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주가의 결심 - 2018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은모든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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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을 감싸듯 슬그머니 술병을 쥐어본다. 유백색 표면으로 전해지는 온기를 조금 더 느끼고 싶다. 데운 술이 가득 찬 술병은 아직 지나치게 뜨겁다. 몇 초쯤 손을 떼었다가 손끝으로 병목을 기울여 투명한 술을 따른다. 술잔 위로 흐릿하게 피어오르는 훈김을 보면 언제나 마음이 놓인다. 하물며 두 볼이 에이도록 거센 겨울바람을 맞은 뒤라면 더더욱, 데운 술만큼 반가운 것은 없다. 그대로 잔을 들어 단번에 술잔을 비운다. 뭉근한 단맛이 느껴지는 후끈후끈한 술이 입안을 채웠다가 온몸으로 부드럽게 퍼져나간다. 이렇게 다정한 존재가 또 어디에 있을까. 누가 이토록 내 마음을 잘 알아줄까.  

 

술하면 역시 술주희! 대학시절 술이 제일 잘 어울려 술주희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 그녀는 지금까지 필름이 끊긴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술 앞에서는 언제나 강했다. 그녀가 태어나서 가장 자주 들은 칭찬이 술을 맛있게 마신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마시는 술은 유달리 맛있어 보인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녀의 인생에서 술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술 앞에서 모두가 그녀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런 그녀가 이 선배가 쌍둥이를 가진 뒤 모유 수유를 마칠 때까지 이 년 가까이 무알코올 맥주로 어르고 달래온 심신에 드디어 음주를 허하는 날 그리 좋아하는 술 앞에서 기여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녀가 왜?! 사케에 소맥에 본격적인 술자리가 시작되자마자 또 주종이 바뀌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졸업하고서부터 한 오년을 궁상만 떨며 죽어라 모은 돈으로 시작한 푸드 트럭을 홀랑 다 까먹고 빈털터리지만 오랜만에 기분 좋게 마시며 진탕 취하고 싶어서 그랬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필름이 끊겨 버렸다. 언제 일어나서 어떻게 돌아왔는지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떡볶이 국물이 묻은 소매를 닦아주는 이 선배에게 몸을 기댄 채 속없이 웃었던 순간을 끝으로 한 톨의 기억도 남아 있지 않았다. 창피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에 앞서 간밤의 모습들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여태 지갑 한번 잃어버린 적 없다고 자부했던, 민폐와 거리를 둔 애주가였건만. 인간의 몸이란 이렇게 불쑥 약해지고 늙어가는 것일까.

정신없는 와중에 사촌인 우경 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고 지난 밤 자신이 술기운을 빌어 이사한지 1년이 되도록 가보지 않았던 언니 집을 방문하기로 약속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언니가 있는 망원동으로 향한다. 그 곳에서 우경은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주희에게 이곳으로 이사오지 않겠냐며 솔깃한 제안을 하고 손해날 일은 하나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 술로 가득한 술창고를 통째로 주겠다는 그녀의 말에 주희는 주저없이 그러겠노라 대답한다. 그렇게 우경의 제안으로 이사 온 주희는 그 동안 일과 시간에 쫒기며 살아온 자신에게 휴식이 필요함을 느끼고 한동안 자신이 가진 시간을 탕진하기로 마음먹는다. 기왕 용기를 낸 김에 할 수 있는 최소한만 일하면서 제대로 탕진하기로. 시한부에 불과해도 어엿한 한량으로 지내보기로 결심하고 한동네에 사는 술친구 배짱과 함께 망원동 일대를 누비며 갖가지 술에 젖어든다.

제목에서부터 술냄새가 확 풍겨오는 이 책은 곧잘 등장하는 술 때문인지 읽다보면 술 생각이 절로 난다. 술이 너무나 고파온다. 술이 한 잔, 두 잔 오고 갈 때 마다 술 생각이 간절해지는데 그걸 보고 맨 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한 손에 책을, 또 다른 손엔 맥주라도 들고 책을 읽어야 할 듯하다. 짬뽕국물에 고량주, 감자전에 막걸리, 위스키, 칵테일 등 책에는 갖가지 다양한 술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술이 더해지니 자연스레 인생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하루하루 우리가 쌓아온 이야기가 담겨진다.
정말 열심히 일하며 아낌 없이 모은 돈으로 오너 셰프라는 꿈을 가지고 도전한 푸드트럭의 운영에 실패한 뒤 무일푼이 된 주희에게 지금 이 시간은 일과 시간에 쫓겨 버둥거리던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이자 재충전의 시간이다. 주희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꿈을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한시도 자신을 쉬게 놔두지 않았다. 그것은 비단 주희뿐만 아니라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그리고 우리도 마찬가지. 언제부턴가 뭔가에 쫓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듯하다. 삶에 여유라고는 술 한잔을 입에 털어 넣을 때 뿐인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쉬이 흘러 들을 수가 없었다. 자신은 하고 싶은 게 없어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다는 주희를 부러워하는 우경도, 부모님의 반대를 이겨내고 반수를 거쳐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을 하고 이제는 영문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분명히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지만 전세값 때문에 혹은 어쩔 수 없이 종종 번역 작업을 맡고 호구지책으로 입시 과외를 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미영도, 해고 통보를 받고 그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예정까지 모두 이해가 간다. 모두 하루하루가 힘들다. 그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건, 자신을 위로해주는 건 곁에 있는 친구들과 술 밖에 없다. 그 술에 마음이 담겨있다. 술에는 인생의 쓴맛도 있고 달콤함도 있고 똑같은 술이라도 마시는 사람에 따라 그 맛은 천지차이. 우리의 삶도 그런 것 같다. 내가 느끼기에 따라 지금 상황이 지옥일수록 천국일수도 있는거겠지. 연일 불경기가 계속 되고 있는 탓에 술집에는 한숨이, 신세한탄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기분좋게 마시면 얼마나 좋으냐 만은 삶에 여유보다는 초초함이 묻어나는데 어떡하랴. 너도 나도 우리 모두 한 잔의 술에 고민도 슬픔도 다 넘겨 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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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알아야 할 세계사 100가지 초등학생이 알아야 할 100가지
로라 코완 외 지음, 페데리코 마리아니 외 그림, 신인수 옮김, 앤 밀러드 감수 / 어스본코리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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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끝없는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어린이 교양서 <초등학생이 알아야 할 100가지> 시리즈의 신간 세계사 편이 출간되었다. 책에는 초등 사회와 과학 교과서에서 다뤄지는 개념은 물론, 꼭 알아야 할 지식을 보다 폭넓게 탐구할 수 있도록 기본 상식부터 최신 이슈에 이르기까지 100가지 화제를 뽑아 한 권에 담아냈다. 책은 어른인 내가 봐도 재미있을 정도로 세계사라는 다소 어렵게 여겨질수도 있는 이야기를 어린이들이 보다 쉽게 받아 들일 수 있도록 흥미로운 이야기와 그림으로 재미있게 꾸며놓았다. 사건 하나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전후 관계를 이해하고 사물이나 인물의 특징을 알아보고 수치를 비교하면서 그 당시의 상황을 파악하기도 쉬워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세계사를 100가지 소주제로 나누어 놓아서 굳이 꼭 처음부터 보지 않아도 되고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세계사 부분을 주요 사건과 시기를 정리한 연대표라든지 찾아보기와 같은 목차를 통해 어렵지 않게 찾아 읽을 수 있어서 참 편리하다.

처음에는 너무 이른 나이에 이 책을 보여줘서 세계사를 어렵게 느끼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내 우려와는 달리 아이는 쉽게 책에 빠져들었다. 어려우면 당장이라도 책을 덮어 버렸을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홀로 처음부터 차근차근 지식을 쌓아나간다. 전반적으로 내용의 깊이가 깊지 않기에 본격적으로 세계사를 접하기에 앞서 세계사에 대해 전반적으로 가볍게 훑어보기에 딱 좋은 책이다. 글만 적혀있다면 지루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림과 도표, 그래프 등 여러 방식을 충분히 사용해 글을 이해하기 쉽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모르는 용어는 설명에 맞는 이미지와 함께 살펴볼 수 있어서 초등 저학년이 읽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이나 최신 과학 정보까지 담겨있어 호기심이 가득한 아이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면서 역사 지식을 이해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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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게 서른이 된다
편채원 지음 / 자화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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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마다 요구되는 자격들이 있어. 그건 연봉이 얼마인지, 타고 다니는 차가 무엇인지, 살고 있는 집이 전세인지 매매인지, 기혼인지 미혼인지, 자식이 몇 살 인지, 하는 것들이 아니라 소위 인품이라 일컬어지는 추상적인 가치들을 의미해. 나잇값이니, 어른값이니 하는 단어가 분명히 존재하는 만큼 우리는 모두 각자의 나이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어. 현재의 내가 머물러 있는 나이는, 어쩌면 나를 대변하는 또 하나의 직업이니까. (p.26)

 

이제와 생각해보면 철없던 그 시절이 좋았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건지. 사실 어른이 되면 뭔가 크게 바뀔 줄 알았다.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편히 지낼 줄 알았지. 이럴 줄 알았나? 저자의 말처럼 이제는 나이를 듦에 따라 나잇값이니 어른값이니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아진다. 어린시절 내 눈에도 형편없어 보이는 어른들을 보며 “나는 커서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했었는데 나는 내가 바라던 어른이 되어 있는 걸까. 현재 내가 머물러 있는, 각자의 나이에 대한 책임감. 결코 가볍지 않은 그 무게를 견뎌내기가 가끔씩 버거워진다.

 

 

 

 

 

정답은 없어, 선택을 후회하는 날도 있겠지. 늘 설레면서도 가끔은 불안해. 매번 두렵지만 그래도 가슴이 뛰는 걸. 어차피 걱정 없는 인생은 없어. 걱정을 걱정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도 없고.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일들이, 살면서 얼마나 있었을까. (p.57)

 

스무 살의 내 시선에서 바라본 서른 살은 아줌마, 아저씨였다. 외모가 나이 들어 보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서른’이라는 두 글자가 주는 어감이 그랬다. 법적으로는 같은 성인이지만 스무 살은 아직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 같은 느낌이고, 서른 살은 거의 완전체에 가까운 어른이랄까. 서른과 어른. 단어도 고작 자음 하나 차이 아닌가. 그래서 궁금했다. 서른이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더군다나 우리나라처럼 나이에 민감한 사회에서 서른이란 나이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건지. 스물여섯만 되어도 날짜 지난 크리스마스 케이크라 안 팔리겠다는 소리나 듣는데, 여자 나이 서른이면 세상 다 산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 지금 들으면 코웃음이 나올 만한 우스운 고민이지만, 그땐 나름 진지했다. (p.139)

 

 책은 어른이 되었다고 하기엔 어딘지 충분치 않은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한 저자의 다양한 생각들이 담겨있다. 파란만장한 이십 대를 지나 서른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삶은 다소 웃기기도 하고 나도 이미 겪었던 일이라 공감이 되기도 하면서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을 잠시 엿본다는 생각에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렇듯 에세이를 읽으면 내가 아닌 타인의 목소리와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게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싶다.
여자 나이 서른, 이 시기가 되면 누구나 그야말로 멘붕상태다. 평소의 나는 다름없이 그대로이고 그저 앞자리의 숫자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패닉 상태 다다른다. 수 없이 많은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정말 고민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그렇게 펄쩍펄쩍 뛰며 속상해하던 나날들이었는데 그 마저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잊혀져간다.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내 인생에서 내가 원하는대로 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저자의 말대로 인생이란 지름길이 아닌 우회로를, 잘 닦인 아스팔트가 아닌 흙탕물 범벅에 울퉁불퉁한 길을 맨발로 걷는 것이었다. 들쑥날쑥 마치 놀이기구를 타듯 오르락 내리락 미리 예상조차 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다른 누군가를 지켜 볼 여유 조차 없었다. 나만 이렇게 힘든 것 같았다. 그만큼 그 당시에는 정말 많이 불안했다. 이유없이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많이 흔들거렸다. 하지만 제목처럼 누구나 그렇게 서른이 된다. 다가올 것 같지 않아도 그 시기는 다가오고 빨리 지나갈 것 같은 시간들은 오히려 느리게 흘러간다. 그렇게 어른에 가까워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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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괜찮지 않았던 날들
허윤정 지음 / 자화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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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상처를 삼키는 시간들
그 순간을 견뎌낸 나를 위한 공감의 메시지

 

 

 

 

 

 

 

 서로를 지키는 방법

이제 서로를 많이 안다는 이유로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더 노력해야 한다. 상대가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고, 맞지 않는 부분은 맞춰가고, 알아가는 것만큼 이해하고.

가장 흔히 하는 착각이, 아는 게 많아지면 더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아니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서로를 지킬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 (P.32)

 

사랑은 네잎 클로버 찾기

모든 사랑의 순간들은 결국 사라졌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면 시작하기도 전에 이별의 순간부터 그려보곤 한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미리 보호막을 쳐둔다. 시작하기도 전에 많은 것을 생각한다는 걸 알지만, 그저 불타올랐던 건 언젠간 식을 테고, 한결같은 마음은 네잎 클로버 찾기나 마찬가지라 사랑의 시작은 무섭고 두려울 뿐이다. (P.56)

 

우리는 연애를 시작하기에 앞서 늘 바란다. 이 사람이 마지막 사랑이길, 내 곁에 오래 머물러 주길 하지만 괘씸하게도 그 사람은 상처만을 남긴 채 떠나가고 나만 홀로 우두커니 남겨진다. 저자 또한 그랬다. 연애는 왜 이리 힘든건지 첫 번째 연애를 끝내고 저자는 누구를 만나도 헌신적으로 사랑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후 만난 사람들과는 사랑까지도 채 닿지 않았고,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연애가 끝나고 나면 다음 사랑은 더 잘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에는 지침서가 없었고 여전히 서툰 사람이었다. 왜 사랑은 사람을 이렇게 작아지게 만드는지.. 책을 통해 저자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자연스레 옛사랑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시절의 나도 저자처럼 많이 아파하고 힘들어했다. 처음엔 다 좋았다. 그 사람의 말투와 성격, 행동까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긴 시간동안 서로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 당연히 결과였다. 서로를 좀 더 배려해주고 아껴주었어야 했는데 서로의 탓만 하다보니 사랑하는 시간보다 화난 마음을 삭히고, 서로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시간이 늘어갔고 결국 서서히 멀어져갔다. 

 

 

정답 없는 세상 속에서

세상에는 내 선택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았고 그 속에서 자주 길을 잃었다. 심지어 정답이라고 확신했던 것도 틀렸으며 새로 무언가를 배워도 응용할 줄 몰라 쩔쩔매기도 했다. 다섯가지 보기만 가지고 있던 나에게 세상의 문제는 애초부터 풀 수 없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P.100)

 

소중한 나를 위해

누군가와 비교하며 자신을 낮추게 되는 이유는 기준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기준점은 내게 두고 내 속도에 맞춰서 나대로 살자.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나를 잃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소중하다. (P.118)

 

현재에 충실하기

돌아가고 싶든 돌아가고 싶지 않든 이미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미래일 뿐. 그러기위해서는 그저 현재에만 충실하면 된다.
마음을 과거에 두지 않고, 현재와 함께 걸어 나가기를. (P.137)

 

삶은 항상 선택의 연속이다. 수많은 질문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게 정답일까?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내가 한 선택에 꼭 후회와 미련이 남는다. 그리고 아쉬운 마음에 계속 그 순간을 마음에 담아둔다. 그 속에서 내가 괜찮았던 날들이 얼마나 될까? 저자는 한 번씩 나를 찬찬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면 외면하고 있던 것이나 놓치고 있던 것들이 툭툭 튀어 나온다. 꼬일 때로 꼬여버린 감정이 노려보고 있기도 하다. 그 감정과 화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외면하면 더 큰 폭풍으로 내게 올 것이기에.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다. 모든 게 다 내 마음같지 않다. 오히려 세상에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다. 좋다가 나빠지기도 하고 나쁜데 갑자기 좋아지기도 한다. 지금이야 나쁘다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보면 그닥 나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그 순간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말자. 힘들었던 만큼 더 좋은 날들이 올테니까 말이다.

책은 간결해서 빨리 읽히는 반면 그 여운은 상당히 오랜 시간 마음에 남는다. 차곡차곡 담아 두었다가 다시 꺼내어서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마음을 두드리는 글들이 상당히 많다. 언젠가부턴가 행복하고 기쁜 일보다도 힘들고 아픈 날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고 싶지 않은 마음 속에 담아둔 이야기들, 혼자서 되뇌이다보면 더 깊은 수렁속으로 빠져드는데 그럴 때 이 책을 꺼내어 읽으면 많은 위로가 될 것 같다. 사랑에 있어서나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말이다. 그냥 읽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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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문학자의 걷기 예찬
아널드 홀테인 지음, 성립 그림, 서영찬 옮김 / 프로젝트A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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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걷기의 진수는 어떤 목적이나 목표물이 없다는 데 있다. 시골로 여행을 떠나기 전 갖춰야 하는 마음가짐은 완전한 정신적 진공상태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최대한 산책자가 주어진 시간과 장소라는 카테고리마저 없애버려야 한다. 일정한 시간 안에 일정한 거리를 돌파하겠다는 결심을 갖고 출발하는 것은 산책이 아니라 ‘건강을 위한 산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건강을 위한 산보는 시골 산책의 낙제생인 셈이다. (p.13) 

 

저자가 말하는 산책자가 갖춰야 하는 적절한 마음가짐은 흔들림 없이 완벽한 수동적 자세다. 이는 곧 어떤 느낌도 받아들이겠다는 개방적 태도. 자연의 위대한 힘이 이끄는 대로 나 자신을 그냥 내맡기겠다는 태도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오로지 마음을 비우고 걷기 자체만을 생각하고 걸었던 적은 드물었던 것 같다. 건강을 위해서라던가 살을 빼기 위해서라던가 항상 이유을 두고 걸었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닌데, 그 목적을 빠르게 달성하기 위해서 앞만 내다보고 걸었다. 그래서 주위 풍경을 잘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왜 그렇게 아둥바둥거렸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여유가 없었다.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종종 걸음으로 속도를 내보기도 했다. 하늘에 달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별들이 쏟아졌다. 먼지 나는 길도, 굴뚝 연기도 없는 청아한 북쪽 대기 속에서 별들은 세상 어느 곳보다 밝게 빛났다. 머리 위에서 찬란히 빛나는 반점이 실제 은하수인지 아니면 별빛을 받은 구름인지 분간하려면 그 모양을 유심히 관찰해야 했다. 모양이 변한다면 구름일 테니까. 구름은 아니었다. 은하수의 별들이었다.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고 가깝게 느껴져 마치 무한계로 거대한 관문이 열린 것만 같았다. (p.59)

 

자연의 아름다움이 인간의 감정과 감각에 이토록 깊이 호소하는 것은 복잡하고 심오한 수수께끼다. 자연미는 외형적 속성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느끼는 영혼 안에, 생각하는 정신 안에, 회상하는 기억 안에 자연의 아름다움은 존재한다. 영혼, 정신, 기억에 황홀경과 들뜬 느낌이 떠오르도록 하는 것은 아름다움이다. 사랑의 경주를 유지, 전파, 고양하는 것도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이 다양한 까닭은 거기에 있다. (p.145)

 

걷기에 대한 관심과 즐거움을 강화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잠깐 걷는 것만으로도 눈에 마주치는 수천 가지 자연 현상을 기술할 수 있는 자질이다. 그밖엔 없다. 마음속에서 자질구레한 근심거리를 재빨리 내쫓을 수 있는 것으로 몰입 같은 자질만한 것은 없다. 몰입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법이다. (p.167)

 

책은 19세기와 20세기를 걸쳐 살았던 인문학자, 아널드 홀테인이 걷기를 통해 얻게 된 자연에 대한 성찰을 담은 놓은 책으로 인도에서부터 캐나다, 영국 그리고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과 우주 그리고 인간의 생사를 이야기 한다. 우리가 자연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자연이 왜 감탄스러운지, 인간은 왜 겸허해야 하는지 등을 일깨워준다. 그 당시 사람들은 걷기 그 자체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걷기는 모두에게 일상이며, 노동의 한 부분에 불과했다. 여가를 위한 행위가 아니고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시골 산책을 즐기며 그 묘미를 제대로 알아차렸다. 그는 두 발로 시골 마을을 가로지르며 사색을 일삼고, 자연 속에서 걷기가 주는 묘미를 곱씹었다. 그는 걷기를 통해 인생에 대한 통찰을 얻고 자연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여행이나 운동이 목적이 아닌 ‘걷기를 위한 걷기’를 발견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저자는 걷기를 재발견한 인물이다.

자연은 언제나 아름답다. 왜냐하면 자연은 인류의 원시적 거주지로써 원시적 유대의 기억을 품어 왔기 때문이다. 특정한 사물이나 색깔을 볼 때보다 특정한 풍경을 볼 때 감정이 더 동하는 까닭은 그 풍경이 조상이나 개인의 기억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유대감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은 감탄, 존경,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자연에게 보는 눈과 이해하는 마음만 선사하면 자연은 자연이 보유한 선물을 아낌없이 베푼다. 그래서 저자는 낮이고 밤이고 할 것 없이 걷는다. 날씨가 덥거나 추워도 상관없다. 그저 눈 앞으로 펼쳐지는 자연과 마주하며 눈에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냄새나는 것, 모두를 그러모은다. 저자는 걷는 동안 그 시간들을 마음껏 즐긴다. 삶을 즐기지 않는다면 걷기가 도대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저자에겐 걷기 그 자체가 삶의 즐거움이고 휴식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걷고 싶어진다. 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는 온갖 생각들은 비워내고 자연에만 집중하면서 말이다. 왜 저자가 걷기를 예찬하는지 알겠다. 걷기는 그 자체 하나만으로 무한한 힘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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