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게모니적 남성성의 대상물처럼 존재하는 억압적인 여성성을 거부하다 보니, 이를 본질화하여 저항을 위한 실체적 진실처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는 남성 중심주의만큼이나, 페미니즘에서도 여성성은 탐구되기보다는 쉽게 가치 절하된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생애 과정을 통해 그의 인격을 거듭해 재구성하며 살아간다. 여성이 자신의 ‘여성성’을 표현하고 사유하는 방법 역시 지속적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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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주 잠깐 <마주>의 나리가 생각났다. 소설의 주인공 나리는 본인이 얼마나 ’여성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아주 잘 안다. 학창시절 친구들 사이에서부터, 대학생 때 남자친구에게서, 가족 안에서, 사회에서. 스스로가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인식하고 있다. 나 역시 그동안 ”사회화“라는 단어를 농담조로 말할 때 그런 의미로 갖다 썼는지도 모르겠다. 사회가 나를 뭐라고 부르는지 파악하고 그걸 내재화하거나.. 혹은 수행하기. 그 과정에서 잡음이 나지 않도록 매끄럽게 처신하는 것.
나리는 그런 균열감을 지고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그게 친밀감을 형성하는 방식(때로는 전략)일 때조차도 스스로가 귀엽고 쉬폰 원피스가 잘 어울리고 웃을 때 반달 눈이 된다는 매력이 정작 내면에서는 이질감을 불러 일으킨다는 걸 상기하는 여성.
그나저나 이번 책도 너무 좋다. 김현미 교수님의 적확함, 특히 현장 진단(?)이라고 해야할 지 매번 탄복한다. 내게는 동시대를 가장 잘 읽고 풀어주는 저자 중의 한 분.

어떤 점에서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계급 격차와 불평등은 페미니즘이 주창해온 여성들 간의 연대가 매우 순진한 각본임을 환기한다. 하지만 노동 유연화와 일상의 상품화라는 구조에 포섭된 채 현대의 일터를 경험하는 여성들은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끼어들기’ 전략을 통해 ’썩은 파이‘를 나눠 갖는 것이 과연 평등인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 P20
… ‘마음의 보수화‘를 겪는다. 이들은 뿌리 박힌 사회적 불평등은 개인이 개선하기 어려우니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동원하여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공적이라 인식한다. 이 과정은 청년 세대가 타인의 삶을 평가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오찬호의 지적에 따르면 이들의 능력주의는 기회와 결과의 평등이나 정의 같은 가치를 압도하고 있으며, 자기 계발을 지속하면서 타인에 대한 기준 또한 엄격해지는 모순에 빠졌다. 이들이 모부로부터 전수한 학벌 및 학력 위계주의는 결국 사회적 부정의로 인해 생겨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함으로 이어진다. (…) 현대의 구성원들은 어떤 영역에서 권력 관계의 낮은 자리에 있고 어떤 영역에서는 기득권인, 모순적인 자리를 점한다. 여성으로서는 젠더 불평등의 피해자이지만 ’모부 찬스‘를 성찰 없이 활용할 때는 기득권의 옹호자가 되는 식이다. 이 속에서 근원적 문제를 향하는 실제적인 변혁은 일어나지 않는다. - P46
의견을 표명하는 대신 듣는 미덕을 갖춰야 한다는 등의 규범도 여성성의 지표다. 이렇듯 늘 과장되고 협소한 방식으로 다뤄지는 여성성은 보여지는 것 이상의 내재적 가치 혹은 실행적 자질로서 사유되기 어렵다. 이런 방식으로 상상된 여성성은 종종 특정 여성을 조롱하거나 경멸하는 데 사용된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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