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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이선희 옮김 / 예담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몇 번이나 손에서 책을 내려 놓았는지 모른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다시 한 번 후지슌의 죽음과 마주하는 것이 두렵다. 부모는 아이가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 믿을 수 밖에 없다는 말이 시간이 지날 수록 가슴에 남아 나를 울린다. 후지슌의 시간은 멈춰 버렸고 그는 엄마, 아빠의 가슴속에서만 조금씩 성장해 간다. 사나다 유와 사유리를 보며, 거리를 지나는 아이들을 보며 '후지슌이 죽지 않고 지금 살아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떠올리는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그 자식을 가슴에 묻고 평생 함께 하는 것이다. 그래서 20년 간의 사나다 유의 고백, 후지슌의 부모의 고통, '누가 후지슌의 죽음에 책임져야 하는가'에 대한 기자 다하라와 혼다 씨를 통하여 전하는 우리들의 통렬한 비판까지, 이 모든 것이 담겨진 이 책을 쉽게 내려 놓을 수 없었다.
20년간 이어진 사나다의 후지슌에 대한 기억은 독자들에게도 그 세월만큼 후지슌을 기억하게 해 주었다. "사나다, 왜 후지슌을 지켜주지 못했지? 후지슌은 왜 부모에게나 선생님께 자신의 고통을 말하지 않았지?" 너무나 섬세하고 사려 깊은 감성을 지닌 후지슌은 부모가 받게 될 고통과 슬픔만을 생각하며 모든 고통을 온전히 홀로 감내하고 더 이상 버텨낼 수 없게 되자 자살을 하게 된다. "네가 죽고 나면 네 부모님이 받게 될 고통은 생각하지 않은 거냐. 네 고통이 너무 아파서, 힘겨워서 그런 생각하지 못했던 거야" 후지슌이 나의 눈 앞에 있다면 이렇게 묻고 싶었다. 후지슌은 자신이 죽고 난 뒤의 상황을 모두 그려 봤을 것이다. 자신이 떠나고 난 뒤 가족들이 어떻게 될지 제일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걸음만, 조금만 더 나아가 부모님께 손을 내밀었다면 지금 후지슌은 살아있었을 것이다.
아이가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를 그려 보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이런 끔찍한 왕따 행위는 일어날 수가 없다. 부모는 자식이 태어나면 늘 행복하기만을 바란다.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내 아이가 왕따를 당해 끔찍한 고통을 당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부모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후지슌의 죽음으로 많은 이의 삶이 바뀌었지만 한 집단에서 제물이 되었던 이를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은 살아가면서 조금씩 그 책임을 질 수 밖에 없었으리라.
20년간의 세월은 아들을 지켜주지 못한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후지슌의 부모에게도 온전히 아들이 겪었던 고통 이상의 감정을 경험하게 했다. 가해자들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던 그들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아들과 함께 이 세상을 놓아줄 수 있었다. 후지슌이 마지막 여정에 꼭 가고 싶었던 곳, 그곳에 가면 무엇이 보일까. 어떤 감정을 느낄까. 조금 더 세월이 지난 후에 이곳을 마주하고 싶은 사나다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후지슌을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은 과거의 페이지에서만 볼 수 있지만 가끔 그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삶의 마지막에 이르면 후지슌이 가고 싶어 했던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 그가 그곳에 가고 싶었던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