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그려 줄게 - 그리운 ‘너’를 그리기 위한 100번의 드로잉 리허설
김충원 지음 / 진선아트북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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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얼굴을 그려보고 싶은 마음을 한 번쯤은 다들 가져보았을 것이다.

그 첫 얼굴의 주인공은 대부분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제 막 끄적임의 수준인 우리 아이들만 봐도 동그라미 하나 그려놓고 엄마라고 아빠라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마음 속에 들어온 한 사람이 그리고 싶어지는 때가 오겠지... *^^*

그런데 아이들이야 자유로운 표현력을 뽐내며 막 그려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성인들은 역시나 그림 실력에 발목 아닌 손목이 붙잡혀 마음 속으로만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을 누군가를 그리는 걸로 만족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 어른들을 토닥토닥 다독여주면서 '페이스 드로잉'은 '재능'이 아닌 '연습'과 '노력'으로 잘하게 아니 '내가 보는 너'를 그릴 수 있다고 응원과 함께 노하우를 알려주는 친절하고 고마운 책을 만났다.

국민 미술 선생님이신 김충원 선생님의 다정하고 꼼꼼한 설명을 통해 100번의 드로잉 리허설을 연습할 수 있는 <너를 그려 줄게>

 


"그림 그리기는 자전거 타기와 똑같아서 소질과 상관없이 누구나 배우면 잘할 수 있다."며 쪼그라져 있는 마음에 바람부터 잔뜩 넣어주시면서 시작되는 미술 시간!

소질이 없어서가 아니라 상대의 부정적인 반응을 극복하고 다시 펜을 잡을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씀에 또 한 번 마음의 무장을 하고, 어색한 선긋기가 익숙한 선긋기가 될 때까지 연습할 것을 당부한다. 똑같이 그리는 게 아니라 상대를 보는 나의 느낌과 상대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을 정성껏 담아내는 행복한 드로잉을 즐기기를 바라는 선생님의 마음을 잘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페이스 드로잉에 필요한 준비물들과 기본 선긋기, 중심선과 윤곽석 그리고 밑그림 과 부분 스케치 연습으로 채워지는 첫 챕터를 지나면 펜과 연필로 그리는 두번 째, 세번 째 챕터로 본격 페이스 드로잉 리허설을 100번 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흔히 저지르는 실수부터 동서양인의 차이, 사용하는 도구에 따라 표현 방식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드로잉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머리카락부터 눈썹과 눈, 입술과 코, 귀를 각각 세부적으로 연습한 후 본격적으로 펜과 연필로 100명의 다양한 연령의 남자와 여자를 난이도를 높여가며 그려보게 된다. 60명의 드로잉 연습이 끝나면 일주일로 끝내는 드로잉 신공 비법이 소개되어 있으니 놓치지 마시기를!! 80명까지 그리고 나면 슬슬 드는 컬러 드로잉에 대한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듯 간단한 설명을 해준다. 그리고 마지막 100번째 드로잉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을 객관화하는 작업이기에 사진도 셀카보다는 다른 이에게 부탁해 찍은 사진으로 잘 나온 사진보다 그리기 쉬운 사진을 골라 연습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너를 그려 줄게>를 따라 연습하면서 '그리고 싶다'는 마음에서 '그려보자'는 용기를 낸 것도 감사하고 기뻤지만, 누군가의 얼굴을 고요히 오랜 시간 구석 구석 바라보며 흰 종이 위에 내가 보고 느낀 흔적을 남기는 작업을 통해 조용히 사유하고, 마음의 상처를 쓰다듬고, 세상 그리고 사람과 이어지고, 삶이 더 풍성해지고, 재미와 즐거움을 그리고 행복과 자유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얼굴을 혹은 자신의 얼굴을 그리고 싶은 마음뿐인 당신이라면 <너를 그려 줄게>가 펜을 잡고 그 마음을 종이 위에 옮겨줄 것이다.

내가 보는 나만의 너를 그릴 수 있는 내가 되는 즐거운 드로잉 리허설을 실컷 즐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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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를 따라갑니다
매그너스 웨이트먼 지음, 엄혜숙 옮김 / 풀과바람(영교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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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을 떠나본 지가 언제인가요?

저는 '엄마'라는 '모험' 중인데, 정말 험난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

그럼에도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이 모험이 참 소중하답니다.

혹시 처음 질문에 쉽게 대답을 못하신다면 반복되는 일상에 매몰돼서 인생이라는 모험 중이란 사실을 잊고 계신 건 아닌지요.

그렇다면 여기 소중한 오리를 따라나선 토끼 삼남매의 모험에 살짝 동참해 보지 않으실래요?

<오리를 따라갑니다>


구불구불한 강 위에 붉은 배를 탄 토끼 삼남매가 붉은 스카프를 한 노란 오리를 따라가는 표지부터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다양한 풍경과 동물들을 지나쳐 다다른 끝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네요. 과연 이들의 오리를 따라가는 이들의 모험은 언제까지, 어디까지 이어질까요?

표지를 넘기고 첫 장을 보자마자 표지에 나왔던 동물들이 단순히 배경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답니다.

이 그림책의 등장인물들에 대한 소개와 관련 미션들이 한가득하거든요.

막내 동생 버니의 장난감 꼬마 오리를 찾으러 버니와 함께 모험을 시작하는 오빠 피터와 밥, 자전거로 여행 중인 사슴 가족, 누군가를 찾고 있는 비둘기, 강에서 카약을 타는 여우 가족, , 새집을 찾고 있는 고니 실리아와 아이들, 호기심 많은 덱스터와 산책 중인 염소 할아버지, 스피드광 돼지들, 롤러스케이트를 타며 누군가를 도와주는 닭 척, 운이 나쁜 낚시꾼 어린 양 로라 등등.

<오리를 따라갑니다>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 같은 시작이란 생각이 드네요.

커다란 흐름인 강을 따라 오리를 찾아가는 토끼 삼남매의 이야기 곁에 연결되어 있는 무수한 또 다른 이야기들.

그리고 결국 이 모든 흐름들이 바다라는 한 곳으로 모여든다는 것.

이거 쉽지 않은 모험이 될 것 같습니다.

긴장하고 다음 장을 넘겨봅니다.

장난감 오리를 갖고 놀고 있는 토끼가 커다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네요.

이렇게 모험의 시작은 고요하고 평온한 일상에서 시작됩니다.

소중한 장난감 오리가 물살에 떠내려가고 토끼 삼남매는 배를 타고 오리를 따라갑니다.

깊은 숲 속의 빠른 물살, 많은 물거품을 지나서 물살이 느린 푸른 들판을 지나, 거대한 호수를 통과해 거대한 물보라가 이는 폭포를 헤치고, 라푼젤이 사는 마을을 지나, 강철 괴물 같아 보이는 공장 옆을 지나고 섬과 물로 된 아름다운 미로 같은 곳에 다다릅니다. 비까지 내리기 시작해 난감해진 토끼 삼남매.

그렇지만 그 어디에서도 소중한 오리를 찾지 못하지요.

비가 멎고 네덜란드가 떠오르는 아름다운 풍차와 튤립이 가득한 곳에서 삼남매는 공이 물에 빠져 도움을 요청하는 축구 선수들을 도와주지만 정작 자신들이 찾고 있는 꼬마 오리는 찾지 못합니다.

마침내 항구에 도착한 토끼 삼남매.

항구의 부산함에 정신이 없는데다 컨테이너에서 고무 오리들이 물 위로 쏟아져 더욱 난처해지고 마네요.

이제 바다까지 나와버린 삼남매는 과연 단 하나뿐인 소중한 오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토끼 삼남매의 소중한 오리 찾기를 따라가며 버니의 오리를 찾느라 눈은 바쁘지만 매 장면마다 새롭기도 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자꾸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리고 첫 장에서 소개받았던 동물들과 미션들을 따라 또 다른 이야기들을 찾아보는 <오리를 따라갑니다>

이 그림책은 오리를 따라서 매번 주인공을 바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트랜스포머형 그림책인 것 같네요.

그 덕분에 각각의 다른 모험들을 즐기면서 만날 때마다 새로운 모험으로 설레게 해주는 그림책이 되었네요.

그렇지만 누군가의 모험은 언제나 또 다른 누군가와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은 변함없는 하나의 목소리로 들립니다.

우리의 모험이 외롭지 않은 것은, 그리고 더 풍성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 때문인 것 같네요.

그리고 토끼 삼남매는 계속 다른 곳을 여행하지만 그곳엔 언제나 엄마와 아빠가 함께 있습니다.

세 아이는 그걸 모르지만 말이에요. 책을 보는 우리는 두 분이 어디에 계신지 찾아 볼 수 있답니다.

그러고 보면 모험 내내 낯선 곳에서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어디에선가 보고 있고 응원하는 이들이 있다는 믿음 덕분이 아닌가 싶네요. 삼남매는 집으로 돌아와 그동안 모험을 하면서 만났던 곳들을 디오라마처럼 만들어 모두와 공유합니다.

마지막의 이 모험의 함께 나눔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한 인생이라는 여정은 누군가의 생의 모험과 또 다른 누군가의 생의 모험이 만나고 파생되어 가는 과정이겠구나라고 말이에요. 저 역시 신랑의 모험에, 아이들의 모험에 연결된 생의 모험을 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누군가의 모험과 만나게 될지 궁금해지네요.

'모험'의 가슴 뛰는 순간을, 신나는 발견의 기쁨을, 소중한 것을 찾으려는 노력의 가치를, 또 다른 모험과 연결되어 있는 함께의 온기를 담은 그림책, <오리를 따라갑니다>

당신의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인생의 모험이 다시 반짝거리길, 생기를 되찾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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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동생
샬롯 졸로토 지음, 사카이 고마코 그림, 황유진 옮김 / 북뱅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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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이도 싸우고 참 많이도 화해하고

참 많은 걸 나누고 참 많은 걸 함께 한

어쩌면 부모님보다 친구들보다 더 많은 나를 알고 있는 나의 동생.

서로가 성장하는 어린 시절을 공유하고 사회 생활에 발을 들여놓은 청년의 시절까지

결혼 전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기에 제게는 더 특별한 존재랍니다.

그런 저와 동생을 생각나게 하고 그리워지게 하는 그림책 <언니와 동생>

표지에 비눗방울을 불고 있는 다정해 보이는 언니와 동생의 모습.

사카이 고마코 작가님 그림 특유의 섬세한 따뜻한 그림에서 어린 시절의 저와 동생을 떠올려 봅니다.

 


"언니와 동생이 있었어요.

언니는 언제나 동생을 보살펴 주었지요."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언니는 언제나 눈으로 동생을 쫓고, 손을 꼭 잡고 다니고, 길을 잃지 않도록 지켜줍니다.

눈을 떼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동생을 보살피는 언니.

 


그런데 어느 날 동생은 어쩐지 혼자 있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집을 나와 언니가 찾지 못하게 풀밭 속 들국화와 풀잎 사이에 쏙 숨어 버립니다.

동생을 찾아 언니는 애타게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르지만 동생은 대답하지 않지요.

때론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동생은 언니와 함께한 모든 것들을 떠올리며,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지요.

다시 가까워진 언니의 목소리.

동생이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워진 순간.

동생은 언니에게 대답을 할까요?

언니는 동생을 찾게 될까요?

 


저는 <언니와 동생>에 나오는 언니와는 다르게 늘 부족한 언니였습니다.

오히려 동생이 저에게 현명한 가르침을 주고 참아주고 기다려줬던 날들 덕분에 겨우 지금의 제가 될 수 있었지요.

동생 덕분에 언니가 될 수 있었고, 따로 또 함께 성장할 수 있었고,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언니와 동생>의 동생처럼 저의 용감한 동생의 일탈로 혼자로 성장하는 시간을 가졌던 일이 제게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어서 <언니와 동생>은 제 추억의 책장에 꽂힌 이야기책을 꺼내본 기분이었지요.

우리가 언니와 동생으로 각자가 성장하는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서로가 있다는 믿음과 위로가 있었기 때문에 서로의 성장을 응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그림책 <언니와 동생>을 보면서 다시 되새겨보았습니다.

한 사람의 성인으로 성장하기까지 '함께'일 때와 '각자'일 때를 우리는 수없이 오고 갔지만,

서로에게 서로가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늘 든든하게 받쳐주었지요.

우리는 서로에게서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고, 위로를 받고, 위로를 하는 존재로 성장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여전히 내가 준 사랑과 위로보다 더 큰 사랑과 위로를 주는 동생을 둔 언니라서 참 고맙고 행복하네요.

우리는 <언니와 동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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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의 꿈 창비 노랫말 그림책
유영석 지음, 안소민 그림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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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열의 [딸에게 보내는 노래]를 시작으로, 유두헌의 [풍선]에 이어

'창비'에서 세 번째로 선보이는 전 세대가 함께 즐기는 노랫말 그림책 [네모 꿈]

'White' [네모 꿈]을 처음 들었을 때가 고등학생이었을 무렵인데

어느새 엄마가 되어 그림책으로 다시 만나니 더없이 반갑기도 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던 그때 추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네모난 침대, 네모난 창문, 네모난 문, 네모난 테이블,

네모난 조간신문, 네모난 책가방, 네모난 책,

네모난 버스, 네모난 건물, 네모난 학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네모난 오디오, 네모난 컴퓨터, 티브이,

네모난 달력에 그려진 똑같은 하루를 의식도 못한 채로

그냥 숨만 쉬며 살아가는 우리들.

 


그러다 문득 '툭'하고 떨어지는 빗방울에 무심히 올려다 본 하늘.

쏟아지는 빗줄기에 모두가 네모난 하루를, 네모난 일상에서

잠깐 숨을 돌립니다.

빗방울이 그리는 동심원을 밟으면서 아이들은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라는 잘난 어른의 말을 떠올리지요.

그리고는 생각합니다.

우리 사는 지구는 둥근데 부속품들이 왜 다 온통 네모난 걸까?

어쩌면 외계인인 네모의 꿈일지 모른다고 말이죠.

 


아이답게 이 모든 네모로 된 세상이 외계인의 짓이 아닐까란 생각을 하지만 사실 네모난 세상을 만든 것은 바로 어른들. 그러면서도 둥글게 살라는 어른들의 이야기는 어른들의 얼굴을 붉히게 만드네요. 사실 아이들이야말로 동그란 꿈을 안고 있는데 말입니다. 어른들은 그냥 지나쳐 버리는 일상의 풍경에서 네모난 것들로 둘러싸인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의 눈이기에 가능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 네모난 풍경들 안에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이, 아이들의 동그란 꿈들이 동심원처럼 퍼져나갈 수 있도록 네모난 창문을 활짝 열어줘야 하겠다고 마음 먹어 봅니다.

지금까지 나온 [딸에게 보내는 노래], [풍선], [네모 꿈]까지 하나같이 가사가 아름답고 의미있는 곡들이라 다음에 나올 책이 더 궁금해지는 창비의 '노랫말 그림책 시리즈'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보며 입을 동그랗게 벌려 노래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줘서 참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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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 - 8세, 18세, 22세에 찾아온 암과의 동거
손혜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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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한 번 태어나서 한 번 죽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를 만나기 전까지.

8살에, 18살에 그리고 22살에 찾아온 암.

한 번도 쉽지 않았을 텐데... 기약없는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을 하면서 수술대에 오르는 순간마다 아니 고통이 찾아오는 순간마다 죽음을 생각해야 했고, 기적을 기도해야 했을 저자, 손혜진.

저자보다 10년을 더 살았지만 아이를 낳은 직후 혼자 남겨져 원인 모를 심한 오한으로 몸을 떨며 죽을 고비를 넘기는 게 이런 기분인가 싶었던 적을 빼고는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 투쟁에 가까운 삶을 살아온 저자의 스물 여섯 해의 기록이 그만큼 낯설고 그만큼 아팠고 그만큼 감사하게 만들었다.

 


아이가 아파 일주일 정도를 병원에서 보낸 것이 내가 병원에서 보낸 가장 오랜 시간이기에 병원 생활이 일상인 누군가의 삶에 대해서 감히 생각해 볼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생존율이 30%대인 위험했던 여덟 살의 첫 수술을 엄마에게 어떤 말이든 해야 한다는 의지로 견뎌낸 그녀의 이야기는 내게는 삶이, 살아 있음이 기적이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병원에서의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받으며 컵라면 하나에, 잠시만 허락된 눈발 날리는 풍경에 행복해하는 '아픈 아이'가 때때로 발견한 작은 기쁨의 순간들에 대한 기록은 내가 무감동하게 흘려보낸 순간들의 가치로움을 되찾게 해주었다.

병원이 아닌 병원 밖 일상이 오히려 낯설기만 해 땅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던 유년 시절. 섣부른 동정에 상처받고,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늘 겉돌기만 하다가 마침내 진짜 친구를 사귀게 되었을 때는 내가 다 내 일처럼 기쁘고 감사했다.

환자의 삶에서 탈피한 일상의 삶에 익숙해지고, 미래를 계획하며 살아가던 그녀에게 다시 찾아온 암. 다시 입원과 수술을 하고 이번에도 그녀는 살아날 거라는 믿음으로 돌아온다. '아픈 아이'에서 '아픈 어른'이 된 그녀. 수술 후의 엄청난 괴로운 회복 과정이며 매끼 챙겨 먹어야 하는 엄청난 양들의 약과 그로 인한 다양한 부작용들에 대해 읽으며 살아 있는 것이 고통이며 동시에 그럼에도 살고 싶다는 생에 대한 간절함이 어떤 것인지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우울증까지 걸렸지만, 가족들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선 그녀.

그래서 "내 인생에 우울한 일이 닥칠수록 즐거운 일의 비율도 맞춰야 한다면서 자꾸 웃으려 노력했다. 웃는 시간이 우는 시간보다 조금은 더 많기를 바랐다."는 그녀의 말과 "정말 죽어?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잖아. 그늘에 지지 말자. 지금을 빼앗기지 말자."라며 그녀를 다독이던 언니의 말을 내 가슴에 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들의 섣부른 동정에, 무심하고 매정하기까지한 배려없는 태도에 마음을 다치면서도 아픈 후 세상에 더 감사한 일이 많아졌다는 그녀. 그녀는 병과 세상으로 인해 누구보다 더 강한 '아픈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구나 싶어 그녀의 지금을, 그녀의 앞으로를 뜨겁게 뜨겁게 응원하고 싶어졌다.

살아 있는 우리가 소유하고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은 바로 지금뿐인지 모른다.

"기다리는 내일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지금 행복해지자고."

저자의 이 이야기를 우리 모두가 마음에 꼭 품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여전히 암과의 끊나지 않는 동거 중인 저자의 지금이 행복하기를, 그래서 지금을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내고 있는지를 쓴 그녀의 두 번째 책을 만나기를 바라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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