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수집가 1
자비네 티슬러 지음, 권혁준 옮김 / 창해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제목만 들어도 한여름밤을 오싹하게 만든다. 역시나 제목으로 어떤 내용일까 대충 짐작하고 읽었음에도 아이가 희생될때마다 온몸이 떨리는듯 하여 사건을 마주할 수가 없다. 취미로 우표수집이나 동전모으기 등을 한다는건 들어봤지만 아동수집이라니 아이를 수집한다기 보단 기념할만한 아이의 송곳니를 수집하는 것이지만 이 세상에 이런 사람과 한 하늘 아래 숨쉬고 있다는 것이 겁나고 두렵기만 하다. 대중매체를 통해 이런 범죄는 늘상 있어왔고 사람들은 '나의 아이는 이런일이 생기지 말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할 것인가. 너무도 끔찍하여 누구에게도 일어나면 안되는 일이라 책이란 가상공간이지만 내 가까이에서 일어난듯 가슴이 떨려온다.  

어른으로 자라지 못하고 정신적 세계관이 닫혀버린 알프레드, 아마 아버지가 살아있었다면 형이 살아있었다면 그의 인생이 달라졌을까. 아니 십대에 도로에서 달리는 차를 향해 돌을 던지지 않았다면 다른 인생을 살아갔을까. 아마 어떤 계기였든 그 시기는 늦춰질 수 있었겠지만 잔혹한 그의 행동으로 아이들은 한명씩 희생되었을 것이다. 벤야민을 만나고 이 아이를 데려가기까지 구체적으로 사건서술이 이루어지나 다행스럽게도 어떻게 죽이는지 세세한 언급이 없다. 여린 아이가 희생되는 것을 똑바로 마주할 수 없었을테니까. 조마조마해서 슬슬 피하며 책장을 넘겼다. 다른아이에게 저지른 살인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그저 사람들이 대화하는 속에 이런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만 할뿐이다.  

독일에서 3명의 아이들을 죽이고 이탈리아에서 또 살인을 저지르는 알프레드 그래서 마라이케와 카르스텐은 범인의 흔적을 놓치고 그저 다른일로 수감되었거나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만 늘어놓을뿐이다. 그때부터 이야기는 쭉 늘어지는 느낌이다. 펠릭스가 사라지고 아이가 살아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고 다시 그 곳으로 오는 안네. 알프레드는 이름을 엔리코로 바꾸고 여전히 자신이 전지전능한 존재인듯 죽음에 대해 결정권을 가진다는 생각아래 아이들을 죽인다. 그런데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에게 집을 사게 되는 확율은 대체 얼마나 될까. 이런 설정은 우연이라고 하기엔  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형사나 경찰들이 살인자의 자취를 찾아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살해된 아이의 부모를 중심으로 아주 우연한 기회에 펠릭스가 죽을때 목격했던 말도 잘 못하는 알로라란 여인에 의해 사건의 실마리가 풀려가다니 기동력있게 형사들이 사건을 풀어갈 줄 알았는데 설정이 솔직히 지루하게 느껴진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아이들은 계속 죽어나가고 범인은 잡히지 않았겠지.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이는 같은 자세의 사체들. 연쇄살인으로 보여져 의욕있게 마라이케가 덤벼들지만 범인을 가까이에서 놓치고 범인을 잡겠다는 열정 또한 보이지 않는다. 죽을힘을 다해 더이상의 희생을 막겠다는 생각이 없다니. 이탈리아에서의 아동들이 실종되는 사건을 보고 휴가를 범인이 있는 곳으로 오는 마라이케 가족들. 범인을 중심으로 속속 관계된 사람들이 모이고 점점 포위망을 좁혀오는 듯 보여 일순 긴장감을 주지만 여전히 수동적으로 보이는 형사 마라이케의 모습에 실망스럽기만 하다. 희생된 아이의 부모가 범인을 잡았다고밖에 할 수 없으니 그저 수색하고 범인을 쫓아 잡는것만 하는 것은 범인이 빨리 잡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독자로서는 늘어지는 시간들속에 점점 지쳐만 간다.  

이제는 더이상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란 안도감만 가지면 되는 걸까. 억지로 끼워 맞춘듯한 이야기에 한동안 멍하기만 하니 조금은 범인이 고통스러워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오히려 결말은 범인에게 면죄부를 주게 된 것이 아닌가 조금 억울한 생각이 든다. 행복한 가족의 울타리안에서 아이들을 잘 키워야겠고 이런 범죄가 더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간절히 하며 책장을 덮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엔드 게임 도코노 이야기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삶은 역시 새로운 게임의 일종인것일까. 크리스마스날 태양의 눈부심속에 서 있는 에이코, 도키코, 히우라 이 세사람을 바라보는 다카하시는 새로운 가족을 맞으며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위해 한걸음 내딛는다.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지만 만들어진 행복이라는 생각에 슬프기까지 한 장면, 아무것도 모르는 다카하시에게는 오롯이 느낄수 있는 행복감일테지만 말이다. 도키코의 아버지가 빨래꾼이라고 말하는 할머니를 따라가면서 에이코와 도키코 이 두 모녀의 생활은 점점 위태해지는 듯 하다. 십 몇년이 넘도록 찾지 않은 남편에 대한 존재. 그저 바람이 나서 나가버린것이라고 믿고 싶은 에이코는 자신마저 그렇게 사라질까 두려울뿐이다. 왜 이들에게 이런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는지 점점 명확해진다고 생각했으나 책장을 넘길수록 안개속을 헤매이는 느낌이다. '빛의 제국'에서 열 편의 단편이야기들중 흑과 백이 서로 뒤집고 뒤집히는 게임을 연상시키는 오셀로게임이라는 제목의 짧은 이야기를 '엔드게임'이라는 큰 무대로 에이코와 도키코, 하지메 이 세 가족을 옮겨놓았다.   

어린시절 보고 싶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장면을 마음속에서 닫아버린 도키코, 그녀가 보게 되는 은색 볼링핀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엄마인 에이코는 사람 머리가 있어야할 자리에 딸기가 얹어진것을 본다. 먼저 뒤집히기 전에 뒤집어야 한다. 일반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환상을 본다느니 망상이라느니 쉽게 떠들겠지. 물론 나도 그 중에 하나이다. 이것이 비현실적인 세계의 이야기란것을 알기에 동조하며 읽을뿐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속에 함께 한 이들이 몇 십년전에 사라진 남편을 찾을 수 있는 연락처에 전화를 걸어보지 않다니. 조금 답답하다. 우연히 거리에서 보게 된 남편의 얼굴. 점점 혼란스럽고 뒷걸음치며 도망가고 싶었으나 이제는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권력을 탐하지도 말고 재야에 묻혀 살아가야 하는 도코노인들은 일족간의 결혼을 권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어기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일족이라는 기억을 심어주어 함께 하고 싶은 이때문에 이 모든일이 벌어졌는가. 역시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인 것일까. 조금 쉽게 풀려나간다고 생각했으나 이 모든 것이 또한 만들어진 기억이라면? 책장을 넘기는 것도 쉬운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단지 뒤집고 뒤집히는 게임이 아닌 것이다. 서로 뒤집고 뒤집히다가 전혀 다른 세계에 와 버린 사람들을 보는 나는 어쩌란 말인가. 뭐가 거짓이고 참인걸까. 적과 아군도 구분되지 않는 곳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이 출현할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할 상황, 그러나 그들의 기억이 빨래꾼에게 세탁되어 산 1년간은 분명 평화롭고 행복했기에 모든 진실이 드러나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에게 기만당하는 것은 에이코와 결혼하는 다카하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과 화합하기 힘들었던 히우라와 함께 하는 모습은 생경스럽다.  

이들이 본 담쟁이덩쿨, 딸기, 은색 볼링핀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역시 도키코가 언급했던 '타인의 정신적으로 일그러진 부분에 반응하는 것'일까. 내 안에 일그러진 무엇이 그렇게 보여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보여질까. 그들 눈에 나도 입안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식물줄기가 뻗어나오고 점점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오래전에 나도 뒤집혔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즐거워진다. 책을 덮고나서도 이 이야기에 놓여나지 못하는 모습이라니 감정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인간들의 모습은 아마 오랫동안 하이지마 가 사람들에게 순수한 모습으로 비춰지진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좀 혐오스럽고 공포스러울진 모르지만 뒤틀린 부분이 보여지니까 좀 보듬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뒤집어서 억누르는것이 아닌 감싸안아주는 새로운 게임을 해 보는 것도 보람될 것 같은데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민들레 공책 도코노 이야기 2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빛의 제국'에 이어 내가 만나는 도코노 일족의 두번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제는 할머니 소리를 들으며 나이를 먹은 '미네코'의 회상으로 나에게 들려주는 마키무라가의 사토코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가 덤덤히 들려주는 이야기는 오래전에 아버지가 주신 공책의 이름을 '민들레 공책'이라고 부르며 기록을 해 두었으나 거의 유실되고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 여름날을 오래도록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지만 세월이 흘러 그것조차 여의치 않다. 하지만 연분홍 리본을 묶고 함께 학교에 가자고 함께 약속했던 사토코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다. 

다른 사람의 기억을 넣어두는 능력을 가진 도코노 인들이 이 마을로 들어온다. 자신의 능력이 괴롭긴 하지만 그들의 존재 자체로 사람들이 마음을 편안해 질 수 있기에 기꺼이 운명으로 받아들인 사람들.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부분들을 모은게 우리라고 이야기하는 미쓰히코의 목소리는 어쩌면 슬프기도 하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나도 숙연해진다. '나'라는 주체성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길 원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재의 시선으로 보자면 여러 사람의 모습을 넣어둔 도코노인들은 주인 없는 몸을 가진 듯 보일 수도 있지만 많은이들의 삶을 넣어둔 큰 서랍을 가졌기에 자신을 불태우고 다른이들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모습이 나와 다르다고 냉대할 수 없게 하는 힘을 가진다.   

'넣어두기', '울림' 이란 단어가 이젠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빛의 제국'에서 도코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익숙해진 것일까. 천청회에 모여 도코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미쓰히코 가족들의 모습이 미네코에게는 낯설고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도코노인들을 모르나?' 난 그 앞에서 으스대고 싶어진다. 뭐 그렇다고 도코노인들이 나를 알아줄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책에 너무 동화된 것일까 도코노인들이 꼭 존재하는 것처럼 실제처럼 가깝게 느껴지니. 사람들 가까이에서 도와주며 살고 있는 도코노인들. 타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주는 이들이 모두 도코노인들이겠지.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그 힘을 의롭게 쓰기에 옛날옛적부터 구전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그들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것이리라.   

지금에야 조금만 능력이 뛰어나도 으스대며 자랑하기에 정신이 없지만 조용히 그 힘을 숨기고 살아가는 도코노인들이 반드시 존재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니 존재하지 않아도 그렇게 믿음으로서 세상이 조금은 살만한 곳이라고 따뜻한 곳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잠에서 깨어나면 꿈일까, 생시일까, 구분이 가지 않은 신비한 일족에 대한 이야기지만 오히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도코노인들이 나를 넣어둔다면 그들에게 난 어떤 존재로 느껴질까. 세상 사람들에게 큰 빛이 되는 존재는 아니지만 내 가족에게는 소중하기에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 그들에게 나를 울려주길 기대하지 않겠는가. 사토코처럼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큰 희생을 할 자신은 없지만 그저 내가 아는 이들에게 떳떳하고 싶은 마음이니 이 한권의 책으로 나의 내면이 조금 변화된 것 같아 이것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을까 한다. 도코노들의 세번째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가슴속에 울리는 그들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남아 쉽사리 책을 덮지 못하게 하여 오늘은 잠들는데 힘들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빛의 제국 도코노 이야기 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일본이 어디에 있다는 것은 알아도 한번도 가본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다루마산이라 불리우는 시라카와 산을 오르고 싶어졌다. 인생의 전환점에 선 사람이  이 산에 오르면 중요한 장면이 눈앞에 나타난다고 하니 철학관에 점 보러 가는 것을 즐겨하진 않지만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까 암시라도 받고 싶은 호기심을 물리칠수가 없다. 전설같지만 신비스러움에 전설이 아닌 실제 내 가까이에 도코노족이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가 나의 시선을 잡는지도 모른다. 뭐 야스히코처럼 자신이 보낸 여인과 친구인 가쓰야가 결혼한다는 암시를 받는 아픔을 받고 싶진 않지만 야스히코의 이번 산행은 아버지의 자취를 더듬고 싶은 마음과 함께 친구와 사랑했던 여인을 마음에서 버리기 위해 산을 오른게 되어 버렸으니 오죽 슬펐을까.  

이 책은 도코노 일족들의 이야기이다. 한명의 주인공을 내세워 끝까지 이끄는 방식이 아닌 총 열편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모여살던 도코노들이 도심속에 흩어살게 되면서 겪는 혼란들.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혼란을 겪겠지만 더불어 살기 보다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옹졸한 인간들이라 탁월한 능력의 그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군부에서 실험용으로 쓰는 모습에 가슴이 아파온다. "권력을 갖지 말고, 무리를 짓지 말고, 늘 재야의 존재로 있어라"의 '도코노'라는 말의 유래는 빌딩이 숲을 이루는 현재에선 살아남기도 힘든 처지이니 권력을 탐하지도 않고 재야에 묻혀 학문에 정진한 우리나라의 선비처럼 학처럼 고고한 모습이 떠오르는 도코노족이 멸족되지 않고 살아남기를 간절히 원하게 된다. 꼭 부패한 이 지구를 구해줄 영웅처럼 느껴지니 드라마나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모양이다.  

문헌에 남아있는 아주 오랜세월을 살아간 '두루미 선생님' 지켜주지 못하고 떠나 보낸 생명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픔을 고스란히 지니고 살아가기에 아주 큰 존재로 느껴진다. 리쓰와 함께 그의 일족의 파티에서 연주를 하기 위해 함께 가는 미사키를 보는 두루미 선생은 아련한 옛 그리움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미사키냐, 미사키구나". 죽기전에 피리를 아주 잘 불렀던 미사키, 나중에 꼭 돌아오겠다고 말한 미사키가 오랜 세월이 지나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환생의 개념을 떠나 이들이 뱉는 약속의 의미는 세월이 지나도 꼭 지켜진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르기까지 한다. 대체 이들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그들의 능력은 얼마나 무한한 것인지. 이어지는 도코노들의 이야기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도코노들의 두번째 이야기도 숨가쁘게 책장을 넘기게 될 듯 하다.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하나의 구심점을 향해 가는 듯한 느낌. 그랬다. 하나씩 밝혀지는 그들의 모습이 두렵다기 보다 신비롭고 아름답게까지 느껴진다.  

내가 사는 가까이에도 도코노족이 있을까 두리번 두리번 눈을 빛내며 보게 된다. 특별한 힘을 가진 사람들, 방대한 양의 서적을 암기하거나 미래를 콕콕 찝어내는 사람들을 보면 도코노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나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다면 좋겠지만 얻는게 있는 만큼 잃는것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이렇게 평범하게 사는 것도 좋은것 같다. 도코노족에 대한 이야기를 옛날 이야기 삼아 들으면서 여름날 밤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그나저나 '두루미 선생님'은 꼭 한번 보고 싶은 걸. 내가 죽어도 존재할 그이기에 조금 시기심도 생기지만. 무한하게 살고 싶은게 인간의 욕망이니까. 아끼는 사람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는건 큰 아픔이겠지만 깊이를 알 수 없을 그의 마음이 보이기에 내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조용히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인거 같아서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왜이리 제목에 눈길이 머무는 것일까. 화려하고 빛이나는 책들이 내게 유혹의 손짓을 하는중에 그저 조용히 스윽 다가오는 듯 한 책. 겉은 멀쩡해도 속은 너덜너덜 한 사람들에게 권하는 책인걸까. 조금 걱정이 되긴 하지만 과감하게 책장을 넘겨본다. 릴리 프랭키님의 책은 앞서 '도쿄타워'를 읽음으로서 잔잔하게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어머니라는 존재와 함께 보여줌으로서 나 또한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책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읽게 된 '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는 정말 그의 작품이 맞나 싶을정도로 전혀 다른 색깔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예상과 다르게 단편으로 이루어진 내용들. 난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냐고? 물론 '도쿄타워'와의 연결성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무덤덤하게 이야기하지만 어느새 속을 후벼파는 강인한 아픔을 슬픔으로 분출시키게 하는 능력?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시키나 단편들을 보면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된다. 아주 작은 죄를 지어도 사형을 당하는 미래의 어떤 세상은 지금의 세상에서 법률에 저촉되지 않은 삶을 살아도 끊임없이 죄를 범하는 인간들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나도 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만 신호등이 빨간색일때 건너기, 피곤하다며 변명하며 노약자석에 앉기? 이것도 법률에는 저촉되지 않지만 죄라고 한다면 아마 그 세계에서 나도 사형선고를 받았을 것이다. 통렬하게 인간에 대해 비판하는 듯한 작가의 내면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어디쯤에 왔나 잊어버리게 된다. 공개적인 사형장면을 유흥거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하지만 미래 어느지점에 이런 법률이 제정되지 말란 법도 없으니 죄를 짓고 벌을 받는 모습이 참으로 통쾌하다며 적극 권장할 것은 아닌것 같다. 법의 무서움에도 법을 피해가는 사람도 있고 억울하게 사형당하는 사람도 꼭 생길테니 말이다.  

완벽한 사람보다는 실수를 한가지쯤 하는 사람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자신만의 인식법일까. 그래서 이 책은 다른 책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나 보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 같아서일까. 사람냄새가 나지만 나처럼 용기없는 사람들, 평범하게 살려고 무지하게 애쓰는듯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속에 있으니까. 대파 머리가 삐죽이 나와있는 봉투를 들고 가며 행복은 느끼는 사람. 나도 과시할 정도는 아니지만 사랑에 목매여 아둥바둥 거리는 사람들에게 "난 가정을 가졌다"는 당당함을 보여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외로움 극복법은 그래서 자신의 과거가 현재로 바짝 앞으로 다가왔을때 왜 그렇게 살았냐고 손가락질 하지 못하게 하는 묘한 힘을 느끼게 한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이곳에서 불안, 무기력, 용기없음, 뻥 뚫려버린 가슴을 부여앉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아니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려고 용기있다고 당당하다고 꽉찬 가슴을 쫙 펴고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이 더 힘들다. 아무리 허구의 세계를 보여주는 책이지만 좌절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줘서 고맙다고 해야하나 왜냐하면 나도 그중의 한사람이었으니까. 세월을 하루하루 아무려나 어떨까 하며 섬으로 들어가 사진이나 찍고 사는 사람들을 동경하며 살아왔으니까. 오히려 그렇게 사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해 왔으니까 '아무려나', '아무려나' 무의식중에 너무나 많이 뱉어버린 너덜너덜해진 내 마음을 어찌해야할지 몰랐으니까. 마음을 좀처럼 열어보이지 않은 사람들을 훔쳐본 느낌이다. 너도 힘들어? 나도........가볍지 않은 삶의 노곤함을 조금은 툭툭 털어버리게 하는 책을 만난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