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엄마가 된다
하루나 레몬 지음, 이소담 옮김 / 길벗스쿨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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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엄마가 된다> 제목을 듣자마자 고레에다 하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보여준 영화처럼 <그렇게 엄마가 된다>도 그런 커다란 감동을 주는 책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펼쳐든 하루나 레몬 작가의 <그렇게 엄마가 된다>


이 책은 작가 본인이 겪은 임신, 출산, 육아를 그린 에세이로 '울고 있는 엄마 곁에서 어깨를 감싸 안고 같이 울어주는'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한 사람이라도 그 곁을 지킬 수 있는 그런 책이 되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참 어여쁘고 엄마가 될 모든 사람의 행복을 비는 그 마음이 참 고마워서 한 장 한 장 넘기는 손 끝부터 따스한 기운이 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겪는 엄마가 되는 과정이 모두 다 다르다는 사실은 남들 다 겪는 일에 너만 유난이라는 핀잔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넌지시 알려준다. 그리고 그래서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주고 위로해준다. 임신으로 인해 일하는 엄마로서의 고충, 행복한 것처럼 보이는 임신의 이미지도 사실은 포장된 부분이 있다는 사실, 처음으로 생명에 대한 감각이 싹튼 순간의 감동, 신체의 변화와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한 정신적 혼란까지. 이 모든 임신 기간의 이야기를 담은 임신편을 지나 출산을 하고 수유와의 전쟁, 출산의 고통보다 더한 무시무시한 젖몸살과 출산으로 인해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의 괴로움으로 입을 다물게 되는 지경에 이르지만 조금씩 회복해 가는 출산편은 끔찍했던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나서 그야말로 필사적일 수 밖에 없는 육아의 시작, 처음에는 부모가 된 느낌이 없어 어색하게 보이던 아이가 매일 바라보며 애착이 강해지고 하루종일 돌보는 것이 힘들지만 하루에도 수백 번 바뀌는 표정을 보며 산후우울증을 극복해 간 작가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긴 육아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 어느새 맞아 그때 그랬지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한 장 한 장 한 컷 한 컷에 담긴 이야기가 어느 것 하나 공감가지 않는 것이 없어서 이것은 내 이야기인가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겪어본 사람만이 나눠줄 수 있는 진심들에 함께 울고, 웃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가벼워지고 부드러워진다.


특히나 "너무 행복한데, 왜 이렇게 불안하고 고독하지?"란 생각 한 조각이 마음을 콕콕 찔러댔던 그때의 그리고 지금도 때때로 찾아오는 순간들이 떠오르지만 마지막에 작가가 건네는 위로와 따뜻한 포옹 그리고 다독임이 정말로 아... 이렇게 엄마가 되고 있는 나를 위한 것임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임신과 출산이 당연하고 평범하다는 착각을 하는 이들에게도, 그리고 누구보다 엄마가 되어가는 이들에게 꼭 쥐어주고 싶은 책 <그렇게 엄마가 된다>

책에 담긴 진심어린 위로와 격려의 메세지가 너무나 진한 감동으로 다가와 하마터면 이것이 만화임을 잊게 만드는 것을 방지해 주는 것 같은 단순하고 귀여운 그림은 미소와 웃음까지 확실하게 책임져준다. 엄마되는 일의 대단함과 고단함, 고독함 그리고 험난함과 기특함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나 잘 그려준 작가에게 그저 박수쳐 주고 싶어진다. 이런 만화가 우리는 필요했다는 거!!!

앞서 이야기를 꺼냈으니 마무리도 해야겠기에 다시 한번 비교해 보는 영화와 만화. 매체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옛스러운 스타일로 무겁게 다가온다면 만화 <그렇게 엄마가 된다>는 요즘 세대의 요즘 스타일로 훅 들어온다. 이러나 저러나 엄마도 아빠도 참 되기 힘들다는 사실 하나는 변함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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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박물관 기행 - 영국 박물관의 소장품은 어디서 왔을까
박보나 지음 / 제이앤제이제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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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으로 여행을 가는 이들의 상당수가 영국 런던을 리스트에 올릴 것이다. 그리고 런던의 박물관들은 방문 필수 코스! '런던하면 박물관, 박물관하면 런던'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런던에 등록된 박물관이 2016년 기준으로 250개인 것도 모자라 계속 증가 추세라니 말이다. <런던 박물관 기행>은 그 중 5개의 공공 박물관인 영국 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 테이트 브리튼, 테이트 모던을 중심으로 박물관의 탄생과 성장을 그리고 있다. 박물관이 유물을 모아놓은 역사 공부하는 곳이지 뭐 별 거 있겠냐는 생각을 하는 나 같은 박물관 초보들에게 세계 최초의 공공 박물관의 시작과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아주 유익한 시간이 되리라 생각하며 또 앉은 자리에서 런던의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이 책의 첫 방문지는 영국 박물관. 전 세계 최초의 공공 박물관인 영국 박물관은 많은 개인 컬렉터들의 기부로 시작되 '모두에게 열린' 박물관으로 시각 장애인이나 발달 장애인 같은 박물관 서비스를 접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한 체험 이벤트를 하는 배려가 돋보였다. 한 공간에서 전 세계를 만날 수 있게 계획된 개관부터 박물관에 소장된 상당수의 다른 나라 유물 반환 소송 문제에 이르기까지 박물관과 관련된 다양하고도 속깊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영국 박물관에 있는 한국관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나도 10년 전 실제 영국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한국관을 발견하고 반가웠지만 너무나 작은 규모에 허무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났다. 과거의 국가적 정체성에 바탕을 둔 전시와 소장품 수집 방식이, 전 세계 보편적 역사와 미의식을 기반으로 변화하고 있기에 어쩌면 한국관이 마지막 국가관이 될 수도 있다고 하니 작지만 의미있는 공간이란 생각도 든다. 앞으로 국내 박물관에 대한 관심도, 외국 박물관에 있는 국가관에 대한 국민들과 정부 차원의 관심도 높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더라는.


1838년 완공된 내셔널 갤러리는 계층 구분 없이 런던 시민의 취향 향상을 위해 설립된 진정한 의미의 열린 미술관이라고 한다. 12세기 중세 이콘화부터 19세기의 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서양 미술사의 온갖 양식을 모두 만나볼 수 있는 규모는 작아도 실속있는 갤러리로, 저자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도 살짝 보여 주면서 시대별 미술사를 간략하게 정리해준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에서는 영국 역사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친 인물들을 만나는 동시에 매체의 발전도 함께 탐험할 수 있다.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와 프랑스 루브르 미술관에 있는 또 하나의 <암굴의 성모> 이야기와 2차 세계 대전 중에 한 달에 한 번씩 단 한 점의 작품이 걸렸지만 더 많은 런던 시민들이 미술관을 방문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려준다. 작품의 보존 연구를 이른 시기부터 해온 오늘날 최고의 회화 전문 보존 기관인 동시에 미래 세대에게 온전하게 넘겨주기 위해 보존 기술을 전파하는데 힘쓰고 있다고 한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미래를 위한 준비까지 철저한 모습에서 참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세계 최초의 산업 미술, 공예, 그리고 디자인 박물관인 V&A 박물관은 영국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다순한 산업 미술 전시관을 뛰어넘은 대중이 미술과 디자인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교육 공간으로서 '모든 사람을 위한 교실'의 역할을 하고 있다. 19세기 예술가들과 기술자들의 디자인 교육을 위해 만들어졌으나 지금은 모두에게 열린 교육을 제공하는 원본의 석고 복제품 전시실인 '캐스트 코트'와 패션쇼, 웨딩, 시상식, 프라이빗 파티 그리고 요가 까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는 '라파엘로의 방'은 꼭 방문해 보고 싶다. 누드색의 고정관념을 깬 크리스찬 루부탱의 2013년 힐 컬렉션과 난민들의 용기와 희생자들을 의미하는 난민기 같은 사회적으로 화자되고, 현대인의 삶을 반영하는 신속 대응 컬렉팅과 더불어, 스테인리스 컵과 데이비드 보위 그리고 크리스챤 디올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대중문화 요소들을 예술적인 전시로 선보이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 곳에도 소박한 한국관이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에 본격적으로 일본의 속국이라는 일본이 만든 목가적이고 원시적인 이미지로 서양에 소개되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 그러나 더이상 국가의 특징을 부각시키는 전시 방식을 넘어 세계를 아우르는 디자인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변화하는 V&A 박물관에서 한국의 미감을 드러내며 보편적인 공예 기술과 디자인을 보여주는 곳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하니 참 기특하고 고마운 장소란 생각이 든다.


500년 영국 미술의 역사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영국의 현대 미술관 테이트 브리튼과 국제적인 현대 미술의 경향을 한 공간에서 읽을 수 있는 테이트 모던. 영국 대표 낭만주의 화가 윌리엄 터너의 유산과 사업가 헨리 테이트의 기부로 설립된 미술관이다. 테이트 브리튼이 과거에 악명 높은 죄수들을 호주로 이송하기 전에 가둬두던 밀뱅크 감옥이었고 지금도 죄수 유령이 출몰한다는 이야기는 흥미롭고도 오싹하다. 늘어나는 소장품을 처분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며 공공기관이지만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회사처럼 운영되고 이사회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테이트 미술관만의 운영하는 방법(우리나라의 국립현대 미술관과 테이트 미술관의 운영 도표가 그 차이를 확연히 보여준다.)은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아직 우리나라 박물관은 소장품과 연구 수준 등이 부족하고 그 역사도 짧기에 내실화가 먼저라는 작가의 의견에는 동의한다. 장기적으로 발전하고 성장하는 테이트 모던과 런던의 밀레니엄 프로젝트를 보며 정부 주도 문화 프로젝트가 한 정권을 넘기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이 안타깝고 그들의 지속가능성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테이트 모던을 삶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예술을 즐기는 놀이 공간으로, 미술 작품 외에도 참여 미술과 연극, 무용, 그리고 음악이 곁들여진 다양한 예술 장르를 즐기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프랜차이즈화하고 있는 점이나, 터바인 홀 프로젝트라는 미술관과 기업 그리고 예술가 모두에게 득이 되는 새로운 방식의 아트 마케팅도 흥미로웠다. 미술계에 떠오르는 여성 이슈를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여성 작가의 비율을 의도적으로 높이고 있고, 문화적 다양성이 경쟁력으로 부상한 세계화된 사회에서 테이트 미술관은 영국을 넘어서 전 세계의 지역과 문화를 넘나드는 소장품, 전시,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현대 미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더 많은 사람에게 현대 미술을 접하게 한다는 설립 목적은 동일하지만 연대기 순으로 현대 미술을 전시하는 뉴욕 현대 미술관과 주제를 나누어 현대미술을 보는 개념을 확장시키는 테이트 모던의 전시 방법의 차이를 비교해준 것도 재미있었다.

5개의 박물관을 돌아보고 저자는 박물관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이들 박물관의 전시를 자세히 살피면 상당히 정치적으로 과거에 옳다고 믿어진 분류 방식이 시간이 지나면서 옳지 않음이 증명되고 변화한 것처럼 지금껏 우리가 수용해 온 전시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이야기는 여지껏 봐왔던 박물관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박물관하면 함께 따라다니는 또 하나 문제인 유물 반환과 관련해서는 현재 문화재 반환 요청으로 소송 중인 소장품들이 무수하지만 유물의 역사적 범위와 문화적 맥락에 따른 해석부터 보존상의 문제 등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원래 자리로 돌아갈 가능성은 적은 것이 사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은 유물 반화에 있어 좋은 사례로 국민들의 열성적인 관심과 지속적인 노력, 국제적 소통과 상호적 연구를 바탕으로 독적적 연구 인프라 구축을 통해 박물관의 내실을 다지고 성장한다며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 또한 공감되는 이야기였다.

오늘날의 박물관은 문화적 우월성의 단순 비교를 벗어나 전 인휴가 공유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찾는 공간으로, 모두에게 진정으로 열려있는 진리의 공간이 되리라 믿는다는 작가의 말에 무엇보다 지금껏 바라보던 박물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영국 런던에 갈 예정이 있는 여행 중이거나 계획 중인 누군가, 혹은 여행은 꿈도 못 꾸는 당신이라도 이 책은 전자에게는 더 깊이있고 풍성한 여행을 후자에게는 가보지 못했지만 가본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해 줄 것이다. 또 박물관이 역사를 박물해 놓은 그저 고리타분한 옛이야기나 하는 옛날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해 왔거나 전혀 관심이 없던 당신이라도 이렇게나 흥미로운 곳이었어라며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로 다가올 것이다. 비행기 안 타고 책 한 권으로 만난 런던 박물관 기행이라니 이보다 더한 이득이 어디있을까? ^^ 지금 당장 런던으로 떠날 수 없다면 이 책만 펼치면 된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박물관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런던 박물관 기행을 읽었을 뿐인데 이번 주말에 가까운 박물관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일 년 중에 손에 꼽을까 말까 할 정도로 가는 그런 곳이 아니라 주말이면 자연스럽게 누구나 찾아가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활성화된 사람들로 가득한 그런 우리들의 박물관도 함께 꿈꿔본다. 어쩌면 <서울 박물관 기행> 이런 제목의 책이 나오길 기대해도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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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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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라는 이름만으로도 이 책을 읽기에 충분했지만, '생을 헐어 쓴 글'이라는 신형철 평론가의 말이 더 이 책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었다. 평론가의 눈으로 본 평론에 가까운 글이기에 더없이 적확한 표현임에 틀림없을 거라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제목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이 책은 지금의 위화를 있게 한, 위화를 형성한 문학과 음악들에 대한 것으로 그의 독서사이자 음악사이다. 서문에서 그는 독서가 원뜻에 한 개인의 경험과 느낌이 겹겹으로 더해지는 다채로운 시간 즉 음악으로 치면 화성이라면서 이 책이 작품과 '위화'라는 사람이 동시에 함께 연주해 낸 화성이라 말한다. 또 <산해경>에 나오는 눈 하나에 날개 하나인 만만 또는 비익조를 텍스트와 독서행위에 빗대어 둘이 의기투합해야 날 수 있다는 흥미롭고 인상적인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렇다면 이 책은 그의 비행 기록이기도 할 것이다.

첫 시작은 '견해'에 대한 이야기. 15년 동안 글을 써오며 바뀐 자신과 우리 삶에 존재하는 견해가 얼마나 다양한지 그리고 각각의 견해가 그들만의 자격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15년 동안 글을 써오며 바뀐 자신과 작가로서 자신에 대한 믿음을 보르헤스의 단편 <죽지 않는 사람들>의 문장을 가져오며 첫 도약을 힘차게 시작한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그가 만난 작가들과 작품들의 서술에 대해 입을 연다.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를 통해 정확성과 힘을 보여주는 서술을, 후안 룰포가 보여준 <빼드로 빠라모>의 활짝 열린 경계 없는 서술이 가르시아 마르케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와 카프카의 작품들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응시를 통해 영혼과 사물의 거리를 단축시키는 가와바타와 절단으로 거리를 넓히는 카프카의 다루면서 자기 내면에 충실한 한계 없는 서술이라는 점에서는 닮아 있음을 이야기한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역시 글을 쓰는 사람이라 '서술'을 바라보며 그것을 분석하는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시에 '서술'에 초점을 둔 독서가 위화의 독서란 생각과 그것이 또한 그의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역시나 작품을 통해 글쓰기에 대한 질문의 답을 찾는 위화. 위화가 난제처럼 보이는 심리묘사에 대한 답을 발견한 작가들을 이야기하며 작가는 서술의 힘에 선택된다는 위화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헤밍웨이의 <흰 코끼리 같은 언덕>과 로브그리예의 <질투>는 일관되고 완벽한 스타일의 심리묘사를 서술하고, 윌리엄 포크너의 <와시>는 토막으로 출중한 재능과 뛰어난 기교를 드러내며,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과 스탕달의 <적과 흑>에서는 심리묘사가 아닌 심리 변화를 탁월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위화의 작품을 접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위화를 선택한 서술의 힘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특별히 개인적으로 마음이 가는 작가들이 있는데 우선 위화가 자주 언급하는 작가 보르헤스. 위화가 말하는 내적으로 풍부하고 경계가 무한한 보르헤스의 현실과 신비를 오가는 서술에 대해 읽다 보면 보르헤스란 작가의 작품에서 두 명의 보르헤스와 만나 미로를 헤맬 것 같은 기대감에 휩싸인다.

더불어 내게는 이름조차 낯선 작가 네 사람.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와 어머니의 이미지와 더불어 고전적 이미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이야기하고 있는 중국 작가 모옌의 <환락> 그리고 작품보다 작가가 우선인 문학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브루노 슐츠의 작품들과 일본의 히구치 이치요의 <키 재기>는 낯선 그들의 이름만큼 궁금함도 컸다.

이렇게 위화에게 계승된 문학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독자로 그리고 작가로 위화가 작가의 얼굴에서 자신의 형상을 찾고 작가의 가슴에서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은 것처럼, 식물에게 쏟아지는 햇살 같은 문학 속의 영향은 위화에게로 그리고 다시 우리에게로 반복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위화의 음악의 서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위화의 음악 이야기는 그가 15살 때 악보에 사로잡혀 텍스트를 가지고 자신만의 음악 글쓰기를 했던 평생 한 번 뿐인 음악 창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엉뚱하면서도 귀여운 위화의 청소년 시절이 상상되면서, 사라져버린 음악이 궁금해진다. 그리고서 한참이 흐른 서른세 살이 되던 해에 비로소 음악을 삶 속으로 들인다.

우선 서정성을 통해 서서히 발현되는 서술의 힘을 보여주는 브람스가 등장한다. 광기가 예술의 흐름이 되어가는 시대에도 옛 것을 고수하며 추상적인 엄숙함으로 한 걸음 한걸음 나아간 그에게 음악 언어의 위대한 혁신가라 이름 붙여준다. 브람스가 살아온 음악사의 분쟁을 들려주며 음악에는 서술의 존재만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위화.

앞서 문학의 선율에서처럼 음악에서도 위화는 서로 다른듯 닮은 음악가와 작가 사이를 오간다.쇼스타코비치의와 너새니얼 호손. 다른 시대 다른 운명을 살았지만 고집스럽고 빈틈없는 영혼의 유사성을 지닌 두 사람의 작품 <교향악 7번>과 <주홍글씨>. 긴 서사 속에서 크레셴도 방식으로 완성되는 클라이맥스가 단 하나뿐인 서술을 음악과 문학에서 어떻게 보여주는지를 서술한다.

위화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이제 미술의 서술까지 끌어들인다. 언젠가 라흐마니노프가 림스키코르사코프와 스크랴빈이 벌였던 음률과 색채에 대한 논쟁 이야기에서 음악과 문학 은 물론 미술에 이르는 세 예술 양식의 서술 방식을 풀어내는 글은 위화의 폭넓은 날갯짓을 보여준다.

음악과 문학이 각자 독립적인 것 같지만 그 둘이 겹쳐지는 오페라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위화는 선율과 가사의 대립에 대한 음악가들과 시인들의 설전을 흥미롭게 풀어가며 어휘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진 경험과 상상이지만 서술은 개인의 경험과 상상인 점을 강조한다. 결국 음악은 음표로 문학은 어휘로 이루어진 서술을 추구하기에 두 세력이 영원히 경쟁하는 것 같지만 완전히 다른 그렇지만 비슷하게 강인하다는 위화의 말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위화가 높게 평가한다는 차이콥스키에 대한 잡지 인터뷰를 끝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위화는 자기 생명의 소리가 가득한 차이콥스키가 19세기 말의 절망을 드러내고, 절망과 민족성을 강렬한 개인성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도스토옙스키에 비견한다. 차이콥스키에 대한 열렬한 지지와 동시에 오해받고 부정받는 거장들을 다시 읽기를 통해 새로운 정신적 부를 쌓기를 당부하는 위화. 결국 다시 처음 글의 그 견해로 되돌아가게 된다. 문학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서술하는 것들에 대한 각각의 견해가 각각의 자격을 얻어야 한다는 그 견해 말이다. 그리고 서술하는 이의 자신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둔 마지막 당부는 수직하강과 동시에 다시 한번 힘찬 두번째 도약을 약속하는 당부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서야 중국현대문학의 대표주자인 위화를 이 책으로 만나게 된 것이 더 잘됐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위화라는 작가가 자신의 서술인 작품 속에, 문학의 '지속성'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 그가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자신의 선구자를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 더욱 궁금해졌다. 위화의 만만이 펼치는 비행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러다 문득 이제 나의 만만으로 위화의 작품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미친다. 위화의 서술 그러니까 그의 말을 빌자면 위화를 선택한 서술이 어떠한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 차례가 온 것. 위화의 작품들과 날아오를 시간인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 나온 위화의 만만들, '문학의 선율'과 '음악의 서술'도 처음 또는 새롭게 다시 만나봐야 할 것이다. 문학과 음악, 위화에게 따스하면서 온갖 감정이 뒤섞이는 여정이며, 영원히 함께 있을 그것들. 그것들이 이룬 위화의 생이 이제는 내 생으로 햇살을 비추며 스며들어 함께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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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만 따라와 (양장) 보림 창작 그림책
김성희 지음 / 보림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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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의지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처럼

든든한 사실도 없을 거예요.

그리고 그 누군가의 손을 잡고

이 험난한 세상을 한 발 한 발 걸어나가며 성장하는 우리.

사람이란 어쩌면 누군가의 손을 잡기 위해 태어났는지 모르겠네요.

여기 <형아만 따라와>하며 동생과 손 꼭 잡고 걸어가는 용감한 형아가 나오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작은 손전등을 든 동생의 손을 꼭 쥐고 환한 가로등 불빛을 따라 힘차게 걸어가는 형아,

그리고 불빛 뒤로 어두운 곳에는 동물 친구들이 형제를 다정하게 바라보네요.

자, 함께 이 형제의 모험을 따라가 보지요.

표지를 넘긴 면지에는 형아와 동생이 비추는 빛이 책의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것 같은데

마치 모험을 시작하러 책을 보는 우리의 내면으로 걸어들어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 장을 더 넘기면 가로등이 노란 제목만을 비춰주고 있어요.

"형아만 따라와."라는 말이 듬직해 보입니다.

한 장을 더 넘기면 이 책의 주인공 형제가 보이는데요.

어린 동생을 안고 자신을 가리키며 형아만 따라오라고 말하는 것 같네요.

형아는 자신만 따라오면 어디든 괜찮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용감한 형아니까요.


무서운 호랑이가 나타나도, 울퉁불퉁 악어가 노려봐도,

커다란 하마가 비켜주지 않아도, 캄캄한 박쥐 동굴에 들어가도,

온통 어두워서 길이 보이지 않아도 우리의 형아는 형아만의 재치로 그 모든 위기를 넘깁니다.

형아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어른인 제 눈에는 너무나 사랑스럽게 비쳐서 슬그머니 웃음이 나더군요.

그리고 정말 그 모든 문제가 거짓말처럼 문제가 아니게 되어버립니다.

이쯤 되면 형아는 용감한 마법사라고 해도 좋을 거 같네요.

이제 형제는 머지않아 곧 집에 도착하게 될 것 같고 이 모험은 막을 내릴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아니, 글쎄! 용감한 우리의 형아! 자기만 믿고 따라오라는 그 형아에게 갑자기 시련이 닥치지 뭡니까?

용감한 형아를 두려움에 휩싸이게 한 존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그런 형아를 구해준 용감한 이는 누구였을까요?

그것은 그림책 <형아만 따라와>를 직접 보시고 확인해 보세요.

깜짝 놀랄 반전의 묘미까지 갖춘 정말 매력적인 그림책이네요.

모두가 마음 속에 두려운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

그렇지만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도 있다는 사실.

그 힘이 함께라는 사실을 참 유쾌하고 다정하게 전달해주는 그림책 <형아만 따라와>

목판화로 작업하시는 김성희 작가님의 그림책이라

작가님의 정성이 한 번, 또 한 번 겹치고 겹쳐서 빠져나갈 틈이 없어

그 따뜻함이 두툼하고 넉넉하게 전해져오는 것 같습니다.

마치 작가님이 한 손으로 덮고 다시 나머지 한 손으로 덮어

마음을 다독다독여주는 것 같기도 해요.

이 그림책 덕분에 목판화 그림책이 주는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더 좋았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찾아보고 싶네요.


마지막 장을 덮기 전에 마지막 면지를 살펴볼까요?

처음 표지의 면지에서는 위에서 아래로 향하던 전등 불빛이 이제는 아래에서 위를 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의 모험이 시작된다는 의미처럼 제게는 다가옵니다.

그래서 떠올려 봅니다.

<형아만 따라와>의 용감한 형아처럼

내 손을 잡고 이끌어주는 사람을요.

바로 지금 곁에 함께 있는 사람들.

제게는 바로 신랑과 아이들이 바로 그 주인공.

사실 신랑과 부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먼저 손을 잡아주었기 때문이지만,

지금은 신랑이 제 손을 잡아 이끌 때가 더 많답니다.

우리 둘은 그렇게 서로를 만난 후로

손을 꼬옥~ 맞잡고 함께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가고 있어요.

그리고 선물처럼 찾아온 두 아이들.

지금은 두 아이의 손을 엄마인 제가 잡아 이끌지만

언젠가는 아이들이 제 손을 먼저 잡아주겠죠?

손에 손 잡고 가는 길에 무슨 일을 만나도,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괜찮습니다.

내 곁에 있는 바로 당신들 덕분에 아무 걱정 없습니다.

우리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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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詩作 - 테드 휴즈의 시작법
테드 휴즈 지음, 김승일 옮김 / 비아북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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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인 순간'이 있다.

그래서 인생이 반짝이고 빛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살고 있고, 그런 순간을 발견하며 살기를 원한다.

그런 생각 덕분에 '시'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살고, 언젠가부터는 그런 '시를 쓰는 삶'을 꿈꿔 오고 있다.

그래서 참 반가운 책이었던 <오늘부터, 詩作(시작)>

이 책을 읽고 나면 오늘부터 시작(詩作)을 시작할 수 있게 될 것 같은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다.

우선 이 책의 지은이는 영국시인인 테드 휴즈(1930~1998)로 1984년에 국가 경조사에 공적인 시를 짓는 영국의 계관시인으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인정받는 시인인 그가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이들을 위한 BBC 특별프로그램을 위해 준비한 내용을 모은 책이 바로 <오늘부터, 詩作(시작)>

첫째 날은 동물, 둘째 날은 바람과 날씨, 셋째 날은 사람들에 관해 쓰기를, 넷째 날은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다섯째 날은 풍경에 대한 글쓰기를,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은 소설을 시작하고 계속 쓰는 것에 대해, 여덟째 날은 가족, 아홉째 날은 달에 사는 생물에 대해 쓰는 것으로 모두 9일 간의 글쓰기 수업 내용을 담고 있다. 작가는 시의 소재를 하나 둘 풀어놓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시 쓰기를 독려한다. 그러면서 해당 소재를 잘 표현한 좋은 시들을 소개하고 어떤 점이 좋은 시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 동시에 각 챕터의 말미에 '시인의 노트'가 있어 작가의 조언과 더불어 선별한 좋은 작품들을 소개해 놓고 있다. 이런 저런 다양한 관점에서 쓰여진 시들을 많이 접할 수 있게 돕는 한편 그 시들을 모방해 보면서 연습해 보라고 권하고 있다. 시 한 편 한 편이 다 다른 시인들의 다 다른 스타일과 감성을 표현하는 독자적인 시들이지만 분명 작가가 그 시들 안에 흐르는 공통된 정서를 발견하고 나만의 시로 풀어내기를 바란다는 점이 잘 느껴진다. 물론 작가가 염려한 것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난해한 시도 있지만 다양한 작품들을 접하면서 그 의미를 헤아려보는 시간도 분명 가치있는 도전의 기회가 될 것이다.

시 쓰기에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지만 이틀 간의 소설 쓰기 시간 역시 흥미롭고 알차다. 재미있게 쓰는 것이라는 단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며 진짜 관심있는 것을 찾아 글을 쓰면 삶조차 더 흥미로워진다는 작가의 이야기에 동의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결국 이 책은 글쓰기와 삶에 대한 이야기로 갈무리 된다.

"글쓰기에서는,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삶보다 중요한 게 없습니다."

영국의 계관시인 테드 휴즈가 알려주는 쓰기 비법이 궁금해 펼쳐든 <오늘부터, 詩作(시작)>

쓰기란 결국 살아가는 것을 써내려가는 일이란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진정한 자신만의 경험을 소유하기 위해, 다시 말하면 진정한 자신을 되찾기 위해 애쓰는 것이 바로 시라고,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언어로 표현할 말을 찾는 순간을 시라고 부른다는 사실.

오늘부터, 진정한 나를 되찾는 시작이 시작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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