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나는 핑거그림책 2
조미자 지음 / 핑거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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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순간 작은 변화에도 반응하고 그 모습을 바꾸는 마음.

그런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 가며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그림책 <가끔씩 나는>과의 첫 만남.

표지부터 찬찬히 들여다보게 하는 그림책이었어요.

가만 멈춰선 누군가의 발 그리고 그 모습이 비춰지는 바닥이 마치 전업맘이 되어 정지되어 있는 제 모습 같아서 바닥에 비춰지는 다양한 빛들의 흔들림은 제 마음의 혼란스러움 같아서 쉽사리 책이 넘겨지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넘긴 앞면지에는 노란 실에 매달린 공 같은 동그란 물체가 오른쪽을 향해 움직이고 있더군요. 극과 극을 오가는 제 마음을 뭉쳐놓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장을 넘기니 내 마음의 움직임이 정말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가끔씩 나는,

가끔씩 내 마음은,

점점 빠르게, 점점 느리게,

점점 크게, 점점 작게,

점점 높게, 점점 낮게,

나의 리듬으로,

세상과 함께 움직인다."

나이면서 내 마음인 노란 공은 위로, 아래로 움직이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튀어가기도 합니다.

가끔씩 속도를, 크기를, 방향을 다르게 하며 움직입니다.

그러다가 가끔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꽁꽁 숨어버리고 싶은 날이 있지요.

마음을 다치거나, 두렵거나, 슬픔과 절망 같은 괴로운 감정들이 스스로를 공격하는 그런 날들.

그렇지만 숨어 있는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멈춰 있는 다양한 내 마음들이 보입니다.

그러다가 그 중 하나가 '툭'하고 나를 건드리지요.

그렇게 숨어만 있던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와 걸어봅니다.

가끔의 내 마음의 모습들 하나 하나가 소중하고 감사하네요.

나는 가끔의 내 마음 속 감정의 변화들을 이제 더이상 부정하거나 피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기보다 그저 가만히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가끔씩 나는>의 나처럼 마음 속 가끔의 내가 나를 '툭'하고 밀어줄 거란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불안>이라는 그림책으로 처음 알게 된 조미자 작가님의 두 번째 그림책 <가끔씩 나는>

<불안>에서는 마음 속에 늘 존재하지만 감추고 싶은 그런 부정적인 감정인 불안을 끄집어 내어 마주보게 해주는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주셨던지라 <가끔씩 나는> 역시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늘 변하는 감정들로 흔들리고 가끔씩 숨고 싶은 나를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게 그리고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용기를 주시네요.

<불안>에서도 느낀 거지만 그림책 <가끔씩 나는>은 각각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내 마음 속 감정들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 유난히도 색이 주는 선명함에 눈이 가더군요. 그리고 때로는 그 또렷함이 가진 확실성이 홀로 떠오를 때도, 때로 다른 색의 감정들과 섞이면서 만들어내는 부딪힘과 흔들림에 가라앉을 때도 각각의 감정이 내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색들이 나이고 내 감정이란 사실에 신기하기도 하고 좀 더 많은 내 안의 나와 감정들을 만나보고 싶어졌지요.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표지의 내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되어 정체된 제 모습처럼 보였던 표지의 내가 참 다양한 색깔과 방향성 그리고 크기와 속도를 가진 감정들을 가진 사람이구나하고 말이지요. 엄마가 되면서 더 많은 나를 만날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내가 나만의 삶의 리듬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너무나 소중한 그림책 <가끔씩 나는>

가끔씩의 당신의 모습은 어떤지, 당신의 삶의 리듬은 어떤 것인지 한번 들여다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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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을 거야 - 2021년 케이트 그리너웨이상 수상작 작은 곰자리 42
시드니 스미스 지음, 김지은 옮김 / 책읽는곰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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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해 보이는 눈을 한 아이가 버스의 유리창 한 귀퉁이에 보입니다.

눈이 날리는 창문 밖 세상, 차들의 방향등과 신호등의 붉은 빛 그리고 어두워지고 있는 게 분명한 늦은 시간의 복잡한 도시는 아이에게 조금의 여유도, 포근함도 허락하지 않을 것 같네요.

아마도 <괜찮을 거야>라는 이야기는 아이가 스스로에게 속삭이는 작은 응원이 아닐까 생각하며 그림책을 펼쳐봅니다.

버스 안 커다란 어른들 틈에서 내린 작은 아이는 어디론가 향합니다.

아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크고 시끄러운 소리로 겁에 질리게 만들고, 북적거림과 소란스러움에 머릿속은 복잡하지요.

하지만 아이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할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건넵니다.

'나는 너를 알아.

너는 괜찮을 거야.'

그런데 사실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하고픈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어두운 골목길이나 큰 개가 있는 건물, 쉬기 좋아 보이지만 가시덤불이 있는 빈터,

숨기 좋은 곳들 몇 군데와 쉴 수 있는 한여름 같은 냄새가 나는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통풍구,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저 아래 파란 집과 성가대 노래가 흘러나오는 빨간 벽돌 교회를 지나고

생선을 나눠줄 아랫동네 생선 가게 주인과 공원 의자에서 다정하게 쓰다듬어 줄 아이의 친구를 떠올리며

아이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사실 아이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아이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곧 눈치챌 수 있어요.

그것은 잃어버린 아이의 고양이.

자신처럼 작고 여린 그렇지만 너무나 소중한 존재인 고양이를 찾으려고 아이는 눈보라가 몰아치고 자신을 위협하는 세상 밖을 돌아다니지요.

과연 아이는 고양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거칠고 커다랗고 시끄럽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작고 여린 존재들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크고 강한 것들만 존재하는 것 같은 세상이지만 그렇지 않아서 참 다행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른들의 세상에서 어른들은 더이상 보지 않고 돌보지 않는 것들을 아이들은 바라봅니다.

저보다 더 작고 여린 존재들을 향해 있는 아이들의 시선이 얼마나 따뜻하고 얼마나 경이로운지요.

세상의 모든 작고 여린 존재들을 향한 위로와 응원의 책 <괜찮을 거야>

아이의 시선을 따라, 고양이의 시선을 따라 가는 그림들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인지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고, 굴삭기가 굴러가는 거친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차갑고 매서운 눈보라에 몸이 꽁꽁 얼어붙는 것만 같기도 하지만 "나는 너를 알아. 너는 괜찮을 거야."라는 아이의 목소리가 가장 또렷이 들려옵니다.

어른이 된 저에게도 이 세상은 여전히 살아가기 힘든 곳이기에, 그리고 앞으로 작고 작은 아이들이 성장하며 겪게 될 수없이 많은 힘들고 어려운 순간마다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작고 여린 존재들에게 건네는 "괜찮을 거야"라는 작지만 단단한 이 말이 스스로에게, 작지만 소중한 존재에게 따뜻한 온기를 품고 전달될 거라 믿어 봅니다.

나는, 너는 그리고 우리는 괜찮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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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노는 숲속의 공주 잘 노는 숲속의 공주
미깡 지음, 신타 아리바스 그림 / 후즈갓마이테일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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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보며 자란 세대이지만, 내 아이에게 이 책을 보여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의 엄마입니다. 그래서 < >의 등장이 너무나 반가울 수 밖에 없더군요.

마법에 걸려 오매불망 자신을 구해줄 왕자님만을 기다리며 잠에 빠져 있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아니라 정말 제대로 잘 노는 숲속의 공주 이야기라니 대체 이 이야기 속의 공주는 어떤 매력을 터뜨리며 제 마음을 사로잡을지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계속해서 여성에 대한 글을 써오신 미깡 작가님의 탄탄한 이야기에 다양한 매력을 선사하는 신타 아리바스 작가님의 그림이 함께 어우러진 이 환상적인 조합이 만들어낸 공주님이라니 믿고 보는 그림책이란 이런 그림책을 말하는 걸 거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한 쪽 눈만 감고 다른 쪽 눈은 뜬 채 숲 속에 누워 있는 잠자는 아니 잘 노는 숲속의 공주가 그려진 표지에서부터 제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ㅎㅎ

 


나에겐 특별한 숲속의 친구가 있습니다. 아니 있었지요.

매일매일 신나게 놀고 정말 모든 게 잘 맞는 그런 친구가 말이에요.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숲에서 친구와 놀기보다 새 친구들과 공주 드레스를 입고 놀면서 점점 그 친구를 잊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새 친구들과 놀다 속상한 일이 있던 어느 날 밤 꿈속에 그 친구가 찾아오지요.

나는 그 친구에게 지금 내가 다니는 유치원을 보여주고 싶어 친구에게 자신을 만나러 와 달라고 합니다.

아주아주 예쁜 공주 드레스를 입고 기다리겠다고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친구는 오지 않고 꿈속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나는 내 기대를 져버린 친구에게 오지 않은 이유를 묻지요.

친구는 갔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고 대답합니다.

공주 드레스를 입은 아이가 너무 많아서 말이에요.

그래서 나는 다시 약속을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멀리서도 잘 보이는 핑크색 리본도,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유리 구두도 나를 찾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지요.

도대체 어떤 옷을 입어야 친구는 나를 찾을 수 있을까요?

 



< >에는 정말 중요한 질문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로 '나'라는 질문!!

그리고 책 속의 공주는 바로 그 질문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 그 질문의 답까지도 찾아냅니다.

친구들을 따라하는 것이, 유행을 쫓는 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진짜 나로 살기로,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기로 마음 먹고 행동으로 옮기지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묻고 그리고 용기있게 '나'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이 숲속의 잘 노는 공주가 찾아낸 답입니다.

내 인생의 진짜 주인공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진짜 공주가 됩니다. 드레스와 리본과 유리구두의 힘을 빌어서는 만족할 수도 없고 완성될 수도 없던 공주가 말이죠.

제게도 잘 노는 공주가 있는데요. 첫 아이가 아들이었기에 둘째가 딸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는 정말 마음껏 여성스러운 옷이며 분홍분홍한 유아용품들을 살 수 있겠다 싶어 내심 신이났습니다. 그렇지만 엄마의 바람 따윈 안중에도 없고 오빠바라기인 둘째에게 최고의 장난감은 자동차와 기차고, 레이스 달린 치마보다 로봇이나 비행기가 그려진 옷을 입겠다고 하는 때론 오빠보다 더 개구진 아이가 되어가고 있지요. 그런 딸 아이를 보고 있자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둘째의 나다움을 엄마인 제가 어떻게 해보려고 한 건 아닌가 싶어 말이에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곧 또래와 사회문화적으로 부딪히게 될 문제들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틈바구니 안에서 혼란스러울 때마다 아이와 함께 < >를 펼쳐야겠다 마음 먹게 되더군요.

더불어 자신이 갖는 고유한 자기다움을 훼손시키지 않도록 우리 어른들이 지켜야 할 것들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들이 바뀌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말이죠. 각종 매체와 교육 그리고 또래 문화의 압력 속에서 나다움을 표현하는 용기를 북돋아주는 이런 그림책의 등장은 그래서 더 의미있고,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무척 중요하고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됩니다. 앞으로의 세상이 '나'로 살아가는 일에 더 너그러워지길, '나답게' 사는 삶을 즐기는 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며 저도 저답게 잘 놀아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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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노는 숲속의 공주 잘 노는 숲속의 공주
미깡 지음, 신타 아리바스 그림 / 후즈갓마이테일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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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도, 드레스도, 리본도, 유리구두로는 될 수 없는 진짜 공주가 되는 법! 나로 살아가는 내 삶의 진짜 주인공이 될 때 나는 진짜 공주가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정말 공주를 위한 공주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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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갗 아래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에 관한 에세이
토머스 린치 외 지음, 김소정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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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존재함을 가장 물리적으로 보여주고 스스로도 감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몸'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와 '세상'의 경계인 '몸'을 스스로 탐색하고 들여다 본 적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신체가 평소와 다르게 작동하거나, 병에 걸리거나 하는 경우가 아니고는 내 '몸'을 자각하고, 알고 싶어한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 책 <살갗 아래>가 던진 화두가 너무나도 흥미로울 수 밖에 없었다.

<살갗 아래>에는 피부, 폐, 맹장, 귀, 피, 담낭, 간, 창자, 코, 눈, 몽팥, 갑상샘, 대장, 뇌, 자궁이라는 우리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내부에 존재하는 15가지의 신체 기관들에 대해 15명의 작가가 쓴 글들로, 영국 BBC 라디오 3에서 방송된 '몸에 관한 이야기(A Body of Essays)' 시리즈를 모아 엮은 것이다.


오래 살아갈수록 이 세상과 나를 가르는 탄력적인 장벽인 '피부'는 싸우고,결국 이겨낸 전투의 흔적을 드러내 보여주며 그 상흔들 속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크리스티나 패터슨의 이야기에 거울 속 내 주름이 노화의 잔재이자 폐허로만 보던 시선을 거두고 그것이 갖는 치열한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일상의 고됨을 내뱉고 아름다움을 다시 채우는' 우리의 '폐'가 하는 일을 시의 호흡으로 치환해 볼 수 있게 해주는 달지트 나그라의 이야기와 쓸모없어 보이는 '맹장'이 간직한 위협과 관련된 오해를 풀어주는 네드 보먼의 이야기는 새로운 시선으로 나의 기관들을 바라보게 한다. '언제나 열려 있으며 결코 잠들 수 없는' '귀'를 통해 소리의 여정을 따라가 보기도 하고 평형감각과 방향감각까지 담당하는 멀티플레이를 한다는 패트릭 맥기네스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하게 된다. 부모 모두 HIV로 잃은 카요 칭고니이가 자신의 몸에 흐르는 피를 '붉디붉은 수치심'이라 부르며 마침내 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듣기까지의 이야기는 피가 상징하는 것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맹장과 더불어 쓸모없는 기관처럼 치부되는 '담낭', 결석으로 인해 고통받은 마크 레이븐힐은 자신의 경험담과 함께 우리에게 '몸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리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유일하게 재생 능력이 있어 잘라내도 다시 자라는 기적의 장기 '간'을 '감정이 머물고 흩어지고 다시 태어나는 곳'이라는 임티아즈 다르커의 말에 간과 관련된 다양한 우리말 표현들을 떠올려 보게 된다. 우리의 소화관이 뇌세포로 덮여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창자'를 '우리의 불안이 머무는' 곳이라 이야기하는 나오미 앨더먼의 이야기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우리 얼굴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코'와 관련해서 '후각은 의식보다 빠르게 기억을 소환한다'는 A.L. 케네디의 이야기는 때로 냄새가 불러일으키는 어떤 기억에 대한 경험을 떠오르게 한다. 아비 커터스는 '눈은 세상을 자기 안으로 끌어들이고, 본다는 것은 경계를 만드는 일'이라 정의하며, 시력을 잃는 여러 경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성함과 감춰진 위치 때문에 가장 내밀한 윤리와 감정적 충동이 자리하는 '콩팥', 그래서 사람의 양심을 상징하기도 하는 콩팥을 그림으로 그리기도 하고, 요리를 하기도 하고, 요리법과 노래 그리고 시로 넘나드는 애니 프로이트의 다양한 접근으로 몸 속에 뿌리 내린 두 그루의 나무 같은 콩팥의 존재가 신기하기만 하다. 키분두 오누조가 들려주는 모든 것이 골디락스 지점 그러니까 가장 적당한 상태가 되도록 애쓰는 작은 용광로 같은 목 아래쪽에 있는 나비넥타이처럼 생긴 '갑상샘'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갑상샘이 있는 자리를 지긋이 눌러보게 된다. '대장'에 문제가 생겨 보조장치들을 도움을 받다 내장이 밖으로 쏟아진 윌리엄 파인스의 경험은 낯설고도 생생하고, 필립 커가 묘사하는 가장 위대한 미스터리이자 경이로운 기관인 '뇌'를 수술하는 전두엽 절제술의 과거부터 현재로 넘어오는 과정은 무섭고도 끔찍한 공포물에서 최첨단 과학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인간 존재의 여정이 시작되는 곳, '무덤(tomb)'과 운율을 맞추는 단어 '자궁(womb)', 생명이 시작되고 가장 짧은 시간에 생을 마친 아기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실제 장의사인 토머스 린치가 말하기에 더 짙고도 무거운 여운을 남긴다.


노화되어가는 나의 피부 아래에 있는 기관들이 정확히 어떤 기능을 하는지도, 누군가에게 또는 어떤 문화권과 사회인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으며, 특히나 개인적인 체험들이 자신을 구성하는 일부 하나에 집중해 그 의미를 들여다보는 작업은 정말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과학적으로 접근하기도 하고, 어원을 통해 그 의미를 되짚어 보기도 하고, 역사와 문화 속에서 맺는 관계들을 듣기도 하며, 예술로 표현되는 다양한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며 내 살갗 아래에 존재하는 '나'를 만나는 일.

'나'를 들여다보는 새로운 현미경 같은 '눈'으로 이 책을 읽어나가는 과정은 그들의 시선을 통과해 나의 시선으로 옮겨졌다. 나의 마음과 감정은 나와 연결되어 있지만 육체와는 분리된 것이라 생각해왔는데 <살갗 아래>를 보며 그것이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감정과 마음은 내 육체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란 존재로 완벽하게 '나'로 있을 수 있음을 감사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글들을 만나는 경험이 기다리고 있는 <살갗 아래>

눈에 보이는 내 몸과 살갗 아래 존재하는 나의 부분들 하나 하나가 갖는 비밀스럽고도 다양하며 놀라운 이야기들을 듣는 즐거움도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들이란 사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경이로운 탐험을 선물해 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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