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늙기
송차선 지음 / 샘터사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세상에 모든 것을 다 갖추고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것은 물질적인 것 말고도 내적인 문제도 그렇습니다. 성격이나 기질이 완전하다는 것 자체도 그 기준이 모호합니다. 그래서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에서 서로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지요. 그렇다면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나도 잘못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도 없고, 모든 것을 다 알 수도 없습니다. 내가 그렇다면 이웃도 나와 큰 차이가 없지요.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럽고 마음에 들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일 때 이웃의 부족함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자신과 화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고 또 중요합니다. (p.40)

 

 

지혜로운 판단도 나이 든 노인들의 통합능력에 의존합니다.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지혜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많은 정보들을 어떻게 통합하느가 하는 것이 지혜로움을 결정합니다. ‘노인들의 겸손이 전제된 경험의 통합’-이것이 노인들의 품위를 보장합니다. 이렇게 품위를 갖춘 노인은 아름다울 수 밖에 없습니다. (p.115)

 

 

세상이 혼탁할수록 어른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 어른이 될 수 없을까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비난했던 노인의 태도와 반대로만 살아가도 우리는 얼마든지 존경받는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노화되었으나 시대가 요구하는 어른은 아니더라도 내 주변의 이웃들에게만이라도 성숙한 어른으로서의 너그러움과 따뜻함, 관용과 인내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일반적인 기대감을 일순간 다 무너트릴 수 있는 악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욕심입니다. 누구나 욕심으로 가득 차 있으면 너그러움도, 따뜻함도, 관용도, 인내도 모두 사라집니다. (p.151)

 

 

책은 저자가 요셉대학에서 한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바야흐로 고령화시대가 열리면서 늙어감이라는 불가피한 자연적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담론을 시작할 때 통상적으로 80대에 자연사한다고 가정했을 때 아직은 죽을 때까지 갈 길이 남아 있는 저자가 곱게 늙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자신을 향한 채찍의 의미로 서술한 내용이다. 그래서인지 독자에게 어떤 지침을 주기보다는 그렇게 살고 싶다는 자기고백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곱게 늙기 위한 방법으로 개방, 경청, 양보, 겸손, 소유, 관심, 청결과 밝음, 미소와 정신 그리고 영혼 등 총 여덞가지 주제를 제시하는데 공교롭게도 각 단어의 앞글자만 모아 놓으면 올림픽이라는 단어가 완성된다.

나이 듦을 두려워하지 않고 유연하게 받아 들이기!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배워야 할 것들 투성이다. 저자의 말처럼 아름답고 곱고 품위있게 늙어갈 수 있을까. 그저 욕심부리지 않고 겸손하게 늙어갔으면 좋겠는데 책을 읽다보면 나도 저자가 하는 말처럼 곱게 늙어 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둥둥 떠다닌다. 이제 그 방법을 알았으니 저자가 알려준 대로 실천하다보면 곱게 늙기가 가능하겠지. 갈수록 고령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나이만 많을 뿐이지 볼썽사납게 마구잡이식으로 행동하는 아이같은 어른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리 기세등등 할 수 있는 걸까. 누가 봐도 누가 잘못했는지 훤히 들여다 보이는데 정작 당사자는 태연하다. 본인만 모르는 것 같다. 그런 모습에 나 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모두가 눈살을 찌뿌리게 된다. 그래서일까, 나는 절대 나이가 들어서도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의연하게 상황을 대처하는 성숙한 어른이고 싶지 아이처럼 막무가네로 행동하는 미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아마 모두가 그러지 않을까.

우리는 늘 젊다고 생각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없다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주름도 늘고 얼굴의 생김새도 변하면서 누구나 예외없이 늙어간다. 나 역시 마찬가지 지금 이 순간도 눈에 띄지 않을 뿐이지 소리없이 늙어가고 있다. 세상이 좋아져서 잘 관리하면 된다고는 하지만 그 시기가 잠시 늦춰질 뿐 늙음은 아무도 피해갈 수 없다. 사실 세월이 가면 늙는 것이야 당연한 일인데 아직은 내가 어리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아니면 그 생각에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서 그런지 단번에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좀 어려웠다. 아직 너무나 먼 미래의 일이지 않은가. 내가 이 책을 읽기에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이 책을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알아둔다고 해서 나쁜 일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깨닫는 바가 컸다. 책을 읽으면서 평소라면 전혀 몰랐을 노인분들의 생각을 알게 되고 그로인해 그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의 말처럼 나이가 들어서 어느 날 갑자기 곱게 늙을 수는 없다. 아직은 젊었을 때 곱게 늙을 준비를 하고 그 과정을 거쳐야 곱게 늙어 있을 것이다. 책에 적힌 글들은 어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글은 읽고 또 읽어도 과하지 않다. 오히려 자주 읽으면서 우리의 마음 한켠에 담아 두어야 하는 말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조차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변종모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현재의 나를 잠시 두고 새로운 곳에서 만나게 되는 나를 잘 다스리는 일. 그런 나를 데리고 와서 여행을 추억하며 살아야 할 일. 좋은 것들을 좋은 마음으로 만났으니 좋아지는 삶. 이것을 믿는다. 당신이 외롭거나 힘이 들 때, 낯선 곳에서도 경쾌하게 걷던 당신을 떠올려 힘이 될 수 있는 삶. 그것이 여행의 힘. 떠난 자와 떠나지 않은 자가 다른 이유, 달라야 하는 이유가 그 힘에 있다. (p.55)

여행이란 내가 걷는 일이지만 때로는 움직이지 않고서도 만나는 여행이 있다. 걷다가 멈추어 만나는 일, 그 멈춤의 시간에 나를 흔들어놓던 사람들. 단언하건대 어떤 풍경도 나를 휘청거리게 한적 없으나, 단 한 번의 눈빛에 발이 묶인 적은 잦았으니 아무래도 나의 여행이란 것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사람을 만나는 일. 만나다는 것은 마주한다는 것이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가슴과 가슴을 마주하는 일. 손잡지 않아도 애써 끌어안으려 하지 않아도, 그것은 두껍고 아름다운 책 한 권을 만나는 일이다. 그 순간을 신중하게 읽어내는 일이 마주 앉은 사람의 의무다. 잠시라고 하더라도 서로의 일생을 나누는 일이 되기도 한다. 자주 사람들 사이를 비켜 가려 했지만 그들은 자주 나를 멈추게 했다. 그렇게 멈추어 마주하면 그날들의 시간. 그들과 나의 시간들 그 사이를 기억한다. (p.87)

모든 사람의 희망이 모여 도시의 높이가 되어가는 곳. 세상에 없는 것이 없는 곳이란, 세상에 없어야 할 사람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모여 세상에 없는 것이 없도록 만들어가고 있다. 날카롭고 차갑기만 한 도시가 아닌, 튼튼한 갈비뼈 속에 숨 쉬는 뜨거운 심장처럼 오늘도 각자의 자유와 꿈을 향해 쉬지 않고 뛰고 있다. (p.132)

먼 길을 달려 각자가 안고 온 마음을 풀어놓고, 기울어지거나 허물어져 가는 마음을 세우고 돌아서는 일. 어쩌면 살아가면서 무수히 반복하고 끊임없이 다짐하는 일로 조금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여행이나 생활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을 안다. 떠나도 떠나지 않아도 우리는 매일 많은 것들과 만나며 결국 자신을 보는 것이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다른 세상 안으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잠시 내가 내 속으로 덜컹거리며 들어가는 것이다. (p.267)

 

저자의 발자취를 따라 함께 떠나는 즐거운 여행길. 원래 과감한 사람도 아니고 단호한 사람도 아니라서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거나 권유하는 것으로 부담주는 일은 잘 하지 않는 저자지만 그래도 가끔은 부담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곳으로 가보라”는 말로 은근히 부담을 주며 자신이 좋았던 모든 것을 보고 느끼게 하고 싶다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다보면 그런 마음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마치 “이래도? 정말 안 가볼꺼야”? 라며 독자들에게 속삭이는 듯 하다. 

눈 앞으로 펼지는 멋진 풍경들, 저자가 담아내는 사진들은 절로 감탄을 자아낼 만큼 아름답다. 누구나 알 법한 대도시로, 넓디 넓은 메마른 사막으로 저자를 따라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여행지에 적절한 팁을 얻기도 하고 그가 여행을 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함께 공유하며 읽어가다 보면 나도 어느샌가 저자와 함께 그곳에 있는 것만 같고 무작정 그곳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저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직접 내 두 눈으로 그곳의 풍경들을 눈에 담고 싶다.


나에게 여행은 삶에 지친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지금은 혼자의 몸이 아니라 유유히 홀로 떠날 수는 없지만 한 번씩 가족들과 다녀오는 여행은 피곤하지만 그 소소한 즐거움 때문에 어김없이 또 짐을 싸고는 한다. 똑같은 여행지를 가도 매번 색다르게 다가오는 까닭에 한 번이고 두 번이고 반복해서 떠나게 되는 것 같다. 긴장과 설레임의 공존, 그게 바로 여행이 가진 커다란 매력이 아닐까. 저마다 의미는 다르겠지만 이런 이유로 여행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 같다. 계속 머무르기만 해서는 모를 것이다. 낯선 곳에서 방황을 하더라도 지금 있는 이곳에서 잠시 벗어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면 그게 어디라도 행복하지 않을까. 나를 억압하고 있던 것에서 벗어나 비로소 온전히 나와 마주하는 시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무그늘
임주형 지음 / 좋은땅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잘하고 있다

갈수록 짊어진 짐들이 무거워져 간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다
너무 힘들고 지친다
 
그러나
 
잘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해도
잘 버텨내고 이겨냈기에
 
오히려 그럴 때마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어야 한다
 
“너무 잘하고 있다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p.128)

*
*
*


 
유연한 어른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단단해져 가는 것이 아니라
유연해져 가는 것이 아닐까?

날이 갈수록 약해지고
더 많은 상처를 받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럴 때마다

잘 참아내고 잘 견뎌내는 것
그것이 유연한 어른이 아닐까? (p.182)

 


“종이는 나무로 만들어지며, 종이가 여러 장 모여 책이 됩니다. 이 책이 다시 나무가 되어, 지친 삶을 잠시나마 쉬어 갈 수 있게 그늘을 내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하는 저자의 마음을 담아 책 곳곳에는 한 낮 무더위를 잠시 피해갈 수 있는 그늘로 넘쳐난다. 첫장부터 마지막까지 어렵지 않고 쉽게 쉽게 읽히는 글귀들은 지친 마음에 적잖은 위로의 말을 건낸다. 그야말로 길게 드리워진 나무그늘 같다. 쉴 수 있을 만큼 쉬었다 가라고 저자가 마련해놓은 그늘에서 마음껏 뒹굴다 보면 오늘 하루 힘들었던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 같다. 그래서 한 번에 다 읽어버리기엔 너무나 아쉽다. 조금씩 아껴서 읽어야 할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냥, 있는 그대로의 내가 너무 좋아 - 오늘도 수고했어, 온전히 나만을 위한 궁디팡팡
냥송이 지음 / 앵글북스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치캔을 따서 그대 눈동자에 건배!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요.
삭막한 하루에 마법을 걸어주는 ‘’고양이 테라피

 

 

 

 

인생이란 그런 거야.
적당히 힘을 빼고 걷다 보면
생각지 못한 곳에서
행복을 만나게 되는······.

 

 

 

인생을 즐기는 방법은
순간에 주어진 경험들을
나만의 속도로
완벽하게 즐기는 거야.

 

 

 

그거 알아? 우리는 사실
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미리 걱정하곤 해.
오늘 넌 또 얼마나 많은 걱정을 했을까?

 

 

 

 

 

 

 

과연 나다운 게 뭘까? 지금 나에게 소중한 건? 나름 매일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줄어들지 않는 일들, 하루 종일 바삐 움직이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우리의 머릿속은 잠깐의 휴식보다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내일 일을 걱정하느라 여유 따위는 찾아 볼 틈이 없다. 그럴 때 잠시 이 책을 펼쳐놓고 사랑스러운 여섯마리 고양이가 건내는 말에 귀를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 책은 여섯 마리 고양이로 구성된 참치원정대가 전하는 위로의 글로 가득하다. 지친 하루를 위로하는 깨알 귀여움과 함께 나답게, 최선을 다해 대충, 즐겁게 사는 법을 전한다.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 온전히 나만을 위한 궁디팡팡, 토닥토닥!

하루 하루 쌓여만 가는 근심과 걱정,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눈 앞에 일어난 일보다도 일어나지 않은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굳이 지금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의식이 그리로 향하고 있다. 매번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데도 어쩜 이리 고쳐지지가 않는건지, 제발 걱정을 걱정하지 말자!

여섯 마리 고양이들의 재롱을 보다보면 너무나 귀여운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지고 그 자체만으로도 오늘 지친 하루를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 거기에 더해진 글귀들은 하루종일 긴장하느라 날이 선 마음을 살포시 누그러뜨린다. 너무 참지 않아도 된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남이 만들어 놓은 틀에 굳이 나를 끼워 맞추지 않아도 된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니까. 나는 내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존재니까. 내 인생에 치얼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 자화상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태어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지요.
새도 알을 깨고 나오려면
온 힘을 다해 애써야 한다는 걸
당신도 잘 알잖아요.

돌이켜 생각해보고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대체 그 길이 그렇게도 어려웠던가.
그저 어렵기만 했던가.

그러나 역시 아름답지 않았는가.

 

 

지금까지의 이야기해온 경험 중에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고 깊이 기억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최초의 균열이었고, 내 유년 시절의 근간으르 이루는 기둥에 가해진 최초의 톱질이었다. 그것은 모든 이가 각자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스스로 무너뜨려야 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감지하지 못한 이런 경험으로 우리들의 운명에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선이 그어지는 것이다. 그런 톱질이나 균열의 흔적은 다시 아물고 치유되기도 하지만, 우리 마음속 가장 비밀스러운 암실에서는 여전히 살아남아 계속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이다. (p.31)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위기를 경험한다. 특히 평범한 사람에게 이것은 인생의 분기점이 된다. 자기 삶의 욕구가 그의 주변 환경과 갈등을 일으키고, 앞으로 나갈 길을 추구한다는 것은 끝없는 투쟁이라는 교훈을 배우는 인생의 한 기점이 되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생애에 단 한 번 숙명적인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경험한다. 그들의 어린 시절은 허물어지고 그들이 사랑하는 모든 것이 그들을 떠나고 고독과 죽음이라는 차가움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한 경험은 평생에 단 한 번 가능한 것이다.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이 경험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채 과거에 집착하고 수많은 꿈 중에서 가장 잘못되고 잔인한 실낙원의 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p.77)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고 한다.” 나는 이글을 여러 번 읽은 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것은 데미안에게서 온 화답이었다. 그와 나를 빼놓고는 아무도 그 새에 대해서 알 리가 없었다. 그는 나의 그림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괴롭힌 것은 아프락사스라는 이름의 정체였다. 그것은 무엇일까? 나는 한 번도 그런 이름을 들은 적도 읽어 본 적도 없었다. (p.143)

 

 

누구에게나 ‘사명’은 있다 할 지라도 그럼에도 누구에게도 개인의 선택과 해석을 임의로 지배할 수 있는 ‘사명’은 없다는 깨달음이 날카로운 불꽃처럼 나를 불태웠다. 새로운 신을 원한다는 것은 잘못이었으며 이 세계에 무엇인가를 주려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거짓이었다! 깨달은 인간에게 부여된 임무는 단 한 가지 그것 말고는 아무런 의무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으르 찾고, 자신의 내면을 견고히 하며, 그 길이 어디를 향하든지 조심스럽게 자신의 길을 더듬어 나아가는 일. 그 이외의 다른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고, 이 생각이야 말로 내가 이번의 체험에서 얻은 열매였다. (p.203)

 

 

부모의 보호속에서 안락하게 살아가던 싱클레어에게는 두 세계가 얽혀 있었다. 한 세계는 아버지의 집으로 이 영역의 대부분은 싱클레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과 엄격함, 모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였다. 이 세계 속에는 부드러운 빛, 명확함과 깨끗함, 그리고 따뜻하고 다정한 예절들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다른 세계는 이미 집 한가운데에서 시작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냄새도 달랐고, 말투도 달랐으며, 기대와 요구 또한 달랐다. 이 두 번째 세계에는 하녀라든가 직공들이 속해 있었으며 유령 이야기와 추한 소문이 있었다. 그곳에는 섬뜩하고 요사스럽고 끔찍한 수수께끼 같은 일들이 넘쳤고, 도살장과 감옥, 주정뱅이들과 고함치는 여자들, 새끼 낳는 암소와 쓰러진 말들, 강도와 살인, 자살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선과 악, 이 두 세계는 경계가 가깝게 닿아 서로 공존하고 있었고 눈과 귀를 돌리면 어디에나 다른 세계가 있었다. 

어느 날 수업이 없던 오후, 싱클레어는 이웃의 두 친구와 집 근처를 배회하고 있던 중에 힘세고 난폭한 프란츠 크로머를 만나게 되고 그로인해 어두운 세계를 접하게 된다. 그의 명령에 복종을 하면서 함께 있던 두 친구는 처음부터 자신에게서 떨어져 크로머에게 붙었고 싱클레어는 그들 사이에서 이방인과도 같았다. 두 친구들이 여차하면 자신을 모른체할 거라는 사실에 두려워진 싱클레어는 너무 두려운 나머지 도둑질을 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이 사과를 훔쳤다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꾸며대기 시작하고 그 결과 크로머로부터 협박을 당하며 고통스러운 관계를 이어가게 된다. 그러나 막스 데미안이라는 새로운 전학생이 싱클레어를 도와 위기를 모면하게 되고 그 일을 계기로 가까운 사이가 된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여태껏 당연하다고 여겨 온 것들에 의문을 던지며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알려 준다. 이후 싱클레어는 난생처음으로 집을 떠나 다른 도시의 상급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데미안과 헤어지게 되고 다시 어둠의 세계에 빠지게 된 그는 위태롭게 방황하며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나 데미안의 편지를 받고 참된 자아를 발견하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의 내면을 구축하는 방법을 깨우치게 된다.  


데미안은 당시 문단에서 대문호로 인정받던 헤르만 헤세가 작가로서 자신의 소설이 작품성만으로 인정받는지 확인해보고 싶어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출판한 소설로,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가 열 살 때부터 청년이 되기까지 내면의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다. 부모님의 그늘 아래에서 평온한 생활을 이어가던 싱클레어는 크로머를 만나면서 어두운 세계를 접하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을 감싸고 있던 세계가 허물어지며 자신이 속한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깨닫기 시작한다. 나쁜 짓이라고는 사탕이나 과일 같은 간식을 몰래 꺼내 먹는 일밖엔 하지 않았던 싱클레어가 크로머로 인해 어머니 책상에서 자신의 저금통을 훔쳐나오는 도둑질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크로머가 속한 세계에 한 걸음 가까워지게 되면서 자신이 타락의 길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불안해하는 모습에서 어린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련을 겪는 모습들이 떠오른다. 충분히 아프고 힘든 괴로운 성장과정이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나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성숙해진 자신과 마주한다. 그것은 마치 길고 긴 터널을 지나면 눈부신 빛을 맞이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며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에밀 싱클레어가 커가는 모습을 통해 현실에서 충분히 고뇌하며 스스로 세계에서 알을 깨고 나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낸다. 한마디로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싱클레어라는 소년이 20대 중반의 청년이 되기까지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우리 부모님들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우리 아이들도 한 번쯤은 겪어야 할 시련이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젊은이들은 방황, 그 과정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