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의 요새 - 성폭력, 책임, 화해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박선아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법철학자 마사 너스바움”(책 뒷표지). 법이랑도 멀고 철학이랑도 먼 나는 바짝 쫄아서 책을 펼쳤던 것 같다. 한데 뒤로 갈수록 동시대 사건들을 많이 분석하는 덕분도 있고, 예상했던 것보다 쉬이 읽혀서 저자와 역자에게 황송한 마음으로 읽었다.(오타는 좀 보였음동) 학구적이고 원론적인 내용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현실과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책은 뜨겁고 참여적이다. (표지가 찰떡이에욤)


“자율성과 주체성의 부정을 수반하는 수단화에는 깊숙한 내적 근원이 있다. 바로 교만이라는 악이다.“81


교만이라는 악덕이 구축해온 요새, 혹은 요새가 견고하게 방호해온 교만 자체. 다른 해악들과 차별화되는 교만의 특성을 단테의 신곡 중 연옥편을 가져와 설명한다. 신곡을 안 읽었고, 안 읽어본 얘기에 집중을 잘 못하는 편인데.. 교만을 형상화한 단테의 묘사가 책의 적재적소(철학이든 형법과 소송이든 판례에서든)에서 논지를 확장시키는 걸 볼 수 있었다. 책과 별개로 그런 통찰이 감탄스러운 데가 있다. 이런 게 철학인 걸까?? 


… 그들은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인간과 유사한 형상이 고리 모양으로 제 몸을 굽혀서 세상을 내다볼 수도 다른 사람들을 볼 수도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들의 얼굴로는 밖을 내다볼 수 없기에 오로지 자기 자신만 들여다보게 되었고, 밖을 볼 수도 밖에서 보일 수도 없게 된다. 놀란 단테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라고 외친다. 베르길리우스는 그에게 “그들 고통의 무거운 짐”이 그들을 땅에 닿도록 짓누른다고 말한다. … 그들은 인간이면서도 눈으로 다른 사람들을 온전하게 보지 않으며, 온전한 인간성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 자신만을 보는 것이다.

이 불운한 영혼들은 누구인가? ..단테가 이들의 무거운 악덕에 부여한 이름은 ‘교만’이었다. 그는 이 악덕이 나르시시스트적인 자기 집착의 다른 형태인 원망, 만성적 질투, 탐욕과 같은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교만으로 인한 자기 도취야말로 그 본연의 해악 외에도 다른 악덕들을 더욱 나쁘게 만든다는 맥락에서 가장 완전한 악의 수장이다.58


… 반면 교만한 자들에게는 자기 외에는 그 무엇도 실재가 아니다. 교만은 그 어떤 죄악보다도 외부의 실재와 맺는 근본적인 관계, 인간성의 기본 특성인 그 관계를 앗아가 버린다. 교만한 자들은 외부의 객체들에 대해 잘못된 선택을 하는 지점에 닿지도 못한다. 그들은 별개의 사물을 전혀 보지 못하고 오직 자신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세계와 관계하는 모든 일은 수단화의 형태를 띤다.63


책은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주체성과 자율성이 손상된 개인, 여성이 대상화되어온 맥락을 서술한다. 

2부에서는 “이름조차 없었던 가해행위”였던 성희롱이 법개정을 통해 이룬 진보와 그 한계에 대해서,

3부는 요새의 구체적인 모습, 권력을 가진 자들이 가해자로 군림하는 것을 가능케 했던 구조적 병폐와 개혁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세계적으로 저명한(했던) 공연 예술계 인사들의 성범죄를 짚어보는 7장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마사 누스바움은 예술적으로 우리를 고취시켰던 사람이 타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의 분노와 허탈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시대라도 인간의 사랑과 자유가 종교와 권위를 항상 이긴다고 믿은 모차르트와 오직 사랑만이 탐욕의 잔인함으로부터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고 암시했던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를 우리 시대에서 최고로 잘 해석해 내는 이들 가운데 하나인 이 남자가 완벽한 통제 아래 젊은 예술가들을 괴롭히며 그들에게서 미래의 사랑과 기쁨을 빼앗아가는 장본인이라는 사실은 매우 잔인한 역설이다.292 (리바인)



수치를 모르는 이들의 작업물은 어떻게 되는가? … 물론 예술의 가치는 존재 그 자체다. 그렇다면 그들의 음악을 듣지 않을 이유는 없다. 적어도 리바인의 작업은 들을 수 있고(뒤투아나 대니얼스의 작업은 안 들을 수 있다.) 거기에서 감동을 받을 수도 경탄할 수도 있다. 듣는 내내 우리는 인간의 마음과 사랑과 웃음이 해로운 잔인함과 어두컴컴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숙고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315



음반이고 책이고 태워야 하나.. 아니 책이 무슨 죄야. 어디가서 그 영화 제일 좋아했던 게 나새끼라고 말도 못해.. 왜 죄스러움이 내 몫인 거야ㅅㅂ.. 황망했던 감정이 다시 떠올라 나는 아직 다 추스르지 못했는데.. 이어서 마사 누스바움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한참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온 숱한 가해 증언들은 지지부진 사라졌..사라지게 했으면서 은퇴를 앞두었거나 병들고 노쇠해지고 나서야 이들이 끌어내려진 것이 과연 온당할까,라는 질문. 가해자들의 효용이 다했기에, 말하자면 버리는 카드처럼 떼어주고 끝나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공연 예술계의 기회주의적인 도덕적 기준과 한참 늦은 피해자 구제에 대해서 짚는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대니얼스가 성악가로서 전성기를 지나지 않았을 때도 이렇게 용기 있는 입장을 취했을까?”288


“리바인이 예술적 기량이 뛰어나서 재정적 성공의 주요 원천이었을 때에는 다들 그를 비호하느라 조사를 거부했다. 리바인이 늙고 병들어서 더 이상 돈을 벌어다 주지도 못하고 예술을 창조하지 못하게 되자, 그래서 다른 누구를 학대하지도 못할 때가 되어서야 그들은 피해자들을 보호했다.”297


이건 중요한 물음이다. 미투의 시대를 지나고 있지만 범죄자들에게 죄를 묻고 마땅한 형벌을 지우는 건 사실 타이밍의 문제라고 느껴질 때가 많으니까. “요새”를 간과해서는 안될 또 하나의 이유다.    


”스타 파워가 부패하는 것을 막을 해결책이 있을까? 앞서 본 네 명과 같이 그들의 가해 행위와 그들의 스타파워가 다 지나간 뒤에야 정의가 구현되는, 다 늙은 스타들을 위한 해결책이 아니라 스타가 여전히 빛나고 있을 때 가해의 싹을 애초에 자를 수 있는 좋은 해결책은 없을까?306


”나아갈 길 - 악의 없는 책임의 의무, 굴복 없는 너그러움“이라는 제목의 결론은 희망적이다. 아니, 희망적이라기 보다는 희망을 가지라고, 그냥 가지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느낌이랄까. 책 중간중간 교만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도 이상주의적이었고. 

에이 근데 읽는 내가 그렇게 느낄 것도 저자는 이미 알고 계시고 ㅋㅋ 희망이 있든 희망이 없든 이렇게 살거니까 그 말이 맞을 거라고 눈 딱 감아버리기로 한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이 페이지를 찍어 공유했다. 


“정당화된 비난과 끝없는 경계의 시대에 나는 페미니스트들이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기 바라는 여성들처럼(미투의 시작을 다룬 그 영화의 제목은 <그녀가 말했다>였지..,) 우리는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기로 마음먹어야 한다. 우리에게 동의하거나 어쩌면 동의하지 않는 남성들의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 행실이 좋았던 이들과 안 좋았던 이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상상력의 문화인 대화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어느 정도는 아직 정당하지도 않고 정당화될 수도 없는 신뢰를 가져야 한다. 이성이 지지해 줄 희망이 없는 곳에서도(사실 희망은 언제나 이성에 의해 완벽하게 지지받지 못한다.) 페미니스트들은 희망하는 사람들이 되어야만 한다.391





+레이디 가가 언급 맞닥뜨려서 무장해제됨ㅋㅋ 

+케이트 만 <다운 걸> 올해 읽은 책들에서만 몇번째 언급되는데 번역서 나왔음 좋겠다… 

+미국적 교만, 젠더적 교만 다룬 부분도 특히 좋았다. 칼날이 역시 더 벼려진 게 느껴져.

하지만 또 기억해야 할 것은, 교만의 문제를 온전히 개인에게 책임 지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교만한 자들은 교만에 빠지지 않기가 쉽지 않은 이 사회를 만든 장본인은 아니다. 많은 가능성을 가졌던 소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더라면 트라야누스가 될 수 있었을 그 소년이 잘못된 길로 빠졌을 경우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자비심을 느낄 여지가 생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이 교만한 사람들을 얼어붙은 지옥으로 밀어 넣기보다는 화해와 개심이라는 대안이 나을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 P85

그래서 법의 쓸모가 대두된다. 특정 개인과 상관이 없다는 점, 의지할 데 없는 선의의 사람들을 지켜 준다는 점, 여성의 평등을 위한 투쟁에 개인적으로 관여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의 행위에 대하여 명백한 법의 효용만을 보면 된다는 점이 바로 법의 유용함이다. - P159

직장 내 성희롱은 달랐다. 범죄가 만연한 곳인데도 법이 그것을 단지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법 자체가 이미 교만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남성들은 다른 남성들을 들여다보되 여성들의 경험이나 직장에서 여성의 자율성이 천편일률적으로 부정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하지 않았다. 법은 남성들과 함께 자기 내부만을 들여다본 것이다. - P198

때때로 사람들은 한 가지 종류의 교만에 좀 더 강력하게 매달리는데, 이는 다른 종류의 교만에 대해 불안을 느낄 때 특히 두드러진다. 계급, 인종, 정치 권력, 직업, 다른 지위상의 이점들에서 취약함을 느낄 때 남성들이 매달릴 수 있는 단 하나의 교만은 바로 남성이라는 젠더적 교만이다. 이러한 젠더적 교만은 모든 사회에서 그리고 그 사회 내 모든 집단 속에서 학습되며, 내세울 만한 다른 강점이 없는 남성들에게 우월감을 느낄 여지를 준다.

젠더적 교만은 여성을 법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종속시키는 문화에서는 대가를 거의 치르지 않아도 되며 아주 손쉽게 공고화된다. - P66

세상에는 창작이라는 영역 내에서의 내면적 자유와 그 바깥에서 살아가는 방식 사이의 경계를 완벽하게 유지할 수 있는 많은 예술가들이 있다. 하지만 이 신화는 너무도 만연해서 많은 이들에게 자기 충족적인 예언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성공을 위해 사회 규범을 깨뜨리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진심으로 믿는 예술가는 규범을 위반하지 않고서는 창조할 수 없는 습관에 물들어 버린다. 흥미롭게도 그 신화라는 것은 압도적으로 남성적 창조성에 관한 것이고, 남성들에 의해서 남성들을 위해 쓰인다. 그 신화가 주로 성적 규범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창조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도둑질이나 강도짓을 허용된다고(?) 믿는 예술가는 내가 아는 한 없다. 이는 그저 소수의 재능 있는 남성들이 상습적으로 자신들이 성적 우위에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실재를 인정하지 앟ㄴ는 남성적 교만에 의거해 갈망해온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쓰는 간편한 방법일 뿐이다. - P270

차이가 있다면 탐욕적인 사람들은 적어도 땅(돈과 소유물로 해석할 수 있겠다)을 보지만 교만한 사람들은 몸을 휘어 자기 자신만을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돈은 단순히 신분 상승을 위한 토큰이어서 그 자체로는 차이가 없다. 따라서 탐욕과 교만은 함께 잘 어울리고, 교만은 탐욕이 변할 수 있는 문을 열지 못하게 만든다.
교만과 탐욕은 에로티시즘을 망가뜨려 여성을 돈과 신분의 토큰으로 보는 뻔한 시선으로 이끈다.
- P74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23-07-09 08: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어려운 책 읽고도 찰떡같이 써 주셨네요…중간중간 마음의소리 추임새 뭔가 내가 쓴거 같다 ㅋㅋㅋㅋㅋ(나는 무식해서 어려운 책 이제 잘 못 볼거 같아요…)

유수 2023-07-09 18:17   좋아요 1 | URL
괄호 속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찰떡이라는 말씀 기쁘네유…

은오 2023-07-11 0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단테 신곡 가져와서 한 비유가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저는 신곡을 장바구니에 담았고...... 사놓고 안 읽을 것 같지만 책이 너무 예쁘게 빠져서 인테리어용으로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유수 2023-07-11 08:41   좋아요 2 | URL
저는 신곡 그림책을 담았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중에 신곡 인테리어 사진 보여줘요. 책장속 지옥 연옥 천국..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7-12 22:14   좋아요 3 | URL
아니 근데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기 골 뭐 할아버지는 어디 미운 놈 있으먼 신곡 권한다 그랬구 ㅋㅋㅋ저두 지옥까지 보고는 아 진짜 개재미없네 이러고 연옥 안 가고 그냥 지옥에 남은지가 몇 년 됐네요...ㅋㅋㅋㅋㅋㅋ

유수 2023-07-12 23:44   좋아요 2 | URL
미운 놈을 골방에서 미워하지(제 얘기) 책을 권하는 분이 계시군요. ㅎㅎㅎ 저도 이 책 아니었으면 그냥 무지렁이(계속 무지렁이)로 살았을걸요. 마사 누스바움이 날 미워해?!

은오 2023-07-13 05:37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그나마 지옥파트는 읽을만하다는데 지옥읽기도 지옥인가봐요 ㅋㅋㅋㅋㅋ 가리지 않고 다 읽으시는 유열님께도 그렇다면.. 아아 난.. 아니근데 열린책들에서 나온 신곡 합본을 보십시오.. 너무 아름답지않나요? 제목도 신곡인게 인테리어용으로 허세채우기에딱..

반유행열반인 2023-07-13 09:34   좋아요 1 | URL
유수님 마사 너스봄이 견제할 정도의 유망주?? ㅋㅋ은오님 제 생각에 지옥 잘 그린 작품은 ‘신과 함께 저승편’(영화 말고 만화)으로 족하지 싶어요 ㅎㅎㅎ신곡은 기독교 세계관 궁금한 분들한테나 도움되지 않을까... 미감도 감동도 저한테는 그닥... (저자 옛날에 죽은 책은 까도 괜찮...안 죽었어도 까지만...ㅋㅋㅋㅋ)
 

 공사다망해서 잘 읽지도 못하지만 짧게라도 쓰다보면 뭐라도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페이퍼..


1. <교만의 요새>, 마사 누스바움 


마사 누스바움, 처음 읽는다. 어려울 것 같았는데 그래도 따라갈 만하다. 교만이라는 특징을 뽑아내 권력남용과 성폭력을 분석한다. 성차별주의에서 주체성과 자율성이라는 두 축이 어떻게 삭제되는지, 거기에서 파생된 대상화는 어떻게 여성혐오와 연결되는지, 직장 내 성희롱과 성폭력을 미국 법에서는 어떻게 다뤄왔는지, 미투 이후 요구되는 정의는, 법은 어떻게 그 명징함을 확보해야 할 것인지를 풀어낸다. 
















2. <내가 없는 쓰기>, 이수명

단숨에 읽고, 책장을 넘기다 쓸어보다 그렇게 다시 보고, 아껴하며(틀리려나..아끼며, 아껴가며,..보다 왠지 이게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은뎅) 읽는다. 이수명 시인의 산문에 깊이 빠져 있다. 작년에 읽었던 <나는 칠성슈퍼를 보았다>도 상당히 좋아했는데 이 책은 더 맞춤하게 지금 내 품에 와 있다. 토막 글이 월별로 모여있고 어떤 시기와 어떤 날씨, 어떤 상태를 생각하고 이입하기에 좋아서 더 그런 듯하다. 입술을 움직여서 그 존재를 다른 차원에 구현해보게 하는 문장들.


“쓰지 않는 것이 자유로운 상태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지금까지는 언제나 반대의 상황에서 생각했기 때문이다. 쓰는 것이 자유로운 것 말이다. 쓸 떄, 발견하고 외롭다. 쓸 때, 벗어나고 가벼워진다.

문득 쓸 때 자유롭다는 것은 쓰는 것이 쓰지 않는 것을 포괄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쓰는 것은 쓰지 않는, 쓰지 못하는 것을 알아보게 하는 넓이를 지닌다. 쓸 때 쓰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쓰는 것이 자유로운 것이다. 그래서 자유로운 쓰지 않음이 가능해진다.”88


















3. <일 년 내내 여자의 문장만 읽기로 했다>, 김이경

시사인에서 종종 보았던 칼럼이다. 여여한 독서. 여자가 쓰고 여자가 읽은 여여한 독서. 거기다 나는 여자한테 선물받았으니(고마워요. 고마워요.) 그야말로 여!여!여!한 읽기. 이 책을 받아 읽기 시작한 날 다시 궤도로 돌아온 느낌이라 다 책 선물 덕분이라 여기며 계신 곳으로 큰 절 올립니다ㅋㅋㅋㅋ

칼럼을 매호마다 챙겨보지는 못했는데 책으로 묶여 나오니 그때보다 글이 내밀한 분위기인 건 나만의 느낌일지. 서평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다. 가이드해주는 책에 대한 배경 설명과 소개에 매번 읽을 책 리스트를 추가하게 되는 것은 당연. 잘 쓰인 서평집은 역시 우직하게 읽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밖에도 펼쳐져 있는 것들이 너무 많은데.. 문어발 자제하고 이걸 끝내는 것부터 시작하겠다는 다짐! 맨날 다짐으로 마무리하는 주입식 교육의 성공적 피세뇌자 되시겠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23-07-06 12: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짐 근데 말이 좋지 않나요. 마늘을 콩콩 다짐. 고기를 곱게 다짐. 다 먹기 좋을 것 같아서 좋다. 주입식이어도 좋다. 문어발이랑 같이 먹으면 맛있겠다.

유수 2023-07-06 22:16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러네요. 급 환기됨. 침도는 얘기를 참하게도 해주신다. 오늘 저녁 뭐 드셨어요.

반유행열반인 2023-07-06 22:18   좋아요 1 | URL
가장 마지막에 먹은 건 멜론, 방금은 늦게 배달된 어어어엄청 큰 수박을 힘겹게 냉장고에 모셔두고 왔습니다 ㅎㅎ(비빔쫄면라면 먹었다고 말하기 부끄러워서 과일 색칠 ㅋㅋㅋ) 저도 물어봐 드릴까요???? ㅋㅋㅋㅋ

유수 2023-07-06 22:20   좋아요 1 | URL
센스쟁이. 묻지 마세요😂😂😂 보부아르 서문 궁금해서 책 도서관에 있나 구경중이에요 ㅋㅋ 화제 돌려버렷!

반유행열반인 2023-07-06 22:24   좋아요 0 | URL
사드를 불태워야 하는가? (아니) 하는 거 같은데…번역자나 출판사가 뭔가 이거 이상한 책 아니구 우리 보부아르 선생님도 칭찬 반 비판 반 하신 책이야 이러고 껴묻거리로 넣어 둔 거 같아요 ㅋㅋㅋ근데 이 번역가 전에 소돔120일 때보니 뭔 러일전쟁 종군기자였던가? 오래오래 전에 소천하셨을 거 같고 동서책은 늘 일본어판 중역이 의심되고 그래서 그런지 원래 어렵게 쓰는 분이라 그런지 난 뭔말인지 잘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ㅋㅋㅋㅋ

유수 2023-07-06 22:28   좋아요 1 | URL
우리 선생님도 칭찬반 비판반 하신 책이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반님은 독후감도 독후감이신데 물어보면 척척 대답해주는 게 너무 신기하여요. 자꾸 질문하고 싶어요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7-06 22:29   좋아요 1 | URL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제가 알아서 걸러내고 답해드림? ㅋㅋㅋㅋ
 



그가 원하는 것을 별 분투 없이 얻을 때는 결혼의 유용한 합의들이 잘 굴러간다. 하지만 그의 이익이 명령하는 일 앞에서는 어떤 장애물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 P49

젠더적 교만은 여성을 법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종속시키는 문화에서는 대가를 거의 치르지 않아도 되며 아주 손쉽게 공고화된다 - P67

트라야누스는 보고 듣는 미덕을 통하여 계급에서나 젠더에서나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여성의 완전한 인간성을 인식했다. 하지만 위계 사회에서 지배 집단은 이런 도덕성을 갖기 어렵다. - P85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3-07-05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05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05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05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05 2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05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 괴테와 마주앉는 시간
전영애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 읽어주는 어른이 계시다는 것. 고단함 속 들려오는 “박수 소리”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3-07-02 0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02 1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곡 2023-07-03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잘 읽었답니다 유수님 하반기 첫 월요일 오늘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유수 2023-07-03 11:57   좋아요 1 | URL
히히 서곡님 페이퍼 찾아보러 가야겠어요. 예상했던 것보다 가슴을 흔드는 책이더라구요.

서곡 2023-07-03 14: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페이퍼들을 지금 다 비공개로 돌려서리...ㅎㅎ 감사합니다 오후 잘 보내세요
 

밑줄

“다시보기-되돌아보는 행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행위, 새로운 비평적 지향점을 가지고 낡은 텍스트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 -는 여자들에게 문화사의 한 장을 차지한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우리가 흠뻑 빠져있는 전제들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는 이 충동은, 여자들에게는, 정체성을 찾는 행위 이상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보자면 그것은 남자들이 지배하는 사회의 자기파괴성을 지하는 행위이다. 급진적인 문학비평 작업을 수행하는 것, 그런 충동을 가지는 것은 [물론] 페미니스트의 성향이지만,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상상하도록 인도되어 왔는지, 우리의 언어가 어떻게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동시에 옥죄어 왔는지, 이름을 붙인다는 행위가 지금까지 어떻게 남자의 특권일 수 있었는지, 우리가 어떤 식으로 [다시] 바라보고 새롭게 이름 붙이는 행위를 시작할 수 있는지 - 그래서 숨을 쉬며 살 수 있는지 ㅡ에 대해서 어떤 실마리를제공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는 작업이다. 만약 우리가 낡은 정치 질서가 모든 방향에서 새롭게 일군 혁명에 영향력을 다시해사하게 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면, 성정체성의 개념에서 변화를 이루어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필수적일 것이다. <거짓말, 비밀, 그리고 침묵에 대하여> 리치 산문 재인용 - P166

하지만, 리치가 지적한 바가 있듯이, 이런 ‘특별하다‘는 느낌이 한편으로 우리를 여자이기에 당면하는 여성의 현실에서 해방시켜주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우리 자신을 끝없는 죄의식과 분노, 희생자 의식과 좌절감의 늪에 빠지게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독서를 하고 생각이라는 것을 할 시간을 쥐어짜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약한 할머니, 아픈어머니, 일하느라 녹초가 된 남편,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뭔가를 해달라는 아이들에게 쉽게 짜증을 내거나,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도 중산층 주부의 존재양식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우울해하거나,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꿈과 시간을 희생해야 하는 역할로 인해 좌절감을 느끼면서, 속으로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데?‘라는 희생자 의식과 분노를 느끼곤 하기 때문이다. - P170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3-06-13 1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름 이 주제의 책들을 리스트라도 따라가고 있었는데 이 책은 덕분에 알고 갑니다! 관심 주제인데 아직 못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유수 2023-06-30 10:52   좋아요 1 | URL
늦은 댓글 달아요. 얄라알라님께 도움 되어서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