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으로 내 나라 문학, 한국 문학에 대한 소감에서도 동일했다. 우리의 문학은 내 이야기같다. 아프고 우울하다. 실제로 우리 문학은 우울함이 짙다. 한국어로 쓰인 책들은 진지해서 한없이 끌려내려가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나 역시 외국문학을 택했는데 그러한 면도 친근하게 여겨졌다. 한편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성탄제>라는 시를 쓴 김종길 시인에게서 배웠다는 묘사를 읽고 질투를 느꼈다. 김치규 교수님이라니. 좋은 선생님은 어떤 식으로건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부자리에서 시작해 텔레비전, 목욕, 그리고 번데기, 수수하고 가난한, 서민의 풍경이 펼쳐지는 꼭지마다 나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그의 글은 추억에 잠기게 하는 한편, 그의 대담함 면모 혹은 모험을 엿보게 한다. 허클베리 핀처럼 미시시피강을 따라 내려가는 엄청난 모험은 아닐지라도 대학 첫 방학을 기념한답시고 비오는 날 홀로 인천을 찾아가 을씨년스러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어떤 객기가 보인다. 나도 그러했으니까. 나의 경우에는 오이도였지만. 어쩌면 세상 어디건 헤매면서 새로운 세계를 엿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화곡동이 엄청나게 확장된다. 구석구석 골목마다 무언가 냄새가 깃들어 있다. 옛사람들과 옛상점들과 옛풍경을 기술해가는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과거에서 현재가 눈앞에서 주욱 펼쳐진다. 놀라운 기억력과 더불어 여기에서 조금만 더 나가면 소설이 나오겠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한자리에 붙박여 사는 사람들은 놀라운 통찰력을 가졌다. 고리타분해보이던 사람들이 변화에 관해 대단히 만감해지는 것이다.
한 꼭지마다 붙인 제목들은 주변의 풍경을 말해주는 소박한 것들이지만 제목은 유별나다. 『우리가 고아가 아니었을 때』. 평범한 사실은 그 평범함을 비틀 때 빛난다. 시인다운 날카로움이 엿보이는 이 제목은 끝까지 궁금하게 만든다. 아마도 표지의 저 고래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아직 나는 끝을 읽지 못했다.그의 소년 시절, 고등학교 시절, 군대 시절, 청년 시절, 중년을 거쳐왔지만, 밤늦어서야 잠드는 딸아이를 위해 머리를 말려주던 그의 모습을 읽었지만 아직 그의 현재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그의 태피스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누구나 알지만 독자가 다 앍기 전에 작가의 모습은 끝나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에게 전화라도 해 안부를 묻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