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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석 강아지 봅 - <책 먹는 여우>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프란치스카 비어만 글.그림, 임정희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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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태어나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을까. 아주 아주 어릴 때라 기억나지 않는데 그땐 그랬나 보다. 가족들의 관심을 빼앗긴다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상상은 간다. 커 버리면 그때의 감정이 사라지지만 지금 에트나에겐 아주 절박한 상황일 것이다. 더이상 똑똑하다, 예쁘다라는 말을 들을 수 없고 가족들이 동생 봅만 예뻐하는 것이 못마땅하다. 동생이 태어나면 함께 놀 생각에 신이 났던 에트나였지만 동생이 태어나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힘이 빠진다. 봅은 집 안을 어지르고 자신의 물건을 가져가는 귀찮은 동생일 뿐이다.

 

동생이 생기면 모두 에트나처럼 하진 않겠지만 이해 못할 일도 아니잖아? 그렇지만 동생 봅을 개줄에 묶어서 놀이터에 데리고 간 것은 너무했다. 물론 에트나도 봅도 개이긴 하다. 동생 봅의 몸이 자석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에트나가 떠올린 것이 놀이터에서 보물을 찾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상상력이란 보통 이렇다. 에트나의 보물들 중 동전들이 가장 큰 수확이겠으나 녹슨 열쇠, 작은 보온병, 쇠로 만든 조그마한 토끼, 예쁜 개 목걸이까지 찾는다. 어른들에게는 별 것도 아니어서 이런 것들이 보여도 줍지도 않을 것들을 에트나는 소중한 보물처럼 간직한다. 정말 신나긴 하겠다. 나도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흙을 파내며 놀지 않았던가. 그때 병뚜껑을 비롯하여 동전도 나왔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타인이 보기에는 보물 찾기가 동생을 괴롭히는 것으로 보이겠지만(사실 그랬다.) 에트나가 봅과 함께 한 최초의 놀이다. 그런데 봅은 왜 자석 강아지가 된 것일까. 느긋하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떠올리려 했으나 금세 사고가 터져 생각할 틈이 없다. 은행 강도의 가방에 들어 있는 동전들이 봅을 끌어당긴 것이다. 아아, 이 일을 어쩌면 좋아. 가방에 지폐가 아니라 왜 동전들이 들어있는 건가. 강아지 나라에는 멍멍이 동전만 쓰나 보다. 도대체 봅이 얼마나 먼 거리를 끌려간 것일까. 봅의 몸에 달라 붙는 것들 때문에 은행 강도가 도망가는 것이 버거워져 붙잡히는 것은 시간 문제이긴 하나 쇠로 된 묵직한 것들이 봅의 몸에 달라붙을 땐 정말 아찔하다. 저러다 다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다.

 

위험한 상황이었으나(엄마가 이 사건에 대해 듣고 얼마나 놀랬을까 생각해 봐라. 에트나야) '은행 강도 사건'으로 에트나는 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물론 그 뒤로 봅이 말썽을 피워 에트나의 감정이 폭발할 일이 종종 생기겠지만 가족이기에 자신의 감정을 잘 다독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에트나 너도 어렸을 땐 봅처럼 했거든? 그런데 엄마가 봅의 상태를 몰랐다는 것이 이해가 안되는데 육아에 지쳐 틈만 나면 소파에서 쉬고 싶다고 해도 "에트나와 봅 엄마, 봅에게 좀 더 신경을 써야겠어요. 아기들은 절대 혼자 두면 안되거든요" 

 

그리고 참 주의 사항이 하나 있는데 봅이 왜 자석 강아지가 되었는지 그 비밀을 알게 되어 또 한 번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중이다. 이는 아주 위험한 일이다. 자석이 몸 안에 들어가면 병원에 가야될 정도로 위험해서 "절대! 그 누구도 봅을 따라해선 안된다.!!!" 쾅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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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미 오브 갓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2 아서 왕 연대기 2
버나드 콘웰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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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르벨, '에너미 오브 갓'이라 이름 붙인 이 책에서조차 아서의 이야기보다 너의 이야기가 더 많구나. 데르벨이 네가 쓰는 글이니 누구를 주인공으로 내세울지는 스스로 정하는 것이긴 하지만 멀린이 원하는대로 부하들을 데리고 니무에, 케인윈까지 데리고 클러드노 에이딘의 솥을 찾아 다크로드에 들어서는 일이 아서의 일 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불평을 조금 해야겠다. 멀린은 아서가 색슨족과 싸우는 것보다 브리튼의 13가지 보물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아서는 브리튼에는 이제 순수 브리튼 종족들만이 살고 있지 않아 '신'의 도움을 바라는 것은 헛된 꿈일 뿐 인간이 만든 법과 질서와 정의로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라 했다. 마법을 쓰거나, 신이 인간에게 준 보물을 모아 그들의 신과 소통하여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기독교인들을 물리치기 위해 조금의 도움은 되겠지만 이것은 멀린이 원하는 세상일 뿐이다. 

 
'윈터 킹'에서는 아서가 선택한 사랑으로 수많은 브리튼인들이 죽음을 당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데르벨이다. 데르벨로 인해 한 여인이 행복해지긴 했으나 색슨족과 싸워야 할 브리튼 왕국들이 좀 더 강력한 결속을 다지지 못해 전투가 더 힘들어졌다. 그러나 아서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과 달리 데르벨이 선택한 사랑으로 인해서 큰 피해는 없었다. 데르벨이 아서만큼 그리 중요한 인물도 아니었고, 러그 계곡에서의 전투의 승리로 아서가 원하는대로 그려 놓은 세상이었기에 조금의 불균형과 귀니비어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것 외에 큰 문제는 없었다. 신분의 차이로 인해 그의 사랑이 좌절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멀린이 준 뼈를 부러뜨리는 것을 보니 사랑 앞에서는 그도 용감해질 수 있는 사내였다. 란슬롯이 전투에 한 번도 참전하지 않았음에도 거들먹거리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번에 데르벨이 크게 한 방 먹여 가슴이 후련해졌다.
 
그런데 이 일때문이 아니라도 란슬롯이 두고두고 후환이 될 것이라 짐작이 되건만 아서는 왜 그를 계속 곁에 두었던 것일까. 전투에 임해서는 폭풍 같이 적을 베고 지나가는 냉철한 성격의 그가 색슨족과의 싸움에 나갈 때 왜 란슬롯을 뒤에 남겨 두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이 서약을 지키지 못해 란슬롯이 왕국 없은 왕자가 되었다는 것을 계속 이유로 내세우지만 란슬롯이 실루리아의 왕이 된다고 해도 둠노니아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이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멀린의 말대로 자신들을 찾지 않는 인간들에게 신이 벌을 내리는 것일까. 아서가 그토록 원하고 있건만 브리튼이 통일된 왕국을 이루고 평화를 노래할 날은 더디게 올 모양이다.
 

데르벨이 지금까지 나에게 보여준 아서는 왕의 자리에 욕심이 없고 브리튼의 평화만을 바라는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모드레드가 왕좌에 오르면 칼을 내리고 귀니비어를 사랑하는 한 남자로 평범하게 살아갈 것이라 말했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변했고 그도 변해야 할 때가 왔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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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 킹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1 아서 왕 연대기 1
버나드 콘웰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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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노니아의 왕 '유서'가 다음 후계자로 '아서'를 지목했다면 역사의 많은 부분들이 달라졌을 것이다. '~했다면' 달라질 일이 어디 이뿐이랴. 아서가 귀비니어를 맞이 하지 않고 케인윈과 부부가 되었다면 많은 백성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백성들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을지라도 조금이라도 그 죽음을 늦췄을 것이고 전쟁보다는 외교를 중시했던 아서가 그동안 자신의 백성들이 죽거나 노예가 되지 않고 살아가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고 힘을 키울 시간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한 여자에 대한 욕망은 둠노니아의 주변 왕국들이 적으로 돌아서게 하고 더불어 색슨족과의 싸움도 힘겹게 만들었다. 죽어 나가는 이는 백성들 뿐이다.

 

유서의 며느리 노르웨나가 낳은 '모드레드'가 무슨 힘이 있어 둠노니아를 이끌 수 있었을 것인가. 모드레드가 칼을 잡고 전장에 나갈 때까지 유서가 살아있었다면 모르겠지만 모드레드를 수호하는 사람들 중 아서가 지목된 것은 유서 자신은 원하지 않았을지라도 모드레드가 왕이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조치였다. 둠노니아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서 뿐이다. 베드윈 주교는 아서의 편에 서고, 유일하게 대등하게 힘을 겨루었던 오와인은 아서에게 죽임을 당했다. 모드레드를 수호할 사람으로 남은 이는 모두 아서의 편에 선 사람들 뿐이다. 오와인과의 싸움은 외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지만 실제로 오와인이 사라졌을 때 아서가 챙길 이득 또한 작지 않았다. 둠노니아의 왕이 될 순 없어도 통치자 정도는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아서였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으니 분명 단언하건대 아서 자신도 원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비록 아서 자신이 자신의 욕망과 야망을 잠재우기 위해 양심과 끊임없이 싸워야했지만 말이다.

 

'아서왕 연대기'에는 악령을 쫓거나 저주를 막기 위해 침을 뱉는 행위가 자주 등장한다. 버나드 콘웰이 들려주는 '아서왕 이야기'는 치밀한 고증을 토대로 하여 기존에 다루고 있는 아서왕 이야기와 다르게 조금 더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하지만 마법과 판타지의 경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멀린과 니무에, 모르간이 보여주는 모든 행동들이 그들이 믿는 '신'과 관련이 있다 해도 마법과 판타지의 경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악령을 쫓기 위해 침을 뱉는 행동들은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이고, 오와인과 싸울 때 오와인에게 침을 뱉고, 욕을 퍼붓고, 비웃는 아서의 모습은 나의 머릿속에 있는 아서의 이미지와 다르지만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이그레인의 후원으로 '아서왕 연대기'를 집필하고 있는 데르벨. 다른 그 누구도 데르벨만큼 아서왕 이야기를 이렇게 사실적으로 들려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데르벨의 그 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 것이 문제인데 그의 어린 시절과 사랑하는 니무에와 멀린의 이야기, 전장에서 있었던 일들이 주를 이루어 간간이 등장하는 아서의 이야기를 가지고 '아서왕 연대기'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윈터 킹'이 아서왕 연대기라고 말할 순 없겠다. 데르벨의 자서전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법하다. 그뤼퓌드의 아들 다비드가 이그레인이 원하는대로 판타지속에나 등장할 법한 아서왕을 그리고 있다고 해도 오히려 다비드가 집필한 아서왕 이야기가 더 재밌을지도. 버나드 콘웰은 자신이 들려주는 아서왕 이야기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아서왕 이야기와 다를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겠지만 다비드의 글이든, 데르벨이 들려주는 이야기든 어느 글에서나 전쟁터의 끔찍함은 같을 것이다.

 

군들레우스에게 끔찍하게 죽임을 당한 노르웨나부터 끝없이 죽음들이 이어진다. 죽어 나가는 이들이 수도 없이 많은 전쟁터에서 아서가 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속에서 홀로 걸어 가는 길이 외롭고 더 험난해질지라도 아서, 그가 한 서약들이 지켜지려면 많은 것들을 희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니 역사는 그대로 계속 흘러갈 수 밖에 없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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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 1 - 바이러스 밀리언셀러 클럽 70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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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명성만큼 책 읽기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책이다. 6권이 마지막 권이니 아직 도입부라 재밌어지려면 멀었을거야, 라며 다독이며 읽었건만 2권을 읽을때까지도 그리 큰 즐거움을 주지 못했다. 예전에 읽은 '셀'이라는 내용과 비슷하다. 등장인물들과 사건의 배경은 다르지만 인류의 종말,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틀에 짜여져 있는 것처럼 비슷한 행보를 걷는다. 지금의 심정으로는 솔직히 6권까지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스탠드 시리즈의 독서는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3권은 재밌으려나 미리 조금 넘겨봤더니 별다른 내용이 없는 것 같다. 슈퍼 독감으로 인해 죽을 사람들은 죽고 감염되지 않은 이들이 살아남아 여전히 그들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나가는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계속될 모양이다. 뭐 특별한 일이 있을 턱이 있나 삶이란 다 그런거지, 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이런 장르의 영화를 많이 봐서인지 긴장감 있게 시선을 잡아 끄는 그런 내용이 좋다. 스티븐 킹의 '스탠드' 시리즈처럼 어느 특정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것이 아닌 살아남은 이들 모두를 주인공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주는 방식은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그저 심심한 일상적인 이야기라 큰 매력을 느낄 수가 없다. 뭐 그렇다고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지루함은 아니고 계속 끝없이 이어지는 사람들을 보는 듯한 지루함때문에 더이상의 책 읽는 것이 싫어진다는 것이다.

 

살아남은 이들의 꿈에 등장하는 '다크맨', 이는 '악'의 다른 이름이다. '선'에 해당하는 이도 곧 등장하여 자연스럽게 집단을 형성하여 살아가게 될 모양인데, 만약 슈퍼 독감으로 인해 인류에게 이런 불행이 닥친다면 이 책처럼 사람들이 이렇게 생활하게 될까. 먼저 살아남아야 하니 다른 곳에는 눈 돌릴 틈이 없을 것이고 그러다가 나를 이끌어주는 지도자를 원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이들이 동일한 꿈을 꾼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이는 영화나 드라마, 책에서나 가능한 일이니까.

 

재미있게 읽은 책은 주위에 권하기도 하는데 이 책은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계속 읽어야 하나 끊임없이 고민하며 읽은 책이다. '스탠드'는 마지막 결말조차 궁금하지 않은 책이다. 이미 결말은 나와 있으니까. 그저 주어진대로 살아가는 길만 남아 있을 뿐이다. 2권까지 읽었으니 이제 4권만 더 읽으면 되는데, 시작을 했으니 끝을 봐야함에도 갑갑해서 마무리를 어떻게 하게 될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 슈퍼 독감으로 인해 죽을 사람들은 죽고 산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가는 곳, 내가 이곳에 있었다면 진즉에 죽었을 것이라 서글프기만 한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책이겠지만 여전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슬프다는 것 외에 어떤 감흥도 느낄 수 없는 나와는 맞지 않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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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길 1 - 노몬한의 조선인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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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의 끝은 어디에 닿아 있을까. 그곳이 어디이든 건우를 떠올리며 아들 곁으로 돌아오고자 살고자 노력했던 길수가 그 끝에 서 있을 것만 같다. 이렇게 철길이 길을 따라 이어지고 있건만 왜 그는 아들에게 가 닿지 못했을까. 그 시절에는 그랬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죽어가 한 사람, 한 사람의 넋이 위로 받지 못했던 그 시절, 길수는 건우의 생일 날 다른 날과 다르게 조금 일찍 대장간을 나선 후 조선인 스기타에 의해 끌려가 전쟁에 징집되고 말았다. 아직 '전쟁'이 무엇인지 그 의미도 모르는 아들을 놔둔채, 그는 머나 먼 타국으로 가게 된다.

 

'아버지의 길'은 PD 한 명이 '탈북자와 관련한 추석 시즌 특집 프로그램'의 기획을 위해 김 노인을 만나게 되면서 시작된다. 김 노인이 죽기 전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 주며 우리들을 역사속으로 데려간다. '노르망디의 코리안'에 대한 이야기라면 대중매체를 통해서 들어봤기 때문에 길수가 낯설지 않았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아들을 그리워 한 아버지이기에 낯설지 않았다. 아버지였기 때문에 잔인하고 끔찍했던 그 세월 동안 머나먼 타국에서 살아남으려했던 그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건우를 떠올리며 끊임없이 자신을 잡았던 길수가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란 질문에 "그럴 것이다"라는 긍정적인 답변을 떠올리지 못했다. 내 나라 역사이기에, 슬프고 원통한 그때 일들을 잘 알고 있는 나는 길수가 끝내 건우에게 가 닿지 못함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먼 타국, 노몬한에서 소련군에게 포로로 잡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전하고 이젠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힌 그가 노르망디까지 오게 되다니,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노몬한까지도 건우에게 가게 될 길이 까마득히 먼 곳인데 이제는 몇 달, 아니 몇 년을 걸어서도 닿을 수 없는 곳에 건우가 있다니 길수의 이야기를 믿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런데 그런 일이 길수에게 일어났다. 길수는 죽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건우에게 가는 길을 포기하지 않고 조선에 , 건우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

 

건우에게 갈 수 없는 길수에게 영수는 건우를 생각나게 하는 존재이지만 지켜줘야 하는 아들과 다름 없다. 그런 영수가 계속 죽고 싶어했다. "형아야, 나 이제 죽어도 돼?" 길수는 끊임없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그래, 살아내야지. 꼭 살아서 고향에 있는 엄마와 형아 보러 가야지. 어린 아이가 전쟁터에서 감내하기엔 지금의 현실이 너무 끔찍하다. 형 대신 전쟁터에 오게 된 영수가 한 마디쯤 원망의 말을 쏟아낼 법도 하건만 끝내 고향에 있는 엄마에게 장사하며 잘 살고 있다는 말을 전해달라는 영수를 보면서 이 어린 아이까지 왜 이런 참혹함을 겪어야 하는지 울분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밖에는.

 

명선을 지키려 자원하여 입대한 정대와 그가 있는 부대에 위안부로 오게 된 명선, 월화와 길수 또한 명선과 정대가 있는 한 무대로 데려와 드라마에서나 일어날 법한 인연, 운명같은 만남을 그리고 있는 '아버지의 길'은 소설 같이 써 놨다고 생각해 버리고 말 그런 전개때문에 등장인물들이 인연을 맺어 한 곳에서 만나는 인위적인 설정이라도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역사를 그리고 있기에 이들의 발걸음을 외면하지 못하고 오롯이 바라보게 했다. 명선의 죽음이, 정대의 죽음이 그리고 영수의 죽음이 슬펐다. 슬프지 않은 죽음이 없었지만 조선에서부터 함께 한 이들의 죽음은 나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다. 조금의 위안이라면 이들에게 아픔을 준 스기타, 마사노부도 똑같이 고통을 당했다는 것 뿐. 책을 덮어도 먹먹해진 가슴은 쉬 가라앉지 않는다. 잊을 수 없으니까. 잊으면 안되니까.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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