후 다시 개정 신판으로 출간되기까지 긴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세계명작은 개정 신판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새로 추가된 소설과 빠진 소설이 있어 오래전 읽은 독자라면 그 추억을 더듬어보기에도 좋을 듯하다.

고전인 만큼 현대의 사랑 이야기와는 달라 가령 요즘 시대라면 핸드폰을 넘겨주며 전화번호를 찍어달라던가 상대방 직장에 전화를 걸어 자리에 있는지 등을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들을 무시한 채 승무원에게 반해 한 달간의 휴가를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주인공의 사랑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정의 내리기도 애매할 만큼 웃픈 이야기로 다가왔다. 그런가 하면 주종 관계와 사제지간이라는 관계에 자존심이 걸려 있었던 그 시절에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그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던 것인지 아리송하게 다가왔던 <슌킨 이야기>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아리고 슬프게 다가왔다.

태어나 사랑 한 번도 못해보고 죽는 인간은 없을 정도로 '사랑'은 어쩌면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일지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경험과 사회적 인식으로 바라본 '사랑'에 대한 잣대는 어쩌면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란 단어가 마냥 순수하지만도, 마냥 아름답지만도 않으며 사랑 때문에 순탄하게 갈 수 있는 인생길이 꼬이고 꼬여 생각지 않은 커다란 시련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그러하기에 사랑이 아닐까 싶다.

사랑에 빠진 나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며 타인의 사랑에 무어라 이견을 내는 것 또한 별 의미 없는 것은 아닐까.

그저 사랑에 빠진 이들을 지켜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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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 - 광화문글판 30년 기념집, 개정증보판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 엮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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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 /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 엮음

정신없이 바쁜 일상,

수첩에 빼곡하게 쓰인 일정들,

출근길 그날의 일정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느라,

퇴근길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기 위해,

그렇게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광화문 글판을 못 보고 지나쳤거나 눈으로는 글자를 따라가고 있지만 일정에 쫓겨 미처 감동을 느끼지 못했을 경험이 많았을 것이다.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는 교보생명에 걸린 광화문글판을 모은 것으로 시민들이 위안을 받을 수 있도록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언론인으로 구성된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에서 각자 선정한 글들과 교보생명 홈페이지에 시민이 응모한 글귀를 종합 심의해 낙점한다.

한눈에 보여야 하는 특성 때문에 큰 글자의 25자 안팎으로 구성된 글을 싣는데 글자 수의 제한으로 주로 시가 많이 실리며 이 문장들은 시민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 감동을 전해준다.

이런 글들은 회사에 대한 고민이나 가족에 대한 고민, 진로에 대한 고민 등 불투명한 미래의 고민으로 어깨가 무거웠던 사람에게는 다시금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삭막한 도시생활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주기도 할 것이다. 보고도 느끼지 못하는 여유 없음은 안타깝지만 문장을 보고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면 아직은 사람으로서의 온기를 가지고 있다는 뜻일 테니 교보생명의 이러한 광화문글판에 대한 강한 애정은 오랫동안 구청의 '불법 옥외광고'의 규제에도 흔들리지 않고 결국은 공익성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무심코 지나다 올려다본 글귀에 힘든 마음을 털어버리고 다시금 일어서려는 용기를 북돋아주는 글귀들, 나만 처절하게 힘든 게 아니니 함께 힘든 길을 걸어가자고 다독여주는듯한 글귀들, 잊고 지냈던 소중한 사람들을, 소홀히 대했던 가족들에게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글 등 짧은 문장에서 마음을 요동치게 만드는 강한 힘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인류를 구원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하고 거창한 것일 거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나눠 4차례 광화문글판에 올려지는 문장들을 도안과 함께 그동안의 역사와 익히 알지 못했던 시인들의 글귀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어 이 가을 사람들에게 보석처럼 다가오는 책이 되어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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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얼굴이 있다면 너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
고민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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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지식하우스 / 사랑에 얼굴이 있다면 너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 / 고민정 에세이

온통 초록으로 뒤덮여있던 나무들이 노란색으로 빨간색으로 물들어 왠지 센티해지는 계절.

무심히 걷던 길에서 흘러나오던 노래에 가슴 시큰했던 순간.

함께 들으며 가슴 설레어 밤새 잠 못 이루게 만들었던 그 노래는 아픈 이별을 맞고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그 자리에 붙박히게 만드는 강력한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음을, 그때는 절대 상상할 수 없었던 감정들.

<사랑에 얼굴이 있다면 너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는 남. 여가 만나 가슴 설레며 가슴 콩닥이던 시절부터 그 사랑이 전부이며 영원할 거라 믿었던 시간을 지나 이별을 맞이하기까지, 무덤덤해져버린 사랑이란 감정이 변할 수 있음에, 타인들이 맞이하는 이별에 나는 예외라고 믿었던 오만함에, 그는 돌아섰지만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구차함에, 준비도 안된 나에게 먼저 등을 돌려버린 그의 모습을 배신이라 생각하며 여러 날을 울고 분노하며 그럼에도 다시금 돌아와 줬으면 하는 마음과 누군가 만나더라도 나처럼 그를 위해줬던 연인은 만나지 못하기를, 먼저 등을 돌렸지만 헤어진 내내 그 누군가를 만나는 동안 아련하고도 애틋한 마음으로 나를 떠올려주기를....

사랑과 이별, 그 후에 오는 것들은 왜 이리도 세트처럼 붙어 마음을 아프게 할까,

그저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잊히기를, 그를 알기 전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기를, 그게 안된다면 갑자기 5년 후로 점프해 있기를, 어떤 날은 눈뜨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잠들기도 하고 정신병자가 따로 없는 내 모습에 무너진 가슴을 어쩌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는 내 모습이 애처로워 그렇게도 서러웠던 나날들...

사랑과 이별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고민정 작가는 사랑과 이별에 대한 감정을 어찌도 글에 이리 잘 담아냈을까

온 세상을 다 가진듯한 사랑의 감정도, 지금 당장이라도 지구가 멸망해버렸으면 싶은 절망의 감정도 모두 다 너무 잘 담아내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도 가슴에 박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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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들 가랑비메이커 단상집 1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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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과장면들 /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들 / 가랑비메이커 단상집

 

깊어가는 가을만큼이나 깊이 있는 문장들이 종이 위를 적시고

독자는 가슴에 와닿는 구절들에 가슴이 젖어든다.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해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알고 보니 독립서점에서 5년간 스테디셀러에 머물며 독자들 마음을 사로잡은 책이라 한다.

문장의 깊이가 다르다 했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아본 책이구나 싶었다.

일상에 대한 상념들, 폭력적인 사랑과 이별 후에 오는 잔잔함들,

이따금씩 찾아와 잠 못 이루게 만드는 기억들은 누군가에겐 그 자리에 머물며 한발 작도 나오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그럼에도 따뜻하고 고마운 기억을 남기며 괴로웠던 기억을 지우는 강력함으로 다가오기도 할 것이다.

따뜻하고 고마운 기억이 남았다면 부디 행복하라며 상대방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을 테지만

전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상처만을 남겼다면 같은 이별을 겪고도 같은 마음일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랑이란 감정으로 시작했어도 동일하지 않은 사랑의 무게는 각기 다른 기억과 복잡한 감정만을 지닌 채 이별에 다다르며

그것을 추억하는 우리들의 자세 또한 제각각이라 사랑과 이별, 일상에 대한 무료함들은 비슷하지만 조금씩은 다른 감정을 토해낸다.

경험으로 알고 있지만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들이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문장으로 탄생할 때

그것을 마주하는 독자는 묘하게도 위로받거나 공감하거나 차분해진다.

간혹 문장들이 주는 감정을 애써 외면하고 싶어질 수도 있겠지만

한 구절 한 구절을 마주하다 보면 그 또한 녹록지 않았던 글쓴이의 상처가 보이고 나만 힘들어하는 건 아니라는 위안을 받게 된다.

그렇게 위로받고 그렇게 공감하며 그렇게 다시 몸을 일으켜 나아갈 준비를 하게 된다.

글이, 문장이 주는 힘은 그렇게 타인으로 하여금 삶을 재정비할 수 있는 원동력을 주고

깨달음을 주며 허물어져가는 울타리가 견고해질 수 있도록 힘을 준다.

처음 만난 작가지만 또 다른 사유의 깊이가 느껴져 책장 한편에 두고 생각들이 어지러워 잠들지 못하는 밤마다 꺼내 읽고 싶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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