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자 - 오사카 게이키치 미스터리 소설선
오사카 게이키치 지음, 이현욱 외 옮김 / 위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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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배경이 이야기 속에 녹아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하는 고전 미스터리 소설은 반면 예측 가능한 구도이거나 왠지 빨리 끝맺는듯한 느낌에 아쉬움이 남곤 했는데 오사카 게이키치라는 작가의 <침입자>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다른 작가들이 쓴 소설과는 확실히 차별화가 느껴져 오랜만에 만족감을 맛본 소설이다.

<침입자>에는 '침입자'를 포함해 총 여덟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는데 단편마다 무엇 하나 뒤처지는 법 없이 탄탄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데다 그간 고전 추리소설에서는 느껴볼 수 없었던 문장의 섬세함까지 느껴졌으니 1930년대에 쓰였던 소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됨을 느낄 수 있다.

처음 시작하는 단편 '탄굴귀'는 생소한 단어라서 무슨 내용일까 궁금했는데 전쟁 물자를 대기 위해 박차를 가했던 시대적 배경을 미스터리 소설에 그대로 녹여내 남다르게 다가왔던 것 같다. 산소가 부족한 지하를 파내려 가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아도 비 오듯 땀을 흘려야 했던 열악한 환경은 영화 '군함도'의 장면들을 연상시켜 더 생동감 있게 다가왔는데 확실히 '오사카 게이키치'란 작가의 생생한 묘사가 더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어지는 '추운 밤이 걷히고'나 '침입자', '백요', '꼭두각시 재판', '세 명의 미치광이', '긴자 유령', '움직이지 않는 고래 떼' 등 다양한 주제를 미스터리에 접목해 담아냈는데 트릭이라고 등장하는 내용들이 엄청난 기교를 자랑하는 게 아님에도 선입견으로 인해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끌어내고 있어 소설 한편 한 편마다 '이번 살인엔 어떤 트릭이 숨겨져 있을까?'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따라가게 됐던 것 같다.

고전 미스터리 소설을 읽은 기억들이 모두 다 좋았던 것이 아니었기에 <침입자>도 반 정도만 기대를 하며 읽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문장의 구성이 탄탄해서 33살의 젊은 나이에 태평양 전쟁에 징집돼 이동하던 중 병사했다는 그의 이야기가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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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중고상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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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들어도 보증수표처럼 여겨져 읽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만드는 작가가 있다. 나에겐 '미치오 슈스케'도 그런 작가 중 한 명인데 이번 소설은 지금껏 읽었던, 제목마저 다크했던 소설과는 달리 왠지 상큼함이 느껴져 더 궁금해졌던 것 같다.

그다지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같은 학교에 다녔던 가가사기의 권유로 <가사사기 중고상점>을 동업 중인 히구라시는 사 온 물건들을 값나가게 리폼하는 일엔 재능을 발휘하지만 중고 물건을 구매하는 일엔 영 소질이 없다. 그런 히구라시에게 눈탱이를 쳐 제 가격보다 높은 금액을 제시해 물건을 파는 오호지의 주지스님에게 번번이 물건을 사 오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가진 것 없는 두 젊은이의 바람대로 중고상점이 잘되면 좋으련만 비싼 값에 물건을 사서 팔일은 별로 없으니 늘 적자에 허덕이는 데다 구매한 물건들은 팔리지 않고 쌓여 어느새 창고를 점령해버린 상태라 이들의 미래가 불안하기만 한데 재밌게도 가사사기 중고상점의 두 사장인 가사사기와 히구라시는 조급함이나 우울함보다는 나름의 태평함마저 느껴져 상점이 망하지는 않을까, 밥을 사 먹을 돈은 있을까 조바심 내는 건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돌아오는 듯하다.

그리고 본업인 중고상점보다는 엉뚱하며 탐정 코스프레를 즐기는 가사사기와 빗나간 가사사기의 추리를 가사사기가 모르게 그만의 방법으로 돕는 히구라시 콤비는 순수한 면도 엿보이는 젊은이들이라 무겁기보다는 유쾌하게 다가온다.

매번 어두운 주제를 소설에 등장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했던 '미치오 슈스케', 독자들이 느낄 불편함을 즐기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이름만 떠올려도 무거운 느낌의 주제들이 마구마구 연상되는데 <수상한 중고상점>은 코믹하면서도 잔잔함이 있어 중간에 책장을 덮을 수 없게 만든다. 엉뚱하고 대책 없을 정도로 계획성 없어 보이는 캐릭터지만 왠지 이 둘을 더더더더 만나고 싶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만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살며시 들며 미치오 슈스케에게도 이런 가벼움이 있었다는 사실에 왠지 더 유쾌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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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역사여행 - 용미리 마애불부터 DMZ까지
임종업 지음 / 소동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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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게 파주는 아버지가 하염없이 바라보던 전망대가 있던 지역이었다. 이후로 최근에는 출판 단지가 있는 곳으로 떠오르곤 하지만 자유로를 지나다 보면 철조망과 대비되는 강의 모습은 이북이 고향인 아버지가 안타까운 눈망울로 쫓던 모습이 기억에 강하게 남아 싸한 아픔이 느껴지는 곳이다.

통일전망대, DMZ, 파주출판단지, 아울렛...파주하면 제각기 떠오르는 곳이 다를 텐데 북녘땅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아버지의 옆모습이 어린 마음에도 아프게 남아있었기에 파주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그랬기에 제목을 보자마자 운명처럼 펼쳐보게 됐던 것 같다.

<파주 역사여행>이란 제목에 걸맞게 파주란 곳이 삼국시대부터 지리적 요충지로써 중요한 곳이었으며 조선시대 안동 권씨, 파평 윤씨, 경주 최씨, 경주 이씨 등의 내로라하는 가문이 자리를 잡고 지냈던 세족 근거지로써 서울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후 파주의 덕진산성과 오두산성, 임진강은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의 역할을 보여주듯 현대사에서는 한국전쟁과 12.12쿠데타와도 연결되어 시대를 달리하고 있지만 쓰임새가 같은 모양을 띄고 있어 묘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지리적 위치 때문에 시대만 달리했을 뿐 전쟁과 얽힌 이야기를 피해 갈 수 없는데 비무장지대로 시작하는 도입부에서 영화에서 보던 것과 다른 현장의 생생함과 소련 청년이 분계선을 넘으며 망명한 것이 북의 도발로 여겨져 남과 북, 유엔이 대치하며 인명 사상을 초래했던 이야기는 언젠가 얼핏 들은 기억이 있지만 판문점 안에 장명기 상병을 기리는 비석이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어 분단국가의 아픔이 더 진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저자가 역사학자가 아니고 기자 출신이기 때문인지 에둘러 둥글게 표현하기보다 직설적으로 표현된 부분도 있어 오히려 이 부분이 시원하게 느껴졌고 삼국시대, 조선시대를 아우르는 이야기와 근현대사를 통해 파주의 역할과 그곳에서 벌어졌던 가슴 아픈 역사를 두루두루 만나볼 수 있어 지식을 폭넓힌 것까지는 좋았는데 역시 가슴 아픈 역사가 많아 그런지 싸한 아픔까지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해서 기존에 갖고 있던 이미지가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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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선의 사람들 - 후쿠시마 원전 작업자들의 9년간의 재난 복구 기록
가타야마 나쓰코 지음, 이언숙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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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지방의 태평양 해역에서 일본 지진 관측 사상 최대인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한다. 그 후 거대한 쓰나미가 해안가 마을을 덮치며 건물과 차량 등이 휩쓸려가는 장면을 11년 전 수도 없이 지켜보며 발만 동동 굴렀었다. 엄청난 지진의 여파 속에 시체조차 찾을 수 없어 슬픔에 잠긴 가족들, 정든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지내야 하는 원전 마을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이 떠난 마을에 남겨진 동물들의 이야기는 전쟁의 참상을 떠올리기에 할 정도로 참담함 그 자체였다.

<최전선의 사람들>은 지진의 여파와 함께 일본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의 생생한 현장 상황을 담은 9년간의 기록이다. 지진의 여파로 교류 전력이 끊기며 원자력 발전소의 냉각 장치가 멈추었고 그로 인해 수소 폭발이 이뤄지며 이에 손상된 건물을 복구하기 위해 대피해있던 작업자들이 현장에 돌아와 복구를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정신없이 돌아가는 작업 속에 외부 전력을 살려 냈지만 손상되며 건물 지하로 고인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들어갔으며 이 과정에서 작업자들이 어느 정도로 피폭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긴박한 상황 속,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 할아버지였던 그들은 자손들을 위해 더는 모른척할 수 없어 원전 복구에 뛰어든 사람들이거나 애초에 발전소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었다. 처음엔 하청이 아닌 도쿄전력 직원들이 투입되었으나 점점 인력 증원이 필요해 관련 경력도 없는 사람들이 투입되기에 이르렀고 그 또한 제대로 된 교육도 없었으며 방호복 때문에 물 한 모금, 담배 한대 피울 수 없는 악조건에서 먹는 것과 자는 것등의 미비한 시설은 작업에 투입된 그들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아내가, 자식이 울며 가지 말라고 매달리는 상황에서 미래의 자손들을 위해, 일본을 위해 원전 복구작업에 투입된 사람들의 인터뷰는 생생하고도 따뜻한 울림이 있다. 그러나 그런 마음에 대비해 그들이 겪어야 할 참상은 글로도 너무 고통스럽게 다가왔으니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그들의 노력 앞에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최악의 원전 사고는 지진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에서도 대두되고 있는 문제로 우리는 과연 원전에서 안전한가란 질문을 책을 통해 끊임없이 마주해야 한다. 나 자신의 안위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했지만 돌아온 것은 국가의 이기주의와 망가진 몸이었으니 이에 대한 힘겨운 싸움은 비단 일본의 일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땀과 눈물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원전에 대한 앞으로의 고민이 이 책을 통해 더욱 깊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열악한 취재 상황에서도 집념의 취재를 이루어낸 기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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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전쟁 - 2022년 대선과 진보의 자해극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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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앞둔 시점에 읽었던 <좀비 정치>를 통해 다시금 대한민국 정치사의 불운한 현주소를 짚어봤었는데 대선이 끝나고 이제 곧 윤석열 정부의 출범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만나게 된 <정치 전쟁>은 그간 만났던 과격한 제목과 길을 같이 한다.

2022년 대선과 진보의 자해극, 역대급 비호감 대선의 비밀, '아무 말 대선'.... 격해도 너무 격한 것 아닌가? 낚으려고 너무 쎈 말로 가는 거 아냐? 란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지금껏 그가 펴냈던 제목들이 모두 얌전하지 않았고 이렇게까지 과격할 것까지야... 란 우려가 들만했어도 사실 제목 하나에 국민이 느껴야 할 정치 울분이 약간이나마 해소되는 기분이었으니.... 하지만 지금껏 읽었던 책에서는 그간 느꼈던 정치인들의 짓거리에 대한 답답함 등을 글을 통해 해소하는 경향이 높았다면 <정치 전쟁>을 읽으면서는 이런 사태가 벌어졌고, 자꾸만 되풀이되는 대한민국 정치 현주소에 대한 우려와 반감이 사실 어이없는 짓거리를 해대는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데서 기인하고 있으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기반성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만 그들과 나는 다르다는 식으로 매도하며 손가락질을 해댔는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하면 대선 결과만큼이나 너무 충격적이지만 이렇게 돼버린 현주소를 만든 건 비단 그들만은 아님을 상기했을 때 그들의 수준만큼 국민들의 수준 또한 별거 아님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컸다.

지난 책에서도 언급했던 이야기들이 대거 등장하지만 그렇다고 같은 이야기를 우려먹는다거나 식상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소설도 아닌 것이 강준만 교수가 낸 책은 소설을 읽는 것 같이 몰입하게 만든다. 아마 같은 이유로 그의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들이 많으리라 생각되는데 여하튼 소름 끼치게 적나라한 글들로 인해 심정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내편 아니면 적으로 간주하는 팬덤 정치와 내로남불식 해석, 정치적 이념보다 전리품 정치란 오명으로 남은 캠프 정치, 문재인 집권 동안 보인 아리송한 지지율의 속내,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보면 오해할 소지가 다분한 이대남의 대한 이야기는 달리 다가오기도 했는데 어쨌거나 페미니즘을 앞세우는 묘한 구도로 오해를 받았거나 자신이 발언을 했거나 등으로 많은 구설수에 올랐던 이대남들이 윤석열과 이준석이 언급한 공약의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상황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지만 점점 아무 말 대잔치로 드러난 실효성 없는 공약들 앞에 또 한 번 놀아나준 꼴이 되어버려 무어라 설명할 단어를 찾을 수가 없을듯하다.

강준만 교수님의 책을 읽을 때마다 타협이란 단어는 없어지고 점점 전쟁화되는 정치판의 모습에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그들이 조장하는 것에 휘둘리기만 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만 한데 휘두르는 인간이나 휘둘리는 인간이나 서글프기는 매한가지라 이제는 이런 짓거리 좀 그만하고 제대로 일 좀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어쩌면 이 또한 꿈같은 이야기인 것 같아 답답함은 씻기질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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