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고아가 아니었을 때 다시 작가들 8
조재선 지음 / 다시문학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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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아가 아니었을 때/조재선 다시문학 2024

이 책을 지하철을 타고 병원에 가면서 읽었다. 2주간의 감기에서 벗어나 외출한 첫날, 막 오후가 된 시각, 열두시 반에서 한시 반, 사람들은 모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고 나 혼자 서 있는 가운데, 혼자 책을 펼쳐들고 읽었다. 어쩌다 빈자리가 나면 올라탄 이들이 잽싸게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책은 느렸고 내 삶도 느렸다. 가는데 한 시간, 오는데 한 시간 그 시간을 모두 책 읽기에 골몰했다. 건너편에 앉은 할아버지가 물건이 떨어졌다고 주의를 주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화곡역에 내렸을 때는 뒷부분이 60여쪽 남아 있었다. 눈이 살금살금 내리기 시작했다. 노점상에 들러 무를 사 들고 화곡역 사거리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가 살았던 곳도 화곡동, 화곡 시장 가까운 곳이었다는 기억이 났다. 한강이 『소년이 온다』에서 말하듯 더 이상 우리는 타자가 아니었다.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인연은 동일한 장소에 대한 기억을 공유한다는 의미이므로. 우리는 무언가 공통된 것을 갖게 된 것이니까. 얼굴도 보지 못한 그가 공연히 정겹게 느껴졌다. 그의 모습이 내 안으로 들어와 박혔다.

책은 무슨 마법이라도 지닌 것처럼 쑥쑥 잘 읽혔다. 때로는 푸근하고 때로는 미소 짓게 만들었으니 지은이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그에 대한 느낌을 담백하게 풀어 놓아서였을까. 아니면 그의 삶이 거창하지 않고 소박해서였을까.

아니 사실 그의 삶은 역동적이다. 그 자신의 말마따나 평범한 이들이 있기에 특별한 이가 돋보인다.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의 전문가다운 기질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에 특별한 이들의 삶은 거창해보인다. 그러나 누군들 지은이의 삶은 다양한 나라에서의 경험으로 가득하다. 카츄사 경험만 해도 독특하지 않은가. 저 유명한 번역가이자 소설가인 안정효 선생 역시 카츄사였다.

한편으로 그가 가톨릭 신자여서일까. 다양한 나라에서의 경험도 돋보인다. 필리핀, 인도, 영국, 프랑스 그는 여기저기를 건너다니는 역동적인 삶을 살았다. 번역하는 이답게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답게 영어 관련 이야기도 재미있다. 필리핀 경험이 그러하고 수도회 경험이 그렇지만 담담하고 사실만 기록하고 있어서 소박해 보인다.


한편으로 내 나라 문학, 한국 문학에 대한 소감에서도 동일했다. 우리의 문학은 내 이야기같다. 아프고 우울하다. 실제로 우리 문학은 우울함이 짙다. 한국어로 쓰인 책들은 진지해서 한없이 끌려내려가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나 역시 외국문학을 택했는데 그러한 면도 친근하게 여겨졌다. 한편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성탄제>라는 시를 쓴 김종길 시인에게서 배웠다는 묘사를 읽고 질투를 느꼈다. 김치규 교수님이라니. 좋은 선생님은 어떤 식으로건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부자리에서 시작해 텔레비전, 목욕, 그리고 번데기, 수수하고 가난한, 서민의 풍경이 펼쳐지는 꼭지마다 나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그의 글은 추억에 잠기게 하는 한편, 그의 대담함 면모 혹은 모험을 엿보게 한다. 허클베리 핀처럼 미시시피강을 따라 내려가는 엄청난 모험은 아닐지라도 대학 첫 방학을 기념한답시고 비오는 날 홀로 인천을 찾아가 을씨년스러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어떤 객기가 보인다. 나도 그러했으니까. 나의 경우에는 오이도였지만. 어쩌면 세상 어디건 헤매면서 새로운 세계를 엿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화곡동이 엄청나게 확장된다. 구석구석 골목마다 무언가 냄새가 깃들어 있다. 옛사람들과 옛상점들과 옛풍경을 기술해가는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과거에서 현재가 눈앞에서 주욱 펼쳐진다. 놀라운 기억력과 더불어 여기에서 조금만 더 나가면 소설이 나오겠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한자리에 붙박여 사는 사람들은 놀라운 통찰력을 가졌다. 고리타분해보이던 사람들이 변화에 관해 대단히 만감해지는 것이다.

한 꼭지마다 붙인 제목들은 주변의 풍경을 말해주는 소박한 것들이지만 제목은 유별나다. 『우리가 고아가 아니었을 때』. 평범한 사실은 그 평범함을 비틀 때 빛난다. 시인다운 날카로움이 엿보이는 이 제목은 끝까지 궁금하게 만든다. 아마도 표지의 저 고래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아직 나는 끝을 읽지 못했다.그의 소년 시절, 고등학교 시절, 군대 시절, 청년 시절, 중년을 거쳐왔지만, 밤늦어서야 잠드는 딸아이를 위해 머리를 말려주던 그의 모습을 읽었지만 아직 그의 현재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그의 태피스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누구나 알지만 독자가 다 앍기 전에 작가의 모습은 끝나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에게 전화라도 해 안부를 묻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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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뇌 - 뇌는 춤추고 노래하고 운동하는 삶을 원한다
한소원 지음 / 바다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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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추천사를 읽고 이 책이 심리학 서적으로, 노화, 뇌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읽기 시작했고 왜 평점이 낮은지 이해할 수 있었다. 솔직하게 잘난 사람의 암 투병기라고 하면 안되었을까? 왜 제목을 뇌과학 서적처럼 지었을까? 뇌이야기는 98쪽에서야 비로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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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쓸쓸하냐 - 2004년 1월 이 달의 책 선정 (간행물윤리위원회) 운문산답 1
이아무개 (이현주) 지음 / 샨티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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