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가 재미있는 걸 발견합니다.
지우개 자신의 흔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걸 말이에요.
늘 연필의 흔적을 지우는 지우개가 아닌
연필이 그려준 검은 배경 위에 멋진 하얀 선의 그림을 그리는 지우개.
마치 톰과 제리처럼 앙숙인 두 친구(?).
그렇지만 빛과 어둠, 창과 방패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해주는 관계.
서로가 있기에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관계.
연필은 여백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에서 바탕이 되는 반전을,
지우개는 '지운다'가 '그린다'는 동사로 변신하는 반전을 통해
이 둘의 관계는 지금까지 정의되어오던 존재의 의미에 역전을 가져옵니다.
그러면서 서로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기에 이르지요.
가장 반대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지만 서로의 숨어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 참으로 멋진 두 친구.
완벽하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이 두 친구의 관계라니요.
서로가 없으면 나로 있을 수 없는 그 완벽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멋지게 표현한 그림책이라니!
두 친구의 난타전을 손에 땀을 쥐고 보다가 서로의 바뀐 역할로도 완벽한 한 팀을 이룬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순간 정말 아!하고 감탄하게 만든답니다.
생각이 뒤집히고, 바뀐 서로의 역할로 새로운 관계가 성립되면서 정말로 완벽한 한 팀이 되는 연필과 지우개.
이제야 이 그림책의 제목이 어째서 <완벽해>인지 그 의문이 풀리네요.
내용 자체도 반전으로 이루어져 흥미진진하지만 역시 그림으로 풀어낸 상상력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굉장한 그림책이랍니다. 그림 자체는 정말 너무나 단순하지만 이 안에 담긴 창의성은 정말 놀랍고 어찌 보면 치밀하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우개의 지우갯가루, 지우개 몸 여기저기 묻은 검댕이 자국, 앉았다 일어난 지우개의 엉덩이에 묻은 연필 자국에 빵 터졌습니다. 진하기와 굵기가 다른 연필 선들과 지우개가 지나간 다양한 흔적들이 보여주는 다채로움은 그저 신기하답니다.
정말 연필과 지우개만으로 완벽한 하나의 그림책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서 더 대단해 보이기도 해요. 맥스 아마토 작가님의 첫 그림책이라는데 정말 완벽한 그림책을 첫 작품으로 그리셨으니 다음 그림책은 어떤 것일지 기다려지네요.
우리 가까이에 있는 평범한 것들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그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또 다른 그림책이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여러분에게도 서로를 완벽하게 만들어 주는 누군가가 있나요?
전 아주 가까이에서 때론 아웅다웅 때론 다정다감한 완벽한 저의 반쪽이 떠오르네요. ^^
서로가 있어 완벽한 누군가와 함께 하는 당신이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