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구혜영 옮김 / 창해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돌이켜 보면 학창시절 별것도 아닌 일에 왜그리 죽을듯이 힘들어하고 괴로워했나 싶다. 대체적으로 '우정'에 목말라하며 싸우고 화해하고 상처받으며 성장해 온 시간들 지금은 그때의 친구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을지 세상살이에 거의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이렇게 추억을 더듬어가니 내가 너무 늙어버린 느낌이다. 

 학교안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이 이 책의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학교에 떠도는 괴담으로 영화를 만들거나 책을 내기도 하지만 교내에서의 살인사건은 그리 흔한 소재가 아니다. 이런 기억을 아이들이 가지고 가야 한다면 학창시절을 떠올렸을때 끔찍하기만 한 것은 아닐지. 세이카 사립 여자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집단이 존재하는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기에 더 긴장감있게 느껴지고 책장을 넘기기가 오히려 섬뜩할 정도다. 학생과 선생님의 관계의 친밀함은 어느정도의 선에서 그어질 수 있을까. 너무도 편안한 마에시마 선생님과 학생 게이와의 관계 그리고 요코, 모두들 선생님과 제자라고 하기엔 살인사건으로 인해 심적으로 의논하며 맘이 통한다고 해도 여학생들의 선생님에 대한 동경을 넘어서는 듯 하여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너무 고지식한것일까. 

계속적인 살인위협을 받는 마에시마. 늘 긴장감속에 살아가는 중에 벌어지는 남자탈의실에서의 밀실 살인사건, 학생지도부 무라하시 선생님의 죽음은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넘어 즐거움을 던져줄지도 모른다. 문제학생들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선생님을 좋아할 학생들은 없을테니까. 불끈 나도 화가나서 30대라는 나이를 잊고 흥분하게 된다. 버팀목으로 문이 닫혀진 남자 탈의실 그리고 여자 탈의실은 자물쇠로 잠겨진 상태였다. 그림으로 보여주며 설명하는 자물쇠 트릭을 보면서 대체 범인은 어떻게 빠져나간 것인지 세세한 설명을 듣지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나. 열심히 그림을 쳐다보지만 머리속만 복잡해질 뿐이다. 아마 이 사건을 아는 사람중 나만 이 자물쇠 트릭을 모르는가 보다.   

이런 장르의 책을 읽게 되면 계속 범인이 누구일 것이다고 예상을 하며 읽게 마련이라 나도 읽는 중에 동료 선생님인 아소와 그의 부인을 의심했건만 역시 비켜가는 범인의 정체. 마에시마와 전혀 무관하지는 않기에 조금 위안삼아 보지만 늘 범인을 맞추지 못하는 나의 무능함에 두손 두발 다 들게 된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은 두번째 희생자가 나와 그 긴장감은 극에 달하고 교내에 돌아다니는 경찰들의 존재는 아이들에게 혼란만 주게 된다. 하지만 왜 범인이 마에시마 선생님을 노리는지 아이들의 속닥거림과 관심은 그에겐 거북함만 던져주고 이런 일에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정이 안가니 나또한 죽음에 대해 그저 아무렇지 않게 떠드는 사람들에게 정이 안간다. 

어떤식의 살인사건이 일어날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이 책은 너무 쉽게 드러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사건의 실마리들이 풀려나가면서 오히려 이런 트릭들이 작가의 의도로 완전히 속은것이 아닌가 어리둥절하게 된다. 역시 맛깔스럽게 풀어내는 사건들. 솔직히 살해동기를 나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 시절 그 나이때의 아이들의 고민으로 생각 해 보면 완전히 이해 못할 것도 아니어서 나름 처절하다고 생각해 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하지만 100% 이해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아이들의 떠들석한 소리, 공차는 소리, 수업시간의 조용함 이런것들이 학창시절 내가 떠올리는 모습이지만 이 책을 통해 학교란 무대가 그리 즐거운 공간은 아니란 것과 아이들의 꿈이 짓밟힐수도 있는 공간이란 것을 알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다양한 이들이 있는 이 집단은 험악한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전 아이들을 보호하기엔 역부족인 공간인 모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야기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9
베벌리 나이두 지음, 이경상 옮김 / 생각과느낌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백인이라 함은 겉모양으로 백인임이 분명한 자이거나 일반적으로 백인이라고 인정되는 자이다. 그러나 겉모양으로는 분명히 백인이라고 해도, 일반적으로 혼혈인이라고 인정되는 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백인우월주의는 내가 살아가는 곳이 백인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그들의 오만함을 겪어보지 않았지만 대중매체를 통해 충분히 인지되어 왔던 일이다. 영화를 통해서도 드러난 백인우월주의를 느낄 수 있었고 세계 곳곳에 뿌리박혀있는 그들의 정책을 방안에 앉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아이들의 눈으로 본 세상은 희망이라는 단어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암흑천지인듯 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한번도 가본적이 없고 평생 가 볼 수 있을까 싶은 곳. 그 곳에서 백인들에 의해 정해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했는지 놀랍기만 하다. 어른들의 시각이 아닌 아이들의 시선속에서 적혀진 글이기에 끔찍한 장면은 없지만 자신의 꿈조차 이룰 수 없는 세상은 온통 무채색인듯 하다. 1948, 1955....1995, 2000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실태를 알 수 있게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며 그들이 처한 상황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 답답하고 처절하게 느껴진다.  

자신은 할아버지가 유럽에서 오셨다고 컬러드라고 아무리 이야기 해도 '커피에 우유를 타면 어떻게 되나?"란 물음에 '색깔은 바뀌지만 그건 그대로 커피입니다'란 대답을 하는 제이컵의 아버지는 이 말도 안되는 비유에 컬러드가 아닌 아프리카 원주민이라고 쓰여진 서류 쪼가리를 쥐며 막막하기만 하다. 영혼이 빠져나간듯 멍한 모습의 그는 직장에서 쫓겨날까 전전긍긍하게 되고 그날 제이컵의 생일잔치이건만 즐겁지가 않다. 제이컵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순 없지만 그렇게 정신없는 중에도 온 식구가 모여 아이의 생일을 축하하고 제이컵이 그렇게나 갖고 싶어했던 론 레이저 옷을 엄마가 밤새 지어 선물해 주는 모습은 여느 가족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곳이나 그곳이나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건만 왜 이런 차별을 겪어야 하는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투쟁하고 싸워서 얻어야만 하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난 절실하게 느끼지 못했던 일들이 어떤이에게는 생명을 내놓고서 싸워서 가져와야 하는 것도 있다. 인간에 대한 존엄성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된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없어졌지만 그들 마음속에 남아있는 장벽은 어찌 할 것인가. 곳곳에 잔재되어 있는 차별에 대한 뼛속깊이 각인된  생각을 바꾸는데는 역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백인들의 학교에 당당하게 입학하는 로사. 누군가 그 첫번째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엄마의 말에 용기를 내어 보지만 목숨조차 위협받는 그 곳에서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첫 발걸음은 중요하다. 다른이에게 희망을 주니까. 난 그런 용기가 없지만 그것이 용기란 것은 알고 있기에 가슴 먹먹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백인이지만 로사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아이들의 용기에도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이지만 세상은 변화될테니까 희망이라는 단어를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쿄 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새벽에 책을 덮고 엄마에게 전화해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눈물이 났고 가슴이 찡~한 감동을 느끼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워낙 성격이 무뚝뚝하고 어릴때부터 애정표현을 거의 하지 않아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지만 분명 내 마음을 아실것이라는 자기변명과 함께 아직은 엄마가 내 곁을 떠날때가 되지 않았다는 안일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마사야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초반에서 중반쯤 이어지면서 조금은 지루하게 전개되기도 하고 엄마가 힘들게 돈을 벌어 뒷바라지를 하는데 마작이며 술이며 어찌 저리 방탕하게 지낼 수 있는지 조금은 화를 내며 책장을 넘겼는데 생각해 보니 나도 마사야에게 뭐라 할 입장이 아닌데, 그리 성실한 딸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늘 받기만 하는 사랑이 어떤 것인가 절감하며 읽게 된다.  

언제나 마이페이스로 달리는 아버지. 참 엉뚱하시다. 마사야의 말처럼 정말 아버지의 직업은 무엇일까. 나도 학창시절 아버지의 직업란에 뭘 써야할지 여러가지 일을 하시는 아버지의 직업을 딱 꼬집어 적지 못해 그저 '회사원'이라고 쓴 기억이 있지만 마사야의 아버지의 직업은 참으로 안개에 싸여있는듯 도무지 짐작을 할 수가 없다. 그만큼 아버지와 아들간의 대화가 없고 왕래가 없다는 이야기도 되지만 아버지의 젊은시절 방탕한 생활이 자식교육에서도 여실히 드러나 좀 안타깝기도 하다. 하지만 직업을 선택함에도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하게끔 자유롭게 내버려두는 모습은 존재하는것 만으로도 많은 힘이 되어주는 아버지임에 틀림이 없다.  

나이순으로 세상을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이 먼저 떠나게 됨을 알면서도 막상 나의 일이 되면 먹먹하여 충격에 빠진다. 갑상선암에 걸려 수술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는 어머니임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늘 자신의 일에만 빠져 지낸 마사야는 지금도 여전히 엄마와 대화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 "벳푸에서 살던때가 그립네. 엄니는 온천을 좋아했지?" 대답없는 엄니지만 늘 그렇게 엄니를 그리워한다. 엄마가 아닌 엄니로 부르는 마사야. 시골스럽게 구수하게 들리고 더 다정하게 느껴진다.  

다 큰 청년이 엄니와 함께 하는 도쿄에서의 생활, 자유를 빼앗기는 듯 하지만 집에 오면 따뜻한 음식이 있고 온기가 있어 외롭지 않다. 위암에 걸린 엄마를 새집에 모셔와 요양생활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지만 늘 그렇듯 기회란 것이 자주 오는게 아니다. 시간이 얼마 없다. 엄니에게 도쿄타워에 같이 가자고 약속해 두었음에도 함께 하지 못했는데 이젠 그 기회조차 없으니 그녀의 기억속에 아들과 함께한 도쿄타워는 간절히 원했기에 이미 가 본듯 생생했던 것일까. 마사야는 모시고 가지 못한 도쿄타워에 대한것보다 이젠 기억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엄니의 모습이 슬플뿐이다.  

내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늘 따뜻한 밥을 먹이고 자신은 찬밥을 먹고 사람들에게 다정다감했던 엄니의 모습은 돌아가신뒤에 나의 인맥으로 장례식에 찾아왔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모두 엄니의 밥을 얻어먹었던 사람이란 것에 놀란다. 처녀시절 멋지게 차려입고 사진을 찍은 엄니의 모습은 이제 세월에 바래지고 화장을 한 나이든 엄니의 모습이 관속에 누워있지만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속에 존재해 계시니 그리 슬프지 않다. 모아둔 돈이 없느냐는 아들의 말에 방에 가서 마사야의 졸업장을 가지고 오는 엄니. "내 재산은 이것뿐이여" 5년 대학생활을 한 아들의 뒷바라지로 자랑스럽고 대견한 자신을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게으르고 성실하지 못한 자신의 과오로 1년을 더 학교에 머무른 마사야는 할말이 없었겠지. 남들처럼 손자를 안아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아들과 함께 한 도쿄에서의 생활은 그녀에게 행복한 시간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자매들과 함께 한 여행들. 마지막 투병생활중 "죽는게 나아"라며 주사바늘을 뽑는 약한 모습을 보여준 엄니였지만 아버지에게는 늘 강한 모습을 보였고 아들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운 엄니였기에 혼자 남아도 그 따뜻함으로 세상을 충분히 살아질 것이다. 문득문득 그리워지고 외로워질지라도 말이다. 할머니의 "낳아준 정보다 길러준 정...."이란 말이 늘 가슴에 담겨 친어머니가 아닐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지만 문서상의 관계가 뭐그리 중요할까. 아버지를 꼭 닮은 난 엄니의 한부분이라도 닮았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며 살아왔지만 친어머니의 존재를 묻어두고 길러준 엄니에게 아들로 살고자 한 마사야의 마음이 나를 울린다. 난 옹졸하게도 끝까지 이 사람의 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지 않을까 내내 궁금했는데 나도 세상의 잣대로 그들을 보았나 보다. 문서상의 관계가 아닌 마음으로 맺어진 관계가 얼마나 진실할 수 있는지 잘 알면서 이들의 관계에서 따뜻한 정을 느꼈음에도 이런 생각을 하다니 마사야의 엄니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을 먹지 않아 세상을 차갑게 느꼈나 보다. 그녀를 만난다면 금세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나에게도 기회가 없음에 슬퍼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1
미우라 시온 지음, 윤성원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학교 다닐때 체육시간이라면 너무나 싫어해서 오늘 수업에 체육이 들어있으면 비오길 빌었던 나였는데 특히 달리기를 해야할때면 배가 아프고 손과 발에 힘이 쭉 빠지니 지금도 '달리기'하면 몸에서 긴장이 풀려 흐느적거리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나처럼 달리기라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것 같은 사람들이 모여 하코네 역전경주에 나간다니 평범한 나도 무한한 연습을 통해 이들처럼 참가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손과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그나마 기초체력이라도 있는 이들이니 역전경주에 나가지 부실한 신체를 지닌 나는 그저 깃발을 흔들며 응원밖에 할것이 없겠다. 이것도 체력이 필요한 거지만.  

오래달리기를 할때면 모두와 함께 발을 맞추어 앞사람과의 간격을 벌어지지 않게 기를 쓰고 쫓아가야 하는데 난 늘 후발팀에 그것도 남들은 다 뛰고 쉬는데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뛴 기억뿐이다. 그래도 끝까지 완주하여 나 자신에게나 우리반 친구들에게나 미안함은 덜었지만 남들처럼 뛰지 못하는 내가 그땐 참 싫었었다. 가슴이 터질듯 아프고 피 냄새가 목구멍을 올라오지만 멈추지 않고 끝까지 달려 어깨띠를 건네주는 지쿠세이소의 주민들. 한명의 낙오자라도 생기면 다른이들도 뛸수가 없다. 죽을듯이 아픈 신동도 팀의 순위를 떨어뜨리지만 쓰러질지라도 달린다. 힘들면 포기하라고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깨띠를 건네며 단지 "미안하다"고 할뿐이니 정신력이 대단하다.  

한명 한명이 정예요원이고 더 이상의 인원이 없기에 열심히 달리지만 무엇보다 모두들 달리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게 되어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풍경들과 차갑게 부딪치는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기분에 한껏 고조되어 간다. 발이 아파 피가 흘러도 유키는 내리막길을 가케루가 평지에서 뛰는만큼의 스피드를 느끼고 달리는 이 길이 얼마나 고독한지 느끼며 가케루를 진정 이해하게 된다. 강압적인 스피드 올리기의 훈련이 아닌 자유롭게 그들에 맞게 팀을 이끌어가는 기요세의 모습은 사람들을 마음으로 이끌고 있어 더 강한팀으로 탄생될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인간한계를 넘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간혹 볼수가 있다. 그래서일까. 난 이들이 하코네 역전경주에서 우승하기를 많이 바라고 있었나 보다. 이들은 그저 하코네 역전경주에 나가기만을 바라고 완주하는 것에 목표가 있었지만 난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그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역시 우승은 무리였을까. 지난 시절 가케루로 인해 달릴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한 도쿄 체육대학의 사카키는 끝까지 지쿠세이소 사람들에게 적의를 불태우고 지쿠세이소 주민들도 도쿄 체육대학만큼은 이기고 싶어한다. 내년 하코네 역전경주에 참가할 시드권을 따기 위해선 10위안에 들어야 하는데 그 10위에 걸쳐져 있는 학교가 도쿄 체육대학. 이쯤되면 대충 예상할 것이다. 두 대학의 각축전이 될 것이라고. 그러나 지쿠세이소 사람들은 이미 그들보다 더 먼 세상을 내다보고 있었고 오로지 달리는 것에만 집중할 뿐이다.   

걷지 못하게 될지라도 뛰고자 하는 그들을 누가 따라올 수 있을까. 혼자서 뛰며 극한의 고통을 겪으면서 사색의 시간을 갖는 한명 한명의 독백을 읽으며 달리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폭발적으로 삶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테니까. 조금만 힘들면 포기 해 버리는 나도 온몸을 흐르는 땀을 느껴보고 싶지만 약한 의지로 그들의 근처에도 따라가지 못하니 그저 응원하며 박수를 보내는 것밖에 할 것이 없다. 응원도 하자면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니 강하게 불고 있는 바람을 맞으며 달릴 순 없어도 조금씩 조금씩 열정적으로 부딪칠 수 있는 무언가에 빠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진 1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경숙님의 리진을 읽으면서 무의식적으로 계속 나는 김탁환님의 리심을 비교하고 있었다. 어린시절부터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는 리진을 보면서 "다행이다"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겼지만 마지막장을 넘겼을땐 눈물이 나서 코를 훌쩍여야만 했다. 따뜻함과 사랑이 녹아있는 모습엔 오히려 작은 불행이 크게 각인되어 오는 것일까. 아니 리진을 살리기 위해 손가락을 내 놓은 강연의 존재는 프랑스 외교관 콜랭과의 사랑보다 더 애잔하게 느껴져 눈물이 흘렀다. 강연 그에게는 리진이 사랑이었고 그녀에게는 연민이었기에 그녀를 정식 아내로 맞아들이지 못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 콜랭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으로 다가온다.   


리진, 리심 이 두 인물은 동일인이다. 서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괴로워하고 조선에서도 조선의 복색을 하지 못하고 파리의 여인처럼 드레스를 입는 그녀는 조선인의 눈에 낯선 인물로 다가와 자신의 존재에 크게 외로움을 느낀다. 죽은 딸을 보는 듯 리진을 바라보는 중전에게 리진은 손톱밑에 든 가시같은 존재였을까. 그저 마음을 터 놓고 싶은 상대였을까. 어린나이에 궁에 들어와 자식들을 잃으면서 살아야겠다 마음 먹고 점점 외로워진 중전에게 리진은 어떤 존재였을까. 한 남자를 나눠갖기 싫다는 마음이 그녀를 프랑스로 몰았다고 해도 조선을 위해 적절한 외교정책을 펴며 차갑고 냉정한 모습을 보이는 중전이 리진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음을 알게 한건 일본 낭인의 손에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이다. 강연의 손가락이 잘렸다는 말을 들었을때도 그를 찾아다니며 살아온 그녀였는데 중전의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프랑스로 콜랭과 함께 떠나는 리진에게 반지를 끼워주는 중전은 피붙이 같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궁녀는 왕의 여자이기에 궁밖에서 살아감을 한번도 생각 해 본적이 없건만 누군가 리진에게 "넌 프랑스인과 함께 머나먼 프랑스에서 살게 된다"라고 이야기한들 미쳤다고 하며 고개를 젓고 말것인데 기이하다면 기이한 그녀의 인생이 나같이 평범한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는 부럽게만 느껴지니 맘자리가 참 옹졸하다. 조선의 백성들이 힐끗거리며 바라본 시선속에 나도 함께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수수한 조선인의 복색과 다른 이쁜 드레스가 부러웠을게다. 타국에서 그녀가 겪었을 외로움과 존재감에 대해서는 외면한채 그저 눈에 보이는대로 잔뜩 시샘하며 먼 나라를 돌아다닌 그녀에게 "서양귀신"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댔을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있었다면 콜랭과의 인연이 달라졌을까. 파리에 가면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자신의 고향에 같이 가자는 약속조차 지키지 않을때 이미 리진은 결혼이라는 꿈을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자문대로 "아이가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물론 아니었겠지. 자신의 짊을 아이와 함께 나누게 되지 않았을까. 뿌리를 알 수 없어 늘 괴로워하는 그녀가 조선에 가고 싶었지만 조선에 가서도 설 자리가 없었음을 느꼈을때의 자괴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자신을 길러준 서씨와 서씨를 어머니라 부르며 함께 자란 강연이 옆에 있어 그나마 마음자리 한구석이 따뜻해지지만 그녀에게 돌아오는 질시와 고통은 스스로 감내해야하기에 중전의 말대로 "내가 누구인가?"란 질문에 "종내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는 인생을 살아가는 누구나에게 해당하는 말을 깨닫고야 살아감의 의미가 허무하기 짝이 없다는걸 알았을 것이다.  

사랑이야기가 많이 보이는 리진에선 중전을 향한 마음이 절절히 느껴져 가슴이 많이 아팠다. 냉정하지만한 중전이지만 조금의 곁을 두어 주기에 리진의 삶이 그리 외롭지 않음을 알게 되어 다행스럽다. 부모님조차 일찍 여위고 세상이 그녀에게 손을 뻗지 않을때 곁에 리진을 위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았기에 마음이 한결 놓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것들이 많을 수록 버리게 되는 소중한 인연들에 나 또한 눈물로 그녀를 보내게 된다. 중전의 죽음을 보면서 리진이 손에서 놓아 버린 것을 바라보는 것은 나에게도 아픔인 것이다. 강연에게는 은방울, 중전에게는 서나인, 친구 소아에겐 진진으로 불리운 리진. 임금에게 하사받은 이름인 리진을 현 시대의 사람들이 기억해 주기에 그녀의 삶이 그리 서럽지 않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