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언어 - 사람을 품고 이끄는 리더의 언어
이광재 지음 / 시공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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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작년말부터 올해 봄까지 나라의 리더가 교체되는 상황이 국내와 지구 상 존재하는 나라 중 가장 상징적인 국가에서 동시에 벌어졌다. 한 곳에서는 변화하는 시대에서 반복되지 말아야할 아픔의 반복으로 벌어진 일이고, 다른 한쪽은 슬프지만 수명이라는 자연의 섭리때문이었다.

평소같으면 자극적인 이야기만 뉴스에서 보도되었을텐데, 평화롭지 않은 상황덕에 평화로움이 오히려 극적으로 받아들여졌기때문일까. 매일매일 뉴스에서는 국내와 국외의 정권교체 이야기가 교대로 흘러나왔다.

바티칸의 수장 교황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직위이며, 예전에는 황제보다 더 높은 권력으로 성전이라는 이름의 전쟁을 지휘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교황의 모든 일정과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는 과정은 콘클라베는 전세계인구의 관심을 받으며, 뉴스와 유튜브에서는 성당 굴뚝을 클로즈업해서 실시간으로 송출한다.

교황은 무엇이 특별하길래 전세계가 주목하는 것일까?
14억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있어서?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신도 모두가 자신의 분야에서 자기만의 성과를 이루고 여러 곳에서 정보들을 듣고 취합하여 각자의 신념을 가질텐데 그냥 가톨릭을 믿는다고 다들 맹목적으로 교황을 섬길까? 우리가 살아온 또는 살고있는 사회는 그렇지 않다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있다.

그럼 무엇이, 14억의 신도들을, 나아가 종교가 다르지만 60억 이상의 지구인들이 교황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마 전세계 지도자들 중 유일하게 자기 국가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 이라서 그런게 아닐까?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의 리더들은 국민들의 염원을 이루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모여 그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다.
그러니 국민들을 위해 행동해야할 의무가 있고(물론 각종 비리와 이해관계가 뒤얽혀 그 의미가 변색되는 경우가 많지만) 자기 국가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다른 국가와 전쟁을 하기도 하고 하는 것이겠지(물론 내부 결속의 수단으로 외부를 공격하는 그런 몹쓸 경우도 있다)

하지만 바티칸만은 자국의 이익을 위하지 않는다.
모두가 전쟁에서 이쪽이 잘못했냐 저쪽이 잘못했냐 전쟁의 타당성을 따질때, 바티칸만은 즉시 전쟁의 중단을 전세계에 요청하고 지구의 평화를 외쳤다.
자상하면서도 단호하게. 생의 거의 마지막 순간에서야 후보가 되어 선출되면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 오직 신도들을 위해, 세상의 평화를 위해 착취를 당하는 파파papa의 모습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마음에 울림을 주기에 차고넘친다.

그렇다. 교황의 진심어린 울림이 담긴 그 말.
교황의 진심과 자티칸의 수뇌부의 자신을 갈아넣는 노력이 더해져 만들어진 그 말이 바로 바티칸의 권위의 핵심이다.

#교황의언어 (#이광재 엮음 #시공사 출판)은 유구한 역사동안 남아있는 교황의 말들을 담아 놓았다.
1부는 경제, 노동, 봉사, 사람, 사랑, 용기, 용서, 정의, 정치, 평화, 환경, 희망 키워드에 맞는 말들이 인용되어 담겨있고, 2부에서는 지금 생존한 사람들이 함께 숨쉬어온 우리 시대의 교황, 요한23세, 바오로6세, 요한 바오로1세와 2세, 베네딕토16세, 최근에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신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261대부터 266대 까지의 말씀이 담겨있다.
각 교황님의 이름에 담긴 뜻도 알아보는 즐거움이 있으니 꼭 챙겨보시라.

교황은 항상 자기가 가장 우선시에 두는 가치관이 있다.
교황도 한명의 인간이니 교황의 수만큼 가치관도 존재한다.
그래사 그 가치관을 잘 나타내는 이름을 정한다.
대표적으로 기존의 교황들과 달리 권위와 전통을 중시하지 않는 소탈한 동네 할아버지 같은 친근함으로 모두가 좋아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장 가난한 낮은자를 위해 청빈한 삶을 살았던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떠올려 선택한 이름이다.

교황궁에서 기거하는 것도 반대하여 일반 신부님들의 숙소에서 지내셨고, 대부분의 치장과 허래허식을 생략했던, 소탈한 그분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처럼 <교황의 언어>에는 주옥같지만 읽고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담겨있다.
그럼에도 특별하게 나가와 가슴에 박힌다.
아마 그 말을 정성스럽게 뱉어낸 사람이 너무나 진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리더뿐만 아니라 우리모두, 진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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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아프리카누스
아민 말루프 지음, 이원희 옮김 / 교양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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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그라나다, 모로코, 사하라, 카이로, 메카,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로마까지. 무슬림에서 기독교, 해적에게 납치, 교황의 양자, 그 메디치가의 일원.
대체 이것은 몇 명의 이야기일까?
적어도 대여섯명은 필요하지 않을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저 많은 것들이 오직 단 한사람 안에 모두 담겨있었다. #레오아프리카누스 (#아민말루프 지음 #교양인 @ 출판)의 주인공 ‘알라산 이븐 무함마드 알와잔‘ 이자 책의
제목인 ’레오 아프리카누스‘로 널리 알려진 그가 바로 주인공이다.

물론 그의 40년의 역사를 추적하는 과정이다 보니 내용이 방대한 것은 이해가 된다. 높은 학식으로 외교관이자 사업가, 그리고 여행가로 살아왔기에 많은 지역을 둘러본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그럼에도 교통이 원활하지 않던 15세기에 저렇게 여행을 다니다니 대단한 이력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도 문자 그대로 피튀기는 대학살이 벌어지는 전쟁이 벌어지는 종교에서 마저도 다양성을 가져버리니, 특히나 가톨릭 왕국들이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축출했던 700년 넘게 지속 된 레콩키스타의 시대에서 저런 상황이 가능하다니, 현기증이 일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와 천주교도 화합하기 쉽지않은데 저 두종교 사이에 한 인물이 서 있었다니.
심지어 라마단까지 지켜내던 신실한 집안에서 태어난 인물이 말이다.

나였으면 혼란스러운 마음과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경계인의 삶을 사는 현실에 몸과 마음도 지쳤을 법 한데, 레오 아프리카누스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인이었기에 어디로든 마음먹은대로 미련없이 나아갈 수 있었고, 주변인이었기에 어느쪽으로도 편향되지 않은 유연한 사고는 전쟁으로 인한 유혈이 낭자하던 그 시절을, 언어와 지식 등 수준높은 학술적 성향의 것들로 흥분하지 않고 자신의 손도 피로 물들이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어디에도 ‘우리’로 인식되지 않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최근에 우연히 몇권 더 읽었었다. 그들의 반응은 크게 두가지였다. 어느 한군데에서 인연이 만들어지면 그 인연을 지키기위해 낯선 곳에 터를 잡아 험난한 세월을 한 곳에서 버텨내거나, 자기집에 있는 화분을 부탁하고 여행을 떠났다가 한번 씩 돌아오고 또 더 멀리 여행을 가는 부메랑처럼 훌훌 떠나서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하던가.

레오 아프리카누스는 후자를 선택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나는 전자를 선택했을 것 같다.
어디에든 ‘적’을 두고 내 ‘집’이라고 할만한 곳을 만들어서 소속감으로 마음을 달래려 했을 것 같은데 주인공은 계속해서 여행을 다녔고 종교전쟁의 한가운데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왜? 내가 생각하기에는 주인공은 종교와 환경을 이미 초월하여 자기자신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어떤 모습이건, 어디에 속해있던, 누구를 믿던간에 그 모든 것이 진실된 나를 이루는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던 것이다.
그러니 너도, 또다른 너도 모두 맞다며 허허 거리던 황희정승처럼 어떤 모습의 나라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아프리카누스로 불리지만 아프리카 사람도, 유럽 사람도, 아랍 사람도 아닌 나는 길의 아들이며, 내 나라는 카라반이고, 내 인생은 종착지를 알 수 없는 항해였다라는 말로 자기 인생을 정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의 저자 아민 말루프도 주인공 레오 아프리카누스처럼 여러것들의 사이에 끼여있던 존재였다.
저자는 레바논이 고향이나, 내전 때문에 조국을 떠나 프랑스인이 된 이력을 가지고있다.
마찬가지로 자기 정체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고민한 주변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내린 정체성에 대한 답이 바로 래오 아프리카누스의 답일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주변인의 고민거리는 어떻게 하면 주변인이 되지않을까 같은, 주변인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와 주인공은, 주변인이라는 자체를 하나의 특성으로 한, 여러 모습이 담긴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으로 모든 경계선 밖에 있는 스스로를 위한 영역을 구축했다. 자기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 사랑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자기포용과 확신, 사랑과 상실,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삶을 책 한권으로 모두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한 인물을 따라 스스로를 정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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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없는 마음 - 양장
김지우 지음 / 푸른숲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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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 입니다)

어릴적부터 걸을 수 없어 휠체어 위에서만 생활해야 한다먄 어떨까? 이 비슷한 질문을 어디에선가 들어봤을 수 는 있지만 아마 진심으로 어떨지 생각해본 사람은 정말 드물 것이다.
나도 그렇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답이라고 내놓은 것은 ‘많이 불편하겠지’일테다.

하지만 #의심없는마음 (#김지우 #구르님 씀 #푸른숲 출판)을 읽으니 완전히 생각해보지도 못한 것이었다. 단순히 불편함이 문제가 아니라 비장애인으로 태어나 너무나 당연하게 너무 어릴적이라 잘 기억나지고 않는 처음을 가질 권리를 박탈당한다. 엄마와 슈퍼나 마트에 가서 원하는 것을 직접 고르는 행위, 심부름이라는 이름으로 혼자 물건 구매하기, 옷이나 신발등을 직접 입어보며 취향에 맞는 옷 고르기 같은 것들 말이다.

이들은 직접보고 선택하는 것을 포기한다.
길과 입구의 단차부터, 계단, 사람들의 시선, 붐비는 주말이나 저녁같은 시간에 휠체어의 당당한 부피감에 ‘불편’을 느끼며 몸이 그런데 ‘용케’ 나와서 돌아다닌다는 안일하고도 불공평한 차별과 같은 것들로 번거로움보다는 편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에 집중하게
되고, 스스로는 자신감이 떨어지고, 보호자는 과보호 의식을 갖게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하지만 <의심 없는 마음>의 저자 김지우(a.k.a.구르님)은 일본 여행, 아빠와 단둘의 홍콩여행 등을 거치며 한국에서라면 시도조차 잘 하지 않았을 홀로 휠체어로 시장이나 마트, 버스타기와 같은 것들을 해보게 된다.
우리가 기억나지도 않을 때 했던, ‘첫’번째 무언가를 비로소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을 때, 포기했던 것을 ‘이게 되네?’라는 살짝 허망하기도 한 ‘처음’의 순간을 맞이하며 저자는 비로소 세상을 관망하는 것이 아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주체적인 존재가 된다.

이날을 계기로 보호자 없이 지구반대편까지 날아가보자는 용기가 생겼고, 학교에서 진행한 UN인턴십 교류프로그램에 지원해 덜컥(기꺼이) 선정되어버린다.
가는김에 여행을 하겠다며 비장애인 연인과 파리를 먼저 자유여행으로 경험하는데 역시나 우리나라와 차원이 다른(negative) 행정처리속도를 자랑하는 파리답게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어시스트를 미리 신청해놓아도(신청마저 어렵다)직원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지하철을 이용해도 열차와 역사의 단차(저자가 있는 곳이 높이나 더 낮은 경우는 몸의 고통을 감당해도 방법이 없다)도 저자와 연인을 지치게 한다.

이 에피소드에서 연인사이의 동등하고 매력적인 관계와, 일방적인 보살핌을 줘야하는 caregiver로의 위치의 딜레마가 빠진다. 분명 비장애인 연인이 혼자왔더라면 더많은 곳을 편하게 볼 수 있을 테고 나와 이런 고생을 하지않았을거라는 미안함과 도움을 어디까지 쿨하게 받아들이고 줘야하는지 약속되지 않은데에서 오는 당황함 같은 감정들이 오는 것이다.

나라면 당연히 내가 한번이라도 더 움직이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보호하고 대신 화를(당사자보다 더 크게)낼 것이 분명하다.
내가 사랑하는 이가 그런 일을 겪는 것은 내가 겪는 것 보다 더 클테니. 하지만 대화는 꼭 필요한 것 같다.
탁 터놓고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주고 받을 것인지, 어느선까지가 서로에게 감정과 이상적이고 이성적인 포지션인지에 대해.

그런데 이와중에 충격인 것은 당연히 나를 ‘비장애인’쪽으로만 가정하는 것이었다. 이런 무의식적 인식들이 더 장애인들을 더 떳떳하게 살아가는 것을 힘들게 하지않나싶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나쁜 기억들 만을 안고가지않는다.
그 와중 이쁜 거리와 맛난 빵들을 즐겼고, 자전거를 내팽게치면서까지 200kg이 넘는 전동휠체어를 높은 역사까지 열성적으로 올려주는 ‘무슈’들을 기억하며 따스함과 긍정의 마인드를 가지고 스위스(스위스는 장애인의 천국이었다), 마음의 안식을 누린 여행지, 또 다른 집이 된 호주여행 까지 나아간다. 여동생과 다시 방문할 정도로. 그리고 저자는 이 글을 미국의 어딘가에서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오히려 ‘내가 못하는 것이 있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당당히 세상의 도움과 호의를 받아들인다.

막연함이 아닌 경험으로 찾은 하지 못하는 일엔 과감히 도움을 빌릴 용기로 그렇게, 기꺼이 자신을 세상으로 내던지는 그녀가 얼마나 멋진 사람이 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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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눈을 감지 않는다 - 연쇄살인범의 딸이 써 내려간 잔혹한 진실
에이프릴 발라시오 지음, 최윤영 옮김 / 반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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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가족을 잔혹함과 폭력으로 다스렸지만, 한 여자아이의 전부였던 아버지가 실은 미치광이 연쇄 살인마였다면? 심지어 그 사실을 아버지가 전부였던 딸이 알아챘다면?
과연 그 딸은 아버지를 신고해야할까 가족이니까 애써 묻어야할까? 굉장한 소설이지 않은가? 듣기만 해도 주인공일 딸의 심정이 짐작도 가지 않는다.

#기억은눈을감지않는다 (#에이프릴발라시오 지음 #오팬하우스 반타 출판)의 내용이다. 그란데 이게 다가 아니다.
이 책 소설이 아니다. 픽션이다.

30년이 넘게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던 사건의 범인, 2번의 탈옥, 4번의 방화, 5건의 살인으로 FBI 10대 지명수배자로 유명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에드워드웨인에드워즈 의 딸인 작가 에이프릴 발라시오가 그렇게나 자주 야반도주하듯 이사를 해야했던 과거를 돌아보다 우연이라기엔 자기 주변에서 너무나 자주 발생한 사건들을 떠올리며 진실에 다가가는 고백이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양으로 4살정도의 기억부터 생생하게 닮겨져이있다.
작가의 생생한 기억력에 놀라기 보다는 읽는내내 마음이 아팠다. 한 여자아이의 모든 것이었던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위해서 사랑과 관심을 받기위해서, 착한 딸이 되기위해서, 아버지의 발작적인 폭력을 피하기위해서 한시도 아버지에게 눈을 떼지못한 에이프릴이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춘기무렵이 되어 다른 가정의 진정한 ‘사랑’을 받는 딸들을 보면서 아버지에게 이상한 점들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에이프릴의 세상은 처참히 무너졌다.

범죄에 대한 기록, 고백이라기 보다는, 한 사람의 인생을 돌이켜보면서 안타까웠던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마주하는, 그것으로 인해 자기자신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 멈춰있고 도태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에이프릴 작가의 의지로 <기억은 눈을 감지 않는다>는 다가왔다.

언제가 처음 아버지의 모습인지는 긴가민가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아버지의 정장을 입어도 아버지가 입었을 때보다 더 많은 여백이 있었을 정도로 아버지라는 존재는 크고 든든하고, 무엇이든 척척해내는 정말 수퍼맨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가정을 지켜내는 모습과 내리사랑을 배울 수 있는 온기라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관계가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비록 경상도 아버지들은 제법 무뚝뚝했고(그래도 그중에서는 서윗한 아버지셨다)그 시대의 아버지들 처럼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체벌을 하셨다.
맞을 때는 무섭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지만 나의 잘못이었고 지나고나면 싫었지만 바르게 자라길 바라는 사랑과 진심이 담겨있음이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도 아버지가 처음이었으니 서툴렀으리라. (하지만 우리아버지는 태권도 선출이시다 음 아부지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하셨거나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신건 아닌지😂)

하지만 에이프릴이 받은 체벌은 그렇게 잘되길 바라는 사랑이 담겨있지 않았다. 단순한 분노의 표현이었으며, 자기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의지의 표명일 뿐이었다. 누가 자기 자식을, 그것도 딸을 기절할만큼 체벌하는가.
어떤 빌어먹을 아버지가 딸의 목에 키스마크를 남기는가.

온전한 사랑과 가정 교육을 받지못한 에이프릴은 그래도 자신의 가족들을 아프게 하면서도 사회에 옳은 일을 했다.
모든 가족이 자신들을 생각할 때 에이프릴만은 피해자의 가족을 생각했다. 진정한 어른이고, 진정한 부모가 될 소양을 가진 것이 아닌가 싶었다.

자식들의 앞 길을 지키고 제시하고 나아가는 방법을 가르침과 동시에 사회인으로서 참고 해야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내와 사랑을 가지고 솔선수범하여 알려줘야하는 존재, 부모.

부모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에이프릴에게만이 아니라 부모는 아이의 세상 전부이다.
정말 많은 준비와 인내가 필요한 숭고한 일임을.

그리고 에이프릴이 이 책을 본인이 쓴 것이 다른 가족들에게 오히려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차피 밝혀질 일이었으며(나쁜 일은 결국 드러난다 그것이 정의이다)이왕 밝혀질 일 본인의 입으로 세상에 드러내면 천륜을 저버렸다같은 그런 욕은 자신에게 쏠릴테니 말이다.
다른 가족들은 피해자가 되어 동정과 이해를 받을테니.

괴물에게서 이토록 큰 사람이 태어날 수 있다니.
에이프릴에게 존경과 경외심이 마구 샘솟는 독서였다.

혹시나 자신의 환경을 탓하며 불행하다 생각하고 자포자기 해버린 사람이 있다면, <기억은 눈을 감지 않는다>를 읽어보길 바란다. 등짝을 맞은 것처럼 찌릿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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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무지개 -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
김용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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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화창한 날 피어오른 기대치 않은 무지개를 보았을 때의 그 행복함을 기억하는가? 단순한 빛의 난반사 현상일 뿐인데 그 기억이 강렬히 남아있다. 그래서 물줄기를 뿌리다가 인위적으로 생긴 무지개를 봐도 그렇게 반갑고 기쁠 것이다.

무지개가 하나가 아닌 여러개가 뜨는 과잉 무지개는 어떨까.
행복함이 몇 곱절을 커져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과잉’이라는 어감이 어쩐지 불길하다. 많다는 의미를 가진 어휘 중 긍정적인 뉘앙스는 아니다.

#과잉무지개 (#김용재 지음 #자음과모음 출판)의 주인공 준재는 어김없이 그런 부정적인 상황으로 글을 읽는 우리를 맞이한다. 몇 년 간격으로 부모를 모두 잃고 부모님의 사망보험금 까지 사기로 날려먹은 준재는 삶의 끈을 놓으려 한다.
그렇게 한 사이트에 접속을 하게되었고 접속만 하였을 뿐인데 사찰이라도 당한듯 개인번호로 연락이 온다. 삶을 마무리하고 싶으면 적어주는 곳으로 오라며.

미지에 대한 두려움보다 이대로 살아숨쉬는 것이 더 두려웠던 준재는 그 초대에 응하고 그러면서 3개월의 여명을 부여받는다. 그 기간 동안 괴한들의 요구에 응하며 할머니들이 모여있는 시설과 유기견 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면서, 자신을 아껴주고 기꺼이 기억해 줄 사람과 강아지를 만나며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주던 것들이 삶에 미련을 가져다주기 시작한다.

준재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살기 힘든 세상이다.
갖가지 실패를 경험하며 이리저리 깎여 나가다 보면 어릴 적 작은 일에도 까르르 넘어가며 웃어제끼던 나는 거짓말처럼 남아있지 않다.

거기에 세상이 모두 나에게 등을 돌려도 기꺼이 내 편이 되어줄 부모님의 부재까지 겹쳐지면 이 세상이 멈춘 것 같다.
부모님 중 한 분만 남아도 감사하면서도 부양해야한다는 책임감이 삶을 옥죄기도한다.

그만큼 모든 것들이 삶을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위에서 말했던 것들이 물론 가슴아픈 일이지만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님을 의외로 흔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이제 안다.
(이왕 겪은 것 나만 겪고 내 주위사람들은 겪지않았으면 싶어진다 살아가다보면)

결국 모든 것은 우리가 스스로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힘들다고 불러냈을 때 상대방이 들려주는 조언같은 답답함이 있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것밖에 답이 없으니까.

누가 모르는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것을, 어떻게 마음을 먹어야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는데.
그 답을 <과잉 무지개>가 주고있다.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아보라는 것.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고 환기시키고 집 청소를 하고 건강한 과일로 아침을 챙겨먹고 독서를 하고 나가서 일을 하고 보통의 일상에서 행복을 누리라고 말한다.

행복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기다리고 염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야할 태도이다.
주변사람들의 웃는 모습에 감화되어 자신도 미소지어야하며, 나 뿐만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온정도 있어야한다.

그런 모든 사소한 일상들에 최선을 다해 마음을 담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마지막 순간에 돌이켜 봤을 때 행복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의 태도가 아닐까.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나서 남겨진 사람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혼자 남겨져서 내 편이 없다고 생각이 들텐데 이것도 그 사람의 몫까지 내가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더 이롭지 않은가싶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부담이겠지만, 잘 다스려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내가 이루어온 것들을 지켜내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전 이키가이 生きがい 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삶의 보람, 삶의 의미 정도로 번역되는 단어인데, 우리 스스로가 왜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정말 정신없이 살다보니 스스로에 대해, 삶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이 없다. 하지만 그럴때일수록 나 스스로에대해, 삶에 대해, 내가 왜 이렇게 힘든데도 계속 아둥바둥 최선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 답이 바로 이키가이,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남겨진 입장에서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인생의 목적과 태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소설이었다.
35살까지 글을 쓰고 안되면 포기하려 하셨다는데, 아픈 개인사와 맞물려 직접 멋진 삶의 태도를 보여준 이제 계속 글을 쓸 결심을 한 34살 작가님을 앞으로도 응원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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