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나아지려나
김연욱 지음 / 쿵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 죽지 않는다면
내일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내일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그게 오늘 마쳐야 할 내 일이다. (p.17)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부터 나는 크게 애쓰지 않는다. 사람을 포함한 어떤 것도 애써 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부질 없는 짓이라는 것을 하루하루 깨달아서 일까. 흘러 흘러 내게로 오면 내 것이 되고 또 흘러 흘러가겠다면 내 것이 아니다. 애써 붙들지도 애써 놓아주지도 않는다. 내가 주체가 되어 잡거나 풀거나 할 수 없음을 안다. 살아보니까 그렇더라. 내가 애쓰지 않아도 곁에 머무는 것이 있고 애써 머물게 하고 싶어도 결국 빠져나가는 것이 있더라. 애써 애쓰지 않는 인생이 재미있다. 오늘은 또 무엇이 오고 무엇이 갈까. (p.33)

 

 

인생은 복잡하다. 어떤 일의 시작도 과정도 모두 다 복잡하기만하다. 하지만 의외로 결과는 간단한데 어차피 끝은 예스 아니면 노다. 아무리 어렵고 복잡하고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도 결국 예스 아니면 노가 답이다. 한다 안한다 된다 안된다 간다 안간다···이렇게 간단하게 끝나는 결과인데 과정이 복잡하면 너무 억울한 노릇이다. 최대한 심플하게 생각하고 결정을 내려 보자 할거면 하고 안 할 거면 안한다는 식으로. 심플한 생각이 당면한 문제를 오히려 더 쉽게 만들 수도 있다. 하다 보면 뭐라도 하겠고 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않나. 머릿속을 최대한 비워보자. (p.69)

 

 가끔은 시간이 나를 앞지르게 그냥 두어도 좋겠다. 시간은 현재에도 있지만 과거에도 있었으며 미래에도 있을 테니까. 혹자는 말한다. 현재가 중요한 것이라고. 그렇지만 현재는 곧 과거가 될 것이며 미래는 어느 순간 현재가 될 것이다. 시간 자체보다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내가 중요한 것이겠지.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결국 나일 테니까 말이다. (p.189)

 

행복하다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과연 그들은 무엇이 그리도 행복한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무언가가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전부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더라. 내가 잘랐다 가진 게 많다 그런 뜻이 절대 아니다. 그저 삶 속에 있는 그런 것들로도 그들은 충분히 행복해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의 것은 내 것과는 다르게 반짝반짝 빛이 났다. 삶 속의 어떤 것에 애정을 가지고 예쁘게 닦고 사랑을 주어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있었다. (p.211)

 

 

“모자란 저이지만 생각은 해볼 수 있잖아요? 어차피 정답도 없는 인생이고 뜻대로 되지도 않는 삶이지만 내 마음대로 생각이라도 해봐야죠. 생각한 대로 술술 잘 풀리지 않으면 또 어때요? 그러면 재미없을걸요? 술술 풀리는 인생을 아직 살아보지 못해서 모르는 건가요.” 저자는 이래라 저래라 자신의 의견을 앞세우지 않고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각들을 담아낸다. 자신을 보통의 인생을 살고 있는 평범한 인간이라 칭하며 그저 질문을 하고 제 생각을 나눌 뿐이다. 언제나 그렇듯 무엇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본인들의 몫. 저자는 일상 속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사소한 일들을 자신만의 유쾌함으로 표현해낸다. 나름 진지했다가 같이 시무룩해지기도 하고 심각한 것 같다가도 한 번씩 픽하고 웃음을 자아내는 말에 홀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날, 머릿속이 복잡해 잠시 쉬어가고 싶을 때, 스트레스를 좀 털어버리고 싶을 때, 삶에 잠시 여유가 필요할 때 자신있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쉼없이 달려온 우리에게 거창한 말은 필요 없으니까. 이런 저자와 함께라면 하루에 하나씩 유쾌한 행복을 발견하는 일이란 별 대수롭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행복은 그리 멀리있는 게 아닌데 자꾸 먼 곳만 바라보다 눈 앞에 있는 소중한 것을 놓치게 된다. 소소한 일상에서도 행복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길거리에 흔하디 흔한 돌맹이조차 함부로 발로 차지 못할 만큼 세상의 모든 것들이 특별하다는 저자.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 순간 별거 아닌 돌맹이 조차도 특별한 무언가로 재탄생된다. 인생이 언제 내 맘대로 된 적이 있던가, 저자의 말처럼 사는 거 어차피 이거 아니면 저거 아니겠는가? 자신을 믿자. 내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 누가 또 나를 나만큼 믿어줄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인생에 정답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립 지음 / 자화상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어린아이를 품고 산다.
내 안에 그 어린아이는 불쑥불쑥 튀어나와 지금 내가 잘하고 있냐고 묻는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이냐고 묻는다. 불안하게도 마음을 휘젓고 뛰어다닌다.

이 어린아이를 달래는 법은 이 앞에 보이는 길이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설득시키는 것이었다. 양쪽에 현실적인 길이 있지만서도 내가 가장 즐거운 길로 가야 행복하겠다고 설득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면 아이는 나보다도 먼저 그 길로 뛰어들어간다. 나는 그 아이를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p.12)

 

 

책상 한켠에 아끼던 장식품의 색이 바래고 먼지가 수두룩해 닦아보려고 하니 너무 깊이 먼지가 내려앉아 쓸어내지도 못했다. 그래서 닦이지 않는 곳은 그대로 둔 채 그렇게 조금씩 세월을 맞았다. 잊혀지니 바래갔다. 요즈음 온전히 고민할 틈도, 내 생각들 또한 점점 옅어지니 지금 내 틈에도 먼지가 쌓이고 있는 것 같았다. (p.42)

 

 

 

 

 

주저 앉았나.
일어나는 법은 주저앉는 법의 역순이다.
나는 잠시 쉬었다가 일어나기로 했다. (p.84)

 

 

정신을 차려보니 칠흑 같은 어둠이다. 이 밤은 고요한데도, 주변의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성가실 만큼. 나는 집중하고 있었다. 한껏 예민해진 채로 더 신경을 곤두세웠다. 너무 깜깜해서 주위도 보지 못하고 더듬더듬, 어둡고 조용하니 생각과 시야는 좁아진다. 조심히 발을 딛었는데 허공이다. 나는 겨우 중심을 잡는다. 뭐지 아, 내가 외줄 위에 서 있구나. (p.88)

 

 

생각하는 것보다 나의 시야는 좁고, 내가 사는 세상도 좁았기 때문에, 작은 일도 쉬이 넘기지 못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엔 유치원이 내 세상의 전부이고, 사춘기 때에는 친구들 일만큼 신경 쓰이는 문제도 없다. 내 세상은 좁았고, 좁고, 좁다.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다. 유리를 깨는 거친 방법이라도 우리는 그러면서 성숙하는 거라고. 그러곤 지금의 먼지들을 더 작게 보려는 습관을 새로 들이기로 했다. (p.100)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우리는 여름이 온 줄 착각하기도 하고, 일교차에 하루에도 겨울인지 봄인지 헷갈려하며, 그렇게 늘 순간의 감정들이 진심인 줄 착각하기도 한다. 봄은 지나고 여름은 온다. 착각과는 별개로. 순간들처럼. 그러니 우리는 오롯이 지금을 살면 된다. 미래에 살 필요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이 사람 저 사람에 묻혀서 그냥 지금을 살면 된다. (p.108)

 

 이 책은 <생각하는 오른손>의 작가 성립의 두 번째 에세이로 겉모습만 보아서는 보통의 책들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책을 펼치자 신기한 광경이 눈앞으로 펼쳐진다. 1부는 에세이로, 2부는 다이어리로 구성이 상당히 독특하게 되어있다. 어떻게 이런 획기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거지? 책장을 넘겨보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작가는 1부에서 자신의 삶을 담아낸다. 졸업을 하고 작가 생활을 한 지 2년 6개월.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즐기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 삶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거늘 어찌 된 일인지 그게 쉽지가 않다. 실제 꿈꿨던 일을 하고 있는데도 느껴지는 괴리 때문에 힘들고 삶의 경험이 많아질수록 큰일에도 작은 일에도 무뎌지고 망설임과 설레임을 잃어간다. 자신이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고민하며 그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나간다. 2부는 다이어리로 딱히 정해진 틀은 없다. 그저 본인이 원하면 그 해의 다이어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선택지는 다가오는 2019년과 2020년. 아래쪽 귀퉁이에 투박하게 드로잉을 해놓았는데 책장을 빠르게 넘기면 그림이 살아서 움직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미니북)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하소연 옮김 / 자화상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비로소 저는 인간 안에 있는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이전부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그들이 잘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번에는 한 가지 일을 더 깨달았다.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이 뿔뿔이 떨어져서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 각자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제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들이 하나로 뭉쳐 사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모든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 또 만인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계시하신 것이다. 이제야말로 나는 깨달았다. 모두가 자신을 걱정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만 인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사실은 오직 사랑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 속에 사는 자는 하느님 안에 살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P.65)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1881년 저술된 톨스토이의 단편소설로 기독교 신앙이 돋보이는 종교문학이다. 이 작품은 톨스토이가 1885년 출판한 단편소설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다른 이야기들>에 담겨 발간되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처음 출간될 때와는 달리 톨스토이의 다른 단편들을 수록하여 출판되는데, 본서에서는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 〈두 노인〉, 〈촛불〉, 〈바보 이반〉,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를 더해 총 6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구두장인인 세몬이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알몸으로 교회 벽에 기대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는 미하일을 발견하여 그냥 지나쳐가려다 죄책감에 집으로 데리고 가 돌보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벌거숭이라니 사실 미하일은 천사였다. 어느 날 하느님은 미하일에게 한 여자에게서 영을 빼앗으라고 명령을 하지만 이제 막 태어난 쌍둥이를 제 손으로 키울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부인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미하일은 결국 부인의 영혼을 데려오지 못한다. 그러자 하느님은 부인의 영혼을 데려오면 세 가지 말의 뜻을 알게 될거라며 다시 명령을 내리고 인간의 내부에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세가지의 질문의 답을 찾을 때까지 사람들에게 가 있으라 명령한다. 그렇게 인간계로 내려온 미하일은 알몸으로 차가운 바닥에 웅크리고 있다 운좋게도 세몬을 만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세몬의 모습을 통해 낯선 사람에게 베푸는 선행이 가져오는 복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으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넌지시 던져준다. 〈두 노인〉에서는 성지 순례를 떠난 두 노인의 행동을 통해 하느님이 좋아하는 행위란 타인에게 베푸는 선행이며 각자 마음먹기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사람은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와 〈바보 이반〉에서는 인간이 욕심을 부리면 어떻게 되는지 등 각 단편마다 삶의 교훈과 지혜를 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ecoming 비커밍 - 미셸 오바마 자서전
미셸 오바마 지음, 김명남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1월
평점 :
품절


 

 

 

 

 

 

 

 

 

 

 

 

 

 

 

아버지를 잃은 후, 이대로 눌러앉아 인생을 보내도 좋은지 고민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아버지는 쉰다섯에 죽었다. 수잰은 스물 여섯에 죽었다. 교훈은 간단했다. 인생은 짧고, 낭비할 시간은 없다. 내가 죽었을 때 사람들이 나를 그동안 쓴 소송 취지서나 그동안 변호한 기업 브랜드로 기억해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나 자신이 세상에 그보다 더 많은 걸 줄 수 있다고 믿었다. 움직일 때였다. (p.199)

 

 

한번 해보라고 말해주는 사람, 걱정을 지우고 행복할 것 같은 방향으로 가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버락뿐이었다. 그는 내게 미지의 세계로 도약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왜냐하면 -그리고 이 주장은 나의 두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친척에게는 충격적인 소리로 들릴 말이었다.-사람이 미지의 세계로 뛰어든다고 해서 꼭 죽는다는 법은 없으니까. 걱정마, 우리는 할 수 있어, 어떻게든 해낼 거야. 이것이 버락의 생각이었다. (p.209)

 

부모님은 내게 자신감을 품으라고, 한계는 없다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을 다 원했다. 왜냐고? 수전이라면 이렇게 대꾸했을 텐데. 안 될 거 없잖아? 나는 메리 타일러 무어처럼 적극적으로 세상에 뛰어드는 독립적이고 열정적인 직업인으로 살고 싶었지만, 그러면서도 안정되고 희생적이고 겉보기에는 단조로운 듯 평범한 아내 및 어머니 역할에도 끌렸다.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둘 다 갖고 싶었지만, 어느 쪽이 다른 쪽을 찍어누르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야 했다. 정확히 어머니처럼 되고 싶으면서도 결코 어머니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혼란스러웠다. 나는 둘 다 가질 수 있을까? 둘 다 갖게 될까? 알 수 없었다. (p.234)

 

내가 출마에 동의한 것은 버락을 사랑하기 때문이었고, 그가 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내심 괴로운 생각을 하나 품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남들과 공유할 마음이 없는 생각이었다. 나는 버락의 선거운동을 지지했지만, 내심으로는 그가 끝까지 해내지는 못할 거라고 여겼다. 버락은 사람들에게 미국의 분열을 치유해야 한다고 열렬히 호소했다. 사람들 대부분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고 믿는 고결한 이상에 호소했다. 하지만 그동안 분열을 너무 많이 보아온 터라, 내 희망은 그렇게까지 굳건하지 못했다. 버락은 누가 뭐래도 흑인이었다. 나는 그가 정말로 승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p.302)

 

 

내가 아무리 굳은 신념으로 애쓰더라도 나를 비방하고 내 존재를 왜곡하는 사람들을 결코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여성이고, 흑인이고, 강했다. 그런데 특정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그 사실이 ‘성난 사람’이라는 한 가지 뜻으로만 번역되는 듯했다. 그것은 또 하나의 변부로 내모는 데 사용되어온 고정관념, 우리 같은 여성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일 필요 없다는 생각을 무의식에 심는 고정관념이었다. (p.354)

 

내가 인생에서 얻은 교훈이 하나 있다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는 힘이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가능한 자주 진실을 말하려고 애썼고, 사회에서 종종내쳐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명하려고 애썼다. (p.368)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녀는 변호사였고 병원 부사장이었고, 젊은이들이 의미 있는 경력을 쌓도록 돕는 비영리단체의 책임자였다. 주로 백인들이 다니는 명문대에서 공부하는 노동 계층 출신 흑인 학생이었다. 온갖 모임에서 유일한 여성이었고 유일한 흑인이었다. 갓 결혼한 신부였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초보 엄마였고, 아버지를 잃고 가슴이 찢어진 딸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는 미합중국의 퍼스트레이디였다. 퍼스트레이디는 공식적인 직업이 아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림으로써 그녀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강력한 발판을 얻었다. 그 일은 그녀를 떨쳐나서도록 하는가 하면 겸허해지도록 했고, 들뜨게 하는가 하면 움츠러들게 했으며 가끔은 그 모두를 동시에 겪도록 했다. 남편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뜻을 밝혔던 2006년에 시작되어, 올해 초 추운 겨울날 아침에 멜라니아 트럼프와 함께 리무진을 타고 그녀 남편의 취임식으로 향했던 순간까지. 정말 대단한 여정이었다.


 어린 시절 그녀에겐 가족이 그녀의 세상이었고, 세상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가족의 품을 벗어나 세상에 발을 내딛고 또 버락 오바마를 만나면서 그녀의 삶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정말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미셸 오바마. 미국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살아가기란 솔직히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흔들림 없이 자라왔다. 그녀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그녀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그들은 딸을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제 의견을 거침없이 밝히는 아이로 자라도록 길렀다. 그녀의 곁에는 늘 그녀를 지지해주고 중요한 존재라는 메세지를 꾸준히 들려주는 부모님과 선생님과 멘토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메세지는 딸들에게, 다음 세대에게 이어졌다. 그녀는 이 책에서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시작해 버락과의 사내 연애와 결혼, 그리고 임신에 얽힌 말 못 할 이야기 등 이제까지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었던 이야기를 솔직하고 대담하게 담아낸다. 버락이 대통령에 출마할지 말지를 놓고 부부가 벌였던 논쟁, 선거운동을 하는 동안 그녀가 유권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으면서도 자주 터무니없는 비난의 표적이 되었을 때 어떻게 견뎠는지까지. 어쩌다 그만 평범하지 않은 여정을 밟게 된 미셸오바마. 그녀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내세우며 으스대지 않는다. 오히려 본인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며 마치 이웃에 살고 있는 사람마냥 스스럼없이 다가온다. 그녀는 지혜로웠으며 강인했고 또 현명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도 일기 (리커버 에디션)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 29.
이상한 일이다. 그녀의 목소리,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목소리, 기억을 불러들이는 그녀만의 씨앗(‘그 사랑스러운 울림······’)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목소리, 그 목소리를 나는 더는 듣지 못한다. 마치 청각 어딘가가 마비된 것처럼······. (p.24)

 

10. 30.
······ 그녀는 죽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채로 살아 있다. 이 사실은 무얼 말하는 걸까. 그건 내가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 미친 것처럼, 정신이 다 나가버릴 정도로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 건, 그 불안으로부터 한 발짝도 비켜날 수 없는 건 바로 그 때문이라라. (p.31)

 

11. 10.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용기’를 가지라고. 하지만 용기를 가져야 했던 시간은 다른 때였다. 그녀가 아프던 때, 간호하면서 그녀의 고통과 슬픔들을 보아야 했던 때, 내 눈물을 감추어야 했던 때. 매 순간 어떤 결정을 내려야 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얼굴을 꾸며야 했던 때. 그때 나는 용기가 있었다. - 지금 용기는 내게 다른 걸 의미한다: 살고자 하는 의지. 그런데 그러자면 너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p.51)

 

11. 21.
한편으로는 별 어려움 없이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이런저런 일에 관여를 하고, 그런 내 모습을 관찰하면서 전처럼 살아가는 나. 다른 한편으로는 갑자기 아프게 찌르고 들어오는 슬픔. 이 둘 사이의 고통스러운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아서 더 고통스러운) 파열 속에 나는 늘 머물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지는 또 하나의 괴로움이 있다: 나는 아직도 ‘더 많이 망가져 있지 못하다’라는 사실이 가져다주는 괴로움. 나의 괴로움은 그러니까 이 편견에서 오는 것인지 모른다. (p.70)

 

1978. 5. 18.
사랑이 그런 것처럼 애도의 슬픔에게도 세상은 비현실적이고 귀찮은 것일 뿐이다. 나는 세상을 거부하면서,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 세상이 나에게 주장하는 것 때문에 괴로움을 당한다. 나의 슬픔을, 나의 삭막함을, 나의 무너진 마음을, 나의 날카로운 신경을 세상은 자꾸만 심해지게 만든다. 세상이 나를 점점 더 기운 빠지게 만든다. (p.136)

 

1978. 8. 21.
내가 너무도 사랑했었고 너무 사랑하고 있는 이들이, 내가 죽고 또 그들보다 오래 살았던 이들마저 죽고 난 뒤에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 거라면,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나는 죽어서도 계속 기억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마망에 대한 기억이 나와 그녀를 알았던 이들이 죽은 뒤에도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내가 죽은 뒤에도 기억되어 차갑고도 위선적인 역사의 어딘가에서 계속 살아남게 된다는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나 혼자서만 ‘기념비’가 되고 싶지는 않다. (p.204)

 

 

 

1977년 10월 25일, 바르트의 어머니 앙리에트 벵제가 사망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바르트는 애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반 노트를 사등분해서 만든 쪽지 위에 바르트는 주로 잉크로, 그러나 때로는 연필로 일기를 써나갔다. 책상 위에는 이 쪽지들을 담은 케이스가 항상 놓여 있었다. 일기를 써나가는 동안에 바르트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와 강연을 하고, 여러 신문과 잡지에 많은 글을 발표했다. <밝은 방>을 집필했으며, 몇 장의 종이 위에 비타 노바의 스케치를 남기기도 하고, 강의를 계획하기도 했는데 이 작업들은 사실상 모두가 어머니의 죽음을 기호로 지니는 것들이며, 그 출발점에는 다름 아닌 <애도 일기>의 쪽지들이 존재한다. 그 쪽지들이 세상에 나온 건 30년이 지난 2009년. 원래 현대저작물 기록 보존소에 간직되어 있던 <애도 일기>의 원고는 책으로 만들어지면서 분리된 쪽지들의 모습 그대로, 생략되는 내용 없이 온전하게 다시 편집되었다.


책은 프랑스가 사랑한 현대 사상가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를 잃은 이후 어머니를 애도하며 2년간 써내려간 일기형식의 에세이로,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어버린 슬픔을 지독하리만치 집요하게 그려낸다. 그가 어머니를 돌본 지난 6개월 동안 어머니는 그의 모든 것이었다. 자신이 글을 써왔다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말이다. 그는 오직 어머니만을 위해 존재했다. 그런 어머니의 부재 앞에서 어느 누가 온전히 견뎌낼 수 있을까. 책에는 그런 상실의 마음이 두서없이 쏟아진다. 사무치는 그리움, 상실감, 슬픔, 고독, 외로움, 쓸쓸함 등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그의 마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바르트의 인생은 어머니의 죽음 전과 후로 나뉠 만큼 어머니에 대한 그의 애착은 특별했다. 생의 즐거움을 노래하던 그가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그도 아니고 그의 어머니도 아닌 슬픔 그 자체이다. 삶과 죽음 앞에서 영원함이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슬픔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은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 상실감은 이로 말할 수 없이 공허하다. 모든 것을 잊어버릴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 많은 것을 잊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더 격렬하게 파고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