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개업한 집에서 흔히 보게 되는 성경 구절이에요. 본래 전도(傳道)와 관계된 구절같은데, 개업한 집에서는 약간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듯 싶어요. 하나님이 잘 돌봐주실 터이니 용기를 갖고 사업에 매진하라는 의미로요. 개업은 망망대해에 떠있는 조각배와 같은 상황이죠. 그러나 누군가 나를 돌봐주고 있으며 결국은 잘 될거라는 확신이 있다면 결코 막막하지 않을 거예요. 논리적 귀결없는 구호(?)지만, 그렇기에 더 힘을 주는 구호 아닌가 싶어요.

 

 

사진은 '향광장엄(香光莊嚴)'이라고 읽어요. '빛과 향기로 에워싸다'란 의미예요. 능엄경(楞嚴經)에 나오는 한 글귀예요.

 

 

"저 부처님께서 저에게 염불삼매를 가르치시면서 비유컨대 한 사람은 자나깨나 생각하지만 한 사람은 완전히 잊어버렸다면 이 두 사람은 만나도 서로 보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두 사람이 서로 기억하여 그 기억하는 생각이 깊어지면 이 생에서 저 생에 이르도록 형체에 그림자가 따르듯이 서로 어긋나거나 헤어지는 일이 없다. 시방의 여래가 중생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는 것과 같지만, 만약 자식이 도망친다면 어머니가 아무리 생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자식이 만약 어머니 생각하기를,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듯이 한다면 그 모자는 여러 생이 바뀌어도 서로 어긋나거나 멀어지지 않을 것이다. 만약 중생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기억하고 부처님을 생각하면 현전이나 내생에 틀림없이 부처님을 볼 것이며, 부처님께 갈 날이 멀지 않느니라. 방편을 빌리지 않아도 스스로 마음이 열리는 것이 마치 향기를 물들이는 사람이 몸에 향기가 배는 것과 같으니, 이것을 향광장엄 이라고 부른다고 하셨습니다."

 

 

향기를 물들인다는 말은 부처님을 간절히 희구한다는 의미이고, 향기가 몸에 밴다는 말은 부처님을 만나게 된다는 의미예요. 향광장엄은 부처님을 간절히 희구하여 만나게 된 상황을 향기를 물들이는 이가 절로 향기에 젖게 된 상황에 비견한 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사진은 어느 음식점에 갔다가 찍었어요. 오른 쪽에 신년대길(新年大吉)이라고 써있고 왼쪽엔 병신(丙申) 석(釋) 유각(惟覺) 제하(題賀)라고 써 있는 걸 보니, 작년(2016)에 유각이란 스님이 새해 사업이 잘되길 기원하며 써 준 휘호인 것 같아요. 여기서 향광장엄은 본래 의미와는 다르게 "간절히 열망하면 성취되리라"는 의미로 사용됐어요. 마치 "네 시작은…"과 같은 취지로 사용된 것이지요.

 

 

 

간절한 열망[의지]은 쇠를 끌어 당기는 자석과 같아 바라는 바를 성취시켜 주죠. 이건 과학적인 사실이에요. 간절한 열망[의지]을 견지하면 그렇지 않은 이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고 그것은 곧 성취로 연결되기 때문이지요.

 

 

위 휘호를 건 음식점 주인은 원하던 바를 얻었을까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안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작년 휘호를 그대로 걸어놓은 것을 보면 아직 원하던 바를 얻지 못해서 그런 것 같고, 반대로 작년에 원하던 바를 얻었으니 올해 또 원하는 바를 성취하길 바래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한자의 뜻과 음을 자세히 살펴 볼까요?

 

 

은 禾(黍의 약자, 기장 서)와 曰(甘의 약자, 달 감)의 합자예요. 오곡 중에서 기장 냄새가 가장 향기롭다는 의미예요. 曰은 음을 담당하면서(감→향)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향기로운 것은 아름답고 좋다는 의미로요. 향기 향. 香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香水(향수), 芳香(방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火(불 화)와 人(사람 인)의 합자예요. 불을 머리 위로 높이 들고 멀리까지 비춰본다는 의미예요. 빛 광. 光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光明(광명), 閃光(섬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艹(풀 초)와 壯(장할 장)의 합자예요. 풀이 크고 무성하게 자랐다는 의미예요. 장중하다란 의미는 여기서 연역된 것이지요. 장중할 장. 莊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莊重(장중), 莊嚴(장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큰 소리로 급하게 명령한다[吅,부르짖을 훤]란 의미예요. 吅이외의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하면서(염→엄)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吅이외의 나머지 부분은 '날카롭다'란 의미인데, 큰 소리로 급하게 명령하는 것은 (날카로워) 범접하기 힘들다는 의미로요. 엄할 엄. 嚴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嚴酷(엄혹), 嚴重(엄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香   향기 향   光 빛 광   莊 장중할 장   嚴 엄할 엄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芳(   )   (   )酷   (   )明   (   )重

 

3. 간절한 바램이 성취된 경험을 하나 소개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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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513394.html>

 

 

따따 따 따따 따 따따 단 따 단 ~

 

흥겨운 '결혼 행진곡'으로 유명한 멘델스존은 여느 음악가들과 달리 부유한 환경에서 지냈다고 하죠. 그래서 그럴까요? 그의 음악은 밝고 경쾌하죠. 만약 멘델스존이 궁핍한 환경에서 지냈다면 그의 음악도 조금은 무겁고 어둡지 않았을까 싶어요. 예술과 경제는 무관한 것 같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도 일면 생활인인 이상, 예술과 경제는 무관하지 않을 거예요. 경제 상황이 어떠하냐에 따라 예술 세계도 그 영향을 받지 않을까 싶어요.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1913-1974)는 우리나라 추상 미술의 선구자로 알려진 분이죠. 최근에 이분 작품이 해외에서 63억에 낙찰되어 화제가 됐죠. 우리나라 현대 미술 작품에서 최고가 1~5위에 해당하는 작품이 전부 김환기씨의 작품이라고 해요. 만일 김환기씨가 생전에 곤궁하게 지내다 사후에 이렇게 고가의 작품으로 평가받았다면 한층 더 화제가 됐을 거예요. 그러나 김환기씨는 멘델스존처럼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하고 이후도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지내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홍익대 학장과 미협 회장 등 인지도 높은 직책을 맡았어요. 게다가 김향안이라는 걸출한(?) 아내의 도움으로 파리와 뉴욕에서 작품활동을 하기도 했구요.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그리고 개발 독재 시대를 관통한 삶이었지만 자유롭게 자신의 예술혼을 펼칠 수 있었던 행운아였죠.

 

그래서 그럴까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소재는 시대의 질곡과는 거리가 있는 자연(달, 산, 별, 매화)이나 고미술품(달항아리)이며, 그의 예술을 특징짓는 '전면점화(全面點畵)' 역시 이런 소재와 무관하지 않아요. 그가 주소재로 삼았던 자연이나 고미술품이 극도로 추상화된 것이 바로 전면점화라고 할 수 있거든요.

 

사진은 김환기씨의 파리시대(1956-1959) 사진이에요. 전 이 사진에서 엉뚱하게도 그의 모습이나 미술 작품보다는 왠지 생뚱맞게 벽에 붙어있는 '글씨'에 주목했어요. 생뚱맞게 붙어있긴 하지만 보통 글씨가 아니예요. 전서를 바탕으로 추상화처럼 표현한 글씨거든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내용이에요. 마치 김환기씨의 부족함 없는 삶을 대변하는 듯한 내용이거든요. 부귀쌍전(富貴雙全), '부와 귀를 아울러 갖고 있다'란 의미예요. 본인이 쓴 것인지 타인이 선물한 것인지 궁금해요.

 

 김환기나 멘델스존은 예술가들 중에 흔치 않은 행운아예요. 그러나 이들이 단순히 행운아에 머무르고 자신의 예술혼을 발휘하는데 게을렀다면 저명한 예술인이 되지는 못했을 거예요. 풍족하다고 꼭 훌륭한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실제 김환기는 뉴욕시대(1963-1974)를 그의 나이 50대에 시작했어요. 자신의 행운을 바탕으로 마음껏 예술혼을 불살랐던 그들의 노력 또한 높이 사야 할 거예요.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宀(집 면)과 畐(높을 복)의 합자예요. 집에 재물을 풍족하게 준비해두고 있다란 의미예요. 부유할 부. 富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富裕(부유), 貧富(빈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貝(조개 패, 재물 혹은 돈의 의미로 쓰임)와 蕢(삼태기 궤)의 초기 형태인 臾의 합자예요. 삼태기에 재물(돈)을 담아 지불해야 할 정도로 값비싼 물건이란 의미예요. 귀할 귀. 貴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貴金屬(귀금속), 貴賓(귀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한 손(又, 手의 변형, 손 수)으로 두 마리의 새(隹, 새 추)를 붙잡고 있다는 의미예요. 쌍 쌍. 雙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雙雙(쌍쌍), 雙手(쌍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王(玉의 변형, 구슬 옥)과 入(들 입)의 합자예요. 옥을 깊숙이 잘 보관한다란 의미예요. 온전 전. 全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完全(완전), 全體(전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富 부유할 부   貴 귀할 귀   雙 쌍 쌍   全 온전 전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體   (   )手   (   )賓   (   )裕

 

3. '예술과 경제'에 대한 견해를 말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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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시사IN(497호) 46쪽>

 

 

"3월 11일은 경주 지진 재해와 고리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난 지 6년 째 되는 날이다. 경찰청과 국토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아직도 12만3168명이 전국 각지에 피난 중이다. 경주 · 고리 · 월성 세 지역의 임시주택 거주자만도 여전히 3만3854명이다. 3 ·11 재해 이후 병사와 돌연사, 자살 등 관련 사망자는 지난해 전국적으로 116명이 증가해 모두 3523명이다. 7만9226명이 피난 중인 울산시는 재해 관련 사망자(2086명)가 3 · 11 당시 사망자 수(1613명)를 넘어섰다."

 

 

동일본 지진 재해와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사고 이후 내용을 전한 시사IN(497호)의 내용을 각색해 보았어요.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만일 우리에게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난다면 이와 다를 바 없을 것 같아서 각색해 본 것이에요.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한 이후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결코 남의 나라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경각심이 일고 있지만 여전히 '설마'하는 의식이 강한 것 같아요. 영화 '판도라'의 후폭풍도 거센듯 했지만 그것도 그때 뿐이었지 지금은 아득한 옛 이야기같이 얘기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사진은 오누마라는 일본인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곳에 있었던 간판 앞에서 원전을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하는 장면이에요. 간판에는 원래 '원자력, 밝은 미래의 에너지(原子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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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멋져 보이나요? 모처럼만에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었는데... 우리는 모녀지간이에요. 맞춰 보세요? 누가 모고 누가 녀인지? 쉽지 않죠? 후후. 왼쪽이 제 딸이고, 오른쪽이 저예요. 딸은 올 해 5살이고 저는 8살인가 9살인가 그래요. 자기 나이도 제대로 모르냐구요? 글쎄, 그게 말이죠, 제가 이 집에 들어올 때 저는 이미 성숙한 고양이였거든요. 아니, 그래도 데려다 준 사람이 있을테니 나이를 알 수 있잖냐구요? 아, 제가 이 집에 들어온 건 누가 데려다 줘서가 아니라 제발로 들어왔어요. 전에 있던 집에서 가출해 먹을게 없어 이 집을 얼쩡거렸는데, 이 집 아이들과 아줌마가 제법 친절하더라구요. 처음엔 밖에다 음식을 주더니 어느 날 저를 방안으로 들였어요. 아, 처음 방 안으로 들어오던 날의 그 포근함. 아마도 전 영원히 못잊을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방문이 잠깐 열린 틈에 전 갑자기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어요. 그래서 살짝 밖으로 나왔죠. 아무도 눈치를 못챘어요. 그 날 이 집 안에서는 아이들의 대성통곡과 아줌마가 아저씨를 타박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방문을 열어 놓은 것이 바로 아저씨였거든요. 이 집에서 저를 꺼리는 사람은 아저씨 뿐이었어요. 털이 날려 싫다는 거였지요. 하지만 아이들과 아줌마가 저를 끔찍히 아끼는지라 아저씨도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였죠. 이런 아저씨였으니, 아줌마와 아이들이 아저씨를 오해할만도 했죠. 일부러 저를 내보낸 것이라고요. 그러나 제가 밖으로 나간 건 주인 아저씨 때문이 아니었어요. 그저 제가 나가고 싶어 나간 것이었죠. 아저씨는 억울했을 거예요.

 

 

전 약 한 달간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어요. 옛날에 다니던 장소에도 가고 낯선 장소에도 가보고 그랬죠. 그 사이 힘센 녀석을 만나 여기저기 얻어 터지기도 했고, 음식을 잘못 먹어 죽을 뻔하기도 했죠. 그리고 그 사이 잠시 눈에 콩깎지가 끼어 한 놈과 연애도 했구요. 덕분에(?) 아이도 갖게 됐구요. 그 놈은 제게 단물을 다 빼었는지 어느 날 소리 소문없이 사라졌어요. 하지만 저는 굳이 그 놈을 찾지 않았어요. 전 애면글면 하는게 제일 싫거든요. 그런데 뱃속의 아이가 점점 커져가자 몸이 무거워 돌아다니기가 힘들어졌어요.

 

 

전 할 수 없이 다시 이 집으로 돌아왔죠. 돌아 오던 날, 아이들과 아줌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하던 말을 기억해요. "어디갔다 이제 왔니? 우리가 너를 얼마나 찾았는데..." 멀대같은 아저씨도 이 때 만큼은 반가운 표정을 짓더군요. 그 사이 아이들과 아줌마에게 받은 설움도 많았으련만. 전 아저씨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죠: "냐~ 웅"

 

 

다시 돌아온 이 집에서 전 아이를 출산했어요. 그런데 보통 우리 고양이들은 순산을 하는데, 전 난산이라 제왕절개를 해서 아이를 낳았어요. 아줌마가 직장에 휴가까지 내고 병원에 데리고 갔죠. 다섯 아이를 낳았고, 아이를 낳은 후엔 중성화 수술을 받았어요. 제가 가임 주기가 짧아 그대로 두면 너무 아이를 자주 낳고 그러다 보면 낳은 아이들을 건사할 수 없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어요. 자연스럽지 못한 처사였지만 저를 키우고자 하는 아줌마의 처지를 생각해 내린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병원에 있으면서 제 이름을 갖게 됐어요. 처방전에 제 이름을 써야 하는데, 간호사 분이 아줌마와 아이들에게 제 이름이 뭐냐고 물어 보더군요. 그 때 이 집 큰 딸 아이가 '웅야'라고 하면 어떠냐고 해서 그게 제 이름이 됐어요. '야옹'을 거꾸로 읽고 음을 약간 바꿔서 부른건데, 처음엔 어색하게 들렸지만 자꾸 들으니 정감이 가더군요. 이름을 갖게 됐던 날, 제 처방전에는 '웅야님 귀하'라고 써 있었어요.

 

 

아이들은 조금 크자 바로 분양을 시켰어요. 그런데 한 녀석만 다시 되돌아 왔어요. 바로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딸아이예요. 분양해갔던 집 아주머니가 털 알레르기가 있어 되돌려 보냈다고 해요. 딸 아이를 다시 분양할 곳을 물색하던 중 이 집 아들 아이가 '웅야' 혼자 있는게 외로우니 같이 키우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어요. 아줌마와 딸 아이는 찬성을 했지만, 주인 아저씨는 난색을 표했어요. '하나도 버거운데 둘 씩이나...' 이런 생각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아줌마의 애교 작전과 아이들의 읍소에 넘어가 결국 딸 아이는 이 집에 남게 됐어요. 딸 아이에게 어느 날 아줌마가 '애기'라고 불렀는데, 이 '애기'가 그냥 딸 아이의 이름이 됐어요. 지금은 5살이나 먹어 저보다 등치가 큰데도 여전히 '애기'라고 부르니, 웬지 좀 우스워요.

 

 

딸 아이는 식성이 까다로와요. 아줌마가 주는 사료와 이따금 간식으로 주는 멸치만 먹지 다른 것은 일체 안 먹어요. 저는 완전 잡식성이에요.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지요. 딸 아이는 절대 주인 아줌마나 아이들 무릎 위에 올라가지 않아요.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기만 하죠. 저는 안그래요. 틈만 나면 주인 아줌마나 아이들 배 위나 다리 위에 올라가 앉죠. 이따금 아저씨 다리 위에 앉기도 해요. 이 아저씨, 참 많이 변했어요. 처음엔 질색했는데 제가 올라가도 가만히 있거든요. 그래도 여전히 제가 묻히는 털이 싫은가 봐요. 늘 입버릇처럼 말하죠. "이 녀석 털만 안빠지면 좋겠는데..."

 

 

이 집에서 5년을 지내는 동안 아이들이 커가는 것과 아저씨와 아줌마가 나이 먹어가는 것을 지켜 봤어요. 여느 일반 가정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집이라 뭐 특별한 일은 없었어요. 매일 그 날이 그 날 같았죠.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이 집은 아저씨와 아줌마가 직장 생활을 하는 집이라, 낮에는 사람이 없어요. 아이들도 전에는 집에 있었는데 지금은외지에 나가 있죠. 아무도 없는 빈 집에 딸 아이와 둘이 있을 때면 가끔 돌출 행동을 할 때가 있어요. 아저씨가 보면 질겁할 일이지요. 딸 아이와 달리기 시합을 하거나 숨바꼭질을 하거든요. 털이 엄청 날리죠. 아저씨한텐 미안한 일이지만(이 집은 아저씨가 청소 담당이거든요) 어쩔 수 없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이 찌뿌둥하거든요. 단순히 기지개를 켜거나 하품을 하는 것 가지고는 찌뿌둥한게 풀리지 않거든요. 전에는 달리기 시합과 숨바꼭질 하는 것에 대해 아저씨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졌었는데, 요즘은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좀 뻔뻔한 생각을 해요. 우리가 집을 지켜주니 이 정도는 이해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하거든요. 후후.

 

 

우리가 먹는 나이는 사람이 먹는 나이와 달라요. 제 나이는 사람 나이로 치면 노년기에 들어선 나이라고 할 수 있고, 딸 아이도 중년기에 들어선 나이라고 할 수 있어요. 노년기에 들어서서 그런가, 제가 어쩌다 아무데나 실례를 하는 경우가 있어요. 주인 아저씨는 처음에는 질색팔색을 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실례한 것을 치워줘요. 그러면서 저를 불러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죠. "웅야, 실례는 꼭 제자리에 했으면 좋겠구나." 저도 미안해서 얼굴을 붉히며 대답하죠. "냐~웅"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지나간 옛날이 생각 날 때가 많아요. 그러면서 앞날도 생각하게 돼요. 요즘 가장 큰 걱정은 이집 식구들과 이별하는 거예요. 언제 그 이별의 시간이 닥쳐올지 모르지만, 모쪼록 크게 슬프지 않게 이별했으면 싶어요. 그게 나를 이 집에 살게 해준 이 집 식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의 보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최근 이 집 아줌마가 몸이 아파 휴직을 하고 집에서 쉬게 됐어요. 수술도 받기로 돼있구요. 몸이 많이 야위었더라구요.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게 없어 안타까워요. 언제가 아저씨가 저를 품에 안고 -- 그래요, 안아주기도 해요! 정말 많이 변했죠! -- 그러더군요. "웅야, 너도 엄마[이 집 아줌마]를 위해 기도 좀 해주렴. 건강하시라고." 당연히 그러마고 대답했죠. "냐~ 옹"

 

 

오늘은 제법 봄날씨 같네요. 바람도 산들 바람이고 햇살도 따뜻하고. 창가에 가서 한 숨 자야 겠어요. 너무 많은 말을 쏟아 냈더니 좀 피곤하네요. 아, 고양이를 한자로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그래요. 猫(묘)라고 하지요. 猫는 본래 貓로 표기했어요. 貓는 豸(狸의 약자, 삵 리)와 苗(싹 묘)의 합자예요. 집에서 기르는 삵과 닮은 동물이란 의미예요. 豸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苗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삵과 닮았으며 식물의 싹을 해치는 쥐를 잘 잡는 동물이란 의미로요. 고양이 묘. 貓(猫)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猫兒(묘아, 고양이 새끼), 猫柔(묘유, 고양이같이 겉으로는 유순하나 속음 음험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잘 익혀 보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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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01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웅야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개냥이군요. 사람들 앞에 애교 부릴 줄 알아요. ^^

찔레꽃 2017-04-02 07:12   좋아요 0 | URL
고양이마다 특성이 있는 것 같아요. ‘애기‘는 무척 도도해요. ^ ^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우탁(禹倬,1203 - 1342)의 시조예요. 늙음에 대한 공포를 해학적으로 그렸죠. 재미있는 것은 우탁이 역학(易學)에 정통한 학자였다는 거예요. 역학에 정통한 이라면 늙는 것에 웬지 초연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평범한 이들에게 늙는다는 것은 더할나위없이 공포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어요.

 

그래도 과거 사회에서는 늙는 것이 지금처럼 공포스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자식들이 자신을 버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는 기풍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자식들이 자신을 돌보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에 정말 공포스럽죠. 가장 가까운 자식도 자신을 돌보지 않는데 그 누가 자신을 돌봐주겠어요? 오늘 날 늙는다는 것은 '공포'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 공포에 대비하기 위해 어떤 이는 열심히 건강을 챙기고 돈도 저축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은 허전할 거예요. 가장 가까운 자식한테마저 버림받은 삶이니까요.

 

한 사회의 성숙도를 나타내는 지표에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노인 복지 아닐까 싶어요. 우리 사회의 노인 복지 수준은 어떠할까요? 굳이 통계치를 들먹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우리 주변에서 접하는 노인 분들의 모습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으니까요.

 

사진은 수현경로당(秀峴敬老堂)이라고 읽어요. 수현은 동네 이름인 듯 싶어요. 혹 '깔딱 고개'를 한자로 표기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경로당의 뜻은 아시죠? ^ ^

 

퇴근 무렵에 이곳에서 하루 일과(?)를 보낸 노인 분들이 나오는 모습을 종종 봐요. 할머니들에게서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이, 할아버지들에게서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보여 목례를 하면서 지나가죠. 그러면서 노인 분들의 표정을 슬며시 살펴 봐요. 대부분 무심한 표정이에요. 나이 탓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삶이 행복하지 않은데서 오는 무심한 표정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드물게 찾아오는 자식들, 힘겹게 견뎌야 하는 질병, 특별한 일없이 시간을 때워야 하는 지루함, 경제적 빈곤 등이 빚어낸 표정이란 생각이 들어요. 우리 사회의 성숙도는, 적어도 노인 복지 차원으로 보면, 아직은 갈 길이 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禾(벼 화)와 乃(仍의 약자, 당길 잉)의 합자예요. 벼에서 끌려 나온 것, 즉 이삭이란 의미예요. 이삭 수. '끌려 나왔다'란 본뜻에서 '빼어나다'란 의미가 연역되어, 빼어나다란 의미로도 사용하죠. 빼어날 수. 秀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俊秀(준수), 秀作(수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뫼 산)(볼 견)의 합자예요. 고개라는 의미예요. 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고개에서는 아래에 있는 것들이 잘 보인다는 의미로요. 고개 현.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阿峴洞(아현동), 泥峴(이현, 진고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艹(羊의 줄임 글자, 양 양)과 勹(包의 줄임 글자, 쌀 포)와 口(입 구)와 攵(칠 복)의 합자예요. 양이 입을 다물고 조용히 하듯이 엄숙하고 진중한 태도로 일에 임할 것을 스스로 채찍질한다는 의미예요. 공경 경. 敬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恭敬(공경), 敬虔(경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人(사람 인)과 毛(털 모)와 匕(化의 약자, 화할 화)의 합자예요. 검은 머리에서 흰 머리로 변화한 사람이란 의미예요. 이런 사람을 늙은 이라고 하고, 이런 상태를 늙었다라고 하죠. 늙을 로. 老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老人(노인), 老衰(노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土(흙 토)와 尙(숭상할 상)의 합자예요. 높은 토석 축대 위에 지은 집이란 의미예요. 土로 의미를 표현했지요. 尙은 음을 담당하면서(상→당)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높은 토석 축대 위에 지은 집은 집안의 중심이 되는 건물이란 의미로요. 집 당. 堂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堂號(당호, 집 이름), 神堂(신당, 신령을 모신 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秀 빼어날 수   峴 고개 현   敬 공경할 경   老 늙을 로   堂 집 당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衰   (   )作   恭(   )   (   )峴洞   (   )號

 

 

3. 다음 지문을 참고하여 '노인 복지'에서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

 

맹자가 말했다. " 백이가 주임금을 피하여 북해 가에 숨어 지내다 문왕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내 어찌 저에게 가지 않겠는가! 들으니 서백[문왕]은 노인을 잘 모신다고 하더라.' 주임금을 피하여 동해 가에 숨어 지내던 태공도 똑같은 말을 했다. 두 노인은 천하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노인들이었다. 그들이 서백에게 귀의한 것은 곧 천하 모든 노인들이 서백에게 귀의한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천하의 모든 노인들이 서백에게 귀의했는데, 그들의 자식들이 서백에게 귀의하지 않고 누구에게 귀의하겠는가! 만일 제후들 중에 문왕과 같이 노인을 잘 모시는 자가 있다면 그는 7년 이내에 천하를 다스리는 위치에 있게 될 것이다." (<맹자>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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