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 - 홍승희 에세이
홍승희 지음 / 김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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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너그럽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삶의 표정은 너무 풍부해서
어떤 언어로 해석하든 해석될 수 있고,
어떤 의미 부여든 가능해서 누군가의 의미를 독점하기도 쉽다.
당신에게 의미를 부여할 권위는 오직 당신에게만 있다.

 

 

 

 

 

채식을 한다고 도덕적인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니고 도덕적인 인간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폭력에 힘을 보내지 않으려고 고기를 안 먹는다. 서툴러도 채식주의자이고 싶다. 조금이라도 내 존재가 덜 가해할 수 있도록. (p.28)

한 달에 몇 번 쓰는 글과 근근이 파는 그림 몇 점으로 생활비를 벌고 있는 저자. 수입이 일정치 않아서 빈곤할 것 같지만 생활하는 데 지장은 없었다. 출근하지 않으니 교통비가 안 들고, 가구와 옷이 적어서 유지비가 적게 들고 손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식비도 줄었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생각한 지 3년, 매일 한 끼 이상 고기를 먹던 저자가 어떻게 고기를 안 먹게 된 걸까? 어느 날 버스 옆 차선에서 트럭에 가득 실린 돼지 중 한 마리와 눈을 마주쳤을 때부터 라고 한다. 맑고 커다란 눈망울을 보며 저 존재를 어떻게 먹기 위해 죽일 수 있는지 자신의 몸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 때부터 채식을 시작한 그녀.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염려하거나 반박하거나 왜 그렇게 어렵게 사는지 묻는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난처해진다.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닌데 눈치를 보게 된다. 나 역시도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이해하려 들기보다는 오히려 반박하고 눈치를 주며 지나치게 그의 삶을 간섭하려든다. 무엇을 하든 그 사람의 자유이고 권리인데, 타인의 삶에 너무 넓은 오지랖을 펼쳐댄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딱히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흰색 페인트로 덧칠한 높은 건물에서 나와 딱딱한 아스팔트 위를 발바닥에 붙은 고무창에 의지해 바쁘게 지나다니는 걸음을 보면서 사람들이 지나치게 강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면 아픈 속살을 가리려고 색색의 겉옷을 입는 것인지도. ‘왜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을까.’ 아파야 정상일 법한 세상에서 사람들의 나약함을 건드리고 싶다. 건물의 뿌리로 추락해 다 같이 길을 잃고 싶다. 추락은 소란을 일으키고 땅에 균열을 낸다. 밑바닥에서 뚫고 나오는 에너지다. 더 크게 울면서, 팅팅 부은 눈으로 능청스럽게 말 걸기로 한다. (p.88)

 

정직한 무지가 서로를 가깝게 한다. 우리에겐 더 많은 언어가 아니라 더 많은 무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을 모른다는 무지. 나는 나를 모르듯 당신을 모른다. 삶이 뭔지 세상이 뭔지 몰라서 여기저기 걸어 다닌다. (p.152)

 

 

 

 

 

 

 

 

인간이 함부로 타인의 삶을 지레짐작하지 않고 재단하지 않기까지는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혐오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이름을 도마 위에 올려놓는 건 인간에게는 너무도 쉬운 일이다. 무기력함이 밀려와 풀썩 힘이 풀렸다. 친구의 따뜻한 손을 떠올렸다. 친구는 다시 곧 만나자며 두 손을 잡아줬다. 어떤 단어로도 대체할 수 없고, 어떤 존재라고 규정할 수 없는 따뜻한 손. 친구가 나를 잘 모르듯, 나는 친구를 잘 모른다. 나는 친구를 안다고 말할 자격도, 찬성하거나 반대한다고 말할 자격도 없다. 누구나 그렇다, 그래야 한다. (p.171)

 

그래서 삶을 쓴다. 삶을 쓰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리 써도 자꾸 무엇으로 환원된다. 이성적이지 못하고 상처가 많아서 감정적인 무엇으로 진단된다. 무례한 스티커가 남발한다. 더럽고 위험한 스티커는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그 대상은 이름만 바꿔서 세상을 우령처럼 떠돌아다닌다. 더는 나와 당신이 그 유령에 놀아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령을 말하지 말고, 당신의 삶을 말해주길. 구체적인 오늘을 나눠주길. 나도 오늘을 말할테니. (p.223)

 


권력 풍자 퍼포먼스와 그라피티, 비독점 다자연애, 영페미니스트···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거리 예술가 홍승희의 신작 <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

자신의 삶이 세상에 의해 제멋대로 편집되지 않기 위해 쓰고 그리는 거리 예술가 홍승희. 그녀는 국가권력을 풍자하는 그라피티를 그리고 세월호 애도 퍼포먼스를 하며 영페미니스트의 대표주자로서 대학에서 성별 이분법을 비판하는 강연을 하는 등 말마다 활동마다 반향을 일으켰다. 그녀의 발언과 활동은 최선의 윤리가 있다고 강요하는 세상에서 자기 자신으로 숨 쉬기 위한 노력이다. 책에서는 그런 그녀가 정해진 길보다 기꺼이 불확실하고 무한한 세계를 선택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간식물> <오도라> <개미> 등 그녀가 직접 그린 12점의 유화와 함께 세상이 정해주는 역할극을 거부하며 고민을 멈추지 않는 그녀의 일상과 내면, 권력 풍자 그라피티와 퍼포먼스 이후 겪은 일들이 담겨있다.

읽고 나서 제일 기억에 남았던 집단자살. 이웃인 일본에서 지진이 그렇게 번번히 일어나도 우리와는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진은 어느 순간 우리에게도 현실이 되었다. 영화 <판도라>를 보면서 히터가 빵빵하게 나오는 영화관 안에 있는데도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영화가 너무 무서웠다. 분명 언제라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더 무섭게 느껴졌다. 그리고 지진을 직접 경험한 후로 그 공포는 극에 달했다. 샤워를 하는 순간에도 언제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불안했다. 하지만 이제는 지진으로 받은 충격이 조금씩 희미해지면서 원전에 대한 이야기는 차츰 사그라들고 있다. 누구를 위한 선택일까. 저자의 말대로 이건 집단자살이라 다름없다. 우리는 언제나 죽을지 기다리기만 해야하는 나약한 존재들. 누가 되었든 간에 우리는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대비는 할 수 있지 않을까.지금은 괜찮아졌다지만 어느 누구도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하찮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아파도 참아야 하고 슬퍼도 참아야 하는 어찌보면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보다 오히려 감추는 것에 더 익숙해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자는 분홍색, 남자는 파랑색이라 정해진 색깔, 남자는 무조건 울지 않아야 하고 씩씩해야하며 여자를 보호해야하고 여자는 나약한 존재라는 고정관념. 조금씩 달라지고는 있다고 하지만 누가 그렇게 딱히 정해둔 것도 아닌데 우리 사회는 당연하듯 우리에게 그런 삶을 살도록 가르치고 그렇게 자라난 우리들은 또 다시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삶을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딱히 정해진 것도 아니고 누가 법으로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다수가 옳다고 한들 꼭 소수가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걸 또 한 번 실감한다. 저자가 말하는 것에 대해서 뭐라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내가 아는 지식이라고는 쥐꼬리만큼이라 뭐라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가진 것이 없어 교도소를 오가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삐딱하지만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그녀의 삶이 멋져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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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인 당신, 안녕한가요?
문션 지음 / 넥서스BOOKS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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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는 게 이렇게 힘든건가요?
아기를 키우는 모든 엄마에게 건네는 따뜻한 공감 육아 에세이

엄마인 당신, 안녕한가요?

 

 

 

 

 

 

육아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기꺼이 하기란 쉽지 않았다. 지금도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육아가 제일 어렵다. 10여 년 넘게 한 분야에서 나름 전문성을 갖고 일을 했던 나에게, 육아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힘들고 고되기만 한 일이었다. 해도 티가 잘 나지 않지만 하지 않으면 엄청 티 나는 집안일은 육아와 함께 오는 덤이었다.
-프롤로그-

 

 

 

 

 

▷ 지금의 너와 나에게

시간이 왜 이리 더디 가는지 참 답답했는데
내 옆에 벌써 이만큼 자라난 너를 보며

이렇게 빨리 지나갈 순간들이었다면
그때의 너를 좀 더 기꺼이 안아줬을 텐데

부디
지금의 너와 내가
충분히 교감하는 하루하루이기를··· (p.56)

 

 

 

 

 

 

 

 

 

 

 

 

 

 

▷ 고백하건대

엄마가 되고
매순간 행복하기만 했었던 건 아니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다시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
수없이 많이 했어.

너의 엄마라서 좋지만
내가 엄마라는 건
아직 너무 낯설거든. (p.142)

 

 

 

 

 

 

 

며칠 전 아이의 사진을 정리하다가 "참 세월이 빠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이렇게 커버린걸까. 어렸을 때는 시간이 너무 안가서 멈춰버린 건 아닌가 의심이 들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서 고장이 난 건 아닌지 가끔씩 시계을 확인하게 된다.
엄마가 되고 매순간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즐겁고 행복하다가도, 어떤 날은 숨이 탁탁 막혀올 만큼 힘든 나날도 있다. 그래도 버텨낸다. 나는 엄마니까. 책을 읽다보면 공감되는 내용이 너무 많다.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아기의 모습을 지켜보며 급하게 볼일을 보는 모습이나 아이를 낳고 후줄근해지는 패션, 모유수유 등 여러 에피소드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그 때가 내가 생각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때의 어리숙한 내가 우습기도 하고 왠지 짠하기도 하고 지금은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보면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그 때는 정말 누구나 그렇듯 아이와 관련된 모든 게 다 버겁고 너무나 힘들었는데 지나고 보니 모두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앞으로도 예측할 수 없는 일 투성이겠지만, 그래도 난 엄마니까! 그렇게 엄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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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형민우 초한지 9 : 욕심과 오만 이문열 형민우 초한지 9
이문열 원작, 형민우 각색.그림 / 고릴라박스(비룡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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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을 뛰어넘는 생생한 묘사!
중국 고전 읽기의 새로운 시작!

이문열 · 형민우의 <<초한지>>

 

 

 

 

 

 

 

 

 

 

 

 

 

 

 

줄거리 관중왕을 포기하고 함양성에서 나온 유방은 패상에 진영을 꾸리고, 연승을 거듭하던 항우는 홍문에 주둔한다. 항우는 군대를 몰아 유방군을 치려 하지만, 범증은 이를 만류하며 힘들이지 않고 유방의 목을 칠 수 있는 계략을 짠다. 이를 알게 된 항백은 장량을 찾아가 범증의 계획을 알려주고, 장량은 유방을 살릴 수 있는 묘책을 준비한다. 결국 유방은 홍문의 연회에 참석하고, 유방을 죽이려는 범증과 유방을 살리려는 장량의 한판 지략 대결이 펼쳐진다.

초한지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와 함께 중국 고전 필독서로 손꼽히는 역사 소설로, 기원전 200년 무렵
진나라 말기에 천하를 두고 패권을 겨루며 대결했던 항우와 유방 두 영웅호걸의 이야기다. 이를 통해 어린이들은 중국의 역사와 지리, 문화 등 교과서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았지만 꼭 필요한 중국 역사 지식을 익힐 수 있다.

이문열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만화로 제작된 <초한지>는 소설과는 다른 만화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섬세한 배경과, 살아 숨 쉬며 약동하는 영웅들의 면모, 그리고 그것을 관통하는 인간에 대한 깊은 탐구심까지 책을 펼치자마자 아이들이 쉽게 책 속으로 빠져들기에 충분하다. 

지금껏 많은 수의 초한지가 번역돼 나왔지만 이문열의 『초한지』만큼 정사에 가까운 책은 없었다. 역사를 비틀고 왜곡하여 오히려 무협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종문거사의『서한연의』를 원저로 한 다른 저작에 비해, 이문열의 『초한지』는 『사기』와 『자치통감』 등 실재하는 역사서를 바탕으로 하여 새롭게 창작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동양 최고의 고전으로 손꼽히는『사기』를 원전으로 하여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면서도 소설적 재미도 놓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저자만의 초한지를 새로 집필하였다.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지만 언제나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 역사를 통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고, 현재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배워나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를 되돌아보며 그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그들이 얻고 잃었던 성공과 실패를 통해 용기와 지혜, 신념, 리더십 같은 오늘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교훈적 가치를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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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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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인정하기 위해서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p.24) 

 

 

그러면서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끝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닌가. 대체 끝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실감하고 확신하는지 알 수 없었다. 끝이 만져지는 것이라면 모를까. 느끼는 것이고 상상하고 인식하는 것인데 지금 내가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끝을 말해. 끝을 말하려면 지금 경애 발밑으로 너풀거리며 나뒹구는 아이스크림 포장이나, 택시의 노란 헤드라이트 불빛같이 눈앞에 지나가는 어떤 것도 아픔을 환기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 했다. (p.57)

 

 

미유 말대로 그들은 대부분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이 남자들은 어디서 뭘 하며 괜찮게 있다가 자기 앞에 나타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알지도 못하던 사람들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기 위해서는, 그렇게 안녕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행운이 작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태어나야 했고 자라야 했고 먹어야 했고 사고를 피해야 했고 견뎌야 했다. 무엇보다 불운을. 불운이라고 말하면 그것이 대체 피할 수 있는 건가 싶은데, 적어도 살아 있다면 그것을 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경애는 알았다, 고등학생이었던 1999년에 가까웠던 친구들을 한번에 잃어봤기 때문이었다. (p.59)

 

 

경애는 비행과 불량, 노는 애들이라는 말을 곱씹어보다가 맥주를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죽은 57명의 아이들이 왜 추모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는가 생각했다. 그런 이유가 어떤 존재들의 죽음을 완전히 덮어버릴 정도로 대단한가. 그런 이유가 어떻게 죽음을 덮고 그것이 지니는 슬픔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
경애를 아예 견딜 수 없는 절망으로 몰아넣은 건 화재의 전말이었다. 발화지점은 건물 지하였고 불이 번지기까지 분명 시간이 있었는데도 그 많은 아이들이 빠져나오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놀란 아이들이 출입문으로 나가려고 할 때 술값을 받지 못할까 걱정한 호프집 사장이 문을 잠갔기 때문이었다. 문을 잠갔기 때문이었다, 라고 신문에서 읽는 순간, 경애는 아주 차가운 무언가가 와서 자신을 꽉 끌어안은 것 같았다. 몸체가 아주 크고 체온이 아주 낮은 그것이 마치 등에 업히듯 자신에게 와서 붙은 것만 같았다. 그것이 팔을 벌려 경애의 머리와 눈과 입술과 마침내 심장까지 완전히 장악했다. 이를테면 정말 누군가 잘못 만든 어떤 피조물 같은 것이. (p.68-9)

 

 

 

경애는 스스로의 삶에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발끝에서 무언가 조금씩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경애가 쌓아왔던 모든 것들이 위태로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도 산주를 생각하면 어떤 간절함이 들면서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경애를 붙들었지만 그것이 결국 자기를 파괴하리라는 것을 경애는 예감하고 있었다.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떠나야 한다고, 어디든. (p.132)

 

 

마음을 페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구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p.172)

 

 

 

상수는 반도미싱의 직원으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열심히는 했지만 융통성이 부족한 탓에 한국의 공장주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다. 신입 시절에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열혈적으로 밤잠도 자지 않고 미싱 카탈로그를 차에 싣고 방방곡곡을 다니며 열심히 일했지만 지금은 회사에서 이렇다 할 영업 성과도 없고 사고만 일으켜 그야 말로 골칫거리였다. 회사에 이익이 되기는 커녕 사고만 치는 상수지만 회사의 간부들은 아무도 그를 선뜻 자르지 못했다. 그 이유인즉 상수의 부친이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인데다, 회장의 재수학원 동기였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낙하산인데 막상 입사하자 회장이 관심을 두지 않아서 끈이 다 떨어져버린 낙하산이었다.그 결과 상수는 다른 입사동기와 달리 팀장으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팀장인데 팀원이 한명도 없는 팀장 대리라는 어색한 직함을 단 채 회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대리라는 이상한 꼬리가 붙었대도 팀장인데 팀원이 한명도 없다는 건 말이 안된다는 생각이 든 상수는 부장에게 팀원을 배정을 배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근 한 달만에 얻게 된 팀원이 8년차 총무부 직원 박경애였다.

겉으로 보면 전혀 연결점이 없어 보이지만 이들 사이에는 은총이 공통되어 있었다. 상수의 유일한 친구인 은총이 1999년 영화동아리에서 만난 여자애를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그 여자 아이가 바로 경애였던 것. 이를 먼저 알아챈 이는 상수였다. 상수는 은총에 관한 이야기를 경애와 자연스럽게 나누고 걔가 얼마나 경애를 특별하게 생각했는지, 다정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회상하고 싶다가도 경애가 그 일을 어떤 방식으로 정리하며 살아왔는지를 생각하면 너무 아픈 상처와 연관되어 있기에 쉽사리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상수가 아는 경애는 그 기억의 어느 하나도 허투루 미뤄두지 못했을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잊혀지는 일이 다른 이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호프집 화재 사건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경애와 같은 사고 현장에서 단 한명의 소중한 친구를 잃은 상수. 화재가 일어난 그 골목은 그런 비극이 일어날 것 같은 공간이 전혀 아니었다. 그냥 사람들이, 때론 학생들이 모여 신분증 검사도 없이 맥주를 마시고 다시 흩어지는 그런 번화가의 골목이었다. 축제가 열렸던 그 날에 학교에서도 영화반을 했던 E는 자기가 촬영한 단편 영화를 튼다며 영화동호회 사람들을 초대했다. 모두가 모여 웃고 떠드는 그 때 경애는 전화를 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고 돌아왔을 땐 이미 2층의 호프집으로 가는 좁은 통로에 연기가 자욱했다. 신고를 해야 된다는 생각에 정신이 없었던 경애는 다시 공중전화로 뛰어갔고 정신을 차리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을 땐 이미 소방차와 경찰차가 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한 명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그 잠깐 사이에 건물 밖까지 시뻘건 불길이 넘실댔다.

연기에 질식하고 다치고 친구들을 잃은 것은 그들인데 화재가 일어나자 모두들 아이들에게 죄를 먼저 묻는다. 왜 그 자리에 있었냐고.
아이들을 다그쳐 올바른 곳으로 인도하고 보호했어야 할 그들이 아니었던가. 일말의 죄책감이나 후회 없이 고통속에서 죽어간 아이들을 추모하기는 커녕 오히려 말과 행동으로 그들을 헐뜯고 비난한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고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들을 원망해야 할까, 아니면 놀란 아이들이 출입문으로 나가려고 할 때 술값을 받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어 문을 잠그고 자기만 아는 통로로 빠져나와 산 사장을 탓해야 할까. 아니면 돈을 받고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 편의를 봐주고 잘못된 일을 눈감아 주던 경찰을 탓해야 할까. 이 비극적인 일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할까. 

그 날의 사고 이후 경애는 슬픔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변함없이 굴러가는 일상이 이물스럽게 느껴졌다. 불현듯 찾아와 경애를 무겁게 누르는 불안은 경애가 늘 견뎌야 하는 고통이었다. 이는 상수도 마찬가지 1999년에, 자신의 유일한 친구였던 은총을 잃은 일을 포함해서 상수에게는 이미 너무 많은 죽음이 드리워져 있던 시기였다. 그렇게 혼자 갇혀서 많은 의문에 답하고 있으면 다정한 이들의 죽음에 자기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죄책감이 상수를 묶었다.

눈 앞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아픈 상처를 내보이지 않으며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온 경애 그리고 오랫동안 아버지로부터 외면받고 먼 곳으로 쓸쓸히 떠나버린 어머니와 유일한 친구 은총의 죽음으로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상수에게는 세상을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와의 기억 그리고 추억은 생활 속 곳곳에서 묻어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살아간다. 말미에 이르러서는 고통속에서 아파하며 웅크리고 있던 이들이 마침내 스스로를 감싸고 있던 막을 조금씩 뚫고 나와 외면해오던 세상과 마주하기 시작한다.  

책이 가진 무게는 상당하다. 그런 상황에 놓인 그들의 삶이 안타까워 한숨이 절로 나온다. 같은 상처를 공유하는 이들 두 사람에게 그 사건은 단순한 과거가 아닌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슬픔이었다. 누가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한들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것 같다. 너무나 깊고 오래된 고통과 슬픔 속에서 견디며 살아온 그들의 모습들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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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표 100 - 책에 새긴 이름 POSTBOOK 1
기획집단 MOIM 지음 / 그림씨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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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표로 보는 장서가들의 이야기

 

 

 

 

 

 

 

 

 

"이게 책이야? 엽서야?"

 

 장서표는 책의 주인을 밝히기 위해 책 표지 안쪽이나 면지에 부착하는 표식으로 영어로는 Bookplate, 라틴어로는 Ex Libris 라고 한다. 장서표에는 장서가의 이름과 ‘···의 장서에서’라는 뜻의 Ex Libris를 넣는다. 거기에 장서가가 좋아하는 격언이나 경구, 제작연도 등을 표시하고 문장이나 미술적인 도안을 더하여 판화 기법으로 인쇄한다. 크기는 일반적으로 5~6cm이지만 작게는 우표, 크게는 엽서 사이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서양에서는 별도의 종이에 판화를 찍어 책에 붙이는 장서표로 사용한 반면에, 동양에서는 책에 직접 찍는 장서인을 주로 사용하였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장서표는 요하네스 크나벤스베르크의 필사본 원고에 삽입된 것으로 1450년에 제작된 이 장서표는 꽃을 입에 물고 있는 고슴도치가 그려져 있다.

초기에는 책이 매우 비싼 물건이었으므로 당연히 소수의 귀족들과 수도원에서만 소유할 수 있었다. 그래서 책 주인이 책 안쪽 면지에 직접 쓰거나 주로 가문을 나타내는 문장 그림과 장식을 곁들인 경구와 이름을 넣는 단순한 형식으로 자신의 소유물을 표시하였다. 하지만 활판 인쇄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한 이후에는 책이 대중에게도 보급되어 장서표의 수요도 많아졌다. 장서표 역시 판화를 이용해 대량으로 찍어 낼 수 있게 되면서 부착할 수 있는 작은 형태가 일반화되었다.  

이 책은 서양의 장서표만을 한정하여 장서가의 개성이나 제작자의 예술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 100점을 모아 놓은 것으로 1450년대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 시대별로 엮어 장서표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장서표에는 소장자의 직업이나 개성과 취미 등이 상징처럼 표현되어 있는데 하나하나 너무 정교하게 만들어져서 마치 미술 작품을 보는 듯하다. 손에 착 감기는 아담한 사이즈에 180도로 펼쳐지는 책은 뜯어서 엽서처럼 활용할 수도 있는데, 차마 아까워서 그러진 못하겠고 이렇게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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