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페포포 리멤버 -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심승현 지음 / 허밍버드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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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에게 시달린다는 느낌이 든다.
또 어떤 날은 목이 타도록 사람이 그립다.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건 항상 숙제다.

세상은 내게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고 말한다. (p.61)

 

 

 

 

 

 

 

먼 길은 단번에 갈 생각을 하면 안 돼.
어떻게 하냐고?
그럼 한 걸음씩 차근차근 간다고 생각해 봐.
천천히 숨을 쉬며,
자신의 걸음걸이를 즐기는 거야.
그게 중요해.
그게 먼 길을 가는 가장 쉬운 방법이야.

한 걸음씩 천천히 가다 보면
숨도 가쁘지 않고,
먼 길을 왔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되지.
그게 중요한 거야. (p.69)

 

 

네가 그곳에 있다는 그것 자체만으로 난 만족한다.
네게 선물을 할 수 있다는 그것 자체만으로 행복하다.

난 언제나 널 생각하고 그 생각 속에서 널 키운다.
내 곁에는 네가, 네 곁에는 내가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널 좋아하는 이유를 묻지 말았으면 한다.
단지 내게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널 사랑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는 것뿐······. (p.87)

 

 

 

 

 

 

 

아이들은 언제나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항상 천천히 걷는다.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기 위해 더디게 가는 시간을 뛰어가고
어른들은 시간의 빠름을 탓하며 천천히 걷는다.

어른이 된다는 건
시간을 잃어버리는 슬픔을 의미하지만
잃어버린 시간만큼 기억이란 게 남으니 다행이다.

잃어버린 시간의 기억을 우리는 ‘추억’이라 부른다.
어른이 되어, 그래도 천천히 걸을 수 있는 건
잃어버린 시간의 기억들이 아깝지 않아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나에게 묻는다.
“지금 넌 행복하니?” (p.161)

 

 

 

행복해지기 위해,
모두들 너무나 많이 노력하고 힘들어한다.

대체 행복이 뭐기에······.
행복은 어쩌면 지나치게 결과론적인 것 같다.
과정은 힘들어도 마지막에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는.

하지만 이젠 지겹다
내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지금,
행복했으면 좋겠다. (p.183)

 

 

파페포포가 불러온 2002년의 기억. 16년 만에 우리들 곁으로 새롭게 돌아온 <파페포포 리멤버>. 이 책은 출간 때마다 베스트셀러를 기록해 온 파페포포 시리즈를 단 한 권으로 압축한 파페포포 시리즈의 완결판으로 저자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주제로 하여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에피소드 50가지를 직접 선별하여 다섯 편의 새로운 에피소드와 함께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오랜만이라서 너무나 반가운 파페와 포포. 책을 읽으니 파페포포를 처음 만났던 그 시절이 생각나서 잠시 그 추억으로 젖어든다. 내가 이 시리즈를 처음 만난 건 2002년이 아닌 그로부터 몇 년 뒤, 그 당시 남자친구에게 처음 받은 선물이 바로 파페포포 메모리즈와 파페포포 투게더였다. 지금 생각하니 우습게도 그때의 사랑은 파페포포의 사랑과 닮아있다. 순수해서 더 빛이 나는 파페와 포포의 사랑이야기. 그 시절의 나도 그들과 다름없이 풋풋하게 사랑을 이어갔었는데, 예전과 다름없이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이야기에 마음은 순식간에 무장해제. 사랑, 용기, 추억들로 가득한 글에 눈과 귀를 기울이다보니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히 젖어든다. 그 시간들이 존재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겠지. 오랜만에 만나는 파페포포는 정말 여전하다. 마음을 툭툭 건드리는 글과 여전히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그들의 이야기에 이 정도 추위쯤이야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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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위한 심플한 경제 공부, 돈 공부
박지수 지음 / 메이트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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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공부와 돈 공부를 심플하게 배울 수 있다니 귀가 솔깃한데요? 솔직히 육아와 가정 일에 집중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가버리니까 공부할 틈이 없거든요. 분명 배우면 좋긴한데 어려워서 꺼려왔는데 귀에 쏙쏙 눈에 콕콕 들어올 것 같아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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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투스의 심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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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금 상태에 만족하지 않았다. 현재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뛰어난 ‘근로자’에 불과했다. 누군가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인간이 모두 평등하다는 건 환상일 뿐이라는 게 그의 오랜 철학이었다. 이 세상은 불공평과 차별로 가득 차 있다. 누구나 태어난 그 순간부터 다양한 계층으로 나눠진다. 언젠가 반드시 최상층의 인간이 된다. 지배자가 된다······. 그것이 다쿠야의 최종 목표였다. (p.26)

 

 

결국 로봇은 인간에 필적할 수 없다······. 다쿠야는 이런 식의 얘기가 제일 싫었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인간일수록 능력도 없기 마련이라 더 불쾌했다. 인간이 도대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거짓말을 하고, 게으름을 부리고, 겁을 먹고, 질투나 할 뿐이다. 뭔가를 이루려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대체로 인간은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살 뿐이다. 지시가 없으면 불안해서 아무것도 못한다. 프로그램에 따라하는 일이라면 로봇이 훨씬 우수하다. 게다가 저 녀석들은 절대 배신하지 않아······. 늘어선 로봇을 등지고 다쿠야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이것이 그가 로봇을 연구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자신을 포함해 인간은 반드시 배신한다. (p.165)

 

 

 이 책의 주인공인 스에나가 다쿠야. 그가 중견 산업기기 메이커인 MM중공에 취직한 지는 올해로 9년. 시가 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 어머니를 잃고 미장공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버지다운 살가운 애정을 보여준 기억은 거의 없다. 언제나 취해 있었고, 싸구려 술을 사기 위해서라면 다쿠야의 초등학교 급식비까지 서슴없이 써버리는 남자였다. 결국 그런 환경에서 자라온 탓에 다쿠야는 인간에 대한 짙은 불신과 권력지향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고 실력을 쌓기 위해 모든 욕망을 억제하며 노력한 결과 지금의 회사에서 엘리트 로봇 개발자로 성공한다. 하지만 일개 사원으로 만족하지 못한 그는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임원실 직원인 야스코에게 접근하고 그녀와 관계를 맺으며 전무에 관한 정보를 얻어내어 전무의 딸과 결혼할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야스코가 임신한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그에게 협박을 해오면서 그의 앞길에 먹구름이 드리운다. 그러던 중 뜻밖에 호출을 받고 나간 자리에서 자신의 처지와 같은 두 남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아이의 아버지일지도 모를 세 남자는 야스코가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여 이른바 ‘릴레이 살인’을 모의한다. 오사카로부터 도교로 이어지는 살인과 운반, 시체처리를 세 사람이 분담하는 완전범죄를 계획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데 막상 그날이 되어 운반되어 온 시체는 야스코가 아니었다. 공범 중에 한 명이 살해당한 것. 사건은 점점 미궁속으로 빠지고 알 수 없는 살인은 계속된다.

각자의 욕망을 위해 살인 계획을 세운 세 남자. 욕망에 방해가 되는 여성을 처리하려 하지만 뜻밖에도 살인의 바통은 세 남자 중 한 명에게로 돌아간다. 누가 범인인지 모르는 가운데 살인은 계속되고 인간의 욕망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져간다. 욕심 때문에 생명을 잃거나 소중한 사람을 잃거나 부와 명예를 다 잃어도 사람들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 일어나는 다섯 번의 살인은 저마다 완벽한 트릭을 가지고 있다. 후반부로 갈수륵 얽히고 얽힌 실타레가 점점 풀리기 시작하는데 그 정교함에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올 정도!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 답다. 거침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에 눈을 뗄 수가 없다. 427페이지에 이르는 책을 거침없이 단숨에 읽어나간다. 작가는 이공대 출신의 경험을 살려 인간의 뜨거운 욕망과 기계의 차가움을 결합시켰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 주인공의 로봇인 브루투스에게 심장을 불어 넣은 것. 인간의 지시 없이는 혼자 힘으로 가동하지 않는 로봇이 인간을 기계의 부품 정도로만 생각한 주인에게 놀라운 결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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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사랑이 남았으니까 - 처음과 끝의 계절이 모두 지나도
동그라미(김동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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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닿은 이 손 이제는 놓지 말자 무슨 예쁜 말로 표현하려 해도 입도 떼기 어려울 만큼 예쁜 당신이라서. 지구에서 올려다볼 땐 달이 작게 느껴지지만 가까워질수록 커지는 것처럼 우리도 가까워지자 내가 생각하는 당신은 달보다 더 크고 지구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니까. (p.15)

 

 

나는 아파도 좋으니 너의 하루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하루를 결정짓는 당신이 아픈 게 나에겐 더 아픈 일이니까.
네가 아프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 일이 넓은 우주에서 먼지보다 작은 무언가를 찾는 것이라고 해도 기꺼이 하겠다고, 할 수 있다고 약속한다.
네가 아플 생각에 뒤척이며 매일 밤을 보내는 것보다는 네가 미소 짓는 날을 상상하며 넓은 우주 어딘가에 있는 무언가를 찾는 일이 더 좋을 테니까 더 행복할 테니까. (p.23)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만 안다
너무 힘들고 지칠 땐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지만 그것고 한계가 있음을 곧 깨닫는다 아무리 슬픈 영화를 보고, 슬픈 노래를 듣더라도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만 알 수 있으니까 그 무엇도 나를 그리고 당신을 대신할 수는 없으니까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우리만의 이야기가 내일의 나를 살아가게, 내일의 나를 더 아프게 만들 것이다

가장 슬픈 건 시원해진 날씨가 이제 곧 차가워진다는 것과 차가운 바람이 불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뜨거운 계절이 온다는 것, 그리고 그 계절에 다시 한 번 속으리라는 것. (p.65)

 

 

시간을 되돌릴 방법만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되돌리고 싶었다 이렇게나 아픈 이별을 할 바에는 차라리 당신이라는 존재를 알기 전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당신을 사랑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확실하게 말하자면 당신을 내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서로의 기억 속에서 서로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럼 우리는 서로의 이름조차 모르게 되거나 다시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서로의 기억 속에 서로가 없으니 우리가 정말 사랑이라면 기필코 다시 사랑할 수 있을테니까. (p.128)

 

 

사랑에도 준비가 필요하듯
이별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이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 구질구질하게 붙잡아볼걸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할걸

나는 사랑한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데
너는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됐을 때

나는 사랑을 물었고
너는 이별을 답했다 (p.204)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담은 글이라 그런지 공감이 가는 것은 물론이요, 적잖히 위로가 된다. 설레임, 기쁨, 슬픔, 아픔, 눈물, 그리움 등 사랑을 하며 생겨나는 모든 감정을 담아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써내려간 동그라미의 <아직 사랑이 남았으니까>.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한 그의 편지에서 사랑에 빠져 이리저리 하우적거리던 그 시절의 나와 마주한다. 차곡차곡 정성을 담아 써내려간 편지에는 나의 마음, 그의 마음, 우리들의 마음이 한데 어우러져 가슴을 쿡쿡 찔러온다. 사랑에 빠져봤으면 안다 그것이 어떤 마음인지를 그때는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자연스레 지나온 사랑이 떠올라 기쁘기도 했다가 슬프기도 했다가 사랑에 빠져 들뜬 감정에 오르락 내리락 거리던 나와 마주한다. 그래 그땐 그랬었지. 마음 한구석에 잠자고 있던 사랑이 눈을 뜬다.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때 그 감정들은 그대로 마음속에 남아 있었나 보다. 지금 이 사람을 만나려고 그렇게 무던히 아프고 힘들어 했던 걸까. 양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사랑을 시작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별을 경험하고 다시 쓸쓸히 혼자가 되기까지 많이 기뻐하고 많이 방황하고 많이 슬퍼하고 많이 행복했더랬다. 책을 잠자코 읽고 있으니 자꾸만 그 시절이 생각나 코 끝이 찡해진다. 사람을 어루만지는 저자의 손길에 저절로 톡톡히 옛추억에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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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말이죠… - 이 도시를 채우고 있는 아름다운 기억들
심상덕 지음, 윤근영 엮음, 이예리 그림 / 이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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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전당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담보물 중 하나가 뭐였는지 아십니까? 크기가 사과상자만했던 미제 제니스 진공관 라디오였습니다. 진공관 라디오 한 대를 가지고 가면 아무리 까다로운 전당포 주인도 두말없이 급한 돈을 빌려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또하나는 바로 재봉틀입니다. 진공관 라디오처럼 재봉틀도 두말없이 환영을 받았죠. 그 시절에 집의 재산목록 1호인 진공관 라디오나 재봉틀을 보자기에 싸들고 전당포에 찾아오는 사람들, 너나없이 그럴 만한 사연들이 있었습니다. 서울로 공부하러 간 자식 녀석의 학자금을 마련하느라 들고 나온 물건일 수도 있고, 지금처럼 의료보험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급히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하기 위해 들고 나간 물건이기도 했죠. (p.34)

 

서울 사람들은 언제부터 양복을 입었을까요?
근대화를 주장하던 김옥균, 박영효, 홍영석이 민간인 중에선 가장 먼저 양복을 입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마치 연못에 고인물처럼 고리타분한 생각에서 벗어나 개화를 하자, 세상을 바꾸자고 주장한 사람들이니 그럴 만도 했죠. 바지저고리 한복보다 양복 차림이 더 활동적인 것은 사실이니까요. 한편에서는 어떻게 서양 오랑캐들의 옷을 몸에 걸치고 다니느냐며 반대도 심했습니다. 이렇게 옷차림이 바뀌는 과정에서 생겨난 유행어가 바로 ‘근사하다’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개화기 때, 다시 말해 한복에서 양복으로 바꿔 입기 시작하던 그 시절에 생겨났습니다. 양복 입은 꼴이 진짜 멋쟁이들과 비슷하다고 하여 가까운 근(近)에 닮을 사(似)를 써서 ‘근사 하다’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죠. (p.46)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나이 만 열일곱 살이 되면 주민등록증이 나오죠. 그런데 주민등록증 말고 혹시 ’시민증‘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시민증은 1950년 6·25 전쟁중이었던 10월, 서울시가 열네 살 이상의 남녀에게 ‘당신은 서울 시민입니다’라고 인정하며 발급한 증명서입니다. 길을 가다가 불심검문을 당하면 시민증을 제시해야 서울 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죠. 시민증이 없으면 서울 시민으로 행세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야간 통행 금지가 실시되고 있어서 불심검문을 하다가 시민증이 없으면 당장 파출소로 끌려갔습니다. “고향이 어디냐, 일가친척은 어디에 살고 있냐, 그 구두는 어디서 무슨 돈으로 사 신었냐” 등등 꼬치꼬치 캐묻는 바람에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지 모릅니다. (p.60)

 

이제는 우유가 남아돌아서 걱정인 시대입니다. 예전에는 아침마다 대문 앞에 ‘병우유’가 하나씩 배달되는 집은 정말 부잣집이었습니다. 동네에 한두 집밖에 없었으니까요. 우유 종류도 예전에는 ‘흰 우유’ 하나뿐이었지만, 요즘에는 초코우유, 커피우유, 바나나우유, 딸기우유, 저지방우유, 칼슘우유 등 다양하더라고요. 예전의 우유광고에는 아주 환한 표정으로 밝게 웃는 꼬마아이가 맛있게 우유를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왔습니다. 우유를 다 마시고 난 다음 입술 주변에 우유 마신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그 모습. 그 시절에는 매일매일 우유를 먹던 그 아이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예전에는 임금님이 후궁의 방에 들 때 몸보신으로 먹던 음식이 우유였다고 하잖아요. 이런 걸 보면 우유가 흔해진 지금이 얼마나 살기 좋은 시대인지요. (p.89)

 

어느 건축가는 자서전에서 “파고다 공원을 놀이터 삼아 놀던 시절 최대 희망은 삼일빌딩의 층수를 끝까지 다 세보는 것이었다”라고 회고했습니다. 실제로 삼일빌딩이 완공된 뒤, 빌딩 건너편 도로에는 삼일빌딩의 층수를 세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지요. 여의도 63빌딩 완공 전까지 국내 최고층 건물의 지위를 지켜온 삼일빌딩은 근대화의 상징이었습니다. 삼일빌딩이 서울에서 최고층 건물로 손꼽히던 게 불과 40여 년 전 이야기인데요. 앞으로 몇 년 안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123층짜리 건물이 생긴다고 하네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우리의 건축 기술이 앞으로 얼마나 발전할지 기대됩니다. 30년쯤 뒤에는 서울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아주 궁금합니다. (p.162)

 

 

 

 

 

 

 

지금 내가 기억하는 서울은 도로에는 차들이 가득 넘쳐나고 곳곳에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사람들이 바쁘게 오고가는 도시다. 하늘은 내가 좋아하는 푸른색이 아닌 회색으로 물들 때가 많고 신기한 것들이 많아 멀리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며 새삼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곳. 그래서 정감이 간다기보다는 가끔씩 발을 디딜 때마다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래 그랬던 서울이었는데 이 책을 만나고 함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자 멀게만 느껴졌던 거리가 많이 가까워진 느낌이다. 지금의 모습으로만 봐서는 짐작 조차되지 않은 서울의 옛 모습에서는 곳곳에서 사람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흥미로운 이야기는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지나온 과거를 추억하며 잠시 그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 것이고 그 시절을 모르는 젊은이들에게는 과거의 모습을 둘러보며 옛 서울을 알아가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한마디로 과거로 시간여행?!  

이 책은 편집자인 며느리가 지금은 이미 돌아가셨지만 살아 생전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방송작가로 활동하며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병상에서 방송 원고를 쓰셨다는 시아버님이 직접 녹음해 두신 라디오 원고를 바탕으로 정리하여 책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녹음 테이프를 통한 음성을 듣고, 따뜻하고 정겹게 쓰신 글을 읽으며 저도 모르게 아버님을 그리워했다는 며느리. 그 시절을 살아보지 못한 그녀도 이 글을 읽으며 그때의 행복을 느낄 만큼 이 책에는 따뜻함이 가득하다. 지금은 거대하지만 한때는 따뜻하고 정겨움이 가득했던 옛 서울, 대도시에 이르기까지 서울이 점차 어떻게 변해왔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과 함께 잠시 과거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신기한 옛날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만큼 참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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