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제가 죽거들랑 새 장가 들지 마셔요!"

 

여인은 죽음에 임박하여 남편에게 부탁을 했어요. 새 부인이 들어오면 자신이 낳은 친자식과 갈등을 일으키리라 염려했기 때문이죠. 듣는 남편 입장에선 서운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한 가정의 비극을 사전에 예방한다는 차원에선 매우 현명한 부탁이었어요. 의붓 어머니와 배다른 자식간의 갈등은 오랜 역사를 통해 입증된(?) 갈등이니까요.

 

그러나 남편은 아내의 부탁을 저버리고 새 장가를 들었어요. 이후 이 가정엔 여인이 예견했던 갈등이 발생했어요. 특이한 것은 쌍방간 갈등이 아니란 점이었어요. 의붓 어머니가 배다른 자식을 일방적으로 구박했거든요. 그것도 거의 막무가내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다른 자식은 의붓 어머니에게 자식으로의 소임을 다하려 무진 애를 썼고, 끝내는 의붓 어머니를 감동시켜 회심하게 만들었어요. 배다른 자식은 단명했는데(48세), 여기엔 의붓 어머니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도 한 몫 했다고 보여요. 어쩌면 여인이 예견했던 비극은 자식의 의붓 어머니와의 갈등보다 그로 인한 자식의 단명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자식의 품성을 부모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이 여인과 자식은 누굴까요? 네, 그래요.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예요. (널리 알려진 이야기라 잘 아실 것 같아요. ^ ^)

 

사진은 신사임당의 글씨예요. 정갈하면서도 담대함을 보여주는 글씨예요. 초서체임에도 획이 깔끔하고 분명하며 획간 폭이 넓직해요. 일부러 이렇게 쓴 걸까요? 아닐 거예요. 평소의 자품(資品)이 이렇게 쓰도록 만들었을 거예요. 하여 '글씨는 곧 그 사람[書如其人]'이란 말을 하는 거죠. 신사임당의 유언도 이 글씨에서 보이는 면모와 무관해 보이지 않아요.

 

사진의 한자를 읽어 볼까요?

 

강남우초헐(江南雨初歇) 강강/ 남녘 남/ 비 우/ 처음 초/ 그칠 헐

산암운유습(山暗雲猶濕) 뫼 산/ 어두울 암/ 구름 운/ 오히려 유/ 축축할 습

미가동귀요(未可動歸橈) 아닐 미/ 가할 가/ 움직일 동/ 돌아갈 귀/ 노 요

전계풍정급(前溪風正急) 앞 전/ 시내 계/ 바람 풍/ 바를 정/ 급할 급

 

해석을 해볼까요?

 

비 개인 강남/ 산은 어둑하고 구름엔 아직도 습기 / 배를 돌리지 못하는데/ 앞 시내에선 다급한 바람까지

 

이 시는 부사를 절묘하게 사용하여 시의 완성도를 높였어요. 각 구에 사용된 초(初), 유(猶), 미(未), 정(正)은 일련의 상황 변화를 부가적 설명없이 잘 전달하고 있어요. 초는 최초의 상황, 유는 상황의 지속, 미는 상황의 변화 모색, 정은 변화 모색의 좌절을 나타내고 있어요. 표면적으론 서경시처럼 보이지만 꼼꼼히 읽어보면 서경을 빙자한 서정시로 읽혀요. 한시에서 비나 구름 바람 등은 정치적 상황을 암시하는 시어들이거든요. 이렇게 보면 첫 구의 비가 개었다는 것은 혼란스런 정치적 상황이 다소 진정되었다는 의미로, 둘째 구의 어두운 산 기운과 축축한 구름은 혼란스런 정치적 상황의 여파가 아직 잔존한다는 의미로, 세째 구의 배를 쉽사리 돌리지 못한다는 것은 새로운 변화 모색이 쉽지 않다는 의미로, 네째 구의 세찬 바람이 불어 온다는 것은 또 다시 혼란스런 정치적 상황이 야기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어요.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시의 마지막 구는 본래 '전계풍정급(前溪風正急)'이 아니고 '전정풍랑급(前程風浪急, 앞 길에 풍랑이 급하네)'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정(程)이 계(溪)로, 랑(浪)이 정(正)으로 바뀌어 전해졌다고 해요. 아마도 부사의 사용을 전체 시에 일관되게 적용하고 육로에 사용되는 시어보다는 수로에 사용되는 시어를 사용하는 것이 시의 완성도를 높인다고 생각하여 바꾼 것이 아닐까 싶어요. 화룡점정의 묘를 잘 살린 것 같아요. 개작자가 누군지는 알려져 있지 않아요(원작자는 당(唐)의 대숙륜(戴叔倫)이에요).

 

위 시에 등장한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衤(衣의 변형, 옷 의)와 刀(칼 도)의 합자예요. 옷감을 재단하기 위해 칼을 처음 옷감에 댔다는 의미예요. 처음 초. 初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最初(최초), 始初(시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欠(하품 흠)과 曷(그칠 갈)의 합자예요. 힘들어서 하던 일을 멈추고 한숨을 내쉰다는 의미예요. 쉴 헐. 歇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間歇(간헐), 歇坐(헐좌, 휴식)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물 이름이에요. 산동성 우성 지점에서  발원하여 바다로 흘러가는 물이에요. 氵(물 수)로 의미를 표현했고,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물이름 습. '축축하다'란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축축할 습. 濕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濕氣(습기),  多濕(다습)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木(나무 목)과 堯(높을 요)의 합자예요. 구부러진 나무란 의미예요. 木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堯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구부러진 나무는 대개 키가 커서 위로 더 올라갈 수 없기에 구부러진 것이란 의미로요. 휠 뇨. '노'라는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나무를 변형시켜[구부려] 만든 것이 '노'란 의미로요. 노 요. 橈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橈橈(요요, 휘는 모양), 橈敗(요패, 기세를 꺾어 패하게 함, 또는 기세가 꺾여 패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心(마음 심)과 及(미칠 급)의 합자예요. 급하다는 의미예요. 心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急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及은 후미에서 앞으로 '다급하게' 이르렀다란 의미거든요. 급할 급. 急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促急(촉급), 應急(응급)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初 처음 초   歇 쉴 헐   濕 축축할 습   橈 노 요   急 급할 급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敗   應(   )   最(   )   間(   )    (   )氣

 

3. 다음을 읽고 풀이해 보시오.

 

   江南雨初歇/ 山暗雲猶濕/ 未可動歸橈/ 前溪風正急

 

 

사진의 시를 읽다보면 왠지 지금의 정치적 상황과 전망을 보는 것 같아 섬찟한 느낌이 들어요.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아내고 새로운 정치를 모색하려 하는데 정작 대통령으로 이상한(?) 사람이 당선될 것 같아서 말이지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야말로 '죽 쒀서 개 주는 격'이 되는데... (부디 이런 염려가 기우에 그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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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12-31 0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해 가 곧이네요 . 책을 보다 30일이 넘어선걸 이제 알아챘네요.. 잠시 정신 식히러 들어왔다가 반가운 글이 보여서 인사 남기고 갑니다~ 내년에도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복많이~ 북많이~^^

찔레꽃 2016-12-31 00:35   좋아요 4 | URL
그장소님,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_ _) ^ ^

[그장소] 2016-12-31 00:43   좋아요 2 | URL
아~ (_ _)~ (- -) ~(_ _)~(^ ^)

임채봉 2017-01-02 15: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유년 새해,복 많이 받으십시요.올해도 행운과 건강, 건필을 바랍니다.

찔레꽃 2017-01-02 19:18   좋아요 2 | URL
부족한 글에 깊은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_ _)
 

 

"아니!"

 

적잖이 고생하며 살아온 동료에게 물어 봤어요. 자식에게도 그런 고생 시켜보겠냐고. 동료가 단호하게 말하더군요. "아니!" 왜 아니겠어요? 고생이 뭐 좋다고 자식에게까지 대물림시키겠어요? 어리석은 질문을 한 셈이에요.

 

창업(創業)보다 수성(守城)이 어렵다고 하죠. 왜 그럴까요? 고생한 세대는 쉽게 좌절하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세대는 쉽게 좌절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요? 고생을 안해 봤어도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면 수성이 어려울리 없죠. 이렇다면 자식을 일부러라도 고생시키는 것이 좋을 거예요. 하지만 이것은 이상(?)일 뿐이지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당장 제 동료만 해도 그렇잖아요? 일부러 자식을 고생시키는 부모가 있다면, 그는 결코 평범한 부모가 아닐 거예요.

 

사진은 '매경상설향유열 인도무구품자고(梅經霜雪香愈烈 人到無求品自高)'라고 읽어요. (술집에 갔다가 찍었어요. ^ ^) "매화는 눈서리를 겪어야 그 향기가 더 강렬해지고, 사람은 구함이 없는 무욕의 경지에 이르러야 그 품격이 절로 높아진다"란 뜻이에요. 시련과 수양이 주는 가치를 표현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어요. 문장의 내용을 뒤집어 보면 시련과 수양이 주는 가치를 보다 더 확실히 알 수 있어요. "눈서리를 겪지 않은 매화는 그 향기가 미미하고, 욕구 충족에만 치달리는 사람은 그 품격이 절로 낮아진다." 

 

시련과 수양은 인격을 단련시키는 담금질과 같다고 할 거예요. 이렇다면 자식을 교육할 때 '사서 고생'시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을 거예요. 그러나, 앞서 말한대로, 그렇지 못하다는데 인간세의 비극(?)이 있는 것 같아요. 박대통령도, 약간 경우는 다르지만, 이런 비극에 해당하는 사례가 아닐까요?

 

한자를 하나씩 읽어보고, 몇 글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梅經霜雪香愈烈   매화 매/ 지낼 경/ 서리 상/ 눈 설/ 향기 향/ 더욱 유/ 세찰 렬

人到無求品自高   사람 인/ 이를 도/ 없을 무/ 구할 구/ 품격 품/ 스스로 자/ 높을 고

 

은 糸(실 사)와 巠(수맥 경)의 합자예요. 옷감을 짤 때 사용하는 세로 실이란 의미예요. 糸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巠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땅 속에 길게 뻗어있는 수맥처럼 옷감을 짤 때 사용하는 긴 세로 실이란 의미로요. 날(줄) 경. '지내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가로실에 겹쳐 세로실이 지나가듯 어떤 일을 겪는다란 의미로요. 지낼 경. 經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經緯(경위), 經驗(경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禾(黍의 변형, 기장 서)와 曰(甘의 변형, 달 감)의 합자예요. 기장이 풍기는 달콤한 냄새란 의미예요. 향기 향. 香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香氣(향기), 芳香(방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心(마음 심)과 兪(마상이 유, 통나무 배)의 합자예요. 낫다[남보다 우수하다]란 의미예요. 마음을 다하여 노력한 뒤에야 남보다 나을 수 있기에 心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兪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배를 타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듯 나쁜 쪽에서 좋은 쪽으로 옮겨가는 것이 '나은 것'이란 의미로요. 나을 유. '더욱'이란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더욱 유. 愈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愈出愈怪(유출유괴, 점점 더 괴상하여 짐), 治愈(치유, 여기의 愈는 남보다 우수하다란 의미의 '낫다'가 아니고, 병이 치료되다란 의미의 '낫다'예요. 이 역시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灬(火의 변형, 불 화)와 列(벌일 렬)의 합자예요. 불이 맹렬하게 타오른다는 의미예요.  灬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列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불이 맹렬하게 타오르면 물체가 타서 해체된다란 의미로요. 列은 분해하여 펼쳐놓다란 의미거든요. 세찰 렬. 烈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熾烈(치열), 烈士(열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至(이를 지)와 刂(칼 도)의 합자예요. 이르다란 의미예요. 至로 뜻을 표현했어요. 刂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예리한 칼처럼 신속하게 이르렀단 의미로요. 이를 도. 到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到着(도착), 到達(도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본래 가죽 털옷을 표현한 글자였어요. 구하다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가죽 털옷을 수선할 필요가 있다란 의미로요. 지금은 전적으로 '구하다'란 의미로만 사용하고, 가죽 털옷이란 의미는 裘(갖옷 구)로 표현하죠. 구할 구. 求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要求(요구), 求乞(구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經 지낼 경   香 향기 향   愈 더욱 유   烈 세찰 렬   到 이를 도   求 구할 구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芳(   )   (   )達   (   )乞   熾(   )   (   )驗   (   )出(   )怪

 

3. 다음을 읽고 풀이해 보시오.

  

   梅經霜雪香愈烈  人到無求品自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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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biocode/4078>

 

 

"어지신 하늘 우리 노나라를 돌보지 않으시어/ 이 훌륭한 분 남겨 두시지 아니하고/ 나 한 사람만 임금 자리에 있게 하시니/ 외롭고 외로워 걱정 속에 있나니/ 아~ 슬프다, 니보여/ 내 본받을 대상이 없어 졌도다"

 

한문으로 씌어진 다양한 문장 양식 중 '애제류(哀祭類)'라는게 있어요. 말 그대로 죽은 이에 대해 애도를 표하는 문장 양식이에요. 세분하여 애사(哀辭), 제문(祭文), 조문(弔文), 뇌(誄)로 나눠요.

 

애사는 죽은 이에 대해 슬픈 마음을 표한 글인데, 주로 단명하거나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죽은 이를 추모할 때 쓰는 문장이에요. 위진(魏晉) 이전에는 서문은 짧게 애사는 길게 썼고, 당송(唐宋) 이후로는 서문은 길게 애사는 짧게 썼어요.

 

제문은 본래 천지 산천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문장이었어요. 후에 돌아간 이를 제사지낼 때도 사용하게 되었지요. 제문에는, 잘 알려진 것처럼, 일정한 형식이 있어요. 특정한 날짜, 제수, 돌아간 이에 대한 추모, 제수 흠향 기원 등.

 

조문은 제문의 일종인데 주로 과거에 돌아간 이를 떠올리며 자신의 감상을 쓴 글이에요. 돌아간 이를 추모하는 글이긴 하지만 글쓰는 이의 사리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게 중심이에요.

 

뇌는 시호를 정하기 위해 사용하던 문장이에요. 주로 윗 사람이 아랫 사람을 추모할 때 사용했어요. 후에 지위 고하에 상관없이 지어 졌어요. 내용도 시호 제정과 상관없이 공적을 찬미하는데 중점을 둔 글로 바뀌었고요. 서문과 본문(뇌사) 형식으로 돼있는데, 서문에는 산문을 본문에는 운문을 사용했어요. 위의 인용문은 최초의 뇌문으로 노나라 애공이 공자의 시호를 '니보'로 정하면서 사용한 것이에요. 소박하지만 서문과 본문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요.

 

사진은 채제공 선생 뇌문비(蔡濟公 先生 誄文碑)라고 읽어요. 한글로 나와 있네요. ^ ^  채제공은 사도세자의 스승이자 정조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죠. 정조 당시 독상(獨相) - 영의정 우의정 없는 좌의정으로 - 3년을 지낸 적이 있을 정도로 정조의 후의를 입었죠. 한마디로 개혁 군주 정조의 절친 파트너였다고 할 수 있어요.

 

이런 채제공이 죽었다면 정조가 애도의 글을 쓸 만 하지 않겠어요? 그래요, 채제공 선생 뇌문비는 정조가 지었어요! 그렇다면 이 뇌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요? 그렇죠, 채제공의 공적이 즐비하게 담겨있죠.

(관련 내용 참조 싸이트 : http://blog.daum.net/biocode/4078).

 

그런데 채제공의 뇌문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역사적인 가치는 있을지 몰라도 한 인간에 대한 슬픔을 표현한 글로서의 가치는 그다지 높게 평가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고인에 대한 업적을 찬미하는 것이 주된 문장이라 해도 본질적으론 애도문인데, 왜 이리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단 말인가!" 제 감수성이 무딘 탓도 있겠지만, 찬미하는 말을 너무 늘어 놓은데 주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말이 길어지면 감동의 정도가 그만큼 상쇄되잖아요? 최초의 뇌문인 노나라 애공의 글은 정조의 글보다 훨씬 오래된 글이지만 그 슬픔이 절실하게 다가와요. 생각으로 짜내어 길게 쓰지 않고 진심을 직서(直書)하여 짧게 썼기에 그렇지 않은가 싶어요.

 

낯선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艹(풀 초)와 祭(제사 제)의 합자예요. 잡초란 의미예요. 艹로 뜻을 표현했어요. 祭는 음을 담당해요(제→채). 잡초 채. 큰 거북이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점칠 때 풀을 사용하듯, 그같이 점칠 때 사용하는 것이 큰 거북(의 배딱지)이란(란) 의미로요. 큰거북 채. 蔡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大蔡(대채, 큰 거북), 蓍蔡(시채, 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氵(물 수)와 齊(가지런할 제)의 합자예요. 물 이름이에요. 하북성 찬황현 서남쪽에서 발원하여 민수로 들어가는 물이에요.  氵로 뜻을 표현했어요. 齊는 음을 담당해요. 물이름 제. 건너다, 구제하다란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모두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제수를 건너다, 제수의 풍부한 수량이 가뭄을 극복하게 했다의 의미로요. 건널 제. 구제할 제. 제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救濟(구제), 濟度(제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言(말씀 언)과 耒(쟁기 뢰)의 합자예요. 고인의 생전 업적과 언행을 드러내는 칭호, 즉 시호(諡號)란 의미예요. 言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耒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땅을 파내는 것이 쟁기이듯이, 시호란 고인의 생전 업적과 언행을 파서 드러낸 것이란 의미로요. 시호 뢰. 뇌사 뢰. 뇌사와 시호는 같은 의미로 보면 될 것 같아요. 뇌사의 결론 격에 해당하는 내용이 '시호'이고, 시호의 서론 본론 격에 해당하는 내용이 '뇌사'이니까요. 誄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誄詩(뇌시), 誄詞(뇌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蔡 잡초 채, 큰 거북 채   濟 물이름제, 건널 제, 구제할 제   誄 시호 뢰, 뇌사 뢰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救(   )   (   )詞   蓍(   )

 

3. 알고 있는 감동적인 애도문이 있으면 소개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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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가을에

 

                             김관식

 

  窓밖에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가을이던가

  鹿車에 家具를 싣고

  이끼 낀 숲길

  영각소릴 쩔렁쩔렁 울리며

  어디로든지

  떠나고 싶다

  그러나 내게는 아무도 없네

  반겨 맞아 줄 고향도 집도

 

 

  순채나물

  鱸魚膾

  江東으로 갈거나

  歐陽修

  글을 읽는

  이 가을 밤에

 

 

"주여, 때가 왔습니다."

 

"시몬, 나뭇잎 져버린 숲으로 가자."

 

'가을'하면 떠오르는 시의 첫 구절이에요. 첫 번째는 릴케의 '가을 날'이고 두 번째는 구르몽의 '낙엽'이예요(잘 아시죠? ^ ^). 한국인이고 동양인인데 가을하면 떠오르는 시가 한국인이나 동양인의 시가 아닌 것을 보면 외양만 한국인(동양인)이지 내면은 서양인의 의식으로 가득차 있는 것 같아요. 저만 그런가요? ^ ^

 

그런데 그리 멀지 않은 시기까지만 해도 '가을'하면 구양 수(歐陽 修)의 '추성부(秋聲賦)'와 장한(張翰)의 '순갱노회(羹鱸膾)' 고사를 떠올리는 세대가 있었어요. 김관식(1934-1970) 시인으로 대표되는 세대지요. 

 

사진은 강경 상고에 있는 김관식 시인의 '이 가을에'란 시비예요. 강경 상고는 김 시인의 모교예요. 이 학교에는 근대 건축 문화 유산인 '교장 사택'이 있어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인데 한식 양식 일식이 조합된 독특한 건물이에요(아래 사진). 건물을 구경하고 강경 상고를 한 번 둘러 보는데 운동장 가는 길에 이 시비가 있더군요.

 

  위 시는 고사로 점철되어(?) 있어요. 구양 수의 '추성부'와 장한의 '순갱노어' 그리고 환소군(桓少君)의 '녹거(鹿車)'까지. 어찌보면 현대시가 아니라 한시를 현대시처럼 풀어 썼다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이 시에 등장하는 추성부와 순갱노어 그리고 녹거의 고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 시를 깊이있게 이해하기 어려울 거예요. 아울러 이 시의 한자 표기 시어를 한글로 바꿔 표기하면 시를 읽는 맛이 떨어질 거예요.

 

  구양 수의 추성부는 가을을 소리로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가을이 갖는 철학적 의미를 설파한 에세이예요(정리 문제 참조). 순갱노회는 순채 나물과 농어회라는 뜻으로 진(晉)나라 장한과 관련된 고사예요. 가을 바람이 불면 장한은 늘 고향의 순채 나물과 농어회 맛을 그리워 했는데, 어느 가을 날 고향의 순채 나물과 농어회를 찾아 결연히 벼슬을 버리고 떠났다고 해요. 순갱노회는 명예나 부와 같은 외면적 가치보다는 자족이라는 내면적 가치를 우선한다는 의미의 고사예요. 녹거는 사슴이 끄는 작은 수레란 뜻으로 후한의 환소군과 관련된 고사예요. 부유한 집에서 살던 환소군은 포선(鮑宣)이라는 가난한 선비에게 시집오게 됐는데, 준비했던 화려한 예물을 버리고 사슴이 끄는 작은 수레에 소박한 물건만 싣고 시집을 왔다고 해요. 녹거는 소박한 삶을 지향한다는 의미의 고사예요.

 

'이 가을에'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무엇일까요? 위 고사들을 알고 나면 그리 어렵지 않게 감지돼요(물론 이 고사들을 잘 알지 못해도 시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그리 큰 어려움은 없어요. 하지만 똑같은 이해라 해도 깊이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거예요). 숙살지기(肅殺之氣)로 모든 것이 쇠락의 길로 들어서는 가을에 시인 또한 그런 천지 자연의 흐름에 맞추어 번다한 세속적 굴레를 벗고 소박하게 살고 싶어 해요. 하지만 그 소박한 삶은 극도의 물질과 인간 관계의 궁핍으로 달성되기 어려워요. 따라서 시인이 추구하는 소박한 삶은 단지 소망에 불과할 뿐이지요. 그렇다면 그 소망은 무의미한 것일까요? 아니예요. 그 소망이 있기에 극도의 물질과 인간 관계의 궁핍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이지요. 안심입명(安心立命), 이것이 이 시의 종지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시에 나온 한자 중 서너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魚(물고기 어)와 盧(밥그릇 노)의 합자예요. 농어란 의미예요. 魚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盧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盧는 원래 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그릇으로, 그 색깔이 푸른 빛을 띄어요. 농어의 등 부분 색깔이 옅은 푸른 색을 띄기에 이 글자로 뜻 일부분을 보충했어요. 농어 로. 鱸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鱸魚(노어), 鱸膾(노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月(肉의 변형, 고기 육)과 會(모을 회)의 합자예요. 저민 고기란 뜻이에요. 月로 뜻을 표현했어요. 會는 음을 담당해요. 날고기란 뜻으로도 사용해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저민 날고기란 의미로요. 저민 고기회. 날고기 회. 膾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膾炙(회자), 肉膾(육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欠(하품 흠)과 區(지경 구)의 합자예요. 토한다란 의미예요. 토할 적에는 입을 벌리고 토하기 때문에 欠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하품 할 적에는 입을 크게 벌리잖아요? 區는 본래 물건[品, 물건 품]을 저장해 놓는다[匸, 감출 혜]란 의미인데, 여기서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토하는 것은 배속에 저장해(?) 놓은 것을 밖으로 내보내는 행위란 의미로요. 토할 구. 성씨로도 사용되요. 성 구. 歐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歐泄(구설, 구토와 같은 뜻), 歐褚(구저, 구양 순과 저수량. 모두 서예의 대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彡(터럭 삼)과 攸(달릴 유)의 합자예요. 몸과 의복의 더러운 때를 씻어내고 깨끗하고 단정하게 한다란 의미예요. 彡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彡에는 (아름답게) 꾸미다란 의미가 내포돼 있거든요. 攸는 음을 담당하면서(유→수)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攸는 물이 넉넉하게 잘 흐른다는 의미인데, 깨끗하고 단정하게 차리면 어디를 가든지 그같이 여유가 생기고 남의 존중을 받는다는 의미로요. 닦을 수. 修는 본래 외관을 단정하게 한다란 의미인데 후에는 내면을 단정하게 한다는 의미로도 사용하게 됐어요. 본뜻이 연역된 것이지요. 修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修養(수양), 修身(수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鱸 농어 로   膾 저민 고기(날고기) 회   歐 토할 구   修 닦을 수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肉(   )   (   )身   (   )泄   (   )膾

 

3. 다음을 읽고 감상을 말해 보시오.

 

   한 밤중 책을 읽고 있는데 서남쪽에서 무슨 소린가가 들렸다. 왠지 섬쩍지근한 느낌이었다. 혼자 중얼 거렸다. "허~ 괴이하다. 처음엔 서걱서걱 거리더니 갑자기 쌩~ 거세진 느낌이네? 이건 꼭 야밤의 파도치는 소리나 몰아치는 빗소리 같구먼. 물건에 닿을 때는 꼭 쇠에 부딪힌 듯 쨍그렁 소리가 나네? 그러면서도 왠지 또 조용한 듯한 느낌은 뭘까? 아니다. 꼭 조용하다고만도 할 수 없다. 조용한 속에서도 뭔가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나는 걸? 흡사 야밤에 함매(含枚)하고 이동하는 군대가 내는 소리랄까? 허~ 괴이하다."

 

   시동을 불러 무슨 소리가 나니 정체를 알아 오라 하였다. 아이가 돌아와 말했다. "하늘엔 성월(星月)과 은하수가 밝고요, 사람의 자취는 하나도 없어요. 있는 거라곤 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뿐예요."

 

   "그렇구나! 내가 들은 것은 바로 가을이 내는 소리였구나. 가을, 너는 어이하여 온 것이냐? 가을, 너의 형색은 참담(慘淡)하니 구름과 안개도 도망하지. 너의 얼굴은 청명(淸明)하여 하늘처럼 높고 해처럼 빛나지. 너의 기운은 살벌[慄冽]하여 뼛속 깊이 침을 놓은 듯 하지. 너의 뜻은 쇄락[蕭條]하여 적막한 산천같지. 하여 너의 하는 일은 처절하면서 단호하고 망설임이 없지. 푸르른 풀들이 무성함을 뽐내고 아름다운 수목들이 울창함을 자랑하다가 너를 만나면 일순간에 퇴색하고 시들지. 이 모두는 네가 발산하는 매서운 기운의 여파 때문. 가을, 너는 죄수를 다루는 형관이랄 것이다. 시기로는 음의 절기랄 것이며 오행으론 금이랄 것이다. 이 모두는 천지의 의기(義氣)에 해당하는 것이니 너는 항상 숙살(肅殺)을 간직한 자로다.

 

    하늘의 이치란 무엇인가? 봄에는 낳고 가을에는 거두는 것! 음악에도 이런 이치가 있지 않던가! 상성(商聲)은 서방의 음이며 이칙(夷則)은 7월의 음이잖던가!  상(商)은 곧 상(傷)이니 만물이 노쇠하면 비상(悲傷)하게 되는 것이요, 이(夷)는 곧 육(戮)이니 만물은 성시(盛時)를 지나면 죽게되는 것이다. 상성과 이칙은 곧 비상과 죽음이라는 가을의 이치를 표현한 것이다.

 

   아~ 초목은 무정(無情)하여 때가 이르면 어김없이 영락하나 사람은 그렇지 않으려 한다. 유정(有情)한 존재로 만물의 영장이란 생각을 가지고 온갖 일로 심신을 괴롭히며 정기를 소모하고 있지만 초목처럼 시들지 않기를 바란다. 우스운 것은 힘과 지혜가 미치지 못하는 일까지 염려하고 도모하려 한다는 것. 하니 점점 더 쇠약해져 몰골은 마른 나무같고 머리는 흰 이슬이 내린 것 같이 변한다. 어찌 금석(金石)같은 존재가 아니면서 초목처럼 시들지 않기를 바란단 말인가! 누가 너를 쇠하게 만들었는가? 하늘의 이치 때문인가? 무지한 너의 소행 때문인가? 가을이 찾아오는 소리에 놀랄 이유 하나도 없다! 가을이 찾아와 너를 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무지한 소행으로 네가 쇠하게 된 것이니."

 

   시동은 듣는 둥 마는 둥 꾸벅꾸벅 졸기만 했다.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찌르르, 찌르르!" 왠지 내 말에 공감한다는 소리 같았다. (이상은 구양 수의 <추성부>입니다. 상당히 의역을 많이 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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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12-21 1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비가 풀잎 같이 예쁘네요.
동지 팥죽 ㅡ드시고 따듯한 하루되세요!^^

찔레꽃 2016-12-21 12:56   좋아요 2 | URL
아, 오늘이 동지군요? ^ ^ 이렇게 절기에 무감각하니... 그장소님도 동지 팥죽 맛있게 드시고 모든 액운 물리치시길! ^ ^

[그장소] 2016-12-21 18:37   좋아요 1 | URL
네~ 찔레꽃 님도요!^^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임채봉 2016-12-22 14: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길에서 주은 漢字˝을 구입했습니다. 내용에 비해 책값이 너무 싸서 횡재한 기분입니다^^ 많이 팔려서 2쇄,3쇄를 기대하고 또한 계속 연재하셔서 ˝.......漢字2,3˝등 연작이 계속 출판되길 기대합니다. (PS:지은이 사진을보고, 유시민님으로 순간 착각했다는거...^^)

찔레꽃 2016-12-22 15:15   좋아요 1 | URL
아이쿠, 이렇게 관심을 가져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 ^ (_ _)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까레이 후라!"

 

 1909년 10월 26 하얼빈 역. 기차역에서 내린 이토오 히로부미를 향해 세 발을 쏜 안중근. 한 발도 실수없이 저격하여 이토오를 즉사케 했고, 남은 총알로 여타 일본의 중요 인사들을 저격하여 중상을 입혔어요. 그리고는 바로 품에서 태극기를 꺼내 큰 소리로 외쳤어요. "까레이 후라(대한 독립 만세)!" 당시 기차역에 모인 이들이 러시아인이었기에 그들이 알아 듣도록 러시아어로 외쳤죠.

 

 안중근은, 잘 알려진 것처럼, 재판을 받을 때 자신을 전쟁 포로로 대우해 줄 것을 요구했어요. 일개 암살범이 아닌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말이죠. 그리고 시종일관 이토오 히로부미 저격에 대한 정당성을 정연하고 당당하게 말했죠. 러일 전쟁 당시 일본에 대한 원한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중국이 일본에 협력한 것은 그들이 내세운 '동양평화를 유지하고 대한 독립을 공고히 한다'라는 명분 때문이었는데, 러일전쟁 승리 후 한국을 병합하고 중국을 넘보는 것은 대의를 잃은 것이며 동양 평화를 해친 것이었기에 그 주역인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는 것은 정당한 행위였다구요.

 

 안중근의 정연한 논리와 당당한 자세는 재판관과 간수들을 감탄케 했어요. 간수들 중에는 그런 안중근을 흠모하여 글씨를 부탁한 이들이 있었는데, 안중근의 유묵이 일본에 많이 남아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죠.

 

 글씨는 곧 그 사람이란 말이 있어요[書如其人]. 안중근의 글씨를 보면 안중근이 어떤 사람인지를 여실히 알 수 있어요. 사진은 안중근의 글씨인데, 저처럼 글씨에 특별한 안목이 없는 사람이 봐도, 초탈하고 과감하면서도 바른 자세가 느껴져요. 

 

 사진의 본문은 '치악의악식자부족여의(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라고 읽어요. 낙관은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라고 읽고요. "남루한 옷을 입고 형편없는 음식을 먹는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한다면 이런 자와는 함께 (도를) 말하기 어렵다." "경술년(1901)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쓰다"란 의미예요. 본문은 논어 <이인>편에 나오는 내용인데 앞 부분이 일부 빠져 있어요(자왈 사지어도이(子曰 士志於道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비가 도에 뜻을 두고 있다고 하면서').

 

 안중근은 집안이 넉넉해서 여유있게 살 수 있는 형편이었지만 일부러 험한 길을 택했어요. 그 택한 길을 '도의 추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자신의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세웠으며 독립 운동에 자신의 삶을 던졌어요. 그런 그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걱정하는 것은 비루한 일로 여겨졌을 거예요. 사진의 본문은 비록 공자의 말이지만 안중근 자신의 말이기도 할 거예요. 안중근의 글씨가 초탈하고 과감하면서도 바른 자세를 보이는 것은 이런 자신의 삶이 투영됐기에 그런 걸 거예요. 글씨는 곧 그 사람이란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닌 듯 싶어요.

 

 뉴스를 보니 안도현 시인이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있더군요.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활약했던 안 시인은 당시 한나라당 후보였던 박근혜씨가 청와대에 있던 안중근의 사진 유묵을 10. 26 사태이후 청와대를 나오면서 가져갔다고 했다는군요. 박근혜씨는 그런 일이 없으며 소장하고 있지도 않다 했고, 이후 안 시인은 무고죄로 재판에 넘겨져 3년여에 걸쳐 재판을 받았다는군요. 대법원의 최종 확정심 요지는 이렇더군요: "안 시인의 주장은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러나 그가 주장의 근거로 삼은 여러 자료들의 내용은 그 나름의 논거를 갖고 있다. 따라서 그 자료들을 근거로 내세운 안 시인의 주장은 진실과는 거리가 있을지언정 무고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안중근의 유묵 분실건을 통해 유권자의 투표 참여를 독려한 것은 선거 캠프에 참여한 이로서의 무리한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현재 사진의 유묵은 행불 상태라고 해요. 누가 소유하고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현재 이 유묵을 소장하고 있는 이는 안중근이 쓴 이 글의 내용과 배치되는 삶을 살고있는 사람일 거라는 점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왜 감추고 세상에 내놓지 않겠어요? 어떤한 상황에서도 당당한 삶을 사는 사람, 그런 이가 안중근의 유북을 소유해야 할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목숨 바쳐 나라의 독립을 찾으려 했던 고인을 욕보이는 것 아니겠어요?

 

사진의 한자 중 恥, 惡, 議만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耳(귀 이)와 心(마음 심)의 합자예요. 마음 속에 있는 부끄러운 점이 귀에 나타난다는 의미예요. 창피하고 부끄러울 때 귀가 빨개지는 것을 표현한 것이지요. 부끄러울 치. 恥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羞恥(수치), 恥辱(치욕)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心(마음 심)과 亞(버금 아)의 합자예요. 亞는 본래 등과 배가 나온 기형적인 사람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추하다'란 의미예요. 여기서는 이 뜻으로 사용됐어요. 고의적으로[心]으로 행한 추한 일이란 의미예요. 악할 악. 惡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惡行(악행), 凶惡(흉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言(말씀 언)과 義(옳을 의)의 합자예요. 사리의 올바름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눈다란 의미예요. 의논할 의. 議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討議(토의), 議論(의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恥 부끄러울 치   惡 악할 악   議 의논할 의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論(   )   羞(   )   (   )行  

 

3.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을 소리내어 읽고 그 느낌을 말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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