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 신분을 뛰어넘은 조선 최대의 스캔들
이수광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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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야기'가 아닌 분명 책 제목이 '연애사건'이다. 사건이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을 받을 만한 뜻밖의 일"을 이르니 내가 읽은 조선시대의 16가지의 연애사건은 그 시대로 보면 전국적으로 들썩이게 만든 큰 사건임에는 틀림 없나 보다. 각각의 사랑이야기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으며 죽음으로 이르게 되는 사건들이 대부분이나 그중에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도 있다.  

세종 10년, 양반의 딸 가이와 사노 부금의 사랑은 나라에서 분명 금지한 법을 어기며 목숨까지 내 놓아야할 일이건만 마음을 도저히 어찌하지 못해 혼례까지 치르고 자식도 두게 된다. 이왕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그 지방의 문화를 흐트린다 하여 고발을 하다니 양반이 무엇이라고 자신들의 권리를 침탈당한 것으로 생각해 고발까지 하는 것인지 참 못났다 못났어, 혀를 끌끌 차게 만든다. 하지만 어쩌랴 그 시대에는 분명 해서는 안될 행위며 엄연히 법을 위반하였으니 치죄를 당할밖에. 그러나 벌이 너무 가혹하다. 왜관에 있는 왜인에게 시집을 가라니. 세상에 이런 판결도 있는가. 자식을 두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다른이의 품에 안겨야 함은 정말 사는 것이 죽는것 보다 못하지 않겠는가. 

왜인이라고 자식까지 낳은 사람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을까. 왜인 손다의 학대를 견디다 못한 가이가 부금에게 구해달라 요청하여 손다를 죽이게 된다. 이미 이것으로 이들의 사랑은 파경에 닿아있었으니 왜인과 여러해 동안 함께 살아온 가이도 불쌍하고 천민이라 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 세월동안 손 놓고 있었던 부금의 약한 의지력에 신분까지 팽개치고 천민과 혼인한 가이가 안되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포악한 손다의 손에서 그녀를 구해주었으니 다행하다 해야하나. 어째 신분을 넘어 사랑을 하는 이에게 죽음을 내릴 수 있는지. 이들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아 벌어진 살인사건이거늘 세상이 참 야속하기만 하다. 

책장을 넘기며 읽어가다 보니 신분제 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여인들이 뭇 남성들을 치마폭에 휘감고 간음을 일삼는바 요부니 어쩌니 말이 많아도 그들 나름대로의 저항으로 해석 되어진다. 얼굴도 모른채 시집을 가 남편을 일찍 여의면 평생을 수절하면서 남정네와 눈도 한번 마주치지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그녀들. 자결이라도 해 주어 열녀문이라도 받고 싶은 가문의 이기심에 한창 피어야할 꽃이 시들고 마니 그 시대에 남편을 직접 고른 영양군 이응의 손녀 이씨의 행동은 엄청 파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 고른 유균과 서로 사랑하며 살았으니 다른 여인들처럼 가슴에 한은 남지 않았으리라. 

양녕대군이 곽선의 첩인 어리를 사랑하여 궁궐로 데려간 일은 세기의 사랑이니 왕좌를 버리고 한 사랑이니 하는 말보다 그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사랑을 쟁취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아니될 일이라고 옆에서 아무리 이야기 해도 자신의 신분을 이용하여 상대를 제압하고 데려갔으니 그때 자신의 세자의 권한을 충분히 행사하지 않았는가. 그리하여 태종에 눈밖에 나 결과적으로 폐세자가 되어 왕좌까지 버린 세기의 로맨스로 회자된다고 해도 지켜주지도 못한 사랑이라 크게 와 닿는 이야기는 아니다.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이다 하여 집을 뛰쳐나가는 사람보다 더 절절해 보이진 않으니까. 뭐 나란 사람은 '사랑'에 목숨을 걸 만한 열정도 용기도 없기에 그저 남의 일에 감놔라 배추놔라 할 입장도 안되지만 먹을 끼니가 없어도 등 긁어주며 살아가는 부부애가 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리워진다.  

책속에 '조선을 뒤흔든 왕조 스캔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라 새로울것은 없었으나 유교사상에 막혀 여인네들이 어찌 살아왔는지 조금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괜찮았다. 조선시대의 연애사건이라 사료에 바탕을 두고 이야기를 해야했겠지만 '사랑'에 성공하여 잘 사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는지 그들의 이야기도 하나쯤 있었다면 마음이 이렇게 허탈하진 않았을텐데. '사랑'에 목숨까지 내 놓아야할 정도로 위험스러웠던 조선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음을 행복으로 여겨야하나 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세월을 함께 보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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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조창인 지음 / 밝은세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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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라는 말은 희생, 포근함, 억척스러움 등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 최전선에서 아줌마스러움을 보이며 가족을 책임지는 강한 면을 보이기도 하지만 때론 눈물이 많은 여자의 모습도 함께 가진다. 그래서 '아내'라는 단어는 그리움이 되기도 하지만 남편들에게는 미안함도 함께 바라봐지는 단어가 아닐까. 나도 지금 '아내'라는 위치에 있지만 상희처럼 그런 사랑은 못할 것 같다. 아니 못한다. 이혼하기 위해 그렇게 모질게 말을 내뱉는 남편을 어찌 용서하나. 하물며 가슴에 담아두었던 미나때문에 이혼하자니 이젠 나 자신을 사랑할때도 되었건만 늘 남편이 먼저다. 바보스럽기만 한 상희의 모습은 전국 방방곡곡 찾아보면 꼭 닮은 사람이 있을 법하지만 이런 사람은 없을거라고 애써 외면하고 싶어진다. 희생하며 사랑하는 부부의 진정한 모습을 봐 버렸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아내'라는 자리가 한없이 작아보이기에 인정하기가 싫다.  

분명 찬우와 먼저 추억을 쌓았는데 어느새 그의 마음은 온통 미나 생각뿐이다. 그녀때문에 죽으려고 결심까지 한 그이기에 말해 무엇할까만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희에게 결혼을 요구하는 찬우의 마음은 그저 익숙함, 편안한 친구같은 아내를 원하기 때문이었다. 미나가 결혼해서 미국으로 가버린 이유가 더 컸지만 그렇게 이기적으로 결혼을 했다. 둘만 잘살면 되지, 결혼을 결심하면서 상희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미나란 존재는 늘 그를 흔들어 버린다.  

같은 여자인 내가 봐도 미나란 사람은 이기적이고 남을 배려할줄 모르는 배려하기 싫어하는 사람으로 보이건만 '사랑'이라는 것은 어찌 이리 엇나가기만 하는 것일까. 민기의 상희에 대한 마음이 그러했고 상희의 찬우에 대한 마음 그리고 세상의 잣대로 말도 안되는 사랑을 하는 찬우의 미나에 대한 마음이 그러했다. 이혼하고 돌아온 미나에게 주책없이 흔들리다니 화려한 장난감에 흔들리는 아이도 아니건만 찬우의 마음은 속절없이 상희에게서 떠나간다. 이혼을 요구하며 폭언, 폭행도 하는 찬우 이쯤되니 책장을 넘기며 읽다 보니 그저 통속적인 드라마의 불륜의 주제인거 같아 마음이 불편해진다.  

검은머리에 하얗게 눈이 내릴때까지 손잡고 함께 걸어갈 부부에게 늘 시련이 따르지만 여자로인한 파경이 많은 것 같다. 사랑으로 인해 맺어졌는데 이 사랑때문에 상처를 내고 헤어지는 사람들이 많으니 어쩌면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찬우의 미나에 대한 사랑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시어머니가 몸져 누워 간병을 한 것도 상희고 사업이 망하고 교도소에서 복역할때 혼자서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던 것도 상희였는데 왜 먹고 살만해지니 그 여유로움을 도둑질해 가려고 하는 것일까. 오히려 힘들어도 먹고 살기 어려워 다른 생각 할 수 없을때가 그리워진다.  

찬우가 상희에게 모질게 대할 수 있었던 건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상희의 무조건적인 희생은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결혼할때 다정다감하게 말했던 무수히 많은 말들이 이젠 냉정한 칼이 되고 이혼의 사유가 되어 가슴에 꽂힌다. '성격차이' 성격이 다른이가 함께 사는데 당연히 성격차이가 생길터 차라리 난소암에 걸렸던 그녀라 자식이 없어 헤어진다고 하면 미워할 수 있을까. "나도 아이의 아버지이고 싶다"는 말에 손아귀에 든 희망을 놓아버리는 상희다. 어쩜 이렇게 냉정한가. 둘만 잘살면 된다더니 툭 뱉어버리는 이말이 정말 슬프다. 정말 내가 찬우의 멱살을 잡고 싶어진다.  

상희는 천사? 미나와 밀월여행을 떠나는 찬우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실에 누워있을때조차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상희를 보니 민기처럼 나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어찌 이리 바보같을까. 너무 희생만 해서 미쳐버린 것은 아닐까. 둘이 함께 있어야 완전한 하나로 이루는 것들이 있다. 찬우와 상희가 그러했나 보다. 쌍둥이처럼 닮은 그들, 이젠 두 손 꼭 잡고 갈라서는 일 없이 함께였으면 좋겠다. 왜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잃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는 것일까. 행복이란 늘 가까이에 있는데 말이다. 상희를 위하는 찬우의 마음을 좀 더 엿보고 책을 끝냈으면 좋으련만 그저 여운을 남기는 마무리로 "잘 살겠지" 하며 마음을 다스려본다. 짜여진 내용인 듯한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하여 마음이 불편했으나 무섭고 각박한 세상에서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잠시나마 나도 마음의 여유로움을 가져보니 '아내'를 통해 나도 가족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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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가의 석양 - Always
야마모토 코우시 지음, 한성례 옮김 / 대산출판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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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내가 하늘을 언제 쳐다보았나 싶다. 낮에 하늘 볼 여유도 없이 책만 파고들고 살았는데 석양은 말해 무엇할까. 늘 볼 수 있음에도 외면해와서일까 붉게 물든 것 같은 책표지가 강렬하게 다가온다. 단편들로 이루어져 제목이 4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1년을 표현해 놓았다. 그렇다고 계절별로 이야기를 엮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도쿄타워가 지어질 무렵 그 시절의 가난했지만 이웃간의 정이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따로 떨어져 전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때쯤 스즈키 자동차 수리점의 아들 잇페이가 다른 이야기의 문구점에 나타나면서 "아~이웃들의 이야기구나" 알게 된다.  

아이들이 보이면 누구네 아이네집 아이라 이름도 알아서 보호 해 줄 수 있던 시절, 다 고만고만 살지만 아이 넷을 혼자 키우는 마치코에게 부서진 두부나마 아주 싸게 팔고 부서진 두부가 없을때 일부러 두부를 부셔서 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가슴 찡한 감동을 준다. 이웃간에 정이 있어 가난했지만 희망이 있던 시절이었다. 코카콜라가 처음 나왔던 시절 꼭 메밀국수 국물 같이 생긴 것에 아직은 미각이 익숙치 않고 깡통에 들어있는 쥬스조차 신기하던 시절, 삶은 가면 갈수록 윤택해지고 스즈키 자동차 수리집에 중고 텔레비전이라도 들어왔을때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함께 보는 꼭 우리네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맛있는 음식이라도 하면 이웃간에 서로 나눠먹던 그 정 많던 시절말이다. 지금은 거의 잊혀진 내 어린시절의 모습이지만.  

4월, 5월 이렇게 읽어가다 보니 마지막쯤엔 1년이 지나있어야 하는데 왠일인지 스즈키 자동차 수리점에 모여 텔레비전을 시청하던날 그 집앞에서 치고 받고 싸웠던 대학생 미츠오와 쿠마카와는 많이 늙어있었다. 48년이 지나있다니 정말 순식간에 세월이 지나가버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사랑하는 여인 삿짱을 두고 성공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쿠마카와가 못내 야속하고 괘씸하여 치고 받고 싸웠는데 아직도 앙금이 남아있는지 전시회에 미츠오를 불렀으나 썩 내키지가 않는다. 손자인 타이요가 함께 가고 싶다는 말에 가는길에 자신이 살았던 젊은 시절 추억이 묻어있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는데 많이 변했지만 기억을 더듬어 가자니 모두 기억이 난다.  

문구점을 했던 자리에는 고급주택이 세워져 있었는데 문패에 '후루유키'라고 쓰여있었다. 어렴풋하지만 문구점 아저씨가 거둬 키웠던 그 아이가 사는 곳일 것이다. 에로소설과 아동소설을 집필했던 그 문구점 아저씨가 아이를 거둬 키우다니 참으로 마음이 따뜻하지 않은가. 아무나 할 수 있는 아니다. 모든 것이 변했지만 스즈키 자동차 수리집은 그대로다. 중견 자동차 기업이 된 스즈키 오토의 시작이었던 곳이기에 '스즈키 오토 기념관'으로 그대로 남겨 두었다. 화려한 건물들속에 있어 어울리지 않지만 그곳에 추억이 있는 사람들에게 낯익은 장소 하나쯤 남겨두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지난간 시대의 건물을 복원해 놓은 곳을 보려면 드라마 촬영세트장으로 가야만 하는 지금의 우리들에겐 그저 옛시절이 이랬었다며 눈으로 보고 사진이나 찰칵 찍어대며 기억할 뿐이지만 함께 성장하고 세월을 보낸 이들에겐 세트장처럼 꾸며놓은 공간들이 얼마나 야속할까. 세월들이 사라진 느낌이겠지.  

달마다 하나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글들을 읽다보니 꼭 미츠오의 옛기억을 더듬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가 더듬어 가는 기억들이 내가 책을 읽으면서 알게된 사람들의 생활이었으니까. 그래서인가 나도 함께 세월을 보내 늙어버린 느낌이다. 미츠오가 대학생이던 그 옛날, 삿짱이 배달다니며 일했던 식당에서 먹던 김이 모락모락 나던 국수, 딱 그맛을 간직한 국수를 지금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받지 않았을까. 옛이야기를 하며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으리라. 이제는 등굽은 노인이 되었어도 마음만은 아직 그곳에 있기에 맛있는 국수를 만들어주는 할머니 삿짱과 함께 사는 쿠마카와가 부러운 미츠오의 손자 타이요의 말에 그래도 "낡은 아파트에서 배가 고파 견딜 수 없게 된 젊은이가 아니면 그 맛을 알 수 없다"고 호기롭게 말함으로써 그 때 그 추억을 다시 되새기며 인생이 참 살만하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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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천사
우에무라 유 지음, 오세웅 옮김 / 북애비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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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호천사는 어디에? 간발의 차이로 차가 내 옆으로 지나가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속으로 '누가 날 지켜주나 보다'라는 생각 한번쯤 할 것이다. 학창시절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이 자신의 머리위에 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기겁하긴 했지만. 꼭 죽은 혼령이 날 지키는듯 했으니까. 그런데 50세의 뚱뚱한 게이치가 수호천사라면? 첫인상만 놓고 본다면 나도 분명 료코처럼 게이치를 스토커로 생각했을 것이다. 마누라는 '엽귀녀'고 자신은 늘 집안에서 찬밥신세, 개 마저도 자신의 이불에 똥오줌을 싸고 직장에서 잘린 후 그보다 월급이 작은 곳으로 입사한 후 아이들 또한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아마 이 시대 아버지들의 모습이겠지. 그런 게이치가 전철안에서 료코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십대 소녀와 50세 아저씨의 사랑이야기라고 색안경 끼고 볼 필요는 없다. 혼자만의 짝사랑이니까. 그렇다고 그 사랑이 순수하지 않은것도 아니다. 그저 옆에서 지켜주고 싶은 게이치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므로. 잘난것도 없는 게이치가 어떻게 그녀를 지켜줄까?  

세상이 이렇게 무서우니 수호천사는 꼭 있어야겠다. 학교 선생님이 학생을 끔찍한 살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저지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넘길 수 있단 말인가. 책에서의 설정이라 하기엔 지금 현재 사회도 하루가 멀다하고 살인사건, 납치 이야기가 보도되는 바 전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기에 무서워서 책장을 넘기기가 힘이 든다. "제발 게이치 그녀를 구해 줘" 맘 속으로 빌고 또 빌게 된다. 게이치에겐 무라오카와 야마토가 있다. 학창시절부터 쭉 그를 괴롭혀온 무라오카,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를 다시 사회로 이끌면서 친하게 지내게 되는 이번 사건의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 야마토. 역시 믿어야 할 곳은 야쿠자 출신 무라오카? 그러나 약한 게이치를 괴롭히기만 하는데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의심이 든다. 악어와 악어새 관계처럼 보이는 게이치와 무라오카. 뭔가 끈끈한 정으로 연결 된 듯 전혀 악당같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다정한 친구같아 보인다. 엽귀녀가 게이치를 잡으러 나타나자 야마토 뒤에 숨는 무라오카의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니까. 

게이치의 사랑은 이루어졌다? 꼭 두사람이 함께 잘 먹고 잘살아야 이루어진 것인가. 그녀의 수호천사가 되어 지켜주었다면 분명 게이치의 말처럼 사랑은 이루어진 것이리라. 비록 그녀의 눈에 가해자로 보여 경찰서에 끌려가긴 하지만. 고마워하는 료코를 만나지 않는 게이치의 마음은 그저 수호천사로 남고만 싶었겠지. 자신의 현실은 50세의 뚱뚱한 돈 없는 아저씨니까. 사랑에 빠졌다는데 마누라 '가츠코'는 살아있는 의지가 있는 남편을 보게 되어 너무 좋다. 마이와 게이타에게 아버지의 존재를 심어주고 개 '고로'도 더이상 게이치의 이불에 똥오줌을 눌 수 없다. 갑자기 게이치의 지위가 올라갔다. 가츠코의 첫사랑 게이치. 결혼반지를 몸에 꼭 지니고 다닐 정도로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집안에서 주도권을 잡고 게이치를 깔아뭉개지만 그가 좀 더 당당해지기 원하는 마음에 그랬을 것이다. 뭐 정도가 지나치긴 했지만. 오죽하면 마누라를 '엽귀녀'라고 붙였을까. 이젠 어디에서든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건이 종료된 지금 신문사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일하는 게이치의 모습이 멋져 보인다. 이렇게 멋진 수호천사가 어딨나.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자신에게 찾아온 두근거리는 사랑에 목숨을 걸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정말 나의 수호천사는 어디에? 나도 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수호천사가 되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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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 김처선
이수광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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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왕비, 후궁, 대신들이 주인공이 되는 세상에서 '내시'의 존재는 있는듯 없는듯 늘 미비했다. 자식을 생산하지 못하는 그들은 짐승이나 벌레보다 못한 존재였으니 사는게 얼마나 고단했을까. 왕을 업어키우고 바르게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직언을 하여 바른 정치에 참여한다는 생각에 늘 어깨를 수그리고 다녀도 힘이 났을게다. 드라마에서 임금이나 중전이 등장할때 조금 숙인 모습의 내시들을 보았으나 나 또한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색색가지의 화려한 옷을 입고 등장하는 아름다운 여인들과 카리스마 넘치는 왕을 보는 기쁨에 그저 붙박힌 존재로 생각했나 보다. 이제야 이들도 분명히 존재했음을 인식하게 되다니 그들의 고단한 어깨에 나도 한짐 가득 슬픔을 올려준 모양이다. 

목이 달아날 각오로 직언을 하는 신하가 그리 많지 않을텐데 임금 가장 가까이에서 바른말 하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었을터 여기에 소신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힘있는 후궁 밑에 들어가 결탁하여 갖은 악행의 주범이 된 조원이나 정귀수 같은 내시도 있지만 연산군에게 직언을 올리다 죽은 내시 김처선 같은 이도 있다. 그래 맞다. 이 책에서는 임금이 주인공이 아니라 내시 김처선이 주인공이다. 후궁끼리의 암투에 죽어나가는 것이 궁녀와 내시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아간다. 왜 이제야 이런 것이 보이냐 묻는다면 큰 인물만 죽어나가는게 기억될뿐 타인의 인생사에 대해 그저 아무렇지 않게 보아온 탓이다.  

역사드라마만큼 시선을 끄는 것도 없을 것이다. 권력, 모반, 암투 등 서로 죽고 죽이는 궐안에서의 사건들은 다 아는 내용이지만 계속 보게끔 매력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내가 가지지 못한 화려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은 동경하면서 보게 된다. 그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제대로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진 자들, 스스로 내시가 된 이도 있고 먹고 살기 힘들어 궁안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거세 당한 아이도 있기에 가슴이 아프다. 스스로 내시가 된 김처선의 삶도 그리 순탄하지가 않다. 예종이 갑자기 승하하고 그 죽음을 파헤치려 했으나 새 왕이 등극하며 자신은 무임으로 쫓기고 궐 밖에서의 평범한 7년을 보내게 된다. 판부사 내시 자리를 탐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앉게 될줄 알았건만 야속해질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살리게 될 줄이야. 계속 궐내에 남아있었다면 독살 당했을 것이라 생각한 예종의 죽음을 파헤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을 것이다. 판부사 내시가 된 한필주의 혜안으로 목숨을 빚졌다.  

임금의 말한마디로 죽고 사는 내시들. 궐밖으로 쫓겨간들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힘들지만 김처선에게는 착한 아내, 첩에 양자까지 있었으니 7년간 누린 궐밖의 생활이 제일 행복했을 것이다. 계절마다 아내가 담아준 술을 먹고 함께 배꽃을 줍던 그 시절. 다시 궐안으로 들어갔을때 또 다시 이런 호시절이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이길뿐이니 다시 정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다. 때는 성종의 치세라 연산군의 생모가 폐비되고 사사되던 그 시절이니 후궁들의 암투속에 죽어간 폐비윤씨가 부탁한 원자를 목숨바쳐 지켜내는 것이 그가 할 일이었다. 자신의 생명마저 던지며 세자를 보필해 보위에 오르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감개무량했을까. 이 세상에서의 할일을 다 끝냈다고 생각했겠지.  

여러 왕들을 모시면서 소신대로 살아온 그에게 연산군의 폭정은 그야말로 인생이 발밑으로 꺼져가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목숨을 내놓고 직언하는 그에게 돌아온것은 아주 끔찍한 죽음뿐이었으니. 임금에게 "걸주"라고 이야기 하며 천하의 폭군이라고 바른 말을 하고 죽어간 그가 이때만큼은 자신의 인생의 본분을 다했으니 비록 죽어가지만 후회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자신이 보호하고 목숨 바쳐 구해준 사람이 폭군이었다는 사실이 한스럽고 슬펐겠지. 자신의 무덤에 술을 뿌려주는 아내 향이. 비록 혼자 남아 지아비의 무덤을 보살필 수 있어 살아남았음을 감사해야 하지만 먼저 간 그가 너무도 그립다. 늘 다정다감했던 김처선을 제대로 사랑한 그녀가 있기에 비록 육체적으로는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없는 내시였다고 해도 "임금에게 호령할 수 있는 사람은 영감밖에 없습니다"라고 용기를 준 그녀가 있기에 비록 이 말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그는 인생 참 잘 살았다고 말하며 죽을 수 있을 것이다. 매를 맞을지라도 종국에는 죽을지라도 직언을 서슴치 않고 한 김처선의 생애를 더듬으며 나의 가슴에도 슬픔이 머문다. 화려하게 살다간 사람들에 묻혀 어깨를 수그리고 궐내를 다녔을 그가 보이기에 나도 그의 아내 향이처럼 무덤가에 술을 한잔 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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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2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추천^^

학진사랑 2007-08-24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혜경님..^^ 즐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