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구매이력이 있으신데 다시 구매하세요?”
중고서점 카운터에서 직원이 물었다. 반사적으로 앗, 내가 뭘 착각했나 싶었는데 양해중 말이었다. 결제해달라고 했다. 그랬지. 이 책을 샀었다. 여러 번. 이제는 집에 없는데. 이 책이 절판이라니 너무 아쉬우면서도 이해가는 바가 있었다. 서가에서 마주치곤 바로 바구니에 담았다.
이 소설집을 왜 좋아했을까. 선물할 때 **야, &&언니, 네가 내 양해중(주인공 이름, 여자다)이었던 것 같아서, 라는 말을 덧붙였다.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 사이가 됐어도 건수(?)가 생기면 보냈다. 대소사에 매번 함께 하지는 못해도 같이 지낸 시간이 든든하고 즐거웠다고, 그 기억이 떠오르면 웃곤 한다는 말을 대신하는 메시지.
<성희의 소파>
성희는 가정폭력의 피해자다. 이유 없이 남동생로부터 맞고 차이고 목을 졸리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부모는 방관했다. 거실의 소파에서 티비라도 보면 목이 졸릴새라 집에서는 거의 방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렇게 소파는 하나의 트리거가 되었다. 성희는 공공장소에서조차 소파를 피하며 살았다.
독립하고 나서 이런저런 주거 형태를 거쳐 이제 성희는 새로운 아파트를 마련했다. 휑한 거실에 앉아 해가 넉넉히 드는 바닥을 바라본다. 다리를 쭉 펴고 앉는다. 인터넷 쇼핑을 시작한다. 소파를 검색한다.
“5분 전에 올라온 게시물이었다. 잡지 광고나 백화점에서 볼 법한 브랜드의 소파였고, 검색해보니 판매자가 내놓은 가격은 정가에서 0이 두개나 빠진 값이었다. 지역도 성남으로 되어 있어 성희는 바로 쪽지를 보냈다. 답장으로 판매자가 보내온 주소는 같은 아파트 단지였다. 판매자에게 구매 의사를 전한 성희는 한 시간 후로 방문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성희는 해중을 만난다. 둘은 거래하기로 단번에 결정하는데 소파를 옮겨야 한다. 거리가 가까워 용달을 부르기가 뭐했다는 성희에게 해중은 쓰고 버려도 된다며 고무장갑을 건넨다. 자연스럽게 카트로 소파를 함께 옮긴다. 물 한 컵 달게 얻어 마신 해중은 볕 때문인지 자기 집과 다르게 여기 기운이 좋다며 하시는 일 잘되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떠나며 소설은 끝난다.
<언제나 양해를 구하는 양해중 씨의 19가지 그림자>는 양해중 씨가 양해를 구했던 19가지의 상황이 담긴 단편을 엮어 만든 소설집이다. 이 단편 <성희의 소파>에서 양해중은 유흥탐정앱으로 남자친구의 성매매 이력을 알고 막 파혼한 참이었다. 그 상황이 아주 짧게, 단 몇줄로 제시된다. 양해중은 아마도 약혼자가 샀을 소파를 팔아치우고 나서 신혼집으로 정했을 아파트를 떠난다. 같은 아파트 옆동에서 소파를 구매한 성희는 안정/안정감을 처음 자기 것으로 여기며 정착을 시작하고. 접점이라고는 같은 아파트단지에 거처한 잠깜 뿐인 둘의 마주침이 드리우는 ‘그림자’는 길다.
왜 길지.
양해중이 유흥탐정 앱을 깔고 나서 파혼했다는 것과 성희가 손아래 남자형제에게 맞고 자랐다는 정보만으로 소설이 왜 충분해질까.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와 잊고 있던 기억, 떠오르는 누군가의 이름 혹은 얼굴. 이 서사에게 마련된 자리가 이미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다가 다시 책의 두 인물이 대화하는 장면으로 돌아간다.
“와, 이렇게 볕이 잘 드는 집도 있었구나. 같은 아파트인데 너무 다르네요.”
“이쪽이 남향이더라고요. 옮기는 것까지 도와주시고 너무 고생하셔서 어떡하죠. 소파도 너무 새거고…”
“같이 살 사람이 산 건데 따로 살게 돼서 처치 곤란이었어요. 올리자마자 팔려서 오히려 절 도와주신 거죠.”
소설은 간결하게 마무리되는데 평범한 이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었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도 머물게 된다. 초면인 두 사람이 볕이 가득한 거실에서 대화하는 것에서 느껴지는 무해함과 평온함이 있다. 각자의 짐을 뒤로 하고 나아가는 인물들의 교점, 그 순간을 잠시 지켜봤다는 희열에서 나온 여운일까.
‘여성서사’라는 설명이 따라오는 콘텐츠를 자주 본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복수극이기도, 경험을 가감없이 녹여낸 드라마거나 로맨스일 때도 있고,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영화일 때도 있다. 어떤 걸 보더라도 자연히 내가 기대하게 되고 즐기는 것들이 있다. 사실적이라 보는 것만으로도 피로해지는 현실 묘사와 그걸 버티게 하는 주인공의 자조적인 위트. 고도의 조롱. 불합리한 현실에 ‘개사이다’로 응징하는 인물, 혹은 피와 무기가 난무하는 액션.
오드리 로드는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했다. (시스터 아웃사이더) 집을 해체하는 새로운 연장을 찾으려면 이것저것 써봐야겠지.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그런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테고 그런 의미에서 물고 씹고 뜯는 더 다양한 이야기를 기다린다. 자매애와 연대를 여러 각도에서 시험하고 사이다썰, 크고 작은 복수, 때로는 환각이나 빙의라는 연장을 써서라도 집을 두드리는 시도를 응원한다. 그러는 동시에, 언젠가는 그런 게 필요 없어지는 세상도 열심히 상상해보는 것이다. 성희와 해중의 마지막 장면은 그런 두 여자, 해방이라는 과제에서 자유로워진 사람들을 시작점에 데려다 놓았다는 점에서 내게 특별한 잔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