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군상, 자아실현, 정복욕, 서구인들의 에베레탈리즘(?).. 등산얘기이면서 등산 얘기일 수만은 없으니 흥미로울 수 밖에. 곧 비극이 시작되는 듯.

…에 있는 쿰의 맨 위 지점까지 올라갔다가 눈 속에 파묻혀 있는 또다른 시신을, 정확히 말하자면 시신의 하반신을 목격했다. 옷차림과 가죽으로 된 구식 등산화로 미루어 그 희생자는 유럽인인 것 같았고 그 산에서 적어도 10년 내지 15년 정도 묵은 듯했다.
먼젓번에 시신을 처음 봤을 때는 몇 시간 동안 몸이 떨렸지만 이번에는 그 충격이 금방 가셨다. 그 두 시신 곁을 지나가던 다른 사람들은하나같이 힐끗 쳐다보고는 이내 눈길을 돌려버렸다. 마치 그 냉동 건조된 시신들이 현실적인 존재가 아닌 척하는 것이 그 산에서는 일종의 불문율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혹은 우리 중의 그 누구도 여기서 자칫 잘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솔직하게 받아들일 용기가 없는 것처럼. - P160

셰르파들이 그런 의식을 소중히 여기고 많은 공을 들이긴 하나 그들의 불교는 독단적인 요소가 거의 없는 대단히 유연한 종교다. 예컨대맨처음에 빙폭으로 들어갈 때는 어느 팀이든 간에 우선 사가르마타의자비로운 은총을 빌기 위해 푸자라는 복잡한 종교 의식을 치르게 되어있다. 그런데 푸자를 주재할 노스님이 사정이 있어 예정된 날짜에 멀리떨어진 마을에서 그곳까지 올 수가 없게 되자 앙 체링은 우리가 가능한한 곧 푸자를 치를 뜻을 갖고 있다는 걸 사가르마타가 알고 있으므로그대로 빙폭을 통과해도 괜찮다고 선언했다. - P189

그날의 남은 시간 동안 제2캠프에는 불안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에베레스트가 최악의 면모를 드러낸 것도 아닌데 우리는 안전을도모하기에 급급했으니까.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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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2-20 00: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의외의 포스팅에서 간헐적이지만 꾸준히 추천 받아 와서 언젠가는 직접 읽고 싶은 책 중 한 권이네요^^ 원제목 그대로 옮겼는데 더 멋스러운 타이틀인 것 같아요.

에베레탈리즘.
유수님 통해 처음 들으면서도 짐작이 가는 용어네요^^

유수 2023-02-20 07:56   좋아요 2 | URL
안녕하세요 얄라알라님! 에베레탈리즘 ㅋㅋ 제가 막 지어냈어요. 이 열병?을 가리키는 용어가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말이죠 ㅎㅎ 존 크라카우어도 그렇고 번역도 그렇고 말씀대로 멋스럽고 흥미진진한 책이에요.

단발머리 2023-02-20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구인들의 에베레탈리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고 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책은 구매이력이 있으신데 다시 구매하세요?”


중고서점 카운터에서 직원이 물었다. 반사적으로 앗, 내가 뭘 착각했나 싶었는데 양해중 말이었다. 결제해달라고 했다. 그랬지. 이 책을 샀었다. 여러 번. 이제는 집에 없는데. 이 책이 절판이라니 너무 아쉬우면서도 이해가는 바가 있었다. 서가에서 마주치곤 바로 바구니에 담았다.


 













이 소설집을 왜 좋아했을까. 선물할 때 **야, &&언니, 네가 내 양해중(주인공 이름, 여자다)이었던 것 같아서, 라는 말을 덧붙였다.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 사이가 됐어도 건수(?)가 생기면 보냈다. 대소사에 매번 함께 하지는 못해도 같이 지낸 시간이 든든하고 즐거웠다고, 그 기억이 떠오르면 웃곤 한다는 말을 대신하는 메시지. 


<성희의 소파>

성희는 가정폭력의 피해자다. 이유 없이 남동생로부터 맞고 차이고 목을 졸리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부모는 방관했다. 거실의 소파에서 티비라도 보면 목이 졸릴새라 집에서는 거의 방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렇게 소파는 하나의 트리거가 되었다. 성희는 공공장소에서조차 소파를 피하며 살았다. 

독립하고 나서 이런저런 주거 형태를 거쳐 이제 성희는 새로운 아파트를 마련했다. 휑한 거실에 앉아 해가 넉넉히 드는 바닥을 바라본다. 다리를 쭉 펴고 앉는다. 인터넷 쇼핑을 시작한다. 소파를 검색한다.


“5분 전에 올라온 게시물이었다. 잡지 광고나 백화점에서 볼 법한 브랜드의 소파였고, 검색해보니 판매자가 내놓은 가격은 정가에서 0이 두개나 빠진 값이었다. 지역도 성남으로 되어 있어 성희는 바로 쪽지를 보냈다. 답장으로 판매자가 보내온 주소는 같은 아파트 단지였다. 판매자에게 구매 의사를 전한 성희는 한 시간 후로 방문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성희는 해중을 만난다. 둘은 거래하기로 단번에 결정하는데 소파를 옮겨야 한다. 거리가 가까워 용달을 부르기가 뭐했다는 성희에게 해중은 쓰고 버려도 된다며 고무장갑을 건넨다. 자연스럽게 카트로 소파를 함께 옮긴다. 물 한 컵 달게 얻어 마신 해중은 볕 때문인지 자기 집과 다르게 여기 기운이 좋다며 하시는 일 잘되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떠나며 소설은 끝난다.


<언제나 양해를 구하는 양해중 씨의 19가지 그림자>는 양해중 씨가 양해를 구했던 19가지의 상황이 담긴 단편을 엮어 만든 소설집이다. 이 단편 <성희의 소파>에서 양해중은 유흥탐정앱으로 남자친구의 성매매 이력을 알고 막 파혼한 참이었다. 그 상황이 아주 짧게, 단 몇줄로 제시된다. 양해중은 아마도 약혼자가 샀을 소파를 팔아치우고 나서 신혼집으로 정했을 아파트를 떠난다. 같은 아파트 옆동에서 소파를 구매한 성희는 안정/안정감을 처음 자기 것으로 여기며 정착을 시작하고. 접점이라고는 같은 아파트단지에 거처한 잠깜 뿐인 둘의 마주침이 드리우는 ‘그림자’는 길다.


왜 길지.

양해중이 유흥탐정 앱을 깔고 나서 파혼했다는 것과 성희가 손아래 남자형제에게 맞고 자랐다는 정보만으로 소설이 왜 충분해질까.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와 잊고 있던 기억, 떠오르는 누군가의 이름 혹은 얼굴. 이 서사에게 마련된 자리가 이미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다가 다시 책의 두 인물이 대화하는 장면으로 돌아간다. 

“와, 이렇게 볕이 잘 드는 집도 있었구나. 같은 아파트인데 너무 다르네요.”

“이쪽이 남향이더라고요. 옮기는 것까지 도와주시고 너무 고생하셔서 어떡하죠. 소파도 너무 새거고…”

“같이 살 사람이 산 건데 따로 살게 돼서 처치 곤란이었어요. 올리자마자 팔려서 오히려 절 도와주신 거죠.”


소설은 간결하게 마무리되는데 평범한 이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었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도 머물게 된다. 초면인 두 사람이 볕이 가득한 거실에서 대화하는 것에서 느껴지는 무해함과 평온함이 있다. 각자의 짐을 뒤로 하고 나아가는 인물들의 교점, 그 순간을 잠시 지켜봤다는 희열에서 나온 여운일까. 


‘여성서사’라는 설명이 따라오는 콘텐츠를 자주 본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복수극이기도, 경험을 가감없이 녹여낸 드라마거나 로맨스일 때도 있고,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영화일 때도 있다. 어떤 걸 보더라도 자연히 내가 기대하게 되고 즐기는 것들이 있다. 사실적이라 보는 것만으로도 피로해지는 현실 묘사와 그걸 버티게 하는 주인공의 자조적인 위트. 고도의 조롱. 불합리한 현실에 ‘개사이다’로 응징하는 인물, 혹은 피와 무기가 난무하는 액션.


오드리 로드는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했다. (시스터 아웃사이더) 집을 해체하는 새로운 연장을 찾으려면 이것저것 써봐야겠지.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그런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테고 그런 의미에서 물고 씹고 뜯는 더 다양한 이야기를 기다린다. 자매애와 연대를 여러 각도에서 시험하고 사이다썰, 크고 작은 복수, 때로는 환각이나 빙의라는 연장을 써서라도 집을 두드리는 시도를 응원한다. 그러는 동시에, 언젠가는 그런 게 필요 없어지는 세상도 열심히 상상해보는 것이다. 성희와 해중의 마지막 장면은 그런 두 여자, 해방이라는 과제에서 자유로워진 사람들을 시작점에 데려다 놓았다는 점에서 내게 특별한 잔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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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3-02-19 1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절판이군요. 늘 제목만 보고 지나치곤 했는데 유수님 글 보니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유수 2023-02-19 21:28   좋아요 0 | URL
난티님이 안 읽어보신 책이라니! 이 책이 담는 동시대성이 좋았어요. 그런 시대가 싫고요 ㅜㅜ

단발머리 2023-02-20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동시대를 읽는 게 항상 어렵더라구요. 그니까 확 밀고들어오는 느낌을 감당하기가 어렵구요. 제가 좀 갈등을 회피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런 거 같기도 해요.

유수님이 말씀해주신 여성서사의 그런 무해함과 평온함, 너무 좋네요. 그런 글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고요, 그럴러면 독자들이 더 많이 읽어줘야 하는데.... 나부터 실천하자... 오늘의 결론입니다.

유수 2023-02-20 16:49   좋아요 0 | URL
앗! 맞아요. 저도 비슷해요. 리얼리즘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 리얼리티가 아니었을 때의 얘기였구나, 최근에 깨달았어요. 단발머리님 말씀대로 독자들의 책무기도 한 거 같아요. 동시대 문학을 소비하는 것.. 주저하는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ㅎㅎ 저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유수 2023-02-20 16:51   좋아요 0 | URL
그리고 다른 단편은 평온하지 않은 부분도 많이 등장합니다. 아주 짜증나는 사람들과 상황들….%^&*&#^$%ㅋㅋㅋ
 

소재도 흥미로운데 글도 유려하고..

번역가 이름 보고 흠칫 놀랐지만 다른 사람인 듯.

요즘 부쩍 느끼는 건데 논픽션의 재미를 평생 모르고 살았구나.














“산 정상에 오르는 일은 확고 부동하고 항구 불변하고 실질적인 일이었다. 등산하는 과정에서 으레 따르게 마련인 여러 가지 위험들은 그 일에 내 삶의 다른 측면들에서는 크게 상실되어 가고 있는 목적의 중요함을 더해주는 역할을 했다. 나는 진부한 삶의 평면을 뒤집어엎는 데서 오는 새로운 관점 속에서 쾌감을 느꼈다.”43

그리고 등산은 일종의 소속감 같은 것도 안겨줬다. 산악인이 된다는 건 세상의 관심권 밖에 있고 또 세상의 타락상에 크게 물들지 않은, 과묵하고 아주 이상주의적인 집단에 들어간다는 걸 뜻했다. - P43

요컨대 행복이라는 한 마디 말로 귀결될 수 있는 사소한 만족감들로 인해 등산에 대한 갈증은 많이 무디어졌다. (…) 하지만 나는 소년 시절의 꿈들은 여간해서는 죽지 않으며 그럴 때 사리 분별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1996년 2뤌 말, 브라이언트는 내게 전화를 해서 곧 출발할 예정인 로브 홀의 에베레스트 등반대에 내가 들어갈 자리가 있다고 했다. 그가 내게 정말로 이 일을 해내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곧장 "그렇다"고 대답했다. - P51

그러다 마침내 에베레스트의 뚜렷한 윤곽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피라미드 형의 정상부는 주위의 다른 봉우리들 위로 아주 선명한 윤곽을 그리면서 시커멓게 떠올라 있었다. 제트 기류 속으로 돌출한 그 산은 눈에 보일 정도로 깊게 갈라진 상처를 드러냈으며 그 상처자국에서는 시속 120노트의 강풍을 받아 반짝이는 얼음조각들이 비단 스카프처럼 동쪽으로 길게 휘날리고 있었다. 허공에 가로걸린 그 하얀 얼음조각 구름을 지켜보는 가운데 문득 에베레스트 정상부가 일정한 기압을 유지하면서 하늘을 나는 그 제트기와 정확히 같은 높이로 떠올라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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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3-02-16 14: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너무 좋아합니다. 손에 꼽는 인생 책 중 하나예요. 논픽션 재미나죠ㅎㅎ 반갑네요!

유수 2023-02-16 17:30   좋아요 2 | URL
정말요? 초반만 읽었는데도 흥미로워요. 끝까지 그럴 거라는 말씀으로 들려서 저도 기분 좋습니다!!

은오 2023-02-17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수님은 그럼 문학 파시다가 비문학 읽으시는거예요? 유수님 요즘 거의 비문학 읽고계신 것 같던데... 저는 완전 반대예요!! ㅋㅋㅋㅋ아니다 그래도 아직은 비문학이 더 좋다! 저는 처음도 비문학이었구요

2023-02-17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7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수 2023-02-19 15:04   좋아요 1 | URL
저도 언어쪽 분들 좋아해요. 똑똑한 여자 안 좋아하기 힘들어요. 그치만 전공 운운하기엔 저는 먼먼옛날 얘기 ㅋㅋ 은오님 비문학 추천도 기대하겠습니다
 

케이트 만 <남성 특권> 중 가사 노동 부분 읽다가 궁금해져서 딴 책을 들췄다. 의도한 바 있는 제목 번역이겠지만 전쟁 주도권이 어디 딴데 있는 거 같아 입에 붙지는 않는, 그리고 전쟁이라는 명명이 옳은가? 멈춰 생각하게 하는, 책 <남성은 여성에 대한 전쟁을 멈출 수 있다>.



‘아빠의 변화: 젠더 평등이 가져온 부성이라는 혜택’을 제목으로 단 5장에서는 부성, 올바른 아빠 역할이 가정에 이로울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젠더 평등에 기여하게 된다는 주장을 한다. 제목에 이미 요약돼있구나. 난 졸리구나.
암튼 모성을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한다는 책을 주로 만나다가 부성을 발.굴.해서 (셀프)길러야 한다는 요 주장이 참신하게 느껴지는 차. 남성 저자가 이런 말했다고 쉽게 올려치기 하게 되는 속내를 누르고 계속 읽어본다.

“아이와의 애정 어린 관계라는 맥락에서 생기는 정서적 상호 의존 상태와 놀이 활동의 공유는 남성 자신의 발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147

이 부분, 양육자 역할을 수행하고 나서야 사회성(과 굳이 그럴 필요)를 느낀 히키코모리 새키..라는 점에서 내 얘기기도 한데. 문제는 아이와의 “정서적 상호의존 상태와 놀이 활동을 공유”하는 아버지 남성상이 규범적 역할 기대와 일치한 적이 한번도 없다는 점이 아니겠어요? 라고 생각할 즈음 저자도 그래서 이런 구조적 제도가 필요하지!라며 그 유명한 라떼 파파도 만나고 하면서 구체적 정부 지원책을 죽 읊는 것.. 올..

이 챕터 마무리도 썩 마음에 든다.

“젠더 평등 혁명에 동참하기 위해 누구나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양한 돌봄 노동을 받아들이고 지지하는 문제에 한해 우리는 분명히 남성으로서 우리의 우선순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아가 이 세상의 우선순위를 재고해보아야 한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는 여기에는 좋은 아버지 이전에 좋은 시민인 남성(유니콘?)부터가 시급한데요.. 늘 그렇듯이 읽어야 할 사람은 안 읽겠지만 여자들의 화난 목소리를 감당하기 힘든 사람에게 권하기 적당할 거 같다.

많은 남성에게 육아의 기술을 배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보다 사회적 지원, 유급휴가, 직장에서 육아를 권장하는 분위기 등이 부족하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이다. … 여성에게 페미니즘이 가져다준 혜택을 남성은 아버지상의 변화를 통해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아버지상을 만든다는 생각이 부질없는 바람은 아닐까? - P127

적극적으로 육아를 하는 남성의 경우 더 적극적이 될 수 있도록 호르몬이 변화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긍정적인 피드백 순환이 생기는 것이다. …
호르몬의 변동 폭은 여성에 비해 덜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인간 남성은 타인을 돌보는 사람으로 진화해왔다. - P130

경제학자 바스, 커, 올리베티, 골딘은 2000년 이후 미국 인구조사 데이터를 분석해서 여성의 소득이 낮은 주요원인이 가사 노동의 분담, 즉 여성의 육아 책임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설득력있게 주장했다.
나아가.. 여성은 정서적으로도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먼저 여성의 가치에 대한 시각이 문제다. … 여성에게 편중된 육아책임은 일터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 시간적 여유의 문제이기도 하다. - P133

"아이들 곁에 꼭 아버지가 있을 필요는 없어요."
"그렇게 보면 곁에 꼭 어머니가 있을 필요도 없어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생식기를 가진 사람들의 육아가 아니라고 바커는 강조한다. 아이는 성별이 무엇이든 "그 아이와 그 아이의 행복에 미쳐 있는" 하나 이상의 어른이 주는 끝없는 사랑, 그리고 끝이 없다시피 한 관심을 필요로 한다. - P136

"아버지가 어머니 그리고 다른 여성들과 상호 존중하는 비폭력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가지는 모습"을 본다면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 모두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다는 생각을 내면화하고 이것을 다음세대에게 물려줄 것이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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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3-02-16 0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니콘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웃기면서 슬프네요.
저는 양육자 역할을 하면서 사회성의 필요를 절감했으나 철벽 치고 제 사회성 발달을 자체차단 ㅠㅠ 시켰어요. 또 슬프다…(먼 산)

유수 2023-02-16 13:43   좋아요 0 | URL
우리끼리 사회성 잘 작동해서 일단 괜찮은 걸로ㅋㅋ
 

아이린과 클레어가 상극중에 상극이라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걸 점점 깨닫는다. 인종 뿐만 아니라 온갖 것이 ‘패싱’ 가능한 시대에 사는 탓인지 윤리 의식이나 위기감도 두 여자 따라 금세 흐려지고.. 정작 불가능한 것은 두 여자 사이의 간극을 패싱하는 것. 아이린이 속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클레어보다도 더 자기 욕망에 충실한 걸 보면 이 소설에서 내가 읽고 있는 건 두 여자 얘기가 아니라 한 여자 이야기라는 생각도 든다. 












그녀는 남편이 스스로에 대해 아는 것만큼 그를 알았다. 혹은 더 잘 알았다. 114

그녀가 말했다. ‘패싱’은 정말 알 수 없다니까. 우리는 패싱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용서하잖아요. 경멸하면서 동시에 감탄하고요. 묘한 혐오감을 느끼면서 패싱을 피하지만 그걸 보호하기도 하죠."
"살아남아서 번성하고자 하는 종족 본능이지."
"말도 안 돼! 생물학적 일반론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 수는 없어요."
"전적으로 모든 게 그렇게 설명될 수 있고. 백인이라 불리는 작자들을 봐요. 지구 곳곳에 애비 없는 자식들을 만들어 놓는 것도 마찬가지라고요. 생존하고 번성하고자 하는 종족 본능이란 그런 거요."
그 말에 아이린은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 - P110

그리고 두 아이가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행복해지기를 원했지만,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그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이 유감스러웠고, 그가 행복해지기를 원하기는 해도, 오로지 그녀의 방식대로만, 그녀가 세워 놓은 계획대로만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그녀 자신은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 P121

클레어가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태도로 그들 관계를 비밀에 부치려 해서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그 부분은 아이린도 이해했다. 그녀가 화가 난 것은 클레어가 그녀의 조심성을 의심하고, 답장할 때 충분히 조심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 우체국을 지정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늘 자신이 옳은 판단을 한다고 확신했던 아이린은 누군가 자신을 의심하는 듯한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 말할 것도 없이 클레어 켄드리는 그래서는 안되었다. - P123

정말이지 클레어, 지난 날을 쭉 돌아봐도 네가 모든 비난을 그에게 돌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어. 그 사람도 나름의 입장이 있어. 넌 네가 흑인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잖아. 그러니까 네 남편은 네가 흑인들에 이렇게 연연해하는 걸, 또 흑인들을 검둥이니 검은 악마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네가 격분한다는 걸 알 도리가 없는 거야.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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