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뭐라도 되고 있었다
김지희 지음 / 자화상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두가 나에게 ‘아직도’라 말하며 고개를 휘젓더라도 일단은 ‘아직’이라 외쳐 보기로 한다. 나조차, ‘아직’을 내려놓으면 정말 이대로 끝나버리는 거니까. 더 이상의 노력이란 없을 것 같은,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아직’을 외쳐야 하는 사람은, 나여야 한다. (p.69)

 

 

나 자신을 향해 ‘그래서?’를 묻다보면, 보다 더 견고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럼 나도 비로소, 어른다운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는건가? 그나저나, 명백히 언제부터가 진짜 어른의 시작인 걸까? 어른의 시작 지점이 정확히 어딘지는 몰라도, 내가 그 지점을 넘어선 지 한참 지났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분명한 것은, 여전히 난 연약한 영혼이라는 사실이다. (p.96)

 

 

책은 더는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확신하기 어려울 때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는 말들을 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말하기 어려울 때, 차분히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말, 온갖 문제들로 머릿속이 복잡할 때 정말 중요한 것만을 남길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해?”라는 질문, 아무리 애를 써도 “여전히 그 자리인 것만 같을 때” 힘을 실어주는 “아직”이라는 말에 대한 저자만의 해석들은 삶의 성장통을 진하게 겪고 있는 이들에게 적잖은 위로가 되어준다. “아직”의 의미를 여전히 남아 있는 가능성으로, 남들과 비교하는 못난 마음은 “조금” 모자라서 좋았다는 해석으로, 일상에 대한 권태를 “새삼” 다시 들여다보는 자세로. 시시각각 삶의 면면을 달리 보는 저자의 시선은 세상살이에 지쳐 내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잠시 잊고 있던 우리들에게 그만의 위로로 따뜻함을 전해준다. 그냥 얼핏보면 아무것도 아닌 단어지만 나 혹은 다른 누군가가 건넨 단어 안에서 힘을 얻는가 하면, 예상치 못한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도 한다. 지금 내가 이 책과 마주하면서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글은 짧아서 쉽게 읽히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성장통이기에 글에 담긴 생각은 깊다. 그래서 종종 한 페이지를 두고 금방 넘어가지 못하고 한 번 더 읽어보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저자가 전직 아나운서여서 그런지 같은 의미라도 생각을 표현해내는 단어의 폭이 상당히 넓다. 그래서 그런지 좀 더 새롭게 느껴지는 듯 하다. 같은 단어지만 다른 느낌? 각자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일들도 다르고 저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구나” 하고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저자가 겪은 일들이 나와 비슷해 공감하기도 하고 때론 위로 받기도 하는 등 내가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게 참 색다른 경험인 것 같다. 같은 단어를 두고서도 저자와 내가 바라보는 시선은 남다르다. 그래서 내가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생각해보는 등 나와 다른 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또 그런 만큼 생각도 깊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변신 (미니북)
프란츠 카프카 지음, 김민준 옮김 / 자화상 / 201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날 아침, 잠을 자던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화들짝 놀라 깨어났을 때,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이 거대한 벌레의 모습으로 변신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장갑차 같은 딱딱한 등을 대고 누워 있었으며, 머리를 약간 들자 불룩하니 활처럼 휘고 줄이 간 갈색 배가 보였다. 이불은 튀어 나온 배 위에서 더 이상 그를 덮어주지 못하고 미끄러져 내려올 듯했다. 다른 부분의 크기와 비교했을 때 형편없이 빈약한, 수많은 다리들이 그의 눈앞에서 어찌할 줄 모르고 옴싹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는 생각했다. 꿈은 아니었다. (p.9)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의 목표는 오로지 모든 희망을 앗아가 버린 사업의 실패 때문에 불행을 겪는 가족들을 가능한 빨리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힘을 다해 일하기 시작했고 하룻밤 사이에 수습사원에서 큰 외판원이 되었다. 그가 일한 만큼 즉시 중계료가 들어왔으며 그 돈을 받고 기쁨에 차서 행복해하는 가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때가 정말 좋은 시절이었는데, 그 이후 그레고르가 가족 전체의 생활비를 감당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벌어서 가져다줬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처럼 가족들이 기뻐하는 일은 없었다. 가족들도 그렇고 그레고르 자신도 이러한 모습에 익숙해졌다. 물론 가족들은 돈을 받을 때에는 그레고르에게 고마움을 느꼈으며 그도 가족들을 위해 그가 번 돈을 기꺼이 내놓았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에게 그 이상의 특별한 애정을 주지는 않았다. 단지 여동생만이 그레고르를 친근하게 대해 주었다. 하지만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신하면서 이 모든 것은 사라졌다. 처음엔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좀 더 자고 일어나서 이 모든 말도 안되는 상황을 잊으면 괜찮아질꺼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손과 팔이 있어야 할 자리에 쉴 새 없이 제각각으로 움직이고 있는, 어떻게 해 볼 수도 없는 수많은 다리들이 허둥거리고 있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
여동생이 그렇게 말하면서 주먹으로 식탁을 쳤다.
“더 이상은 안 되겠어요. 혹시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다면 제가 간파하고 있어요. 저는 이 괴물을 오빠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요. 그렇기에 오로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이것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거예요. 우리는 이 괴물을 돌보고 참아 오면서 인간으로서 가능한 모든 일을 다 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어느 누구도 조금이라도 우리를 비난할 수 없어요.” (p.101)

 

그렇게 되기 전까지 그의 삶은 늘 치열했다. 부모님이 진 빚을 다 갚기 위해, 가족들 때문에 참고 일하며 늘 시간에 쫒겨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몸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5년 동안 일하면서 한 번도 아팠던 적이 없던 그를, 가족들을 위해 한없이 자신을 희생하며 애써온 그를 부모라고 하는 작자들은 점차 그를 무시하고 갈시하며 무자비하게 방치하여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거북하게 여기긴 했지만 그래도 그를 이해해주고 식사를 챙겨주던 여동생 그레테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명 그레고르도 가족의 구성원이었으나 가족 모두 그의 존재 자체를 참아내지 못하고 결국은 적처럼 취급하고 배척하며 결국에는 그의 존재를 부정해버렸다. 식솔들을 책임지던 그가 하루 아침에 그렇게 돼버렸으니 그 동안 그레고르가 벌어온 돈으로 편안한 생활을 이어가던 가족들은 생계를 위해 일을 하러 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일을 하며 힘들고 지쳤을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그를 방치해두었어야만 했나 싶다. 가족이 아니었다면 벌써 진즉에 사표를 내었을 만큼 고단하고 힘든 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가족들을 위해 애써 일하던 그를 생각하면 그렇게 홀로 쓸쓸히 떠나가 버린 그의 삶이 너무나 애처롭고 또 허무하다.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태어나 프라하에서 직장을 다니며 생전에 작가로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창작을 이어 나갔고 그가 죽고 난 뒤 유언을 통해 그의 친구이자 유산 관리 집행인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작품을 미공개로 하고 파기시켜 줄 것을 부탁하였으나, 친구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유언과는 다르게 그가 보유하고 있던 카프카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발표하였다.
카프카의 장편 소설은 변신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완성이다. 변신은 훗날 카뮈, 사르트르와 함께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일컬어진다. 평론가중 몇몇은 그가 살았던 시대가 그의 작품 세계를 깊이 탐구할 수 없었던 것에 깊은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인간의 존재, 의미, 가치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이 담겨 있다. 특히나 소설 변신의 문장들은 오늘날 현대인이 겪는 일상의 고단함과 존재의 의미에 대한 의문과 깊이 마주하고 있다. 벌레를 통해 형상화한 인간 사회의 소외와 고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문제를 제기한다. 접해볼 기회가 없어 이제서야 읽어보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자신이 거대한 벌레로 변신해있다니 초반부터 내용이 상당히 파격적이다. 그 시대에 이런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그의 작품은 변신을 제외하고 모두 미완성이다. 미완성임에도 어떻게 책으로 출간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는데 책을 읽으니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짧지만 그 나름대로 흥미로웠다.

작은 미니북으로 새롭게 출간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로 웬만한 크기의 가방에도 쏙 들어갈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가벼워서 외출시 들고 다니기에도 불편함이 없는 이 책. 단점이 있다면 책이 작아진 만큼 글씨가 줄어들었다는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미니북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 고대 가요.향가.고려 가요 편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하태준 지음 / 다산에듀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황조가

훨훨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다운데
외로워라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까.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고전 운문 총집합!
시험에 나오는 필수 고전, 한 권으로 끝내자!

이 책은 ‘고대 가요, 향가, 고려 가요 편’, ‘한시, 가사 편’, ‘시조, 민요, 두시언해 편’의 총 세 권으로 구성된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세트 중에 한 권으로 ‘그 때 그 사람들은 왜, 어떻게 이런 글을 남기게 되었을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책에는 중·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거의 모든 고전 운문이 담겨 있다. 고조선 시대부터 통일신라 이전까지 지어진 시 문학 고대 가요, 신라 시대부터 고려 초까지 창작된 시 문학 향가, 고려 시대 민중들 사이에서 널리 불린 고려 가요까지 모든 작품을 꼼꼼히 읽고 해석하여 우리 조상들의 아름다운 문장을 400장이 넘는 그림으로 세밀하게 표현하고 25년간 국어를 가르쳐 온 저자의 노하우까지 더해져 그 내용이 눈에,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 작품에 얽힌 이야기와 그림 그리고 핵심 정리까지 더해져 재미있게 읽으면서 내신부터 모의고사, 수능까지 완벽대비가 가능하다. 시 한 구절에 그림 한 장으로 외우지 않아도 저절로 암기가 되어 시험에 나오는 필수 고전을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다. 학창시절 이후 한 번도 볼 일이 없었던 고대 가요, 향가, 고려 가요 이렇게 다시 보니 그 때가 아련하게 떠올라 새롭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무조건 외워서 머리에 새겨넣기 바빴던 그 시절 이런 책이 있었더라면 좀 더 수월하게 공부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추지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른 사람을 찾아보시죠! ······대체 왜 접니까?”
“정의의 사도가 되는 데 이유가 있을까.”
괴인의 목소리가 숲속으로 멀어져 간다.
“직감이야, 직감. 이 몸에게는 딱 왔다.
자네라면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p.63)

대학원을 졸업하고 모 화학공업기업의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주인공 고와다. 그의 일상은 동료들로 하여금 ‘논바닥의 우렁이와 막상막하’라 불릴 만큼 고요하고 태평했다. 연구소 부지 안 기숙사에서 살며 평일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연구소에서 일하고, 주말에도 기숙사에서 공부하거나 드러누워 지냈다. 온다 선배가 말을 걸지 않는 한 외출하지도 않는다. 그저 빈둥빈둥거리다 기숙사 방에서 캔 맥주를 마시며 밤늦게까지 꾸벅꾸벅 졸면서 ‘아내가 생기면 하고 싶은 일 목록’을 열심히 고치는게 그의 커다란 즐거움이자 멋지게 휴일을 보내는 방법이었다. 폼포코 가면이 그의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렇지, 이 몸은 폼포코 가면이다,”
폼포코 가면은 자신을 타일렀다.
“모두가 이 몸을 원하고 있다.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한 일!
게으름 피울 새는 없다!” (p.122)

 

그와 반대로 교토 거리의 인기인 폼포코 가면은 부지런하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 괴상해 보이는 너구리 가면을 쓰고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틈틈히 착한 일을 한다. 본인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 불평은 하지 않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가끔 몸의 내면에 사는 게으름뱅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에게도 게으름은 있다. 남국의 바다라도 가서 상쾌한 수상가옥 베란다에 누워 망고 프라푸치노라도 마시면서 빈둥거리거나 정처 없이 국내선을 타고 산속 무인역에 내려 매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어릴 적처럼 여름 축제에 가서 긴 여름방학을 떠올리며 가슴이 부푸는 경험을 하고 싶다. 심심해서 진력이 날 때까지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 

 

 

 

 

“있잖아, ‘굴러가는 돌맹이에 이끼가 끼지 않는다.’라는 말 알아?”
“압니다.”
“다시 말해 부지런해지자는 거야. 알겠지?”
“······좀 더 이끼가 끼어 부드러워지겠습니다.”
“야, 너는 지장보살이 아니잖아.”
온다 선배는 한숨을 내쉬면 말을 이었다.
“잘 들어. 우리에게는 모험이 필요해. 막연히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건 안 돼. 인생이란 그저 성실하게 일한다고 보상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이 말씀이야.”
“그렇지 않아요. 성실한 게 제일입니다.”
고와다는 투덜거렸다. (P.57)

 

“조금은 긴장감을 가져, 이 게으른 인간아.”
“우리는 인간이기에 앞서 게으름뱅이입니다.”
“게으름 피울 여유는 없어.”
“인간은 자신이 진실로 추구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법이죠” 라고 말하면서 고와다는 절벽 끝에서 겨우 버티는 큰바위를 힘차게 미는 듯한 감촉을 느꼈다. (p.293)

 

한여름의 토요일 아침, 교토 기온 축제를 하루 앞둔 전야제의 날, 고와다는 폼포코 가면으로부터 자신의 뒤를 이어 정의의 사도가 되라는 권유를 받고 비장하게 대답한다. “게으름 피우느라 바쁩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일이 바빠서도 아니고 고작 게으름을 피우느라 바빠서 안된다니 너무 황당한 대답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런 사람이 주인공이라고??!! 무슨 이런 독보적인 캐릭터가 있단 말인가! 그는 그저 빈둥거리며 주말을 보내고 싶었을 뿐인데, 폼포코 가면과 엮이게 되면서 원치 않게 그의 주변에 모험의 기운이 스물스물 다가오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실랑이를 벌이는 두 사람, 이쯤되면 폼포코 가면의 정체 보다도 고와다가 과연 그의 제안을 받아줄지 아닐지가 더 궁금해진다. 고와다는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며 분명히 거절의 의사를 표했는데도 폼포코 가면은 번번히 그를 찾아와 뒤를 이으라고 다그치고 그때마다 고와다는 고집스럽게 거절한다. 고와다에게 모험이라니?! 기숙사에서 빈둥빈둥 뒹구는 그에게 있어서는 실로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뒤를 이어 줄 때까지 몇 번이고 찾아오겠다는 폼포코 가면. 그리고 그런 그를 피해 열심히 도망치는 고와다. 도망치면 쫓아오고 또 도망치면 쫒아오고 이 둘은 대체 몇 번이나 똑같은 실랑이를 되풀이 하는건지. 끈질기게 찾아오는 폼포코 가면에게서 고와다는 빈둥거리는 휴일을 굳건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 그러던 중 축제 당일 갑자기 폼포코를 잡으려는 이들이 등장하고 그는 피하는 대신 정면으로 맞서 얽히고 설키며 그 실체에 다가서고 그 와중에도 고와다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폼포코 가면을 피해 요리조리 달아나며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이 둘의 케미 정말 흥미진진함!

<야행>,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모리미 도미히코 작가님의 최신작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

지금까지 이렇게 게으른 주인공은 없었다. 늘 천하태평! 무슨 일에도 동하지 않고 지장보살처럼 견고하고 너구리처럼 게으른 고와다와 누구에게나 친절한 괴인 폼포코 가면, 세계에서 가장 게으른 탐정 우라모토 그리고 주말이면 그의 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허당 조수 다마가와, 늘 티격태격 싸우지만 사이 좋은 온다 선배와 모모키 등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 왠지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애착이 가고 그들을 응원하게 만든다. 특히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바쁜 세상에서 곤경에 빠진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폼포코 가면,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을 희생한다는게 요즘 세상에서 가당키나 한가. 우리 사회에도 이 같은 인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분 좋은 상상을 펼쳐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과 마음 사이
이서원 지음 / 샘터사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자라면서 내 말이 상대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힘을 가하는지 배우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말의 힘과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스스로 남에게 상처를 받은 후에야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처를 받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학교와 인생에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학교는 무엇을 배운 후에 시험을 치르는데, 인생은 시험을 치른 후에 무엇을 배웁니다. 그런데 시험의 대가가 가끔 너무 아픕니다. 우리 삶에 지식학교만큼 필요한 것이 관계학교입니다. 관계학교의 필수과목은 남의 가슴 아프게 하는 말을 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마음 상하지 않게 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지요. (p.27)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난 마음의 길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관심과 간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관심은 그 사람의 마음 길을 살피는 것입니다. 간섭은 내가 먼저 마음 길을 낸 다음 그리로 가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관심을 원하는 존재입니다. 청소년기가 지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해서는 배우자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관심을 넘어 배우자가 사사건건 간섭한다면 관계의 결말은 볼 보듯 뻔합니다. 이혼으로 가는 열차를 타게 됩니다. 친구도 관심을 가져주는 친구와는 우정이 평생 가지만, 간섭하는 친구와는 짧은 시간에 끝납니다. 사람은 그렇게 모순 덩어리입니다. 관심받기를 원하는 동시에 간섭을 하기도 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관심과 간섭은 하나의 직선 위에 있는 두 점이기 때문입니다. 간섭은 관심을 전제로 일어납니다. 간섭은 과한 관심이라 보면 됩니다. 그리고 간섭은 술과 비슷한 속성을 가졌습니다. 처음이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습관이 됩니다. (p.109)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악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당황한 마음에 복수를 시도하다 되레 더 큰 일을 당하기도 하고, 어설프게 선으로 갚으려다 사람 꼴만 우스워지기도 합니다. 쉽지 않겠지만 우선 악하게 행동한 사람에게 분명히 알리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용서나 선행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악은 선으로 갚는 것이 아닙니다. 악은 정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것이 먼저입니다. (p.202)

 

 

 

닿으려 했지만 닿지 못했던 우리를 위한 관계수업

책은 총3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1부에서는 닿지 못했던 말에 관하여, 2부에서는 담지 못했던 마음에 관하여, 3부에서는 다가가지 못했던 사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 단략마다 주제에 맞게 여러 상황들이 펼쳐지는데 읽다보면 느끼는 바가 크다. 책속에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이미 내가 예전에 겪었던 일들도 있고 처음 접하는 상황들도 있지만 하나 같이 다 말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 몇몇의 이야기들 같은 경우는 누가 봐도 정말 낯뜨거운 일인데 그 당시에는 이성보다 마음이 앞서거나 아니면 습관처럼 길들어져서 그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후자의 경우는 모르고 지나치게 되고 전자인 경우는 뒤늦게 후회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는 까닭에 고스란히 마음에 상처로 남게 된다.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스스로에게 눈길이 향한다. 오늘 하루종일 내가 했던 말들이 상대방에게 또는 나 자신에게 욱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말에 그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상대가 건낸 진심을 사소히 여기며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는지 내 행동에 상대가 힘들어 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한 일들과 말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말에는 신기한 힘이 있다. 단 한마디로 상대를 울리기도 하고 웃게 만들기도 한다.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
“한 마디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미 수백 년이 지났지만 옛 조상들의 말은 지금도 여전히 고스란히 다음 세대에게 전해진다. 그 만큼 말이 지니고 있는 무게가 상당하다. 마음을 담은 말은 상대의 진심에 닿아 온기를 남기지만 반대로 가시 돋친 말은 상대의 마음에도 내 마음에도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잘못된 말로 한순간에 철천지 원수가 되어버리는 걸 보면 오래 알고 지냈다고 해서 모든 게 다 이해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만큼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을 조심해야한다는 뜻이다. 책을 읽으면서 말과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새삼 깨닫는다.
말 한마디에 담긴 의미는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느껴진다. 내 마음 가벼워지고자 뱉은 말이 상대를 더 암울하게 만들기도 하고 적의 없는 순수한 말이 상대의 감정 상태에 따라 아니꼽게 들리기도 하고 무수히 많은 상황들과 마주 한다. 세상을 살면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을 볼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다. 정말 나는 아무 의미 없이 내뱉은 말이지만 상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내 감정에만 충실하다보면 상대가 상처받고 또 상대의 감정에만 귀를 기울이다보면 본인 스스로 상처를 받는다. 적절한 긴장감과 배려 그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쉽지는 않겠지만 내 감정만을 내세우지 않고 배려하며 가까운 사이일수록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의든 타의든 원하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주변 이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모든 관계에서 잘 할 수는 없지만 말 한마디를 내뱉기 전에 미리 생각해본다던지 어느 정도 노력은 할 수 있지 않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고통은 관계에서 온다. 특히 우리는 처음 본 사람보다도 오히려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상처를 더 많이 받는 것 같다. 오래 알고 지냈으니 내 진심을 상대가 알아줄거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상대를 소홀히 대하게 되고 그런 마음을 모르는 상대는 상대대로 자신을 쉽게 여기는 것 같아서 서운한 마음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가시돋친 말이 튀어 나온다. 결국 가까웠던 관계는 틀어지고 왜곡되며 파국을 맞게된다.

어렸을 때는 관계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어른이 되고나서부터는 관계가 조금씩 힘들어지고 버거워지기 시작한다. 바쁜 일상속에서 속을 터 놓을 수 있는 친구라도 만나면 좀 나아질 것 같은데 서로 만나기 어렵다보니 자연스레 관계 속에서 받은 상처나 아픔들을 쉬이 가슴속으로 삭히게 된다. 애써 밝은 척, 괜찮은 척 해오다보면 그게 쌓이고 싸여 결국에 마음에 화로 가득차게 되고 어느 순간에 한 번씩 폭발을 하게 되는데 괜히 애꿎은 사람만 혼이 난다. 늘 분노에 차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어떤 날은 흐리고 비가 오고 또 어느 날은 햇빛이 쨍쨍한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날씨와 마찬가지로 변화무쌍하다.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뿐이다. 그렇기에 상처뿐인 말로 상대를 아프게 하는 것도 기분 좋은 말로 상대를 즐겁게 만드는 것도 모두 내가 하기 나름이다. 내 몫에 달려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