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소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별이 된 소년 비룡소 걸작선 19
팜 무뇨스 라이언 지음, 피터 시스 그림, 송은주 옮김 / 비룡소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네프탈리'가 소녀인줄 알았다. 몸이 약해서 침대에서만 생활하는 아이는 처음, 나에게 소녀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파블로 네루다'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는 소개의 글을 보면서도 '별이 된 소년'이 내게 준 이미지는 그랬다. 상상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네프탈리는 학교에 가는 길에서도 모든 사물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아이다. 나뭇잎 하나 허술하게 보아 넘기지 않는 네프탈리는 모든 물건에는 어떤 힘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 힘을 꼭 필요한 곳에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몸이 약한 네프탈리가 자신의 상상속에서만 꿈 꾸는는 세상이다.

 

'시'를 쓰는 사람들은 이렇게 세상을 다르게 보는 것인가, 라고 떠올릴 수 있지만 네프탈리의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의사나 치과의사가 되지 않는 한 다른 직업은 모두 얼빠진 일쯤으로 여겼고, 아이의 꿈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고 이미 미래를 결정지어 버린다. 부모들이 흔히 저지를 수 있는 행동이지만 몸이 약한 네프탈리를 강하게 만들겠다고 바닷가에 들어가 견디도록 한 행동은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네프탈리 뿐 아니라 그의 어린 여동생 로리타까지 함께 바다에 들어가도록 강요하여 어린 네프탈리가 오랜시간 로리타가 물에 잠기는 악몽을 꾸기도 했으니 그때 네프탈리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능하다. 수영을 가르칠려고 했다면 아이들과 함께 바다에 들어가 추억을 만들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네프탈리의 아버지는 아이의 몸을 강하게 만드는 것에만 신경을 썼고 이런 권위적인 아버지의 모습은 아이들의 미래를 불행하게만 만들 뿐이다.

 

네프탈리의 형 로돌프는 노래부르는 것을 좋아해서 음악학교에 진학하고 싶어했지만 아버지가 정해준 삶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형을 보면 글을 쓰고 싶어하는 네프탈리의 꿈 또한 좌절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용기를 낸다고 해도 아버지는 넋 빠진 놈, 얼빠진 놈, 바보 같은 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네프탈리는 용기를 냈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네프탈리에게 용기를 준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형과 올란도 삼촌이었다. 네프탈리는 올란도 삼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자랐다. 올란도 삼촌은 출판사가 불에 타는 위협에도 불구하고 마푸체족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네프탈리도 '파블로 네루다'라는 이름으로 계속 글을 쓰고 정의롭게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아버지가 정의롭지 않은 것은 분명 슬픈 일이다. 그렇지만 올란도 삼촌의 출판사가 불타고 네프탈리의 글을 본 이웃이 더이상 왕래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보인다면 그의 아버지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 네프탈리는 그런 아버지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았고 자신의 글이 멀리 퍼져 나가면 세상이 분명 변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상상의 세계에서 자신의 꿈을 펼친 네프탈리의 삶은 아버지의 권위 아래에 놓여 있지 않았다면 좀 더 행복하게, 좀 더 넓은 세상을 꿈꿀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네프탈리의 아버지가 일을 나가고 없을 때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았다. 남편의 권위 아래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마마드레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 나갔다. 행복하냐, 행복하지 않냐의 결과만 다를 뿐이지만. 꿈이 좌절당한 형 로돌프는 동생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형의 도움으로 네프탈리의 꿈이 이루어졌지만 더 넓은 세상을 품에 안은 것은 모두 네프탈리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다. 아우구스토 할아버지가 말하지 않았던가 "네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할 방법은 항상 있는 법이다"라고. 꿈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스트 헌트 2 - 인형의 집
오노 후유미 지음, 박시현 옮김 / 북스마니아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공포를 느끼게 해 주는구나.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노리코의 집에 영능력자들이 모여든다. 서로 다른 사람의 소개로 모였지만 모이고 보니 '구교사 괴담'에서 봤었던 인물들이 모두 모였다. 나르, 스님, 무녀 아야코, 존, 마사코까지. 이들이 얼마나 많은 활약을 할지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으나 오옷 의외로 몸을 사리지 않는다. 제령을 하는 스님과 아야코가 '영'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의외긴 하지만 '영'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상관 없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한다. 여전히 마이는 잡무 담당이다. 나르 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후 처음으로 맡게 된 사건이 이번 '인형의 집' 사건이란다. 대체 그 동안에 뭐 하며 지낸거냐.  

 

1권 '구교사 괴담'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던 나르가 '인형의 집' 편에서는 하는 일이 없어 보여 겉도는 느낌이 든다. 최첨단 기계로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은 많으나 영능력자들도 버거워 하는 위력을 가진 무시무시한 존재를 어떻게 할 생각인지 알 수가 없다. 나르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에 관심은 보이지만 이렇다 할 행동을 하지 않은 채 이 집에 얽혀 있는 사건들을 알아보러 다닌다. 이런 일쯤이야 나르가 늘 하던 일이긴 한데 나르를 제외한 스님, 아야코, 존, 마사코의 능력으로는 이번 일을 해결할 수 없으니 걱정이다.

 

여덟 살 쯤의 아이들이 죽었다는 이 집에서 유령들의 표적이 된 아야미를 구할 순 있을까. 등골이 서늘해져 온다. 어쩌면 나르조차도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존재일지 모른다. 능력이 없다 해도 스님, 아야코, 마사코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영능력자들이 이번에는 제대로 된 사건을 맡지 않았는가. 아야미를 데려가려는 유령들과 영능력자들의 싸움은 그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박감이 흐른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라 무녀 아야코는 자신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며 발을 뺄 생각도 했으나 어쩐 일인지 끝까지 행동을 같이 한단다. 나르때문이냐?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데 혹시 이성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마사코도 아야코도 나르의 곁에 머무는 것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야코는 무녀이면서 제령을 할 때 아무런 능력이 없는 마이를 곁에 두었다. 너 제정신인 거냐. 이런 위험한 일에 평범한 아이를 곁에 두다니,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다. 이 무녀는 이상하게 밉다. 능력도 없으면서 왜 무녀인 것인지. 덕분에 마이가 위험에 노출 되었지만 뜻하지 않게 마이가 평범한 아이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아야코는 앞으로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는 인물이다. 어떤 사건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대충 이렇다.  

 

노리코와 아야미의 새 엄마 카나와의 미묘한 신경전은 이 사건이 '유령'에 의해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해결이 되었지만 이 일로 인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카나는 아야미의 새 엄마였으나 딸의 안전보다는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이 집을 떠났었기에 아야미가 유령들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야미는 외로웠던 것이다. 어린 시절 겪은 이 일이 앞으로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힘들지 않았으면 한다. 아직은 살아가야 할 날이 많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풍당당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석제의 '위풍당당'이 피가 섞인 온전한 가족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 모여 가족을 이루었기에 읽을 수 있었다. 아니,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단단한 울타리로 감싸인 곳은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가족사에 얽힌 사건들이 꽤 많음에도 치명적이고 위험한 사태에 이르러서야 세간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그만큼 폐쇄적인 것이 이유이며, 행복한 일상을 가꾸어 가는 가족들 역시 타인에게 그 영역을 드러내거나 내어 놓지 않으므로 그저 무심히, 담담하게 지나가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이 모여 '가족'을 이루었지만 가족이라 멋대로 이름 붙인 것 뿐이었던지 정묵이 보스로 있는 조폭들이 강마을에 쳐들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영필은 드라마 세트장에서 기거하는 이들을 '가족'이 아니라 했다. 이들이 기거할 터전을 지킬 필요가 있고 새미와 준호가 나중에 돌아올 곳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조폭인 세동이 새미와 준호에게 당한 사연은 뻔하다. 아름다운 새미를 어찌 어찌해 보겠다는 음심을 품어서였는데 현실적으로 조폭이라면 응당 이런 짓을 할 만하다. 그러나 세동의 위협에 즉각적으로 대응한 새미와 준호의 행동은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 세동의 보스 정묵과 그의 부하들이 모두 죽여버리겠다며 강마을에 나타날 정도로 사태는 점점 위험해진다. 아름다운 꽃은 그냥 두고 보는 것이란 철학을 가진, 아니 보스는 당연히 이러해야한다고 생각하는지 근엄하게 앉아 있던 정묵이 새미가 눈 앞에 있었을 때도 얌전하게 있었을 것인가 생각해 보면 장담할 수 없지만 지금 정묵에겐 이미 새미는 안중에도 없다. 다만 자신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 강마을로 쳐들어갈 수 밖에 없음이 통탄스러울 뿐이다. 정묵은 예전에 비해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고 중얼중얼 거리며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 부하들과 함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다.

 

익살, 재담, 해학이 가득한 성석제의 작품을 읽을 때면 언제 웃어야 하는지 난감할 때가 있다. 가슴이 뭄클하며 뭔가 끓어 오르려고 하는데 웃음이 난다. 이럴 땐 흠흠, 하며 아무 일 없었던 듯이 행동하나 어쩔 수 없이 정묵이 세동의 똥을 밟았을 때는 웃음이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지금 웃어도 되는 건가 조심스러워지지만 도저히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가 없다. 이럴 땐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웃을 수 밖에. 그나저나 강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되려나. 살인이라도 저질러 감옥에 가거나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자못 심각하다. 머릿속은 이런 생각으로 가득한데도 이 상황이 왜 이렇게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지 속에서 뭔가 간질간질 터져 나오려고 한다. 참 난감하다.   

 

조폭들이 몰려오는 위험한 상황에서 서로의 삶에 무심한 듯 살아가던 강마을 사람들이 몇 잔의 술에 의해 취기에 의해 마음을 열어간다. 덩실덩실 춤을 추며 자신을 둘러싼 껍데기를 휙휙 던져 버린다. 읊조리듯 이어지는 강마을 사람들의 삶은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나를 향해 폭풍처럼 몰아친다. 여산, 소희, 이령, 영필, 새미, 준호, 이들은 이곳에서만 숨을 쉴 수 있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서로가 마음을 나누었다고 해서 가족이 되는 건 아니다. 강마을 사람들에게 조폭들과의 싸움은 그 계기가 되어줄 뿐 지금 이들이 가족이 되었다고 단언할 순 없다. 그런데 여산과 정묵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준호의 입에서 "아와삐이! 아와빠이!"가 터져 나오는 순간 강마을 사람들은 피보다 진한 끈끈한 것으로 연결된다. 새미와 준호에게 엄마, 아빠가 생기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긴 것이다. 이제 '위풍당당'에서 작가 성석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조폭들과 강마을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결말을 선사하는 것 뿐이다. 계속 이어질 삶은 강마을 사람들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 할 터이니.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인간을 제외한 숲에 사는 생명들은 이 일에 무심할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스트 헌트 1 - 구교사 괴담
오노 후유미 지음, 박시현 옮김 / 북스마니아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쯤 유령이 나오는 걸까. 책 중반쯤 넘어가서도 유령이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뭐, 꼭 유령을 봐야한다 그런 것은 아닌데 무서우면서도 아무 일 없이 끝나면 뭔가 허전하고 섭섭해서 말이지. 그렇게 되면 이곳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별로 할 일이 없어질테니 뭔가 일어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분명 구교사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 불려온 영능력자들은 그들 눈 앞에 보여야 할 유령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무녀님과 쿠로다 여사는 '영'이 있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상한 느낌만 받을 뿐 '영'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 구교사에 유령이 있다는 건지, 없다는 것인지 스님, 무녀님, 마사코, 쿠로다 여사의 토론을 넘어선 논쟁을 보고 있으려니 답답해진다. 무엇보다 쿠로다 여사의 구교사에 대한 집착이 이해가 되지 않는데 구교사에 꼭 유령이 있어야 한다는 듯 그 기세가 상당하다. 

 

나르는 정밀하고 비싼 기계를 다루고 있어 영능력자라는 생각이 안들지만(물론 본인도 고스트 헌터라고 했지만) 나르를 제외한 다른 이들도 이 괴상한 집단이 영능력자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모두들 개성이 강하고 실력도 뛰어나 보이지 않는다. 구교사를 무너뜨리기 위해 대외적인 이미지를 위해 교장이 불러들인 존재일 뿐이라 해도 그들은 이대로 물러날 순 없을 것이다. 부끄러워서라도 무언가 해내지 않는다면 이곳을 떠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럼, 이들 중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제령에 실패하고 지박령이니 어쩌니 매번 말을 바꾸는 무녀님? 아니면 가만히 보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이 말만 많은 파계승 스님? 다른 곳은 멀쩡한데 한 곳에만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데도 이것이 전부 지반이 약해 건물이 무너지는 것 뿐이라는 나르를 믿어야 할까. 아니야, 이상한 일이 일어난 이곳에는 분명 나르가 폴터가이스트의 짓이라고 했었지. 마이가 무너지는 신발장을 만졌을 때 따뜻했었으니까. 폴터가이스트가 맞을 것이다. 그나마 실력이 있어 보이는 존을 믿어볼까. 그의 사투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구교사 일 같은 건 잊게 되고 말지만 영능력자들 중에서 그나마 실력이 있어 보이는 존을 믿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냉철한 표정의 아니 냉혹하기까지한 표정의 시부야(아니 나도 '나르'라 부르련다) '나르'는 구교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지반이 약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모든 현상을 논리적으로 대답해 버리니 얄밉긴 하지만 나르의 의견이 가장 믿을만 하긴 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이곳에 유령의 존재가 없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이대로 학교괴담이 사라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어쨌든 이 일이 해결되긴 한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르에게 명쾌한 해답을 듣고 나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냉혹하고 까칠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는 것을 보니 고스트 헌트라고 해도 그리 매정한 인물은 아닌 모양이다. '고스트 헌트'에서는 마이가 대부분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지만 그녀에게 특별한 능력은 보이지 않는다. 나르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기 위해 숨겨진 영능력자였었다, 라고 하면 좋으련만 잡다한 일에나 부려먹을 딱 그정도의 인물로 등장한다. 적당하게 나르과 마이의 인연은 계속 이어지고 새로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나 본데 설마 영능력자들 모두 다시 보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 존과 마사코까지는 괜찮지만 스님과 무녀님은 성격이 까칠해서 별로다. 나르도 까칠하긴 하지만 잘 생겼으니까 봐 준다. 매 사건마다 두 사람의 토론을 넘어선 논쟁을 보고 있으려면 머리가 아플 것이다. 제대로 사건을 해결하면 그나마 다행일텐데, 나르보다 실력이 없으니 이것도 기대하긴 힘들터, 앞으로 어떤 활약을 할지는 두고봐야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타터스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타터스'의 배경이 되는 미래가 지금보다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미래인지 알 순 없으나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보다 좀 더 많이 문명화 되고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고 해서 지금보다 행복한 것은 아니란 것이다. 대규모 생물학 폭탄으로 중장년층 대부분이 죽고 70, 80대의 노인인 '엔더'들과 십대 이하의 아이들인 '스타터'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미래에 대한 환상을 품게 하기 보단 결코 오지 않기를 바라는 미래의 끔찍한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다. 이곳이 지금보다 미래라고 단언할 수 없을 정도로 인격이 말살된 이곳은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에서 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현재보다 문명화 된 것이 없다.

 

200세 이상을 살아갈 수 있는 이곳에서 부유한 엔더들이 꿈꿀 수 있는 미래는 젊은 신체을 빌려 지나가 버린 젊음을 다시 즐기는 것일 것이다. 내가 이곳에서 살아가는 부유한 엔더 중 한 명이라면 충분히 유혹을 느낄만 하다. 그러나 물건을 고르듯 자신의 취향에 맞게 십대 아이들의 몸을 대여하는 엔더의 모습은 역겹기만 하다. 자신들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상원의원과 대통령 그리고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의 올드맨이 만든 세상을 환호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데는 무한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런 곳에서 십대인 캘리는 생물학 폭탄에 의해 부모를 잃고 남동생 타일러와 거리에서 살아간다.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며 집행관들을 피해 살아가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하다. 타일러의 몸이 점점 약해져 가는 것을 보면서 캘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을 찾아가는 것 뿐이다. 자신의 몸을 빌려주고 돈을 받을 수만 있다면 타일러의 아픈 몸을 낫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당하게 돈을 받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캘리가 계약서에 사인하길 바라며 초조하게 기다리는 틴넨바움을 보니 무언가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캘리가 이대로 거리로 돌아가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겠지만 그래서는 지금처럼 살아가는 것에 변화가 없고 더 이상의 희망도 가질 수가 없다. 세 번의 신체 대여이후 타일러와 좀 더 편안한 상태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만이 모든 것을 견딜 힘을 준다. 그런데 캘리는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의 위협뿐 아니라 자신의 몸을 빌린 헬레나의 계략에 의해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어 무사히 계약이 끝나 돈을 받을 희망이 점점 사라져 간다.

 

헬레나가 캘리의 몸을 빌린 이후의 모든 일은 예정된 것이었다. 블레이크와의 사랑까지도. 블레이크의 마음은 어떨까. 캘리를 사랑했을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랑까지도 꾸민 행동일까. 사랑이었을 것이다. 캘리와 함께 있을 때 행복하게 보였으니까. 그녀와 함께 찍은 사진에서 너무나 환하게 웃고 있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의 존재가 캘리를 아프게 하지만 그들의 인연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위험한 일이나 결국 운명은 그들을 다시 만나게 할 것이다. 헬레나가 약속한 것들이 캘리와 타일러를 보호해 주지만 올드맨은 이 모든 것들을 잃을 수 있음을 경고한다. 맞는 말이다. 하루 아침에 다시 거리에서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 올드맨에게는 그 정도의 힘이 있고 캘리를 곁에 두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사람이니까.

 

올드맨과 캘리, 그리고 블레이크, 이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날 수가 없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는지, 생물학 폭탄이 터질 수 밖에 없었던 그때의 상황에 대해서 그리고 올드맨과 캘리 두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들려줘야 할 이야기도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들을 준비가 되었다. 지금보다 더 끔찍한 일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무엇이든 캘리를 친구로 생각하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어 준 사라를 위해 견뎌낼 것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