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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
루이즈 디살보 지음, 정지현 옮김 / 예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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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최고의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인데 원제는 『The Art of Slow Writing』. 느리게 쓰는 법에 대한 내용인데 제목이 원제랑 같았다면 눈길이 갔을지도 모르지만 (내 경우에는) "최고의 작가들은..."이라는 제목에는 (평소라면) 절대 손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내가 최고의 작가가 되는 데 관심이 전혀 없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최고의 독자들은 어떻게 글을 읽는가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면 궁금해서 슬쩍 곁눈질 정도는 할 것 같다. 내 안의 속물적인 면이 최고의 독자라는 말에 저도 모르게 움찔ㅡ반응하면서도 동시에 내 안의 속물적인 면을 경멸하는 내가 똑바로 쳐다보지마!라고 잔소리를 할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휘리릭ㅡ 곁눈질 정도가 적당한 반응일 것이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 일기(『Journal of a Novel』)가 궁금해서 검색하다가 이 책에 꽤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것 같아 궁금하여 조금 훑어보았다. (물론 존 스타인벡이 언급되는 부분만 넘겨가며 본 것은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예의를 지켜 읽기는 했다. 그것은 필요한 부분만 짚고 나머지는 대충 뛰어넘길 만큼 재미없지는 않았다는 의미겠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가장 핵심 단어가 slow라서 제목에서 slow를 사라지게 한 것이 좀 아쉽긴 하다. 저자는 작가인 자신의 경험과 유명한(어쩐지 '최고의'라는 말을 나까지 보태주기는 싫은데) 작가들의 예를 들면서 작가들이 얼마나 느리게 쓰는지에 대해 보여주고 느리게 쓰는 것이 왜 중요하고 필요한 일인지 보여준다. 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느리게 쓰는 법에 대한 실용적인 활용법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그중에 매우 유용해 보이는 실천 도구 하나가 과정 일기. 작가들이 작품을 써나가면서 동시에 작품의 진행과정을 포함한 모든 것(존 스타인벡은 일기에 "빨래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을 적어두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글쓰기와 아예 관련이 없는 얘기가 아니구만. 그래서 과정 일기에는 모든 것이 포함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의 작품을 쓰는 동안 작품을 포함한 작가 인생의 모든 부분은 쓰고 있는 작품과 이어져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빨래 시간까지도)에 대해 일기를 쓰는 것인데 (넓은 의미로 보아) 이 과정 일기의 훌륭한 예로 자주 언급되는 작가 두 명이 존 스타인벡과 버지니아 울프이다. 나의 경우에는 사실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고 존 스타인벡의 일기가 조금 궁금하던 것이었지만 울프는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고 또 저자가 언급하는 수많은 작가들(저자의 개미처럼 부지런한 조사와 인터뷰, 글쓰기를 위한 꼼꼼한 사전 준비가 느껴지지 않을 수 없는데)의 느린 글쓰기 과정에 대한 소소한 일화들이,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어떤 실용적인 지혜를 꼭 얻어가겠다는 마음 없이) 그냥 읽기만 해도 즐겁긴 했다. 작가들의 어떤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인간적인 면이 있으니까. 그건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작가와는 또다른 작은 즐거움.(이런 경우에는 큰 즐거움보다는 언제나 작은 즐거움이 훨씬 좋은데 예를 들어 좋아하는 작가를 직접 만나 얼굴을 보고 사인을 받고 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커다란 기쁨일지도 모르지만 나의 경우는 그냥 이런 모래알 같은 작은 즐거움을 줍줍하는 게 어쩐지 더 좋다)

이 책의 원제는 데이비드 미킥스의 훌륭한 책 『느리게 읽기』(원제는 『Slow Reading in a Hurried Age』인데 이 책은 원제를 잘 살리고 있어 내가 다 뿌듯하다)를 생각나게 한다. 두 책 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느리게 읽기 느리게 쓰기 그리하여 느리게 살기. 맞다. 이 책은 느린 글쓰기에 대한 책이지만 결국 느린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글쓰기에 대한 책이 아닌 글쓰기를 포함하는 좀 더 넓은 삶, 현실의 삶에 대한 조언으로 읽었다. 때마침 나는 서두르고 또 서두르는 삶이 마침내(아니 어쩌면 진작에) 포화상태에 이른 것 같다는 더부룩한 느낌을 좀처럼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으니까.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튼 더하기보다는 빼기다라는 생각이 거듭 드는 찰나에 눈을 찡긋하며 내게로 걸어온 책.("밀러는 책을 읽는 방식이 곧 인생을 읽는 방식이라고 여겼다. 만약 책을 무턱대고 읽는다면 인생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고 글도 그렇게 쓰는 것이다. 느리게, 신경 써서 읽는 법을 배우면 좀 더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으며")("책을 서두르는 것은 삶을 서두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책은 재미있게 읽었고 원래 내 목적이었던 존 스타인벡의 소설 일기도 꽤 많이 언급되기는 했다. 그렇지만 목마른 사람이 물 몇 방울로 겨우 입을 축인 것처럼 감질나는 느낌이 있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일기를 더 읽고 싶다는 말.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본은 없는 것 같고 앞으로도 가능성이 있을까 싶다. 그리고 또 하나, 저자는 경력을 버지니아 울프의 전기로 시작한 것 같던데 나는 글쓰기에 대한 책보다 이 책이 더 궁금하다. 그렇지만 이 책 역시 번역본은 없고 번역될 가능성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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