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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너머 한 시간
헤르만 헤세 지음, 신동화 옮김 / 엘리 / 2025년 12월
평점 :
자기자신을 투영한 글로 가장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 #헤르만헤세 가 아닐까?
그는 어린나이에 그릇된 시도를 했을 정도로 마음이 병들어있었다. 그런 그에게 글은, 시는, 말그대로 숨통이었을 것이다. 유독 헤세 글의 번역에서 느낌표(!)가 많이 사용되는 것은 번잡스런 울분과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마음들이 담겨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자정너머한시간 ( #엘리 출판)은 헤세가 지금의 유명세를 얻기 전 세상에 나온 헤세의 첫 산문집이다. 물리적 공간과 어울리는 ‘너머’를 시간의 단위에 쓴 것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제목이다. 헤세는 서문에서 자신이 시적인 시간과 나날을 보낸 꿈나라를 제목에 담고 있다고 밝혔는데 ‘꿈나라’가 주문 공간감을 나타낸 것 처럼 느껴졌다.
헤세에 관해 잘은 모르지만 읽어보면 분명 헤세의 글이다. 문장에 감정이 꽉꽉 눌러져 있달까. 시의 정제된 표현법에서 해방된 그의 온갖 감정들이 모든 문장에 녹아있는 것은 물론 넘쳐흘러 포화飽和 되어 있다.
그런 문장에 거부감이 들지 않는 것이 헤세만의 매력이리라. <데미안>의 씨앗이 된 산문이라는 설명 때문인지, 책 속에 실려있는 아홉편의 글 속에 ‘게르트루트 부인’과 같이 성숙한 여인이 자주 등장한다. 성숙한 여성은 괴테와 쇼팽을 거쳐 헤세의 뮤즈이기도 하고, 속사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에로스적 관계를 넘어선 숨통같은 우정이기도 했다.
어머니의 장례식조차 찾아가지 않고, 아들의 작품을 인정하지 않았던 모자간의 관계에서 온 바램이었을까 싶기도 했다. 여인들과의 관계가 깊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보기좋다뿐만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워낙 자전적 인물이니 읽는 사람도 헤세의 삶과 자연그럽게 글을 연관지으려 애쓰게 된다.
내가 읽어온 헤세는 밤을 사랑했다.
음악과 문학, 미술과 같은 모든 예술을 사랑했으며 기꺼이 자기 글에 녹여냈다. 야상곡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글이 <자정 너머 한시간>에도 실려있고, 알레그로, 안단테, 아다지오 3악장으로 되어있는 ‘장엄한 야상곡‘이라는 글도 쓴 적이 있다. 쉽게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없는 말, 해가 떠있을때에는 이성에 밀려 지우고 삼켰을 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이라 헤세는 밤을, 꿈을 사랑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글을 읽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거나 어떤 큰의미를 깨우친다기보다는 헤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가 22살에 발표한 첫 산문집이라는 상징성과 그 상징성에 맞먹는 헤세 특유의 감성충만한 문장들이 반가울 것이다.
누군가의 시작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사치이다.
그 시작을 잘 지켜내기도 하고 그런 시작이 있었나 싶기도 할만큼 변해버리기도 한다.
원전의 형태에 가장 가깝게 10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 부활한 <자정 너머 한 시간>을 통해서 봤을 때 헤세는 한결 같았다. 끝까지 변하지 않았으며 환희에, 슬픔에, 그리움에, 고독에, 밤에, 꿈에, 모든 순간에 기꺼이 잠겨 자신과 같은 글을 써냈다.
현실인지 꿈인지,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모호한 글을 따라가다보면 머릿속에서 헤세라는 존재가 뼈대가 세워지고 그 위에 살과 근육 피부가 덮어지며 뚜렷해진다.
이 모습이 모두가 아는 객관적인 헤세라는 존재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것또한 낭만 아닐까.
싸늘한 바람이 불면 낭만, 우수같은 단어들을 누리고 싶어진다. 흔히 가을탄다고 표현하는, 코트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낙엽을 바라보거나 바스락소리를 들으며 그 위를 걸어보고 싶어지는 그런 낭만과 우수. 이질적인 듯 하면서도 동질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가을에 담겨있다.
가을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