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잘 풀리는 철학적 사고술 - 니체가 알려주는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법 아우름 28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박재현 옮김 / 샘터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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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전쟁이 아니다. 또 취미나 탐닉은 도피적인 즐거움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상상이 엮어낸 가상 체험에 지나지 않다.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의 뇌 속에서 벌어지는 일에 불과하다. 계속 같은 꿈을 꾸고, 그 안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얼른 그것을 알아차리고 잠에서 깨야 현재의 상황을 새롭게 타개할 여지가 생긴다. 그 방법이란 ‘뇌를 바꾸는 것’이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p.30)


​단 한번뿐인 인생을 제대로 살고자 한다면 나만의 생각을 가져야만 한다. 자신이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진다. 타인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계획대로 행동한다. 이런 태도는 타인이 보기에 어쩌면 매우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해야만 나라는 존재를 파악할 수 있고 능력도 발휘할 수 있는 법이다. 이런 나를 남이 알아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을지도 모르고,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참신하다며 찬사를 보내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래도 거기서 멈춰 서서는 안 된다. 다시금 자기만의 사고로 행동하고 돌파해간다. 이것만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p.132)

​사실 현대인을 괴롭히는 것들 대부분이 지성이나 이성이라는 것의 쓸데없는 작용이다. 머리를 쓸수록 고민은 깊어진다. 전례. 체험, 상상, 예상, 기억이 우리를 괴롭힌다. 이것을 하면 어떻게 될까? 저것을 했더니 이렇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잘 될까? 앞으로 무엇을 해야만 할까? 이렇듯 머릴르 스면서 우리의 고민은 끝없이 싹트고 자란다.

그보다는 좀 더 솔직히 본능을 존중하면서 현재의 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쏟아지는 고민도 즐거움도 모두 받아들이고 만족하는 게 본래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p.140)


이 세상에는 질릴 만큼 수많은 책들이 있고, 철학 책만 해도 평생을 읽어도 다 읽을 수 없다는 두려움을 느낄 만큼 많다. 물론 그 모든 책들이 훌룡한 것은 아니다. 유명한 고전 중에서도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형편없는 철학 책도 있다. 이 책은 그 가운데에서 한 줌을 가져와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한 것으로 조금 과감하게 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작게나마 어떤 도움이라도 되어줄 힌트의 씨앗을 담은 책이다. 

생의 한가운데서 젊은 사람들은 우왕좌왕한다.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저하고 겁을 낸다. 자기과신 같은 건​ 이미 오래 전에 잃었다. 하물며 수많은 바람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로 자신의 무기력과 무능력을 느끼는 나날이 계속되는 사이에 남은 자신감마저 사라져버리고 그저 나이만 먹는다. 사실이 이렇게 느끼고 있는 건 젊은 사람만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생에 있어서는 모두 초보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니체의 말을 빌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자기중심적으로, 자신의 규칙에 따라 당당히 살아가라고 진지하게 조언한다. 인생은 세상의 고정관념을 배우고 익히는 시간이 아니라 내 방식으로 살아가는 시간이고 장소라는 것이다.

“세상의 흔해빠진 고정관념에 물들어 버리면 나는 사라진다. 그것은 내 안에 나이 든 타인이 수없이 담겨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 사람에게 개성 같은 것은 없다.”

따라서 고난이 닥쳤을 때는 이럴까 저럴까 우물쭈물하는 대신 결단을 내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힘을 쏟으라고 말한다. 그 결과 잘 될지도 모르고 반대로 혹독한 상황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도저도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상황은 변한다는 것이다. 괴롭고 힘들기에 누구라도 고난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계속 도망치기만 한다면 언제까지고 진짜 인생은 시작되지 않는다.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을 어딘가에서 찾으려는 의존적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니체는 운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말한다. 이것은 니체가 강조한 ‘운명애’라고 부르는 것으로,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인생을 전면적으로 긍정하는 태도이다. 즉, 무슨 일이 일어나든 ‘좋았어!’라고 말할 수 있는 호쾌한 태도로, 설혹 자신의 결단이 힘겨운 결과를 낳았다고 해도 ‘좋았어!’라고 말하며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긍정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듯 인생 자체를 사랑하고 긍정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인생을 만끽하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가르침을 통해 방황하는 청년들이 인생을 사랑하고 긍정하며, 더 나아가 자기 안의 숨은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응원하고 있다. 

웅크린 자세로는 아무것도 잡을 수가 없다. 결코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 수많은 고난과 위험, 그것들이 없다면 인간은 언제까지고 강해질 수 없다. 불필요하다고 여겨지기도 하는 벅찬 인생의 고난들이 바로 우리의 생명력을 강하게 하고 더 높은 차원의 기쁨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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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유물에 있다 - 고고학자, 시공을 넘어 인연을 발굴하는 사람들 아우름 27
강인욱 지음 / 샘터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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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굴한 유적 중에는 약 4000년 전 만들어진 청동기 시대 마을의 공동묘지도 있었다. 이 유적에선 마주 보고 손을 부여잡은 채 누운 모자의 무덤도 발굴됐다. 가족으로 생각되는 어른의 무릎 위에 아이를 올려놓은 무덤도 같은 시기에 나왔다. 수십개의 인골을 발굴하고 수백 개의 인골을 본 나도 서로 부둥켜안은 자세로 묻혀 있는 어머니와 아들 앞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저세상에서까지 자식을 보듬어 안은 어머니와 그 품의 자식, 그리고 그들의 손을 꼭 쥐게 해서 저세상으로 보내야 했던 가족의 슬픔과 고통이 수십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전해졌기 때문이다. (p.17) 

고고학은 파편만 남은 유물을 매개로 과거와의 인연을 잇는 학문이다. 고고학자가 발굴하는 유물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인연의 끈인 셈이다. 고고학자가 발견하는 유물은 크게 의도적으로 묻힌 것과 우연히 버려진 것으로 나뉜다. 무덤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의도적으로 묻힌 것의 대표적인 예이다. 저승 가는 사람이 가져가라고 이런 저런 물건을 넣어 준 것을 현대의 고고학자가 다시 꺼내는 것이다. 반면에 집터나 조개무지에서 발견되는 유물들은 사람이 살다 버리고 간 집이나 쓰레기장에서 발견되는 유물이다.

이렇든 저렇든 과거 사람들이 사용했던 유물을 고고학자가 다시 찾을 수 있는 확률은 극히 드물다. 임진왜란 때 남해안 일대에서 조선의 수군은 왜군을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그 와중에 수배 척의 배들이 침몰했다. 지난 수십 년간 거북선과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찾기 위해 수많은 탐사대가 남해안을 조사했건만 그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다.

생각해 보자. 내가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인형이 어딘가에 묻혀 있고, 그것이 수천 년 뒤에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발견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고고학적 유물은 그러한 제로에 가까운 가능성을 뚫고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러니 기적 같은 인연은 사실 영화뿐 아니라 우리가 흔히 보는 유물 모두에 숨어 있는 것이다.

연인들이 주고받는 사소해 보이는 목걸이나 매듭이 인연을 상징하는 이유는 그 속에 수많은 사연과 기억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고고학 유물도 마찬가지다. 작은 토기 조각 하나하나에서 수많은 과거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사소한 인연의 결과는 결코 작지 않다. (p.131-2)

 


실제 고고학을 전공하게 되면 수많은 유물들을 일일이 씻고 기록한 후에 비슷한 것들끼리 모으는 등 엄청난 노력과 끈기가 필요한 작업들이 이어진다. 고고학을 전공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찾아오면 나는 가장 먼저 발굴 현장과 유물을 정리하는 연구실로 보낸다. 고고학은 신나는 모험이 아니라 퍼즐을 이어붙이는 끈기의 학문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소한 단어를 찾는 형사들처럼 고고학자들은 흙구덩이를 비롯한 수많은 발굴 현장에서 토기편들을 찾아내고 있다.(p.139)



상처 입은 조개가 진주를 만든다는 속담이 있다. 고고학도 그러하다. 과거의 유적이 파괴되어 우리에게 그 속살을 보여 줄 때 비로소 우리는 과거인들의 모습을 알게 된다. 지금도 고고학 현장에서는 사소한 증거 하나라도 잃지 않기 위해 사진을 찍고 도면을 그리며, 체질을 해서 흘러나갈 수 있는 유물을 건져 올린다. 하지만 그 상처를 당연시하고 발굴에만 급급하게 된다면 우리 후세들에게 물려 줄 매장 문화재는 더 이상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p.144)





이 책은 흥미로운 물음들로 시작된다. 여러분도 잘 아는 모 록그룹 리드싱어가 조로아스터교가 낳은 최고의 인물이라는 것을 아는지? 최초의 꼬치구이는 언제 누가 먹었을까? 칫솔을 가장 먼저 사용한 것은 누구일까? 흙수저는 무려 신석기 시대에도 있었다? 알타이에는 정말 카펫 옮기는 날이 있을까? 프르제발스키말이라는 요란한 말 이름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그리고 그 물음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예기치 못한 이야기들, 그 이야기를 빚어낸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그 사람들의 모습에는 지금 우리의 고민과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람들은 흔히 고고학이라고 하면 황금을 찾는 보물찾기로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고고학 전공이 있는 대학이 많지 않아 실제 고고학자를 보기가 쉽지 않기에, 대신 영화 속 신나는 모험을 하는 주인공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땅속에서 산산 조각난 토기 조각을 닦고 맞추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이처럼 실제 고고학은 사소한 유물속에서 끈기 있게 과거와의 인연을 찾아내는, 모험심보다는 역사에 대한 탐구와 끈기가 필요한 직업이다.​ 전시실 구석에 초라하게 있는 토기 한 점이라도 그 뒤에는 그 위치를 세심하게 기록하고 연구실로 가져온 후에 흙을 제거하고 일일이 조각을 맞추어서 하나의 그릇으로 복원한 고고학자의 끈기와 노력이 숨어 있다.

고고학의 목적은 황금이 아니며, 다양한 시간과 공간속에서 살았던 과거 사람의 모습을 밝히는 인문학이다. 거대한 건축물의 화려함이 아니라 건물을 만들고 살았던 사람들을 공부하며 자그마한 유물에서 과거와의 인연을 찾고, 또 그 속에서 과거의 사람을 찾아낸다. 발굴장에 가면 고고학자들은 황금도, 제대로 된 유물도 없는 흙 속에서 잔손질을 하면서 유물을 찾고 있다. 바로 그 한 손길 한 손길이 과거와 우리를 잇는 인연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고고학자가 오래된 무덤에서 발견하는 것은 대부분 말라비틀어진 뼛조각, 토기 몇 편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무덤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던 과거 사람의 슬픔, 그리고 사랑이 깃들어 있다. 수천 년간 땅속에 묻혀 있던 유물 속에서 그 사랑의 흔적을 밝혀낸다는 점에서,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옛사람과 소통한다는 점에서 고고학이란 행복하고도 흥미진진한 작업이 아닐까.

찬란한 황금에 혹하지 않고 사소한 토기의 조그마한 변화에서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고고학이라는 분야가 소박하게 보여질수도 있지만 실제 발굴 작업에서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와 유물 하나 하나에 숨겨진 이야기는 우리의 호기심을 한층 더 끌어올리며 고고학의 인간적인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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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 -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의 빛을 따라서 아우름 30
엄정순 지음 / 샘터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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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시각적 표현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있을까?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인데 이들도 우리와 같은 마음이 있다는 것이 왜 놀라운 발견처럼 느껴졌을까? 나는 시각장애의 세계에 대해 편견이 있고 잘 모르는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나뿐 아니라 우리 대부분은 그 세계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앞이 안보이는 이들이 어떻게 이미지를 만들게 될지 궁금했다. 궁금한 이가 나뿐만은 아니었다. 그들고 그리기와 만들기로 하는 시각적 표현에 관심이 있지만 어떻게 시작할지 몰라서 주저한다. 그들과 미술 수업을 하면서 앞이 안 보이는 이들이 대체적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말로 하는 소통에 의존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시각의 부재로 예민해진 다른 감각으로 몸에 저장한 기억과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을 어휘로 잘 풀어 놓는다. 처음에는 그들의 저장고에 무엇이 어떻게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곳에 다가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질문뿐이었다. 나의 질문은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맘껏 하도록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그들의 질문 또한 나의 마음에 파문을 던진다. (p.58-9)



나의 상상이 맞든 틀리든 그것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이렇게 얼굴을 본 적이 있었던가! 시각 중심의 세계에 익숙한 나에게 시각 외 다른 감각들의 세계가 던지는 질문은 충격이었다. 그들의 거침없는 호기심은 너무 익숙해서 더 이상 의심하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 것들을 흔들어 놓고 다시금 보게 하는 설렘을 안겨 주었다. 또한 이들의 궁금함은 보는 것을 믿고 그것에 안심하고 있는 우리가 미처 가져 보지 못한 어떤 것, 그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휩싸이게 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엉뚱함이라고 일축하기에는 무척 창의적이고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자꾸 생각이 났다. 사소한 것도 궁금해하고 감탄하는 그들의 멋진 질문들. 그래서 예술가로서 같이 궁금해하고 그 호기심의 답을 찾아 보기로 했다. (p.57)


나는 진정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앞이 안 보여서 기본의 코끼리 이미지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감각에 충실해서 만든 아이들의 코끼리 작품은 거꾸로 코끼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상상하게 만들어 주었다. 동시에 ‘시각장애가 시각적 표현을 하는 데 정말 치명적인 결함인가’ 하고 기존 생각에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가짜 코끼리를 만져 보고도 이런 창의력이 나왔을까? 예술가들과 함께하는 작업 없이 가능한 일일까? 궁극적으로 아이들에게 선사해 주고 싶었던 건 이런 게 아닐까?

나는 시각장애의 세계에 대해 아직도 모르는 게 많지만, 아이들과 작업을 하면서 앞이 안 보인다는 것이 단지 결핍이나 무능력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p.146-7)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은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인문교양 시리즈 아우름 서른 번째 주제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화가인 저자는 어릴 때부터 참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20년 전 저자는 한 프로젝트를 계기로 시각장애의 세계를 만나게 되었고 본다는 것에 관한 질문을 품고 작업하고 있던 저자에게 시각장애의 세계는 좀 다르게 보였다. 시각이 너무 중요한 감각이라서 시각이 부재한 아이들이 오히려 귀하게 보였던 것이다.

시각예술과 시각장애의 세계는 겉으로는 전혀 다른 세계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서로 무관하지 않고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교감할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어렴풋한 느낌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안 보이는 사람과 미술 작업이라니? 무모하다. 쓸데없는 짓이다. 뜬구름 잡는다 등이 주변의 한결 같은 반응이었다. 지금껏 이런 작업이 없었기에 그러한 반응도 당연한 것이었다. 저자는 이 프로젝트가 정말 쓸데없고 무모한 짓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를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인류가 갖고 있는 오래된 우화 ‘장님 코끼리 만지기’를 모티브로 한 아트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이는 우화 속에서 코끼리 만지기로 비유되는 ‘보다’에 대한 의문을 미술로 질문하는 것이다. 우화는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기가 본 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는 앞이 안 보이는 아이들이 지상에서 가장 큰 동물 코끼리를 만져 보고 이미지로 만드는 세계 최초의 시각예술과 시각장애와 코끼리의 콜라보 프로젝트이다.


예술가로서 이들과 하는 작업은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정신 차리고 다시 하게 만들었다. 너무 익숙해져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 물음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것이 무엇인지 저자는 모르고 있었고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앞이 안보이는 아이들과 미술 작업을 하면서 이제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질문들이 생겨났다. 안 보인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학문적 상상과 업적들은 실제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는 아무 연관도 없는 것인가? 장애는 과연 뭘까? 인간은 이미지 없이도 살 수 있나? 우리는 이미지의 시대에 살고 있는데, 이미지에 약한 이들은 어떻게 존재감을 가질까? 안 보이는데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 하나의 감각이 약하면 다른 감각들이 그것을 보완해 준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뜻일까? 안 보이는 이들도 꿈을 꾸나? 그렇다면 우리는 영화를 보듯이  꿈을 바라보지만 이들은 어떻게 꿈을 보나?

이들도 늘 본다고 말한다. ‘먹어 본다, 입어 보았다, 만져 보다······.’ 그런데 어떻게 보는 걸까?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그녀의 질문은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그럼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도데체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일상에서 별로 생각해 볼 기회가 없던 ‘보다’라는 것에 대해 시각장애 아동의 미술 수업이라는 낯선 상황을 통해 돌아보게 된다.
안 보이는 아이들의 미술 수업은 질문 수업이라고 해도 될 만큼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반짝인다는 건 어떤 거예요? 선생님은 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 누구 보고는 예쁘다고 하고 누구는 밉다고 하는데 왜 그런 거예요? 바람도 찍을 수 있나요? 동물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나요?

보이지 않아서 궁금한 것이 많은 아이들의 질문은 타성에 굳어 있던 우리의 머리와 가슴을 거세게 뒤흔들며, 너무나 익숙해서 조금도 의심해보지 않았던 ‘본다는 것’에 대해 새롭게 돌아보게 만든다. 앞이 잘 보이는 사람이든 희미하게 보이는 사람이든 뿌연 분홍색으로만 보이는 사람이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하며, 그 마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인지도 모른다.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종종 잊고 산다. 당연한 듯 내 눈 앞에 보여지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만 익숙해져 있다 보니 내가 보는 방식, 내게 익숙한 세상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이 던진 질문은 틀에 박혀 있던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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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숍 보이즈
다케요시 유스케 지음, 최윤영 옮김 / 놀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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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조의 이끼를 벗겨내던 중 우리 아르바이트생들의 교육을 맡고 있는 가시와기 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쿠토! 잡아!”

내 ​바로 옆으로, 털 뭉치가 재빠른 속도로 휘 지나갔다. 순간 어안이 벙벙했지만 곧 그 털뭉치가 케이지에서 도망쳐 나온 토끼임을 알아챘다.

“거기 서! 토란, 거기 서!”

고타가 한 손에 셀러리를 들고 쫒아가는데도 토끼는 가볍게 무시하며 날뛰었다. 마치 날쌔게 달아나는 토끼처럼, 아, ‘처럼’이 아닌가. 이럴 땐 어떤 비유를 쓰는 게 적절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고타에게 혼나고 말았다.

“뭐 하는 거야, 가쿠! 빨리 좀 도와줘!”

나는 손님 옆을 비집고 나가서 고타가 있는 모퉁이 끝에서 대기했다.

“토란, 여기 좀 보세요. 네가 좋아하는 셀러리란다.”

고타는 최대한 살금살금 다가갔다.

“고타, 토란이라니?”

“토끼의 ‘토’, 네덜란드 드워츠 종이라서 ‘란’, 그래서 토란.”

고타가 방심한 그 순간을 틈타 토란은 그의 허벅지 사이로 빠져나갔다. 그러고 그대로 가시와기 씨의 발에 부딪쳤다.

“잡았다!”

가시와기 씨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토란을 들어 올렸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손님이 흐뭇한 광경이라도 본 듯 웃고 있었다.

“옳지, 나이스 콤비네이션. 토끼 녀석도 가끔은 밖에 나가 괴로움을 털어놓고 싶었겠지.”

단골인 호프만씨가 어설픈 말장난을 하며 박수를 쳤다. 다른 손님도 따라서 박수쳤다.

우리 셋은 잔뜩 민망해서 고개를 숙였다.

이곳은 펫숍. 언제나 떠들썩한 우리의 직장이다.

 

​나는 비겁한 사람이지만 그전에 인간이다. 잘못을 저지르고 비겁하게 도망쳤다. 그러나 사과하려고 한다.

나도 고타와 같은 인간이다. 펫숍을 좋아하니까......

모든 동물을 좋아한다. 고타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사랑한다.

고타나 가시와기 씨, 아카이 씨와 마키타 씨. 그리고 손님과 동물도, 모두모두 정말 좋아한다. (p.376)


 


이곳은 펫숍.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우리의 직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어느 날부터 잉꼬는 섬뜩한 외마디를 외치기 시작하고 이제 막 입사한 신입 직원은 펫숍을 경멸한다고 하질 않나 비 오는 날에는 여자로 둔갑한 여우가 나타나기도 하는 등 아르바이트생 가쿠토와 고타는 미스터리한 소동에 휘말리게 된다. 그런데 사건을 해결하기엔 어쩐지 좀 모자라 보이는 이 녀석들... 사랑도 청춘도 수수께끼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배경은 가미조 지역에 위치한 유어셀프 펫숍. 이바라키의 ‘유어셀프 가미조 지점 펫패밀리’는 대형 홈센터 내에 자리한 펫숍으로 지바에 본점 겸 본사를 소유한 유어셀프 펫숍은 현 회장이 조그만 펫숍으로 시작해 30년 전에 홈센터로 확장된 대형 점포다. 최근 10년 사이에 아주 빠르게 전국으로 뻗어 나가 북쪽은 훗카이도, 남쪽은 오키나와까지 점포를 넓혀 국내 최대의 홈센터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부심을 가질 만한 매장 규모에 아주 다양한 상품들을 자랑하고 있다. 이들이 있는 가미조 지점도 도쿄돔 두 채 규모의 엄청나게 넓은 부지에 자재 매장이며 옥외 장식용품 매장, 푸드 코트까지 포함돼 있다. 그중 펫패밀리 펫숍은 포유류와 열대어, 곤충에서 파충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동물을 취급하고 있는데, 정직원은 점장을 포함해 단 세 명뿐이고 기본적으로는 파트타임 직원과 아르바이트생으로 운영한다.

이곳에서 취준생 가쿠토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와 함께 일하고 있는 동갑내기 아르바이트생 고타는 광적일 정도로 엄청난 동물 애호가로 좀 실없어 보이지만 아르바이트를 하기 전 수의학도였기 때문에 동물에 관한 지식이 굉장히 풍부하다. 그들의 교육을 맡고 있는 이십대 중반의 가게 주임 가시와기 씨는 손님과 동물을 위해 그리고 모두가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을 만들기 위해 누구보다 성실히 일하는 펫숍의 직원으로 이들 셋은 동물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으로 똘똘 뭉친다. 펫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해결하기엔 어쩐지 좀 모자라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어마어마하게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과 인간관계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가며 펫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풀어나간다.


펫숍의 직원과 단골손님, 그리고 불현듯 등장한 의문의 인물들이 얽히는 여섯 가지 사건은 모두 동물과 관련되어 있다. 아메리칸 숏헤어나 사모예드처럼 익숙한 동물도 있고, 잉꼬의 일종인 유리매커우나 도롱뇽의 일종인 일본얼룩배영원처럼 낯선 동물도 있다. 주인공인 가쿠토처럼 동물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 취업, 사랑, 가족관계, 군중 심리, 자아 성찰 등 보통 사람들의 평범하고도 중요한 문제가 사건들 속에 녹아 있기 때문에 한 편 한 편 읽어갈 때마다 펫숍의 인물들과 친구가 되고 반드시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펫숍은 어쩔 수 없이 인간을 위한 곳이다. 하지만 단순히 동물을 사고 파는 곳만은 아니었다. 펫숍은 친구 같은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며 행복을 느끼는, 그런 인간이라는 동물을 돕기 위한 장소였다. 인간으로서, 동물들이 정말로 행복하다고 느끼기를, 끊임없이 기원하는 곳. 책을 읽는 동안 동물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곳곳에서 묻어나와 마음이 따뜻해지고, 책 사이사이 그려진 일러스트는 재미와 감동을 두배로 느끼게 해주어 읽는 내내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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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야스, 에도를 세우다
가도이 요시노부 지음, 임경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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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에도의 모습이네.”
회색빛 땅.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에도성의 동쪽과 남쪽은 바다다. 지금은 간조 때라 백사장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그곳에 대나무 막대기 수십 개가 꽂혀 있었다. 막대기에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잡거나 그곳에 붙은 해초류를 채취하는 듯했다. 어쨌든 연안 곳곳에 초가지붕의 민가가 쓸쓸하게 모여 있는 것을 보면 어촌이 분명했다.

서쪽은 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북쪽은 조망이 괜찬은 편이었다. 초록색으로 물든 고지대를 따라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는 농가들이 유일하게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었다.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백 가구나 될까. 기껏해야 칠팔십 가구 정도 있어 보인다. 슨푸나 오다와라의 조카마치와 비교하면 오륙백 년 정도 발달이 멈춘 고대의 마을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이곳을 오사카처럼 만들고 싶네.”

이에야스가 터무니없는 마을 했다.
가신들은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 같기도 한 묘한 표정을 지었다. 무한한 자원이 모여 있고 수십만 명이 살고 있기에 자연스레
온갖 최신 기술과 문물이 모인 히데요시 정권의 사실상 수도. 세계에서 으뜸가는 국제 도시. 그런 오사카를 목표로 삼다니,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이 아닌가.’
모두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p.16-7)

 

 


 

​‘내 도시다.’

이에야스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동쪽으로 나 있는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다음에는 남쪽, 다음에는 북쪽, 통로를 빙 돌면서 몇 번이고 동서남북을 둘러보며 경치를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무수한 지명을 뇌리에 되새겼다. 이에야스에게는 그 지명들 전부가 몸에 착착 붙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도시’

간다의 산을 허물어 바다를 메운 히비야. 주화 공장의 희고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니혼바시의 긴자와 긴자. 혼고와 아타고 아래의 정연한 무가 저택. 저 멀리 나나이노이케에서 끌어온 상수도가 바깥 해자와 입체 교차하는 스이도바시. 그곳을 지나 성 안으로 끌어온 청렬한 물은 지금도 인부들의 갈증을 해소해주고 있을 것이다.

다시 앞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기타하네바시몬 주위의 석벽이 꽤 올라가 있었다. 뒷문이므로 대공사일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에도에서 숨을 쉬고 있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뜨거운 열기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해도 잘해온 것 같군.”

에도에 들어올 당시만 해도 허름한 성과 얼마 안 되는 어민밖에 없던 한촌이 지금은 거대한 개발 현장이 되어 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에도는 영원히 공사 중일 것이고 성장을 멈추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도시가 있는 한 망치소리가 나고 도로가 정비되고 바다가 메워질 것이다.

이에야스는 벅찬 감동을 느꼈다.

뜨거운 뭔가가 눈가에서 흘러내렸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겼을 때도 흘리지 않던 눈물이다.​ (p.360-1)


260년간 지속된 일본 최고 계획도시의 비밀!

지금의 도쿄를 있게 한 에도 막부 탄생의 순간
일본 역사상 최대의경천동지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전국시대의 대혼란기, 불모지에 스스로 발을 디딘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남들은 은퇴를 생각하는 늦은 나이에 그는 황폐하기 그지없는 땅을 바라보며 새 시대를 꿈꿨다.
이야기는 덴쇼 18년(1590) 여름, 소슈 이시가키산 정상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서 호조 가문의 옛 영지를 양도받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오다와라 정벌의 공로에 보답하고자 이에야스에게 호도 가문의 영지였던 간토 여덟 개 지역을 주려고 하는 히데요시. 간토 8주를 받기만 하는 거라면 상관없겠지만 그 대신 지금의 영지를 전부 내놓아야 했기에 
즉석에서 대답하기 어려웠던 이에야스는 일단 슨푸성으로 돌아가 가신들과 상의를 하는데 가신들은 하나같이 맹렬히 반대했다. 그 이유인즉 표면상으로는 오다가와 정벌의 공로에 보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주님을 기존의 영지에서 몰아내려는 것이 진짜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에야스는 영지 교체 명령을 받아들이고 오다와라성이 함락되고 한 달도 지나지 않은 8월 초하루, 가신들을 거느리고 처음으로 에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에도성을 보자마자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형편없는 모습에 실망하는 이에야스. 그런 그의 앞에서 가신들은 성주님이 머물기에 이 성은 적당하지 않다며 서로 앞다투어 성의 공사를 자신에게 맡겨 달라고 하는데 이에야스는 그런 그들을 타이르며 혼마루에 올라 눈 앞에 펼쳐진 풍경 앞에서 이 곳을 오사카처럼 만들고 싶다는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

되돌아보면 모든 것의 시작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한마디였다. “이에야스 그대에게는 간토 8주를 주겠네. 그 대신 현재 영지인 도카이 다섯 개 지역을 전부 내놓게.” 순수한 호의인 것처럼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지만 그 말은 비옥한 땅과 수렁을 교환하자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가신들은 하나같이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에야스 자신도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기도 했지만 결국 영지 교체를 받아들인 것은, 간토에는 무궁한 발전의 여지가 있다는 그의 직감 때문이었다. 무궁한 발전의 여지가 있는 땅!

일본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과 쌀과 흙과 돈을 투입한 거대한 모험이나 다름없었다. 어찌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이지만 그 결과는 대단했다. 이에야스는 히데요시가 준 ‘버린 땅’에서 도네 강의 흐름을 동쪽으로 돌려 비옥한 대지를 창출하고, 화폐 주조라는 일을 통해 에도의 환율을 조절하고 무사시노의 맑은 물을 에도 시내로 끌어오는 일, 최고의 에도 성을 쌓기 위한 노력 등 거대 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네 가지 대사업을 천천히 진행한 결과 에도에 들어올 당시만 해도 허름한 성과 얼마 안되는 어민밖에 없던 한촌이 지금은 거대한 개발현장이 되어 있었다.

​책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생각보다 이에야스의 등장이 드물다. 대신 그를 주축으로 1장에서 5장에 이르기까지, 각 장에서는 연령과 성격이 다양한 여러 기술자들이 등장한다. ‘제1화 강줄기를 바꾸다’에서는 겁쟁이라 놀림을 당하던 관리 ‘이나 다다쓰구’가 습지 대책을 위해 도네 강을 총괄하고, ‘제2화 화폐를 주조하다’에서는 야심이 가득한 젊은이 ‘하시모토 쇼자부로’가 화폐 주조를 이룩했으며, ‘제3화 식수를 끌어오다’에서는 식수를 끌어오기 위한 세 장인들의 우정이 드러나기도 하고 ‘제4화 석벽을 쌓다’에서는 채석업자의 생애가 옅은 비애와 함께 그려진다. 그들의 모습은 에도 사람들이라고 하기보다 오히려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기술자들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장인들의 한걸음 뒤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었다. 그의 업적은 대단했다. 척박한 땅을 비옥한 땅으로 만들고 일본 역사상 최초로 화폐에서 천하통일을 달성, 저습지뿐이라 양질의 지하수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는데 상하수도 공사를 통해, 다른 곳에서는 물이 필요하면 멀리 뜨러 가거나 물장수에게 값비싼 돈을 주고 사야 했지만 에도에서는 거꾸로 물이 알아서 와주었다.  

저자는 에도 막부 건설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숨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려준다. 작가의 안내를 따라 관동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강줄기를 바꾸는 대공사, 수도 시설을 위한 놀라운 기술력, 성벽을 제대로 쌓기 위한 노력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직접 공사를 진행했던 이들과 마주하게 되고, 장인들의 마음가짐에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끝에 마침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장대한 계획과 흰 천수각을 고집했던 이유가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찡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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