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여성들
케이트 제르니케 지음, 정미진 옮김 / 북스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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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뉴스에 보도될 때 마다 입안을 쓰게 만드는 각종 성범죄들을 여성이 얼마나 약한 입장에 쳐해져있는지를 다시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준다. 여성을 보호할 강력한 대책을 만들어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보편적으로 은연중에 만연히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직장 내 차별이다.
입사년차가 빠르고 고과도 더 좋고 그럼에도 승진에서 밀리고, 근평에서도 더 낮게 책정이 되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요직이라고 일컬어지는 누구나 욕심내는 일쪽에는 철저히 배제당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대체 ‘여자’가 어떻길래?

#숨겨진여성들 ( #케이트제르니케 지음 #북스힐 출판)에서는 지구에서 최고 지성의 모임을 일컬을 때 항상 빠지지 않는 MIT내에서의 이런 성차별을 담고 있다.

당시 학문적으로는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발견되는 등 혁신과 가까운 진보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현실에서 여성의 대우는 나아지고 있지않았다.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 중 한명은 제임스 왓슨교수의 제자로 학문을 시작했던 분자생물학자 낸시 홉킨스(그와 같이 나선구조를 밝혀낸 크릭의 성추행 파문도 있더라)는 MIT유일의 여자 종신 여교수로 재직할 때 까지 수십년을 그 사회에 몸담고있었지만 느끼지 못했던, 철저히 능력위주일 것이라 믿었던 자신의 분야에서 알게모르게 은근한 차별이 있다라는 것을 뒤늦게 인지했다.

아래 직급의 남교수보다 더 작은 연구실, 동급 남교수에 비해 낮은 봉급, 여자교수였던 자신만 몰랐던 규정 등 여러가지의 차별이 있었지만 낸시 홉킨스가 문제를 인지하게 된 큰 사건을 자신이 만든 수업을 남교수에게 빼앗겼을 때였다.

한 명의 과학자로 수십년을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이런 황당무개한 일들을 겪고 있음을 깨달으면 얼마나 충격적이고 허무할까. 탈력감에 숨어들지 않고, 다른 여성 과학자들과 의기투합하여 과학자답게, 데이터를 수집하여 여성차별이 존재함을 증명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연구’는 4년여 동안 계속 되었고, 매체에 공개되면서 큰 파장을 불러왔다. 결국 MIT총장이 여성 차별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적극적 개선을 약속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낸시 홉킨스는 여성 과학자의 대변인으로 여전히 활발히 목소리를 내고 있고, 그녀의 이러한 노력은 여성들을 가장 남성우월주의가 심한 하버드를 비롯한 여러 아이비리그에서 여성총장이 배출되는데 까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숨겨진 여성들>을 읽으면서 대학 때 배웠던 DNA이중나선구조 발견과 같은 과학적 내용들이 더해져 흥미로웠지만 이런 부분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 한없이 이해가 되지않아서 그 생각으로만 머리에 꽉 차 있었다.
제일 당혹스러웠던 것은 여성을 뽑지않고 여성에게 일을 맡기지 않는 이유였다. ‘여자는 결혼하면 일을 하지 못한다‘라니,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결혼은 여자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남자와 한쌍으로 진행되는 것인데 왜 여자는 결혼하면 일을 못하는가?
은연중에 여자는 결혼하면 애 낳고 육아하고 가정을 돌보고 남자가 사회생활로 돈을 벌어온다라는 구시대적 착오가 남아있는 것이다.

왜 자기들이 합의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유전자도 반반씩인데 일방적인 여성의 희생이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인지.
이것이 세대를 건너뛰어 위세대가 하는 것을 숨쉬듯 받아들여 차별인지 모르고 행해지는 인종차별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분명 사랑해서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해서 결혼함에도 이런 차별이 발생하는데 직장에서 어찌 생기지 않을 수 있겠나.

의식을 바꿔야하고, 누군가 목이 터져라 외쳐야 조금이라도 변화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목소리를 내는 것이 DNA가 복제될 때 개시자, 프로모터promotor처럼 변화의 시작점에 몹시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배웠다. 이 세상에서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는 모든 분들이 존경스러웠다. 그런분들 덕에 우리 사회에 나빠지지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여성뿐만이 아니라 응당 우리사회가 가져야 하는 바른 모습에 대해 관심과 생각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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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루소가 쏘아올린 공 - 무언가를 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
김지명 지음 / 비엠케이(BMK)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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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음악을 하는 최정상에 있는 아티스트들에게 몇살 때 연주를 시작했냐라고 물으면 보통 다섯살정도에 악기를 시작했다고 말할 정도로 일찍 시작해서 그것에 몰입하는 시간이 긴 것이 성공의 정론이라고 일컬어진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라는 격언도 뒤늦은 경로조절은 위험한 것이라고 무모한 것이라고 그러니 하지마라라고 말하는 세상의 의견과 합치한다.

하지만 우리의 교과과정을 돌이켜보면 정말 내가 하고픈 일, 하면 행복할 것 같은 일을 찾는데에 썩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저 좋은 대학 좋은 전공에 가서 누구나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는 것을 모두에게 강요한다. 그래서 그 길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은 인간실격같은 대우와 감정을 겪는다.

하지만 긴 인생의 중반정도까지 그렇게 어영부영 살아보다 보면 누구나 이게맞나? 라는 생각이 들고, 내가 이 일을 평생을 하며 살 수 있을지 고민을 넘어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 나이에는 도전이 아닌 안정을 생각해야한다며 이제와서 무슨 도전이냐며 정신차리라고 말한다.
그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다면 #앙리루소가쏘아올린공 (#김지영 지음 #비엠케이 출판)은 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을 쓴 김지영 작가는 사십대 후반이 되어서야 대학원에 진학하여 예술학 박사가 되었다.
그렇게 진정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게 된 경험을 이 책에 녹이고 있고, 저자에게 앙리 루소가 특별한 이유는 그녀가 미술의 길을 선택하게 하는데 큰 관여를 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뉴욕을 방문하였을 때 미술관에서 본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그림을 만나 하염없이 그림을 바라보며 좋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때는 앙리 루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고.
그림의 매력에 빠져 뭔가에 홀린 듯 앙리 루소에 대해 찾아봤고 그도 40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라는 것을 보고 깊은 영감을 얻어 작가도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앙리 루소는 제대로된 그림 교육도 받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데 여기에 고흐, 샤갈 도 제대로 된 그림 교육을 받지 않아다는 것도 알게되어 몹시 놀랐다.

그리고 나서 앙리 루소의 일대기를 들려주는데, 그는 약간 모자란 사람이 아닌가 싶을정도로 자신이 당대의 위대한 화가인 피카소에 전혀 뒤지지않는 위대한 화가라는 자기확신이 강했고, 모든 이들에게 조건 따지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눠주었다.
이미 우리는 화가가 불멸의 예술가로 기억되려면 혼자만의 실력으로는 절대 될 수 없다라는 것을 안다.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고 어떤 교류를 해서 감정을 공유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앙리 루소의 호방함과 이타성은 그의 그림 실력을 짓궂게 놀려댔던 고갱마저 결국 그의 독특한 검은색은 그만의 고유한 것이라는 인정을 하게만들며 그의 곁을 든든하게 지키는 아군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앙리 루소는 기꺼이 실천하는 용기, 해보지 않은 곳으로 나아가는 도전, 일상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하는 독특한 창조력, 대중의 혹평과 조롱에도 그림을 즐겼던 긍정, 위대한 화가가 될 것이라 끝까지 자신의 길을 고수한 신념, 스스로에 대한 확신인 자기애, 두아내와의 사별의 고통에서 태어난 예술적 순수성으로 불멸의 화가가 되었다. 심지어 1800년대 그때의 40대면 지금과 다르다. 노년에 접어드려 하는 나이였음에도 기꺼이 모험을 건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의 수명에서 40에 진로를 바꾼다는 것이 쉽다는 말이 아니다.
그만큼 한번의 선택이 나머지 수십년을 결정짓는 것이다.
그러니 아까 글의 첫부분에 말했던 것 처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여생 모두를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은지가 중요한 질문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 행복할까?
돈을 많이 버는 것? 승진 했을때? 물론 그것도 정답이지만 그런 행복은 출근시간에 차만 막혀도 바로 잊혀질 정도로 단순한 행복이다. 진정한 행복은 자아의 만족이다.
자아의 만족이란, 무언가를 하면서 다른 어떤 문제들이 발생해도 변하지 않는 고차원의 것이다.
어떤 사소한 일상의 자극에도 흔들리지않는다.
고로 평화롭고 행복하다.
무언가를 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
작가처럼, 앙리 루소처럼, 진정한 행복을 위해 스스럼없이 용기를 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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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가 사랑한 철학자들 - 예술은 어떻게 과학과 철학의 힘이 되는가
김종성 지음 / 비제이퍼블릭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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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전시회를 가장 잘 감상하는 방법 중 하나로는 도슨트를 이용하는 것이다. 혼자 둘러보다 괜히 눈에 밟히는 그림앞에 멍하니 오랜시간을 두는 것고 훌륭한 방법이나, 그런 경험들이 쌓이고 취향이라는 것이 생기고 나면 더 자세히 전문적으로 알고싶을 때가 생기는데 그럴 때 도슨트를 이용하면 참으로 좋다.
글로 읽는 것 보다, 전문가가 생생하게 그림을 보며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더 생생히 와닿고 기억에도 오래남는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도슨트라도 작품 하나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잘 없다. 전시회에서의 모든 그림을 설명하기도 시간이 부족해 몇 작품을 선정해서 대표작들을 설명해야하기도 하고, 하나의 그림만 설명하고 그만둘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한점의 그림만 전시해 두는 전시회가 없으니 하나의 그림만을 위한 도슨트도 없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라파엘로가사랑한철학자들 (#김종성 지음 #비제이퍼블릭 출판)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하나의 그림만을 논하는 도슨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파엘로의 유명한 작품 <아테네 학당>에 대한 도슨트인데 어떤 구도적, 회화적 가치를 지니는지, 숨어있는 알레고리가 무엇인지 우리가 익히 들어본 것들을 넘어 그림 속에 그려져 있는 학자 중 여섯명의 사상과 철학, 업적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독특한 도슨트 해설이다.

하나의 그림으로 한권짜리 도슨트라니.
이런 사치가 없을 것이고, 저자도 그만한 애정과 넓은 지식이 있어야 가능한 기획이다.
진정한 덕후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원래 덕후가 하나에 몰두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그 하나에 대해 모든 것을 낱낱이 알기 위해서는 거기에 포함된 수많은 분야들을 독파해나가야하는 번거로움이 반드시 수반되는 법이다. 그 모든 번거로움을 순수한 열정과 애정으로 이루어 내는 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덕후이다.
덕후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말도 있지 않나(없나? 분명 들었😂)
아마 김종성 작가는 과학을 사랑하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의 사상이 담긴 모든 것(과목의 철학이 아니라 아는 것을 사랑하는 'philosophy'로의 철학)의 덕후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는 60여명의 철학자들이 그러져 있는데 작가는 그 중 여섯명에 주목했다.
왜 60명 중 이 6명에 주목한 것일까?
플라톤은 서양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주석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철학을 대표하는 대학자이자 그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면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려질만큼 신이 만든 우주에 대한 목적론적 고찰의 결과인 이데아론대표로 가운데에 놓고, 제자이면서 정반대로 경험과 관찰로 확인할 수 있는 개별적 본질을 우선시 하는 행보를 보이며(그가 바티칸의 벽화에 그려져있는 것이 이미 철학이다)손바닥으로 땅을 가리키며 인간에 집중한 아리스토텔레스로 철학의 큰 틀을 중심에서 소개를 하고있다.

그래서 나는 라파엘로가 <아테네 학당>을 그린 이유가 철학의 다양한 면모를 하나의 그림에 그려넣어서 철학의 다양성을 나타냄은 물론 그것을 통하여 철학의 진정한 모습을 알리려고 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머지 학자 네명을 저자가 선택한 이유도 생각해보았다. 플라톤과 함께 그려진 그의 저서 <티마이오스>에 적혀진 현시대와 동떨어진 우주론을 프톨레마이오스의 관측 중시의 현대의 우주론과 시각을 함께하는 천문학적 사유를 보여주며 철학의 상호 보완의 가능성을, 교과서에 실릴정도로 그의 이름을 딴 수학법칙이 널리알려졌음에도 수학 뿐만아니라 숫자로 과학과 예술에 까지 미치는 피타고라스 철학으로 대변되는 국한되지않는 무한성과 가용성, 논리적 철학이 하나의 의견을 넘어 세상이라는 시스템에 새로윤 규칙들을 규정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컴퍼스의 신, 아니 기하학의 대가 유클리드, 남성위주의 수천년 속에서도 자신을 구속하는 신앙에 대한 사유로 한명의 오롯한 철학자였던 아베로에스까지.
변화무쌍하면서도 오랜시간 인류의 중심에 위치하며 다양한 변화에 큰 역할을 했던 철학을, 애정어린 라파엘로의 시선이 가득 담긴 그림을 통해 살펴보며 철학은 우리 인간의 본성과 가장닮은, 인간이 이룩한 모든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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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가 사랑한 철학자들 - 예술은 어떻게 과학과 철학의 힘이 되는가
김종성 지음 / 비제이퍼블릭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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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화가 라파엘로가 바라본 철학의 이미지.
60여명을 그려넣어야할만큼 다양하고 모두가 중요하며 유의미했다. 하나의 그림만을 위한 방대한 도슨트. 진정한 덕후란 하나를 위해 여러개를 깊게 파야하는 것임을, 세상은 덕후가 바꾸는 것임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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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의 사라진 작품들 - 팔리거나 도난당하거나 파괴된 그래피티 51
윌 엘즈워스-존스 지음, 서경주 옮김 / 미술문화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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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예술의 형태는 참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장소에 국한되지도 않으며, 상상하지도 못했던 재료들을 사용하여 이것이 진정 예술작품인지도 헷갈리게한다.
작품인지도 모르고 지나칠 정도이다.

이런 캔버스를 벗어난 예술을 하는 사람 중 가장 유명하고 여러 이슈를 몰고다니며 뉴스에 자주 거론되는 예술가는 아마도 #뱅크시 일 것이다. 벵크시는 투명 필름지에 도안을 그린 후 오려내어 원하는 곳에 붙인 후 물감을 두드려 채색하는 스텐실 기법을 사용하는 작가로 폐허가 된 건물 벽, 교통 표지판, 가게 입구의 셔터, 신문 가판대 뒷 벽 등 다양한 장소에서 많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가장 적절해 보이는 장소에다 만들어냈다.

결국 그의 작품에는 그 작품이 위치하고있는 ‘장소’까지 포함해야 완전한 의미를 갖춘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유명해지고 작품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그의 작품을 ‘소유’하려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뱅크시의사라진작품들 (#윌에즈워스존스 씀 #미술문화 출판)은 그 장소의 의미가 결여된 ‘사라진’작품 51점을 소개하고 있는데, 작품을 다음세대까지 보존하기 위해서(그림을 가져간 사람의 주장에 따르면 뱅크시 작품의 80%가 소실되었단다. 과연 그 중 본인이 소실시킨 것은 몇개나 될까)라는 이름으로 그런 행위가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신문 가판대 뒤의 그의 그림을 1000파운드에 팔리고 다시 25만 파운드에 되파는 것이 과연 예술을 보존하기 위함인지 스스로를 제외하고는(스스로도 알고있다는 것을 안다)다 알고 있다.

애초에 그래피티 장르는 공동체적 관점에서 봤을 때는 거리의 분위기를 해칠 수 도 있고, 다른 사람의 소유물(담장 건물 벽)들을 훼손하는 행위일 수 도 있어서 보통 익명으로 작업한다.
그래서 구획 공무원들에 의해 지워질 수도 있고, 뱅크시의 경우에는 그래피티의 대가 킹 로보와의 불화로 팀로보에게 작품이 덮어지기도한다(이건 약간 자업자득같은, 어쩌겠다 예술가란 그런 존재인데)

하지만 보존하겠다는 이유로 캔버스에 똑같이 복제되어 옮겨지기도 하고, 전기톱으로 깔끔하게(?)도난 당하기도하며 의외로 정말로 보존하겠다는 이유로 가져가서 익명으로 보존하다가 걸린 ㅋㅋ 건축하고 있다.
그 건축가에게 처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라고 묻자, 도저히 모르겠다며 그래서 자식들에게 물려주려한다며(폭탄돌리기😂)같은 유쾌하고도 진심가득한 사라짐?도 존재한다.

이것은 예술의 훼손일까?
예술에 대해서 너무나 당연하게도 잘 모르지만, 예술작품은 작가의 의도가 매우 중요하긴 하다. 그래서 수많은 전문가들이 열심히 시대적, 시기적 배경들을 연구하고 평가하고 밝혀내고 책으로 써서 알려주려 하겠지.
하지만 내가 봤을 때 여러 예술분야 중 그림은 의미 전달에 불친절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좋게 말하면 관람객들의 감상평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변기에 서명을 하고 작품이라 하고, 벽에 바나나를 테이프로 붙여놓고(이 바나나는 심지어 전시중에 먹혔다), 뱅크시의 그림 중 하나는 낙찰된 후 파쇄되었을만큼 기상천외하니, 그만큼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상도 더욱 중요해지지않았나 싶다.
호평이든 혹평이든, 그 작품에 대한 인지도, 인기가 되어버리니 미술상들에게는 뭔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뱅크시의 작품도 관람객들이 봐주어야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관람객들이 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 이미 뱅크시는 작품자체로도, 작품이 썰려나가는 이야기로도 이미 다음세대로 전해질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어느 누구의 작품보다 더 후세들이 오리지널을 감상할 확률이 극히 희박하다.

이 책처럼 도록으로만 감상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치 예전에는 있었다며,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멸종된 생물들 처럼 말이다.

난 우리 사람들의 마음에 상대방을 생각하는 인류애라는 거창한 이름으로도 불리는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의젓함이 있다고 믿는다.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사라질 확률이 높았던 작품들이 안전하게 보관되고 있는 것은 반길만한 일이다.
그래도 의젓함으로 충분히 장소까지 오리지널을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그 뒤에도 개인 창고가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고 맘껏 평할 수 있게 약간의 시간들을 배려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우크라이나에도 작품을 남기는데에는 돈을 넘어서는 뚜렷한 의도가 있기때문이지 않겠나. 조금이라도 더 뱅크시의 의도가 존중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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