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보는 미술관 - 나만의 감각으로 명작과 마주하는 시간
오시안 워드 지음, 이선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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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시간이면 하얀 백지를 앞에 두고 한참을 머뭇거리는 나지만 그림이 건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좋아한다. 그렇지만 늘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을 떨칠 수 없었고, 큰 마음 먹고 유명 작가의 전시회라도 다녀온 날에는 작품을 보고 온 건지 사람을 보고 온 건지 모를 정도로 피곤해진 육체를 다독거리느라 뭘 보고 왔는지 잘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내가 본 그림보다는 전문가가 본 그림에 대한 해설에 꿰맞춘 그림을 보고 오는 게 맞는 것만 같고 그래서 뭔가 피로감이 증폭되는 미술관 나들이. 정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란 말이 고전 미술을 대하는 우리들의 고정관념이 아닐까란 생각을 하고 있던 중에 만난 <혼자 보는 미술관>

이런 생각을 나만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 가려운 부분을 화끈하게 긁어주는 책을 만났다.


그 어떤 설명 이전에 그림과 나 이렇게 오롯이 둘만이 마주한 채로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어 저자 오시안 워드는 <혼자 보는 미술관>을 썼다고 한다. 머리보다 먼저 눈과 몸으로 체험하는 고전 미술, 미술사가 짓누르는 무게감에서 벗어나 쉽게 다가가 해석하고 질문하고 평가하고 되물으며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작가는 자신감 넘치게 이야기한다. 그가 제안하는 고전 미술을 각자가 독창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타불라 라사(TABULA RASA:막 태어난 인간의 백지 같은 마음 상태)'를 통해 우리는 고전 미술과 자신만의 내밀하고 농밀한 시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

'타불라 라사'는 Time(시간: 오래, 자주, 계속의 힘), Association(관계: 말을 걸고 마음을 나누고), Background(배경: 아름다움의 출처를 묻는 일), Understand(이해하기; 얼마나 마음을 열 수 있는가), Look Again(다시 보기: 작품도 내 마음도 매번 다를 때), Assessment(평가: 정답이 없다는 말은 정답이다), Rhythm(리듬: 간격과 박자와 배치의 유쾌함), Allegory(비유: 그럴듯한 생각과 있음직한 사실들), Structure(구도: 그림 속 풍경, 액자 밖 프레임), Atmosphere(분위기: 느낌은 아우라가 된다)까지 10단계를 거치며 미술을 감상하는 방법.

그러니까 작품을 오래, 자주, 계속 보면서 말을 걸고 마음을 나누고 그 배경을 궁금해하며 이해하고 다시 보기를 통해 나만의 체험적인 감상 단계를 거쳐 그림의 전체적인 흐름이나 조화를 살펴보며 그림 밑에 숨어 있는 상징, 의미, 징후를 읽어 보고, 화가의 구성 의도를 파악해 보면서 전체적인 분위기와 여운을 간직하는 것까지가 바로 그것이다.

마치 족집게 강사님처럼 미술 감상을 위한 '타불라 라사'의 10단계 핵심 개념을 설명해준 후 본격적으로 여러 작품들을 보여주며 작품을 '체험'하는 심화학습에 들어간다. 작품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8가지 주제들을 하나씩 던지며 작품들을 소개해준다.


첫째, 철학. 그림 안에 작가들은 자신들의 철학을 그려넣었고, 그것을 보며 우리들은 실존적인 생각과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둘째, 진실. 보이는 대로 표현해 진실하고 보편적인 느낌을 주면서 자신이 이해하고 느낀 대로 대상의 진실을 전달하려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보편적인 공감은 물론이고 개별적인 공감도 만들어내는 표현 능력의 중요성을 이야기해 준다.

셋째, 드라마. 작가들은 캔버스 위에 자신들이 상상한 연극, 개인의 심리나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려 한 편의 드라마를 보여주기도 한다.

넷째, 아름다움. 시대가 바뀔 때마다 형식은 새로워졌지만 매번 더 수수께끼 같고, 유혹적이며 자극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로의 미술의 변천을 보는 과정은 역시 즐겁다.

다섯째, 공포와 두려움. 세상에 경고하기 위해 또는 집단 무의식에 자리한 가장 깊고 어두운 부분을 보여주기 위해 무시무시한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 있다.

여섯째, 모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뿐 아니라 인식을 바꾸고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작품 속에 작가의 의도를 암시하고 숨겨놓기도 한다.

일곱째, 풍자. 진지한 농담을 건네 우리를 웃게 만들기도 하는 작품들의 내면적인 가치를 놓쳐서는 안 된다.

여덟째, 비전. 자신만의 상상력을 발휘해 그야말로 독자적인 길을 걸은 작가들은 다음 세대를 위해 새로운 길을 연 그야말로 혁혁한 공을 세운 이들로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중요하다.

이상의 8가지 주제로 작가와 작품들을 모아 작가의 철학, 전하고 싶은 진실, 드라마, 아름다움, 공포와 두려운, 모순된 암시, 진지한 농담과 풍자, 비전까지 미술 작품이 담고 있는 것들에 대해 차례로 들려주는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자세로 미술 작품을 체험하는 연습이 된다. '타불라 라사'의 시각 훈련을 통해 작품 안에 담긴 작가의 모든 것을 나라는 필터를 통해 나만의 감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론 수업을 끝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작품들을 만나서 적용해 보는 일만 남았다. 그동안 나만의 감상을 방해하던 모든 것들을 걷어내고 나와 그림만으로 충분한 시간을 미술관에서 보내면 된다.


<혼자 보는 미술관>을 전후로 나의 미술 작품 감상은 180도 달라질 것이다. 작품과 미술사 사이에서, 전문가들만의 리그에서 나만 따돌림 당하던 우울한 시절은 이제 끝났다. 이제 당당하게 미술 작품 앞에서 마음껏 나만의 감각을 펼치며 작가와 작품과 밀당하는 나를 그리고 우리를 기대해 본다. 작품은 혼자 봐도 <혼자 보는 미술관>은 같이 보고 싶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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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 세탁소 그림책 마을 33
준코 시부야 지음, 김세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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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된 장인의 손길을 자랑할 것 같은 너구리가 떡하니 앉아 있는

너구리 세탁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인간은 더러워진 옷가지를 깨끗하게 해달라고 세탁소를 찾아가는데

과연 너구리 세탁소에서는 어떤 일을 할까요?

숲 속 동물들이 <너구리 세탁소>에 부탁하는 것들이 궁금해

저도 살짝 찾아가 보았습니다. ^^


세탁소 주인인 너구리 아저씨는 아침부터 부산히 손님들을 위해

숲속 시냇가에서 열심히 빨래를 하고 깨끗해진 빨래는 마당에 널어 말린답니다.

첫 손님인 여우 씨는 검정 양말을 찾아 신고 높이 뛰어오릅니다.

그리고 너구리 아저씨에게 버섯을 선물하지요.

두번째 손님은 누구일까요?

너구리 아저씨는 메뚜기 씨라고 생각하고 인사하지만

손님은 메뚜기가 아니라 날개를 찾으러 온 나비였답니다.

나비는 고마워서 꽃 한 송이를 선물하고 예쁜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갑니다.

세번째 손님은 햄스터인 줄 알았는데, 아니 쫑긋한 두 귀를 맡긴 토끼였지요.

토끼는 고마워서 당근을 선물하고 갑니다.

자, 이쯤되면 눈치 채시겠죠?

숲 속의 동물들은 너구리 아저씨에게 자신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들을 맡겼다가 찾아간다는 사실.

그래서 너구리 아저씨가 자꾸 착각에 빠지는 거였지요.

토끼 다음으로도 너구리 아저씨가

세 마리의 흰 고양이, 족제비, 까투리, 다람쥐로 착각한 손님들이 줄을 잇습니다.

자, 과연 이들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정답 확인은 책으로 하시길 바랍니다. ^^)

너구리 아저씨의 세탁 솜씨는 정말 대단해서 모든 동물들이 깨끗하게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지요.

나다움을 되찾아주는 너구리 아저씨네 세탁소는 세탁소 그 이상의 장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로 있을 수 있어 다시 행복해지는 동물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너구리 아저씨가 '나다워서 반짝반짝한 나'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만 같네요.

숲 속 최고의 세탁 장인 너구리 아저씨의 솜씨에 반해서 저도 뭔가를 맡기고 돌아왔답니다.

제가 찾으러 갔을 때 아저씨는 절 누구라고 생각할지도 궁금하네요.

깨끗하고 뽀송뽀송해진 '나다움'을 되찾아 '나'로 잘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참 행복한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자, 여러분이라면 <너구리 세탁소>에 무엇을 맡기시렵니까? ^^


그림책 <너구리 세탁소>는 아이와 함께 본다면 동물들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흉내내며

자신의 특징에 대해,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에 대해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너구리 아저씨가 집에 오기 전에 아저씨의 아이들은 다 다른 동물의 모습을 하며 놀고 있다가,

아저씨가 돌아오자 분장을 깨끗하게 지우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데요.

이 역시도 마음껏 다른 모습의 내가 되어보려는 열망을 열심히 표현하다가도

안전한 가족 안에서 자신으로 있으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 보입니다.

참, 너구리 아저씨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숲 속 동물들이 건네는 선물 하나 하나가

그 의미가 특별해지는 순간이 찾아오는데요.

아저씨가 친구들에게 받은 선물을 가족들과 나누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랍니다.

친구들의 선물 하나 하나가 너구리 가족을 어떻게 기쁘게 해주는지 보는 것도

이 그림책을 보며 즐거운 순간 중 하나예요.

저도 제 것을 찾으러 갈 때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한번 곰곰히 생각해 봐야겠네요.

마지막으로 살짝 딴지를 걸자면 너구리는 꼬리에 줄무늬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깐 <너구리 세탁소>의 너구리 아저씨는 너구리라기 보다는

레서 판다에 더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작가가 의도한 것일까요? ㅎㅎ

일본에서는 너구리가 머리에 나뭇잎을 얹고 변신을 할 수 있다고 하니

어쩌면 레서 판다로 변신한 너구리 아저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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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이름 정하기
이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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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작가에 대한 호감 때문에 이 소설을 택했다.

'이랑'

내게는 음악하는 이랑에서 출발해, 영화 찍는 이랑으로 다음엔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이랑으로 넘어왔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음악에 담겨 있던 이야기들이 책으로 나왔구나 싶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그럼에도 이것은 엄연한 첫 소설! 그래서 호기심과 설렘으로 펼쳐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랑의 첫 소설 <오리 이름 정하기>는 총 3부로 1부의 <하나, 둘, 셋>, <오리 이름 정하기>, <똥손 좀비>에서는 낯설지만 유머러스한 첫 인상을 남기면서 2부의 <이따 오세요>, <섹스와 코미디>,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에서는 작가의 페미니스트적인 시선을 통해 여성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마지막으로 3부의 <한국 사람의 한국 이야기>, <나는 오늘 들었다>, <깃발>, <나는 오늘 들었다>, <너의 모든 움직임을 인지하라>, <센세이숀-휏숀>, <증여론>에서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문제들에 대한 이랑의 시선과 생각을 엿볼 수 있다.

1부의 <하나, 둘, 셋>은 지금까지 봐온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이야기가 아닌 까짓꺼 좀비가 되는 쪽을 택하겠다는 주인공들의 역발상이 재미있으면서도 단지 '좀비'가 되기 싫은 것인지 '사람'으로 살아남으려는 그 안간힘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두번째 작품인 <오리 이름 정하기>는 신들의 천지창조를 마치 기업 내의 상하관계에 빗대어 일처리하는 모습처럼 그린 방식이 신선하면서도 우리와 별다를 거 없는 신들이 이내 안쓰럽기도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똥손 좀비>에서는 엑스트라로 살아가는 한 젊은이가 지하철 역 자살사건으로 인해 인생의 판이 뒤바뀌고 일상에 균열이 생기고 흔들리게 된 고달픈 한 영혼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2부에서는 <이따 오세요>에는 잘못 배달된 콘돔 택배로 생긴 일련의 사건 사고 속에서 여자가 보여주는 통쾌한(?) 복수가, <섹스와 코미디>에서는 철저하게 남성향 포르노 만화를 시나리오화 해달라는 말도 안되는 부탁을 하는 영화 제작자에게 여성 시나리오 작가의 딜도를 이용한 통쾌한 거절이,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에서는 신에게 과감하게 도전과제를 던지며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 방식에 통쾌한 태클을 거는 그야말로 통쾌한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마지막 3부에서는 웃음기를 살짝 걷어내고 좀더 진지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한국 사람의 한국 이야기>에서는 각각 다른 이유로 엄마를 무서워하는 두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여자들에게 엄마란 어떤 존재인가 곱씹어 보게 되고, <너의 모든 움직임을 인지하라>에서는 숫자와 자본으로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속고 속이는지를 보며 혀를 차게 된다. 그녀를 예술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녀가 하는 예술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어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본 <깃발>. 종교와 예술이 이렇게 닿아 있는 장르라니 이랑만의 비교분석에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된다. <나는 오늘 들었다>에서는 정신과 상담을 해주는 독특한 이력의 선생님과 내담자의 이야기를 통해 신과 인생을 통찰하는 작가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센세이숀-휏숀>에서는 재개발 지역의 허름한 상점 하나를 친구 셋이 운영하게 되는데 이들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거기다 낯선 남자 하나가 이들 가게에 찾아오며 이들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어떤 식으로든 여자한테 기대어 사는 한심한 남자들을 깔끔하고 화끈하게 그야말로 센세이숀한 휏숀으로 정리한다. <증여론>에서는 남자 때문에 인생이 꼬인 어머니, 어머니의 자매 그리고 어머니의 남동생의 아내가 때때로 모여 우는 것을 보며 그런 인생을 고스란히 물려받게 되지 않을지 걱정하는 내가 나온다. 이런 '나'를 우리는 참으로 자주 목격한다는 사실은' 추운 겨울 첫 차를 기다리며 스타킹을 벗은 내 다리에 난 소름'을 증여받게 한다.

각 단편마다 이랑의 독특한 생각과 깊은 고민이 다양한 매체에 관심을 갖고 표현해 온 그녀의 방식을 담아 놓은 것처럼 각각의 이야기가 자기만의 색과 스타일로 드러나 있다. 사회, 인생, 여성 , 신과 종교, 예술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들을 바라보고 의문을 품은 이랑이 나름의 생각들을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풀어낸 <오리 이름 정하기>

이랑.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주저없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녀 안에 있는 두려움이 결국 글을 쓰게 만들었고 또 누구나 그 두려움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썼다는 작가의 마지막 말에서 그녀의 깊은 진심이 느껴진다.

어쩌면 낯설게 보이고 이상하게 들리지만 그래서 더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그러면서도 내가 가진 생각의 폭을 넓히고, 내가 보기만 하던 세상의 면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볼 수 있게 해주는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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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발랄 하은맘의 십팔년 책육아 지랄발랄 하은맘의 육아 시리즈
김선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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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 나니 사람 키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몸으로, 마음으로 체험 중이다.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진 이 아이를 사람으로 키워내려니 걱정도 딱 2가지였다.

육체를 키우기 위한 건강과 안전의 문제, 정신을 키우기 위한 교육과 인성의 문제가 바로 그것.

아이가 24시간 내내 엄마의 보살핌을 필요로하던 시기가 지나고 나니 역시 교육에 대한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우리에겐 '사교육 시장'이란 말이 있다. 이건 뭐 교육도 자본주의가 장악한 지 오래고, 돈의 논리로 돌아가는 판이란 소리.

어쨌든 사교육은 시킬 생각도 없고, 그럴 형편도 안 되지만 교육에 대한 걱정만큼은 그분들 못지 않고 그래서 마음 속으로 하고 있던 생각이 '책육아'였다. 그러나 제대로 된 책육아가 뭔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그저 먼 산 뜬 구름에 불과했다. 그러던 차에 '책육아 임상실험 레알 보고서'란 말에 이 책에서 뭔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펼쳐 본 <지랄발랄 하은맘의 십팔년 책육아>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인 [사교육 시장에 삥 뜯기지 마라]에서는 엄마들의 공포심을 이용한 사교육 시장의 맹점을 지적하고 책육아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2장 [인풋에만 신경 써, 시간 금방 가]에서는 하은이의 성장과 더불어 성장하는 하은맘표 책육아의 비법(?)이 3장 [아웃풋은 한꺼번에 터진다]에서는 책육아로 인한 결과물 그러니까 하은이가 어떤 아이가 되었는지를 4장 [엄마가 성장해야 아이도 성장해]에서는 책육아를 하는 부모로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가 담겨져 있다. 참, 책과 세트로 초판 한정 책육아 실전 노트가 부록으로 딸려오는데 책육아 실천을 응원해주는 선물 같다. ^^


자, 그럼 본격적으로 이 보고서를 파헤쳐보자. 우선 책육아의 시작은 책이 삶의 베이스가 되게 하는 데 있다고 한다. 책 볼 시간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아날로그로 살 것을, 자꾸 뭘 많이 하는 것보다 쓸데없는 짓 '안'하고 현실을 온몸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로 시작부터 내 몸 편하자고 동영상 보여주던 나를 반성하게 만든다. 원할 때 마음껏 놀고, 깊이 읽으며 자라는 아이가 사교육에 찌들어 대충 공부하는 척 아이보다 제대로 몰입을 해 뭔가를 해내도 해낸다며 뻘짓처럼 보이는 일이지만 몰입해서 어떤 완성을 이뤘을 때의 그 모든 과정이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부분에서는 이런 저런 이유로 하지 말라고 했던 나의 방해가 떠올라 가슴이 덜컥. 비워내서 부족하고 불편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시간의 풍요로움 속에서 느끼는 권태로움을 통해 인생의 가치를 책과, 진짜 사람, 진짜 경험 속에서 찾게 된다는 이야기는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돈이란 물건이 아닌 경험과 관광여행이 아닌 봉사 여행에 의미 없는 모임이 아닌 진정한 만남에 학원이 아닌 학습 탐사에 근사하게 쓰는 것이란 말은 이 책이 단순한 육아서로 읽히지 않게 한다.

책육아의 과정을 보자면 하은맘은 인생을 놀이처럼 재미있게 살려고 태어난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그림책으로 시작해 읽기 독립을 거치면 아이는 위인으로, 세계사로, 과학으로, 논술로 가지를 뻗어나가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책이 단순히 지식을 얻는 도구가 아니라 아이의 감성을 풍부하게, 마음을 따뜻하게, 밝은 정서와 공감 능력이라는 엄청난 아웃풋을 가져다 주는 보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다시 깨닫게 해주는 하은이.

참,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는데 하은맘이 하은이에게 책만 주구장창 읽힌 것은 아니란 사실! 하은이가 몸으로 실컷 놀고 싶은 만큼 바깥놀이를 하며 '몸 독서'도 함께 했다는 사실 또한 중요한 포인트다. 바깥놀이로 '몸 독서'를 하고 책육아로 '머리 독서'를 한 아이는 분명 세상을 건강하게 살아가며 넓고 깊게 알아가고 바라볼 줄 알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낳은 아이지만 그만의 개성과 취향과 기호와 다른 능력을 뿜어내도록 옆에서 도와주고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자꾸 아이를 어떻게 해보려는 엄마들에게 정신 번쩍들게 하는 효과까지 장착한 책이다.

부모가 아이를 만드는 게 아니고 아이가 우리를 부모로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일침은 얼굴을 화끈거리게 한다.

부모는 그저 아이에게 '책과의 접점'이 되어주면서 인풋에 최선을 다하고 진득이 기다리면 아웃풋이 한꺼번에 확 터진다니 걱정말고 의심말고 그저 흔들리지 말고 '따뜻한 무관심'으로 기다리는 것이 책육아의 포인트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책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온 아이는 책 밖 세상에서도 훨훨 날개를 편다.(209쪽)"



남의 집 참견 그만하고 내 아이 책 읽어주고 내 책 읽으면서 함께 성장하라고 외치는 하은맘의 책육아 비법 소개서 <지랄발랄 하은맘의 십팔년 책육아>에서 하은이를 지혜롭고 총명하게, 건강하고 맷집있게, 재미있고 유들유들하게, 참을성 있고 배려 깊게, 협력하는 괴짜 아이로, 수시로 넘쳐흐르는 사랑 부자로 키워낸 산 증인이 설파하는 믿음직한 증언에 귀기울여 보라.지구상에 있는 그 어떤 육아법도 책육아 만큼 탄탄한 커리큘럼, 저렴한 비용, 깊이 있는 몰입을 제공할 수 없다는 하은맘의 이야기에 넘치는 자신감과 확신은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하은이가 초졸학력으로 18살에 명문대를 갔다는 결과보다 하은이가 어떤 아이로 컸는지에 주목하며 이 책을 보는 이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이 책을 통해 책으로 크는 부모가, 책으로 크는 아이가 더 많아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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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속에 사는 아이 물구나무 세상보기
아녜스 드 레스트라드 지음, 세바스티앙 슈브레 그림, 이정주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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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벽 안에 가둬본 적이 있나요?

외부와 자신을 차단한 채 나만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아이에게 '자폐스팩트럼'이라는 장애를 가졌다고 꼬리표를 답니다.

<벽 속에 사는 아이>는 바로 그런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님의 이야기예요.

모두가 함께 보고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벽 속에 사는 아이>

한 아이가 벽에 당근을 그리고 있는 표지를 넘기면

벽 너머로 붉은 양귀비 꽃들이 노래하고 있는 어여쁜 면지가 나옵니다.

벽 너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아이는 벽 속에서 삽니다. 그리고 나오지 않으려고 하지요.

엄마와 아빠는 아이를 사랑하지만 어찌해야 좋을지 모릅니다.

시끄러운 소리도, 몸에 뭔가 닿는 것도 싫은 아이.

밤낮으로 흔들리는 아이의 몸 때문에 벽이 흔들리지만 아이는 밖으로 나오지 않지요.

벽 속엔 아이에게 필요한 모든 게 있었기 때문이에요.


어느 날 엄마와 아빠는 벽에 작은 구멍을, 사랑하는 아이를 볼 수 있을 만큼 작은 구멍을 냅니다.

하지만 아이는 너무 무서워 벽 속 깊이 들어가 버립니다. 당근으로 구멍을 막아 버리지요.

엄마와 아빠는 아이에게 자신들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를 위한 자장가를 말이에요.

아이의 벽 안쪽에 양귀비 꽃이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아이의 벽 안 쪽에서 자라던 붉은 양귀비 꽃이 마치 아이의 마음 같았습니다.

그 마음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아이가 처음으로 벽에 작은 구멍을 내고

양귀비 한 송이를 그리고 다음엔 구멍을 더 크게 만들어 꽃 한 다발을 내밉니다.

그리고 기다리지요.


자장가를 불러 주러 온 엄마와 아빠에게 아이는 양귀비 꽃다발을

그러니까 자신의 마음을 내밀어 줍니다.

그리고 그 구멍으로 손을 내밀어 엄마의 미소를 보고 부드러운 엄마의 뺨을 쓰다듬고 느낍니다.

시원한 물소리 같은 아빠의 웃음소리도 듣고 웃는 아빠의 입가를 어루만지고는 다시 벽 속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를 느낀 아이는 그날 밤 마침내 벽을 깨고 밖으로 나오지요.

아침에 일어난 엄마와 아빠는 아이가 놀라지 않게 숨죽여 소리치고 아이의 머리카락 딱 한 올을 만집니다.

행여 아이가 겁먹고 도망치지 않게 말이죠.

아이는 이제 벽 속에 살지 않는답니다. 가끔 잠깐 들어가기는 해도요.

자폐스펙트럼 현상을 보이는 아이의 마음과 증상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아이로 안타까워하는 부모의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 <벽 속에 사는 아이>

대부분의 발달에 문제없이 자라는 아이들을 보는 게 자연스러워 이런 아이들과 부모들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없는 우리들에게 <벽 속에 사는 아이>는 참 많은 울림을 줍니다.

잠깐 제 이야기를 하자면, 큰 아이가 두 돌이 다 돼도록 호명이 되지 않아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자폐스팩트럼 판단 지표들을 아이에게 들이밀며 커지는 의심에 눌려 괴로워하다

마침내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걱정과 달리 아이는 언어발달이 늦는 것뿐이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병원을 오가며 수많은 이유로 병원에 오는 부모와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지요.

치료의 과정은 지난하기만 하고 힘들지만 부모님들의 얼굴은 절대 어둡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치료될 거라는 희망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병원에 오시더군요.

아이가 벽 속에 사는 것도 괴롭고 힘든 엄마에게 '냉장고 엄마: 엄마의 애착이나 양육 문제로 아이에게 장애가 발생했다는 오해로 생긴 명칭'라며 엄마 탓을 하고 손가락질하는 일이 더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문제만 생기면 본인 탓을 하며 엄마 아빠가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엄마나 아빠의 잘못이 아니라 단지 유전적 질환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면 좋겠습니다.

저는 엄마라서 <벽 속에 사는 아이>를 보며 자꾸 제 아이를 떠올립니다.

지금도 내키지 않으면 대답을 잘하지 않고 자기 세계에서 노는 게 더 익숙한 아이라

잔잔했던 마음에 걱정이 태풍처럼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간혹 아이가 건네는 붉은 양귀비 꽃 한 송이에 울고 웃는 나란 엄마.

그저 자신의 속도대로 서서히 자라는 아이의 성장을 응원하며 매일 기다리고 또 기다려봅니다.

더 많은 아이들이 붉은 양귀비 꽃을 꺼내어 더 많은 부모님들이 웃음짓게 되기를 바라며 <벽 속에 사는 아이>가 우리에게 이들을 생각할 수 있는 참 소중한 기회를 줘서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때때로 벽 속으로 들어가곤 하는 우리에게도 밖에서 노래하며 기다리는 이들이 있음을 기억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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