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또다른 피서 명소인 ㅇㅇㅇㅇ공원입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인데 발디딜 틈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새벽의 모습은 전날 밤과 크게 다릅니다. 빈 술병과 생수통은 물론이고 먹다남은 음식이 돗자리 위에 그대로 놓여있습니다. 밤새 북적이던 이곳은 사실상 쓰레기장으로 변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본 한 방송사의 뉴스 일부분이에요. 일부분만 떼어놓고 보니 딱히 오늘 뉴스라기 보다 해마다 피서철만 되면 접하게 되는 뉴스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마 모른긴해도 내년 이맘때 쯤에도 역시 똑같은 뉴스가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이런 뉴스를 접할때 마다 드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 오죽 덥고 답답했으면 저렇게 질펀하게 한 여름 밤을 보냈겠어? 그런데, 과연 덥고 답답한 것은 얼마나 해소됐을까?"

 

사진은 경주 대릉원에 갔다가 찍은 거예요. 대릉원 후문 맞은 편에 법장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 담벼락에 걸려있는 현수막이에요. 한자를 읽어 볼까요? 수인조선 궁공조각 재장조목 지자조신(水人調船 弓工調角 材匠調木 智者調身). 해석은? 현수막에 나와 있네요! ^ ^ "물대는 사람은 물을 끌고, 활 만드는 사람은 활을 구부리며, 목공은 나무를 다루고, 현명한 사람은 스스로를 다스리네." 『법구경』6장 현철품(賢哲品)에 나오는 말이에요. 그런데 '수인조선(水人調船)'은 "물대는 사람은 물을 끌고"라고 해석하기 보다 "사공은 배를 손질하고"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것 같아요. '선(船)'이 배란 뜻이니 '수인(水人)'은 사공으로 해석하는 것이 나을 듯 싶은거죠. "물대는 사람은 물을 끌고"는 의미가 불분명한 의역이란 생각이 들어요.

 

이 문구는 이런 의미예요. "물을 끌어들이는 이가 물대는 사람이고, 활을 구부리는 이가 활 만드는 사람이며, 나무를 다루는 이가 목공이듯, 자신을 잘 다루는 이가 바로 현명한 사람이다." 현명한 사람에 대한 정의를 내린 것이죠. 그런데 위 문장을 이렇게 해석해 보면 의미가 확 달라져요. "물을 끌어들이는 이가 물을 대듯, 활 만드는 사람이 활을 구부리듯, 목공이 나무를 다루듯, 현명한 사람은 그같이 자신을 다스린다." 현명한 사람의 마음 다스리는 요령을 소개한 것이 돼죠.

 

이런, 현수막의 문구를 흠집 잡으려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 방향이 엉뚱한데로 갔네요. 다시 원 위치로. 현수막에 나온『법구경』의 내용이 현명한 사람에 대한 정의든 아니면 현명한 사람의 마음다스리는 법이든간에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자신을 잘 다루어야 한다는 거예요.『법구경』엔 자신을 잘 다루는 구체적인 방법이 나와요.

 

"눈을 절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귀를 절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코를 절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혀를 절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몸을 절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말을 절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생각을 절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잘 절제하게 되면/ 그는 이 모든 고뇌에서 벗어난다" (25장 비구품, 인용 출처:http://cafe.daum.net/suu0/1Mll/166?q=%B9%FD%B1%B8%B0%E6%20%C0%FC%B9%AE)

 

한마디로 압축하면 '심신의 절제'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이런 심신의 절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요령은 바로 현수막에 나온 내용대로 하면 돼죠. 물을 끌어들이는 이가 물을 대듯, 활 만드는 사람이 활을 구부리듯, 목공이 나무를 다루듯! (이런, 저의 견강부회한 해석을 대놓고 옳은 것처럼 말했네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물의 이치에 맞게 중용을 지켜서! 물은 순류에 맞게 끌어 들여야 어렵지 않게 끌어 들일 수 있고, 활은 적당한 강도에 맞게 구부려야 부러지지 않게 구부릴 수 있으며, 나무는 재질과 용도에 맞게 다듬어야 재목이 될 수 있죠. 그같이 심신을 절제하면 되는 거죠. 절제는 궁핍이 아니라 중용인 것이죠.

 

뜨거운 여름 밤을 질펀하게 보낸 피서객들, 그들은 과연 제대로 피서를 한 것일까요? 질펀은 궁핍의 또 다른 얼굴이며 이는 절제(중용)와 거리가 먼 것이니, 해답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네요.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調는 言(말씀 언)과 周(두루 주)의 합자예요. 조화를 이루다란 뜻이에요. 言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의사가 잘 통해야 상대와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로요. 周는 음을 담당하면서(주→조)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빠진 부분 없이 두루두루 흡족하게 하는 것이란 의미로요. 고를 조. 위의 현수막에서는 調를 '고르다'란 의미로도 풀이할 수 있지만, '길들이다'란 의미로도 풀이할 수 있어요. 이 경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라고 할 수 있어요. 대상을 과불급없게 다룬다는 의미로요. 길들일 조. 調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調節(조절), 調攝(조섭)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舟(배 주)와 㕣(沿의 약자, 물따라내려갈 연)의 합자예요. 배란 뜻이에요. 舟로 뜻을 표현했어요. 㕣은 음을 담당하면서(연→선)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물따라내려가는 것이 바로 배란 의미로요. 배 선. 船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艦船(함선), 船尾(선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뿔의 모양을 그린 거예요. 윗 부분은 뿔의 뾰족한 부분을 나머지 부분은 뿔의 외곽과 결을 표현한 거예요. 뿔 각. 角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銳角(예각), 觸角(촉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匚(상자 방)과 斤(도끼 근)의 합자예요. 匚은 가구를 의미하고, 斤은 공구를 의미해요. 공구를 사용하여 가구를 만드는 사람, 즉 목수(장인)란(이란) 의미예요. 장인 장. 匠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匠人(장인), 巨匠(거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知(알 지)와 日(날 일)의 합자예요. 대상을 빠짐없이 고르게 비추는 햇빛처럼 세상사에 대해 두루두루 잘 안다는 의미예요. 슬기 지. 智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智慧(지혜), 智略(지략)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오늘은 정리 문제 대신 앞의 내용과 관계될 법한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나오는 내용 일부분을 읽어 보도록 하죠. 일종의 피서법인데 '궁핍'에 가까운 피서법이에요. 중용에는 맞지 않지만 남에게 해를 끼치는 '질펀' 피서법 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저도 한 번 따라해 볼 생각입니다 ^ ^;;

 

"8,9년 전이던가, 해인사 소소산방에서 『화엄경 십회향품』을 독송하면서 한여름 무더위를 잊은채 지낸 적이 있다 … 조석으로 장경각에 올라가 업장을 참회하는 예배를 드리고 낮으로는 산방에서 독송을 했었다. 산방이라고는 하지만 방 하나를 간막아 쓰니 협착했다. 서까래가 내다뵈는 조그만 들창과 드나드는 문이 하나밖에 없는 방, 그러니 여름이 아니라도 답답했다. 그래도 저 디오게네스의 통 속보다는 넓다고 자족했었다 … 더러는 목청을 돋구어 읽기도 하고 한자 한자 짚어 가며 묵독하기도 했었다. 비가 올 듯한 무더운 날에는 돌담 밖에 있는 정랑에서 역겨운 냄새가 풍겨 왔다. 그런 때는 내 몸 안에도 자가용 변소가 있지 않느냐, 사람의 양심이 썪는 냄새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았다. 일체가 유심소조니까. 저녁 공양 한 시간쯤 앞두고 자리에서 일어서면 가사 장삼에 땀이 흠뻑 배고 깔았던 방석이 축축히 젖어 있었다. 비로소 덥다는 분별이 고개를 든다. 골짜기로 나가 훨훨 벗어 버리고 시냇물에 잠긴다. 이내 더위가 가시고 심신이 날 듯이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이렇게 해서 그해 여름 <십회향품>을 10여 회 독송했는데 읽을수록 새롭고 절절했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라면 그렇게 못 했을 것이다. 스스로 우러나서 한 일이라 환희로 충만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법정,『무소유』(범우사:1985), 66-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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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책이 없는 것은 몸에 정신이 없는 것과 같다 / 키케로의 말 소전 손재형 쓰다"

 

교학사에서 펴낸 필승이란 참고서 뒷면에 인쇄된 내용이에요. 이 참고서를 접한 것이 중학교 2학년 때이니 벌써 38년 전 이네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내용을 기억하는 것은 이 내용을 쓴 글씨가 특이했기 때문이에요. 특이해서 자주 흉내냈던 기억이 나요(이 흉내가 기억에 도움을 준 듯 싶어요). 후일 이 특이한 글씨체가 '소전체(素體)'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소전체의 대표적인, 아니 대중적인 작품은 '샘터'와 '바둑'이란 제호예요(둘 다 월간 잡지죠). 한 번 쯤은 보시지 않았을까 싶네요. 소전은 손재형(孫在馨, 1903-1981)의 호예요.

 

손재형은 근현대 서예가로, 추사이후 첫 손으로 꼽히는 서예가죠. 손재형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서예(書藝)'와 '세한도(歲寒圖)'예요. 손재형은 해방이후 서예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어요. 유학의 교과였던 육예(六藝)의 '예'와 육예 중 한 과목이었던 '서(書)'를 합쳐 만든 서예란 용어는 중국의 서법(書法)과 일본의 서도(書道)란 용어에 비해 서의 예술적 풍미를 강조한 용어죠. 서법과 서도란 용어를 차용할 수도 있었을텐데 굳이 새로운 용어를 쓴 것은 우리 서(書)의 자주성을 드러내려는 의지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을 거에요. 손재형이 한글 서예의 신기원을 연 것도 이런 의지와 상관성이 있을 거구요.

 

그가 일본인 후지즈카(藤塚)에게서 추사의 세한도를 돌려받은 것도 같은 맥락 이라고 보여요. 그가 세한도를 돌려받기 위해 애쓴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죠. 석달 넘게 일본 동경에 머물며 후지즈카를 설득해 댓가없이 돌려 받았다고 하죠. 추사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던 후지즈카가 세한도를 손재형에게 댓가없이 돌려줬다는 것은 손재형의 정성이 그만큼 극진했으리라는 것을 반증해요. 재미있는(?) 것은 세한도를 돌려받은 지 얼마 안있다 후지즈카의 집이 미군의 공격으로 전소됐다는 거에요. 이런 우연의 사건 때문에 혹자는 하늘이 손재형을 시켜 세한도를 구하게 했다고도 말하고, 역으로 손재형의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켜 세한도를 구하게 됐다고도 말하죠.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돌려받은 세한도를 그가 말년에 선거 자금으로 저당 잡혔다가 끝내 회수하지 못했다는 점이죠(애고, 정치가 뭐길래...). 하지만 세한도를 되찾아 온 그의 공은 결코 퇴색되지 않을 거예요. 

 

 

사진은 관음전(觀音殿)이라고 읽어요. 왼쪽의 낙관은 소전(素) 손재형(孫在馨)이라고 읽구요. 불국사에서 찍은 거예요. 아는 분의 글씨라 그런가 한결 더 정감있게 와닿더군요. 관음'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 본다'는 뜻으로, 산스크리트어 아바로키테슈바라(Avalokiteśvara)를 의역한 거예요.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자재(觀自在)·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표기하기도 하죠. 관음전의 관음은 정확하게는 관음 보살의 준말이에요(보살은 산크크리트어 보디사트바(bodhisattva)를 음역). 따라서 관음전관음 보살을 모신 이란 뜻이죠. 관음 보살은 대개 천수천안(千手千眼)으로 표상되는데 중생의 수많은 고통을 살펴보고 구제하는 일을 맡고 있기에 그렇게 나타낸다고 해요. 불국사의 관세음 상도 후면에 천수천안 도상이 있더군요.

 

현판을 응시하노라니 문득 손재형은 관음전 현판을 쓰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추사와 비견되는 작품을 남기겠다는 생각을 했을까요? 아니면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처럼 자신의 글씨가 사람들의 마음을 위무해 주기를 바랐을까요? 아니면 그야말로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썼을까요? 그러나 분명한 건 돈을 염두에 두고 쓰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아니 그렇게 믿고 싶어요. 비록 말년에 선거 자금을 위해 세한도나 자신의 소장품들을 저당잡히고 매매했지만, 그건 말년의 일이고 그의 생애 대부분은 우리 서(書)의 자주성을 위해 분투했던 삶이었으니까요.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알아 볼까요?

 

은 雚(황새 관)과 見(볼 견)의 합자예요. 황새처럼 세밀하게 살펴 본다는 의미예요. 황새가 물가에서 물고를 잡을 때 집중하는 모습을 연상하면 되겠네요. 볼 관. 觀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觀察(관찰), 觀念(관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丰과 糸(실 사)의 합자예요. 丰은 초목의 꽃과 열매가 무성한 모습을 표현한 거예요. 그렇듯 곱고 촘촘하게 짠[糸] 흰색 명주란 뜻이에요. 지금은 '흰 색'이란 뜻으로 줄여서 사용하죠. '바탕'이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하얀 색은 모든 색의 '바탕'이 된다란 뜻으로요. 흴 소. 바탕 소. 素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素服(소복), 素質(소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艹(풀 초)와 全(온전할 전)의 합자예요. 매우[全] 향기로운 풀이란 뜻이에요. 향초 전. 荃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蕙(전혜, 향초의 이름)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은 殸(磬의 약자, 경쇠 경)과 香(향기 향)의 합자예요. 경쇠 소리처럼 멀리까지 그 냄새가 퍼져나가는 향기라는 뜻이에요. 향기 형. 馨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馨香(형향, 향기 좋은 냄새), 馨逸(형일, 향기가 보통 때와 달리 유달리 좋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觀 볼 관   素 흴 소   향초 전   馨 향기 형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蕙   (   )服    (   )逸    (   )察

 

3. '觀音殿'에 나타난 소전체의 특징을 말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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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말 서울 문화 재단 남산 센터에서 만화 연수를 받은 적이 있어요. 그 때 건물을 드나들면서 복도 쪽 창 너머 건물 외벽에 있는 낯익은 글씨를 자주 보았어요. 70년대 같으면 각별한 보호를 받았을 그 글씨는 관리는 커녕 조만간 철거될 모양인지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더군요.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였어요. 지금은 어떤 상태로 있는지 궁금하네요.

 

 

박정희 대통령만큼 전국 곳곳에 자신의 서흔(書痕)을 남겨놓은 지도자도 흔치 않을 것 같아요. 한 때는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를 찬양까지는 아니래도 독특한 서체라고 추켜 세웠던 적도 있었지요.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가 많은 것은 그가 집권한 기간이 길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병영사회를 지향한데서 연유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병영사회는 일사불란한 행동 통일을 필요로 하는데 이때 효율적인 수단이 바로 구호이죠. 곳곳에 박정희 대통령의 구호성 휘호가 많은 것은 바로 여기서 연유한 것이 아닌가 싶은 거죠. 이런 점은 북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곳곳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구호성 휘호가 널려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잖아요? 우리는 그래도 정권이 바뀌어 박정희 대통령의 구호성 휘호가 철거되거나 가려진데 반해 북한은 여전하죠. 통일된 이후 북한 곳곳에 새겨진 김일성과 김정일의 휘호성 구호는 골치 아픈 처리물이 될 거예요.

 

 

사진은 '대천성공(代天成功)'이라고 읽어요. '하늘을 대신하여 공을 이루다'란 뜻이에요. 감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청도터널 입구에 새겨진 글씨예요. 의미상으로 보아 하늘이 해야 할 어마어마한 일을 해냈다란 찬사인 듯 싶어요.

 

 

그런데 글씨를 쓴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일본군 중장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예요. 메이지(明治) 37년(1904)에 쓴 것으로 돼있어요. 대한제국 시절 경부선 철도 부설권을 따낸 일본은 1896~1904 사이 경부선 철도를 놓았는데 청도터널도 그 와중에 완성되었다고 해요. 청도터널은 고지대에 위치하여 만들기가 쉽지 않았기에 '대천성공'이란 글귀를 써놓은 듯 싶어요.

 

 

세월이 지나 이제는 감 와인 숙성지로 변모됐지만 이 청도터널은 돌이켜보기도 힘든 장소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지금처럼 장비가 잘 갖춰진 시대도 철도 놓기가 만만치 않은 고지대이니, 부설 당시야 더없이 어려운 지역이었을테고 이 철도 조성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됐겠어요? 게다가 그 희생이 결코 일인(日人)이 아닌 한인(韓人)일 것이며 보태어 그런 희생으로 이루어낸 성과는 고스란히 일본의 치적으로 돌려졌으니 말이에요(터널위에 순종의 휘호나 우리나라 관리의 휘호가 아닌 일본 군인의 휘호가 걸린 것이 이를 증명하죠).

 

 

휘호를 쳐다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오랜 세월이 흐는 지금까지 저 휘호가 걸려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역사의 흔적이니 두고 보자는 것일까요? 아니면 휘호를 건드리면 터널 건축 구성에 악영향이 있기 때문일까요? 지나간 정권의 지도자 서흔도 방치하거나 지우려 하는 판에 쓰라린 상처를 준 상대국의 군인 휘호를 굳이 보관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싶어요. 떼버리고 대신에 터널을 건설하는데 동원됐던 수많은 무명씨들을 기리는 휘호를 써놓든가 아니면 아예 아무것도 써붙이지 않는게 어떨까 싶어요. 이런 생각때문이었을까요? 청도터널 안에서 맛 본 감 와인은 그다지 맛이 없었어요(제 입만만 그랬을 거예요. 다른 시음자들은 다들 좋아하는 표정이었어요).

 

 

代와 功 두 자만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人(사람 인)과 弋(문지방 익)의 합자예요. 바꿔 지속시킨다는 의미예요. 人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弋은 음을 담당하면서(익→대)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내외(內外)의 중간점에 있으면서 내외를 이어주는 문지방처럼 내용과 형식을 바꿔 이어준다는 의미로요. 대신할 때. 代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代身(대신), 代理(대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工(장인 공)과 力(힘 력)의 합자예요. 국가에 기여한 지대한 업적이란 뜻이에요. 力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工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工은 본래 자[尺]를 그린 것으로 규준, 법도란 의미가 내포돼 있어요. 여기선 이 의미로 사용됐죠. 국가가 요구하는 일정한 규준과 법도에 맞는 업적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주고 있어요. 공 공. 功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論功行賞(논공행상), 功績(공적)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代 대신할 때   功 공 공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理   功(   )

 

 

3. 청도터널에 붙여진 '대천성공'을 대신할 적절한 각자(刻字)가 있으면 소개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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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평야지대 한 가운데 9층 석탑이 있었어요. 1년에 한 차례 학생들이 단체로 가서 탑 주변의 잡초를 뽑았지요. 안내판에는 과거 이 곳에 큰 절이 있었다란 내용이 있었어요. 어린 마음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어른이 되면 이 주변을 발굴해 봐야지!" 중년을 넘어선 지금, 그 때의 생각은 생각에 그쳤어요.

 

화려했던 과거 흔적을 살펴보려는 마음은 누구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현재의 위상이 미미할적엔 더더욱. 과거의 화려함을 통해 현재의 부족함을 보상받고 싶은 심리에서 그럴거에요. 개인만 그런 것이 아니고 지역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어쩌면 '역사'나 '고고(考古)'는 이런 심리를 만족시키기 위해 탄생한 학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봐요.

 

사진은 '서고성(西古城)'이라고 읽어요. 서쪽에 있는 옛 성이란 뜻이에요. 옛 발해의 수도 중 한 곳이었던 중경 현덕부(中京 顯德府)에 있던 성이에요. 외성의 둘레 길이가 2.7㎞에 달하고 내성의 둘레 길이는 1㎞에 달하는 장대한 성이었어요. 발해의 2대 왕인 문왕(文王) 대흠무(大欽武)가 동모성(東牟城)에서 천도한 후 쌓은 성이라고 해요. 지금은 폐허가 되어있죠. 아내가 딸 아이와 2000년대 초반 중국에 갔다가 찍은 사진이에요. 며칠 전 아내가 사진 을 정리하다 발견(?)했어요.

 

서고성 한자 밑에 중국어 설명이 있어요. 번역해 볼까요? "서고성은 화룡시 평강 평원 중부에 위치한다. 발해(A.D 698 - 926)의 중경 현덕부 유적지로, 발해의 오경(五京) 중 한 곳이었다. 발해는 5경 15부 62주의 행정체계를 갖고 있었다. 이곳은 발해가 수도를 다른 곳으로 옮긴 이후에도 정치 경제 문화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다." (의역했어요.) 간략한 개요예요.

 

한 때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에 온 나라가 떠들썩한 적이 있었죠.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잠잠해요. 중국이 동북공정을 멈췄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언론이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뭇해진 것 아닌가 싶어요. 중국은 아마도 계속 동북공정을 하고 있겠지요.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는 것은, 주지하는 것 처럼, 후일 있을지 모를 한 중간의 영토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 자국의 영토 영역을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이죠.

 

그런데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여 동북아 영역에 쐐기를 박는다해도 그렇게 얻어진 영토에 애정은 별반 없을 것 같아요. 자국의 역사가 서린 곳이 아니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다르죠. 그곳엔 우리 선조의 역사가 깃들여 있기에 고구려와 발해의 영역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죠. (이상은 생각은 도올 김용옥 선생이 출연한 '나의 살던 고향은'에서 차용했어요.)

 

서고성을 관광하는 한국인들은 이곳을 관광하는 중국인들에 비해 다른 느낌이 들 거에요. 비록 현재는 남의 땅이지만 과거에는 우리 조상들이 소유했던 땅이고, 우리의 옛 땅에 이런 장대한 건축 - 비록 현재는 폐허일지언정 - 이 있었다는 것에 가슴 뭉클함을 느낄 거에요. 이런 마음은 제가 어렸을 때 마을에 있던 9층탑 주변을 발굴해 보고 싶었던 그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마음을 단순 보상 심리로 치부하고 말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어요. 이 보상 심리는 자긍심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죠. 자긍심은 삶을 향상시키는 주요 원동력이죠. 나라를 발전시키는 주요 원동력이기도 하구요. 비록 현재는 미미한 위치에 있을지라도 언젠가는 화려했던 과거를 회복하리라는 남다른 열망을 지닌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나라에 비해 훨씬 더 향상될 가능성이 많잖아요? 이런 점에서 '역사'나 '고고'는 결코 단순한 호고(好古) 취향의 학문이 아니라 현실에 투철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을 거에요.

 

서고성은 원래의 명칭이 아니라 동고성에 대비하여 붙여진 명칭이라고 해요. 동고성은 요(遼)와 금(金)의 고성들이 있는 성지(城址)예요.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西는 새가 둥우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거예요. '서쪽'이란 뜻은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새가 둥우리를 찾게 되는 때는 해질녘이며, 해가 지는 곳은 방위상 서쪽이란 의미로요. 서녘 서. 西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東西(동서), 西方(서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十(열 십)과 口(입 구)의 합자예요. 오랫동안[十] 전해져 온 말[口]이란 의미예요. 줄여서 오래되었다란 의미의 '옛'이란 뜻으로 사용해요. 옛 고. 古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古代(고대), 自古(자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土(흙 토)와 成(이룰 성)의 합자예요. 흙을 돌을 쌓아 올려 만든 건축물이란 의미예요. 성 성. 城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土城(토성), 石城(석성)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西 서녘 서   古 옛 고   城 성 성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代   (   )方   石(   )

 

 

3. 서고성을 찾았던 경험이 있으면 당시의 소회를 말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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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 2019-03-01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태여난 곳입니다.. 그립습니다.

찔레꽃 2019-03-01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시군요. 좋은 성취 이루시고 금의환향하시기를 빕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호남은 나라의 울타리이므로 만약 호남이 없다면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湖南國家之保障  若無湖南  是無國家). 그래서 어제 한산도로 진을 옮겨서 치고 바닷길을 가로막을 계획을 하였습니다. " (인용 출처: http://blog.naver.com/ikdominia/40164027461)

 

 이순신이 지평(指平) 현덕승(玄德升)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이에요. 임진왜란 초기 파죽지세로 조선을 유린한 왜에게 아직 범접하지 못한 지역이 있었으니, 바로 호남이었죠. 만일 호남마저 왜에게 빼앗기면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수 없었기에,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죠. 바꿔 말하면, 호남을 지켜야 나라를 유지할 원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죠이순신의 편지는 저간의 사정을 말해주고 있어요. 이순신이 한산도로 본영을 옮긴 것은, 당시 일부의 오해처럼 작당(作黨)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효율적인 전쟁 수행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여기 “만약 호남이 없다면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가 원의와 다르게 왜곡 사용되는 경우가 있어요. 호남이 최고이며, 유일한 희망이다란 의미로요. 이번 19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랬죠. 문재인 후보 광주 유세시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란 펼침막이 등장했는데, 바로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죠. 그리고 여기에는 문재인 후보에게 호남을 잊지 말고 호남에게 각별한 예우를 해달라는 바램도 담겨있었구요. (이낙연 총리 지명에는 이런 바램을 수용한 거겠죠.)

 

이 왜곡의 원조는, 인터넷을 찾아보니, 김대중 대통령이더군요. 2006년 전남도청 방문시 방명록에 무호남 무국가(無湖南 無國家,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란 문구를 남겼어요. 위에서 말한대로, 호남이 최고이며 유일한 희망이다란 메시지를 담았던 것이죠. 그런데 방명록을 다시 가져오라고 하여 이 문구 앞에 충무공왈(忠武公曰)”을 추가했다고 해요. 자신의 말이 아니고 충무공의 말이란 것을 밝힌거죠. 그러나 이 속에는 이미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이 생각했던 호남에 대한 의미와는 다른 김대중 대통령이 생각하는 호남에 대한 의미가 깔려있었다고 보는 게 옳을 거예요. 이후 이 문구에서 충무공왈은 묻히고 무호남 무국가만 알려져 호남의 자긍심을 나타낸 글귀로 널리 회자되었다고 해요.

 

사진은 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고 읽어요. ‘만약 호남이 없으면 이는 국가가 없게되는 것이'란  뜻이에요. 위에 소개한 것처럼, 이순신 장군이 남겼던 말이죠. 김대중 대통령은 원문에서 '약(若)'과 ()’를 빼고 인용했구요.

 

흔히 단장취의는 원의를 왜곡하는 일로, 많은 지탄을 받죠. 하지만 경우에 따라선 원의를 뛰어넘는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상대에게 좋은 효과를 준다면 말이죠. '약무호남 시무국가'는 호남에 더할수 없는 자긍심을 안겨주는 문구죠. 우리 현대사에서 호남만큼 차별과 억압을 받으면서도 줄기차게 민주주의의 싹을 키워낸 지역이 없죠. 이런 호남에게 '약무호남 시무국가'만큼 정신적 보상을 해주는 문구는 없을 것 같아요. 이 문구의 사용에 대해 원의 왜곡 운운하며 질타하는 것은 속좁은 견해가 아닐까 싶어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데, '약무호남 시무국가'란 단장취의로 호남에 대한 천 냥의 부채를 갚을수 있다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왜곡이겠어요! 안그런가요?

 

사진은 http://blog.naver.com/mbus9709/220709305564 에서 인용했어요. 한자를 두어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은 두 가지로 설명해요. 하나는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손을 위로 받든 모습을 그린 것으로 순종하는 자세를 그린 것으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艹(풀 초)와 右(손의 모양을 그린 것)의 합자로 풀(채소)을(를) 솎아내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는 거예요. '만약'이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순종하는 자세를 그린 것으로 볼 때는, '만약' 위에서 명령을 내린다면, 순종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란 의미로 연역된 것이고, 풀(채소)을(를) 솎아내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볼 때는, '만약' 채소가 무성하다면, 솎아내야 한다는 의미로 연역된 거예요. 만약 약. 若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若使(약사, 만약), 若干(약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두 가지로 설명해요. 하나는 양손에 깃털을 들고 춤추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大(큰 대)와 十十十十(사십, 많은 수의 의미)과 林(수풀 림)의 합자로 숲에 큰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것을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하는 거예요. '없다'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춤춘다는 의미일 때는, 손이나 팔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로 연역되었고, 나무가 우거져 있다는 의미일 때는, 나무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우거져 있다란 의미로 연역되었어요. 無는 현재 연역된 의미인 춤추다란 의미로만 사용하고, 본뜻인 충추다와 우거지다는 표기형태가 바뀌어 舞(춤출 무)와 蕪(우거질 무)로 표기해요.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 거죠. 無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無線(무선), 有無(유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氵(물 수)와 胡(턱밑 살 호)의 합자예요. 소의 턱밑 살처럼 평평하게 늘어진 물이란 의미예요. 이런 형태의 물을 호수라고 하지요. 호수 호. 湖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湖畔(호반), 湖水(호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본래 목탁과 비슷한 악기를 그린 것인데, 후에 남쪽이란 뜻으로 차용되었어요. 南(남)은 暖(따뜻할 난)과 음이 유사하여 따뜻하다란 뜻으로도 사용되었는데, 사방(四方)중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 남쪽이기에 '남녘'이란 뜻으로 사용되다가 후일 이 의미로 고정되었지요. 남녘 남. 南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南方(남방), 南極(남극)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若 만약 약   無 없을 무   湖 호수 호   南 남녘 남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畔   (   )使   有(   )   (   )方

 

3. '만약 호남이 없다면 이는 국가가 없게되는 것이다'를 한문으로 써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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