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돌멩이야
주세페 칼리체티 지음, 노에미 볼라 그림, 김지우 옮김 / 단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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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산책을 하고 돌아오면 아이 주머니에서 한가득 나오는 돌멩이들.

어린시절의 제가 떠올라 그만 풋하고 웃고 맙니다.

이런 것도 유전인가 싶다가도 아이들은 모두 그런가 보다 쪽으로 생각이 기우는데요.

길을 걷다 눈에 띄는 물건들을 열심히 채집하던 어린 저를 소환하는 제목의 그림책 <안녕, 돌멩이야>

돌멩이와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는지 한번 들여다 볼까 해요.



돌멩이를 만난 아이가 똑, 똑, 똑!

돌멩이에게 인사를 하고 문을 열어 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한참만에야 대답하는 돌멩이.

아이의 끈기 있는 기다림과 멈추지 않는 호기심의 승리였죠.

돌멩이는 자신에게는 문이 없으니 들어올 수 없다고 합니다.



아이는 계속해서 돌멩이에게 말을 걸어요.

아니 끈임없이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고 하는 쪽이 정확하겠네요.

그 결과 아이는 돌멩이 중에는 겨울잠을 자는 돌멩이가 있고, 돌멩이 안은 돌멩이로 꽉 차서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것도, 겉과 속이 돌멩이라 누구도 숨겨줄 수 없고, 누구의 집도 되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내키는 대로 웃고, 만져 주는 걸 좋아하는 차갑고 무겁고 아름다운 돌멩이 씨.



사실 돌멩이는 돌멩이일 뿐이지만 오랜 시간 계속 변해왔다고 해요.

물과 바람이 어루만질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작아지다 서서히 모래알이 됩니다.

예전에는 큰 바위나 산, 운석 그리고 행성이었던 친구들이 모두 다 작디 작은 모래알로 변한 거지요.

아이는 돌멩이를 쥐고 있으면 그 단단함에 강해지는 기분이 든다고 말해줘요.

돌멩이는 아이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지지만 부서질까 봐 겁이 날 때가 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평생을 자신을 덜어내는 돌멩이에게도 심장이 뛰고 있지요.

겁이 날 때 더 빠르게 뛰는 심장이 말이에요.



아이는 이제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던집니다.

"돌멩이야, 우린 친구지?"

돌멩이는 돌멩이답게(?)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해요.

그리고 친구가 되는 법을 알려주지요.

서로 돌봐줄 것.

자주 바라볼 것.

가끔 쓰다듬고, 씻겨 주고, 예쁘게 꾸며 주고, 만져 줄 것.

던졌다가 줍고 던졌다 다시 주울 것.

그렇게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것.



아이는 돌멩이와 친구가 되었을까요?

이 그림책은 이탈리아의 한 도서관에서 열린 어린이 워크숍에서 아이들이 돌멩이를 관찰하며 쏟아낸 상상력 가득한 질문들을 주세페 칼리체티 작가님과 노에미 볼라 작가님이 하나의 그림책으로 완성한 것인데요.

돌멩이 하나 하나가 각각 다 다른 것처럼 다른 질문들을 쌓아 올려 삶을 관통하는 철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님이 참 대단해 보입니다.

물론 아이들의 기발한 질문이 이 멋진 책의 절반을 채우고 있지요.

단순하고도 아이가 그린 것 같은 자유로운 그림이 주는 즐거운 기분이 시종일관 이어지면서도 생각에 빠지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이야기와 조화롭게 어울립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함께 보며 여느 때보다 질문을 많이 쏟아내고 즐거워하네요. ^^

참, 겉싸개를 벗기면 서로 각각 다른 돌멩이들이 차곡차곡 쌓인 또 다른 표지가 나오는데요.

아이와 돌멩이 둘 사이에 오고 간 대화가, 마음이, 감정이, 생각이 켜켜이 쌓인 하나의 탑처럼 보이기도 해요.

모두가 제각각 다 다른 모습이라 쌓기 어렵고 불완전해 보이고 무너지기 쉽지만 그것들을 이어주는 것은 바로 돌멩이가 말해준 친구가 되는 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돌멩이가 알려준 방법 중에서 저는 '던졌다가 줍고 던졌다 다시 주울 것'에 밑줄을 긋고 싶어지더군요.

분명 서로를 던지는 순간이 찾아옴을 어른인 저는 알고 있어서 그런가 봐요.

그리고 다시 가까워지고 또 멀어지고를 수도 없이 반복하는 관계를 경험하며 자랐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다시 주워 쌓아올린 탑은 매번 그 모양과 높이가 다를 수 밖에 없겠다 싶었어요.

우리는 모두 나로 꽉 찬 돌멩이로 존재하는 개인들이기에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은 늘 이렇게 달라지는 건가 봅니다.


자, 이제 책을 덮었는데요.

아이는 돌멩이와 친구가 되었을까요?란 질문의 답을 얻으셨기를 바랍니다.

아이와 돌멩이가 만나 나눈 대화, 생각, 감정 그리고 온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바라보면서 나를, 내 주변을, 세상을, 삶을 돌아보게 되는군요.

존재와 존재가 만나서 인사를 건네고, 질문을 하고 답을 찾고,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돌보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그 모든 이야기가 들어 있는 정말 멋지고 경쾌한 그림책 <안녕, 돌멩이야>

분명 똑, 똑, 똑! 당신이라는 돌멩이를 두드릴 테니 대답을 너무 오래 끌지는 마세요.

늑장을 부리시면 질문 소나기가 마구 마구 쏟아질 테니까요. ^^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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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좋아, 내가 나라서 한울림 별똥별 그림책
소냐 하트넷 지음, 가브리엘 에반스 그림, 라미파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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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여서 힘들었던 수많은 순간들을 지나오면서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나라서 기분이 좋다는 제목의 그림책이 당당하게 제 앞에 놓여 있네요.

맞아요.

<기분이 좋아, 내가 나라서>의 제목에서 빛나는 자신감에 갑자기 너무나 궁금해졌습니다.

내가 나라서 기분이 좋았던 날들, 내가 나라서 웃었던 순간들이 말이에요.




아침마다 학교 가는 일이 즐거워 눈을 반짝 뜨는 아이였나요?

아니면 꾸물꾸물 마지못해 끌려나오듯 이불과 떨어질 줄 모르는 아이였나요?

우리의 주인공은 후자군요.

학교에 가기가 싫습니다.

왜일까요?

친구들과 어울려야 하는 학교가 아이는 그저 부담스럽습니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친구 사귀는 일에 서툴기 때문이죠.



잘하는 것은 아무리 찾아도 없고 다른 아이들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병이라도 나서 학교에 안 갔으면 싶은데 그마저도 쉽지 않지요.

그저 누군가 나타나 구원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간절합니다.

쉽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 학교를 좋아하려고 노력해 보지요.

그렇지만 내일만큼은 정말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요.

숙제를 못 해서 정말 울고 싶거든요.



아이는 용기내어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엄마에게 말해요.

엄마는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과 달라서 멋진 거라는 뜻모를 이야기만 합니다.

더 울고 싶어진 마음을 견딜 수가 없어 밖으로 나온 아이.

아이는 자연의 모습을 바라보며 서서히 깨닫습니다.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요.

각각의 고유한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는 세상을요.



온통 노란 꽃으로 가득한 꽃밭에 드문드문 핀 파란 꽃.

파란 꽃을 보며 아이는 다르다는 게 세상을 멋지게 만든다는 사실을, 모든 게 똑같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요.

다르다는 사실을 장점으로 받아들인 순간 아이는 스스로에게 미안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드디어 스스로에게 고백하지요.

"기분이 좋아, 내가 나라서"



남들과 나를 비교해 다른 나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일은 살면서 수없이 만나게 되지요.

더구나 다름을 잘못으로 쉽게 오해하고, 오해하게 만드는 사회에 사는 이들에게는 말입니다.

학교에 적응 못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보아서 일까요?

학교라는 사회에 처음 나가는 아이들이 준비 없이 부딪혀야 하는 이런 순간이 좌절과 자기 부정으로 끝나지 않게 스스로를 다독이게 해주는 이 그림책이 참 고맙네요.

내가 갑자기 너무나 작아 보이고, 형편없는 존재인 것 같아 보이는 날에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책이 하나 생겨 기쁘기도 하고요.

다른 이들과 나의 차이가 너를 너로,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소중한 것임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온전히 껴안게 되는 순간에 기분 좋은 마법이 일어납니다.

"기분이 좋아, 내가 나라서."

마법 주문과도 같은 이 주옥 같은 말을 당신의 손에도 쥐어드리고 싶네요. ^^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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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멋진 집 포코포코야 어디가 1
사카이 사치에 지음, 김현정 옮김 / 꿈터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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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꾸 넓은 집으로 이사 가자고 한 번씩 엄마, 아빠를 들었다 놨다 하는 1호와 보고 싶은 그림책이 생겼습니다.

포코포코라는 아주 귀여운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아주 작은 멋진 집>이 바로 그것인데요.

작아도 멋지고, 작아도 우리가 함께 사는 집의 소중함을 아이가 알아주면 좋겠다는 마음을 살짝 얹어 아이와 함께 봤어요.

참, 책을 감싸고 있는 띠지를 벗기면 꿀벌이들의 달콤끈적한 아주 작은 멋진 집의 내부를 구경하실 수 있답니다.

띠지를 벗겨 보여줬더니 표지부터 아이의 눈이 반짝반짝.

마음에 쏙 드는 표정이었어요. ^^

자, 그렇게 포코포코와 함께 친구 집 방문 시작!!



일주일의 시작, 월요일.

우리의 주인공 작은 포코포코가 예쁜 모자들 중에 초록 모자를 골라 쓰고 사뿐사뿐 외출을 하는군요.

그렇게 찾아간 첫번째 집은 코끼리네 찻잔 집.

찻숟가락을 든 코끼리가 반갑게 포코포코를 맞이합니다.

찻잔 집의 내부가 궁금하시죠? 함께 들어가 볼까요!



찻잔 집 내부에는 온갖 종류의 예쁜 찻잔이 진열되어 있군요.

한가운데에는 홍차 목욕탕이 찰랑찰랑.

온 집안이 홍차 향으로 가득하고 따스한 기운이 가득하겠네요.

포코포코는 그렇게 따뜻한 환대의 홍차 향을 온 몸 가득 묻히고 선물도 받아 집으로 돌아갑니다.

화요일에는 생쥐네 호박 집으로, 수요일에는 나비네 꽃 집으로 마실을 다녀오지요.



일주일의 네번째 목요일.

곰네 과자 집으로 사뿐사뿐 놀러 간 포코포코.

오늘은 체크 무늬가 멋스러운 모자를 쓰고 나왔네요.

멋쟁이 포코포코가 보기에도 달콤하고 먹음직스러운 과자 집의 주인장인 곰과 인사를 나누네요.

자, 과자 집의 내부는 어떻게 꾸며져 있을지 들어가 볼까요?



모든 게 다 과자로 된 집이라 뭘 먹어도 다 맛있는 곰네 과자집.

아무리 먹어도 해치지 않는답니다.

포코포코는 인심 좋은 곰으로부터 과자 선물을 넉넉하게 받아 집으로 돌아오지요.

그리고 다음 날인 금요일에는 뱀의 램프 집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온답니다.

그런데 포코포코가 토요일에는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뭔가를 준비하느라 무척 분주해 보이네요.

바로 일주일의 마지막 날인 일요일을 위한 준비인데요.

작지만 멋진 포코포코의 모자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매일 모자를 바꿔 쓰고 나가는 포코포코를 보면서 짐작하셨죠?! ^^)


보송보송 귀여운 포코포코를 따라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친구들의 집을 방문해 보니 어떠셨나요?

볼수록 각자의 개성이 살아 있는 나만의 장소를 꾸리고 살아가는 삶의 재미가 느껴지는데요.

아이와 함께 장난감과 주변의 사물들을 둘러 보며 누구의 어떤 집일 것 같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즐거움은 덤이었지요.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귀여운 캐릭터와 그림체에 작가님의 상상력이 더해져 재미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의 집에 찾아갔을 때, 친구를 초대했을 때 서로 간의 따뜻한 환대와 나눔의 기쁨, 받은 것에 감사를 표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 저는 참 좋더라구요.

이제 막 요일 개념을 배우는 아이에게 그것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포코포코의 방문은 이제 막 시작되었는데요.

다음 시리즈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궁금해지네요.

포코포코가 어쩌면 우리집에 찾아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갑자기 청소부터 해야겠다 싶습니다. ^^;;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친구들이 살아가는 아주 아주 작지만 세상에서 제일 멋진 집들이 가득한 <아주 작은 멋진 집>

한번 놀러오세요.

그 귀여움에 반하실 거예요. ^^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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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춘당 사탕의 맛
고정순 지음 / 길벗어린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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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춘당을 아시나요?

어린 시절 제삿상에 올라가는 음식 중에서 단연코 제 시선을 사로잡던 알록달록 동글납작한 사탕.

빨강, 하양, 초록, 노랑, 분홍 색색의 빛깔도 매력적이었지만 알싸하면서 달콤한 박하맛은 입에 군침이 돌게 만듭니다.

어린 저를 생각해 할머니가 챙겨두셨다 따로 손에 쥐어주시던 옥춘당은 그냥 사탕이 아니라 제게는 사랑이었지요.

그런 옥춘당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고정순 작가님의 <>

옥춘당 하나를 입에 넣고 살살 녹여 먹으며 이야기를 열어 봅니다.



빼꼼.

오늘의 주인공 고자동 씨와 김순임 씨.

두 분 이야기가 궁금해 펼쳐 보았는데 도리어 자신들 이야기가 궁금한 제가 궁금한 아이 같은 표정의 두 분.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스며나오고 무장해제되는 기분입니다.

평생을 서로 아끼고 살아온 두 사람의 사랑이 어떤 것이었을지 이 장면 하나로, 닮아 있는 두 사람의 표정만으로 그냥 다 알 것 같네요.



<>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야기가 연결되는데요.

두 분의 만남부터 손녀인 고정순 작가님의 눈에 비친 알콩달콩하고 애틋한 사이를 그린 '오줌은 두 칸 똥은 세 칸',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할아버지의 투병과 죽음 그리고 조용한 치매 환자가 된 할머니의 이야기가 담긴 '머무를 수 없는', 요양원에서 할아버지 곁으로 가신 할머니의 마지막을 들려주는 '금산요양원 13번 침대'로 이어집니다.



어린 손녀의 눈에도 유독 사이 좋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전쟁고아였던 두 사람은 서로가 전부였기에 잡은 두 손을 놓지 않습니다.

사람 좋아하는 사람 좋은 할아버지와 낯 가림 심한 남편바라기 할머니 댁에서 여러 번 여름방학을 보내며 손녀는 두 사람의 사랑을, 두 분과 함께 보낸 그 여름이 고여 있던 그 집을 오래 오래 기억하지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서로에게 돌아갈 집이었을 뿐만 아니라 돌아갈 집이 없는 이들에게 집이 되어 주신 분들이었어요.

기댈 곳 없었던 자로 살아본 할아버지이기에 세심하고 다정한 헤아림을 조심스레 건네실 줄 아셨답니다.

그런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건네준 세상 가장 어여쁘고 달달한 사탕이 바로 옥춘당이었어요.

그 마음을 알기에 할머니 역시 천천히 오래 오래 녹여 먹으며 입안 가득 퍼지는 향기를 머금고 계시느라 더 말없고 조용한 분이 되신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 애틋하고 지극한 두 분의 사랑이 한없이 끝나지 않으면 좋았을 텐데요.

할아버지는 갑작스레 폐암 말기 선고를 받으시고 치료 대신 일상을 살다가 돌아가십니다.

그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을 할머니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할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할머니는 말을 잃으셨습니다.



남편이었고, 사랑이었고, 전부였던 사람과 헤어지고 할머니의 시간도 멈추었습니다.

소중한 기억을 품고서 살아가기에 지금의 시간은 계속 멈추지 않고 흘러가니 말이지요.

조용한 치매 환자의 삶을 택한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사랑인 동그란 옥춘당을 그리고 또 그리면서 할아버지를 기다립니다.

그토록 그리고 그리던 할아버지를 만나던 날의 할머니는 분명 행복하셨을 거예요.



세상에 서로가 전부인 사랑.

처음에 저는 그 사랑을 잃은 순간의 아픔이 너무나 아프게 다가와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 전부를 잃은 순간 나도 죽음을 맞이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다시 들여다 보니 그렇게도 온전하게 서로가 전부인 사랑을 한 두 분의 사랑이 너무나 위대하고 아름다워서 진실로 다정하고 따뜻해서 두 번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나눈 두 분의 삶이 옥춘당이라는 사랑의 맛으로 계속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했어요.

옥춘당을 볼 때마다 떠올리게 될 두 분의 사랑.

만약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받을 몫을 갖고 태어난다고 한다면 이 두 분은 사랑이 제 몫을 다한 삶을 사신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두 분의 사랑은 후회하지 않는 사랑, 후회없는 사랑이기도 했을 거예요.

과연 그 누가 후회 없다 말할 수 있는 사랑이 있나 생각했는데 그것은 제가 이 분들의 사랑을 몰랐기 때문이겠죠.

두 분이 좋은 곳에서 두 손 꼭 잡고 계실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이 책 곳곳에 그려진 서로를 온전히 사랑한 두 분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네요.

역시 옥춘당은 사랑이고, 옥춘당의 맛은 사랑의 맛입니다.

사랑은, 사랑은 이런 걸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거겠죠.

온전히 사랑으로 사랑을 한 두 분은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랑을 천천히 녹여 먹고 싶네요.

당신에게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가장 예쁘고 동그란 것으로요. ^^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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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사자의 꿈
요코 다나카 지음 / 진선아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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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적은 양의 흙만 있어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민들레.

그 노랗고 말간 얼굴을 만날 때마다 기특하고 고마운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민들레를 그저 노란 꽃으로만 본 저와는 달리 그 민들레에게서 사자의 모습을 찾아낸 작가님의 상상력이 빛나는 그림책을 만났습니다.

그림책 <민들레사자의 꿈>

표지의 민들레사자가 활짝 핀 환한 웃음으로 두 팔 벌려 우리를 환영하고 있네요.



여기 민들레 한 송이가 피었습니다.

이내 민들레는 한 마리의 작고 귀여운 사자민들레가 되는데요.

이것은 이곳에 뿌리를 내린 민들레가 꾸는 꿈일까요?

변신한 민들레사자는 저 멀리 기차를 발견하고는 이끌리듯 향합니다.



신나게 기차를 타고 가며 구경을 하던 민들레사자는 기차가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떨어집니다.

다행히 푹신푹신 양 위로 떨어지고 등에 업힌 채 바다로 가 배까지 타게 되지요.

바닷바람을 즐기는 것도 잠시 내리는 비에 울적한 기분이 드는 것 같네요.

무심한 듯 갈매기가 날개 우산을 씌워주고 민들레사자는 기운을 차립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너무나도 낯선 도시.

그저 모든 것이 거대하고, 빠르고, 바빠 보입니다.

작디 작은 민들레사자를 알아채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네요.

그 누구 하나 관심 가져주지 않지만 민들레사자는 이 여행을 포기하지 않지요.

민들레사자는 이 여행의 끝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까요?



제게는 민들레사자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불빛 하나하나의 반짝임이 꿈처럼 보였어요.

날아가기 위해 그 자리에서 꿈꾸는 불빛들.

붙박이처럼 한 자리에 뿌리 내리는 일이 꿈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민들레사자를 따라 가다 보니 내게도 경계를 넘어가는 일이 꿈이던 때가 있었다는 걸 떠올릴 수 있었지요.

갈 수 없는 곳,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 스스로 선을 그어놓고 가면 안 된다고 믿었던 곳들을 향해 가는 일.

그런 꿈을 품고 지금 있는 곳에서 꽃을 피우는 민들레.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낮고 척박한 곳에서도 노란 꿈을 피워냅니다.

민들레사자가 누구보다 보얗고 가벼운 하얀 깃털의 얼굴을 한 홀씨로 변신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는데요.

민들레의 꿈이 현실이 되는 마지막 장면이 그래서 더 환하게 펼쳐지는 기쁨과 감동으로 다가오더군요.

꿈과 환상의 세계와 현실이 넘나드는 계속되는 움직임이 우리를 끊임없이 이끌어 주고 있어 글 없는 그림책이란 사실을 잊게 만들고, 검은색과 하얀색 그리고 노란색만으로도 충분히 몽환적인 분위기를 살려내는 작가님의 그림은 꿈처럼 보는 사람의 마음에 스며듭니다.

이제 길가에 핀 민들레를 볼 때마다 민들레사자를 떠올릴 것 같네요.

노란 갈기를 한껏 세우고 꿈꾸는 민들레사자를, 바람을 타고 세상 이곳저곳으로 흩어지는 공기처럼 가볍고 자유로운 하얀 깃털의 민들레사자를 말이지요.

이동과 모임이 자유롭지 않은 요즘이라 그런지 꿈꾸는 자유로운 민들레사자가 더 부럽기도 한데요.

더 멀리, 더 높이 날아가라고 응원의 입바람을 후~하고 불어주고 싶네요.

우리의 꿈이, 우리의 상황이 더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담아서요.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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