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머리 앤 1~5 세트 (미니미니북) - 전5권 더클래식 세계문학 미니미니북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박혜원 옮김 / 더모던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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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고나서 만나는 좋은 친구들도 많지만

어린 시절 친구만큼 서로에게 스스럼없고 많은 영향을 주고 받는 친구는 드문 것 같다.

특히나 책 속에서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멜로디만 나오면 자연스레 흥얼흥얼 '주근깨 빼빼마른 빨강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라며

추억의 애니메이션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도 잊지 못할 아니 잊을 수 없는 친구 빨강 머리 앤.


10대 때 보았던 앤 이야기와 애니메이션 삽화를 몇 십년이 흐른 지금 다시 만났지만,

변함없는 앤의 매력에 정말이지 말 그대로 홀딱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다양한 버전의 앤이 나오고 있지만 이 미니미니 세트는 정말 정말 작고 작아서 책 한 권이 한 주먹에 쏙 들어온다.

크기는 비록 작을지 몰라도 빨강 머리 앤의 측량 불가능한 매력은 고스란히 들어 있는 빨강 머리 앤 미니미니 세트. 앤의 사랑스러움이 압축되어 있어 보고 있노라면 그 앙증맞음에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르고,

책 속의 앤을 어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기대감과 설렘으로 마음이 간질거린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정말 작은 크기의 책이라 들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나 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던 <빨강머리 앤> 미니미니북.


겉모습에 대한 평은 이 정도로 하고 속내를 들여다 보도록 하자.

겉모습에 속지 말라는 말,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어쩜 이리 잘 어울릴까?

겉모습은 시작에 불과하고 작은 책이 눈물을 쏙 빼놓을 것이다. 매워서가 아니라 감동적이라서 ^^

남자 아이를 입양하려 했던 고지식한 마릴라와 무뚝뚝하고 말수는 없지만 마음은 따뜻한 매튜 남매가 사는 초록지붕에 상상력 넘치고 감수성으로 똘똘뭉친 빨강 머리 앤이 찾아 오고 우여곡절 끝에 세 사람은 함께 살게 된다.

처음엔 상상력 천재인 앤의 엉뚱함에 혀를 내두르던 주변 사람들도 차츰 앤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든다.

에이번리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앤만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키워가며 영혼의 친구 다이아나와 우정을 쌓아가는 앤의 사랑스러운 성장기를 읽다 보면 앤을 응원하는 동시에 앤에게 격려받고 응원받는 기분이 든다.

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앤의 다양한 매력에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작가로서의 능력과 이 책의 문학적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앤이 만들어낸 상상의 친구들이 외로움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참 뼈아프게 다가오기도 하고 동시에 그 상상이 이 아이를 강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상상의 또 다른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요즘 공부머리보다 상상력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는데 그것이 새로운 자본의 원천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관점을 좀 씁쓸하게 바라보던 차라 그런지 반가운 기분마저 들었다. 입양을 통해 가족이 된 세 사람, 보통 어린 아이를 입양하는 것을 선호하는 데 거의 다 큰 아이를 입양한 것, 남자아이를 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무도 자신을 원하지 않음을 슬퍼하는 앤의 모습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생기고 있는 요즘의 모습과 어떤 접점이 되어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남자아이이건 여자아이이건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몽상가인 앤과 현실적인 어른의 표본인 마릴라가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 같지만 점차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가고 있는 모습에서 다양한 각자가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과정의 따뜻한 서사가 마음에 번져왔다.


모든 책들이 그러하지만 같은 책이라도 언제 읽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들을 남기는데, 이번에 앤을 만나면서 앤의 성장보다는 앤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부모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마릴라와 매트가 부모로 성장하는 모습과 앤과 함께 가족이 되어가는 그 모습에서 더 많은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요 작디 작은 책이 가진 어마어마한 힘이라니, 그것은 모두 '순수한 영혼에 불처럼 뜨겁고 이슬처럼 맑은' 빨강 머리 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

우리에게 빨강 머리 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고 기쁜지....

앤, 넌 내 영원한 마음의 친구야!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잘 부탁해! ^^

마지막으로 오래 오래 내 귓가를 맴돌던 앤의 숨결 같은 속삭임을 남겨 본다.

"아, 살아 있다는 것도, 집에 간다는 것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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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서양철학 - 쉽게 읽고 깊게 사유하는 지혜로운 시간 하룻밤 시리즈
토마스 아키나리 지음, 오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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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교육 과정에서만 만났던 철학자들을 다시 소환해 보고 현대철학을 이끄는 뉴페이스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펼쳐든 <하룻밤에 읽는 서양철학>

아닌게 아니라 그리 어렵지 않은 설명으로 각 철학자들의 사상을 간단히 요약해 놓았다는 점이 좋기도 하면서 동시에 제대로 알았다고 하기에는 뭔가 아쉬운 느낌을 남기는 책이다. 제목처럼 하룻밤에 읽을 수 있는 정도의 분량으로 서양철학의 계보를 개괄하고 있기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고대와 중세부터 근대와 현대에 이르는 많은 철학자들을 금세 만나볼 수 있다.

책은 시대별로 크게 3장으로 나뉘어 있다. 우선 철학의 싹을 틔우기 시작한 '1장 사색하는 사람의 기원'에서는 고대와 중세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예수 그리스도,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를 다루고 있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2장 신을 파헤치는 사람들'에서는 방밥적 회의론자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유명한 데카르트, 범신론자인 스피노자, 이성이 아닌 개인의 감각과 경험을 통한 인식에 중점을 둔 경험론의 로크, 버클리, 흄, 합리론과 경험론을 넘어선 비판철학의 칸트, 변증법의 헤겔을 만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시간적으로 가장 가깝지만 가장 낯선 현대 사상가들이 '3장 인간에게 존재를 묻다'에서 등장한다. 근대 사상의 거인 헤겔을 극복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현대 사상. '죽음에 이르는 병'인 절망이라는 질병을 통해 실존주의를 이야기하는 키르케고르, 최고의 가치로서 신을 대신할 초인의 출현을 기대한 니체, 인간의 잠재의식에 노크를 한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 눈 앞의 현상을 의식의 환원을 통해 그 본질을 인식하는 현상학의 후설, 근대적 세계관을 버리고 이미 세계 안에 자신이 있음을 발견하고자 한 하이데거, 본질을 앞서는 실존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실존주의자 사르트르, 후설의 초월론적 주관성을 상호주관성으로 확장시킨 메를로퐁티, 언어를 기호화하여 논리적으로 과거의 철학을 분석하고 비판한 비트겐슈타인, 언어와 언어의 관계를 분석하여 세계의 구조를 알고자 한 구조주의자 소쉬르와 레비스트로스, 사적유물론의 마르크스, 마르크스주의에 정신분석의 충층적 결정 개념을 적용해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사회의 깊은 내면에 감추어져 있는 구조라고 본 알튀세르, 우리 내면에 각인된 에크리튀르와 외부에 쓰인 에크리튀르를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탈구축을 이야기한 후기구조주의자 데리다, 욕망하는 기계인 인간에게 노마드적인 도주를 권하는 들뢰즈, 기호론의 시조인 퍼스, 실험적 효과를 중시하는 퍼스의 프래그머티즘을 개인의 심리적 영역에서 얻어진 특수한 경험에 적용시켜 '믿는 의지'를 강조한 제임스, 과학이 '사실 판단'을 윤리학이나 미학이 '가치 판단'을 각각 다루며 가치가 먼저 존재한다는 고전 철학의 입장과는 반대되는 가치 판단은 사실 판단으로부터 도출된다는 듀이, 진리란 어딘가에 최종적인 근거를 갖는 게 아니라 당장의 신념에 의해 지탱되며 항상 개혁의 가능성을 남기는 일종의 착각이라 말한 로티에 이르기까지 책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현대 서양철학의 주역들과의 데이트까지가 이 책의 마지막 장이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정리 잘해주는 선생님의 칠판을 보는 것처럼 요약 정리가 잘 되어 있는 표도 나름 점수를 주고 싶다. 그 표를 토대로 살을 더 붙여가며 정리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혼자서 이렇게 저렇게 나만의 정리를 해보기도 했다. 또, 이 책만의 특징이라면 무엇보다 철학이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표현들이 행간에 녹아들어 있어 그런지 철학의 역사를 마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는 점이다. 철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상이 생활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 힌트 같은 이야기가 생각할 거리를 선물처럼 막 안겨준다. 선물을 풀어보는 과정이 바로 철학하는 시간이고 선물은 나만의 질문과 답이 될 것이다.

<하룻밤에 읽는 서양철학>

책은 쉽고 빨리 읽히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이 내용이니만큼 하나의 철학을 깊게 사유하기 위한 물꼬를 터주는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사실 그래서 궁금해진 철학자들의 사상을 찾아서 제대로 사유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치밀하게 계획된 계산이자 부록. 개인적으로 고대와 중세에서 멈춰 있던 서양 철학의 사조가 근현대에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 그 흐름을 훑을 수 있어 의미있는 책읽기 시간이었다. 본격 서양 철학을 공부하기 전에 그 흐름을 파악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개론서가 되어 줄 <하룻밤에 읽는 서양철학>

서양철학의 역사를 읽어가며 내 존재와 인생에 대해 좀더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철학하는 시간도 함께 갖는다면 하룻밤에 읽기에는 쉽지 않은 책이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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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냥반 이토리 - 개정판
마르스 지음 / 라떼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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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냥반 이토리! 그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일상 그리고 넘나 멋진 귀한 모습들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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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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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작가님의 이름은 잊지 않을 만큼 충분히 자주 들었지만,

실제 작품으로 만난 것은 <죽은 자로 하여금>이 처음이다.

죽은 자라... 죽음에 대한 이야기인가 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죽은 자로 하여금>은 이석과 무주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나와 우리의 이야기였다.

이인시라는 조선사업의 몰락과 함께 침몰해 가는 지방에 위치한 노인 환자를 하나라도 더 유치하려는 종합병원인 선도병원에 근무하는 두 사람.

무주는 낯선 이인시에 와서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준 이석을, 교통사고로 아이가 병상에서 떠날 수 없는 이석을, 누구보다 병원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이석을, 뻔한 이석의 월급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아이의 병원비와 삶의 온갖 비용들을 알면서도 이석의 비리를 고발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사실 이곳에 온 무주 역시 서울에 있던 이전 병원에서 불법을 저지르고 결국 이곳으로 쫓겨오다시피한 신세. 그런 무주에게 아이가 생긴다. 정확히 말하자면 검고 둥근 작은 점의 형태를 하고 있는 생명체.

자신이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에 무주는 죽었던 자신의 정의감과 도덕심이 새로 태어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그것이 연약할 수록 더없이 책임감과 위기감을 느끼는 그는 끊임없이 '조심해요'라고 세상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중얼거린다.

"사람들은 다 똑같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과거로부터 온 목소리였다. 무주는 그 소리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였고,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은 잘못을 저리르리라 쉽게 단정했다." 그리고 "무주는 자신이 특별히 나쁜 게 아님을 중명하고 싶어서 다른 사람의 결점을 지적하는 쪽을 택했다."

이석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변화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 역시 무주와 다를 바가 없다

김이 계속해서 무주를 몰아붙이자 무주는 "조심합시다."라며 모두의 숨은 비리를 아는 척한다.

다시 등장한 '조심해요'.

처음의 '조심해요'가 아이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조심해요'였다면 이 '조심해요'는 결이 조금 다른 밖을 향한 경고에 가까운 '조심해요'다.

결국 날을 세운 무주는 야간근무로 격무에 시달리다 퇴사하기를 바라는 원무과로의 불합리한 인사이동 후 어느날 다시 이석과 만난다. 그간 요양급여를 착복해오던 원장이 해임되고 이석은 개원 예정인 요양시설의 본부장으로 복직과 동시에 승진을 한다. 무주와 이석의 어색한 재회. 둘은 함께 술을 마시며 뉴스에 나오는 예전 조선소 근무 노동자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되는데 이석은 용접공이 가장 먼저 잘리고 그 다음부터는 모두가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모두가 살기 위해 타락을 택하는 보통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를 건넨다.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를 인용하며 이석은 자리를 뜬다.

영혼이 죽은 불신자는 불신자에게 가고 믿는 자만 나를 따르라는 뜻이라는 해석을 남기고 말이다.

소설은 끊임없이 갈등하는 무주의 내면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거울처럼 내 자신을 비추고 있다.

인간의 윤리와 도덕이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인간의 입장이란 그렇게 늘 시험받는 자리에 놓여 있는 것.

양심적인 인간, 즉 살아 있는 자는 늘 위기에 처하기 마련이다.

자본주의 안에서는 타락만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이석의 이야기와

기회가 있었으나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 이석을 생각하며 무주는 자신에게 남은 것을 애써 생각한다.

태내 아이를 보호하려고 두 손을 복부에 포개고 어색하게 걸음을 옭기던 아내를, 의지가 되는 그 모습에 기대어

무슨 말인가 시작하고 싶어진 무주.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와 인물이 갖는 함의를 곱씹어 보게 된다.

이인시라는 배경. 병원이라는 장소. 무주는 말한다. 병원은 차라리 거대한 장례식장이었다고.

과거의 영광은 골리앗 크레인의 존재만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령 같은 적막한 도시보다 그나마 아픈 사람들이 있는 병원이 낫다 생각하는 무주. 처음 이석에게 왜 병원이 좋으냐고 묻던 수차례의 질문과 그 대답이 다시 떠오른다.

병원이 바라는 건 병상이 비지 않는 것이지 환자의 완치가 아니었다는 무주의 깨달음은 자본주의의 최후의 모습을 일깨워준다. 아프고 병든 그리고 타락한 채 죽어 있는 자들의 세상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고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병원을 떠나온 무주는 이제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할 것이다.

인간이 어떻게 타락하고 고통받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살기 위해 묵묵히 걸어나가는 모습만이 끝까지 잔상에 남는 소설.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가르치는 소설이 아니라 인간의 어떠함에 대한 소설이 바로 <죽은 자로 하여금>이다.

이 소설의 제목인 <죽은 자로 하여금>은 성경 구절 전체를 가져오지 않았다.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지만 이 책의 결말이 열려 있는 것처럼 죽은 자에게도 기회는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주 역시 죽은 자와 산 자를 오고 가며 타락했지만 의심했고 자신과 모두에게 경고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질문은 역시 무엇을 믿는가하는 문제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논리를 믿는 이에게는 타락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자의 믿음이니 말이다.

오늘 내게 남은 소중한 것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야기, 내가 믿는 소중한 것들을 껴안게 만드는 이야기.

참으로 제대로 살고 싶어지는 소설, 편혜영의 <죽은 자로 하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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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풍선 나린글 그림동화
제시 올리베로스 지음, 다나 울프카테 그림, 나린글 편집부 옮김 / 나린글(도서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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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색의 풍선들.

풍선 하나에 기억 하나.

그렇게 다양한 색깔의 풍선 속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은 <기억의 풍선>

할아버지와 손자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가 어여쁜 풍선을 가득 들고 우리를 맞아줍니다.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나는 추억으로 가득 찬 풍선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나는 동생보다는 많지만 엄마와 아빠는 나보다 더 많은 풍선을 갖고 있답니다.

그리고 내 할아버지는 더 많고 더 멋진 추억 이야기가 들어있는 풍선을 갖고 계시죠.


내가 할아버지에게 풍선 속 이야기들을 해달라고 조르면,

할아버지는 노란색과 파란색 풍선 속 재미있는 어린시절 추억이나

보라색 풍선 속 할머니를 만나 결혼하던 날의 아름다운 추억 이야기를 들려주신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도, 나에게도 있는 같은 색깔의 풍선들은

바로 할아버지와 나의 추억이 들어있어 무척 소중하지요.


그런데 요즘 할아버지의 풍선에 문제가 생겼어요.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거나, 풍선을 놓치는 일이 생겼거든요.

할아버지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셔서 내가 열심히 쫓아가보지만

풍선은 매번 손끝을 빠져나가 버립니다.

엄마에게 말씀드리자 엄마는 슬픈 얼굴로 나이가 들면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셨지요.

할아버지의 풍선들은 점점 더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하고

마침내는 나와 할아버지의 소중한 은색 풍선마저 놓쳐버립니다.

나는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고 길가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지요.


"왜 그 풍선을 날아가게 놔뒀어요? 그건 할아버지와 저의 풍선이잖아요!"

할아버지는 내 등을 토닥여 주셨지만 내가 할아버지의 손자인 것도 잊어버리셨어요.

그렇게 할아버지의 풍선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자, 이제 할아버지와 나의 이야기는 어떻게 끝이 날까요?

사실 할아버지가 손자인 나와의 풍선을 놓치고 그것을 타박할 때는

정말이지 아이의 성이 난 목소리가, 안타까운 목소리가 너무나도 귀에 쟁쟁하게 들려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손자를 기억하지 못할 때는 그저 가슴이 먹먹해져버렸고요.

사실 저 역시 가까운 두 분이 이 책의 할아버지와 같은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고 계시기에

소년의 마음이, 그 안타까운 마음이 더 가깝게, 더 절실하게 느껴져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모든 기억의 풍선을 놓쳐버린 할아버지와 소년을 어떻게 되었을까요?

멀리 멀리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한 할아버지의 풍선들.

사라진 게 아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소년에게 들려주고 나눠준 기억들은 이제 소년의 풍선이 되었거든요.

그래서 소년은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새 풍선들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합니다.

한때 할아버지의 풍선들이었던 추억의 기억들을 말이에요.

우리들은 참 연약한 존재입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죠.

태어날 때부터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그리고 나서도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기억 속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또 다른 도움을 받습니다.

그렇게 함께 기억을, 존재를 나누고 이어가고 연결되어 있을 수 있는 우리는 연약하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억의 풍선>을 보면서 우리가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풍선이 숨을 불어 넣어야 부풀어 오르는 것이란 점에서, 보이지 않는 숨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장치란 생각이 들었어요. 더 많은 풍선을 건네받고, 더 많은 풍선을 건네주고 싶어졌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풍선을 건네받고, 건네주었나요?

우리들의 손에 더 많은 풍선들이 가득하기를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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