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말 2 - 나를 떠난 글이 당신 안에서 거듭나기를 이어령의 말 2
이어령 지음 / 세계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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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평생을 꾸준히 공부하고 글을 쓰는 것. 좋아보이기는 하나 그만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취미로 마냥 사랑하던 것도 업으로 삼으면 애정이 반감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런데 꾸준히 공부! 하고 공부한 것을 꾸준히 글로 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겠나. 심지어 그런 글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사랑받는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을 모두 해낸 삶을 살고, 소천한 뒤에도 꾸준히, 여전히 글이 사랑받는 작가가 있다. 바로 #이어령 선생이다.
다양한 분야를 익히고 글을 쓰던 이어령 선생은 무려 88년 동안 글을 쓰고 사유했다. 그 수많은 책과 강연에서 깊은 울림을 주었던 글들 수백권 중에서 ‘정수’라 불릴만한 것들만 추려 #이어령의말2 (#세계사 출판)로 출판되었다.

1권 한권으로는 부족할 만큼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기도 했고, 미공개 강연을 비롯한 이어령 선생의 새로운 글들(저자의 사후 출판된 서적의 문장도)이 2권에 담겨있다. 평생을 글 써온 저자의 시간과 사유를 관통하는 감성, 지성, 자연, 문화, 물질, 정신, 일상, 상상 8개의 주제로 나뉘어 담겨있다.

지식인들에게 숨쉬는 것과 마찬가지라던 ‘말하기’를 사랑하고 평생을 해왔던 저자는 생애 마지막 직전에 팬데믹 사태를 경험하고 ‘생명’이라는 키워드에 대해 특히나 많은 호흡을 했고 그 흔적들을 남겼다. 우연찮게 ‘생명’에 대해 21년도에 남긴 영상을 봤었던 기억이 있다. 끔찍한 사태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그럼에도 이어져 나갈 인류의 미래의 희망이 생명이라 여겼던 저자의 뚜렷한 주관이 그만큼 뚜렷하고 맑은 두 눈에 서려있었다.

전쟁, 환경오염, 경제위기,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과 부정적인 것들이 가득하게 눈앞에 놓여져있는 지금과 같은 시점에서 더더욱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강조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숨을 놓지 않듯 글과 사유를 놓지 않으며 누구보다 많은 말을 글로 남겼던 이어령 선생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말들을 다 잊어달라고 한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일지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리고 나만의 결론은 자신의 글이 누군가에게 평생의 말과 사유에 있어 마중물의 역할만을 하기를 바랬던 것이 아닌가싶다.

살아생전 저자는 유튜브와 같은 영상으로,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누군가의 말과 글을 받아들이는 것을 경계했다. 노력하여 스스로 생각하여 받아들이지 않은 것들은 의미가 없다고 말하며 책을 읽고 스스로 사유하길 바란다 했었다.

그렇게 수많은 저서를 남겼지만 자신의 글도 누군가에게 무조건 적으로 받아야들여지는 것을 경계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스스로가 읽고 사유하는 것은 놓치지 않길 바랬으니, 물이 끊임없이 흐르도록 처음에 살짝 부어주어 돕기만하는 마중물같이 자신의 글과 사유도 딱 그만큼의 역할만 하기를 바란 것 같다. 누군가의 생각, 그 전체가 자신의 것으로 채워지길 거부한 것이다. 자기의 글이 잊혀지기를 바라는 작가라 하면 어떻게 작가가 그럴 수 있나 싶지만, 어찌보면 자신과 자신의 글을 읽을 독자들의 글과 사유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가장 잘 지키고 응원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평생을 생각하고 글을 쓰다보면 문투는 어투와 거의 똑같게 되고 그리되어 군더더기가 없어진다고 들은 적이있다.
결국 글이 꾸밈없이 온전한 저자의 생각을 투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때 이어령 저자는 세상 모든 일에 대해 한쪽으로 치우친 글이 없었다. 명징하였으나 고요하였고 어느쪽으로도 편향되지 않았던 그의 글은 그렇게 누군가에게 마침내 잊혀질 결심을 담아낸 것이 아닐까.

평생을 애정으로 가르친 자식들이 이제 스스로 독립하여 씩씩한 날갯짓을 응원하는 어미새의 마음으로, 애정 듬뿍 담은 최후의 응원이 여기있다. 스스로 세상을 높은 곳에서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힘찬 날갯짓으로 날아오르길, 그렇게 자신의 삶을 향유하길.

스스로 사유하는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마중물 같은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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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키메라의 땅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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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하늘아래 같은 그림은 없다던가.
하늘 아래 같은 글은 없다라는 것을 #키메라의땅 (#베르나르베르베르 씀 #열린책들 출판)을 보며 느꼈다.
가제본으로 읽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정식 출간본으로 다시 읽게 되었는데 내가 느끼는 부분이 전혀 달랐다.

저번에는 신인류 3종이 기존의 인류의 모습을 답습해 나가는 모습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 할 수 있다면’라며 한번의 기회를 더 원하는 우리들의 모순을(높은 확률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겠지)느꼈다면 이번에는 신인류가 세상에 등장하기 전 까지의 인간들의 모습들에 더 눈이 가고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하나의 종으로 인식될 정도로 유전자가 비슷한 여러개체들이 각자의 환경에 적응하며 생명체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는 생명체들이 경이롭기도, 단 하나의 종 사피엔스만 살아남은 인간이 신기하기도 했으며, 스스로에게 ‘현명한’이라는 뜻의 이름을 붙였다라는 것이 참 인간은 오만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했다.

신인류의 선조 격인 원숭이와 돌고래, 박쥐, 두더지와의 혼종을 무단으로 침입해서 발견한 기자는 오히려 유명세를 타고, 저 실험은 인류의 존엄성을 위협한다며 격한 시위도 모자라 연구자인 카메러를 죽이려고 총을 쏘기까지 한다.
불쾌한 골짜기라고, 자신과의 유사성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호감이 사라지고 불쾌함을 느낀다고. 내가 본 격한 시위자들의 그럴싸만 말들은 모두 ’불쾌한 골짜기‘를 숨기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 실험을 완성하기위해, 연구자의 안전을 위해 실험체(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현실이 씁쓸하기도)들을 안락사시키고, 연구자를 지구 밖으로 보내는 상황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우주 정거장에서도 박사의 연구를 막기위해 총을 쏘고, 아무 관련없는 사람을 우주로 날려버려 늦은 죽음을 맞이하게 해버리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현기증이 일었다.

그러면서도 인류를 위해 신인류를 만들어내겠다는 카메러 박사의 순수한 열정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 스스로의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 작가의 말대로라면 이러한 일들이 내가 살고 있는 지금부터 오년 뒤에 벌어지는 일이라니, 당장 내일 이러한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다라고 여겨질만큼 인간의 이중성은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다.

저런 윤리에 어긋나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실험이라며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이 히잡 밖으로 머리카락이 보였다는 이유로 시작된 핵전쟁으로 대부분의 지구를 날려버리는 것을 보며 무엇이 윤리인지 한참을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멍하게 있게 만들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대재앙 이후 파괴된 곳에서 살아남은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을 이야기 하지만 <키메라의 땅>에서 과연 어디가 아포칼립스 지점인지, 책을 덮고나서 명징하게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나는 윤리란, 사람이라면 응당 해야함이(생각으로든, 행동으로든)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수 있다. 그럴 때는 대화를 해야한다.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만 이 책에서는 어느 지점도 대화로 해결하려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침입하고 훔치고 파괴하고 과격한 시위를 하고 총구를 겨누고, 폭행하고 강간하고 핵무기를 날려댄다.

어쩌면 아포칼립스는 어떤 한 순간이 아니라, 결코 짧지않은 기기를 뜻할 수도 있겠구나, 문명이 끝장난 것이 아포칼립스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이길 포기한 순간이 아포칼립스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했던 폭력, 핵무기, 전쟁들도 인간이 인간이길 포기한, 비윤리적인 행동 중의 하나기도 하고.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며 찬란하게 이룩한 생물학적, 천문학적, 물리학적 지식들이 총망라되어 있는 이 책에서 자신의 악함과 못남을 숨기기 위해 비싸고 좋은 것들로 자신을 치장한 모습을 한 사람이 떠올랐다.

모든 것을 다 떠나, 인간다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위대한 작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외국인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저의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읽었다.

개미에서 부터 이어지는 그의 과학적 상상력은 여전히 놀라웠고 식상하지 않았다. 화를 참지못하는 인간과는 달리 그의 책은 겉도 속도 어느것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한 작품이었다.

우리는 그러한 것을 예술이라 부르고 기꺼이 돈과 시간을 지불한다. 어느 것 하나 아깝지 않았다. 예술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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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와 카유보트는 왜 트루빌로 갔을까? - 시인의 언어로 다시 만나는 명화 속 바다
김경미 지음 / 토트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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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우리 바다 가자!”
“산책갈까?”를 듣는 강아지들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각박한 세상이 나에게 부여한 온갖 의무와 부담,스트레스(이음동의어들이다)들을 머리 뜨끈해질 때까지 견디다보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는 활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순간이 온다.

그럴 때 화산은 말그대로 우뢰와 같은 굉음을 내고, 나는 “바다 가고싶다!”라는 소리가 터져나온다.

굽이치는 물결, 부서지는 파도, 반짝이는 윤슬, 그 이상의 백색소음은 없을 바닷물과 바위가 부딪히는 소리, 갈매기소리, 바람소리, 시원하면서 괜히 짭짤하고 비릿한 듯한 내 몸을 관통하는 것 같은 바닷바람까지. 대폭발의 순간마다 바다를 떠올리는 것은 합당한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바다는 마냥 친절하지 않다.
용왕에게 각종 굿과 제를 지내는 것은 아낌없이 내어주는 듯 하지만 동시에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분이 산뜻해지는 에메랄드 빛 바다도 십미터만 그 속으로 들어가면 빛이 들어오지 않는, 기분나쁜 물소리만 들리는 위험천만한 곳이 되니까 말이다.

그런 이중성 때문인지 화가들은 바다를 사랑했다.
평생 바다만 6000여점을 그린 화가도 있고 신화의 한장면을 그리면서 뒷배경에 수평선이 길게 펼쳐진 바다를 그려 우리 삶의 한 장면같은 현실에 두 발을 붙이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
빛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상주의 화가들에겐 더할나위 없는 소재다. 자연에 의해 부서지는 파도와 요트경기로 부서지는 인위적인 파도에서 매순간 빛에 부딪혀 반사되는 빛의 색은 몇번을 그려도 똑같은 색을 보이지 않을 것이기에.

#모네와카유보트는왜트루빌로갔을까 (#김경미 씀 #토트 출판)은 시인인 저자가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그림들로부터 시적 자극을 받거나 고통과 좌절에서 마음 건져 올린 적이 아주 많았다고 고백하며 그 고마움을 갚기 위해 한 권의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그림들을 하나 둘씩 모으다 보니 바다와 해변이라는 주제와 풍경으로 그림들이 집중되기 시작했다고. 김경미 시인은 바다는 단단히 두발을 붙이고 있을 수 없어서 두려워했다. 그래서 배도 당연히 싫어했고. 하지만 자신이 모아놓은 그림들의 배경이 된 바다를 최대한 많이 가보기로 결심을 하고, 그 장소에 가서 정말 그림과 똑같은 풍경을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바다, 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여행의 참 맛을 알아간다. 그렇게 그녀가 모은 바다의 화가들은 54명이나 된다.

뜻하지 않은 인파나 변덕스런 날씨, 낯선 곳이라 길을 잃어버리는 등의 의외성에서 당시에는 몰랐지만 알고보니 의미있는 곳이었던 장소를 가보기고 하고, 명화에 자신만의 스토리를 글로 적어나가며 저자는 화가들이 어떤 생각으로 이곳을 그림에 담아냈을지 생각하며 그 과정에서 이 책을 읽는 우리도 공감하여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는 자아성찰을 한다.
결국 여행이란 낯선 곳을 찾아가는 동안 낯선 나를 발견하고, 그런 낯선 나의 모습에 익숙해져가는 것인가보다.
그곳이 바다라는 장소로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모네, 고갱, 라울 뒤피, 샤갈, 마티스, 고흐, 모딜리아니, 소로야 등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화가들고 많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처음 들어본 러시아 화가 아이바좁스키가 가장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다.

러시아에서는 영하20도던, 30도던 전시회에 아침부터 줄을 선다는 인기작가라는데 그의 <아홉 번째 파도>작품이 책에 수록되어있다. 러시아에서 가장 높고, 위험한 파도라는 뜻을 가진 아홉 번짜 파도는 구조요청을 절실히하는 사람들과 완파직전의 배가 생생하게 담겨있는데, 이 그림에는 이런 위험뿐만이 아니라 난파선 위의 상황은 절망적으로 보이지만 위쪽 하늘로는 화폭의 3분의 2를 차지할 만큼의 거대하고 눈부신 빛이 몰려오고 있다. 그 빛은 예고한다. 하늘은 곧 눈부시게 맑아지고 파도는 곧 잠잠해질 것이며 그대들은 곧 무사히 구조될 것이라고. 아홉 번씩 목숨을 위협하는 파도에도 열 번이라도 구해주는 빛은 있는 법이라고 희망예찬의 의미로 볼 수도 있어(하늘, 바다, 파도의 묘사가 아름다운 것도 당연한 이유이다)러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꼽힌다고 한다.

이렇게 하나의 대상에도 정반대의 무언가가 담길 수 있는 것이 예술이고, 인생이다.
어느 쪽으로 받아들일 것인지에 따라 우리 삶도 바뀌는 것임을, 작가들의 바다 그림과 저자의 글로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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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 알고 싶다 : 인상 카페 편 클래식이 알고 싶다
안인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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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스토리텔러. 참 많은 사람들의 이름 앞에 붙는, 익숙한 단어이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아니면 적어도 글로든 생각으로든 자기자신에게라도 평생을 하는 ‘말하기’인데 이름 앞에 ‘이야기꾼’이라는 칭호가 붙을 정도면 얼마나 많이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얼마나 이야기를 잘하는 것일까?

내가 겪어왔던 ‘달변가’들은 주로 강연에서 보아왔고, 중간중간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적절한 농담과 수려한 외모, 사람들이 집중하게 하는 전달력 등 많은 요소들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강연은 이야기의 주제와 전달력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부수적인 요소들이 개입해서 자기가 하고자 하는 말을 흡입력있게 전달하는 것이 글보다 상대적으로 수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럴까. 텍스트만으로 그 사람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그 이야기의 주제가 곱씹어보지않아도 머리에, 마음에 쏙쏙 들어오는 글을 본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제대로 된, 진짜 ‘스토리텔러’의 글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예시를 들 수 있게 되었다.
#클래식이알고싶다 #인상카페편 (#위즈덤하우스 출판)을 쓴 #안인모 저자다.

<클래식이 알고 싶다>시리즈를 <낭만 살롱편> <고전의 전당편>에 이어 <인상 카페편>을 완성한 안인모 저자의 글을 보면 어릴적 부모님이 머리맡에서 읽어주시던 동화책의 몽글몽글한 ‘~했어요’의 어투인데 나이를 먹을대로 먹은 지금 이런 어투로 된 책을 보는데도 전혀 유치하지않고 오히려 눈에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글을 다른 사람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평소 말투와 비슷하게 써야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데 강연도 많이 하는 안인모 저자의 강연 속에서의 말투가 이럴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글의 어투만으로 훌륭한 전달력이 갖추어져있는데 내용면에서도 알차다.

<인상 카페 편>이라는 제목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음악의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음악가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말러, 드보르자크, 드뷔시, 라벨, 사티 7명 각각의 인생이야기를 비롯해 인생과 맞물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그들의 음악이야기를 위트넘치는 삽화와 ‘래알깨알’이라는 코너 속의 코너로 한명의 인간으로의 음악가와 그 음악가의 음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지식까지 하나도 빠지지 않고 간결한 문체로 이해하기 쉽게 담겨있다. 거기다 클래식 전공자의 전문적인 곡의 해설까지 수록되어 있어 클래식을 들어보고싶은데 어느 것부터 시작해야할지 갈피를 찾지못하는 입문자는 물론, 자신들이 몰랐던, 놓쳤던 것들을 알고 싶어하는 애호가들도 흥미롭게 볼 수 있을 책이다.

그리고 유명세에 비해 그들의 삶에 대해 다뤄진 글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드보르자크, 라벨, 사티의 삶과 음악들이 다루어져 있어 더 유익하고 의미있지 않았나 싶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의 부흥지가 파리였던지라, 파리의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 파리 특유의 노천카페에서 파리지앵처럼 커피한잔과 샌드위치를 시켜놓고 선글라스를 낀(누가봐도 여행객)스스로를 떠올리며 유럽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도 든다.

무언가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있다라는 의미는 누군가에게 그것을 제대로 알려 줄 수 있다라는 말과 같다.
안인모 저자는 클래식에 대한 애정은 물론(애정이 없으면 이렇게까지 할 수 없다. 클래식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진다)음악가들의 작품, 일기, 편지, 사진, 비평 등 방대한 기록물을 오랫동안 수집, 연구해 그들의 ‘인간적인 초상’과 ‘내밀한 삶’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진정한 교육자, 안내자임을 느꼈다.

친절한 설명과 해박한 지식, 본문 옆에 바로바로 곡들을 들으며 책을 읽을 수 있는 QR코드(국내 최초로 QR코드를 수록한 책이란다👍🏻)200여개가 이 책을 두고두고 읽어도 좋은, 클래식에 아주좋은 교재로의 쓰임을 보여준다.

클래식은 어렵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아마 무언가를 외우고 알고 나서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강박과, 남들은 좋다는데 나는 모르겠는, 그런 상황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나도 그랬다)이 책은 그런 니즈를 완전히 충족하면서도 쉽고 자상하게 부담감없이 채워준다. 게다가 자신의 취향까지도 책임져 줄 수 있는 책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클래식 애호가, 덕후가 되게 해줄 책이다.

클래식을 쉽고 재밌게 익히고, 평생 함께 할 친구로 만들고 싶다면, <클래식이 알고 싶다>시리즈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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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로트 페리앙 - 모든 삶에 깃든 현대 예술의 거장
샤를로트 페리앙 지음, 유상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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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20세기. 그렇게 멀지않고 20세기를 보았던,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21세기에도 살아가고있는 그런 시기이다.
당연히 지금과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20세기 초중반은 1,2차 세계대전과 인종차별로 인한 대량학살 등 끔찍한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전의 20세기는 19세기와 오히려 더 가까운 생활이었다. 나에게 그 시대의 모습이라면 강하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바로 여성인권이 약했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제약들이 있었겠지만 요즘 내가 가장 안타까워 하는 부분은 바로 남성 대가들의 이름의 큰 그림자아래 이름 자체부터 묻혀버리는 여성 예술가들이다.
재능이 남자못지않고 열정고 있고 결과물도 훌륭했지만 그 프로젝트의 마스터 (주로 남성)의 이름으로 발표되고, 이것이 남녀에게 모두 벌어진 일이라고 해도 나머지 팀원들의 이름 배치에서 기여도에 따른 순서가 아니라 여성이라 뒤로 밀리고 아예 이름이 빠지기도 한다. 여성 이름이 들어가있으면 고객에게, 심사자들에게 이미지가 좋지않다는 이유로.

나는 대학 진학 때 지금의 전공이 1순위가 아니었다.
건축이 1순위었는데 이미 건축사의 길을 걷고있던 외삼촌의 반대로 진학하지 못했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창의력이 1도 없는 나에게 맞지않는 길이기는 했으니🙈
그래도 나는 건물들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건축도 분명 하나의 예술이니까. 심지어 여러 예술들을 안에 들일 수 있는 포용력마저 있는 대단한 예술품이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들을 보러가기도 하고 자연 경관을 헤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한옥들도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지금 우리 주위에서 가장 널리 볼 수 있는 건축디자인을 구축한 건축가는 아마도 르코르뷔지에일 것이다. 모더니즘, 콘크리트를 대표하는 르코르뷔지에의 명성은 건축을 잘 모르는 사람도 들어봤을 정도일 것이고, 그가 디자인 했다고 알려진 쇼파와 의자같은 가구들도 빈티지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고 복각품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가구들은 르코르뷔지에의
이름을 따서 LC 라고 불렸는데 사실 이것들은 르코르뷔지에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다. 프랑스의 1세대 여성 건축가이자 실내
디저이너, 가구를 모든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샤를로트페리앙 이 그 작품들에 가장 큰 기여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가구들은 2022년이 되어서야 정확한 의미의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LC로 불리고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여러가지 제약들이 있음에도 페리앙은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않았다. 이런 제약들이 있음에도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자기 직업에 대한 열정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여성은 그저 음식을 만들어 낼 뿐, 손님 접대에 참여하지 못하는 실상을 주부들이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거실과 완전히 통합된 ‘주방 겸 바’를 만들어 식사자리에서 밀려나지 않게하였고, 공간을 온전히 눌ㄹ 수 있게 하였다. 그렇게 수많은 사회공헌적, 거의 무페이에 가까운 활동을 활발히 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고 즐겼다. 자신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샤를로트페리앙 #모든삶에깃든 (#샬로트페리앙 씀 #을유문화사 출판)은 그런 그녀가 생을 마감하기 1년전에 태어난 1903년 부터 세상을 떠나기 2년전인 1997년까지 자신의 삶응 돌아보며 쓴 회고록이자 자서전이다.

정말 말그대로 20세기의 모든 모습이 담겨있는 것이다.
복잡한 역사를 한사람의 인생에서 살펴보면 더 기억도 잘남고 더 공감할 수 있다. 한사람 한사람의 역사가 모여 인류의, 지구의 역사가 되는 것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르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장 프루베, 루시우 코스타, 페르낭 레제, 야나기 무네요시, 야나기 소리 같은 20세기를 수놓은 거장들의 이야기를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의 손 끝으로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좋은점이다.

왜 샤를로트 페리앙이라는 이름이 많은 것들이 바뀐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유효함을 넘어 무언가를 대변할 수 있는지는 “단순히 예쁜 것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세상에 살고 있고 무엇이 중요하고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사는지 표현하고 행동해야 해”, “눈을 부채처럼 크게 뜨고 봐야 해. 세상은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거야.“라는 그녀의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녀가 또 한번 빛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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