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동아서점. 강원도 여행 중에 컨디션 안좋은 어린이와 함께 갔다. 내가 가본 지역 서점 중 가장 시간을 오래 보내고 싶은(못했지만) 곳이었다. 역시 재밌는 그림책을 기똥차게 골라내는 어린이. 사전 정보가 없는데 어떻게 그러지 매번 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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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2-25 21: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애기가 엄마를 쏙 빼닮았나봐요 그나이에 벌써 안목이!!

유수 2023-02-26 14:28   좋아요 2 | URL
은오님한테 배우고 싶은 거 너무 많아요. 그 중 하나 댓글다는 법!ㅋㅋㅋ

난티나무 2023-02-27 02: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아서점 체크해두고 못 간 곳이에요. 다시 체크! 저는 예전에 완벽한 날들, 갔었는데 그때 생각 나요.^^
기똥차게 골라내는 어린이!!!!! 👏

유수 2023-02-27 21:31   좋아요 1 | URL
저는 완벽한 날들(첨 들어요?!)을 체크해두겠습니다. 듣던 만큼 좋았어요, 동아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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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전화는 보통 아주 공손하고 평범한 목소리로 시작되곤 했어. "제인 고든 박사님과 통화할 수 있을까요?"… 그런 다음-거의 예외 없이-나는 "쌍년"이라는 단어를 들었지. 가끔 그들은 그냥 내가 그들의 결혼생활을 망친 쌍년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어했어. 아니면 나 같은 쌍년들이, 한 무리의 페미나치 쌍년들이야말로 요즘 여자들의 문제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했거나. - P137

여자라면 늘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어. 그런 인사는 무척 감동적인 경우가 많았단다. "선생님이 제 인생을 바꿔놓으셨어요" …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을 생각은 없었어. 미국 중서부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하지만 그냥 악수만 하는 건 아주 남성적이고 무척 사업적으로 보일뿐더러 불충분하게 느껴졌어.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얼마쯤 힘을 주면서 그 접촉으로 연대를 전했어. - P139

소위 내 명성이란 게 인터넷이 존재하기 전에 정점을 찍은 덕에 내 이름을 구글에서 검색하거나 트위터와 댓글을 읽으면서 온종일 앉아 있지는 않았다는 거야. 이 모든 공간은 ‘남자들’로 오염돼 있어.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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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스스로 눈멀기는 우리의 내면적인 눈멂을 인정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이것을 고대 그리스인들은 하나의 관습으로 만들었고, 우리는 그 예술을 물려받은 것이다.”

앞으로 계속 보겠지만 젠더는 눈멂을 굴절시킨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는 고전 연극 속 맹인에 대한 재현이 여성에 대한 재현과 공통점이 많음을 지적하고 싶다. - P46

… 그러나 어둡고 광기에 가깝고, 도무지 알 수 없는 능력은 희극 속에서는 여성과 눈먼 남성을 대변한다.
… 고대 그리스의 눈먼 예언자 전통은 그리스도교 맥락에 맞춰 깔끔하게 번역된다. 여러분이 문자적으로 앞을 볼 때 여러분은 영원한 진리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스스로 눈멂은 인간의 시야 너머에 존재하는 그 진실을 보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이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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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택된’ 서사는 조작적이고 구성적이다. 폭력은 늘 예측과 상상력을 뛰어넘는 데 반해, 서사는 줄거리라는 체계화를 피하지 못한다. 또한 서사는 늘 해석된 것이기에 실상을 왜곡한다. …오카 마리는 말과 경험, 언어와 사건 사이의 뛰어넘을 수 없는 간극을 비판적으로 직시한다. - P90

모국어의 안전과 편안함은 당연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인가? 내 혀에 얹혀진, 내가 말할 수 있는 그 유일한 언어를 통해 나는 내 생각을 표현하고, 주어진 문화적 유산을 배우고, 타인과 소통한다. 그 언어,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단 하나의 언어는, 아렌트가 주장했고, 아메리가 믿었던 것처럼, 나와 밀착된 나의 떼어 낼 수 없는 부분이자 나의 가장 중요한 빼앗길 수 없는 정체성인가? - P106

그것은 원래 있는 의미를 고스란히 전달하겠다는 본질주의에 근거한 의미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다르게 말하기, 번역될 수 없는 것을 번역하려는 시도, 어려움이나 낯섦, 다양한 가능성이나 불가능성들을 감수하면서도 드러내어 보이고자 하는 약속이다. - P115

이런 맥락에서 ,말하기는 적극적이고 의식적인 주체적인 외향적 행위인 반면, 듣기는 수동적이고 반응적인 내향적 응대인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러한가? 발화자를 떠난 말은 듣기에 의해 취사 선택되고 재단된다. 듣는 사람이 들을 만한 내용과 그렇지 않은 내용을 가를 수 있다. 그리고 듣는 사람은 그 말을 해석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 P209

내가 선택하지 않은 언어의 규범적 틀 안에서 내가 나를 설명해야 한다는 이 불일치는, 서사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내가 사용해야 하는 언어의 통제할 수 없는 타자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 그 언어의 규범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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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 - 내 이름의 새로운 철자
오드리 로드 지음, 송섬별 옮김 / 디플롯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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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 신화. 오드리 로드의 조어라고 한다. ‘집’(캐리아쿠)에서부터 ‘아프리케테’에 이르는 여정이라는 책 소개가 알려주듯이 자서전이나 회고록이 아닌 본인 정체성의 기원을 찾는 탐구기록이다. 그런 면에서 더욱 다채롭게 읽힌다. 오드리 로드의 섹슈얼리티에 매료되며 읽을 수(내 케이스)도 있겠고 혼란과 자기 부정 속에서 스스로의 길을 만들며 대차게 걸어나가는 주인공의 성장소설로 읽는 것도 가능하다. 로드의 ‘시스터 아웃사이더’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었나 들여다 보는 렌즈가 되기도 한다. 자신에게 흔적을 남긴 여자들을 복기하며 그들과 스스로를 자미로 호명하는 신화적 여성 영웅 서사라고 하면 어떨까. 


우리 의식의 가장자리 어딘가에는 신화적 규범이라 부를 만한 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내가 그 기준에 맞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미국에서 이런 기준은 보통 백인에, 날씬하고 남성적이며, 젊고 이성애적이고, 기독교적인, 그리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라는 뜻이다. 권력은 이런 신화적 기준들을 활용해 사회 내부에 온갖 덫을 놓는다. (시스터 아웃사이더)


그래서 로드는 몸소 신화를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사랑했던 친구의 죽음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분열과 자아 혼란은 1950년대 미국의 정치, 사회, 문화의 파장과 함께 소용돌이친다. 마지막에 이르러서 만나는 ‘아프리케테’와의 화합은 경이롭기까지 한데 그간의 난관을 온몸으로 통과한 로드에게 주어지는 온당한 자격이자 당연한 귀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눈이 안좋고 호기심많은 이 소녀를 응원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나는 어떤 면에서는 완벽한 해피엔딩을 만난 셈이다. 오드리 로드 너무 좋아서 중심을 못잡는다. 언니 다 가져요.

“세상에는 사라지지 않는, 우리가 의지하는 진리들이 있다. 여름철엔 해가 북쪽으로 움직인다는 것, 얼음은 녹으면 작아진다는 것, 휘어진 바나나가 더 달다는 것. 아프리케테는 나에게 나의 뿌리를 우리가 가진 여성의 몸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가르쳐주었고, 여태까지 나는 그 정의를 배우기 위한 훈련을 해왔을 따름이었다.”432 

로드는 내면의 분노와 혐오를 구분하고 스스로가 직시할 것을 늘 강조했다. 그런 깨달음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그의 언어에 힘을 부여했는지 <자미>를 읽음으로 해서 구체화된다.


“우리의 역사가 가르쳐 준 게 있다면,억압의 외적 조건만을 변화시키는 걸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온전한 존재로 살아가려면, 억압이 개개인의 마음에 심어 둔 절망을 인식해야 한다. … 우리는 각자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이 혐오를 우리 손으로 끄집어내, 그것이 누구를 멸시하게 부추기는지 직시해야 한다. “251 <시스터 아웃사이더>

“자아 존중감은 이론적으로 말해 봐야 별 효과가 없다. 그런 척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 나는 나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고, 현재의 내가 아닌 것을 경험하는 고통을 무릅쓰며, 현재의 내 모습이 선사하는 달콤함을 맛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 335 <시스터 아웃사이더>

나를 혹독하게 들쑤셔대는 사람이 없다면, 내가 감히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는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314 <자미>


자미 아름답다고 깨방정과 주책 떨며 신봉하고 있지만ㅋㅋ 억울하고 비통한 에피소드가 그득한 이 책을 읽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았던 이유는 더 있다. 페이지(생각나는대로 사건과 트라우마를 나열해본다)마다 트라우마 생존자만이 지닌 강단과 여유가 서려 있기 때문이다. 

-제네비브, 유도라, 키티, 진저, 엠마, 비, 뮤리엘

-엄마

-학교

-인종차별, 성차별과 정체성 고민

-레즈비언 커뮤니티 안에서조차 느낀 분열과 고독

-불법 낙태 수술

-열악하고 부당한 노동환경, 시대의 정치적 혼돈과 가난

-멕시코와 워싱턴 견학, 할렘에서의 어린시절


김애령의 책 <듣기의 윤리>에서 저자는 아렌트를 인용하며 불멸성을 획득한 이야기의 조건을 짚는다. 

“그렇다면 불멸할 삶, 시와 역사로 기록되는 이야기는 곧 영웅들의 이야기뿐인가? 영웅들의 이야기만이 불멸할 가치가 있는가? 아렌트가 그것을 주장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녀는 “이야기가 드러내는 주인공은 어떤 영웅적 자질도 필요 없다”고 부연한다.”오히려 그녀는 불멸성을 획득할 위대함은 용기와 대담성, “기꺼이 행위하고 말하려는 의지”에 있다고 지적한다. .. 그렇다면 이야기하기 자체가 곧 용기와 대담성의 표출이며, 세계에서의 출현 자체가 곧 가치 있는 삶, 한정된 사적 필멸성의 영역을 벗어나는 자유를 의미하게 된다. 40 <듣기의 윤리>

로드는 피해자 혹은 승리자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로서 모든 것을 재정의했다. 고통스럽고 불완전한 스스로를 드러내며 자미는 온전한 연대기가 되고 로드의 자전신화는 마침표를 찍었다.



마무리 못하겠어. 마냥 벅차. 오드리 로드 사랑해요. 사우스와 절구, 11챕터의 모든 문장도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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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02-22 16: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이 책 읽고 있어요. 오드리의 엄마가 마야 안젤루의 엄마랑 겹쳐 보이는데 하얀 피부의 엄마를 갖고 있는 흑인 여자아이의 마음을… 전 모르는데 넘 두근두근하고요.
김애령… 기억해두겠어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자주자주 오소서!!

유수 2023-02-22 21:47   좋아요 1 | URL
저 마야 안젤루 안읽어봐서 너무 궁금해요. 뭐부터 읽을까요. 새장 책 말씀하시나요? 쓰는 건 요원하나 자주는 오죠! 자미도 단발님이 리뷰 먼저 쓰라고 해서 쓴 걸요??!! 김애령 <듣기의 윤리>도 너무 좋다는…

난티나무 2023-02-22 1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책 읽기가 고통스럽지 않았다!!!! 저도 백자평 쓰면서 그 비슷한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길이 땜에 삭제함요.ㅋㅋㅋ
유수님이 정리도 잘 해주시고 글 잘 써주셔서 늠 좋아요!!!!!!!!!!! 😍 11챕터 다시 읽어야지^^

유수 2023-02-22 21:44   좋아요 1 | URL
같은 책 읽는 즐거움 너무 좋다!! 정리는 뭐 아시다시피 책은 크고 저의 역량은 작다는 걸 또 느꼈지만ㅋㅋㅋㅋ 자미는 사랑입니다. 난티님 백자평 말고도 길게 또 써주세요.

오후 2023-11-27 0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미도 좋지만 이 글도...💗 잘 읽었습니다!

유수 2023-11-27 10:28   좋아요 0 | URL
다시 읽어보니까 제 얘기는 그냥 와앙 좋아 좋다..뿐이네요 ㅎㅎ 어떻게 읽으셨는지 넘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