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인종, 계급 Philos Feminism 2
앤절라 Y. 데이비스 지음, 황성원 옮김, 정희진 해제 / arte(아르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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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3년에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성 평등 문제는 비단 1800년대에만 국한되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성이란 이유로 억압되어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숨죽여 살아왔던 여성들의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한에 복받쳐 공포와 가슴 절절함을 안겨주었던 전래의 뿌리를 찾다 보면 여성들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귀신으로 남았던 밑바탕엔 여성들을 비천하고 쓸모없이 취급하는 사회적 배경과 성폭력이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왔기에 내가 나선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며 사회적 제도에 길들여져 살았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껏 조상들이 투쟁하며 이만큼 이루었던 성 평등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가야 할 여성들의 과업일 것이고 그렇기에 마주하기 쉽지 않은 문제지만 고개 돌려 외면하지 않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여성, 인종, 계급>은 미국의 정치활동가이자 학자인 앤절라 Y. 데이비스가 미국 여성들의 역사를 옮겨놓은 책이다. 현대사의 미국 여성 인권사를 담았다고 해도 무방할 텐데 그녀 자체가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만큼 여성 인권의 한 획을 그었고 당시에는 인정되지 못할 만큼 급진적이고도 활발할 여성 인권 운동으로 FBI 긴급 수배 명단에 올랐을 정도이며 공산당원이라는 이유로 UCLA 교수직에서 해임되었을 때 1,500여 명의 학생들이 파면당한 그녀의 강의에 수강 신청을 할 정도로 여성 인권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이 책은 노예제가 횡횡하던 시절부터 노예의 수출이 가로막히고 산업의 발달이 가속화되는 역사 속에서 여성의 지위와 흑인 여성의 부당한 대우 등을 심도 있게 설명한다. 남성과 똑같이 힘든 농장 일을 해내야 함은 물론 신체적인 폭행과 성착취, 그에 더해 인간이 아닌 번식 가능한 동물 취급까지 받으며 견뎌야 했던 흑인 여성들의 비참한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부당한 대우에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흑인 여성들을 학교로 불러들였다는 이유로 다양한 곳으로부터 집단 공격을 받았던 이야기와 백인 자식들을 흑인들과 같은 학교에 보낼 수 없다며 진행된 보이콧, 그럼에도 흑인 여성들의 인권에 동행한 백인 여성들의 이야기는 인간을 대하는 다양한 관점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인간상을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흑인 여성의 삶을 보여줬던 문학이 파란을 일으켰지만 문장에 녹아있던 흑인 여성들의 이미지가 왜곡되어 사람들에게 각인되버린 것은 참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여성 인권이 여전히 요란하게 부각되는 시대이다. 성 평등에 맞춰진 관점이 아닌 정치적인 이유로 이용당하고 왜곡되는 것을 보면서, 그 왜곡된 이야기에 휘둘려 본질은 떠나 편 가르식으로 대립하는 현 상황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데이비스가 투쟁하던 시대에 빗댈 순 없겠지만 그에 뒤져지지 않는 공포감과 불안감에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많다. 이 책이 편가르기식 싸움이 아닌 본질을 찾는 과정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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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여관 미아키스
후루우치 가즈에 지음, 전경아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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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엔 유독 고양이와 관련된 소설이 많다. 아무래도 일본 소설 비중이 높은 까닭에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고양이와 관련된 에세이는 물론 가슴이 따뜻해지는 소설까지 장르도 다양한 글들을 접하며 일본인들의 고양이 사랑을 여러 번 느끼게 됐던 것 같다. 그리고 기존 일본 소설에서 느꼈던 따스했던 이미지가 강했던지라 <고양이 여관 미아키스>라는 책도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는데 책 표지의 서늘한 표정의 집사 그림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듯 이 책은 따스한 온기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한낮의 땡볕 아래 차에 남겨진 어린 소녀, 고압적인 젊은 아빠와 뜨거운 열기 속에 딸아이를 두고 가야 하는 엄마의 눈길이 불안하다. 그렇게 어린 딸을 차 안에 방치한 채 게임센터로 향한 부모님 대신 축 늘어진 아이를 살리기 위해 필사적인 검은 고양이, 하지만 도움을 알리려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귀찮게 여기는 사람들, 결국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소녀는 그렇게 유명을 달리한다.

<고양이 여관 미아키스>는 아이를 낳았지만 제대로 된 부모 의식 없이 아이를 방치하고 학대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잔혹한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총 5편의 이야기가 미아키스 여관과 연관되어 이어지며 이야기 속에서 항상 소녀가 등장한다.

각자 다양한 이유로 여관 미아키스에 발길을 들인 주인공들, 연예인 꿈을 키웠지만 자신의 몸을 상품화시키는 것에 반감을 가지며 꿈을 접었지만 이후 다시 연예인 매니저 일을 시작하게 된 미사는 자신이 소녀 시절 겪었던 연예계의 민낯들을 소속사 아이돌에게 거리낌 없이 종용하는 자신이 혼란스럽다. 제대로 일도 하지 않고 여자친구에게 빌붙어 사는 기요토는 어느 날 여자친구에게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도시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시골로 도망치듯 왔지만 여자친구의 권유에도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한량처럼 지냈던 기요토는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뿌리치고 도망치게 된다. 도쿄지만 변두리라 거의 시골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자란 유카코는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성적은 물론 외모 가꾸기에도 열심이었고 그것을 내세워 회사에서도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지만 자신의 실력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자부심을 회사에서 젊은 나이 탓으로 치부해버리는 바람에 결혼을 앞세워 그만두지만 몇 년이 지나 이혼하며 보기 좋게 자립하리란 계획은 점점 틀어지기만 한다. 미식축구 동아리 활동을 누구보다 즐겼던 겐토는 동아리 담당 선생님과의 마찰로 몸과 마음이 점점 지쳐간다. 그런 분위기는 자신뿐만이 아닌 모두에게 전염되기에 이르렀고 합숙활동을 하기 위해 떠난 숙소에서 이탈하며 겐토는 선생님이 없어지기를 바란다. 어릴 때부터 엄마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언어 학대를 당했던 소노코, 학창 시절엔 학비를 벌어 엄마에게 갖다주며 효녀 노릇을 했지만 엄마는 고마워하기는커녕 소노코를 대놓고 무시한다. 그런 생활은 고향으로부터 도망치게 한 계기가 되었지만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소노코는 호스티스 바를 출입하며 알게 된 남자친구에게 번 돈을 바치며 호구 노릇을 하게 된다. 그리고 원하지 않았던 임신을 하게 되면서 회사에서 부당 해고는 물론 남자친구에게도 버림받기에 이르는데...

그렇게 각기 이야기마다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어떤 자력에 이끌리듯 미아키스 여관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현재의 고민들을 다양한 이유로 해결하며 미처 보지 못했던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게 된다. 두렵고 힘들어서 피했던 일들, 어떻게 해야 할지 어쩌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를 답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고민들을 미아키스 여관 흑발의 오너와 오드아이인 이탈리아 요리사 팡구르, 통통한 안내 아가씨와 다소 어려 보이는 보이가 등장하며 도움을 준다. 그것이 비록 선의에 의한 것만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미아키스 여관을 찾은 이들은 또 다른 삶을 찾아 한 발짝 내딛게 되고 그 속에 죽은 소녀가 등장하며 생명에 대한 존귀함과 부모로서의 역할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준다.

최근 불거져 나오는 아동학대 이야기와 관련되어 깊이 있는 이야기였는데 오너가 들려주는 세계 전설 속 고양이 이야기까지 흥미로움을 더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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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런 안전가옥 앤솔로지 9
최구실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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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 않은 빌런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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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런 안전가옥 앤솔로지 9
최구실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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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는 보지도 않으면서 호러나 공포 소설은 좋아하는 까닭에 안전가옥 앤솔로지 시리즈였던 <호러>를 접하고서는 꽤 특이한 단편 모음집이란 생각이 들었었다. '이것이 호러라고 할 수 있는 건가?'란 생각을 시작으로 호러라면 떠올려질 당연한 것들을 왠지 외면했다는 느낌마저 들어 기억에 더 남았던 것 같은데 아마 그 기억이 나쁘지 않았기에 다음 시리즈인 이번 <빌런> 편도 궁금해졌던 것 같다.

다소 이름은 생소한 작가님들이지만 이력을 보면 읽었던 단편집이거나 최근 장르소설 출판사에서 입상한 경력을 보여주듯 소설을 읽으며 유려한 문체란 것을 금세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가들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는데 역시 이번 편도 평범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샐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수정궁의 유령', '우세계는 희망', '치킨 게임', '송곳니'란 다섯 작품이 실린 <빌런>편은 악당을 의미하는 제목도 그렇지만 단편마다의 제목도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가지 않아 호기심을 키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렇게 한편씩 읽다 보면 역시 평범하지 않음에, 예상하지 못한 결말에, 이게 뭐라고 두뇌를 굴려 이해해야 하는 복잡함에 작은 탄성을 내질러야 할 만큼 다섯 작품 모두 만만하지 않다. 그렇기에 내용이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면, 빌런이란 이름에 걸맞게 이 정도 내용은 넣어줘야지 싶은 당연함을 모조리 깨고 참신하면서도 기발한 내용들이 실려 있다는 것엔 역시 이견을 낼 수 없을 듯하다. 다만 장르에 대한 호불호는 피해 갈 수 없을 듯한데 SF 스릴러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SF 적인 요소를 그다지 반기지 않는 취향 확실한 나 같은 독자도 <빌런>은 확실히 머릿속에 뙇!하고 새겨질 만큼 독특하고도 강렬한 소설임에는 확실하다. 사실 '샐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란 시작 작품부터 이해가 쉽지는 않았더랬다. 뭔가 단어 하나라도 놓치면 이해가 부족해 다시금 되짚어 돌아가야 할까 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었는데 두 번째 만나게 된 '수정궁의 유령'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이게 맞는 건가? 이렇게 이해해야 하는 건가? 싶을 만큼 혼란스러웠다. 다행히 단편이었고 그런대로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구나 싶은 약간의 위안을 삼으며 단편을 마무리하긴 했지만 지금껏 보았던 SF 적인 소설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라 세세하게 다 이해하기는 부족할지라도 확실히 기억에 콕 박힐만한 소설이었다.

영화나 소설 속 지독한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처럼 대놓고 악당 같은 느낌보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어느 순간 악당으로 변해버리는 이야기가 더 서늘하게 다가와질 때가 있는데 이 소설은 양쪽 모두 충족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지만 그렇게 대놓고 얘기하기에도 확신할 수 없을 만큼 묘한 구석도 있는 것 같다. 좋아하는 장르라서 안전가옥 시리즈를 골라보고 있지만 앞 편에 재미있어 보이는 제목들도 있어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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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스트 걸 얼라이브
제시카 놀 지음, 김지현 옮김 / 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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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높은 연봉을 받으며 뉴욕에서 유명한 잡지사에서 일하는 '아니 파넬리'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잘생긴 데다 금융업계에 종사하며 집안까지 좋은 루크를 안달 나게 하기 위해 아니는 보이지 않는 밀당을 한다. 그를 속박하지 않으며 묘한 매력을 발산함으로써 자신에게 향한 애정을 식게 하지 않으려는 그녀의 계획은 비단 루크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직장 내에서도 미움받지 않으며 적당한 동료 사이를 유지하고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해 항상 머릿속으로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실행하는 아니.

소설은 도입부부터 아니의 입장에서 진행된다. 그녀가 보는 것, 생각하는 것, 만나는 사람들과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까지 왜 이렇게까지 인생을 피곤하게 살까 싶어 그녀의 과거가 궁금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밀려오는 짜증을 애써 누르며 읽어야 할 정도였는데 지친다 싶을 즈음 아니의 피곤한 생각 뒤에 숨은 일상들이 그녀의 학창 시절 과거와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과거의 사건이 현재 아니의 성격에 무슨 피해를 끼쳤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오로지 나만의 기우이기를 바랄만큼 그녀의 과거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기에 안타까움과 함께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어 보이는 그녀의 현재, 날씬하고 아름다우며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인 아니, 부잣집에 외모까지 빠지지 않는 약혼자 루크를 두었지만 왜 이렇게까지 머릿속으로 다양한 생각을 만들어내며 앞으로의 상황을 그려보는지, 가진 것에 비해 빈약해 보이기만 하는 그녀의 내면 상태는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한 그녀의 발악에 가까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설을 읽으며 정신적으로 문제 많은 여자라는, 단지 평가적인 그녀의 판단이 어떤 한 사건으로 인해 번복되며 아프고 짠하게 다가와 나도 모르게 울컥했던 것 같다.

인정과 사랑의 열망이 강한 시절, 또래에서 잘나고 강한 존재이길 바라는 욕망은 비뚤어진 모습으로 순수했던 사람을 이렇게나 피곤한 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끊임없이 생각 회로를 가동하는 아니를 보며 편하게 읽을 수만은 없었다. 모쪼록 그녀가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아닌, 자신을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이 덮은 책장을 자꾸만 매만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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