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공놀이 노래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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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의 끔찍함속에 범인을 몇 번을 죽여도 시원찮다고 느끼지만 이런 결말은 마음이 찹찹할 뿐이다. 쇼와 7년에 일어난 살인사건이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태라 나도 이소카와 경부처럼 이 살인사건이 그 연장선에 있는 듯 하여 범인이 빨리 나타나기를 바라며 책을 붙잡고 쉼없이 달려왔건만 책장을 다 덮고 난 지금은 머릿속이 멍~하기만 하다. 사람보다 무서운 존재가 있을까. 끝간데 없는 탐욕은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 추해질 수 있는지 그 잔인한 속을 들여다 보고 싶지가 않다.  

사건을 함께 풀어가는 긴다이치 코스케와 이소카와 경부, 그러나 가장 사건의 핵심에 도달한 이는 역시 사설 탐정인 긴다이치 코스케일 것이다. 사건의 초반 범인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에도 확실해질때까지 기다리다니 살인의 동기를 찾아가는 모습은 계속적인 살인을 벌어지게 방치한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해진다. 범인을 확실하게 잡기 위한 일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범인의 입을 통한 증언이 아닌 긴다이치의 입을 통해 듣게 되니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감을 잡을 수 없게 되어 오히려 모든 사건을 유추하고 있는 긴다이치를 믿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 책의 주인공은 살인사건을 저지른 범인이기 보다 긴다이치 코스케인것 같다. 제일 많이 이름이 등장하기도 하고 그의 동선을 따라 범인은 신발 뒤축도 보이지 않고 사건의 의혹들만 하나씩 던져 놓기 때문이다. 물론 범인측에서야 실수였겠지만 말이다. 여타의 추리소설은 간간이 복선을 깔아놓아 어느 정도 범인을 예측할 수도 있으나 이 사건에서는 몇발을 앞서가야 겨우 사건의 잔상을 보게 되니 '범인이 누구일까' 유추하는 일은 그만 포기하게 되고 어서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긴다이치의 탁월한 추리력을 듣고만 싶게 된다.   

영화를 볼때 그냥 무성으로 화면만 보는 것보다 효과음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아는지라 음침하게 낮게 깔리는 음악에 간담이 서늘해진 적이 한두번이 아닌데 책을 넘기면서 분명 내 귓가에는 들리는 소리란 주위의 잡다한 소리련만 어째 악마의 공놀이 노래가 들리는 듯 하여 왜그리 섬뜩하던지. 털실로 만든 공이라 탕탕 소리도 들리지 않고 숨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노랫소리. 역시 여름밤에 읽기엔 제격이리라. 이곳에 구전되어 오는 공놀이 노래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살인사건, 야스코와 후미코가 희생되고 그 뒤에 범인이 노리는 사람이 유카리라고 예상을 했건만 무슨일인지 거북탕 리카의 딸 사토코가 희생된다.  

긴다이치가 예전에 해결한 사건 옥문도와 팔묘촌의 일들이 떠오르며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들고 쇼와 7년에 죽은 사람이 온다 이쿠조가 아니라 겐지로일지 모른다는 이소카와 경부의 증언은 점점 실체를 드러내게 되는데 이쯤은 나도 가볍게 유추해 볼 수 있었으나 나의 한계는 여기까지였나 보다. 범인이 드러나고 나서도 난 '대체 왜?' 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모든 일이 드러났건만 아직도 난 안개속을 헤매이는 기분이니 얼마나 갑갑한지 책 마지막장을 넘길때까지도 의아하기만 한 사건이었다.   

긴다이치의 입으로 사건의 전말을 듣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들은 한편의 소설을 듣는 듯 하다. 사설 탐정이라지만 어쩜 저렇게 모든 것을 꿰뚫을수가 있는 것일까 탐복을 하게 된다. 한 남자의 여성편력에 따른 사건이라 오히려 범인이 누구보다 큰 피해자로 여겨지니 가슴이 아프다. 연쇄살인을 막을 수도 있었을텐데 피해의식이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 더 큰 사건의 발단이 되었으니 안타깝다. 이 일로 마을 사람들이 한토막씩 안고 있던 기억들이 백일하게 드러나게 되지만 그것으로 누구를 위로할 수 있을까. 긴다이치가 첫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을 눈치챘다면 막을 수 있는 범죄였기에 연쇄살인사건으로 마무리 된 이 일이 마을 사람 모두가 기억속에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추억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죽은 희생자들이 살아오면서 가슴속에 뜨거운 불덩이들을 하나씩 안고 죽고 싶은 마음을 눌러가며 견뎠을텐데 이들을 죽인 범인의 죄는 역시 무엇으로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저질러진 일이기에 또 남아있는 이들에게 삶의 무게만 더 얹어준 것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살인사건이 공놀이 노래를 따라가는 것을 알면서 그저 지켜보다가 일러주는 이오코란 사람은 대체 그 심술을 어디까지 부릴것인지. 시종일관 뭔가를 감춘듯 살아가는 이 마을 사람들이 무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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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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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에 가본것이 언제던가. 아버지의 회사동료 가족들과 함께 갔던일이 마지막인 것 같다. 아이들이 놀수 있는 수영시설이 없어 어른들과 함께 들어갔는데 이미 물은 내 머리를 넘어선지라 발만 동동거리다 무서워 나왔던 기억이 있다. 남동생이 아저씨의 어깨에 매달려 수영을 배우는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아직도 그 모습은 선명하게 내 기억속에 있다. 남들처럼 멋지게 수영을 하고 싶은데 이것만은 선뜻 손내밀기가 왜이리 두려워지는지 나는 아직도 겁쟁이인가 보다. '워터' 책장을 넘기며 여름날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는 료운, 게이치로, 고스케, 다쿠지가 눈앞에 떠오른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열정적으로 타오를 수 있는 젊음이 있다는 것은 정녕 행복한 일이다. 처음으로 무엇인가를 시작할때 경험이 부족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겁쟁이가 되지만 이미 난 나의 두려움을 뛰어 넘었으므로 용감하다. 휘슬 소리가 울리면 파란 물속에 들어가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들. 지금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일지도 모르는데 그 속에 있는 난 깨닫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기록을 깨기 위해 전진하지만 무언가를 해낸다는 자신감이 벅차오르게 하겠지. 더운 여름날 땀 흘리면서 나도 수영장에 있는 착각을 하며 읽었다. 비록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었지만 자유롭게 응원하는 그들속에 섞여 성 마리안느의 다시마를 이기라고 응원했다.  

조금 아쉬운게 있다면 이야기가 짧아서 이들의 성장을 끝까지 보지 못한 것이다. 수영대회를 끝으로 더이상 볼 수 없지만 잔잔하게 다가오는 일상생활의 모습은 전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나와 같이 아주 평범한 이들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고가 되는 사람들은 뭔가 특별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나처럼 똑같이 긴장하고 오로지 연습을 열심히 하여 이루어내는 성과에 나도 똑같이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이다. 아직 사회에 발을 디디지 않은 학생이지만 어른들이 겪는 인생은 똑같이 겪어내는 듯 하다. 수영부 주장이었던 형을 대신해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료운, 아들이 죽은 것을 인정하지 못해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어머니가 수영대회에서 본 사람은 형이었을까 료운이었을까. 무엇이든 상관없겠지.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으니까. 어찌 되었든 부모님에게 한사람으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줘 뿌듯했을 것이다.  

말한마디 잘못해서 토라지고 싸우며 우정에 금간일이 많았던 난 이들 네 사람의 끈끈한 우정에 이것이 남자들의 우정인가, 아님 '수영'이라는 매개체로 이럴수 있는가 잠깐 생각해 본다. 동성을 좋아하는 게이치로를 예전처럼 대하는 그들은 세상이 돌을 던져도 막아주는 그런 친구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러니 남자부 릴레이 결승전에서도 서로를 믿고 최선을 다 할 수 있었겠지. 나 혼자 게이치로를 달리 보다니 반성해야겠지? 난 그 시절 친구들을 오로지 경쟁상대로 여겨온 것 같다. 마음을 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넓은 가슴도 없었고 그저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 그러나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늘 겁내며 뒤로 숨기 바쁜 '나'만 있을 뿐이다. 어떤일이든 해보고자 의욕이 넘치던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도 이 아이들처럼 반짝반짝 빛이 날 수 있을까. 그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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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더스트 판타 빌리지
닐 게이먼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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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별을 따 주겠다"는 허황된 약속을 하는 남자들이 많을 것이다. '별을 따 달라'고 요구하는 여자들도 많겠지. 나도 그 중에 하나였는데 아주 현실적인 남편을 만나 "너무 멀다"라는 대답만 듣고 말았다. 누가 멀리있는지 모른다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별을 따 주겠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여인네의 맘을 모르다니 조금 충격이었다. 하지만 귀찮은 사람을 떼어내기 위해 그저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지듯이 "별을 따 오면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이야기 하여 9년간의 생명을 건 모험을 해야했다면 정말 괴롭지 않았을까. 뭐 이것이 나의 인생을 완벽하게 바꿔 버렸다면 결과적으로 좋은 것이지만.  

빅토리아, 그 마을에서는 물론 다른 세상에서도 제일 아름다운 그녀를 사랑하는 트리스트란. 허풍이 심하긴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뭐든 들어주고 싶었다. 방금 떨어진 별을 따다주겠다고 호기롭게 외치고 떠나게 된 모험에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별을 가지러 간다는 것이 말도 되지 않는 모험이겠지만 그는 새로 변해 마녀의 노예로 살고 있는 어머니의 존재로 인해 주위에 많은 도움을 받으며 그 길을 헤쳐나간다. 아버지 던스턴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지도 못하고 그저 주어진 삶대로 살아갔지만 그는 다르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기꺼이 바칠수 있으니 말이다.  

별이 곰보투성이의 돌이 아니라 여자라면? 그녀를 데리고 가 빅토리아에게 어찌 설명해야하나 조금 갑갑한 상황이긴 하지만 마녀로부터 그녀를 지켜낸 트리스트란이 자랑스럽다. 별의 존재가 아닌 한사람의 인격으로 대하는듯 해서 이베인도 마음을 열었겠지. 이젠 목숨을 빚졌기에 책임을 다하여 곁에 머물러야 해 사슬이 필요없지만 그때부터 사랑을 싹트고 있지 않았을까. 책장을 넘기면서 이 둘의 관계에 대해 행복한 결말을 유추해 보기도 했는데 현실에서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지만 그 곳에서는 이루지 못할 일이 없으니 가능하지 않을까. 

별을 쫓는 사람은 트리스트란 말고도 또 있으니 아버지가 던진 토파즈를 찾아 성주가 되기 위해 쫓는 셉티머스, 프리머스, 터티어스와 마녀가 젊음을 다시 찾기 위해 그녀의 심장을 노리면서 쫓는다. 이베인이 떨어진것은 우연이 아니라 스톰홀드 성의 81대 성주가 다음대 성주를 가리기 위해 던진 토파즈에 맞아 떨어졌으니 모든 인연은 트리스트란을 위해 존재하는 듯 여겨진다. 9년마다 열리는 월 마을의 장으로 향하는 마담 세멜과 한마리의 새, 여기서 세월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산신령을 만나 다시 세상에 나오니 100년이 흘렀다더라의 정도는 아니지만 9년이면 월 마을이 많이 변했을텐데 어찌 변했을지 궁금해진다. 한사람의 사랑에 대해 가볍게 생각한 빅토리아지만 9년간 그를 기다려줬으니 참 인간적이긴 하다.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기다렸으니 말이다. 그것이 트리스트란과의 결혼이란 착각을 해서 그렇지. 그래도 로버트와 결혼준비를 하는 모습은 참으로 행복해 보인다. 죽을지도 모르는 트리스트란이 살아돌아와 안도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로버트와 결혼을 할 수 있어 행복했겠지?  

재투성이의 신데렐라의 변신이 놀랍다면 트리스트란의 변신은 더욱 놀라울 것이다. 어머니의 존재로 인해 별을 가지러 떠났던 자신의 존재가 어떻게 뒤바뀌었는지 알고 싶지 않은가. 여자들이 꿈꾸는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신은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남자인 트리스트란의 인생이 바뀌었으니 조금 신선하고 행복한 결말을 볼 수 있어서 즐겁다. 공주를 구해내는 영웅적인 모습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사랑에 대한 열정으로 허풍만 떠는 인간이 아닌 자신이 뱉은 말에 책임을 지고 사랑을 얻기 위해서 행동하는 그야말로 영웅의 모습일테니 지금 자는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며 또 다른 트리스트란이라고 생각해 보자. 나의 사랑을 쟁취한 사람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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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는 집 아이들이 달라졌어요
김정희 지음 / 알마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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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아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낳으면 이렇게 기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씩 한다. 요즘 강남엄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어떻게 자식교육을 시키는지 그 열성적인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열정적으로 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들에게 가벼운 질투심마저 느낀다. 가만히 있는다고 아이들 교육이 저절로 되는것도 아니건만 그네들의 교육열 앞에서 주눅만 들고 있는 셈이다. 시중에 나온 '강남엄마'에 대한 책자들은 보기도 전에 거부감마저 들어 선뜻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아 이 책도 그런류의 책인가 하여 마음을 닫고 보았다. 뻔한 이야기겠지 하면서. 그런데 내가 아이를 낳으면 이렇게 기르고 싶은 가족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었으니 남편에게도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책이다.  

치영과 준걸 두 아이의 엄마. 하루도 태교를 놓치고 싶지 않아 산부인과 문턱이 닳도록 다녔다는 자식교육에 극성스러운 엄마였다. 영재교육이라 해서 아주 어릴때부터 쉴틈도 없이 여기저기 다니는 아이들, 지쳐가는 모습들을 보면서도 밝은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혹독하게 학원을 보내는 엄마들속에 저자의 의욕적인 교육열 또한 그네들 못지않다. 그러나 그동안 아이는 아무말도 못하고 시름시름 앓고 있었으니 신경성 위염이라 명치끝이 콕콕 쑤셔온다고 이야기 해도 그냥 하는 말이려니 생각했던 엄마의 가슴이 그때야 무너져 내린다.  

96점을 맞아도 혼나고 100점을 맞으라 잔소리 듣는 세상에서 치영의 48점, 56점짜리는 다른 부모에게는 열등생으로 보일지 몰라도 수학만 못하고 다른 것에 소질을 보이는 아이가 꿈을 잃지 않고 키워나가는 치영이가 엄마에게는 어여삐 보이기만 한다. 수능 점수에 의해 자신의 꿈의 크기도 줄어들수 있음을 세상을 조금 살아온 난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 이것으로 인해 아이의 마음이 다치거나 작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미리 걱정을 해 본다. 아이 나름대로 매일매일 마음의 키가 자랄텐데 쓸데없는 걱정이겠지. 내 자식의 일이었다면 100점을 반토막낸 50점을 받아오면 매를 들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잔소리 한번 안할 자신이 있을까. 내가 아이였다면 이런 가정에서 자라고 싶다 생각하면서도 그러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에 참 대단한 부모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30대인 내가 꿈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기에 사교육 열풍에 휩쓸려 주입식 교육에만 매달려 살아온 세월에 나의 꿈이 날아가 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애써 변명하며 책장을 넘겼다.  

가족의 소리를 없애는 텔레비전을 없애는게 가능하긴 한가 보다. 드라마에 빠져 사는 나에게 텔레비전을 없애자고 한다면 소리 높여 반기를 들것이라 내가 앞장서서 없애자고 말하지 못할 것 같다. 돈 모아서 더 좋은 텔레비전을 사고자 하는 남편을 보니 게임한다고 대화할 시간 없고 각자 보고 싶은 텔레비전 본다고 얼굴조차 마주하지 않는 우리집의 풍경이 떠오른다. "정말 없애야할까?" 조금 심각하게 고민해 본다. 결국엔 "몇개만 보자"로 생각을 좁히지만 이것조차 아무나 하는게 아닌가 보다. 바보상자라고 명확히 알고 있음에도 쉽지 않은 것이다.  

텔레비전이 차지하고 있던 가족의 공간과 시간이 거실을 서재로 만들면서 아이와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늘어났다. 도서관을 찾게 되고 여기저기 널려있는 책들을 편하게 보면서 점점 가족다운 가족의 모습을 갖춰가는 듯 하다. 요즘 한창 '거실을 서재로' 말들이 많다. 나역시도 좁은 집이라 거실을 서재로 활용하고픈 생각이 많아서 책장 하나 번듯하게 마련하고 싶기도 하다. 나만의 서재를 갖는게 소원일정도이니 훗날 아이와 함께 한자면 저자처럼 어지러워도 아이들과 함께 뒹굴면서 책을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사교육에 많은 시간 투자하지 않고 책과 함께 보내는 아이들의 모습, 어쩌면 다른집 아이들에 비해 엄청나게 느리게 가는 듯 보여도 세상을 다 안을수 있게 마음을 넓히고 있을게다. 한글, 영어가 늦어 불안한 마음 들겠지만 흙만지며 뛰어놀 수 있는 아이들의 미래가 더 밝게 보일것 같으니 나도 자식교육에 게으름을 부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부모님 손잡고 걸어본 기억이 없기에 함께 역사탐방을 떠나는 치영과 준걸이가 부럽다. 내가 누려보지 못한 것이기에 내 아이에게는 꼭 해주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내가 상상하고 있던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을 가진것 같다. 무조건 빨리빨리 하는 세상에서 조금은 여유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까이 있다면 그집의 서재에서 편안하게 엎드려 책 한권 읽어보고 싶다. 향긋한 커피내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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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2007-11-01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이 있는 집의 김정희 입니다.부끄러운 저의 좌충우돌 육아기를 읽어 주셔서 넘 감사 하구요,언제 꼭 한번 커피 마시러 오세요!! 행복하세요!
 
능소화 - 4백 년 전에 부친 편지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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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이쁘고 향기로운 것을 알면서도 언제부터인가 누가 꽃을 사준다고 하면 꽃이 시들어가는것을 보기 싫어 꽃보다는 다른 것을 사달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꽃이 시들지 않고 원래 모습 그대로 툭 떨어지는 능소화라면? 오히려 더 처연한 모습에 그저 붉은 꽃잎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려 그대로 내 마음에 박혀버릴 것 같다. 하늘에서만 피는 꽃을 너무 아름다워 도저히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꺾어간 여인을 팔목수라가 쫓는다. 머리는 사람 몸통만 하고 눈 4개의 구척의 몸을 한 앞뒤가 같은 모습의 끔찍한 모습을 한 팔목수라. 정말 꿈에 볼까 무섭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데려가는 놈이라면 가까이 오는 것조차 겁이 나고 빌어서라도 데려가지 말라 눈물로 호소해야만 하는데 동정심이라곤 없는 팔목수라에게 통하지도 않으니 그녀가 선택한 길은 그래서 하나뿐이었겠지.  

4백년만에 무덤안에 고스란히 존재하는 미라를 발견했다. 그 안에 원이 엄마가 쓴 편지와 함께. 일기형식이지만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묻을때 같이 옆에 놓아둔 편지였다. 같이 묻어준 편지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드나 그 편지는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4백년이 흘렀는데도 말이다. 달리 생각하면 섬짓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가슴속에 슬픔이 쌓인다. 운명이란 무엇일까. 내게 위험이 닥쳐 피하려고 기를 써도 내 앞에 오롯이 닥쳐오는 운명이란 녀석은 역시 피할 도리가 없는 것일까. 피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조차 계산에 넣어진 나의 운명이라면? 정말 힘이 쭉 빠진다. 응태와 여늬의 사랑은 피하려한 운명에 의해 만나진듯한 느낌이 든다. 부모보다 앞서 간다는 응태의 사주를 바꾸기 위해 박색에 성질이 더러운 여인네를 아내로 맞이하면 피할 수 있다는 스님의 말에 그런 여인을 찾다 보니 만난 여늬이기에 오히려 잘난 가문의 여식을 응태의 짝으로 맺어줬다면 운명을 거스를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안타까운 두사람의 사랑.   

팔목수라는 필자의 말대로 역신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여늬의 편지글에 자주 등장하는 팔목수라의 정체는 설화의 내용에 버금가는 하늘나라가 있고 또 전생이 있는 듯 여겨져 슬픈 사랑이야기에 더해져 한층 더 가슴 아프게 만드는가 보다. 죽었어야 할 여늬가 덤으로 생명을 얻었을때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 것이란 생각에 집안에서만 기거한 그녀에게 소화꽃은 모든 것이었다. 담밖으로 고개를 내민 소화꽃이 부른이도 자신의 배필인 응태였으니 너무나 소중하여 꺾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소화꽃의 향기로 그녀를 찾아다니는 팔목수라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을때 난 가슴 조마조마 하며 "설마......조금만 조금만.."쿵쾅거리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역시 불행은 피해갈 수 없는가. 왜 단 하나의 소화꽃을 그대로 뒀단 말인가.  

집안에서 정해준 배필과 혼례를 올리지만 이미 그 전에 첫눈에 마음속에 꽉 들어차 버린 두사람의 사랑은 아마 이것으로 운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팔목수라에게 잡혀갈 여늬를 온몸을 던져 막는 응태는 여늬 곁에서 시름시름 앓고 여늬의 정성에도 아랑곳없이 그렇게 떠나가 버린다. "날 대신 데려가라"는 말을 왜 하지 않는 것일까. 솔직히 난 이것이 불만이었다. 모든 원인이 그녀에게 있건만 그저 지아비를 데려가지 마라 눈물만 흘릴뿐이니 죽는것보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의 곁을 떠나는 것이 무서운 응태에게 그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그저 응태를 바라보며 손을 잡아주는 것 밖에.  

떠난자보다 남은자의 슬픔이 더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처연한 그들의 사랑보다 "왜 그랬냐. 왜?" 라는 말밖에 터져나오지 않는다. 여늬의 선택도 그녀의 인생도 모두 다 슬픔이다. 4백년만에 알게 된 그들의 인연은 빨리 사랑하고 식어가는 요즘 사람들에게 사랑이란 이런 것이라고 알려주는지도 모른다. 행복한 결말을 좋아하는 나는 사랑의 형태에 대해 말할때 슬픔보다는 기쁨이 있는 이야기를 듣게 되길 소원한다. 슬픔이 있기에 기쁨 또한 크다는 것을 알지만 주인공이 죽는 그런 드라마의 주인공보다 주인공 가까이에서 나도 행복한 사랑을 찾아 오래오래 살아가는 그런 배역을 맡고 싶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람의 주인공이라도 말이다. 여름에 핀다는 소화꽃. 하늘을 이기길 바래 여늬가 지어준 능소화. 아마 아직도 여늬 무덤가에 핀 붉은 능소화는 여전히 응태를 부르고 있겠지. 두 손 잡고 함께 거닐면서 옛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오늘은 남편을 생각하며 여늬처럼 편지를 한통 써 두고 싶다. 능소화 향기를 맡으며. 오랜시간이 지나 내 편지도 누군가에게 울림이 되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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