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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류 인간", 그리고 "한 사람"이라는 표현의 행간에는, 바랐던 선의와 선의를 바라는 마음이 우세와 열세를 결정하는 다른 여러 체계 가운데서도 특히 젠더에 적잖이 좌우된다는 현실이 감추어져 있다. - P22

또한 곧 확인하겠지만,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는 목조르기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 같은 몰이해가 여성혐오를 먹이고 살찌우는 유의 치명적 무지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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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변증법 - 페미니스트 혁명을 위하여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지음, 김민예숙.유숙열 옮김 / 꾸리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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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대학교육을 받은 가정주부와 전통적인 가정주부의 차이점이란 결혼지옥marital hell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전문용어일 뿐이었다.106





이런 문장을 마주할 때마다 당신 말이 옳다고 체념조로 받아들이면서도 속에선 무언가 울컥한다. 이미 쌓여 있는 “교화된 여성”의 자기고백에 내 버전도 얹어야 뒤끝없이 받아들일 수 있으려나. 출산과 양육이라는 본인의 선택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성의 변증법>이라는 제목 앞에서 감상을 늘어놓는 것이야말로 무람한 짓이 아닌지. 본인의 선택이지만 본인의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 또한 책에서 이미 입증하고 있는 바, 내 결혼지옥marital hell도 오래 전 시작한 걸까.


남자를, 콕 집어 말하자면 내 배우자를, 계급적 존재로 보게 되면서부터.


그가 나를 동등한 인간으로 본다는 것이 이 관계의 중추였(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나는 그를 동등한 인간으로 생각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서부터.


“그러나 어느 이야기가 나를 받아 줄 것인가.”
(<탈혼기>, 유혜담)


여전히 나의 당사자성은 타인에게 전유될 뿐이다. 나는 피해자로 호명되고 싶은가. 가부장제는 절대적 가해자이고 나는 맥없이 무력할 뿐인가. <페미니즘, 한계에서 시작하다>의 스즈키 스즈미는 우에노 지즈코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피해 알리기, 피해자 벗어나기 사이에서 고민하는” 스스로의 속내를 고백한다.


그럴 때 저는 짓밟힌 사람이라는 딱지가 진부하고 또 단순하다고 느꼈습니다. 심지어 피해자라는 말이 방해가 된다고 여겼어요. 피해자란 말에 “엿이나 처먹어”라 내뱉으면서 부당하고 폭력적인 힘과 맞서 싸우기, 이게 모순으로 보일지언정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19


서구 사상에 내재한 성차별주의의 핵심을 분해하면서 “혁명”을 향해 돌진하는 파이어스톤의 언어는 통쾌하다. “급진”의 맥락을 더듬어서라도 좇아 읽는 것은 짜릿하고, 미진한 나의 상상력을 확장시켜준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
여성과 아이들이 겪는 특권적인 노예제도(보호)는 자유가 아니다. 왜냐하면 자기조절 self regulation이 자유의 기초이고 의존은 불평등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141
“키우는” 아동에게 찔끔찔끔 자율성을 얹어주면서 생색내는 “보호자”인 나는, 통쾌하다는 본인의 감상과 행동에 바로 옮기지 못하는 실상의 거리가 실감 나 새삼 부끄럽다. 이런 식으로 매번 나를 향해 돌아오고 마는 화살. 불만족스러운 상황에서 기인한, 내가 자초한 자기처벌일까.


남성들의 양육 불모성, 아동기라는 개념의 맹목적 강화, 그에 따른 모성의 신화화에 동의하면서도, 단지 출산과 양육을 전면 반대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사이버네틱 코뮤니즘, 인공생식은 기존의 믿음 체계를 부순다는 점에서 가히 위력적이지만 압제, 혹은 타성이라는 이분 세계 속에서 본인이 피해자인지 아닌지를 점검하는 여성들에게 문체만큼 실질적인 돌파구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책을 읽기 전에 변증법을 간단히라도 이해해보려고 읽어본 청소년 철학서에서는 변증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변증법이란 정-반-합이 경합을 통해 이뤄가는 논증이며 이전의 단계가 단순히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부정의 부정을 거쳐 질적 발전을 이루는 비유하자면 나선형의, 사유방식이라고. 몇 가지 생각해 볼 점은 남았지만 파이어스톤의 이 책이 내게 그 “지양”을 개시해주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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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31 2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31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31 2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31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1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동년배의 글쓰기..라는 걸 개인적으로 떼어놓고 읽을 수 없고 솔직히 많이 부럽다. 이런 류의 정직함에 늘 무장해제되는 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려면 어떻게 스스로를 훈련해야 할까, 읽으면서 계속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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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8-02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읽기 시작했어요!! 땡투도 했고요~! 💕

유수 2023-08-02 23:54   좋아요 1 | URL
땡투 잘 못 받아봐서 바로 은오님이시구나! 몽글몽글했지롱요
 

시몬 드 보부아르는 말한다. "십대 소녀는 비밀의 감각과 우울한 고독"에 갇힐 수밖에 없다. "그 소녀는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다고 확신한다. 그에게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유일하게 열정적인관계다. 그녀는 자신의 고독에 도취되어 있다. 자신은 다르다고, 우월하다고, 특별하다고 느낀다." 이 묘사에 맞는 캐릭터들이 블록버스터 영 어덜트 소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이다. 이런 시리즈의 주인공이 디스토피아 세계관 안에 있다면 고독하고 특별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완강히 밀어붙이고, 로맨스물의 주인공이라면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인정하기 전에 표면적으로는 거부하는 척한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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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개개인의 성공에 큰 점수를 주고 개인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해왔기에, 더욱 성공하고자 내린 여성의 선택을 비난하는 것은 "페미니스트적"이지 않다고 여긴다. 그 선택이라는 것이 결국 사회적 기대와 미모 노동이라는 예측 불가한 배당금에 의해 축소되고 강요되는 상황일지라도 그렇다. 이 기준 안에서는 필연적으로 그 여성이 젊고 부유하고 관습적으로 매력적일 때 점수를 딴다. 위도우즈는 주장한다. "스스로 선택했다는 사실 하나가 부당하거나 착취적인 관습이나 행동을 갑자기마법처럼 정당하거나 비착취적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주류 페미니즘은 여성의 선택-우리의 문제뿐만 아니라-이 정치적임을 인정하는 데 주저해왔고 "여성의 임파워먼트"라는 비전을 강조했지만, 결국 이 임파워먼트에서는 힘을 얻기는커녕 빼앗긴다고 느껴지게 했다.
문제의 뿌리는 애초에 주류 페미니즘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와 타협하여 주류가 되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래지속된 자격 요건들은 버리지 않았고 이름만 달라졌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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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7-28 20: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거 소개 읽고왔는데 짱재밌어보여요!!!!! 유수님도 조만간 차단해야겠습니다 제 통장털이범 유수님.. 재밌나요 이거? 땡투각이 잡힙니다. 마침 에세이류 사둔거 다읽어서 찾아나서던 참!! 😆

유수 2023-07-28 20:48   좋아요 2 | URL
여행왔는데 중고서점갔다가 마침 손에 닿아서 샀어요. 책을 폈는데 추천사가 어마무시하네요? 밀레니얼 어쩌구 이름 붙이기 좋은 기획력과 통찰이 담긴 글이에요. 어째 어감이 좀 그런데 비꼬는 거 아니구 상찬임ㅋㅋ그래서 이제 페미니즘으로 뭘 해야 하지?라는 요즘 제 고민에도 참고가 되어서 밑줄 그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7-28 21:24   좋아요 3 | URL
은오님한테도 내 페이퍼 홍보...중간중간 책 먼저 읽고 따라가도록 분철 리뷰 시도함...(오늘의 자뻑 좀 오래가네 ㅋㅋㅋ유수님 포스트에서 횡포 ㅋㅋㅋㅋㅋ) 시공간을 넘어 같이 읽기 가능한 트릭미러 ㅋㅋㅋㅋㅋ(쓰고 보니 맥락 없음 ㅋㅋㅋㅋ)

은오 2023-07-28 21:53   좋아요 3 | URL
아니 분철리뷰는 처음입니다 ㅋㅋㅋㅋㅋ 4개 맞죠?! 제가 책 읽는동안 하트 찍힐테니 쫌만 기다리세요 유열님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