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http://tip.daum.net/question/82923916>

 

 

"글은 기운을 중심으로 삼는다. 기운의 맑고 탁함엔 바탕이 있나니, 이는 인위적 노력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文以氣爲主 氣之淸濁有體 不可力强而致)."

 

중국 고전 문학 비평의 효시로 알려진 조비(曺丕, 187-226)의 『전론(典論)』「논문(論文)」 일부예요. 흔히 문기론(文氣論)으로 알려진 내용이죠. 문기론은 쉽게 말하면 사람의 타고난 기질이 글에 드러난다는 이론이에요. 이는 순수한 문학론이라기 보다는 문학과 의학이 결합된 이론이라고 볼 수 있어요. 기질은, 신체 상태에 관한 것으로, 의학 분야에 속하기 때문이죠.

 

기질은 다양하죠. 조비는 청탁으로 대분(大分)했지만, 조선의 이제마는 사상(四象)으로 대분했죠. 이제마의 분류는 기질 보다는 체질로 불리는데(사상 체질), 체질과 기질은 같은 의미예요. 둘 다 몸 상태와 관련있으니까요. 문학 작품을 기질(체질)과 관련지어 살펴보는 것은 작품을 풍부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 싶어요.

 

위 사진은 소동파(1037-1101)의 '동란이화(東欄梨花)'란 시예요. 봄 날 난간에서 화사한 배꽃을 보고 쓴 시지요. 이 시를 이제마의 사상체질과 관련지으면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사상체질은 태양, 태음, 소양, 소음이에요. 태양인은 강하고 적극적이며 타인과의 교류에 능하고 다혈질이죠. 태음인은 매사에 신중하고 위엄이 있으며 인내심이 강하고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죠. 소양인은 열정적이고 다정하며 이해타산에 관심이 없고 솔직담백하죠. 소음인은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으며 생각이 치밀하고 침착하죠.

 

 

梨花澹白柳深靑 이화담백유심청     배꽃은 희고 버들은 푸르니

柳絮飛時花滿城 유서비시화만성     버들개지 휘날릴 때 배꽃은 만발하네.

惆悵東欄一株雪 추창동란일주설     슬프구나! 동란에 핀 한 그루 흰 배꽃이여!

人生看得幾淸明 인생간득기청명     인생에서 몇 번이나 이 깨끗한 꽃을 볼 것인가?

                                                    <번역 인용: http://m.blog.daum.net/thddudgh7/16543453>

 

 

시인은 지금 화사한(깨끗한) 배꽃을 보고 있어요. 그런데 이 화사한 배꽃을 보면서 즐겁고 행복해 하기보다는 외려 슬픔에 차있어요. 인생에서 화사한 배꽃을 볼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정말 인생에서 화사한 배꽃을 볼 기회가 많지 않을까요? 그렇진 않을 거예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볼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여기 화사한 배꽃을 볼 기회가 많지 않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건 아마도 인생에서 화사한 배꽃처럼 삶의 환희를 맛보는 때가 많지 않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걸 거예요. 그러기에 화사한 배꽃을 보면서 슬픔을 느낀 것이지요.

 

짐작컨대 시인은 소음인에 가까운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소음인은 걱정과 생각이 많죠. 걱정과 생각이 많다보니 화사한 배꽃을 보면서도 거기에 몰입하지 못한 채 굳이 삶을 연계시키고 나아가 긍정적인 면 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더 부각시키고 있어요. 밝게 쓸 수 있는 시를 어둡게 썼다고나 할까요? 만약 태양인이 화사한 배꽃을 봤다면 이와 정반대의 시를 썼을 거예요. 배꽃 자체에 몰입하거나, 인생을 연계시킨다고 해도 긍정적인 면을 더 부각시켰을 거예요.

 

기질과 문학 작품을 연계시키는 건 문학작품을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한 것이지, 결코 작품의 우열을 평가하기 위한 것은 아녜요. 위 작품도 소음인의 기질이 농후한 작품이란 것 뿐이지 결코 작품 수준이 낮다는 것은 아니지요. 문학 작품과 지은이의 기질을 묶어서 논하는 건 오래된 비평법이지만 현재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문학과 의학이 결합됐다는 점에서 통섭을 지향하는 시대와 잘 어울리지 않나 싶어요.

 

낯선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幺幺(작을 요)(지킬 수)의 합자예요. 은미하고 위태로운 곳을 지킨다는 의미예요. '몇'이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은미하고 위태로운 곳은 많지 않다란 의미로요. 몇 기. 幾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幾何(기하), 幾日(기일, 며칠 몇 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忄(마음 심)과 周(두루 주)의 합자예요. 만족스럽지 못한 마음이란 의미예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周는 음을 담당하면서(주 →추)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두루 만족하려면 일일이 살피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신의 뜻과 불합(不合)하여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의미로요. 실심할 추. 惆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惆然(추연, 실망하여 슬퍼하는 모양), 惆惋(추완, 슬프게 한탄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忄(마음 심)과 長(긴 장)의 합자예요. 원망하며 슬퍼한다는 의미예요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長은 음을 담당하면서(장→창)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오래가는 감정이 원망하고 슬퍼하는 감정이란 의미로요. 한탄할 창. 悵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悔(창회, 원망하고 후회함), 望(창망, 슬퍼하면서 바라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氵(물 수)와 詹(넉넉할 담)의 합자예요. 물이 요동친다는 의미예요. 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수량이 넉넉할 때 물이 요동친다는 의미로요. '맑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요동치던 물이 고요해졌다는 의미로요. 맑을 담. 澹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澹(담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모양), 泊(담박, 욕심이 없고 마음이 꺠끗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糸(실 사)와 如(같을 여)의 합자예요. 헌 솜이란 의미예요. 이 솜은 목화의 솜이 아니고 못쓰게 된 실로 뭉친 솜이란 의미예요. 糸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如는 음을 담당하면서(여→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못쓰게 된 실로 뭉친 솜은 진짜 솜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하다는 의미로요. 솜 서. 絮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纊(서광, 솜), 繒(서증, 솜과 명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위 사진은 시와 그림이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시의 소재는 이화(梨花)인데 그림은 난초와 나비를 그렸기 때문이죠. 사진은 인터넷에서 우연히 찾았어요. 여담 둘. 탈초는 '처음새'란 블로거의 도움을 받았어요. 그림 출처에 가면 이 블로거의 탈초와 시 번역처 안내가 나와요. '처음새'란 블로거는 한문 내공이 상당한 분 같아요. 지식IN 에서도 활발히 활동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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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jbs4106/220027112950>

 

 

"선생님, 올 해가 칠순이신데 한 말씀 해주시죠?"

 

"뭐 대단한 삶이었다고 한 마디 하라는 것이냐? 부끄럽구나. 그리고 너희들이 매일 나의 삶을 보고 있는데 달리 또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저희가 선생님을 뵙기 이전의 삶이나 내면의 풍경은 알기가 어렵사오니 한 말씀 해주시면 후학들에게 큰 보탬이 될 듯 싶습니다."

 

"굳이 그렇게 청한다면 내 삶을 나이 별로 간결히 정리해 보마. 그러나,다시 말하지만 나의 삶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신비화되기를 거부한다. 나는 조실 부모하고 일찍부터 가계를 책임져야 했지. 공부를 할 기회가 없었단다. 그러나 나는 열 다섯에 공부를 내 삶의 중심에 두었단다. 공부만이 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그러나 나는 일정한 스승을 두기 어려웠다. 나의 신분과 경제 상황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하여 나는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있으면 누구에게라도 묻고 배웠지. 공부에 뜻을 두면 스승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로 나는 삼십이 되었을 때 내 삶의 지향점을 분명히 세우게 되었지. 사십이 되어서는 더 이상 다른 가치를 기웃거리지 않아도 되는 독립된 가치를 세울 수 있었고, 오십이 되어서는 내게 주어진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를 확신하게 되었단다. 육십이 되어서는 세상 그 어떤 편견과 가치를 대해도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고, 칠십이 된 지금 나는 내 마음의 욕망이 지향하는 그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단다."

 

"과연 선생님다우십니다. 저희들은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삶이셨습니다."

 

"아아, 너희는 내가 그렇게 염려하는 나의 신비화를 끝내 버리지 못하고 있구나. 나를 도운 사람도 너희지만 나를 망칠 사람도 너희일까 염려되는구나. 다시 말하지만 나의 삶은 평범했다. 다만 다른 이들과 달랐던 점은 공부를 삶의 중심을 두었고, 먹고 사는 것을 삶의 중심에 두지 않았다는 것 뿐이다."

 

『논어』「위정」편에 보면 공자가 자신의 삶을 38자로 언급하는 내용이 나와요. "오십유오이지어학, 삼십이립, 사십이부혹, 오십이지천명,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부유구(吾十有五而志於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가 그것이죠. 그런데 공자의 이 38자 언급은,『논어』의 다른 구절들과 마찬가지로, 전후 맥락을 알 수가 없어요. 공자가 막연히 이 얘기를 한 것은 아닐텐데 말이죠. 하여 공자가 자신의 70회 생일 날 이 말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 말 그대로, 소설을 써봤어요. 공자의 38자 언급이 생의 말년에 언급된 것이 분명하니 그의 생일날 한 말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죠(당시에 생일 축하라는 것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생의 말년이 되면 지나온 삶을 자연스럽게 되돌아보게 되죠. 그리고 그 삶에 대한 평가도 내려보게 되고요. 공자의 38자 언급은 그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이자 평가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사진은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생의 회갑 자작시예요. 선생이 살던 당시에 회갑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을테니 이 시에는 선생이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와 평가가 깃들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어요. 더구나 선생은 회갑 당시 병중[중풍]이었으니 이런 짐작은 더욱 타당성을 갖지요. 필시 삶이 길지 않으리라고 느끼셨을테니까요(선생은 회갑 후 4년 있다 돌아가셨어요).

 

 

怱怱六十一年光   총총육십일년광   순식간에 지나간 육십일년 세월

云是人間小刧桑   운시인간소겁상   이것이 인간의 삶이라 일러왔지.

歲月縱令白髮短   세월종령백발단   세월은 허연 머리 숱조차 없게 만들었지만

風霜無乃丹心長   풍상무내단심장   하많은 고초들 내 단심을 어쩌지는 못했네.

聽貧已覺換凡骨   청빈이각환범골   가난을 수용하니 범인 경지 벗어낫고

任病誰知得妙方   임병수지득묘방   병에 초연하니 묘방이 필요없네.

流水餘生君莫問   유수여생군막문   유수같은 남은 인생 그대는 후일을 묻지마소

蟬聲萬樹斜陽   선성만수진사양   나무 가득한 매미 소리 석양따라 저물듯 할 터이니.

 

 

짐작대로 선생은 시에서 자신의 지나온 삶을 회고하며 평가를 내리고 있어요. 공자처럼 전 생애를 차례대로 언급하진 않지만, 그와 유사한 면을 볼 수 있어요. 공자가 삶의 중심을 공부에 두었듯, 선생은 삶의 중심을 '단심'에 두었어요. 여기 단심은 두말 할 나위없이 조국의 독립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자 거기에 희생하려는 마음이며 일제와의 모든 타협을 거부하는 지조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단심으로 일관한 선생은, 공자가 공부를 삶의 중심에 놓고 생의 말년에 '종심소욕불유구'의 경지를 달성한 것처럼, 노래(老來)의 질고(疾痼)와 가난을 넘어서 삶을 자연의 일부로 여기는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어요. 공자가 '종심소욕불유구의 경지에서 자신의 삶을 충분히 의미있었던 것으로 여겼을 것처럼, 선생 역시 짧은 인생에서 한눈 팔지 않고 시대의 요구와 부름에 응답했던 자신의 삶을 충분히 의미있었던 것으로 여겼을 거예요.

 

공자나 선생 모두, 세속적으로 보면, 그리 행복한 인생이었다고 보기는 어렵죠. 사실 '뜻'만 세우지 않았다면 두 분 모두 세속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일부러 가시밭 길을 자처해 걸었죠. 그게 한 번 뿐인 인생에서 더 의미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그럴까요? 선생의 시를 읽으면 절로 이런 질문을 하게 되요: "나는 과연 내 삶의 종착역에서 내 삶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낯선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은 본래 悤으로 표기해요. 怱은 속자예요. 悤은 心(마음 심)과 囱(굴뚝 총)의 합자예요. 사태가 급박하여 정신없고 바쁘다란 의미예요. 心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囱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담해요. 굴뚝을 빠르게 빠져 나가는 연기처럼 정신없고 바쁘다란 의미로요. 바쁠 총. 怱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怱(총총, 대단히 급하여 허둥지둥하는 모양), 急(총급, 썩 급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힘 력)(갈 거)의 합자예요. 떠나는[] 상대를 겁박하여[] 못가게 한다란 의미예요. 겁박할 겁. 불교에서 사용하는 시간 단위의 의미로도 사용해요. 겁 겁. 위 시에서는 이 의미로 사용됐죠. 이 경우 겁은 산스크리어 kalpa를 음역한 거예요. 매우 긴 시간이란 의미예요. 매우 짧은 시간은 찰나(札剌)’라고 하죠. 찰나는 산스크리트어 Ksana의 음역이에요.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永劫(영겁), 劫奪(겁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뽕나무의 모습을 그린 거예요. 아래 부분은 줄기와 뿌리, 위 부분은 가지와 잎을 그린 것이지요. 뽕나무 상.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桑田碧海(상전벽해), 桑葉(상엽)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실 사)(좇을 종)의 합자예요. 느슨하다란 의미예요. 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실은 당기면 팽팽해지지만 놓아두면 느슨해지기 때문이죠.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좇는다는 것은 한결같이 따른다는 의미인데 실은 놓아두면 한결같이 느슨해진다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 주고 있어요. 늘어질 종. ‘가령, 비록등의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가령 느슨하게 한다면~’ ‘비록 느슨하게 할지라도~’의 의미로요.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放縱(방종), 縱令(종령: 비록, 가령, 설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머리털드리워질 표)(, 뽑을 발)의 합자예요. 머리털이란 의미예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물체를 뽑을 때 위로 잡아 올리듯 그같이 머리털이 위로 솟구쳐 자란다는 의미로요. 털 발.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毛髮(모발), 斷髮(단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귀 이)(덕 덕)의 약자와 (아홉째천간 임)의 합자예요. 좋은 가르침[]을 듣고[] 수용한다는 의미예요. 은 음을 담당해요(). 들을 청.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聽聞(청문), 傍聽(방청)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볼 견)(배울 학) 약자의 합자예요. 잠에서 깨다란 뜻이에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잠이 깨어 눈을 뜨고 사물을 인지한다란 의미로요. 은 음을 담당해요(). ‘깨우치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잠에서 깨듯 무지몽매한 상태를 벗어난다는 의미로요. 깨우칠 각.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覺醒(각성), 覺悟(각오)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손 수)(빛날 환)의 합자예요. 교환한다는 의미예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교환할 때는 주로 손을 사용하기 때문이죠.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교환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어 좋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주고 있어요. '빛나다'에는 좋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어요. 바꿀 환.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交換(교환), 換腐作新(환부작신, 썩은 것을 바꾸어 새것으로 만듦)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人(사람 인)과 壬(클 임)의 합자예요. 일을 맡고 있다는 의미예요. 人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壬은 음을 담당해요. 맡을 임. 任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任務(임무), 赴任(부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女(여자 녀)와 少(적을 소)의 합자예요. 나이 어린 여자, 즉 소녀란 의미예요. '아름답다' '좋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소녀는 순진하고 수려하기에 아름답고 좋다란 의미로요. 예쁠 묘. 묘할 묘. 妙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妙齡(묘령), 奧妙(오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虫(벌레 충)과 單(홑 단)의 합자예요. 매미란 뜻이에요. 虫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單은 음을 담당하면서(단→선)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여름 한 철 크고 우렁찬 소리로 우는 곤충이 매미란 의미로요. 單에는 '크다'란 의미가 내포돼 있어요. 蟬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翼蟬冠(익선관, 귀인이 쓰는 모자), 殼(선각, 매미 허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의 본래 글자는 趁이에요. 趂은 속자예요. 趁은 좇아간다란 의미예요. 走(달릴 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좇을 진. 趂(趁)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來(진래, 따라붙음), 趂船(진선, 배를 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斗(구기 두)와 余(나 여)의 합자예요. '흘리다'란 뜻이에요. 斗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구기(국자)로 뜰 때 흘렸다는 의미로요. 余는 음을 담당해요(여→사). '기울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흘리는 것은 똑바로 뜨지 못하고 기울게 뜬데서 비롯됐다는 의미로요. 흘릴 사. 기울 사. 斜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傾斜(경사), 橫斜(횡사, 가로 비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이 사진은 인터넷에서 우연히 찾았는데, 처음 접했을 때 약간 놀랐어요. 글씨가 많이 흐트러져서요. 지사의 면모를 지닌 선생에게서 나올 법한 글씨가 아니라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이 작품이 회갑 자작시라는 것을 알고 '그럴수도 있겠다'란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당시 선생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병중이었기 때문이죠. 견결한 정신과 달리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힘든 육신으로 어렵게 붓을 움직였을 선생을 생각하니, 새삼 마음이 짠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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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7-09-18 15: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렇네요. 저도 한용운 님위 글씨라고 해서 다시 한번 쳐다봤습니다. 대교약졸 쯤으로 생각해야 하려나 했는데 님의 해설을 보니 그럴듯 해서 고개를 주억이고 갑니다.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 살랑 부는데 잘 지내시나요?^^

찔레꽃 2017-09-18 16:57   좋아요 2 | URL
양철나무꾼님 한결같은 은은한 격려 덕분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 ^ 환절기라 몸살기가... 양철나무꾼 님도 건강 유의하셔요~
 

"조선은 제도 개선에 관한 일본의 충고를 받아들인다. 일본은 조선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보증한다. 영토보전에 위험이 있는 경우 일본은 필요한 조치를 취하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일본은 전략상 필요한 지점을 수시로 사용할 수 있다. 조선은 이 조약과 상반되는 협정을 제3국과 체결하지 않는다."

 

"첫째, 일본 정부는 일본 외무성을 통하여 한국의 외교관계 및 그 사무 일체를 감독 지휘하고, 외국 재류 한국인과 그 이익도 일본의 외교 대표자나 영사로 하여금 보호하게 한다. 둘째, 한국과 다른 나라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을 실행할 임무는 일본 정부가 맡고,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는 국제적 성질을 띤 어떠한 조약이나 약속을 맺지 못하도록 한다. 셋째, 일본 정부의 대표자로 서울에 1명의 통감을 두어 자유로이 황제를 알현할 권리를 갖게 하고, 각 개항장과 필요한 지방에 통감 지휘하의 이사관을 두게 한다. 넷째, 일본과 한국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 및 약속은 이 협약의 조항들에 저촉되지 않는 한 계속 효력을 가진다. 다섯째, 일본 정부는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을 유지할 것을 보증한다."

 

외교관은 자국의 존엄과 이익을 지키는 첨병이죠. 최근 언론에 불거진 해외 공관원의 성추태는 외교관으로서는 치명적인 행위를 저지른 거라고 볼 수 있어요. 대한민국의 존엄은 물론 차후에 있을수 있는 이익을 상실케 한 행동이었으니까요. 존엄을 잃은 나라에게 어느 나라가 이익을 안겨주겠어요. 존엄을 지켜도 이익을 안겨줄지 말지인데. 해외 공관원들에게 높은 월급과 여러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그만큼 힘든 임무를 잘 수행하라는 뜻일텐데 임무 수행은 뒷전이고 헤택만 받아 챙기는 공관원들은 깊이 반성해야 할 거예요.

 

각설. 자국의 존엄과 이익을 지켜야 하는 외교관은 야누스가 되어야 할 듯 싶어요. 세련된 말과 행동 속에 철저히 계산된 이익을 가지고 상대를 대해야 하는게 외교니까요. 외교관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국에게는 천사가 되고 타국에게는 악마가 되야 제 몫을 해낸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양국에서 둘 다 칭송받는 외교관이 있다면 그(녀)는, 냉정하게 말하면, 자신의 임무를 제대로 해낸 외교관이라고 보기 어려울 거예요.

 

위 내용은 한일의정서(1904)와 을사늑약(1905) 주내용이에요. 대한제국을 일본의 병참기지화하고 외교권을 박탈하여 사실상 일본의 손아귀에 넘어가게 한 조약들이죠. 이 조약들을 성사시키는데 실실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 1860-1939)예요. 일본에겐 천사같은 외교관이고 우리에겐 악마같은 외교관이죠. 인정하긴 싫지만, 외교관의 본질에서는 훌륭한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이들 조약이 우리에게 일본이란 국가에 대해 '존엄'이란 인식을 안겨주진 못한 것이기에 이 점에서는 그가 최선을 다했다고 하기 어렵지만 자국에서는 우리와 상반된 인식을 할 수도 있으니 이 점 - 국가의 존엄 수호 - 에서도 역시 자국 외교관으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이 악마같은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이 우리 나라 남산에 있어요. 당연히 우리가 세운 것이 아니고 일본이 세운 것이죠. 물론 해방 이전에요. 현재 동상은 남아있지 않고 동상 명석(銘石)만 남아 있어요. 위 사진이 바로 이 명석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꾸로 되어 있어요. 명석 옆에 해설판이 있는데 욕스러움을 기리기 위해 거꾸로 세워놓았다고 써 있더군요. 치욕의 역사를 기억함과 동시에 하야시라는 인물 나아가 일본 제국주의에게 치욕을 안겨주기 위해 일부러 거꾸로 세워놓았다는 의미겠지요. 한자는 '남작임권조상(男爵林權助君像)'이라고 읽어요.

 

하야시는 자기 배반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에요. 그랬기에 조선을 병합하는데 더 열심(?)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일제강점기 일제의 앞잡이들이 일본인들보다 때론 더 조선인에게 가혹하게 한 것처럼 말이죠. 자기를 배반한 자는 '염치'를 상실했기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간이 되죠. 하야시 집안은 본래 구막부 출신으로 메이지 유신 이후 중앙정부에 끝까지 저항했던 집안이에요. 조부와 부친이 전투중 사망했죠. 하야시 역시 어린 나이에 전투에 참여했구요. 그러나 후일 그는 집안의 신조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되요. 물론 여기에는 곤궁해진 살림과 지인의 도움이 있었어요. 한 번 변심한(?) 이후 그는 철저하게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요. 중앙정부의 충견이 된 것이죠. 그가 택한 길은 외교관의 길이었어요. 그는 조선 공사를 비롯해 영국 이태리  청나라의 공사를 역임했고 말년에는 천황의 자문기관인 추밀원의 일원이 되었죠. 남작은 조선 병합을 성공시킨 공으로 받은 작위였구요. 그의 변심(?)이후의 삶은 충견으로 일로매진한 삶이었어요. 이런 그였기에 조선 병합에 더더욱 매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봐요. 자기를 배반하지 않은 사람은 타인의 삶에 존중감을 갖죠. 자기를 배반한 사람은 그와 반대구요. 자기를 배반한 하야시는 일본(인)을 위해서라면 조선(인)의 병합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조선(인)에 대한 존중감이 있을리 없으니까요. 물론 당시 일본의 다른 외교관이 왔어도 조선 병합은 추진되었겠지만 그래도 자기를 배반한 하야시와는 조금은 다른 마음으로 진행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하야시는 1939년에 죽었지만 해방 이후에도 우리 역사에 악영향을 끼쳤어요. 고종 당시 정치범으로 사형 판결을 받았던 이승만을 그의 주청으로 고종이 특별 사면했거든요. 만일 그의 주청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이 아니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이승만 정부의 온갖 추잡한 정치 행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이승만의 공을 얘기하는 사람도 많지만 과가 공보다 훨씬 많죠. 4.19 혁명으로 하야한 것이 그 명백한 증좌이죠. 이런 이승만을 구해낸 게 하야시였으니 하야시는 정말 우리에겐 악마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어요.

 

한자를 두어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은 본래 참새 모양의 술잔을 그린 거예요. 이 술잔은 제사와 외교시에 사용하던 것이었어요. 후에 벼슬이란 뜻이 추가되었죠. 음이 동일해서 차용한 거예요. 혹은 제사와 외교에서 이 술잔을 사용한 자들이 주로 벼슬아치였기에 벼슬이란 뜻으로도 사용하게 된 것으로 보기도 해요. 벼슬 작. 爵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爵位(작위), 公爵(공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公侯伯子男(공후백자남)은 본래 주나라 때 제후에게 내린 벼슬 이름이에요. 公이 가장 높고 男이 가장 낮은 직위이죠.

 

은 본래 나무의 한 종류인 黃華木(황화목)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후에 권세라는 의미로 전용되었어요. 음이 동일해서 차용한 거예요. 木이 뜻을 담당하고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권세 권. 權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權勢(권세), 權力(권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力(힘 력)과 且(祖의 약자, 조상 조)의 합자예요. 온 힘을 다하여 돕는다는 의미예요. 力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且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어려움을 당했을 때는 조상님에게 제사를 지내며 도움을 구한다란 의미로요. 도울 조. 助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扶助(부조), 助力(조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人(사람 인)과 象(코끼리 상)의 합자예요. 사람들이 코끼리에 관한 말을 듣고 상상한 코끼리의 모습은 실제 모습과 비슷하다는 의미예요. 이런 의미를 줄여서 '형상'이라고 사용하죠. 형상 상. 像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想像(상상), 銅像(동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야시라는 말의 어감이나 우리에게 저지른 죄악을 생각하면 그 인물이 왠지 얍삽하게 생겼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간혹 사극같은데서 등장하는 하야시란 인물도 그렇게 그려졌던 것 같구요. 그런데 실제 사진을 보니 웬걸 두덕두덕하니 덕스럽게(?) 생겼더군요(아래 사진 참조. 위키피아 사진 인용). 성격도 매우 사교적이었다고 해요. 섣부른 어감이나 생각만으로 인물의 외모를 예단하면 안되겠다는 것을 새삼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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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에 △△ 넣어 주시고요 x x 는 빼주세요."

 

커피면 커피 밥이면 밥 어느 하나의 메뉴에 익숙한 저에게 첨가와 삭제를 요구하는(할 수 있는) 메뉴는 더없이 불편해요. 그런데 딸 아이는 이런 첨가와 삭제가 가능한 메뉴에 익숙해요. 외려 첨가와 삭제가 없는 메뉴에 불편과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전 역시 이젠 퇴물인가 봐요.

 

커피처럼 일반 차에도 첨가와 삭제가 가능한 찻집이 있더군요(전 가본 적은 없어요. 인터넷 상으로 본 것 뿐이에요). 사진은 '공차(貢茶)'라고 읽는데, 이 상호의 찻집이 바로 첨가와 삭제가 가능한 찻집이더군요. 기본적으로 녹차와 홍차 우롱차를 파는데 여기에 밀크를 추가할 수 있고 아울러 당도와 얼음량도 조절할 수 있다고 해요. 아울러 추가 금액을 내면 3개의 범위내에서 토핑도 가능하다는군요. 차의 양을 조절하는 컵 사이즈 선택은 당연지사구요. 저같은 퇴물로선 생각도 못한 차예요. 공차는 본래 대만 브랜드로 2012년 우리 나라에 처음 들어왔는데, 지금은 한국 브랜드가 되었다고 해요. 지사가 본사를 접수했다는군요. 공차 코리아는 전 세계 18개국 1380여개 매장을 보유한대요.

 

공차는 '황실에 진상하던 '라는 뜻이에요. 공차의 기원은 서주(西周)시대까지 올라가지만 정례화된 조공으로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관리하게 된 것은 당나라때 부터예요. '관배(官焙)'라는 기구를 설치해 각종 공차의 모든 제조 과정을 직접 관리, 감독, 지휘했어요. 당나라 이후, 중국의 역대 왕조들은 황제와 황실에서만 전문으로 음용하는 공차의 품질뿐만 아니라 품종과 차의 빛깔까지도 끊임없이 추구하고 갈구했죠(박영환, '명차의 발전 과정①', http://www.buddhismjoural.com  참조 인용). 널리 알려진 보이차도 공차의 한 종류이죠. 공차 중에서 가장 이름 높은 것은 상주(常州) 의흥(義興)의 양선차(陽羨茶)라고해요.

 

조정과 관청에 바치는 공차 종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고 공차의 생산지가 확장되면 확장될수록 차를 재배하고 제다하는 차농(茶農)들의 고통은 그에 정비례하여 늘어나죠. 명나라 때 한방기(韓邦奇)가 쓴 '차가(茶歌)에는 이런 내용이 나와요. "부양강의 물고기, 부양산의 차. 물고기가 살찌면 내 아들을 팔아야 하고, 차가 향기로우면 내 집이 파산나네... 부양산은 어느 날에 무너질꼬? 부양강은 어느 날에 마를꼬?"(박영환, '명차의 발전과정④, ⑤', 위 싸이트 참조 인용) 차농들의 고통이 어떠했을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죠.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공차의 횡포(?)가 중국 차문화의 발달을 가져왔다는 점이에요. 어느 한 면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것이 세상사인가봐요.

 

한자를 살펴 볼까요? 은 工(장인 공)과 貝(조개 패)의 합자예요. 工에는 정밀하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고, 貝에는 재화(물)의 의미가 내포돼 있어요. 조정에 바치는 재화와 기물이란 뜻이에요. 貝로 뜻을 표현했어요. 工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조정에 바치는 재화와 기물은 정미(精美)하다는 뜻으로요. 공물 공. 바칠 공. 貢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貢物(공물), 貢獻(공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艹(풀 초)와 余(나 여)의 합자예요(지금은 茶를 쓸 때 余에서 一 하나를 빼고 쓰죠). 쌉싸름한 풀 혹은 그 풀로 우려낸 음료란 뜻이에요. 余는 음을 담당해요(여→다). 차 차(다). 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茶道(다도), 雪綠茶(설록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한 때 현미 열풍을 일으켰던 고 안현필씨가 한 유명한 말이 있어요: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음식은 결코 비싸거나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있습니다." 차도 그렇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보리차 한 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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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친불여근린(遠親不如近隣), 먼 곳의 친척이 가까운 이웃만 못하다. 피부에 와 닿을 때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이죠. 문화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어요. 먼 곳의 문화보다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의 문화가 더 핍진하게 다가오잖아요? 그런데 그 핍진하게 다가오는 문화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의외로 많은 것 같아요. 정작 파랑새는 가까운 곳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지요.

 

사진은 전남 장흥의 유학자 잠계(潛溪) 백형기(白亨璣, 1881-1948) 선생의 시예요. 장흥에서는 치인 이봉준이란 분이 2009년부터 이곳의 역대 유림들 시문을 작품화하여 전시회를 갖고 있는데 이번(2017)에는 19세기와 20세기를 살다간 유림들의 시문을 작품화하여 전시회를 열었다고 해요(관련 기사 및 사진 출처: http://www.asiae.co.kr/news/print.htm?idxno=2017072414324829763&udt=1 ). 이런 전시회를 기획한 지방 자치 단체나 서예가의 의도가 무척 신선하게 느껴지더군요. 서예 전시회 하면 으레히 한국과 중국의 유명 문인 시문만 작품화하기 마련인데 지역 문인들의 작품만 그것도 특정 시기를 살았던 문인의 시문을 작품화 한 것은 서예 전시회의 관습적 구태를 벗어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예요. 전시회를 관람할 주 관람객은 장흥 지역 주민들일텐데, 이 전시회를 관람하는 관람객들은 자신들이 몸담고 사는 지역의 문화적 유산에 대해 큰 애정과 자부심을 느낄 것 같아요. 이런 점도 이 전시회가 신선한 느낌을 주는 또 한가지 요인인 것 같아요.

 

시를 한 번 읽어 볼까요?

 

난생매영(欄生梅影)    난간에 매화 그림자 어리다

난생매영자(欄生梅影子)    난간에 매화 그림자 어리고

정산죽정신(庭散竹精神)    뜰엔 대나무 신기(神氣) 어려라

미각삼경만(未覺三更晩)    밤 깊은 줄 모르고

무서상고인(撫書想古人)    책장 넘기며 옛사람을 생각타

시제(詩題) 초당명월(草堂明月)    시 제목 초당에 뜬 밝은 달

잠계선생시(潛溪先生詩) 을미 춘절(乙未 春節) 이치인(李痴人) 근서(謹書)    잠계선생의 시 을미년(2015) 봄날에 치인 이봉준 삼가 쓰다.

 

이 시에서 핵심은 '옛사람을 생각함'이에요. 시인은 옛사람의 어떤 면모를 생각하는 것일까요? 그 내용은 1, 2구에 나타나 있어요. 이른바 탁물우의(託物寓意, 사물을 빌어 마음을 표현함)로 그 마음을 표현했지요. 1, 2구에 등장하는 사물은 매화와 대나무예요. 매화와 대나무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사군자(四君子)중 하나로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죠. 따라서 시인이 옛사람을 생각하며 배우고 따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지조와 절개'라고 할 수 있어요. 그가 넘기는 책장도 이와 관련이 있는 내용일터이구요. 이 시는 옛사람의 지조와 절개를 사모하는 한 견결한 선비의 서늘한 내면 풍경을 그렸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시를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번 전시회에 등장한(전시회는 이미 끝났어요) 시문들이 혹 모두 다 잠계 선생류의 시는 아닐까? 전시회의 대표작으로 보도 사진에 실린 시가 이 시라면 여타의 작품도 이런 시풍의 시일 가능성이 크다. 만일, 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사실과 부합한다면(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번 전시회는 약간 빛바랜 느낌이 들어요. 왜냐하면 19세기와 20세기를 살다간 문인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시문이 아니기 때문이죠. 서예가 단순한 문자의 희롱(?)이 아닌 바에야 - 단순한 문자의 희롱이라면 그건 서예가 아니라 그림이죠 - 그것이 표현하는 내용도 매우 의미있어야 하죠. 19세기와 20세기를 살다간 문인들의 시문을 작품화 한다면 도학자연(道學者然)의 시문보다는 내우외환이 극심했던 19세기와 20세기를 걱정하는 우국충정(憂國衷情)의 시문들로 작품을 만들었어야 할 거예요. 만일 그런 시문이 없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요(그러나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유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우국충정의 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낯선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은 원래 으로 표기했어요. 이것으로 설명해 보도록 하죠. (문 문)(가릴 간)의 합자예요. 출입하는 사람들을 가리기 위해 문밖에 설치한 차단물이란 의미예요. 오늘날의 바리케이트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죠. 난간이란 의미는 여기서 연역된 거예요. 난간은 출입을 선별하는 기능이 있잖아요? 후에 난간의 재료를 강조하는 뜻에서 木(나무 목)이 추가됐어요. 난간 란.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欄干(난간), 欄外(난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볕 경)(의 약자, 형상 형)의 합자예요. 빛이 비치는 쪽에 드러나는 형상[그림자]이란 의미예요. 그림자 영.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陰影(음영), 影像(영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广(집 엄)(조정 정)의 합자예요. 본뜻은 중궁(中宮)이란 의미예요. 广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중궁이 있는 곳은 조정처럼 넓고 평평한 곳이란 의미로요. 뜰이란 의미로도 많이 사용하는데(위 시에서는 이 의미로 사용했죠),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중궁이 있는 장소처럼 넓고 평평한 장소가 바로 뜰이란 의미로요뜰 정.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庭園(정원), 校庭(교정)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의 약자, 귀신 신)(번개 신)의 합자예요. 번개처럼 위력적이며 그 상태를 예측하기 어려운 존재란 의미예요. 로 주 의미를 나타냈고,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했어요. 귀신 신.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神靈(신령), 神殿(신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볼 견)의 약자가 합쳐진 거예요. 은 깨닫다의 의미가 내포돼 있어요. 본래 잠에서 깨어 사물을 인지하다[見]란 의미예요. 후에 의미가 확장되어 무지몽매한 상태를 벗어나다란 의미로 사용하게 됐어요. 지금은 주로 이 의미로 사용하죠. 깨달을 각.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覺醒(각성), 觸覺(촉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의 변형, 손 수)(없을 무)의 합자예요. 無에는 더없이 풍부하다란 의미가 내포돼 있어요. 부지(扶持)하여 편안하게 해주다란 뜻이에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상대를 부지해 편안하게 하려면 상대를 배려하는 중후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요. 어루만질 무.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慰撫(위무), 愛撫(애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물속에 잠겨 있다, 물속으로 들어가 이동하다'란 의미예요. (水의 변형, 물 수)로 그 의미를 표현했고,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잠길 잠. 潛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潛水(잠수), 潛在(잠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疒(병 력)과 知(알 지)의 합자예요. 인지(認知)에 문제가 있다란 의미예요. 어리석을 치. 痴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白痴(백치), 痴者多笑(치자다소, 어리석은 자는 웃음이 많다)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言(말씀언)과 菫(진흙 근)의 합자예요. 입자가 고운 진흙처럼 언행을 삼가하고 조심한다란 의미예요. 삼갈 근. 謹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謹身(근), 謹弔(근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위에서 작품 전시 내용의 미흡한 점 - 추측에 의한 것이라 오해의 소지가 많은 - 을 들었지만 지역 문인의 시문을 지속적으로 작품화하여 전시하는 기획은 다른 지방 단치 단체나 서예가들이 많은 본받아야 할 사례인 것 같아요. 지역의 축제와 더불어 이런 서예 전시회를 병행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담 둘. 사진의 한자들을 읽는데 무척 힘들었어요. ㅠㅠ  갑골문과 전서 행서 등을 뒤섞어 써놓아 저같이 해서체나 겨우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겐 꽤나 곤혼스러운 일이더군요. 네이버 지식IN의 도움도 받았지만 그 도움도 흔쾌한 도움은 못되었어요. 답해주신 분도 자신감있게 읽질 못하셨거든요. 요는 위 사진의 내용을 해서로 옮긴 것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ㅠㅠ 혹 오류를 발견하시면 질책하지 마시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적만 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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