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해자만을 몰아세울 수 없게 만드는 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 갓 스물을 넘긴 마가키 쇼타는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만난 아야카와 연애 중이다. 하지만 얼마 전 아야카와의 약속을 한 시간 남겨놓고 동아리 모임 때문에 취소한 일로 아야카와 서먹해졌고 자신에게 냉랭한 아야카 때문에 아르바이트가 끝나자마자 친구들과 술을 마시게 된다. 술을 마셨지만 답답한 마음이 해결되지 않은 채 막차가 끊기기 전 집으로 돌아온 쇼타에게 아야카로부터 지금 당장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으면 앞으로의 만남은 없을 거라는 문자를 받게 되고 이미 막차도 끊기고 폭우가 쏟아지는 데다 술까지 마셨지만 이대로 서먹한 사이가 되는 것이 싫었던 쇼타는 차를 끌고 아야카를 만나러 가는데....

<어느 도망자의 고백>은 이제 갓 성인이 된 쇼타가 밤중에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한 노파를 치어 숨지게 한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초반부터 쇼타가 알코올 상태에서 사람을 치어 죽였고 더군다나 폭우가 내렸다고는 하나 직선거리의 도로에서 사람을 못 봤다는 것도 의아한데 사람을 치어 그대로 200미터나 끌고 갔음에도 무언가 부딪쳤다는 건 인지했지만 개나 고양이라고 생각해 그대로 운전했다는 증언을 하며 피해자의 유가족은 물론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게 되는데 이 부분에 대해 쇼타는 사실대로 말하고 싶었지만 가족을 감싸야 하는 마음 때문에 재판 과정에서 거짓으로 일관한다.

쇼타에게는 결혼을 앞둔 누나와 미디어에 얼굴을 비치며 평론가 활동을 하는 아버지가 있어 이 어마 무시한 사건을 그대로 인정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될까 두려운데 한순간의 실수로 살인자가 되고 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재판을 거쳐 징역을 살게 되며 이후 가해자와 가해자의 가족,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이 겪어야 할 과정들을 농밀하게 보여주고 있어 초반에 이미 사건 정황이 다 드러나 있는 상황에서도 꽤나 흥미진진하게 읽게 된다.

젊었을 때는 누군가 사회에 반하는 범죄를 저지르면 그에 합당한 무서운 말들을 쏟아내며 그 사람의 인간 됨됨이를 평가했지만 나이가 먹고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된 후부터 자식이 저지르는 죄에 부모까지 쓸어 담어 평가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자주 느끼게 된다. 소위 엘리트라고 불리며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소외나 빈부 격차 등 온갖 정의를 온몸에 도배한 듯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던 자들이 왜 자식 일에서만큼은 반푼이처럼 행동해 구설수에 오르는지, 도덕적 가치관으로 저울질했을 때 절대 하면 안 되는 짓거리임을 알면서도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지식인이기 이전에 그들 역시 부모이기에 그릇됨을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면 자식을 키워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다시금 되새겨볼 때가 많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비록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야기지만 언제 입장이 뒤바뀔 수 있을지 모르는 게 인생의 거대한 무대임을 생각했을 때 당연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내용이라 가해자라고 해서 두둔하는 것이 더 안타깝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런 스타일의 이야기를 꽤 잘 이끌어가는 작가이고 항상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편견에 대해 꽤나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글들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 소설도 역시 야쿠마루 가쿠다운 소설이란 생각이 들어 그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더욱 각인시켜준 소설이었던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아 우리의 앞머리를
야요이 사요코 지음, 김소영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이 특이하다. 첫사랑을 떠올리는 아련한 느낌이 물씬 풍겨 달달한 기대를 품었더랬다. 특이한 제목만큼 얼핏 러브 레터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표지 때문에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얼굴을 간질이는 머리카락의 느낌을 떠올려보며 무더위 달달한 로맨스를 즐겨볼까 싶었는데 소설은 그런 느낌보다는 공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개를 산책시키던 노인이 공원 벤치에서 목 졸려 살해당했다. 개를 산책시키러 나선 길이기에 큰돈을 들고나갈 리도 없을뿐더러 지갑을 비롯한 돈이 될만한 것들은 그대로 있어 원한에 의한 살인이 아닌가 의심이 되지만 CCTV 사각지대라 아무런 단서도 증거도 없어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든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살해당한 노인의 부인인 다카코가 조카인 유키에게 범인을 지목하며 범인이 아닌 알리바이를 찾아달라고 한다.

살해당한 노인은 전직 변호사였고 의뢰인들의 반대편 사람들에게 분노를 사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내인 다카코는 딸이 낳은 아들이자 자신들에겐 손자지만 양자로 들인 시후미를 의심한다. 딸이 철없을 때 낳은 시후미는 남편의 무능력과 학대로 시후미가 어릴 때 이혼했고 어머니인 다카코 집으로 들어와 나중에 재혼하게 된다. 학대당한 시후미가 가엾지만 자신의 딸과 손자를 학대한 사위의 온전치 못한 피가 흐른다는 생각에 어릴 때부터 엄하게 대했고 결정적으로 다카코는 장례식장에서 고개를 숙인 채 웃는 모습을 보인 시후미를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한다. 시후미의 알리바이에도 불구하고 범인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던 다카코는 조카인 유키에게 시후미가 범인이 아니란 증거를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잠깐 탐정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력을 바탕으로 유키는 시후미 주변을 조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시후미의 모습과 시후미 곁을 함께하는 리쓰라는 인물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둘 주변으로 범상치 않은 사건들이 있음이 드러나면서 유키는 혼란스럽기만 한데....

간지러운 연애 감정을 느끼리라 생각하고 펼친 소설이 어둡고 가슴 아픈 이야기라 당황스러웠지만 그것 나름대로 몰입하게 되는 소설이다. 어떤 구도로 이어질지 읽다 보면 대강 예상이 되고 그런 이야기이기에 적잖은 무거움이 있지만 중간에 덮을 수 없도록 이끄는 매력이 있다. 누가 그랬는지는 어느 시점엔 의미가 없어지고 왜 그렇게 되어야만 했을까란 과정을 마주하며 가슴 먹먹함이 아무래도 오래갈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구 아저씨
김은주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살 때부터 달리기를 시작해 올림픽 메달을 따는 것을 목표로 전진한 다연, 한눈팔지 않고 요령 피우지 않은 결과는 전국 육상 선수권대회 여자 100m에서 중학생으로는 유일하며 전체 2위를 차지하여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니 고 1이 된 다연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더욱 뜨거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목표에 한걸음 가까이 내딛게 되는 순간 결승점을 앞에 두고 발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며 다연은 예상하지 못했던 현실로 떨어지게 된다.

추우나 더우나 한결같이 연습에 매진했던 다연, 연습량이 많아 한 달에 한 번씩 운동화 한 켤레씩을 소모하면서도 그 힘든 과정을 묵묵히 해냈던 다연이지만 발목이 잘 붙었다는 병원의 결과에도 좀처럼 달리기를 할 수가 없다. 자리를 박차고 달리는 순간 주저앉게 되는 일이 되풀이되고 다친 발목이 멀쩡하다는 진단에도 좀처럼 달릴 수 없는 기간이 길어지며 다연은 다른 진로를 찾아봐야 하는지 고민스럽다.

이에 다연이 달릴 수 없는 이유가 심리적인 요인일지 몰라 엄마의 권유로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그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아보라고 충고한다.

<구구 아저씨>라는 제목이 뭘까 궁금했더랬다. 세파의 흐름을 타지 않는, 사회적 관점에서 어찌 보면 낙오자처럼 보일 수 있는 이미지지만 자신을 옭아매지 않고 여유로운 인물이지 않을까라는 예상을 했었는데 그런 예상을 다 빗나간 구구 아저씨의 정체가 흥미로웠는데 사람보다 더 현명하고 지혜로우며 코믹하고도 어이없는 상황 연출을 많이 해서 깨알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이혼한 부모님, 예상 밖의 범상치 않은 친구, 다연이 운동을 시작하지 못하고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는 모습은 모든 청소년들의 고민을 보여준다. 운동밖에 몰랐던 다연이 달리기를 배제하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는 나날들과 부모님을 오해하며 속에 있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제서야 제대로 마주한 엄마 아빠의 속 마음을 알아가면서 좀 더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럴듯한 모범답안 같은 말들을 다연 주변인들이 해줬다면 아마 이 소설이 많이 식상했을 테지만 '이렇게 말해도 돼?'란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을 울리는 어른들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더불어 구구 아저씨와의 에피소드들도 웃겨서 재밌고도 가슴 따뜻해지는 소설이라 청소년인 자녀와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와 비 - 금오신화 을집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9
조영주 지음 / 폴앤니나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간 추리소설이나 기담으로만 만났던 조영주 작가님의 소설과 다르게 겉표지부터 묘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제목부터 '비 와 비'라는 궁금증을 들게 했던 이 소설은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면서도 '어쩌면 그런 일이 있었을 수도?'라는 상상을 극대화하기에 충분한 설정이라 초반부터 최고의 몰입도를 선물한다.

때는 바야흐로 조선 성종, 중국에서 광대를 하다 전라 관찰사 이극균의 눈에 띄어 수양딸로 들여진 '이비', 하지만 조선시대 여자에게 강요했던 덕목을 배우기에 이비는 너무나 자유로운 영혼이다. 불편한 조선의 치마와 저고리보다 활동하기 편한 중국의 옷을 입어 양부모님을 걱정시키는 일은 물론 집안에서 수를 놓기보다 말을 타고 밖으로 쏘다니기를 좋아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이비 곁엔 항상 관노비인 박비가 따라붙어 그녀를 보호하는데 양반과 관노비라는 신분이지만 둘은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비의 양아버지 이극균의 꼬투리를 잡기 위해 한명회가 측근인 정훼를 시켜 감찰을 보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정훼가 죽은 공혜왕후와 닮은 이비를 보게 된다. 이에 심상찮음을 간파한 이극균은 이비를 몰래 빼돌려 김시습에게 보내고 이 과정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며 둘은 예기치 않게 헤어지게 된다. 서로 같은 마음이지만 표현할 수 없는 이비와 박비, 그렇게 헤어지게 된 이비는 김시습을 만나 그동안 몰랐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얽히면 안 될 성종과도 얽히게 되며 이야기는 애절함을 더한다.

<비 와 비>는 금오신화 을집이라는 부제목에서 그와 연관된 소설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는데 학창 시절 국어 시간 김시습의 뛰어남과 조선 최초의 한문 소설집이라는 금오신화의 기억만 가지고 이 소설을 읽기엔 지식이 부족함을 느낄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성종에 대한 평가와 사학자들의 사료에서 파악된 그의 내면적인 모습 등을 추론하여 왕하면 떠오르는 인상을 떠나 인간적인 성종의 모습을 추려낸 글을 언젠가 흥미롭게 읽은 기억도 있어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성종의 모습과는 좀 차이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등장하는 인물들이 실존 인물들이며 기록을 넘어선 상상들이 몰입감을 더 극대화했던 것 같다.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관련된 이야기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과 소설의 이해를 돕고자 뒤편에 달린 정성스러운 주석들도 기억에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