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8
이디스 워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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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는 계절은 어떤 계절일까?
나는 여름이 아주 취약한 (그래서 싫어하는) 사람이다.
땀이 많고 더위에 약하고 어릴 적 피부가 검어서 놀림받았던 기억때문에 피부가 타는 것도 싫어한다.
몸도 마음도 뜨거운 태양에 녹아 에어컨 밑에서 널부러져 있기만했다. 나의 여름은 ‘가뭄’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내 안을 살펴보며 달리고, 해보고싶다 생각이 드는 것들을 해보면서 올해 나의 ‘여름’은 달라졌다.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을 들려주면서 어떤 계절일 것 같은지 물어보면 높은 확률로 여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약간 과장해 을씨년스럽기까지만 긴박한 음들이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이 연상된단다. 하지만 살짝 다른 여름의 태풍 과 폭풍우를 음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봄에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싹을 틔운 새싹들이 이 혹독한 비바람을 견뎌내면 더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더 크고 무성한 잎을 낸다. 꽃봉오리를 맺고 꽃을 피우고 열매라는 결실을 맺기위한 큰 가능성을, 큰 에너지를 온 몸 가득 받아들이고 있는 계절인 것이다. 그래 올해 여름은 가능성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계절이었다.

나에게 십수년동안 똑같던 여름이 올 한해 바뀌었듯이, #이디스워튼 의 #여름 (#민음사 출판)속 주인공 ‘채리티’에게도 열여덟의 여름은 남달았다.

이십킬로미터 넘게 떨어져있지만 너의 뿌리를 잊지말라는 듯 우뚝 솟아있는 ‘산’에서 태어나 노스도머에서 살아가고 있는 채리티는 그 작은 동네에서의 일상이 마냥 지겹고 따분하고 화가난다. 큰 도시로 나가서 살고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런 그녀와 노스도머에 새로운 바람처럼 등장한 미청년 하니. 그는 건축에 푹 빠져있지만 그럼에도 채리티와 하니 사이엔 묘한 기류가 흐른다.

어린나이에, 둘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않는 한계에 대한 저항감까지 더해져 그들의 사랑은 세차게 내리는 폭우에도 꺼지지 않고 여름내내 활활타오른다.
그 사랑은 새 생명이라는 결과값까지 도달하고, 자신이 처해진 문제를 모두 해결하고 오냈노라며 노스도머를 떠나간 하니는 돌아올 기미가 없다. 하지만 채리티는 많이 슬프지 않다. 그와의 불같은 사랑을 할 때 하니와 평생을 함께하는 미래는 그린 적 없기때문에. 하지만 새 생명은 지켜야했기에 평생동안 최선을 다해 외면했던, 자신의 엄마와 ‘식구’들이 있는 ‘산’을 향했지만 마침 그날 한번도 본 적 없던 채리티의 엄마는 죽어 언땅에 묻히고, 산사람들의 열악한 환경을 아이에게 줄 수 없다는 심정으로 뛰쳐나오다 그녀를 데리러 온 로열 변호사와 마주친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찾아온 ‘산’에서 채리티를 데려와 평생 채리티의 보호자였던 로열 변호사(로변)는 지금 채리티에게 가장 필요한 따뜻한 쉴 곳과 음식을 주며 앞으로도 이러겠노라며 자신과 결혼하자고 한다.

결혼식에서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결혼식을 마치고 그들의 집은 붉은집으로 돌아가며 이야기는 끝난다.
계절도, 채리티의 삶도 무수한 생명체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시기인 여름에 시작한 이야기.

누군가는 채리티의 여름이 한 여름밤의 꿈으로 끝나는 실패라 여길 수도 있지만 그렇지않다.
채리티는 자신도 어린와중에 일생일대의 사건을 외면하지 않고 책임진다. 자신만큼(어쩌면 자신보다 더)작은 생명을 위했다.
그렇게 한단계 성숙해진 채리티가 되었기에 그녀의 여름은 실패가 아닌 성장이었다. 성장이 원동력이 슬픔인 것은 안타깝긴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간은 안타깝게도 부의 감정에서 주로(또는 크게)성장하더라. 그래도 채리티가 여름내내 행복하기를 바라기는 했다. 지금보니 다른 누군가의 행복을 간절히 바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도 독서의 효과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렇게 채리티의 여름이 지나감과 동시에 나의 여름도 지났다.
같은 시기적 배경을 살아왔어서 그런지 유난히 채리티의 삶에 몰입해서 봤던 책인 것 같다. 이디스 워튼 특유의 자연 배경과 계절감에 대해 아주 상세하고 섬세하게 묘사가 되어있었는데 이러한 생생한 묘사가 채리티의 주변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게 해주어서 나도 노스도머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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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으로 간 로버 이야기
재스민 왈가 지음, 김래경 옮김 / 양철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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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재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인류 미래의 지구로 기대받고 있는 화성.
그 화성의 환경에 대한 데이터를 획득하기 위해 NASA에서 만든 화성 탐사 로버 ‘리질리언스’.
화성의 지질을 탐사하여 생명의 흔적을 발견함과 동시에, 통신이 두절된 커리지호의 데이터 복구의 임무까지 부여받는다.

이런 로버들은 무사히 화성에 도착해 지구로 데이터 전송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첫 순간에만 뉴스에 나올만큼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신호가 끊기거나 임무가 완수되었을 때에는 그냥(물리적 거리로 인해 어쩔 수 없지만)‘버려진다’

아마 이렇게 버려지는 로버를 안타까워 하는 사람은 로버를 만든 사람들과 우주 덕후들 정도가 끝 아닐까.
하나의 소모품으로 인식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런 로버 리질리언스, ‘리지’는 프로그래밍중에 인간의 감정을 학습하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사람의 언어를 나태낼 수는 없지만 좋고 싫고 고마운 감정을 느끼는 리지는 본인과 똑같이 생긴 로봇 저니, 화성 탐사의 짝꿍이 될 드론 로봇 플라이, 화성에서 통신하는 인공위성 가디언과 함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화성으로 향한다.

화성에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리지.
하지만 리지는 야심이 있다. 지구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만큼 ‘가치 있는’로버가 되겠다는 꿈.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특별한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그렇게 화성의 영화(소설이 원작인)‘마션’으로 유명해진 모래폭풍을 헤치고 특이한 현상이 관측되는 장소로 나아가던도중, 통신이 끊겨버리고 그 상태로 17년 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리지는 괜찮을까? 무사할까? 무사하다면 다시 지구로 돌아올 수 있을까? 자신의 바램을 이루어 낼 수 있을까?

#재스민왈가 가 쓴 #화성으로간로버이야기 (#양철북 출판)의 이야기이다.

나이가 어지간히 먹은 상황이라 예전 영화 로빈 윌리엄스(그곳에서 잘 계신가요)주연의 ‘바이센터니얼 맨’이 생각났다.
가사일을 돕는 가전제품 가사로봇 ‘앤드류’의 회로에 마요네즈 한방울이 떨어져서 앤드류에게 감정이 생기는 영화인데(찾아보니 2000년 영화네🙈)감정이 없는 로봇에 감정이 생겨 무얼가를 원하고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우리와 똑같이(어쩌면 더 낫게)삶을 ‘살아가는’이야기는 언제나 취향저격이다.

이런 취향저격의 작품을 본 뒤에 나는 어떤 ‘가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들었다.
어느순간 그냥 눈뜨면 씻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씻고 잠들고의 일상이 아무런 생각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드는 생각이라고는 아 빨리 주말 왔으면 좋겠다(자매품으로 아 벌써 월요일이라니)정도. 누구에게도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을 그냥저냥 살아내기만 한 것이다.

누구는 저 먼 화성까지 가서 샘플수집하고 소실된 데이터를 살려내는 인류 역사에 남을 업적을 달성하고도 4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인해 지구로 돌아오지 못해서 40억 달러 이상의 값어치를 하려고 난리인데 나는 리지의 기본 미션만큼 의미있는 것도 하지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언가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보내기 위해서는 추구하는 어떤 가치, 가치관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행복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내가 추구하는, 목표로 하는 것들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을 매일매일 성공하는 것이다.
물론 목표를 설정하는 것에 많은 생각을 해야하겠지만(돈을 쫓는 그런 빠른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무의식에서 부터 행복한 느린 행복을 추구하는)매일매일 성취해내는 것에서 또 다른 가치를 추구할 수도 있고 나 스스로의 가치도 더해질 것이다.

누구보다 멋지고 가치있는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같은 사람이 아닌 로버, 리지라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오히려 원래부터 가지지 못했던 인격이 부여되면서 좀 더 ‘인간다움’에 대해 강렬히 고민하고 사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유의미한 삶, 가치있는 삶, 인간다움에 대해 혹독하지만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먼 우주 속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사건들 속에서 누구보다 인간다운 로버, 리지에게 생생하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언가를 배우거나 가르쳐주는 것의 최고는 직접 보여주는 것이라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리지’는 <화성으로 간 로버 이야기>는 최고의 스승, 최고의 교과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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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오브 킹스 - 세상에 온 가장 위대한 왕, 그분의 생애가 시작된다
찰스 디킨스 지음, 김성진 편역 / 린(LINN)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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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도서제공으로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막연히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꿈꾸던 시절.
가족영화에서 보았던 것 처럼 아이에게 자기 전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그렸었다. 거기다가 직접 내가 쓰고 그린 이야기 책까지 추가한 아주 원대한 상상을.
실제로 이뤄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문득 저런 공상(?)을 하던 때가 있었지라며 떠올릴때마다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위대한 작가인 #찰스디킨스 는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직접 나의 상상을 실행에 옮겼다(아빠가 이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꿈😂)
아이가 흥미를 가질법한 신비로운 이야기와, 세상을 살아가면서 옳은 태도와 생각을 강압적이지않고 부드럽게 제시하고, 그러면서도 평생을 두려움없이 겁먹지 않고 단단하게 두발을 땅에 붙이고 살 수 있게 해주는 신앙심까지 자연스럽게 심어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바로 왕 중의 왕, 예수의 일대기를 다룬 #킹오브킹스 (#린 출판)이다.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의 시대부터, 사악한 뱀의 혀 사탄, 악의 꾀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베어먹은 이브, 그로 인해 벌을 받으면서도 벌만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안배(너의 후손이 뱀을 처단할 것이다)까지 챙겨주는 신의 모습부터, 크리스마스때만 되면 교회에서 극으로 올려지는 예수의 탄생,온갖 기적과 올바름을 보임에도 간악한 인간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하는 예수와 마리아, 그의 사도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름다운 삽화들과 함께 수록되어있다.

아이들이 수태고지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흔들림없고 흥분하지않는 맑은 눈의 고요한 예수를 따라가다보면 이 이야기를 듣는 아이도 예수처럼 고요하고 심지가 궂은 아이로 자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찰스 디킨스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직접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다고 전해지며 원래의 제목은 #우리주님의생애 란다.

책의 시작에 “사랑하는 아이들아, 너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았으면 좋겠구나. 모든 사람이 그분에 대해 알아야하기 때문이야. 이 세상에 그분처럼 선하고, 친절하고, 온유하며, 잘못하거나 아프거나 비참한 모든 사람들을 그분만큼이나 안타깝게 여긴 사람은 없었단다.”라고 적어 둔 것만 보더라도 찰스 디킨스가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어떤 마음에서 예수의 이야기를 글로 적어 아이들에게 선물했는지 알 것만 같다.
하루 한편씩 짧은 글을 아이 머리맡에 앉아 들려주는 찰스 디킨스와 아이의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절로 따뜻해진다.

성경에 적혀있는 이야기들이긴 하지만, 성경은 특유의 번역때문에 아이들이 스스로 읽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게다가 교회에 가서 성경공부라는 명목으로 처음 예수를 접하게 되면 성경도, 예스도 너무나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라는 걱정도 된다. 신실한 아버지가 자식들도 신앙심 가득한 생을 살길 바라며 예수를 너무 어려워하지 않길, 친근하게 받아들여 평생을 가까이 하길 바라는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책이 바로 <우리 주님의 생애>,<킹 오브 킹스>인 것이다.

그런 따뜻함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이렇게 자상한 투로 예수의 이야기를 본 것이 처음이라서일까 나에게도 예수의 일생이 근엄하다기 보다는 숭고하며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다가왔다.

예수가 자기의 존재와 사명에 대한 확신으로 흔들림없는 맑은 눈빛을 잃지않는 모습과, 요한을 직접 찾아가 세례를 받고,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행하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게 행하며, 재물과 멀리하고 항상 일반 시민들의 곁에 가장 낮은 곳에서 머무는 모습들이 성경에서 보았을 때 보다 더 생생하고 깊게 마음에 박혔다.

겸손함, 자비로움, 애민의 마음, 자기확신, 흔들리지않는 차분함, 고요함 배우고 본 받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성경에서 예수는 너무나 거룩해 닮고싶다라는 생각조차 못하는 존재였다는이 책에서는 나도 저러고 싶다라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는 한명의 이상적인 인간의 표본으로 느껴져서 신기한 경험이었다.

신앙심을 가지는 것도 좋지만, 만약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예수와 기독교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감을 없애고, 예수의 일대기를 성경보다 쉽게 익힐 수 있고, 선한 인간의 모습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훌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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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
해리엇 컨스터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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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도서제공으로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발디, 바이올린, 클래식 이 단어들만 들으면 얼마나 낭만적인가. 잘 모르는 나의 귓가에도 바이올린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피에타 (#해리엇컨스터블 씀 #다산북스 출판)은 위의 모든 단어가 들어있지만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고 피에타의 담벼락 구멍 안으로 밀어넣어진 고아 여성의 처절한 삶이 닮겨있었다.

“1696년, 갓난아이 하나가 베네치아에 있는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 보육원의 담벼락에 뚫린 구멍을 통해 입소했다.
’안나 마리아 델라 피에타‘라는 이 름을 받은 이 아이는 18세기를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장했다. 그녀의 스승은 안토니오 비발디였다.”라는 역사적 사실 하나로부터 시작되어 4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 완성되었다.

안나 마리아 델라 피에타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피에타’에 맡겨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세상을 이끌고 역사를 만들어낸 재능이 있음을, 남들과는 다름을 스스로 확신하며 피에타에서의 생활을 견뎌낸다.

그렇게 피에타의 교육방침으로 마주하게 된 바이올린에서 운명을 느끼고 원래 한몸이었던 것 처럼 바이올린에 흠뻑 빠져들게 되고, 마침내 당대 최고의 음악가를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나날이 실력이 늘어가지만 스승의 이름으로, 자기의 이름을 철저히 숨겨진 채로 재능만 이용당하는 현실에 지쳐만 간다.
<피에타>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여성 예술가들의 입지는 몹시도 열악했다. 문학만 보아도 작가가 여성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아무도 구입하지 않았고 위대한 조각가 로댕의, 그 못지않은 재능을 지닌 제자 카미유 클로델(로댕의 연인으로도 유명하다)은 너무나 오래 그의 아래에서 그의 작품을 맡았을 뿐만아니라, 이별을 하면서야 예술로도 로댕과 떨어지게 되어서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독립으로 안타까운 인생을 보냈던 것 등이 그 예이다.
예술가로 충분만 재능과 작품들을 선보였지만 그럼에도 그녀들는 남성 예술가들의 ‘뮤즈’라는 이미지가 더 강했다.
독립적 예술가라기 보다는 남성 예술가의 이름으로 작품이 발표되고, 님성 예술가의 작품들 돕고, 눈부신 재능으로 남성 예술가의 영감이 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시 되는 시대였는지라, <피에타>속에서 너무나 철썩같이 누군가는 불편하게 느꼈을지도 모를 만큼의 ‘자기는 재능이 있고 반드시 성공한다’는 자기확신이 너무나 멋지게 느껴졌다.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여러분야에서 여성들의 재능착취는 사실상 빈번하게 일어난다. 같은 업적도 열화되고 그 열회는 차별로 나타난다. 성공을 이루어 세상에 알려져도 무언가 감춰진 부정같은 것은 없는지 부터 생각하며 아니꼽게 본다. 정당하게 인정되는 경우가 잘 없다. 하지만 그나마 조금씩 진전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자기는 응당 해낼 사람이며, 널리 알려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자기확신과 떳떳함을 가진, 안나 마리아같은 여성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최신의 지식들이 끊임없이 업데이트되고 객관적 발견과 연구성과로 모두다 공평하게 업적을 인정받을 것이라 믿었던 과학분야에서도(심지어 MIT에서)교수의 연봉차이, 아래 직급의 교수보다 작은 방 등으로 치사하게 여자 과학자들이 차별대우를 받았으나 과학자답게 데이터를 모아 발표하고 세상에 알리면서 아이비리그 대학의 총장이 여성이 되는 것 까지 이루어낸 것도 적극적인 여성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자기확신이 확실했던 안나 마리아도 나는 그런 적극적인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먼저 알을 깨고 울음소리를 내어야 다른 알들도 깨어저 목소리를 내게 되는 것이니 삼백년 전의 첫 부화가 안나 마리아였던 것이다.

결국 안나 마리아는 유명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으로 성과를 내며 자신의 확신을 현실화시켰다.
그 이름은 유럽전역에 퍼졌다.

결국 실화로 남은 것은 하나도 남겨지지 않고 비발디의 전기 속에서 주석처럼 남아있는 것이 다였으나,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꿈, 목표를 당당히 이루었다.

결국 옳은 것은, 위대한 것은 드러나는 법이다.
흑인 남자보다 권리가 적었던 여성들, 순탄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하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시기에서 그런 위대한(어쩌면 처절한 스스로의 삶이 담겨 마음을 울리는)자신이 있었다는 흔적을 남긴 사람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누가 뭐라해도 자기확신을 가지길.
부당함에 목소리를 내길.
그렇게 흔적을 남기길. 끝내 드러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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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글쓰기 - 고도원의 인생작법
고도원 지음 / 해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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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도서제공으로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글이라 하기엔 좀 그렇지만 단어들의 나열을 반년정도(!) 꾸준리(!!)해오다보니 느끼는 것이 무엇이냐면 꾸준함이 어찌나 이렇게 힘든가였다.

위대한 작가 하루키도 영감이 잘 떠오르던, 떠오르지않던 하루에 무조건 정해진 시간,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쓴다고 한다.
그렇게 해야 꾸준히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물론 매일이 쌓여 거대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굉장히 대단한 일이지만 매일매일 새로운 주제로 글을 써내는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저것이 가능한 일인지 외계인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우리 주위에 이미 외계인이 들어와있다더니🙈)

매일 하고픈 말을 생각해내는 것도 힘든데 심지어 글의 퀄리티까지 좋다면 그것은 정말 반칙이 아닌가? 매일 고갈되지 않는 소재, 창의력, 글의 퀄리티까지. 이런 능력이라면 필요없다고 할 사람은 한명도 없을 것 같은 만능의 ‘초능력’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놀랍게도(그래 세상은 항상 놀랍다)이 초능력을 실제로 지니고 있는 초능력자가 우리 세계에 존재한다.

#누구든글쓰기 (#해냄출판사 출판)를 쓴 #고도원 작가가 바로 그 초능력자이다. 우리나라 이메일 매거진의 시초로 꼽히는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2001년부터 시작했고(지금도 ‘고도원의 아침편지’ 주인장, ‘아침편지 문화재단’이사장으로서 매일 글쓰기를 실펀하고 있다)글쓰기의 끝판왕이라는 대통령 연설 담당 비서관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입을 맞췄다.

꾸준함과 퀄리티 모두 잡은 인물.
그 와중에 꾸준함은 20년을 훌쩍 넘어간다.
반년동안 띄어쓰기 포함해서 2200자 채우는 것도 부담이고 힘들고 하기싫은 날이 많은데(실제로 쉬는 날도 있다) 20년이 넘는 세월을 어떻게 매일 꾸준히 써낼 수 있었을까.

나는 글의 퀄리티보다 그 꾸준함이 더 신기하고 배우고 싶었다.

고도원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지금과는 사뭇다른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이유가 거창하지 않았다.
짝사랑하는 누군가가 있어서, 장학금을 위해서, 심지어 할일이 없어서 글을 쓰기도 했단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기도 하고 불순한 의도(?)로 글을 썼네 싶기도 하지만 이런 사연들을 다 빼고 한 문장으로 정형화 하면 ‘나를 위해서, 누군가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위해서‘진심을 다해 글을 썼다는 것이 된다.

무언가를 위해서 진심을 다해.
이것보다 더 숭고한 글쓰기가 있을까.

인생이 순탄했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박경리 작가의 말대로 저자도 기쁘고 행복한 순간만이 아니라 힘들고 괴롭고 슬픈 상처입은 순간들도 글로 남겼다.
그리고 그 글들은 진심이 담겨지고 전해지고 매일 저자의 글을 기다리는 수많은 독자를 만들어냈다.

이 책에서는 글에 삶을 담아내는 방법을 전수해준다.
경험을 글로 쓰고, 6하원칙을 반영하고, 자신만의 문체를 가지기 위해 해야하는 일들을 자상하게 알려주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의미하고 강조하는 것은 바로 “매일 글 쓰고 독서하는 습관”이다.

좋은 책을 읽고 글감을 수집하고, 어휘외 문장을 수집하고 매일매일 내 글에 그 어휘와 문장을 적용시켜 보는 것.
그렇게 매일 글을 적어나가며 살아있다면 누구든 할 수 있고, 살아있다면 무조건 할 수 밖에 없는 호흡같은, 생각보다 거창한 것이 아닌 글쓰기를 내 삶 속에 넣는다면 우리는 작가가 될 수 밖에 없다.

거기에 작가가 알려주는 소재찾기와 시선을 끄는 첫문장을 쓰는 것 등을 첨가하면 조금 더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글을 잘 쓰는 방법보다 글을 매일 꾸준히 해서 내 삶에, 하나의 루틴으로 자리잡게 하는 것이 더 와닿고 좋았다.

우리는 우리가 의도하지 않아도 하루에도 수십 수백개의 외부자극을 받고 그로인해 우리는 어떠한 감정과 생각을 당연하게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들에 치이다 보면 그러한 내 안의 것들에 집중하고 이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거의 없다. 그러다보니 나조차 나 자신을 모르는 상태가 되는데 그렇게되면 참 삶이 단조로워지고 재미없어진다.

나 스스로를 관조하는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 매일 글쓰기의 최고의 장점인 것 같다.
내 삶에 글쓰기를 들여와 삶을 담아내는 글씨기를 하는 것.
그것으로 나를 톺아보는, 작법서로 시작해 삶의 태도와 올바른 방향을 알려주는 자기계발서로 끝나는 책이었다.

글을 쓰는 것과 내 삶에 꾸준히 무언가를 실행하여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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