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서 좋다 - 두 여자와 반려동물의 사랑스러운 일상의 기록들
김민정.조성현 지음 / SISO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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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두 여자와 반려동물의 사랑스러운 일상의 기록들'

'강아지를 위해 꿈을 꾸는 여자와 고양이를 위해 꿈을 바꾼 여자가 반려동물과 함께 살며 관찰한 그들만의 세상, 그리고 마음 따뜻한 이야기'


사람들에겐 나도 모르는 기대치가 생기는 것 같다. 그만큼 충족이 안되면 속상하고 서운하고 그것을 넘어 화까지 나게 되는 상황을 종종 마주하며 이런 어른스럽지 못한 성향은 대체 몇살이나 먹어야 대처가 될까...싶은 궁금증이 불쑥불쑥 드는데 그에 반해 반려동물에게는 애초에 그런 기대치가 크지 않으니 함께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소소한 일상들이 더욱 소중하고 빛나 보이는 것이 아닐까?


결혼 전에 애완견 두마리를 키웠던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애완견을 맞아 함께 살려면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깊은 생각없이 그저 예쁘고 귀엽고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나으니까,라는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사고로 애완견을 맞았었다. 그렇게 아무런 준비없이 두마리나 맞이하고 보니 퇴근 후 돌아오면 집안은 난장판이 되어있고 좁은 방에 두마리가 부비적거리며 살게 되니 내 생활에 침해를 받는 느낌이 많이 들어 애완견을 아무런 준비없이 맞은 것을 후회했었다. 각자의 영역에 대한 자리를 잡기까지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애완견을 반려견으로서 맞을 수 있었던 까닭에 주위에서 누군가 외롭다거나 귀엽다는 이유로 반려동물을 들이려는 모습이 포착되면 반려동물과 살아야하는 고충을 여러번 반복해서 얘기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만큼 내 경험을 발판삼아 가벼운 생각으로 동물을 맞는 것이 얼마나 힘든것인가에 대해 깊이있는 생각을 여러번 거친 후에 결정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친정엄마가 그 대상인데 아버지를 보내고 홀로 남아 한동안 힘든 날들을 보냈던 엄마였기에 큰 집에 혼자 있는 쓸쓸함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나 컸던 모양이다. 평소에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과 세심함이 현격하게 결핍되어있는 나로서는 그 마음과 고충을 들여다 볼 여유가 없어 신경쓰지 못했던 상황이었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개를 데려와 키운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배변훈련이 되지 않아 애를 먹지만 무슨 소리가 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짖어주는 통에 마음은 든든하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서는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됐었다. 홀로 게신 엄마를 위해 음식이나 옷과 가끔 용돈을 드리는게 다였을 뿐 엄마가 원했던 것은 그저 일상을 같이 나눌 대화 상대였다는 생각에 내 자신이 한심해보임과 동시에 그래도 엄마 곁에 있는 개가 믿음직스럽게 보였던 것은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너라서 좋다> 에 나와있는 모든 말에 공감하지만 그것을 생각에서 끄집어 낼 수 없었던 글들을 마주보며 반려동물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뉴스에 등장하는 캣맘과 주민들과의 소동, 양쪽간에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둘다 틀린말을 아니다. 그저 무엇에 중점을 두었느냐에 따라 생각이 나뉘어지는 것일 뿐. 책을 읽으며 어줍잖은 동정심과 오롯이 내가 보는 관점만을 따라 그간 내가 동물들에게 미쳤을 행동들이 하나둘씩 떠올라 마음이 아파오기도 했는데 무엇이 정답인가를 가려내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인지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안하다 고맙다

어느 때부터 내 방 창가에 고양이 한마리가 지나다니기 시작했다. (중략) 여러 번 검토했고, 임시보증금과 계약서까지 주고받았기에 안전한 입양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한달 후 보증금을 돌려받은 입양자는 내 연락을 차단해 버렸고, 이후 흰둥이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애먼 곳에서 학대라도 받으면 차라리 길 생활이 더 행복할 텐데, 꺼지지 않는 가슴속 불덩이는 화병이 돼 시도 때도 없이 불쑥 타올랐다. '널 위한 일'은 결국 '내 마음 편한 일'이었다. 함부로 개입했고 대책 없이 낙관했다. p206​

​길고냥이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로서는 왈가왈부할 수 없는 문제긴하지만 결국엔 동물과 함께 상생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저 나보다 작다는 이유로, 나보다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문명화되지 못한 한낱 동물일 뿐이라는 오만함이 결국엔 나에게 다시 되돌아온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볍게 읽어내려가다 후반부에는 심란함에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꼈는데 우리 주변에 자행되는 동물에 대한 학대가 너무 많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저 두 여자의 반려견, 반려묘와의 동거 생활에 그치는 것이 아닌 동물에 대한 깊이있는 생각으로 이어지게하는 <너라서 좋다> 반려동물에 대한 의미가 찐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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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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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이 돋아나고 꽃이 필 준비를 하는 봄이 오는데 몸은 아직도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요즘, 몸도 마음도 뭔가에 발목이 잡혀 무겁고 힘겨운 날들이 이어져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도 괜시리 서운함과 예민함이 밀려오던 요즘, 마음의 기복을 잡기 힘들어 그런대로 내버려두면 다시금 돌아오겠지...하며 놔두기를 여러 날... 류시화 시인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를 만났다. 이미 지나간 것을 붙잡아 힘들어하지 말고 훌훌 털고 일어나라는 말인가? 라는 생각으로 만나보게 되었는데 이 책은 생각보다 더 깊이있고 심오하며 결국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어 마음의 빗장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그 동안 책으로 만나 그의 고행을 동반한 여행에서 깨달았던 이야기를 만났다면 이 책은 그런 오랜 세월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더욱 깊은 연륜과 인생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인생에 대한 물음에 해답을 찾고자 떠났던 여행, 명상들이 지금 당장 누군가의 눈에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더라도 본인은 그 여행을 통해 인생의 큰 것을 얻었으리라. 책을 읽으면서 인생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이야기들은 한껏 웅크렸던 내 마음속에 걸어들어와 조금씩 빗장을 거둬들였다. 아무 이유없이 찾아오는 무기력증에 속상한 마음과 될대로 되란식이 엉겨붙어 싸우는 동안 정작 껍데기인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그 속에 따뜻하게 다가와 마음의 위로를 해주고 내가 예민해했던 것들이 그저 자연스러운 거라고, 예민한 생각을 풀어 멀리 바람에 날려보내게 해주었던 마법같던 글귀들. 학창 시절에 류시화 시인의 글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엄청난 인기가 있는 분이지만 내가 여고생이던 시절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고 할 수 있었는데 그때 만났던 류시화 시인의 글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름 인생에 대한 쓴맛정돈 맛보았다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현실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멀었던 탓에 그때의 글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를 읽으며 학창시절 읽었던 저자의 글들이 생각나 생각지도 못한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이 오래 흘러 잊혀진 줄 알았던 그때의 글귀들이 신기하게 내 맘속으로 걸어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위로를 얻었다. 기대고 싶었던 내 마음과 몸을 온전히 쉴 수 있게 해주었다. 나처럼 많이 지쳐있다면 책속에 들어있는 구절들에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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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미래,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오는가 - "5년 뒤 당신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선대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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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뒤 당신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당장 한달 뒤, 반년 뒤, 일년 뒤의 나의 모습 예측이 안되는데 5년 뒤 나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를 묻고 있는 책 겉표지에 그만 당혹함을 느꼈다. 물론 앞날에 대한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알파고, 인공지능, 4차산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쏟아져나오는 미래에 관한 절망적인 화두가 담긴 책도 안읽어본게 아니다. 그런데 이론적으로는 고개 끄덕거리며 이해했다고 믿었던 글들도 책을 덮고나면 '그래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한다는거지?' 라는 원점과 같은 질문을 되물어야하는 상황을 여러번 경험했다. 책에서 지금까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미래에 관한 책들은 공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쓴 책들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속으로 '그렇군..이거였군...' 하며 무엇을 간과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기존에 책들을 읽을 때 앞으로 어마무시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고 지금 우리가 보고 최고의 직업이라며 칭찬해 마지않는 직업을 포함해 많은 직업들이 사라진다는 충격적인 이야기에 절망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 대안으로 로봇이 하지 못하는 창의적인 일이 앞으로는 살아남을 직업이라는 전망을 들어 이야기하며 그 대안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맺음하는 책들이 대부분인데  <일의 미래 :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오는가> 를 읽으며 보통의 서민들이 체감하며 살아갈 미래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있어 이해하기가 편했던 것 같다. 금리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한계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늘어나고 고성장 시대를 경험했던 기존 세대들은 경제적인 구조정책을 바꾸면 자연이 성장하게되고 그러면 일자리가 높아진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수십년간 재벌 의존적 성장과 수출 및 건설 투자 중심의 성장을 지속하면서 형성된 기득권 구조와 정책성 관성이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을 보면 단순히 정부에서 정책만 바꾼다고 한국 경제가 좋아진다는 판단은 잘못된 것이리라. 더군다나 구조조정과 기술혁신을 통해 기초체력을 키우지 않고 가계부채 급증을 조장해서라도 부동산 시장을 부양하고 재벌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친 것에 대한 악순화를 지금 모든 국민들이 떠안고 있는 실정이니 지금은 어렵더라도 이 사이클을 지나면 좋은날이 올거야...라는 희망적인 관망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100대 대기업 안에 들어가 있는 회사들의 2015~2016년 2년간의 주가등락률을 살펴보면 앞으로 대기업이라는 허울을 백으로 삼아 살아가기란 더욱 어려워질 것이며 그것을 바라보았을 때 직장이 아닌 직업에 대해 고민해봐야한다는 이야기는 앞으로 노년이 남은 나에게도, 자라고 있는 내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많은 생각을 던져주고 있다. 더불어 개인 한명, 대기업의 문제가 아닌 내 자신과 내 아이가 살아가는 이 나라에 대해 어떤 것을 준비해야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지금같이 개인이 경쟁하며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구조가 경제학의 본령인 많은 사람들이 삶의 질을 높여 사회 전체의 행복도를 끌어올리게 만드는 구조로 바뀐다면 4차산업으로 불안한 미래에 대해 덜 혼란스럽고 덜 고통받으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본질은 어떤 산업이 도태되고 어떤 산업을 선택해야하는가에 앞서 많은 사람들이 도태되지 않고 낙오되지 않으며 불안한 미래를 덜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나라가 어떻게 해야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노력을 기울여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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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골 사람들, 최용신을 말하다
윤유석 지음 / 길위의책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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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증언으로 보는 소설 「상록수」실제 여주인공 최용신의 삶과 정신

심훈의 <상록수> 란 소설을 읽어보지 못하였기에 '최용신'이 누구인지 잘 몰랐다. <상록수> 란 소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읽어보질 못하였기에 소설 속 '채영신' 이란 인물에 대해서도, 그 인물의 모티브가 된 '최용신' 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하기에 소설을 읽어보기 전 <샘골 사람들, 최용신을 말하다> 라는 책을 만난 것은 최용신이란 인물을 여러 각도로 살펴보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 아닐까 싶었다.


최용신 (1909. 8. 12 ~ 1935. 1. 23)

함격남도 덕원 출생

식민지 수탈로 피폐해진 농촌사회의 부흥을 위해 농촌계몽활동으로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로 독립유공 서훈을 받은 여성 독립운동가 223명 중 한 명이다. "조선의 부흥은 농촌에 있고, 민족의 발전은 농민에 있다." 는 생각에서 농촌계몽운동에 헌신하였다.


간략하게 살펴 본 그녀의 일생을 보며 어떤 인물인지 더욱 궁금증이 일었다.

이 책은 최용신의 대한 기사와 기록, 샘골 주민과 샘골강습소의 학생, 교사 또는 후원자였던 샘골 사람들의 증언으로 바라본 최용신의 모습이 실려있다. 그들이 최용신을 어떻게 생각하였는지를 대화가 담긴 글로서 알 수 있는데 당시 후원자였던 염석주의 증언을 보면 "어떤 날 얼굴이 얽은 신여성 하나가 부인 몇 사람과 같이 찾아와서, 자기는 지금 샘골에 있으면서 이 지방을 위하여 적은 힘이나마 바쳐 보고자 하니 잘 지도 협력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사회의 풍파를 많이 겪었 쓴맛 단맛을 다 맛보아서, 무엇을 한다는 사람들에게 아주 실망을 한 참인데, 더구나 세상을 모르는 젊은 여자 하나쯤으로 무슨 큰 기대를 할 수 있겠어요? 그저 내 지방에 와서 일한다는 사람이라니 대접 상 어련무던히 해 보냈습니다마는, 실상 내 속마음으로는 날고 기는 놈들도 농촌에 와서 실적을 못 내는 이 시절에 너 같은 계집애가 무엇을 해보겠다고 그러느냐 하는 경멸을 던졌었어요." p42 그의 속 마음을 통해 처음 최용신이 샘골 마을을 찾았을 때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이 어디에서 기초했는지 알 수 있다. 당시는 여성에게 배움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염석주의 증언처럼 남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여자인 몸으로 해낼 수 없을거라는 비관적인 전망과 그간 농촌계몽운동을 지켜보며 맛보았을 실망감이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랬던 사람들도 최용신이 직접 더 많은 배움을 알리기 위해 강습소에 직접 회벽을 바르고 논에 들어가 거머리가 달라붙는 와중에도 일을 도와주는 참된 모습을 보면서 동화되기 시작한다. 말로만 하는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온몸으로 보여주는 모습에 사람들이 감동하고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만큼 먼저 솔선수범하기가 쉽지 않은 것임을 사람들은 알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최용신은 5대 명문 여자사립학교인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으며 "중등 교육을 받은 우리가 화려한 도시 생활만 동경하고 안일의 생활만 꿈꾸어야 옳을 것인가, 농촌으로 돌아가 문맹 퇴치에 노력해야 옳을 것인가." 라는 고민에 대한 답으로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기로 한다.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하고 있던 농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운동인 농촌계몽운동. 당시 농촌은 1920년대 일본의 '산미증식계획'에 의해 쌀 생산량은 늘어났지만 일본에 의해 수탈되어 먹고 살기가 더욱 힘들어진 상황에 놓여 있었다. 최용신이 농촌계몽운동에 뜻을 굳힌 것은 미래를 위하면서 실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온몸을 아끼지 않는 농촌계몽활동을 하던 최용신은 각기병의 재발로 1935년 1월 23일 숨을 거두고 만다. 당시 조선시대에서 바라보았을 때 안타까운 죽음이 아닐 수 없다. 소설과 달리 그녀의 이야기를 증언과 기사로 통해보는 이야기라 <상록수> 를 읽기가 더욱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역사적 시대 상황과 농촌의 상황을 알 수 있었고 자칫 모르고 지나칠 수 있었던 위대한 인물을 알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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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풀어야 할 본질적인 숙제
기시미 이치로 지음, 박진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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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빛을 보는 순간부터 부모와 자식이라는 끈끈한 정으로 이어진 사이. 다양한 사람만큼이나 부모 자식간에도 다양함이 존재한다. 친구같은 부모가 있는가하면 권위적인 부모도 있고 마음은 있지만 무뚝뚝하여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부모도 많다. 하지만 사이가 좋은 부모 자식이건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 자식간이건 애틋하고 가슴 짠한 감정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서양의 경우보다 동양의 경우가 더욱 심하지 않을까 싶은데 나에게 누군가 '당신에게 부모란 어떤 존재입니까?' 하고 물어온다면 답을 하기전부터 왠지 모를 짠함과 뭉클함에 콧등이 시큰해올 것이다. 처음 책 제목인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를 마주했을 때는 '무슨 책 제목이 이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란 존재는 나이가 들고 안들고를 떠나 그것으로 사랑이라는 잣대를 세워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었다. 그리고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바로 이런 시대구나....피부로 와닿는 현실감에 마음이 아파왔다. 늘 모자라지만 받기만하며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자식인 입장에서 부모가 나이가 들고 아프다면 과연 나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것인가?...그런 생각을 전에도 해보긴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것들도 해결하지 못하고 살기 바쁜 와중에 당장 벌어지지도 않은 부모님의 상황을 미리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솔직히 고민하고 싶지도 않았었다. 그것이 자식의 마음이 아닐까...책을 보면서 실제 저자인 기시미 이치로가 갑자기 쓰러진 어머니를 지금 본인 나이보다 일찍 보내고 한참의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며 수없이 했던 생각들은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나에게 닥칠 일일지도 모르기에 그가 했던 생각들, 경험하며 힘들었던 것들에 공감이 갔다. 저자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이야기를 많이 언급하는데 요즘 노년에 암만큼이나 무서운 존재로 인식되는 것이 치매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치매에 걸려 노년을 요양원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아지기에 아직 그정도는 아니지만 연세가 점점 들어 홀로 계신 엄마 생각이 많이 들어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이 부분에서 자식이라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지 않을까. 평소 부모와 깊은 유대관계가 없었던 나조차도 그런 일에 직면한다면 손놓고 지켜보기만 하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또한 장담할 수 없는 부분이리라. 그것이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가 아닐까....부모란 이름으로 양보하고 희생하는 것이 어쩌면 부모로서 당연한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많이 들었었다. 서양과는 달리 부모와 자식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 동양권에서는 서양인들처럼 행동하기란 사실 쉽지가 않다. 그러하기에 부모님의 은혜와 희생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 부모니까 이정도는 해줘야하는 것이란 양립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다. 나 또한 지금껏 그래왔고 지금도 그런 마음이 강한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런데 내가 부모가 되고보니 딸아이의 그런 행동들이 서운하게 다가올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못먹어도 자식에게 하나 더 먹이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에 홀로 계신 엄마에게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자식이란 이유로 투정부리고 속상한 모든것을 털어놓으려던 마음이 얼마나 철없는 것이었던가를 책을 읽으면서 많이 느꼈다. 부모가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만큼 자식 또한 부모를 향한 마음은 무한한 사랑이라는 것은 삭막한 세상을 살고 있다고해도 결코 변해서는 안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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